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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혁명조직원과의 死生決斷 대화록 ⑨ 김정일, ‘고난의 행군’ 시기 “인민은 줄면 줄었지 마르지 않는다”

글 :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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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김정은 시대의 주된 수용소 피해자는 특권층… 최상층 계층이 정치범수용소에 反感
⊙ 수용소 경비대 근무 기피해 보위부·보안부 간부들 골머리
⊙ 어느 월북자의 아내, ‘남편의 꾐에 넘어가 왔으니, 남편과 이혼하고 아들을 데리고 남한으로 다시 가겠다’고 사정
⊙ 前 천도교 교령 오익제, 6·25 당시 헤어진 전처와 딸을 만나게 해준다는 꾐에 빠져 北 억류

도희윤
1967년생. 연세대 행정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 /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도대체 TV 대표, 한국자유전선 사무총장, 뉴라이트 전국연합 북한인권특별위원장,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사무국장 역임

[편집자 註]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는 2019년 5월 16일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내부 혁명조직원 김씨와 2014년 중반부터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도 대표는 인터뷰에서 “혁명조직 일원은 ‘김정은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방법은 그를 제거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새로운 지도자가 또 독재를 하더라도, 그건 개발독재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신격화된 독재보다 낫다. 박정희 같은 사람으로 북조선을 끌고 가다 통일을 이루면 된다고 했다”고 밝혔다. 당시 인터뷰에서 도 대표는 《월간조선》 기고를 통해 혁명조직원과 나눈 대화 내용 등을 자세히 공개하겠다고 약속했다. 도 대표가 보내온 ‘北 혁명조직원과의 사생결단(死生決斷) 대화록’ 제목의 글에는 그가 혁명조직원 김씨(닉네임 ‘최이상’)와 메신저를 통해 나눈 대화 등이 담겼다.
  남북 혁명가의 대화록을 공개해야겠다고 결심한 후 벌써 9회째 연재 글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이미 상당 분량의 대화를 기록했고 어느 정도 마무리 내용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정작 북한의 아우와 나눈 대화록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는 점이다. 전자편지처럼 서신을 주고받았거나 연애편지 등으로 작성해둔 것을 살펴보는 편지글이 아니라, 지금은 일상이 되어버린 SNS 대화를 그날그날 정리했으니 하루 동안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휴대폰에 대고 쏟아냈을까. 지금 다시 그런 기회가 온다면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드는 게 사실이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정열적으로 움직이도록 했을까. 누구는 북한만 생각하면 무슨 대단한 민족의 선구자가 된 양 그것도 민족이라는 단어 앞에 압도되는 자신과 신비스러운(?) 북한이라는 대상 사이에 무언가 훌륭한 가교(架橋) 역할을 하리라는 책무감으로 밤잠을 설쳤다고 한다. 필자는 민족이라는 단어보다 혁명을, 화해협력이라는 기대치보다는 자유와 인권이라는 가치에 밤잠을 설쳤음이 틀림없으리라. 북한의 아우와 나눈 대화의 분량과 시간이 정확히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다가오는 21대 총선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끌시끌하다. 위기의 시기에 국회라는 곳이 무엇을 하는 곳이며 얼마나 중요한 위치인가 돌아보면, 여전히 우리의 정치는 후진성에 머물러 있음을 보게 된다. 분단과 정전(停戰)이라는 현 시국에 북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며, 이를 위해 국제정치와 열강(列强)의 역학 관계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가늠조차 못 하는 모습이 바로 그러하다 하겠다.
 
  21대 총선 이후 대한민국은 어디로 갈 것인지 막막하다. 브레이크 없이 폭주하는 반역의 무리에 운전석마저 빼앗긴 대한민국이 과연 기적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을지, 아니면 모든 것이 멈춰 설 것인지 절체절명의 기로(岐路)에 놓여 있음을 제대로 인식하는 정당과 정치인은 찾아보기조차 어렵다. 얼기설기 잘 섞일지도 모르는 섞어찌개가 제대로의 맛을 낼지, 배후에 암약하는 어둠과 탐욕의 무리에게 휘둘려 반역 세력의 2중대로 전락할지 한 치 앞이 도대체 보이지 않는다. 살아 있다면 지금 이런 상황을 두고 북한의 아우와는 어떤 대화를 나누었을까. 아우는 필자에게 무엇을 주문했을 것이며, 그리고 지금쯤 필자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금과 같은 깊은 자괴감은 아니었을 것이다.
 
 
  북한식 兎死狗烹
 
사회안전상 백학림, 정치국장 채문덕.
  최: 심화조 사건 당시 사회안전성의 상(相)은 백학림이었는데 그는 늙고 또 김일성의 빨치산이기 때문에 마지막에 죽여야 하는 주역을 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부상(副相)은 5명에서 7명으로 당과 국가의 로간부들을 체포, 처형하는 문건에 서명할 급이 안 되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정치국장이었던 채문덕을 주역으로 내세웠던 것입니다.
 
  심화조라는 사건을 심화시키니 김일성 시대에 등용된 당과 국가의 로간부들이 모두 서북청년회 성원들로서 미국의 간첩이었다는 것을 밝혀냈다는 날조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김정일이 등용하지 않고 아버지인 김일성이 등용한 로간부들이 자기에게 진심으로 충성하지 않는다고 하여, 경제파탄과 수백만 아사(餓死)의 원인이 미국 간첩들 때문에 일어났다고 책임도 전가하고 숙청도 진행하기 위하여 김정일이 짠 서툰 시나리오였습니다.
 
  그 결과 안전성이 독자적으로 수용소를 설치, 운영하게 되었고, 그 후 채문덕을 비롯해서 수백 명의 안전원들이 숙청, 처형되었습니다. 또 아버지의 수법대로 ‘나는 몰랐고 반당반혁명분자 채문덕과 그 일당이 진행한 사건’이라고 모든 책임을 안전성에 뒤집어 씌웠지요. 여기서도 아버지의 수법과 마찬가지로 날조된 사건으로 수용소가 설치되었으면 모두 석방하고 수용소는 해체하여야겠으나, 눈가림으로 몇 명만 석방하고 나머지 인원들과 수용소는 그대로 운영하였습니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수용소 문제는 김일성 시대 때는 그 피해자가 1부류, 2부류와 4부류, 그 집행자인 3부류에 속하는 보위부원이었다면, 김정일 시대와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는 그 피해자가 주로 1부류의 특권층이고 4부류의 일반 주민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4부류 계층은 수용소 문제에 별로 리해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수용소가 해체되길 바라는 계층이 상층부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에나 수용소 있다’고 알아
 
  북한 아우의 이야기 중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김정은 세습독재체제를 유지하는 데 공동운명체인 1부류를 기점으로 하는 최상위 계층이 정치범수용소에 대해 반감과 철폐를 바란다는 점이다.
 
  최: 수용소의 관리 운영자들은 수용소는 그 어느 나라나 다 설치,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지 북한 당국은 ‘매 나라 자기의 국가체제를 지키기 위하여 정치범수용소를 설치, 운영하고 있으며, 남조선에는 우리보다 몇 배나 큰 정치범교도소(수용소)가 있고, 정치범에 한해서는 종신징역제와 련좌죄가 적용된다. 남조선은 우리보다 더 엄격하다. 미국에도 있고 일본에도, 쏘련에도, 중국에도 있다’, 이렇게 교양했기 때문에 우리 같은 조직 내부에서도 3년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도: 주민들보다는 상층부의 반감이 높다고 하셨는데 일반주민들의 반체제적 단죄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는지요.
 
  최: 불평을 말하는 것 외에는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리유는 그들이 생업에 힘쓰고 나면 사회관계라든가 사회의 모순에 대하여 마음 쓸 형편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생명구원의 전화’
 
2009년 김정일 국제형사재판소 제소 활동을 펼친 필자의 반인도범죄조사위원회 활동. 사진제공=피랍탈북인권연대
  방송이 시작되는 시각이라 아우와 필자 모두 잠시 한숨을 돌렸다. 북한의 아우가 언급한 내용을 처음으로 대북(對北)방송을 통해 알리기로 결정했다. 이런 결정을 하게 된 이유는 아우의 간곡한 당부와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연재를 시작하면서, 러시아에서 일하면서 한국의 친척에게 보냈다가 수취인 불명으로 러시아로 돌아온 편지가 하필이면 노동자들을 감시하는 보위부원 손에 들어가는 바람에 현장에서 체포되어 북한으로 압송당한 북한 노동자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는 북으로 끌려가면서 ‘제발 갓난아이만이라도 살려달라’고 절규했다. 당시 아우는 그런 내용을 필자에게 전달하면서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게 전화번호라도 대북방송을 통해 알려달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그 후 필자는 ‘생명구원 전화’라는 이름으로 방송을 시작했다. 아우와 나는 모두 감개무량했다. 이게 시작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떨렸다. 아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최: 대표님, 수고하셨습니다. 우리 조직의 목소리를 남한과 북한의 주민들이 듣게 되었다는 게 마치도 ○○○○을 배포한 기분입니다.
 
  도: 예, 저도 꼭 기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최: 감사합니다. 라디오가 최고입니다. 이제 라디오만 대량으로 전파되면 민주화 계몽에 큰 걸음을 내디디게 될 것입니다.
 
  도: 예 알겠습니다.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수용소 관리 인원이 되기를 거부하라
 
  최: 수용소와 관련된 자료는 잘 활용하셔야 합니다. 저희의 안전을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계속하겠습니다. 방금 방송에서 북한의 현실을 2가지로 평가하는데 하나는 ‘나라도 아니다. 쉽게 무너질 수 있다. 무질서와 무법천지다’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디서 보는가에 관계됩니다. 4부류에서 보면 법과 질서가 엉망이고 모든 것이 뢰물로 통하며 상층부가 부패 타락하여 마치 썩어가는 듯이 보입니다. 2부류에서 우로 올려다보고 아래 3부류와 4부류를 내려다보면 부패와 부패 절단수술이 아주 제대로 잘 진행되고 있어 끄떡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량면적 효과가 나타납니다. 4부류 계층은 독재유지 시스템에 대하여 잘 모르니 마치 세상이 자기수명을 다한 것처럼 인식할 수 있습니다. 방금 말씀하셨는데 문제는 4부류 계층이 자기들이 착취와 수탈, 통제에서 시달리고 있으며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김씨 왕조 밑에서는 앞날이 없으며 오직 새로운 자유와 민주주의적 환경만이라는 것을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도: 맞습니다. 아우님의 이야기로부터 제가 새롭게 인식하고 배우는 게 참 많습니다. 무엇보다 현실에서 제대로 적용해나가야 할 텐데 말입니다.
 
  최: 수용소에 대하여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수용소 관리자들에게 유엔의 이름으로 된 서한을 보내야 합니다. ‘국제사회가 지금 당신들이 운영하는 수용소에 대한 책임을 김정은에게까지 추궁하는 정도로 심각하다. 당신들은 지금 나치독일의 전범자들과 같은 범죄를 범하고 있다. 범죄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언의 항변으로 사직하라. 자기들의 아들들을 관리소 경비대에 입대시키지 마라’, 이렇게 그들이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일깨워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수용소 경비대에 자식들을 보내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보여 북한 당국도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황입니다. 또 관리소에 인사배치하면 잘 응하지 않아 보안부나 보위부의 상층부도 고민 중입니다. 그것은 관리소가 외진 산속이나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에 있고, 또 여기서 생활하면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누구도 가려고 하지 않는 벼슬입니다. 또 관리소 자체가 김일성 시대 때와는 달라 공급이 잘 안 되어 관리자 자신들도 강낭밥을 먹는 상황이라, 평양에 있는 상층부는 수용소 간부로 인사배치하면 유배지에 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점을 잘 리용하면 우선 수용소의 근무성원으로 되는 것을 꺼려 해 그 통치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누구나 수용소 관리 인원이 되기를 거부한다면 김정은에게도 큰 타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도: 아우님, 어제 말씀하신 수용소 부분은 조심해서 활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굳이 활용하기보다 학습이라고 생각할 것이구요. 말씀하신 수용소 근무성원들에 대한 서신 전달에 대해 고민한 것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십시오. 일반인들이나 외부인이 그곳으로 접근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고, 결국 내부성원이나 그곳 방문이 가능한 조직원들에 의해 일이 진행되어야 할 텐데 방법들이 잘 떠오르지 않네요. 만약 저희가 진행할 수 있는 가능한 방법들이 있으면 꼭 진행해보고 싶습니다.
 
 
  “김정일의 과거 알려주는 자료 필요”
 
모스크바 요양 당시의 성혜림.
  아우와의 약속 중 몇 가지는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방송이 바로 그중 하나인데 대북방송이라는 것이 개인적으로 할 수도 없는 일이고, 당시의 상황이 아무리 박근혜 정부였을지라도, 실행부서로 내려가다 보면 민노총의 사주를 받는 언론노조가 틀어쥔 상황인지라 일개 프로그램 하나조차 제대로 자유롭게 운영되지 못하고 있었다. 하물며 지금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말이다. 후속적인 조치들이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아우는 좀 더 세부적인 북한 정치범수용소 해체 작업의 방법들을 지속적으로 필자에게 쏟아내고 있었다. 모든 것을 여기에서 밝히지 못함을 독자분들에게 양해를 부탁드린다. 언젠가 다시 아우의 그 필살기와 같은 보검들을 꺼내 들 날이 오리라 믿는다.
 
  최: 알겠습니다. 대표님께서 제가 부탁한 자료를 구하시느라 휴일에도 쉬지 못하시고. 성혜림의 이야기는 여기에 와서 알게 되었습니다. 북한에는 아는 사람이 전혀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런 것도 다 김정일의 과거를 알려주는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김씨 왕조가 집권하는 데 그를 안받침하는(내부적으로 받쳐주는) 기초가 있습니다. 그것은 김씨가 다른 것은 제쳐놓더라도 인간 됨됨이가 아주 따듯하고 자애로우며 인자하고 성실하며 인정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내용을 담은 영화들과 자료들이 수없이 많으며 그것을 페이지 수로 계산하면 도서관 하나 분량만큼 될 정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씨를 반대하면 사람들의 인식이 ‘어떻게 그렇게 위대하고, 인자하고, 덕망 높은 분을 받들어 모실 대신 배신할 수 있느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진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 그의 뒤 생활을 살펴보면, 남의 유부녀도 가로채 제 것으로 만들고 인위적인 고난의 행군을 만들어 아사자를 내고도 수십억 달러를 들여 자기의 별장을 건설하고, 세상의 산해진미로 포식하면서도 인민들 보고는 자기도 감자죽이나 강냉이빵으로 끼니를 때운다고, 인민들과 같이 굶기도 한다고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는데, 우선 여기에 대하여 진실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의 약력과 사생활에 관한 자료가 ○○○에 꼭 필요하기에 대표님께 부탁하였습니다.
 
 
  “北은 봉건군주제로 후퇴”
 
  도: 아우님, 오늘이 주말인데 아우님이 바쁘지 않습니까? 생활총화 못 하면 장성택처럼 되니 잘 하세요. 배경이 든든한 장도 갔으니 더 조심하셔야죠.
 
  최: 제가 무식한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주말이라는 것은 토요일입니까, 일요일입니까?
 
  도: 또 무서운 질문을 하는 줄 알고 두렵습니다. 아 예, 주말은 둘 다를 말합니다. 이틀이 되는 거지요.
 
  최: 남한 분들은 일주일에 2일 휴식합니까? 그렇게 된 지가 언제부터인지요?
 
  도: 거의 10년 이상이 되어가나 봅니다. 주 5일 근무한 것이요.
 
  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몇 시간씩 일합니까?
 
  도: 원칙적으로 하루 8시간, 기본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최: 주 40시간 로동제입니까?
 
  도: 맞습니다. 세계 기준이랍니다. 국제노동기구 ILO의 기준이요.
 
  최: 예, 레닌이 1916년이든가 멘셰비키들의 반대에도 주 40시간 로동제 법령에 수표하였지요. 국제공산당사 배울 때 얼핏 들은 기억이 나는데, 남한에서 진정으로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했군요. 진정한 공산주의는 민주주의입니다.(웃음)
 
  도: 하하 그래요. 북은 아직도 봉건제구요.
 
  최: 예 봉건군주제로 후퇴했습니다. 정치적 후진국입니다. 가슴 아픈 일이지요.
 
  도: 그러게 말입니다. 슬픈 일입니다.
 
 
  어느 월북자 가족
 
중국을 비롯한 국제연대 차원에서 제작된 ‘자유조선’ 기관지. 사진제공=피랍탈북인권연대
  최: 예, 한 가지 더… 남한에서 북한으로 마지막으로 월북한 사람을 기억하십니까?
 
  도: 동학 천도교 교령(敎領)이었던 오익제?
 
  최: 예, 이름은 기억 못 하고 7~8세쯤 되는 아들과 부인이 함께 온 30대의 사람입니다. 오익제 같은 거물은 아니고 남한에서 서민으로 살던 사람입니다.
 
  도: 예, 말씀하시죠.
 
  최: 너무 힘들게 살아 좀 나을까 해서 북한으로 왔습니다. 부인에게는 북한은 지상낙원이다 라고 얼려서 같이 왔는데 그 사람이 온 가족과 함께 월북한 마지막 사람입니다.
 
  도: 예 그래요.
 
  최: 저희 조직의 기억에는 1989년 같습니다. 저희 기억에 의하면 그 사람의 온 가족을 그때 북한에서 기자회견을 시켰습니다. 평양 구경도 시키고 그다음 지방에 배치했던 것 같습니다. 월북자라고 다 평양 배치하는 것은 아니고 참 오래된 자료를 본 기억이 나는데, 아마 황해남도 옹진군 어느 자그마한 공장에 로동자로 배치한 것 같습니다. 그 후 국가안전보위부에 자료가 통보되어 올라왔는데 내용은, 본인은 ‘죽었소’ 하고 직장 출근은 잘했답니다. 그리고 부인은 사회생활은 하지 않고 집에서 노는데 그에 대한 교양사업을 맡은 녀맹원들이 집으로 찾아가면 문을 걸고 일절 사람 만나기를 거절했답니다. 하루종일 하는 일이란 집에 앉아서 화장하고 울고불고 했답니다. 매일 군당(郡黨)위원회 조직부를 찾아가서 자기의 의사로 월북한 것이 아니라 남편의 꼬임에 넘어가 왔으니, 남편과 리혼하고 아들을 데리고 남한으로 다시 가겠으니 제발 돌려 보내달라고 사정하려 군당에 하루 한 번씩 찾아오는 것이 업이었답니다. 인민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철이 없어 그런지 김일성의 혁명력사만 가르쳐준다며 한 시간 정도 수업만 참가하고 인차 가방을 메고 집으로 왔답니다. 그러고는 일절 다른 아이들과 접촉을 하지 않았답니다.
 
  그런 내용을 통보하며 그들 가정에 대한 처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의하는 문건이었는데 평양의 보위부에서도 몹시 난감해하는 처리 내용이었습니다.
 
  도: 아 그래요. 행위는 잘못되었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네요.
 
  최: 북한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북한에 찾아오면 몹시 골치 아파 합니다. 죽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돌려보낼 수도 없고, 또 그냥 놔둘 수도 없고.
 
  도: 하하, 알 만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관리소에 보내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최: 당시 처리 결과는 없었고, ‘평양 보위부의 승인을 받아야 처리하겠는데’라는 의견서입니다. 아마 그렇게 했을 겁니다. 그때부터 25년 세월이 흘렀으니까요. 계속 그렇게 요구하는 것을 지금까지 그냥 둘 리 없지요.
 
  도: 정말로 관리소에 보낸 것만 확인할 수 있다면 독재 세력을 국제사회에 폭로하기가 좋을 텐데요.
 
 
  오익제의 월북
 
북한 내부 혁명조직원은 “황장엽 탈북 효과 희석시키려 오익제 꼬셔 월북시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2003년 7월 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탈북자와 북한 인권문제 토론회에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 실상 등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최: 예, 국제사회에 알려 그들의 반인권적 행위를 폭로해야지요. 그리고 우선 남한 사람들이 알아야 합니다. 오익제도 인질로 잡혀 고생했지요.
 
  도: 그런 건 확인하기가 어려운가요? 인질요? 그런 놈은 고생해야 해요. 천도교 교령까지 해놓고 월북을 하다니 말이 안 되죠.
 
  최: 그건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북한의 황해남도 옹진군에 사는 월북자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는 친척들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지 못하면 그건 관리소행이겠지요.
 
  도: 아우님, 그런 건 어떻게 문건을 관리합니까? 유엔에서도 그런 자료를 무지 갈망하고 있을 텐데요. 그리고 오익제를 아우님이 잘 아시는지요.
 
  최: 그런 문건은 평양 보위부 1국 안에 또 그런 문건만 보관, 취급하는 부서가 있는데, 그런 문건의 사본을 구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다만 그런 문건이 올라오는 시점에서 잠깐 열람할 기회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오익제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것은 아마 통전부(통일전선부)가 했겠지요. 다만 오익제가 몹시 심란해서 ‘내가 북에 왔으니 가족들은 어떻게 살아가나’ 하고 걱정을 하면 ‘선생님 서울에 있는 가족에게 이번 달에 1만불 전달했습니다’라고 위로했다더군요. 그러니 그가 자발적으로 왔겠습니까? 아마 황장엽 못지않은 거물이 북한에 왔다고 선전하기 위하여 그를 꾀어서 데려왔겠지요.
 
  도: 꾀어서 데려갔다는 것은 일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친구가 오래전부터 고정간첩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최: 예. 통전부가 박아놓은 간첩이었는데 황장엽 때문에 할 수 없이 드러나 데려왔고, 본인은 오고 싶지 않은 걸 왔다고 들은 거 같습니다.
 
  도: 고첩이 아니고서야…. 고정간첩 이야기가 맞을 겁니다.
 
  최: 그건 맞습니다. 그를 거기까지 올려놓으려고 많은 돈과 품을 들였다더군요.
 
  도: 그런 돈을 인민들을 위해 써야지 원. 아무튼 이상하게 높이 올라가는 놈들은 수상히 봐야 해요.
 
 
  김정일, “내가 있는 한 인민은 얼마든지 다시 불어난다”
 
  최: 인민을 위해서라니요. 김정일이 고난의 행군 시기 인민들이 굶어 죽는다 하니, ‘인민은 줄면 줄었지 마르지 않는다’고 했다던데요.
 
  도: 정말 대단한 단어입니다. 이 말은 꼭 언급해야겠어요.
 
  최: 땅이 있고 물이 있고 내가 있는 한 인민은 얼마든지 다시 불어난다 했답니다.
 
  도: 기가 차네요. 천하에 죽일놈!!
 
  최: 제가 왜 형님을 존경하는지, 그리고 형님에게 왜 손을 내밀었는지 아십니까?
 
  도: 모르겠습니다. 전생에 부부였나?
 
  최: 형님이 김정일을 국제형사재판소에 고발한 최초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형님께서 유독 문제를 옳게 보셨고 저희 조직의 생각과 일치하지 않습니까. 분단 70년 동안 헤어져 살았지만, 마음이 통하지 않습니까. 이제 와서 유엔도 김정은을 기소한다 어쩐다 하지 않습니까? 형님이 유엔에서 활동하는 인권기구의 간부라면 벌써 상정되었을 것입니다. 력사는 김정일을 형사재판에 기소해야 한다고 주장한 첫 사람이 형님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도: 아이고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같이 고생했어요. 저는 얼굴마담으로 하하…
 
  최: 그래도 기치를 들고 날 따르라, 돌격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도: 아우님께 칭찬받으니 그 어떤 칭찬보다 기분이 좋습니다.
 
 
  “통일되면 자전거 여행하자”
 
  최: 제 죽기 전에 내 나라 한반도를 한 번 편답하고 싶은데 그 소원이 이루어질까요?
 
  도: 당연히 이루어질 겁니다.
 
  최: 형님은 자전거타기를 즐기십니까?
 
  도: 아우님, 통일되면 우리는 다 내려놓고 여행이나 같이 다닙시다. 자전거 좋아하니 같이 타고 다닐까요?
 
  최: 예, 그럽시다. 내 나라를 자전거를 타고 한 번 돌고 싶습니다. 자동차 말고요.
 
  도: 꼭 그럽시다. 그때까지 혁명과업 완수하구요.
 
  나의 아우와 2인용 자전거를 타고서 금수강산 한반도를 돌아보는 꿈을 꿔본다. 혁명의 과업이 완수되는 그날, 당장은 반역의 무리가 장악한 대한민국부터 바로 세워야 할 터이기에 오늘도 힘겨운 발걸음을 한발 한발 떼어보지만, 꿈은 이루어지리라.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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