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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찰총국의 미군 수륙양용 장갑차 밀수 계획

정찰총국 5국(해외정보국) 공작원 왕사장, 돈에 눈먼 국내 사업가 포섭!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woosu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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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하지 마라. 우리가 미군이 이라크 전쟁 때 썼던 수륙양용 장갑차를 입찰받으려 하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국내 대북 사업가가 북한 정찰총국 요원에게)

⊙ 북한 공작원, 중국 칭다오 통해 위조지폐 국내 유통 계획
⊙ 지난 3월 북·중 접경 지역에서 다량의 슈퍼노트 발견
⊙ 해외정보국 요원 왕사장, 1996년 북의 김영삼 전 대통령 암살 계획 관여 가능성
⊙ 무기 역설계 위해 미군 수륙양용 장갑차 밀수 시도한 듯
  북한의 정찰총국은 2009년 초 북한이 3대 세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군 소속의 정찰국, 노동당 속의 작전부·35호실 등 대남 공작부서 6개를 통폐합해 만든 조직이다. 각 국에는 1국에서 7국까지 번호가 붙는데 ‘죽을 사(死)’ 자와 발음이 같은 4국은 없다고 한다. 안보부서 관계자는 “각 국 번호는 수시로 바뀐다. 이번 제재 대상으로 지목된 1국과 5국은 각각 정찰국과 해외정보국을 지칭하는 것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1국인 정찰국은 무장공비 양성·남파, 요인 암살·납치, 테러 등을 담당한다. 1983년 미얀마 아웅산 테러,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 2010년 황장엽 전 비서 암살조 남파·천안함 폭침, 2015년 휴전선 목함 지뢰 도발 등의 배후로 지목된다.
 
  5국인 해외정보국은 당 35호실(대외정보조사부)을 흡수한 것으로 해외에서 대남 정보 수집, 간첩 공작 등을 전담한다. 1978년 신상옥·최은희 부부 납치, 1987년 칼(KAL) 858기 공중 폭파 등을 일으켰다.
 
  일명 ‘왕사장’으로 불린 윤○○(이하 왕사장)은 정찰총국 공작원 요원이다. 정찰총국 요원은 ‘초대소’라고 불리는 훈련기관에서 3, 4년간 ‘밀봉교육’이라고 불리는 ‘지옥훈련’을 받아야만 될 수 있다. 1954년생인 그는 1995년부터 1998년까지 해외정보국 요원으로 태국에서 활동했다. 당시 태국은 북한의 위조달러 제조 거점이었다. 북한은 90년대 초반 북한에서 제조한 위조달러를 홍콩-마카오-중동-아프리카 등지에서 교환해 왔으나 90년대 중·후반 범행 무대를 단속이 약한 동남아 쪽인 캄보디아-베트남-태국 등지로 옮겼다.
 
 
  정찰총국 왕사장의 정체
 
우리 국민 2명은 군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대형 타이어를 북한 공작원과 함께 북한으로 밀반출하려 했다.(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사정 당국 관계자는 “왕사장이 1995년부터 1998년까지 태국에서 활동했다면 1996년 제기됐던 북한의 김영삼 전 대통령 암살 계획에도 밀접하게 관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1996년 3월 1일 태국에서 아시아-유럽정상회담(ASEM)이 열렸는데, 일주일 전인 2월 24일 태국의 유력 일간지 《데일리뉴스》는 “북한이 아시아-유럽정상회의 기간 중 한국 지도자를 위해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테러를 위해 북한 테러 용의자 4명과 한국계 일본인 2명 등 6명이 이미 태국에 잠입했으며, 또 다른 8명이 추가로 입국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실제 태국 경찰은 2월 26일 한국인으로 신분을 속이고 입국한 북한인을 체포하기도 했다. 태국 정부는 방콕시 전역에 경계령을 내린 데 이어 회담 참가국 25개국 중 테러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큰 한국의 김영삼 대통령을 특급 경호 대상으로 분류, 최상급 경호를 했다. 다행히 테러는 일어나지 않았다.
 
  태국은 북한과 1975년에 국교를 수립하고 이후에도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현재 북한의 대외 무역 규모 면에서 태국은 중국, 러시아, 인도에 이어 4위다. 그러나 최근 양국의 관계는 예전 같지 않다. 태국은 북한 고려항공의 평양-방콕 노선 정기편 운항을 중단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 항공편이 북한으로 들어갈 때 김정은을 위한 각종 사치 물자를 실어간다는 의혹까지 나오자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감안, 태국 당국이 선제 조치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양국관계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태국은 북핵 제재의 일환(一環)으로 북한 관료를 위한 IT 연수 프로그램도 없앴다.
 
  4년간 태국에서 활동한 왕사장은 윗선의 명령에 따라 중국으로 활동지를 옮겼다. 2014년 15년 넘게 중국에서 첩보 활동을 한 그에게 명령이 내려왔다. 군용으로 쓸 수 있는 대형 타이어를 구하라는 것이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한미연구소의 커티스 멜빈(Curtis Melvin) 연구원의 조사로는 당시 북한은 군용차량 타이어가 너무 낡아 훈련에 차질을 빚고 있었다.
 
 
  왕사장의 국내인 포섭
 
정찰총국 요원 왕사장은 1996년 제기됐던 북한의 김영삼 전 대통령 암살 계획에도 밀접하게 관여했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사진은 북한 정찰총국 출신인 박선용씨가 인터뷰를 하고 있는 모습.(박씨는 이번 사건과 관련 없다.) 사진=조선일보
  명령을 받은 왕사장은 대북사업을 위해 중국 랴오닝성(선양, 안산시) 단둥시(丹東市)를 자기 집처럼 드나드는 한국인 한모씨에게 접근했다. 왕사장은 한씨에게 대형 타이어를 구할 수 있는지 물었다. 돈에 눈이 먼 한씨는 왕사장이 정찰총국 요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중고 타이어를 북한으로 반출하기로 마음먹었다. 5·24조치(천안함 도발 이후 대북제재)로 대북한 물품 반출은 금지돼 있음에도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군용으로 쓸 수 있는 타이어를 북한에 보내기로 한 것이다.
 
  곧장 한씨는 김모씨와 접촉했다. 김모씨는 우리 군부대, 주한미군 부대에서 반출하는 타이어를 수거, 재활용하거나 수출하는 업체의 부장(部長)이었다. 한씨가 김씨를 계획에 끌어들인 것은 그가 2008년과 2009년 남북교류 사업을 위해 북한을 왕래한 경험이 있어서였다.
 
  한씨의 계획을 들은 김씨는 같이 해보자고 했다. 왕사장과 한씨, 김씨는 “김씨가 부산에서 타이어를 싣고 중국 다롄까지 가지고 오면, 왕사장의 지인인 사모씨 명의로 된 중국회사 이름으로 타이어를 북한으로 반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사정 당국 관계자의 이야기다.
 
  “5·24조치로 남북교류가 끊기는 바람에 북한 물품이 남한으로 오거나, 남한 물품이 북한으로 가거나 할 때는 중국에서 만든 것처럼 꾸밉니다.”
 
북한은 평안북도 영변군에 최고 수준의 군용 차량 연습시설을 만들었음에도 군용차량의 타이어를 구하지 못해 제대로 된 훈련을 하지 못하고 있다.
  세 사람은 2015년 1월 8일 북한으로 반출할 타이어 규격과 수량을 정하기 위해 중국 단둥시 소재 A 다방에서 만났다.
 
  왕사장이 말했다.
 
  “특수 타이어가 필요합니다. 지금 중고 타이어를 취급하는 회사가 거의 없습니다. 우리(북한)는 타이어를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5·24조치 때문에 돈을 주고 사려고 해도 물건을 못 구합니다. 대원들과 해보고 싶습니다. 돈은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준비만 빨리해 주십시오.”
 
  김씨는 “걱정하지 마라”고 했다.
 
  “제가 예전부터 군부대 타이어를 많이 취급했어요. 군부대에서는 트럭에 사용하는 타이어인 900R20, 1100R20이 많이 나옵니다. 제가 가장 많이 공급할 수 있는 게 이 두 종류의 타이어입니다. 지금 한 1000개 정도(대형 타이어 263개) 확보한 상태입니다.”
 
  왕사장은 “우리가 계속 일할 사이니, 품질 좋은 것으로 공급해 달라”고 했다.
 
  2015년 5월 23일 세 사람은 마침내 단둥시 B 식당으로 가는 차 안에서 북한으로의 중고 타이어 밀반출 세부 사항을 최종 합의했다. 작전 일은 2015년 6월 16일이었다. 작전 당일 세계 5위권의 물류허브인 부산항. 이곳에서 김씨는 군용 타이어와 일반 타이어 1000개를 적재한 컨테이너 2개를 동영해운을 통해 중국 다롄항으로 반출했다. 위 컨테이너 2개는 6월 25일 북한 선박 미양(美洋)8호에 선적, 북한 남포항으로 출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중국 다롄항 세관의 단속에 적발, 한국으로 퇴송(退送)됐다.
 
 
  “역설계 위해 미군 장갑차 밀수 시도”
 
정찰총국 요원 왕사장은 역설계를 위해 미군 수륙양용 장갑차를 북한으로 밀반출하려 했다.
  갈 곳 잃은 컨테이너 2개는 10개월 남짓 방치되다 2016년 5월경 경찰에 적발됐다. 한씨와 김씨는 체포되어 조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두 가지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첫 번째는 왕사장이 이들을 통해 미군 수륙양용 장갑차 밀수 여부를 알아본 것이다.
 
  《월간조선》이 입수한 수사 기록에는 공작원 윤씨와 한씨가 장갑차 밀수와 관련해 나눈 대화 내용이 나온다.
 
  “혹시 미군 탱크 좀 알아볼 수 없나. 구매가 어렵다면 도면이라도 구해줬으면 합니다.”(왕사장)
 
  “탱크는 김씨가 자료를 완벽히 만들어서 설명할 겁니다. 혹시 녹음합니까. 도청되면 곤란한데. 제가 알기로 탱크는 어렵고, 수륙양용 장갑차는 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라크전 때 쓴 건데 미군부대에서 폐기하려고 하는 것을 입찰받으려 하고 있거든요.”(한씨)
 
  “탱크가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입찰이) 성사되면 좋겠네요.”(왕사장)
 
  왕사장은 왜 미군 장갑차 밀수를 시도했을까.
 
  사정 당국 관계자는 “왕사장이 한씨를 통해 전차 구매를 알아본 건 역설계를 위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북한의 선진국 무기 역설계는 군사력 증강의 대표적 방법이다. 역설계는 후발주자가 단기간에 적은 비용으로 기술 습득을 할 수 있는 보편적 경로다. 제품을 분해·측정·실험하는 과정을 통해 설계도를 복원하고 시험제작하며 완제품을 만드는 방식이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의 무기 역설계 기술은 단순히 베끼는 단계를 넘어 기존에 가진 기술을 조합해 새로운 무기체계까지 만드는 수준”이라며 “우리가 TV와 냉장고를 만들고 휴대폰을 만드는 동안 북한은 무기 개발에 모든 국력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은 뛰어난 역설계 기술로 러시아, 중국 무기뿐만이 아니라 미국의 개틀링(분당 2000여 발의 사격이 가능한 기관총), 500MD 헬리콥터, 스트리커(Streaker) 등을 밀수, 개량해서 사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100달러 위조지폐 국내 유통 계획
 
한씨는 북한 공작원 왕사장의 부탁을 받고 북한 위조 달러의 국내 유통 가능성도 알아봐 준 것으로 밝혀졌다. 과거 경찰이 압수한 초정밀 위폐인 ‘슈퍼노트’. 이 100달러권 위조지폐는 육안 식별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교묘하다. 사진=조선일보
  두 번째는 이들이 위조달러의 국내 유통을 계획한 것이다. 왕사장은 한창 군용 타이어 밀반출을 논의하던 2015년 4월 18일 한씨에게 위조달러 국내 유통 가능성을 타진했다.
 
  “(위조)화폐가 있는데 어떻게 좀 (한국에) 돌릴 수 없을까요. 기계는 통과하는 위폐입니다. 잘만하면 될 것 같은데.”(왕사장)
 
  “그래요? 견본 몇 장만 줘보세요. 그럼 내가 한국 가서 알아볼게요.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위폐를) 한국으로 가져가는 게 어려울 겁니다.”(한씨)
 
  “그거 중국 칭다오까지 배로 가져온 다음에 거기서부터 한국으로 가져가면 문제없습니다. (한국으로 가져가는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왕사장)
 
  “유통하려는 위조달러 좀 봅시다.”(한씨)
 
  “지금 나한테 없고 내 지인이 가지고 있으니까 그쪽에 연락해 보세요.”(왕사장)
 
  4월 20일 국내로 입국한 한씨는 왕사장의 지인에게 가진 위조달러를 사진으로 찍어 자신의 ‘텔레그램(Telegram)’으로 보내라고 했다. 텔레그램은 독일의 모바일 메신저로 대화 내용을 자사의 서버(대형 컴퓨터)에 저장하지 않고 전달만 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감청이나 해킹으로부터 안전하다.
 
  한씨는 왕사장 지인에게 받은 위조달러 사진을 가지고 다니며, 유통 여부를 알아봤다.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그는 이런 상황을 전화로 왕사장에게 전하려 했다. 왕 사장은 전화로 이야기하면 도청 가능성이 있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중국에서 하자고 했다.
 
  한씨는 당장 중국으로 날아갔다. 왕사장은 한씨에게 100달러짜리 위조달러 3장을 보여주며 “(한국의) 분위기가 어떠냐”고 물었다.
 
  한씨는 “소위 ‘위조지폐’ 유통업계에서 한 가닥 한다는 이들에게 유통 여부를 문의한 결과 적발될 경우 형량이 무거워 나서려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현행법상 누구든지 위조지폐를 제조하면 사형,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윤씨는 “잠시 보류하자”며 위폐 유통 계획을 접었다. 만약 누구든 유통할 수 있다고 나섰다면 ‘북한판 위폐’가 대한민국 경제에 혼란을 줬을 것이다.
 
  북한은 여전히 슈퍼노트(super note)를 제작하고 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관계자는 “지난 3월부터 북·중 접경 지역과 동북 3성(랴오닝·지린·헤이룽장성)에서 다량의 슈퍼노트가 발견되면서 제조·유통의 진원지로 북한을 지목하는 목소리가 컸다”며 “중국 공안도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온 것으로 안다”고 했다. 슈퍼노트는 ‘굉장한, 특별한’이라는 뜻의 super와 ‘지폐’를 뜻하는 note의 합성어다. 북한이 만든 100달러짜리 위폐를 뜻한다. 미국 조폐국이 사용하는 잉크와 고성능 인쇄기를 이용해 만들며 위폐 감별기를 통과할 정도로 정교하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지난 8월 왕사장과 군용 타이어 밀반입, 미군 장갑차 밀수, 위조지폐 국내 유통 등을 공모한 한씨와 김씨를 국가보안법상 회합 및 편의 제공 미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들은 상대가 북한 공작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사상적인 목적보다는 경제적인 이득이 범행 동기로 보인다”고 했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일부 사실관계에 대해 말했지만, 변호사를 선임한 뒤로는 진술 자체를 거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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