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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의 북한요지경

진화하는 북한의 韓流 열풍

코로나19 휴교로 학생들 사이에서 韓流 드라마 시청 급증

글 : 장원재  (사)배우고나누는무지개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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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禁 영화 유통·시청은 최대 사형… 〈공동경비구역 JSA〉 〈쉬리〉 〈진달래꽃 필 때까지〉도 용서 없어
⊙ 北 주민들, “사는 게 힘들다”고 말하는 등장인물들의 대사에도 충격받아
⊙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열풍… 얼마나 북한 현실 제대로 묘사했는지 품평하는 ‘시청자 참여’(?)로 이어져

張源宰
1967년생. 고려대 국문학과 졸업, 영국 런던대학 연극학 박사 / 前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경기파주영어마을 사무총장, TV조선 〈돌아온 저격수다〉 진행. 現 (사)배우고나누는무지개 대표 역임. / 저서 《끝나지 않은 축구 이야기》 《오태석 연극: 실험과 도전의 40년》 《배우란 무엇인가》 등
북한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사진=tvN
  탈북자 출신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는 지난 5월 4일 유튜브 ‘주성하TV’에서 흥미로운 소식을 전했다. 코로나바이러스19(우한폐렴) 때문에 5월 이후로 연기되었던 북한 학교의 개학이 4월 17일로 갑자기 앞당겨진 배경이다. 4월 10일, 전 학년이 아니라 대학생과 고등중학교 3학년만 먼저 등교하라는 교육성의 갑작스러운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교육은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사업이니 차질이 없게 하라’는 김정은 발언에 따른 조치라고는 하지만, 내막은 다르다고 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한류(韓流) 영화와 드라마, 북한식 표현으로는 ‘불순녹화물’ 시청 사건이 급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북한 학생들에게는 개인 시간이라는 것이 거의 없다. 수업 외에도, ‘꼬마계획’에 따라 토끼 가죽, 파철 등을 수집해서 내야 하고, 군중 시위 연습, 조직 생활 등에 참석해야 한다. 때마다 나가는 한 달 장기 합숙인 ‘농촌 동원’도 있다.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온종일, 일 년 내내 개인의 삶을 옭아매는 것이다.
 
  대학생과 고3은 다르다. 통제가 어렵다. 대학생은 ‘성인(成人)’이라는 자의식(自意識)이 생기는 시절이다. 북한의 고3(초등학교가 4년제라 대한민국 나이로는 고1)은 졸업 후 군대에 입대하거나 직장에 배치받는 나이다. 어차피 군대에 가면 병영에서 살아야 하니, 그 전에 다소 느슨하게 지내더라도 눈감아주는 분위기가 있다. 여담이지만, 의무복무 기간이 10년인 것도 활동력이 가장 왕성한 젊은이들이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옭아매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는 분석이 있다.
 
  그래서 ‘코로나 방학’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이벤트였다. 북한 학생들에게 ‘시간’을 선물했기 때문이다. 시간은 많고 집 밖 출입이 불가능하니 자연스레 남조선 영화와 드라마를 보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최고위급 당 간부 자녀부터 노동자 자녀까지 너 나 할 것 없이 한류 영화와 드라마에 빠지는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펼쳐졌다는 것이다. 모두를 단속할 수는 없으니 당국에서 비공식적으로 ‘보기는 보되 비판적으로 보라’는 말까지 할 정도라고 한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韓流 유입 시작
 
  북한에 한류가 처음 본격적으로 퍼진 시기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다. 중국과의 밀무역량이 폭증하면서 신문물도 함께 강을 넘었다. 회령 등 북‐중 접경 지역에서는 옌볜 방송이 잡힌다. 원산 등 동해안 일부 지역에서는 한국 방송이 실시간으로 잡히는 곳도 있다. 북한 당국이 모든 수상기의 통로(채널) 부분을 고정해 북한 방송 이외에는 볼 수 없게 조치했지만, 정책이 있다면 대책도 있는 법. 주민들은 납땜을 풀고 어떻게든 외부 콘텐츠를 시청하는 방법을 찾는다.
 
  옌볜TV는 활동사진만 나오고 목소리는 안 들린다. 그래도 주민들은 〈사랑이 뭐길래〉 〈남자의 향기〉 〈순풍 산부인과〉를 즐겨 시청했다. 〈가요무대〉나 〈전국노래자랑〉도 봤다. 비록 노래는 들을 수 없었어도, 무대장치나 출연자들의 의상, 관객들의 반응, 카메라 장면 전환을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흥미 만점이기 때문이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고, 도매상이 있으면 소매상도 생기는 법. 시청자가 증가하자 중국에서 녹화물을 만들어 북한으로 나르는 사람들이 나왔고, 알음알음으로 비디오테이프를 개인에게 대여해주는 장사꾼도 생겼다. 북한 내 한류 콘텐츠 유통량은 기술 발전에 힘입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곽 테이프(VTR)’에 비해 CD는 부피도 작고 운반도 편했기 때문이다. CD는 DVD, USB, 외장하드를 거쳐 최근에는 휴대전화기용 SD카드나 스마트칩으로 진화했다. 북한 당국이 모든 휴대폰을 회수한 뒤 SD카드 꼽는 곳을 막아서 돌려줬지만, 민간에서 이를 다시 뚫어버리는 기술이 훨씬 뛰어났다.
 
 
  ‘2차 가공업자’도 출현
 
  한류가 퍼지는 이유는 두 가지다. 돈이 된다는 것, 그리고 재미있다는 것. 북한 특수부대 출신으로 전자자동화 단과대학을 나온 이○길 씨는 탈북 전 CD 도매상을 했다. CD가 유행하기 시작한 2003~2005년 당시 옌볜의 공 CD 가격은 1위안(약 160원)에 2개로, 한국 녹화물을 담아가면 북한 도매상에게 개당 5~6위안에 팔 수 있었다. 중국 CD 대여방 업자에게 복사료 및 제작비(?)를 지불하고, 국경경비대나 보안원, 단속반 등 요소요소에 뇌물을 충분히 고이고도 5배 이상 남는 장사였다.
 
  소득원은 또 있었다. 중국으로 건너갈 때 중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림꺽정〉 〈홍길동〉 〈이름 없는 영웅들〉 등 북한 영화 CD를 챙겨가면 그것도 돈이 됐다. 청진 수남장마당에서 북한 CD를 파는 사람과 ‘대량구매’로 안면을 트고, 신용을 쌓은 뒤 이들 인맥을 한국 콘텐츠를 파는 네트워크로 활용하기도 했다. 도매업자들은 한류 CD 1장을 북한 돈 600원에 사서 회령에서는 800원, 안쪽 지역에서는 1000원에 팔았다.
 
  이때 시청자들의 수요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인기 품목은 〈장군의 아들〉 등 액션영화, 〈천국의 계단〉 〈꽃보다 남자〉 〈올인〉 등 드라마, 그리고 19금(禁) 영화다.
 
  북한 남성들은 스케일, 스피드, 영상미의 차원이 다른 한국 액션영화에 열광했다. 격투 장면만을 따로 편집해 판매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한국 드라마도 하이라이트 축약본이 돌았다. 도매업자와 상관없이, 평양 등 대도시에서 ‘2차 가공업자’가 출현했다는 뜻이다.
 
  19금 영화는 2004년 후반부터 유행했다. 키스 장면도 안 나오는 북한 영화에 비교하면, 한국 19금 영화는 북한 주민들에게 그야말로 엄청난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단속에 걸릴까 봐 커튼을 담요로 막고, 남친 여친 여러 쌍이 함께 19금 영화를 보기도 했단다. 그때 순간적으로 후끈하게 달아오르던 방 안 열기를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단속반에 걸리면 가장 먼저 듣는 질문은?
 
〈쉬리〉는 여주인공인 북한 특수요원 이명현(김윤진 분)이 사랑에 빠진다는 이유로 북한에서는 ‘보면 안 되는 영화’가 됐다. 사진=조선DB
  북한 당국은 19금 영화 시청과 유포를 엄하게 단속했다. 다른 한류 영화를 보다 걸리면 뇌물을 고이거나 백을 써서 풀려날 수 있었지만, 19금 영화는 예외가 없었다.
 
  북한에도 ‘부화(附和) 사건’이라 불리는 성적(性的) 일탈이 있다. 사실은 다른 나라에 비해 발생 빈도가 높은 편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북한 당국은 ‘실제로 행동하는 것과 자본주의 문물을 따라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라는 논리로 강력하게 처벌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주민들 사이에서도 19금 영화를 보다 잡힌 사람을 성범죄자 비슷하게 인식하는 풍조가 있었다. 처벌의 수위는 가족 전부 산간벽지나 탄광으로 추방되거나 더한 경우는 사형이었다.
 
  19금 콘텐츠 유통이나 시청도 중범죄지만, 한류 콘텐츠 대량 유통도 체제를 뒤흔드는 중대 범죄다. 공개 총살 때 죄명을 ‘한국 드라마를 유통했다’고 할 수는 없으니, 당국은 다른 죄명을 덧씌워 형을 집행했다. 앞서 언급한 이○길 씨의 절친도 한류 콘텐츠를 대량으로 유통하다 사형당했는데, 평소에 ‘드라마에 나오는 한국에 가서 단 하루라도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그 친구가 유통경로를 불지 않아서 내가 살았다”고 말하는 이○길 씨는 “공개 총살 당일 군중 동원으로 나도 그 자리에 갔다. 내 친구는, ‘보고 싶은 것 원 없이 보고 간다’는 달관한 표정이었다”고 말했다.
 
  19금 이외에도, 북한 당국이 절대로 봐주지 않는 프로그램이 있다. 〈공동경비구역 JSA〉 〈쉬리〉, KBS 드라마 〈진달래꽃 필 때까지〉다. 단속반에게 걸리면 가장 먼저 듣는 질문이 ‘이 세 작품을 본 적이 있나?’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김 부자 초상화에 피가 튀는 장면이, 〈쉬리〉는 장군님께 충성을 바쳐야 할 특수요원이 남조선 요원과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이, 〈진달래꽃 필 때까지〉는 기쁨조의 실상이 나오기에 문제라는 소문이 있다.
 
 
  한때 〈주몽〉 방영 고려
 
  그렇다면 북한 당국이 공식적으로 소개한 한류 드라마나 영화는 없나? 있다. 2006~2007년 MBC가 방영한 81부작 대하드라마 〈주몽〉이다. 드라마를 보여준 것은 아니고 소개만 했다. 종영 후 송일국(주몽 역), 한혜진(소서노 역), 전광렬(금와 역), 오연수(유화 역), 이계인(모팔모 역), 정운현 MBC 드라마 국장, 이주환 PD 등 주요 출연진과 제작진이 평양을 방문했다. 북한 TV에 〈주몽〉 팀이 동명왕릉 등을 방문하는 뉴스가 나왔다.
 
  북한 당국은 ‘민족사의 정통성이 고구려와 고구려를 계승한 북에 있고, 이를 남에서도 인정해 드라마를 만들고 참배까지 하러 온 것’이라고 선전하려는 의도로 이들의 동선을 보도했다고 한다.
 
  하지만 주민들의 반응은 달랐다. ‘고구려는 북조선에 있었는데 남조선에서 다루네’ ‘중국에서 드라마를 찍었다니 남조선에 돈이 많기는 많은가 보다’ ‘그런데 왜 드라마를 못 보게 하지?’
 
  〈주몽〉 제작 영상도 화제였다고 한다. 말을 타고 달리는 배우 곁에서 카메라가 레일을 따라 고속으로 따라가며 촬영하는 영상은 ‘첨단기술 매력 한국’의 이미지를 북한 주민들 마음에 새겼다. 여론이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가자, 내심 〈주몽〉의 방영을 고려하던 북한 당국은 태도를 바꾸었다. 단속을 더 강화한 것이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북한 당국은 한류 유행을 체제의 명운이 걸린 문제로 인식한다. 평양시 중구역 반(反)간첩투쟁전람관에 ‘남조선 괴뢰도당이 우리 공화국을 와해하려 책동했던…’이라는 설명문과 함께 신현준씨의 얼굴이 찍힌 〈천국의 계단〉 CD를 특별히 전시하고 있을 정도다.
 
  ‘한류는 북을 붕괴시키려는 안기부의 공작’이라는 교육도 한다. 모든 학교에서 매주 금요일이면 어떤 한류 드라마를 봤는지 반성문을 쓰게 하고, ‘105그루빠’라는 한류 단속 전문조직을 만들기도 했다. 적발하면 무조건 구타를 하며 누구와 봤는지, 물건을 어디서 입수했는지를 집요하게 추궁한다.
 
  북한 당국이 한류 확산 저지에 필사적인 이유가 있다. 한류가 북한 사람들의 마음에 침투해, 행동을 바꾸고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당국의 통제를 벗어나 자유롭게 사고(思考)하고 행동하는 ‘시민’들이 생겨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보안원도 한류 USB를 팔고, 단속 물품이 다시 시장으로 흘러들며, 외화식당 종업원이 근무시간 중에 모니터로 한국 드라마를 본다. 차세대 북한의 엘리트층이며 현재의 유행을 선도하는 평양 외국어대에서 학생들이 드라마에 나온 한국식 다이어트를 따라 하고, 청년들은 한국식 발음을 해야 ‘세련되고 있어 보이는’ 사람으로 인정한다. 달덩이 같은 통통한 얼굴보다는 갸름한 달걀형 얼굴을, 강인한 마초형 남성보다는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남성을 선호하는 등 미(美)의 기준도 한국식으로 바뀐다. 청소년들은 드라마에 나온 의상을 가방 속에 숨기고 와, 친구 집에 몰래 모여 옷을 갈아입으며 춤과 노래를 따라 한다. 심지어는 김정일 애도 기간에도, 당 간부 사이에서도 한류 열풍은 식지 않는다. 도대체 왜?
 
  한국 드라마는 사상을 강요하지 않고 사람 사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랑도 자기들끼리 알아서 하고, “가정을 이뤄 당의 배려와 사랑에 보답하자” “우리가 만난 것도 수령님의 은혜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조직 생활도 없다. “사는 게 힘들다”고 말하는 등장인물들의 대사도 충격이다. “죽을 먹고 마대로 흙을 퍼 나르더라도 장군님을 위해 충성하자”는 북한 영화 속 대사에 비해 지나치리만큼 솔직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코미디와 〈정글의 법칙〉 등은 인기 없어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영화도 북한 주민들은 다르게 시청한다. ‘영화에서 저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구나’ ‘저런 영화를 만들어도 안 잡아가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재미도 없고 새롭지도 않으며 영상도 촌스러운데다 ‘기-승-전-김 부자에게 충성’인 북한 영화와 한국 영화를 비교하며, 북한 주민들은 ‘누군가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최근에는 드라마뿐 아니라 예능도 인기다. 〈1박 2일〉 〈런닝맨〉 이외에 탈북민들이 출연하는 〈모란봉클럽〉 〈이제 만나러 갑니다〉도 ‘시청자 요청상품’ 반열에 올랐다. 〈정글의 법칙〉은 ‘저 정도가 왜 고생인지’ 이해를 못 해서, 〈나는 자연인이다〉도 비슷한 이유로 찾는 사람이 드물다.
 
  코미디 프로그램도 의외로 인기가 덜하다. 웃음은 고정관념을 비트는 데서 나온다. 왜 웃기는 상황인지를 이해하려면, 사전(事前)지식이 있어야 한다. 탈북민들이 한국 코미디를 보고 웃기까지는 대략 6개월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개그콘서트〉를 보고 웃었다면 1차 적응이 끝났다는 증거’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2019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tvN에서 방영한 16부작 〈사랑의 불시착〉은 북한 당국의 새롭고 강력한 고민거리다. 조금 과장을 보태서 말하자면, 다른 한류 드라마를 모두 합친 것보다 이 작품 한 편의 영향력이 더 크다고 한다. 인기는 과열 양상을 넘어 광풍(狂風)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사랑의 불시착〉은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에 불시착한 재벌 딸 윤세리(손예진 분)가 그곳에서 깐깐한 북한군 장교 리정혁(현빈 분)을 만나고, 남북을 오가며 펼쳐지는 로맨스다. 국내 방영 때도 전국 기준 최종회 시청률 20.3%를 기록할 만큼 화제를 모았다.
 
 
  ‘시청자 참여’로 이어진 〈사랑의 불시착〉
 
  이 작품은 한국 드라마 사상 최초로 북한 마을이 주요 배경으로, 북한 주민이 주요 등장인물로 나오는 드라마다. 다수의 탈북자가 미술, 사투리, 상황 등을 조언하고 출연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북한 주민들은 그동안 수동적 관람자 입장에서 드라마를 시청했지만, 〈사랑의 불시착〉은 다르다. 누구 사투리가 가장 괜찮은지, 어떤 장면이, 어떤 건물이 북한의 현실을 가장 잘 묘사했는지를 주도적으로 평가하며 시청할 수 있는 것이다. “한 사람의 말에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사투리가 다 섞여 있지만, 국경 군부대 마을이니 사정을 이해하자” 등의 논평을 하며, 시청자가 아니라 마치 ‘화면에 안 나오는 동네 사람’이 된 듯한 몰입감에 빠져 드라마를 본다.
 
  이것만이 아니다. 극 중에 나오는 북한 가정집, 골목길, 의상, 음식, 아침 체조, 숙박 검열, 장마당, 장마당에서 파는 아랫동네(한국) 물건, 북한 내 한류 드라마, 김치움, 조개구이, 병원 등 작은 장면, 소품, 상황 설정 하나하나가 시청자들 사이에서 화제이자 평가의 대상이라고 한다. “저것은 제대로다” “이 점은 아쉽다” “그만하면 잘 만들었다” “실제보다 더 똑같다”라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재미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즐거움이다.
 
  평양역, 멀리 보이는 류경호텔 등 세트는 어떻게 만들었는지, 열차 내부는? 호텔은? 평양 시내 백화점은? 특각과 초대소는? 학교는? 열차가 달리는 선로를 공중에서 잡은 장면은? 호기심과 의문은 끝없이 이어진다. 또 도청(盜聽), 정전(停電), 기차 연착 등 코믹하게 묘사되는 북한 생활과 북한 특수부대원이 한국에 와서 좌충우돌하며 겪는 소동을 보며 울고 웃는다. 자연스럽게 남북을 비교하는 시각도 생긴다. 알고 지내던 믿을 만한 사람과 조용히 만나 〈사랑의 불시착〉을 본 소감, 느낌을 나누는 것도 유행이다.
 
  최근에는 김현희의 KAL기 폭파를 다룬 다큐멘터리 등, 역사 교양물을 찾는 사람도 늘어났다고 한다. ‘재미’가 ‘재미+의미’로, ‘감성’이 ‘감성+이성’으로 진화하며, 한류의 영향력이 픽션에서 논픽션까지 확대되는 중인지도 모른다. 한류의 중독성은 세계인들이 인정하는 바다.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 북한 주민이라고 예외는 아닐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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