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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특집 | 김정남 암살

수차례 암살 위기 모면했지만 끝내 동생에게 ‘독살’당한 김정남(金正男)

“전 세계가 내 동생 혹평하는데 가슴 아프다”고 한 형 김정남을 죽인 김정은(金正恩)

글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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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김정일 후계자 차지하려 과거 세 차례 김정남 암살 시도했지만 실패
⊙ 김정남, 김정은 측의 ‘우암각 습격 사건’ 보고받고 “개XX, 어린 놈이 나를 죽이려고 해?”라며 분개
⊙ “3대 세습은 봉건 왕조 때나 가능한 일이지만, 해외에서 김정은 도우려 한다”(김정남)
⊙ 김정남, “북한 후계자, 나로서는 견딜 수 없는 자리 … 지도자 될 생각 없다”
  북한 김정일(金正日)의 장남 김정남(金正男)이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암살됐다.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꼽히던 김정남의 목숨을 노린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4년 10월, 김정남은 이종사촌 누이 김옥순을 만나기 위해 오스트리아에 체류하고 있었다. 그때 오스트리아 정보 당국은 김정남에게 “당신을 암살하려는 북한인의 계획을 파악했다”고 전했고, 김정남은 곧바로 몸을 피했다. 당시 암살 시도는 김정남을 제거하고 자신의 소생을 김정일의 후계자로 세우려 했던 고용희 측에서 꾸민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가 아닌 북한에서도 김정남 제거 작전이 실행됐다. 2009년 4월, 북한 국가보위부 수색팀이 평양 중구역(中區域)의 안가 ‘우암각’에 들이닥쳤다. 우암각은 과거 영화감독 신상옥·배우 최은희 부부가 북한에 억류됐을 당시 거주하던 고급주택이다. 신상옥 부부가 탈북한 뒤 초대소로 이용되다가, 1997년 이후 김정남의 본거지가 됐다. 주로 해외 생활을 하던 김정남은 모친 성혜림(2002년 사망)이 살던 본가보다는 우암각을 즐겨 찾아 측근들과 은밀한 모임을 자주 가지면서, ‘파티 정치’를 해 왔다.
 
  우암각을 급습한 보위부 요원들은 관리원들을 연행해 파티 참석 인사들이 누구인지 캐물었다. 김정남 지지 세력을 파악해 제거하려는 속셈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김정남은 “개XX, 어린 놈이 나를 죽이려고 해?”라며 분개하면서도 서둘러 싱가포르로 도피했다.
 
  세 번째 김정남 암살 시도는 2010년 6월 하순에 있었다. 북한 보위부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해외반탐처 공작원 김영수에게 ‘김정남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이 사실은 2012년 9월 12일, 김영수가 또 다른 지령을 받고 탈북자로 위장해 국내에 잠입 발각되면서 드러났다. 2013년 2월 초, 서울구치소 수감 당시 《월간조선》이 만난 김영수는 특수훈련을 받은 공작원은 아니었다.
 
  구체적인 김정남 암살 계획 등에 대해 묻자 김영수는 “그걸 얘기하면 북(北)에 있는 가족들은 다 죽는다. 이미 죽었겠지만. 황장엽 암살하려고 들어온 정찰총국 애들 가족도 다 죽었다. 가족이 무슨 죄가 있느냐?”라며 흐느꼈다.
 
  그는 2010년 6월 하순 북한 보위부 ‘중국 담당 특파원’으로 나갔다. 그 다음달, 김영수는 상부로부터 김정남 암살 계획을 수립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당시는 김정일이 셋째 아들 김정은에게 인민군 대장 칭호를 주며 ‘3대 세습’을 공식화하기 직전이고, 김정남의 1차 망명설이 나온 시점이기도 하다. 김정은의 권력 세습에 걸림돌일 수밖에 없는 김정남의 신변에 대한 위협이 가시화되고 있던 시기였다는 얘기다. 김영수는 보위부에 중국 한족(漢族) 택시기사를 매수한 다음 교통사고를 가장해 김정남을 죽인 뒤 북한으로 이송한다는 계획을 보고했지만, 감행하진 못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김정남이 중국에 들어오지 않아 그를 덮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3대 세습에 반대, 형으로서 돕겠다”
 
  세 차례의 암살 위기를 모면한 김정남은 이후 일본 《도쿄신문(東京新聞)》 기자 고미 요지(五味洋治)에게 김정은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 상세 내용은 《월간조선》이 2012년 2월호를 통해 특종 보도한 바 있다. 해당 기사는 《월간조선》은 물론 《조선일보》에도 보도됐지만, “김정남이 천안함은 북한 소행”이라고 얘기했다는 내용 때문에 ‘오보 논란’이 있었다. 고미 요지가 전해 준 김정남 발언을 바탕으로 한 내용이라서, 김정남과 주고받은 전자우편 글엔 해당 부분이 없었고, 보도 직후 고미 요지가 천안함 관련 부분은 부인했기 때문이다.
 
  사실은 기사 보도 당일 정오, 고미 요지는 《월간조선》에 “김정남이 천안함 부분은 너무 민감해 암살당할 위험이 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 어떻게 하느냐?”라는 취지로 알려 왔다. 천안함 관련 발언을 인정할 경우 김정남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에 따라 고미 요지는 천안함 부분을 부인했고, 이후 《월간조선》과 함께 싱가포르에서 김정남을 인터뷰하려던 계획도 취소했다. 당시 기사에 따르면 김정남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세습’에 대해 강한 반감을 표했다. 2010년 11월 3일, 김정남은 ‘3대 세습’과 관련해 전자우편을 통해 고미 요지에게 다음과 같이 밝혔다.
 
  〈3대 세습이라는 것은 과거 봉건 왕조 시기를 제외하고는 전례가 없습니다. 상식적으로 사회주의에 부합할 수 없습니다. 또 3대 세습에 가장 부정적이었던 부친이 그렇게 한 것은 북한 내부적인 요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백두의 혈통’만 믿고 따르는 데 익숙한 북조선 주민들에게 그 혈통이 아닌 후계자가 등장할 경우, 예상 밖의 일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북조선의 특수성을 고려해 ‘백두의 혈통’에게 세습을 단행했다고 봅니다. 나는 3대 세습에 반대합니다. 그러나 북조선 내부의 안정을 위해 세습을 해야 했다면 따라야 합니다. 북조선 내부의 혼란은 한반도의 혼란을 가져올 수 있는 위험한 것입니다. 나는 형으로서 동생 김정은에게 협력하고자 합니다. 어디까지나 동생이 원하는 경우에 말이죠. 또한 도움도 ‘해외에서’라는 조건을 달고 싶습니다. 나는 동생 김정은을 대면한 적이 없습니다. 김정철(金正哲)과는 외국에서 우연히 만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 북조선 정치와 관계없는 사람입니다. 노동당 대표자회에 참가할 이유도 없고 명분도 없습니다.〉
 
  같은 달 10일, 김정남은 김정은의 세습을 부정하면서도 자신의 신변 보장을 염두에 둔 듯 자신이 김정은에게 도전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얘기했다.
 
 
  “김정은에게 도전장 내민 적 없다”
 
  〈권력 세습은 웃음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사회주의 이념에도 부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북조선이 안정적으로 경제 회복을 이루고 풍족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동생에 대한 나의 순수한 마음이 일부에서는 ‘북조선 버전 왕자의 난’ ‘김정남이 동생 김정은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설명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 김정남이 고미 요지에게 보낸 전자우편 글 중
 
  김정남은 그해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해 이틀 뒤 다음과 같이 밝히면서 “전 세계가 내 동생(김정은)을 나쁘게 생각하는 게 안타깝다”고 밝혔다.
 
  〈한국은 공격을 받아도 확전(擴戰)을 막기 위해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없습니다. 전면전 발발(勃發) 시 한국이 받는 경제적 손실은 막대합니다. 북조선은 한국의 이러한 약점을 알고 있고, 언제 어디서나 이와 유사한 공격을 가할 수 있습니다. 연평도 사건은 실로 걱정입니다. 오늘 인터넷을 통해 이번 포격이 내 동생의 정치적 업적으로 선전(宣傳)되고 있다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선전만을 듣고 사는 북조선 주민들은 실상을 정확히 모르겠지만, 전 세계가 내 동생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이 가슴 아픕니다. 동생이 동족(同族) 민간인을 포격한 악명 높은 지도자로 묘사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는 후계자를 보좌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김정남은 또 그해 12월 10일 “북한 지도자가 될 생각은 없느냐?”란 고미 요지의 질문에 다음 날 전자우편을 통해 자신은 애초부터 북한의 최고 권력자가 될 생각이 없었다고 밝혔다.
 
  〈나는 북조선의 후계자가 될 생각이 없었습니다. 북조선의 차기 지도자는 나로서는 견딜 수 없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다른 사람의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나 자신의 인생을 끊고 싶지는 않아요.〉
 
  김정남은 2011년 1월 13일 마카오의 한 호텔에서 고미 요지와 만나 인터뷰를 했다. 당시 고미 요지는 “김정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느냐?”고 물었다. 김정남은 “지금도 옛날도, 동생에 대해서는 부친의 위업을 계승하고 주민이 더 풍족하게 살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게 소원이다. 또한 한반도에서 연평도 포격 사건과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북남(北南)관계를 잘 조정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이후에도 핵·미사일 실험과 대남 무력 도발을 계속했고, 자신에게 도전할 의사가 없다고 밝힌 이복형을 없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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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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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연    (2018-04-17) 찬성 : 70   반대 : 37
더군다나 이한영과 김정남은 일반인이 아닌 특수한사람이기에 북한에게는 먹잇감되기 좋은대상이었지!!!! ㅡㅡ
  박혜연    (2018-04-08) 찬성 : 0   반대 : 13
김정남과 이한영의 외삼촌이자 성혜림과 성혜랑의 오빠인 성일기어르신이 이렇게 예언했지. 너희들은 고발하거나 폭로하면 죽는다고!!!!!

20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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