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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만에 공개된 외교문서로 재구성해본 KAL 폭파사건 막후의 긴박한 순간들

김현희 인수를 大選에 맞추려 작업한 흔적 없어

글 :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mongol@chosun.com

글 : 김영남  조갑제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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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大選에 이용하기 위해 대선 직전에 데려왔다’는 주장은 억지
⊙ 韓日 정보 협력이 범인 검거에 결정적 역할
⊙ 일본은 사건 직후 마유미 관할권을 포기
⊙ 안기부 현지 요원과 駐UAE 한국대사관·駐바레인 일본대사관의 빛나는 초기 대응
⊙ 바레인공항에서 일본 외교관이 출국을 저지하지 않았으면 영구미제사건 되었을 것
⊙ 인도 교섭 책임자 박수길 특사, 바레인에 “그만 돌아가겠다”고 압박
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는 1987년 12월 15일 국내로 압송되었다.
  한국 외교부가 지난 3월 31일 공개한 1987~88년 외교문서에는, 1987년 11월 29일 발생한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115명 사망, 대부분 귀국행의 중동 근로자)과 관련된 내용이 자세하게 소개돼 있다. 폭파사건 관련 문서 분량은 총 51권, 약 1만 쪽에 달한다. KAL기 폭파범 김현희(金賢姬)씨에 대한 신병 인도 교섭 과정은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사고조사 및 원인 규명〉이란 제목으로 분류된 6권의 문서철에 들어 있다.
 
  이 문서철을 읽어보면 당시 한국 정부가 기민하게 국제협력 체제를 가동시켰음을 알 수 있다. 일본과 미국은 물론, 김현희씨가 체포된 바레인과 KAL 858기 수색을 도운 태국과 버마(현 미얀마) 정부 측과도 긴밀하게 협력했다.
 
  특히 사건 직후 김현희씨를 바레인공항에서 체포한 결정적 요인은 한국과 일본의 빠른 정보 공유였다. 두 용의자의 신원이 일본인으로 되어 있어 일본 정부의 역할이 중요했다. 위조여권에서 김현희는 하치야 마유미, 주범인 김승일은 하치야 신이치였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부 문서와 2007년 국정원 과거사조사위원회의 자료 등을 종합해, 사건이 발생한 1987년 11월 29일부터 김현희씨가 한국으로 압송된 12월 15일까지 과정을 재구성해보았다.
 
 
  ‘我國 항공기 공격企圖 가능성 배제할 수 없다’
 
  아랍에미리트(UAE) 주재 한국대사는 사건 발생 다음 날인 11월 30일 오후 5시10분 최광수(崔侊洙) 외무장관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1. 대상자 : MR. SHINICHI(70세가량), MISS MAYUMI(25세가량)
 
  2. 유의사항
  - 동인들은 11.19. 비엔나 소재 GULF AIR 사무실을 통해 바그다드-아부다비 간 항공편 예약한 후
  - 11.28. 14:30 유고 벨그라드발, 동일 20:30 바그다드 도착 후 동일 23:30 KAL기로 갈아탄 후 11.29. 02:50 아부다비 도착
  - 동인들이 아부다비 도착 후 동일 09:00 GF-003편으로 바레인 향발하였음. (바그다드, 아부다비는 입국 수속하지 않았음.)
 
  3. 당관 조치사항
  당지 KAL, GULF AIR 등에 동인의 LAST NAME 및 소재지를 파악하도록 조치하였으나 바레인 향발 사실 외에는 확인 불능
  - 주바레인대사관에 상기 사실 알리고 바레인 당국에 동인들의 소재 등 파악 요청
  - 당지 일본대사관 MATSUDA 참사관에 상기 사실 알리고 동인들의 인적사항이 일본 측 BLACK LIST에 등재 여부 및 소재지를 파악하여 주도록 요청한바 동공관 LIST에는 여사한 인명이 없으며 LAST NAME을 알려주기를 희망, 동 참사관은 상기 사실을 일본 외무성에도 알린바 일본 외무성 역시 확인을 위하여는 더욱 상세한 인적 사항을 보고토록 지시하였다 함.
  - 동인들은 비엔나에서부터 FIRST NAME만으로 예약하였으며 아부다비-바레인 간은 당초 비엔나에서 예약되지 않았다 함.
 
  4. 상기 일본인들이 오지리(오스트리아) 및 공산국인 유고를 여행하였으며 바그다드, 아부다비 등 두 곳을 별다른 이유 없이 경유함은 아국 항공기 공격기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사료되오니 동건 관련 공관으로 하여금 상기 두 일본인의 신원 및 소재를 파악하도록 조치하여 주실 것을 건의함. (하략)〉
 
  아직 비행기 사고 원인도 특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국대사는 현지의 일본대사관과 정보를 공유하고 테러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UAE 주재 한국대사대리는 약 4시간 뒤인 오후 9시30분, 최 장관에게 또 보고 전문(電文)을 보냈다.
 
 
  호텔에 투숙한 김승일·김현희를 찾아내다
 
  〈1. 대한항공기에 탑승했던 일본인 관련, 김영호 駐바레인 대한항공 소장이 동인을 전화로 접촉한바 동인들은 부녀(父女)지간으로 12.01.(화) 알리아 항공기편으로 요르단 경유 로마로 향발 예정이라 함.
 
  - 체류호텔 : Regency Hotel 611호, 바레인
  - 항공일정 : 12.01.(화) 바레인-암만 RJ-607(08:30) 12.01(화) 암만-로마 RJ-101 (10:45)
 
  姓名
  MR. HACHIYA SHINICHI (여권번호 MG 5741632)
  MISS. HACHIYA MAYUMI (여권번호 MG 5021208)
 
  2. 駐바레인 대사관으로 하여금 상기인들을 직접 접촉, 탑승 당시의 기내(機內) 이상 여부 및 특이사항 등을 파악하도록 요청했음. 끝.〉
 
  대한항공 직원의 첫 범인 소재 파악은 김승일·김현희의 체포를 가능하게 한 한일(韓日) 정보 공유의 계기를 만든 점에서 결정적 의미를 지닌다. 이 보고를 접한 최 장관은 문서 하단 부분에 ‘要, 주일대사에게 통보’라고 적었다. 일본 측에 알려주라는 뜻이다.
 
  주바레인 일본대사관 스나카와 쇼준(砂天昌順) 사무관도 독자적으로 신이치와 마유미가 투숙한 호텔을 찾기 위하여 여러 호텔로 무작정 전화를 걸다가, 우연히 리젠시호텔 전화 교환수가 신이치와 연결시켜 주어 통화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일본 외무성이 바레인 주재 일본대사관에 마유미의 여권이 위조된 것이라고 통보한 것은 12월 1일 새벽 4시50분이었다. 외무성이 위조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은 전날 한국 측으로부터 받은 인적 정보의 확인을 통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마유미와 신이치의 신원과 소재는 한국 측이 먼저 알았지만, 위조라는 사실을 먼저 안 것은 일본으로, 그래서 바레인 주재 일본대사관 직원이 공항으로 달려가 두 사람의 출국을 저지한 것이다. 스나카와 사무관은 새벽에 리젠시호텔 로비에 가 있다가 신이치와 마유미가 호텔을 나서는 것을 미행, 바레인공항에 도착한 스나카와는 바레인공항의 출입국 심사관실로 뛰어들어 여권 위조를 이유로 두 사람의 출국을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한편 UAE 주재 한국대사관으로부터 두 사람의 수상한 일본인이 투숙한 호텔 정보를 받은 바레인 한국대사관의 김정기 서기관은 11월 30일 밤 리젠시호텔로 가 신이치와 마유미를 만났다. 다음 날인 12월 1일, UAE 주재 한국대사대리는 김 서기관의 전날 방문 결과를 외무부에 보고한다.
 
  “KAL기 내 이상 여부 및 여행 일정 등을 문의한바 하치야 신이치는 동 기내(機內) 이상 여부는 감지치 못했으며, 노후에 딸을 데리고 여행 중으로 12월 2일 로마로 향발 예정이라 했다”는 요지였다. 보고서는 한자(漢字) 이름도 알린다. 남자는 蜂谷眞一, 여자는 蜂谷眞由美.
 
UAE 주재 한국대사관이 1987년 11월 30일 마유미와 신이치의 신원을 파악, 최광수 외무장관에게 보고하는 문서.


UAE 주재 한국대사관이 1987년 11월 30일 마유미와 신이치가 머물고 있는 호텔을 파악, 최광수 외무장관에게 보고하는 문서.
 
  日, 출국 저지하고 飮毒 상황 한국 측에 알려
 
  이 보고가 올라간 시점은 오전 10시35분인데, 이때는 이미 신이치와 마유미가 바레인공항에서 체포된 뒤이다. 이 보고서는 아래에 이렇게 덧붙였다.
 
  〈금일 오전 이 사람들의 바레인 체류 여부를 확인한바 이들은 김 서기관과의 면담 시 언급과는 달리 12월 1일 아침 로마 향발 비행기에 탑승했으며 탑승 후 돌연히 기내에서 하선, 모처로 잠적했다 함. KAL 측의 추측으로는 주바레인 일본대사관 요인이 동인들을 하선시킨 듯하다 함.〉
 
  이어서 〈상기인들의 여행 일정상 의문점 및 로마 향발 비행기 탑승 후 돌연 하선한 점 등 감안 동건 일본 정부 측의 해명 및 협조를 요청함이 좋을 것으로 사료됨〉이라고 건의하였다. 범인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한 UAE 및 바레인 주재 한국대사관의 행동은, 바레인공항으로 달려가 경찰과 함께 김승일, 김현희의 출국을 막은 일본대사관 직원들의 활동과 비교된다.
 
  일본 주재 한국대사는 12월 1일 오후 5시24분 최광수 외무장관에게 다음과 같은 전보를 보냈다. 외교문서상으론 한국 정부가 김현희의 생존을 처음 알게 된 것도 일본 정부의 통보에 의해서이다.
 
  〈1. 우메모토 북동아과장 대리가 금 12.1. 16:40 당관 문봉주 정무과장에게 연락해온 바에 의하면(주바레인 일본대사관으로부터 16:00경 전화로 보고받은 사항), 문제의 일본인 2명이 바레인 당국에 의해 취조받던 중 음독자살을 시도, 중태에 빠졌으며, 바레인 당국은 동 2명을 사루마니아 국립병원에 긴급 입원시켰다 함.
 
  2. 자살시도 경위
 
  가. 日외무성이 동 2명의 여권을 조회한 결과 남자 쪽은 위조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여자인 마유미 하치야의 여권은 여권번호가 원래 남자에게 발행한 번호로서 조사결과 위조임이 판명되어, 日 정부가 긴급 바레인 당국에 동 2명의 출국정지 및 조사를 의뢰, 이에 따라 바레인 공안당국은 동 2명을 일단 여권 위조 혐의로 체포, 구금 후 조사를 받던 중 양인(兩人)이 갑자기 달걀 모양의 음식물에 넣은 캡슐을 먹고 중태에 빠져 국립병원으로 긴급 수송했다 함.
 
  나. 현지 대사관 보고에 의하면 여자는 회생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나, 남자는 절망적인 것으로 보여진다 함.
 
  3. 특이사항
 
  가. 신이치 하치야(남)는 駐바레인 한국대사의 명함을 소지하고 있었다 하며, 이로 미루어 동인이 駐바레인대사를 예방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함.
 
  나. 마유미 하치야(여)는 여권 조회 결과 가명임이 밝혀졌으며, 동인이 소지한 위조여권의 원래 주인인 남자에 대해 日 공안당국이 비밀리에 수사를 진행 중이라 함. (동 남자의 체포 여부는 미상이라 함.)
 
  다. 상기 마유미(여)라고 지칭한 여자는 신장 157센치의 여성으로 현지 일본대사관 직원 보고에 의하면 얼굴 형태가 在日한국인 또는 조총련계 여자인 듯한 인상을 받았다 함. (하략)〉
 
 
  한국 외교관을 속인 김승일
 
하치야 신이치(왼쪽)와 하치야 마유미(오른쪽) 이름으로 된 김승일과 김현희의 가짜 여권.
  외무장관은 일본의 통보를 받은 직후인 12월 1일 오후 7시에 주바레인 대사 앞으로 ‘초긴급’ 전문을 보낸다.
 
  〈駐UAE대사관으로부터 귀관이 특이사항 파악을 요청한 귀지 체류 2명의 일본인은 바레인 경찰에게 조사를 받던 중 음독자살을 기도, Shinichi는 위독한 상태이며, Mayumi는 불편한 상태이고, 금 12.1. 일본 정부가 아측에 알려옴. 귀지 일본대사관 측 및 귀지 관련 기관과 협조, 상기 2인에 대한 현재의 상황을 초긴급 타전 바람.〉
 
  주바레인 한국대사관은 위로부터 내려온 정보에 당황했을 것 같다. 바레인대사대리는 비로소 상황을 파악, 본부에 보고한다.
 
  〈하치야 신이치는 사망, 마유미는 안정된 상태이고, 독극물의 종류는 밝혀지지 않았다〉는 요지였다. 이 보고서는 전날 상황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김 서기관이 11월 30일 21시30경 호텔을 찾아 면담 시 신이치는 마유미가 딸이라고 말하면서 딸과 함께 마지막 해외여행을 하는 중이며 여행일정에 대해 구라파(유럽)는 너무 추워 중동으로 왔으며 12월 2일쯤 이태리(이탈리아), 그리스로 갈 예정이라고 말함. 이들이 탑승했던 KE-858이 추락한 것 같다고 알려주자 약간 놀라는 것 같으면서 유감을 표시했으나 특이한 점을 발견치 못함. (영어를 거의 못함으로 한자 필담을 이용함.) 12월 2일 출국 예정이라고 말했으나 사실은 12월 1일 아침 암만 발 요르단에어 편으로 Ticketing(예매)돼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출국 사실을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임. 당지 일본대사관 측과의 접촉에 의하면, 동인들이 구라파 등 장기간 여행을 하면서도 LUGGAGE(짐)가 없는 점에 대해 의혹을 나타내면서 동인들이 적군파 등과 관련되어 있는지의 여부를 본부에 문의해보겠다고 함.〉
 
 
  쿠웨이트 파견 안기부 직원의 활약
 
김승일이 유고 베오그라드의 메트로폴리탄호텔에 투숙했을 때 인근 공원에서 찍은 사진.
  김승일과 김현희가 바레인공항에서 저지되지 않고 로마로 가버렸다면 이 사건은 영구미제(永久未濟)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 한국이 수사를 통해 북한 정권의 소행이라고 발표해도 범인이 없는 상태에선 ‘주장’으로 그치거나 안기부의 자작극(自作劇)이란 누명을 썼을 것이다. 김승일·김현희 두 범인의 체포의 공(功)은 일본 정부의 신원 확인과 이에 따른 주바레인 일본대사관 직원의 민첩한 대응에 돌려야 하는데, 그 배경에는 이름이 공개되지 않은 안기부 요원의 활약이 있었다고 한다. 2007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의 보고서에 실린 익명(匿名)의 활약을 소개한다.
 
  〈•1987.11.29. 오후(현지시각, 이하 동일) UAE 두바이로 출장을 갔던 안기부 쿠웨이트 파견관은 두바이공항에서 KAL 858기 실종 소식을 듣고, 직무 경험과 기(旣)입수했던 첩보에 근거해 同 사건이 폭탄 테러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아부다비의 한국대사관과 대한항공 지점에 전화를 걸어 중간 경유 승객의 신원 파악을 요청
 
  •11.29. 밤 대한항공 직원과 UAE 한국대사관 직원이 아부다비에 내린 KAL 858기 중간 경유 승객의 신원과 행적을 파악한 결과 ‘비엔나-베오그라드-바그다드-아부다비’를 거쳐 바레인으로 간 부녀(父女)지간으로 보이는 신이치와 마유미를 발견
 
  •11.30. 오전 UAE 한국대사관에 도착한 안기부 쿠웨이트 파견관은 이전 일본에서의 근무 경험으로 신이치와 마유미가 일본 이름임을 바로 파악하고, 양인(兩人)의 수상한 여정과 함께 입국 금지자 명단에 야카베 마유미가 등재돼 있는 점 등의 이유로, 대사관과 대한항공을 통해 본격적으로 추적을 개시
 
  •11.30. 오후 UAE 한국대사관은 UAE 일본대사관을 통해 양인의 신원 파악을 의뢰하는 한편, KAL 바레인 지점은 양인의 바레인 입국 사실과 Full name, 여권번호, 리젠시호텔 투숙 사실 등을 파악했고 KAL 아부다비 지점은 이들의 이전 행적지 투숙 장소 등을 파악
 
  •11.30. 21:30분경 駐바레인 한국대사관 대사대리는 양인의 투숙 호텔 방을 방문, 하치야 신이치와 필담을 나누는 등 거동 수상 여부를 확인했으나 특이사항 없는 것으로 판단
 
  •12.1. 새벽 일본 정부로부터 하치야 신이치의 여권이 위조된 것임을 통보받은 駐바레인 일본대사관은 바로 리젠시호텔을 방문해 공항으로 향하는 양인을 추적, 바레인 마나마 공항 경찰에 양인의 출국을 제지해줄 것을 요청, 검문하는 도중 공항 로비에서 하치야 신이치와 하치야 마유미가 음독(飮毒)
 
  •마유미가 일본인이 아님을 확인한 일본은 사고기 등록국이자 최대 피해국인 한국의 마유미 인수를 지원하는 방침을 정했고, 바레인 정부는 마유미를 직접 수사할 경우 발생할지도 모를 테러에 대한 우려와 한국 정부가 제시한 북한 테러 관련 증거 등의 이유로 한국 정부에 마유미를 인도키로 결정, 바레인 정부 사정으로 인해 두 차례에 걸친 인도 연기 끝에 1987.12.15. 한국 정부에 인도
 
  •1987.12.23. 마유미는 바레인 수사당국에서의 진술 내용과 국내 압송 직후의 진술 내용이 허위였음을 자백하고, 자신의 본명이 김현희이고 북한공작원으로서 KAL 858기 폭탄 테러를 감행했다고 진술.〉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에 이 안기부 요원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그가 한 일은 현지에서 대사관과 대한항공 직원들을 독려하고, 신속하게 신이치와 마유미의 신원과 소재 파악에 나서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김현희의 飮毒을 지켜본 日 외교관
 
김승일과 김현희가 사용했던 독약 앰풀.
  1987년 12월 1일 오전 신이치와 마유미는 바레인공항 출국심사대에서 기다리고 있던 스나카와 사무관에게서 “위조여권으로 밝혀졌으므로 출국할 수 없다”는 말을 듣는다. 두 사람은 로비 의자에 앉아 담담하게 기다렸다. 둘은 바레인 경찰관들이 둘러서서 지켜보는 가운데 자살할 타이밍을 엿봤다. 김현희의 자살용 독약 앰풀은 가방 안 말보로 담뱃갑 속 담배 개비 안에 들어 있었다. 김현희는 옆에 앉은 주범(主犯) 김승일이 건네준 담배에 불을 붙여 피우면서 신호를 기다렸다. 김승일이 “나는 살 만큼 살았지만 마유미 씨한테는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자 이를 신호로 해석한 김현희는 담뱃갑을 꺼내려 했다. 이때 경찰관이 가방을 달라고 하자 담뱃갑을 챙기고 건네주었다. 경찰관은 담뱃갑도 달라고 했다. 독약이 든 담배 개비를 꺼내고 담뱃갑을 건네주자 경찰관은 “그 담배도 달라”고 하였다.
 
  김현희가 주저하는 사이 경찰관이 담배 개비를 빼앗았다. 김현희가 경찰관 손에서 담배 개비를 낚아채어 독약 앰풀이 들어 있는 부분을 깨무는 순간 경찰관이 덮쳤다. 앰풀의 앞이 터지면서 기화(氣化)된 청산 성분이 김현희의 몸속으로 들어가, 그는 정신을 잃었다. 그런 소동이 벌어지는 사이 김승일은 앰풀을 와작와작 깨물고 들이마셨다. 실신한 김현희를 관찰한 사람이 바로 새벽부터 두 사람을 추적한 바레인 주재 일본대사관 사무관 스나카와 쇼준 씨였다. 그는 2003년 출판된 《극비(極秘)지령》이란 수기(手記)에서 이렇게 썼다.
 
  〈신이치(김승일)와 마유미는 격렬한 발작 상태에서 전신(全身)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의자에 앉은 채였다. 몸의 모든 근육의 말단까지 경련 상태였다. 마유미의 몸이 더 격렬하게 경련하였다. 심장이 전기 쇼크를 받은 것처럼 몸이 튀어 오르기도 하였다. 눈을 감고 입은 조금 열려 있었다. 입의 왼쪽에 찢어진 상처가 보이고 피가 묻어 있었다. 이번엔 신이치의 경련이 심해지고 마유미는 조용해졌다.〉
 
  한국의 음모론자들은 김현희가 ‘음독쇼’를 했다는 주장을 하고, 노무현 정부는 해명하기 위해 독극물 투약 실험까지 했다.
 
 
  “수사 협조 구하기 위해 시계, 올림픽 기념선물 송부 바람”
 
  한국 정부는 일본과 바레인뿐만 아니라 기체 수색을 하고 있는 태국과 버마 정부의 협력을 얻으려 무척 애썼다. 태국 주재 한국대사관은 11월 30일 최광수 외무장관에게 보낸 전문에서 격려용 선물을 요청한다.
 
  〈KAL기 사고 수색 및 조사에 임하고 있는 태국 측 관계자(RCC, 군, 경찰 등)에 대한 격려용 선물로 사용하고자 하니 손목시계 20개 구입, 명일 중(12.1.) 송부 바람.〉
 
  버마 주재 한국대사 역시 12월 1일 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KAL기 직행 또는 방콕 경유로 선물용으로 한국산 사과, 배, 감을 가급적 많이 수송해주시고 시계, 국산 골프공, 기타 올림픽 기념선물 등을 송부 바람〉이라고 썼다.
 
  한국 정부로서는 바레인에서 체포된 마유미가 북한공작원이란 확신을 가졌지만 그를 한국으로 데려오는 게 큰 과제였다. 일본 정부는 여권이 위조된 경위를 쉽게 파악했다. 실재하는 일본인 신이치는 1983년 8월에 미야모토 아키라라는 사람에게서 사업 확장을 위해 동남아 여행을 같이 하자는 제안을 받고, 여권 발급에 필요한 서류와 인감을 건넸다. 미야모토가 이를 이용해 위조여권을 만들어서 신이치에게 제공했다. 미야모토는 한국과 일본의 공안기관에 북한에 포섭된 공작원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제주 출신으로 본명은 이경우다. 4·3폭동에 가담한 뒤 1949년 일본으로 달아났고, 1964년에 처 양희연을 비롯한 가족을 북송(北送)시켰다.
 
 
  바레인에 김현희 인도 요청
 
  한국 정부는 1973년에 가입한 민간항공의 안전에 관한 ‘몬트리올 협약’을 법적 근거로 하여 김현희를 인도해달라고 바레인에 요청한다. 이 협약은 범죄의 직접 피해국에 대한 재판 관할권을 인정했다. 12월 5일 최광수 외무장관은 바레인 외무장관 앞으로 편지를 보내, 원인 규명을 위한 긴밀한 협의를 희망한다는 뜻을 전했다.
 
  같은 날 정해융 바레인 주재 한국대사는 공식적으로 혐의자 인도 요청을 하고, 바레인 내무성 범죄수사국(CID)의 책임자인 아이언 핸더슨 소장을 만났다. 바레인의 각 부처 장관은 왕족(王族)이 맡고 있지만 그 밑의 실무책임자는 영국인들이었다. 60대 고참 수사관 출신인 핸더슨 소장도 그렇게 고용된 영국인이었다. 정해융 대사는 면담 결과를 보고한다.
 
  〈대사관 소속 서기관 및 본국에서 온 안기부 직원을 대동, CID 핸더슨 소장을 방문하고, 유류품 점검을 상세히 확인, 핸더슨 장군에게 범인이 북괴 파견 혐의자임이 틀림없으니 시체 및 범인의 인도를 요청했음. (핸더슨은) 전적으로 협조하겠다고 하며 자기가 암시했다고는 말하지 말고 외무성 당국에 우선 요청할 것을 권유했음.〉
 
  정 대사는 이날 “북괴 측의 수법과 동일한 점을 설명하고 서울에서 온 수사팀이 결정적인 단서를 가지고 왔으니 면담해줄 것을 요청하자 핸더슨 소장은 이에 동의했다”면서 “안기부 직원 등과 함께 간첩 신광수·정해근 간첩 사건을 설명하고 그들이 소지하고 왔던 독극물 사진을 제시, 성분을 설명했다”고 보고했다. 핸더슨은 “바레인은 수사할 의지가 없으며 당사국에 신병 및 모든 압류품을 인계할 방침이며, 이번 사건이 북괴 소행으로 보이므로 한국으로 인계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고 한다.
 
 
  “What shall I do…”
 
  정해융 대사는 다음 날 보고서에서는 핸더슨 소장 면담 내용을 더욱 자세하게 소개했다. 핸더슨이 마유미에게 “당신은 우리에게 협조를 해줘야 한다. 당신이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곳에서 당신을 나쁘고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영어로 말하자 마유미는 “What shall I do…”, 즉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라고 영어로 답변했다는 것이다. 핸더슨은 “마유미는 가족에 대한 말을 하니 약간 눈물을 보였으며, 햄 샌드위치를 좋아하나 적게 먹어 영양제 파우더를 복용시켰다”고 한다. 핸더슨은 이날 정해융 대사에게 마유미 호송 과정의 보안을 위한 제안도 했다.
 
  〈1. 전세기가 바람직하며 극비보안을 위해 도착 후 최단기간 내에 떠나도록 하는 것이 좋음.
 
  2. 방법은 활주로 끝에 계류시켰다가 인수 즉시 떠나면 될 것임.
 
  3. 신병 인수 사실이 알려지면 한국 부근 영공상에서 인터셉트 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음.
 
  4. 특별기 현지 도착은 자정 부근이 좋음.〉
 
  정해융 대사는 12월 6일 바레인 외무장관에게 김현희의 인도를 요청하는 공식 외교문서를 전달했다. 한국 정부는 7일 박수길(朴銖吉) 외무부 제1차관보를 외무장관 특사로 임명해 바레인에 파견했다. 최광수 외무장관은 6일 정해융 바레인대사에게 보낸 전보에서 “혐의자 송환 문제는 극비리에 행해져야 하는바 이와 관련한 여하한 기자회견은 그곳에서 일절 하지 말기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최 장관은 다음 날에도 보안을 강조한다.
 
  〈마유미 등을 아국(我國)이 인도받아 서울에 데려오는 작업은 그 성격상 철저한 대외 보안이 필요하므로 인도 교섭, 실제 신병 인수 및 귀지 출발 과정 등에 있어서 보안을 유지 바람. 정부는 마유미 등이 안전 수송돼 서울에 도착한 후 이 사실을 발표할 계획임.〉
 
  최 장관은 같은 날 일본과 태국, 버마, 바레인 대사들에게 “KAL기 사고와 관련해 국제전화 사용빈도가 늘어난 상황에서 보안 사항 누설 위험이 높아지고 있으니 아주 긴급하여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되도록 전화 대신 암호 전문을 이용하기 바라며, 통화 시에는 보안에 각별 유념하도록 조치 바람”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정해융 바레인대사는 12월 7일 최 장관에게 마유미를 만나본 자신의 관찰 의견을 보고하였다.
 
  〈관찰에 의하면 마유미의 용모는 중국 태생의 한국인이라는 인상이 짙었음. 신이치가 마유미를 범행을 위한 도구 및 가족 위장을 위해 고용했을 가능성 및 마유미가 중국인일 가능성도 전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는 것으로 보임.〉
 
  정 대사는 이날 별도의 전보를 통해 기밀 유지의 어려움을 다시 한 번 털어놨다. 그는 “마유미 서울 호송건의 대외 보안에 최선을 다할 것이나 주재국 보안 당국도 지적하듯이 주재국은 작은 나라이고 인척 관계가 서로 얽힌 실정이라 작은 일도 구두로 전달되기 쉬우며 외무성에 서류가 가면 아무리 ‘SECRET’이라는 표시가 있어도 흘러나간다고 할 정도이니 우리가 원하는 완벽한 보안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했다.
 
  최광수 장관은 다음 날인 12월 8일 정 대사에게 또 한 건의 전보를 통해 기밀 유지를 다시금 당부한다. 그는 “귀지(貴地) 특파원은 귀직의 발언을 인용, 동건 관련 제반 수사 현황과 교섭 내용이 보도되고 있는바, 본 건의 미묘하고 중요한 보안 필요성을 감안, 현지 특파원에 대한 각별한 보안 조치 바람”이라고 지적했다.
 
정해융 바레인 주재 한국대사가 1987년 12월 7일 마유미를 관찰한 의견을 외무장관에게 보고하는 문서.

 
  日, “위조여권 사용보다 100여 명의 인명 피해가 더 중대”
 
  핸더슨 소장은 7일 정해융 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마유미에 대한 한국 측의 면담 요청에 대하여 난색을 보였다.
 
  “무리하게 진행하게 될 경우 마유미가 충격을 받아 단식투쟁할 우려도 있다. 회교 율법에서 단식하는 여자에게 강제로 음식을 먹이는 것이 금지돼 있어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면 주재국(바레인)이 한국 측에 즉각적인 인수를 요청할 가능성도 있어 양측 인계, 인수 준비가 완료되지 않은 현 상황하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 주재 한국대사는 일본 정부의 호의적 태도를 전한다. 일본 외무성 관리가, ‘한국이 마유미를 인도받는 것에 대해 불만이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는 것이다.
 
  〈일본으로서도 일본의 위조여권이 사용되어 국내에서 공안당국이 조사를 진행 중이며 마유미의 인도 문제에도 당연히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지금까지 용의자와 KAL기 추락 사건과의 인과관계는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위조여권 사용 측면보다는 백여 명의 인명 피해라는 측면에서 신병 인도 문제에 관한 한국 측의 이해(interest)가 훨씬 크다는 것이 일본 정부 내의 컨센서스로서, 마유미가 한국 측에 주요 참고인이 될 것이므로 한국 측의 중대한 관심을 이해하며 최종결정은 바레인이 할 것이나 한국 측에 인도하면 일(日) 측은 이해하겠다는 입장임.〉
 
  바레인 주재 일본대사관도 이즈음 마유미를 직접 면담, 한국과 정보를 공유했다. 일본 주재 한국대사는 12월 10일, 전날 이뤄진 면담 결과를 보고했다.
 
  〈- 자신은 중국 태생으로서 1년 전 신이치와 만났으며, 86년 9월 말부터 금년 11월 중순까지 일본에 살았음(어디에 살았는가에 대하여는 모르겠다고 답변함).
 
  - 금년 11월 중순경 신이치가 유럽에 여행 가자고 유혹했을 때 자신은 사양했으나 여권이 나왔다고 해서 따라갔음. 여행 일정은 일본-프랑크푸르트-비엔나-베오그라드-바그다드 순으로 짰음.
 
  - 여행 시 신이치와는 일본어로 이야기했으며, 일본어는 신이치로부터 배웠음.
 
  - 바레인에서 호텔을 떠날 때 신이치로부터 위조여권이 발각되어 잡히게 될 경우에는 이것을(필터 부분) 씹어 먹으라고 하면서 담배 한 갑을 건네받았으며 출국이 정지되었을 때 둘이서 각각 필터 부분을 씹었으나 너무 딱딱했음. (하략)〉
 
 
  미국의 견제?
 
박수길 전 駐유엔대사.
  용의자 인도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조짐이 12월 8일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공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박수길 차관보는 8일 바레인에 있는 미 중앙정보국(CIA) 담당자를 만난 자리에서 마유미를 인도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귀띔을 접한다. CIA 직원은 독약물이 북괴 제조라고 단언할 증거가 부족하며 마유미가 KAL기 사건에 연루됐다는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점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의 조언을 참고하여 박수길 차관보는 ‘신이치와 마유미가 자살을 기도하는 데 사용한 독약의 성분과 형태는 한국에서 잡힌 북한 공작원이 소지하고 있던 것과 일치하며 북한이 이런 독약을 만드는 유일한 나라다’라는 내용이 담긴 문서를 10일 바레인 정부에 전달했다. 박수길 차관보는 이날 박상용 차관에게 과감한 제안을 한다.
 
  〈마유미가 늦더라도 (한국에) 15일까지 도착하기 위해서는 비행기의 내왕시간을 고려하는 경우 12일까지는 인도 통고를 주재국으로부터 받아야 하므로 주재국에 대해서는 시일이 지연될 경우에는 차라리 바레인 정부가 조사하라는 식으로 손을 터는 문제도 고려해볼 수 있음.〉
 
  박 차관보는 이날 최 장관에게 보낸 전보에서 모하마드 빈 칼리파 내무장관과의 면담 결과를 설명하였다.
 
  〈금일 본직(本職)은 모하마드 빈 칼리파 내무장관과 1시간 동안 면담 중 동인(同人)은 본직에게 한국이 대통령 선거로 인하여 극히 바쁜 중에 바레인을 방문하였으므로 조속 귀국해야 할 것으로 이해한다 운운하면서 선거를 의식한 발언을 한 바 있음. 마유미의 인도에 관한 미국의 입장이 delicate(신중)한 것으로 생각되는바 야당이 정부가 KAL기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비난하고 있음에 비추어 경우에 따라서는 주한미국대사관의 의견에 따라 마유미의 인도가 선거 이후로 되도록 미국이 바레인 측에 작용했을 가능성도 완전히는 배제할 수 없으니 마유미의 인도 문제와 관련해 미국 측에 너무 소상한 정보를 주지 않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됨.〉
 
  최광수 장관은 12일 박수길 차관보에게 “12일 중으로 인도 결정이 나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기 바란다”면서 “만일 12일 중 인도 결정이 없는 경우 귀하는 14일에는 귀국하겠다고 통보할 것”이라고 지시했다. 당시 바레인 외무상은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한국 협상 담당자들은 면담 시간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었다. 최광수 장관은 사우디 주재 한국대사관에 12일 전보를 보내, “한일개발의 조중식 사장이 현재 제다에 체류 중인바 사우디의 와리드 왕자와 잘 아는 처지여서 그를 통하여 바레인에 대해 권고할 예정”이라고 박수길씨에게 알려주었다. 장관은 “또한 조 사장은 바레인 수상과도 친교가 있으므로 측면 지원 예정”이라며 “조 사장과 연락해 본건 협의, 추진 바람”이라고 지시했다.
 
  장관의 지시를 받은 직후 박수길 차관보는 이날 오후 2시에 보낸 짧은 전보에서 바레인 내무장관과 만나 마유미 인도 문제에 합의했다고 보고했다.
 
  〈12월 13일 19시에 바레인 국제공항에 도착할 수 있도록 특별기 출발 조치 바람. 특별기는 도착 후 1시간 내 급유 등 조치를 취하고 인수인계 완료 후 20시 바레인 공항 출발함.〉
 
  한 시간 뒤 박 차관보는 좀 더 상세한 내용의 보고를 했다. 박 차관보는 내무장관과 이날 12시15분에 만났다고 했다.
 
  〈본직(本職)은 지금 한국에서는 승객 가족들에 의한 데모가 계속되고 있고 언론매체들도 범인 인수 지연을 비난하는 여론을 조성하고 있어 아국(我國) 정부의 입장이 심히 난처하다고 말하고 금일중 인도에 관한 최종통고를 받지 못할 경우 한국 대통령 선거 등 분주한 정치일정으로 부득이 마유미의 인수를 선거 및 개표가 끝난 후인 26일경으로 늦추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하고 본직과 수사팀은 본국 정부로부터 12월 13일까지 바레인을 출발하라는 훈령을 받고 있음을 알려줬음.〉
 
 
  “They are crazy”
 
  최광수 장관은 13일 박수길 차관보에게 짧은 전보를 보내 “교섭 성공을 치하한다”며 “귀하의 건의대로 귀국 바람”이라고 했다. 이후 특별기가 서울을 출발하는 등 순조로운 상황이 진행되는데, 한국 외무부는 또 한 번의 충격적 통보를 받게 된다. 박 차관보는 13일 오후 4시 장관에게 긴급 전문을 보냈다.
 
  〈금일 15시 칼리파 내무장관이 본인에게 전화, 이유는 밝힐 수 없다고 전제하고 마유미 등의 인계 계획을 24시간 연기하지 않을 수 없다고 통보했음. 본직은 특별기가 이미 서울을 출발하여 바레인으로 오고 있고 아국 정부에서도 인수를 위한 모든 준비를 완료한 이 시점에서 계획을 변경함은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 지연 이유를 설명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대단히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 ‘안전상의 이유’라고만 했음.〉
 
  박 차관보는 마유미를 관리하는 CID의 핸더슨 소장과 전화통화를 했다. 핸더슨 소장은 10분 전에 그런 내용을 전달받았다고 했다. 핸더슨은 “이번 계획의 지연은 그릇된 판단에 기초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습할 수 없는 안전상의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며 “They are crazy(그들은 미쳤어)”라고 말했다고 박 차관보는 보고했다.
 
  이런 과정에서 특별기는 13일 오후 6시 바레인공항에 도착했으며, 외교 당국은 계획을 완전히 연기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음 날이라도 인도할 수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여러 사람과 접촉하고 내부적으로도 논의하게 됐다. 최광수 장관은 14일 사우디 주재 한국대사관에 전보를 보냈다.
 
  〈한일개발 조(중식) 사장에게 연락, 그로 하여금 현재 새로운 상황에 따라 바레인 수상 및 가능하면 바레인 외무장관 등과도 접촉하여 특별 협조하도록 요청하고 결과 보고 바람.〉
 
  박 차관보는 14일 조중식 사장이 바레인의 칼리파 산업개발부 차관과 만난 내용을 장관에게 보고했다. 칼리파 차관은 내무장관의 사촌이었다. 조 사장은 “일본이 다시 관할권 문제를 제기했고 일부 각료(특히 문교부 장관)가 마유미의 국적조차 확인되지 않은 시점에서 한국에 인도를 하는 데 대해서 법률적 이의 제기를 했으며, 12월 12일 레바논에서 있었던 극렬파에 의한 대(對)바레인 협박을 의식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관할권을 주장한 사실이 있는지 확인했으나, 일본의 기존 입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박수길 차관보는 1987년 12월 14일 외무장관에게 김현희를 태운 특별기가 바레인을 출발했다고 보고한다.
 
  좋은 방향으로 표변
 
일부 KAL 858기 유족과 시민단체에서는 KAL 858기 폭파사건과 관련해 계속해서 의혹을 제기해왔다.
  박 차관보는 이날 오전 11시 칼리파 내무장관과 면담이 계획돼 있었으나 11시15분 그의 비서를 통해 칼리파 장관이 감기로 인해 출근하지 못했으니 외무장관을 대신 만나라는 뜻을 전달받았다. 그는 외무장관과 접촉을 시도했으나 부재 중이라는 이유로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고 본국에 보고했다. 그 직후 박 차관보는 다시 전문을 보낸다.
 
  〈바레인 내무장관이 현지시간 18시35분 마유미 등 인도에 관한 주재국 정부의 최종 인도 결정을 전화로 통보했음. 특별기는 현재로부터 2시간 내 바레인 국제공항을 출발할 것임.〉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에는 소개돼 있지 않다.
 
  마유미와 수사팀 포함 총 54명은 현지시각 12월 14일 오후 9시40분 한국으로 떠났다. 마유미를 호송한 KAL 특별기는 한국 현지시각 15일 오후 2시5분 김포공항에 착륙했다. 최광수 장관은 18일 재외 공관장들에게 지시한다.
 
  〈KAL 폭파 사건이 북한의 소행임이 완전히 밝혀질 때까지 우선 본직의 성명서를 참고하여 주재국 외무성 및 언론계 등에 이 사건은 북한의 소행임이 거의 확실시됨을 설명할 것. 바레인 정부도 이제까지의 정황 및 구체증거로 보아 북한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관련 국제 협약 규정과 정신에 따라 또한 국제 테러에 대한 공동 대처 노력의 일환으로 금번에 신병을 인도케 된 것임을 설명할 것. 과거 버마 랑군 아웅산 사건, 해외 한국인 납치 사례(최은희, 신상옥, 이재환 등)를 들어, 북한의 테러리스트 집단 이미지…〉
 
  그러면서 “당분간 KAL 폭파 만행 목적을 올림픽 방해 책동과 연계시켜 언급하지 말 것(대회 참가 각국 및 관광단에 대한 위기감 조성의 역효과 지양)”을 강조했다.
 
 
  “지나친 상상”
 
김승일과 김현희의 비행경로.
  한편 언론들은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를 인용하며 “전두환 정권이 KAL 858기 폭파사건을 정략적으로 활용하고자 김현희를 대선 전에 국내로 데려오기 위해 노력한 정황이 재확인됐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한 변호사는 모(某) 방송에 출연해 “처음부터 북한공작원인 것을 알고 압송하려 한 게 아니고 일단 북한 소행으로 몰고 가기 위한 노력을 했다”고 주장하며 ‘무지개공작(대한항공기 폭파사건 북괴 음모 폭로 공작)’과의 연관성을 부각시키려고도 했다. 즉 안기부가 여당 후보의 승리를 위해 김현희를 정략적(政略的)으로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당시 교섭책임자로 바레인에 파견된 박수길 대사 등은 회고록을 통해 이런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해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 다음과 같이 썼다.
 
  〈김현희가 김포공항에 도착한 날은 대통령 선거를 바로 하루 앞둔 날이었다. 이 일이 선거를 앞둔 민심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터였고 그만큼 선거 판도에도 파장을 미쳤을 것이다. 국민의 안보 의식을 일깨워줬고 그러니까 당연히 여당 후보에게 도움이 됐을 거라는 관측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선거에 영향을 주기 위해 김현희 압송 날짜를 조정했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낭설일 뿐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바레인 당국과의 끈질긴 교섭 끝에 우리나라가 10여 일 만에 간신히 김현희의 신병을 인수할 수 있게 되었고, 서울에 도착한 시간이 우연히도 선거 전날이었을 뿐인 것이다. 우리가 압송 날짜를 조정할 만한 여유가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신병 인수에 성공하기까지 조마조마한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심지어 일부에서 여당이 승리할 전망이 흐리자 사건 자체를 조작한 것이라고 하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은 황당하고 너무도 무책임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김현희를 국내로 데려오기까지 관계기관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했고, 나는 쉽지 않은 일을 해낸 관계자들의 노고와 공로를 진심으로 치하했다.〉
 
  다음은 박수길씨가 2014년에 쓴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대한민국 외교 이야기》라는 책에 소개된 관련 내용이다.
 
  〈그 정도까지는 몰라도 비행기를 폭파했다는 북한공작원이 선거일 하루 전에 압송되며 전국에 생중계되었으니 국민들의 안보의식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긴 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정부가 선거를 위해 백수십 명의 국민을 희생시키는 자작극을 기획했다고 생각하는 건 지나친 상상이 아닐까? (중략)
 
  하기야 음모론 쪽으로 생각해보면 나조차 이용당한 것일 수 있다. 정부의 최상층 극소수가 기획했고 나는 그저 사건 후의 대책본부장으로서 송환을 위한 실무만 담당했던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이 지면에 자세히 다 적을 순 없지만 그 사건은 발생 초기부터 우리나라의 각국 재외공관을 비롯해 미국, 일본, 바레인 등 관련 국가의 모든 정보망이 동원되었다. 어느 일방의 조작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를 아무리 읽어보아도 한국 정부가 김현희 인수 협상을 선거날에 맞추는 방향으로 인위적 작업을 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상황 전개가 자연스럽다. 바레인 정부는 김현희가 범인이며, 피해자가 한국인들이란 판단을 한 순간 한국에 신병을 인도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체포와 범인 인수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적극적으로 협력해준 것은 당시 두 나라 수뇌부(전두환-다케시타)의 관계가 좋았던 덕분이다.⊙
 
김승일·김현희 KAL 858기 폭파 일지
 
  1987년
 
  11월 12일
      폭파팀, 평양 출발/모스크바 도착
 
  11월 13일
      모스크바 출발/부다페스트 도착
 
  11월 18일경
      오스트리아 입국 추정
 
  11월 23일
      빈 출발(14:25)/베오그라드 도착(15:30)
 
  11월 28일
      베오그라드 출발(14:30)/바그다드 도착(20:30)
      바그다드 출발(23:30)/아부다비 도착(02:50)
 
  11월 29일
      아부다비 출발(09:00)/바레인 도착(09:05)/KAL기 공중폭파
 
  11월 30일
      UAE 한국대사관, 신이치와 마유미 신원 파악, 일본에도 통보(보고시점 17:10)
      대한항공 직원, 신이치와 마유미 소재 파악(리젠시호텔), 일본에도 통보(보고시점 21:30)
      바레인대사관 김정기 서기관, 리젠시호텔에서 신이치와 마유미 면담(21:30)
 
  12월 1일
      일본 외무성, 바레인 주재 일본대사관에 마유미의 위조여권 소지 사실 통보(04:30)
      일본이 신고, 바레인공항에서 체포(09:00경)
 
  12월 5일
      한국 정부, 바레인에 신병 인도 공식 요청
 
  12월 7일
      박수길 차관보, 외무장관 특사로 바레인에 급파
      정해융 대사, 김현희 관찰(보고시점 13:30)
 
  12월 10일
      한국 정부, 북한 소행 증거 바레인에 추가 전달
 
  12월 15일
      김현희, 한국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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