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戰雲의 한반도

김정남 암살집행 조직 추적

“정찰총국 해외정보국에서 김정남 암살”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woosu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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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찰총국 해외정보국, 김일성 정치군사대학 출신 중 격술 능한 5~6명 선발해 ‘살인 병기’로 만들어
⊙ “정찰총국 19과는 없는 부서”(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 김정은, 암살 위협에 조급해져 자신의 대체인물 될 수 있는 김정남 조속한 암살 지시한 듯
⊙ 수령절대주의 유일폭압체제에서 김정남 암살 명령할 수 있는 것은 김정은뿐
⊙ 정찰총국, 김정은에게 기쁨 주기 위해 김정일 생일에 맞춰 김정남 죽였을 것
    (김동식 국가안보전략연구위원)
피습 직후의 김정남. 말레이시아 현지 《뉴스트레이츠 타임스》가 입수해 보도한 김정남 사진.
  말레이시아는 2월 13일 쿠알라룸푸르에서 암살된 김정남의 시신을 3월 30일 북한으로 보냈다. 북한은 사실상 인질로 잡고 있던 평양 주재 말레이시아 외교관과 그 가족 9명을 같은 날 말레이시아로 송환했다. 말레이시아와 북한이 김정남 시신과 말레이시아 국민 9명을 맞바꾼 것이다.
 
  이로써 김정남 암살 사건은 45일 만에 일단락됐다. 북한은 말레이시아로부터 김정남 시신을 돌려받자마자 김정남 암살 배후설을 전면 부인했다. 김정은 정권의 나팔수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4월 2일 “암살의 북한 배후설은 모략”이라는 억지 주장을 폈다.
 
  〈조선의 외교 여권 소지자에 대한 말레이시아 경찰 수사는 모순덩어리다. 경찰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고 그 누구의 조종에 의해 수사의 방향을 정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조선에 대한 국제적인 혐오감을 조성하려고 2월부터 대대적인 깜빠니야(캠페인)를 벌려온 세력들은 이번 사건이 조선과 말레이시아의 국교 단절로 이어질 수 있다고 떠들어댔으나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김정남이 북한 공작원의 사주로 변을 당했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말레이시아 당국이 밝혔듯 10명의 용의자 중 독극물을 뿌린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여성 2명을 제외한 나머지 8명 전원이 북한인이라는 사실은 이를 웅변(雄辯)해 준다.
 
  김동식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북한학 박사)의 이야기다.
 
  “김정남 암살은 명백히 북한이 감행한 테러다. 김정남을 북한이 암살했다고 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 아니면 김정남을 죽여야 할 이유가 있는 국가가 없기 때문이다. 김정남 암살은 김정은 지시에 의해 감행됐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 이유는 북한에서 김정남 암살을 지시할 사람은 오직 김정은뿐인 까닭이다. 누구도 김정은 앞에서 김씨 가문의 일원인 김정남을 죽이겠다고 말할 수 없다. 만약 함부로 입을 놀린 간부가 있다면 처형당했을 것이다.”
 
  김 연구위원은 1990년 5월과 1995년 8월, 두 번 남파된 전직 공작원이다. 처음 남파됐을 때 그는 당시 재일교포로 위장해 서울에 거점을 마련하고 암약하며 대남공작을 총지휘하던 남파공작원 이선실과 현지에서 포섭한 H씨를 대동하고 월북하는 데 성공했다.
 
  1차 남파 후 5년여가 지난 후인 1995년 8월의 2차 남파에서는 남한 내의 고정간첩망 점검과 국내 운동권 인사들을 포섭해 지하망을 새롭게 구축하는 일이 주된 임무였다. 또 하나는 1980년대에 남파돼 스님으로 위장해 장기간 암약하는 월북자 출신의 공작원 ‘봉화 1호’를 대동해 복귀하는 임무였다. 김씨는 이 ‘봉화 1호’ 대동 월북을 위해 접선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사전에 정보가 유출돼 총격전 끝에 체포됐다.
 
 
  김정남 암살 지령 내릴 사람은 김정은뿐
 
북한·안보 전문가들은 수령절대주의 유일폭압체제에서 백두혈통의 적장자인 김정남을 암살하라고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은 김정은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북한·안보 전문가들과 정보 당국 관계자들도 김 연구위원과 같은 입장을 견지했다.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의 말이다.
 
  “일부에서는 북한 대남공작부서에서 충성 경쟁 차원에서 김정남 암살을 자행했다고 하는데 이는 북한 체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주장이다. 북한에서 김정남 암살 지령을 내릴 사람은 김정은뿐이다. 수령절대주의 유일폭압체제에서 김정은 지시 없이 누가 감히 백두혈통의 적장자인 김정남을 암살하라고 명령할 수 있겠는가. 다양한 첩보와 정보, 제보를 종합해 보면 김정은은 김정남이 향후 제3국 또는 대한민국으로 망명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하에 이를 차단하기 위해 암살을 지시했다.”
 
  한 고위급 탈북자도 “김정은이 하라고 한 것이 아니고 아래에서 먼저 실행한 뒤 보고한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 나오는데 이는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며 “충성 경쟁은 김정은이 만족할 것 같으면 먼저 저지르고 사후에 ‘우리가 했습니다’ 하고 보고하는데 김정남은 충성 경쟁 대상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2000년 5월 김정일의 이복동생 김영일 당시 베를린 주재 북한 이익대표부 참사관이 간경화로 사망했다. 김영일은 김평일 현 체코 대사의 동생으로 소위 곁가지로 분류하던 인사였다. 보고 라인에 있는 부서들은 김정일이 좋아할 거라 생각해 기쁜 마음으로 보고했다고 한다. 그런데 김정일 위원장은 좋아하기는커녕 눈물을 흘렸다. 물론 김정일의 정치술의 일환이겠지만 이후 백두혈통에 대해서는 최고 지도자의 허락 없이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생겼다.”
 
  한국테러학회장인 이만종 호원대 교수는 “북한 테러의 가장 큰 특징은 국가기관이 직접 나서서 테러리즘을 전담하고 집행한다는 것”이라며 “북한 체제의 속성상 왕(王)과 같은 김정은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국가기관이) 나선 것”이라고 했다.
 
 
  정찰총국 해외정보국 암살 작전 주도
 
정찰총국 해외정보국은 그 전신인 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 시절부터 테러조를 만들고 운영해 왔다. 해마다 김정일 정치군사대학 졸업생들 가운데 격술(擊術)에 능한 인원 5~6명을 선발, 인간병기로 키웠다.
  그렇다면 암살을 집행한 부서는 어디일까. 북한에는 요인 암살을 할 수 있는 부서가 많다. 정찰총국, 국가보위성(옛 국가안전보위부) 등이 대표적이다. 국내외 언론보도를 보면 김정남 암살 집행부서는 정찰총국 19과(2월 24일 일본 《아사히신문》 보도), 국가보위성(2월 27일 국내 다수 언론사 보도), 북한군 제810부대 생물기술연구원(2월 22일 연합뉴스 보도) 등 3곳으로 압축된다.
 
  유동열 원장은 “정찰총국의 해외정보국이 김정남 암살 작전을 주도한 부서”라고 했다. 그의 이야기다.
 
  “고위 탈북자 다수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김정남 암살사건 이후 현지에서 체포된 리정철(3월 18일 추방, 북한으로 돌아감)은 사전에 말레이시아에 파견된 현지 공작원일 가능성이 크고 김정남 암살의 핵심 용의자 중 한 명인 오종길은 해외정보국 소속으로 동남아 공작을 담당하는 부국장이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그는 정찰총국 19과가 김정남 암살을 주도했다는 일본 《아사히신문》 보도에 대해 “19과는 존재하지 않는 부서”라고 했다. 《아사히신문》은 정찰총국 19과는 독극물 등을 이용한 암살공작 전문부서이고 19과 책임자인 최순호 과장은 1997년 김정일의 처조카이자 김정남의 사촌 이한영 살해사건에도 관여했다고 보도했다.
 
  정찰총국은 2009년 초 북한이 3대 세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군 소속의 정찰국, 노동당 소속의 작전부·35호실 등 대남 공작부서 6개를 통·폐합해 만든 조직이다. 각 국에는 1국에서 7국까지 번호가 붙는데 ‘죽을 사(死)’자와 발음이 같은 4국은 없다고 한다. 안보부서 관계자는 “각 국 번호는 수시로 바뀐다”고 말했다. 정찰총국의 공식 명칭은 조선인민군 정찰총국(조선인민군 586군부대)으로 국무위원회(전 국방위원회)의 직속 기관이다. 김정은의 직접 지휘를 받는 독립 부서다.
 
  유 원장은 “정찰총국은 대남 공작의 총본산”이라며 “본부는 평양시 형제산 구역에 있으며 예하 부대는 북한 전역에 산재해 있다”고 했다. 현재 정찰총국장의 신원은 미상(未詳)이다.
 
  정찰총국의 핵심부서인 육·해상 정찰국은 남한 침투의 안내조 임무를 담당한다. 사상이 투철하고 건장한 고졸 출신자를 뽑아 지옥 훈련과 폭약·독침 교육 등을 시키는 곳이 1국이다. KAL기 폭파사건의 김현희도 1국의 전신(前身)인 작전부에서 훈련을 받았다. 잠수함과 어선으로 위장한 공작선 등을 대량 보유한 1국은 남파 공작원들을 수송하는 ‘운반조’ 역할도 맡는다. 1국은 2010년 천안함 폭침사건의 배후로도 지목된 바 있다.
 
남파 간첩 출신 김동식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정찰국은 무장공비 양성 남파, 요인암살, 파괴·납치 등 테러와 게릴라 활동, 군사정찰 등이 주 임무다. 1983년 미얀마(버마) 아웅산 테러, 1996년 강릉 침투, 2010년 황장엽 전 비서 암살조 남파 등을 자행했다. 정찰국에는 남파 공작원들이 남한 실정을 훈련받는 907군부대, 잠수함(정) 침투부대인 448군부대와 22전대, 남포해상특수부대 및 여군 특수공작대인 38항공육전여단 등이 있다.
 
  김정남 암살을 주도했을 가능성이 높은 해외정보국은 당 35호실(대외정보조사부)을 흡수한 것으로 해외에서 대남 정보 수집, 간첩 공작 등을 전담한다. 1987년 영화인 최은희·신상옥 부부 납치, 1996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최덕근 영사 암살 등을 자행했다.
 
  해외정보국은 위장 간첩 깐수(정수일)와 국적 세탁 간첩 정경학, 대학강사 간첩 이병진을 길러냈다.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홍콩, 일본 도쿄와 오사카, 프랑스 파리,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 해외 거점을 둔 것으로 알려졌으며 공작원 중엔 외국어에 능통한 엘리트 출신과 무술 유단자가 많다.
 
  기술정찰국은 해킹 등 사이버공작, 암호통신 분석, 통신감청 등 대남공작 관련 기술을 연구 개발하는 부서다.
 
  이 부서는 2009년 7·7 사이버대란, 2011년 3·3 디도스 공격·농협전산망 무력화(2011년 4월 13일), 2013년 3·20, 6·25 사이버공격, 2014년 한수원·미국 소니 픽처스 해킹 등을 자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선양, 다롄, 광저우, 베이징, 말레이시아 등 전 세계에 무역회사 등으로 위장한 사이버공작 거점을 두고 공작을 수행하고 있다. 유 원장은 “북한은 사이버 도박 게임 프로그램 개발과 사이버 도박회사를 운영, 연간 10억 달러(한화 약 1조1800억원) 규모의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는 첩보도 있다”고 했다.
 
  김 연구위원도 김정남 암살 공작을 주도한 부서는 정찰총국 소속의 해외정보국일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정찰총국 해외정보국은 테러를 전문으로 하는 공작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해외정보국은 그 전신인 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 시절부터 테러조를 만들고 운영해 왔습니다. 대외정보조사부가 테러 전문 공작조를 만든 시점은 1984년이었습니다. 당시 대외정보조사부에서는 해마다 김정일 정치군사대학 졸업생들 가운데 격술(擊術)에 능하고 육체적 능력이 특별한 인원 5~6명을 선발해 외국어 교육과 함께 사제폭탄 제조방법 등을 가르치는 등 강도 높은 훈련을 시행했습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기존의 정찰국 요원들은 대부분 현역군인이라 신분이 노출될 가능성이 크고, 작전국 요원들은 대남침투가 주 업무라 해외에서 활동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이번 테러에 가담했을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문화교류국 역시 테러 전문 공작조가 없고, 1개 공작조의 인원이 기껏해야 2명 미만이라 암살 작전 실행이 불가능합니다.”
 
 
  국제공항 복판에서 김정남 죽인 이유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
  김정남 암살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공항에서 작전을 수행했기 때문에 공작원들이 항공편을 이용해 곧바로 해외로 도주할 수 있었다. 높은 독성의 VX는 흔적을 남기지 않아 김정남이 사망하고 열흘이 돼서야 겨우 사인이 규명됐다. 그러나 북한은 치명적 실수를 저질렀다. 암살 장소가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이었다는 점이다. 규모 면에서 인천국제공항에 크게 뒤지지 않는 국제공항 복판에서 대량살상무기로 김정남을 암살한 것 자체가 북한에는 치명적 실책인 것이다. 북한이 ‘암살 매뉴얼’에서 한참 벗어난 암살 작전을 펼친 이유는 무엇일까.
 
  유 원장은 “역으로 공개된 장소에서 북한 요원이 아닌 2명의 동남아 여성(베트남의 도안 티 흐엉·인도네시아의 시티 아이샤)을 이용해 암살한 것은 암살 배후가 북한이 아니라는 점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한 전략”이라고 했다.
 
  제2~3의 태영호를 막기 위해 요란하게, 마치 시위를 하듯 살해했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까지 중국에서 북측 관계자들과 접촉해 온 NGO 관계자는 “처음부터 조용한 암살은 의미가 없었다. 김정남 하나 암살하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고 봐야 한다”며 “국제사회 한복판에서 공개처형을 한 것이다. 경고성 메시지이고 이미 효과를 보고 있다”고 했다.
 
  북한에 비판적인 발언을 하는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 등 고위급 탈북자들에게 ‘갈 테면 가라. 그러나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테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보여줬다는 것이다.
 
  김 위원은 “외부에서 김정남을 김정은 제거 이후 북한을 이끌어갈 대체인물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이 김정은의 불안감을 증폭시켰고, 암살을 서두르다 보니 실행지가 공항이 된 것”이라고 했다.
 
  존 맥로린 전 CIA 국장대행은 3월 1일 “김정남은 김정은이 제거되거나 권력에서 멀어질 경우 중국이 대체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했다.
 
  평양을 20년 넘게 방문한 재미교포 최모씨는 “중국은 대놓고 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김정은은 중국이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자신의 대체용으로 김정남을 끼고 있다고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실제 작년(2016년) 북한에서는 김정은 암살 시도가 있었다. 4월 2일 자 일본 《도쿄신문》 보도를 보면 2016년 5월 북한 노동당 대회 당시 김정은의 전용 열차를 폭파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미수에 그쳤다. 신문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현 국가보위부) 산하 지방 조직이 평안남도 주민들을 상대로 개최한 강연에서 김정은 암살 시도에 대한 내용이 공개됐다고 전했다. 당시 강연에서 연사는 “당 대회를 전후해 적의 책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면서 “주의 환기를 위해 최근 평안남도에서 보위기관이 적발한 사례를 소개하겠다”고 했으며 “진학에 실패한 남자(암살 시도자)가 체제에 불만을 품고 수뇌부(김정은)를 우선 제거해야 한다며 이런 계획을 세웠다”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암살 시도자는 “폭약을 사용해 물고기를 잡겠다”며 주변 광산 노동자 3명으로부터 폭약을 확보했지만 이를 수상히 여긴 다른 노동자의 신고로 체포됐다. 이 남성은 평소에도 김정은 권력 승계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해 다른 주민들의 신고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암살 시점에 담긴 의미
 
  정보 당국은 김정남의 암살 시점(2017년 2월 13일)이 북한이 광명성절이라 부르는 김정일 생일 사흘 전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고 했다.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한영(김정일의 처조카)도 김정일 생일을 하루 앞둔 1997년 2월 15일에 암살됐습니다. 북한은 김씨 일가의 생일을 중요시합니다. 따라서 대남공작부서는 암살이나 폭파 등 공작계획을 세울 때 최고 지도자에게 기쁨을 준다는 명목으로 명절이나 기념일에 맞춰 임무를 완수하려 노력하죠. 이한영이나 김정남 암살 작전을 수행한 요원들도 분명히 ‘김정일 생일에 맞춰 임무를 완수하겠다’고 김정은에게 보고했을 겁니다. 김정일 생일에 맞춘다는 것은 딱 그날이 아니라 그즈음을 이야기합니다. 생일에 딱 맞춰 암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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