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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 문서

김정은 왜 할아버지 김일성 동상은 방치했나

“할아버지 김일성에 대한 애정 전혀 없어 보여”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woosu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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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일성 독상(獨像)은 보수하지 않은 김정은
⊙ “김일성 생전 재일교포 무용수 출신이 낳은 김정은 인정 안 해”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관계자)
⊙ 김정은, 북에서 신과 같은 존재인 김일성 억지로 흉내
⊙ 아버지 김정일에 대한 애정은 각별
⊙ 양강도 혜산시 동상 보수 이유는 탈북하면 응징하겠다는 뜻?
  《월간조선》은 새누리당 이철규 의원으로부터 북한 김일성·김정일 동상 현황이 담긴 국방부 문건을 입수했다. 국방부는 정기적으로 김일성·김정일 동상의 상태, 위치 등 현황을 체크한다. 북한은 동상을 ‘동상(同像)’이라고 쓴다. 일반적으로 구리 동(銅)을 쓰지만, 북한은 같을 동자를 사용한다.
 
새누리당 이철규 의원.
  ‘동상=수령님’이란 이야기다. 여행객에게도 동상 앞에서 인사하도록 하고 떠들거나 반바지 착용을 금지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자유북한방송 김성민 대표는 “주민들은 동상과 김일성·김정일을 동일시한다. 동상 앞에서 하는 말과 행동을 김일성·김정일이 듣고 본다고 여긴다. 동상 앞을 지나갈 때는 몸가짐을 각별히 하며 기침이나 재채기조차 제대로 못 한다”고 했다.
 
  이번에 입수한 문건으로 파악할 수 있는 사실은 하나다. 김정은이 최근 4~20m 규모(기단부 제외)의 북한 전역에 세워진 대형 김일성·김정일 동상 31개를 보수한 것이다.
 
  문건을 보면 김정은은 ▲김일성종합대학(김일성·김정일 부자상, 세운 날짜: 2012년 10월 29일 김정일 추가) ▲만수대 언덕(74년 김일성 생일 기념 제작, 2012년 4월 13일 김정일 동상 추가) ▲만경대혁명학원(김일성·김정일 부자상) ▲인민보안부(김일성·김정일 부자상, 2012년 8월 29일 김정일 추가) ▲만수대창작사(김일성·김정일 기마상) ▲김일성군사정치대학 제2자연과학원(김일성·김정일 부자상, 2015년 11월 9일) ▲공군사령부(김일성·김정일 부자상, 2014년 11월 29일) ▲양강도 혜산시(김일성·김정일 부자상, 2015년 9월 26일) ▲혜산시 보천보승전탑 주변(김정일 동상, 2015년) ▲청진시(김일성·김정일 부자상, 2014년) ▲나선시(김일성·김정일 부자상, 2015년 4월) ▲함흥시(김일성·김정일 부자상, 2012년 12월 21일) ▲회양군 1군단(김일성·김정일 부자상, 2014~2015년) ▲원산시(김일성·김정일 부자상, 2013년 12월 22일) ▲송도원소년단야영소(김일성·김정일 부자상, 2014년 5월 2일) ▲사리원(김일성·김정일 부자상, 2015년 8월 29일) ▲해주시(김일성·김정일 부자상, 2015년 10월 8일) ▲개성시(김일성·김정일 부자상, 2016년) ▲강계시(김일성·김정일 부자상, 2012년 10월 11일) ▲남포항(김정일 동상, 2015년) ▲평성시(김일성·김정일 부자상, 2015년 7월 22일) ▲신의주시(김일성·김정일 부자상, 2014년 7월 25일) ▲군자리(김일성·김정일 부자상, 2016년 4월 12일) ▲강서군 북한군 1군단(김일성·김정일 부자상, 2014~2015년) ▲덕천군 11군단(김일성·김정일 부자상, 2014~2015년) ▲순안비행장(김일성·김정일 부자상, 2014~2015년) ▲국가과학원(김일성·김정일 부자상, 2014년 10월 6일) ▲국가안전보위부(김정일 단독, 2012년 10월 2일) ▲국제친선전람관(김정일 밀랍상, 2014년 4월 8일) ▲문수물놀이장(김정일 컬러동상, 2014년)에 세워진 동상을 손봤다.
 
 
  김일성 독상은 방치
 
지난 3월 김정은은 김일성이 입던 누런 색깔의 더블코트를 입고 핵무기 연구 부문 과학자, 기술자들을 만나 핵무기병기화사업을 지도했다.
  김정은의 지시로 보수(補修)한 동상은 모두 김정은 본인이 세운 것이다. 아버지 김정일이 만든 할아버지 김일성 동상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다. 이유는 무엇일까. 합참 전략정보부 북한경제사회분석과 관계자는 “할아버지 김일성 색채를 줄이려는 의도”라고 했다. 그의 이야기다.
 
  “김정은이 의도적으로 할아버지인 김일성 동상은 손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조선예술영화 촬영소(김일성 입상) ▲평양학생소년궁전(김일성, 어린이 3명 군상) ▲강건종합군관학교(김일성 입상) ▲김일성종합대학(김일성 입상) ▲김일성정치대학(김일성 입상) ▲금성제1중학교(김일성 입상) ▲김성주소학교(김일성 학생시절 입상) ▲창전소학교(김일성 학생시절 입상) ▲창덕학교(김일성 입상) 등 김정일이 주요 지역에 세운 김일성 단독상은 손대지 않았습니다. 동상 정비를 하려 했으면 오래된 것부터 하는 게 정상이지 않습니까. 이번에 김정은이 보수한 동상은 모두 부자상, 아니면 김정일 단독상이었습니다. 이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김정은이 할아버지 색채를 지우려 한다는 분석이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김정은이 지금껏 ‘김일성 아바타’처럼 행동하며 존경을 표시해 왔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2014년 할아버지 김일성을 모방해 육성 신년사를 했다. 아버지 김정일은 한 번도 신년사를 하지 않았다.
 
  2014년 건강 문제로 40일간 잠적했던 김정은은 활동 재개일을 국가 기념일인 공화국 창건일(9월 9일)과 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이 아닌 10월 14일로 잡았다. 이날은 소련군 장교이던 김일성이 1945년 평양에서 ‘개선(凱旋) 연설’을 하며 처음으로 북한 주민에게 존재를 드러낸 날이다. 김정은은 《로동신문》을 통해 “1945년 10월 14일은 온 나라, 온 겨레가 그처럼 목마르게 고대하던 역사의 시작이었다”고 했다.
 
  김정은은 이날 검은 지팡이를 짚은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김일성을 연상시킨 연출이었다. 이날 조선중앙TV는 검은 지팡이를 든 김일성이 부관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가는 기록영화를 방영했다. “우리 수령님의 그 위대한 헌신! 생애의 마지막 나날에 인민들 모르게 쓰셨던 지팡이가 다 전해주고 있습니다”라는 멘트도 담겼다.
 
  지난 3월에는 김일성이 입던 누런 색깔의 더블코트를 입고 핵무기 연구 부문 과학자, 기술자들을 만나 핵무기병기화사업을 지도했다. 이 코트는 옛 소비에트 군대(붉은 군대)의 겨울 군복과 상당히 닮았다. 김일성은 이 군복을 전시에 입었다. 한 탈북자는 “김일성은 옛 소련군 장교복을 그대로 가져다 입었다”며 “올 3월에 김정은이 입었던 코트의 모양이 당시 전투복과 상당히 유사했다”고 했다.
 
  지난 5월 자신의 ‘셀프 대관식’이었던 7차 당 대회는 김일성 흉내의 결정판이었다. 김정은은 김일성처럼 검은 뿔테 안경을 썼고, 뒷짐을 지고 걸었다. 67년 전 김일성이 차지했던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과 비슷한 ‘노동당 위원장’이라는 감투도 새로 썼다. 당 대회 기간 북한 TV는 김일성 독재가 본격화한 1960년대를 “황금의 시대”라고 불렀다.
 
 
  얼굴도 모르는 할아버지, 애정 전무
 
지난 5월 자신의 ‘셀프 대관식’이었던 7차 당 대회는 김일성 흉내의 결정판이었다. 김정은은 김일성처럼 검은 뿔테 안경을 썼고, 뒷짐을 지고 걸었다.
  의문은 취재 과정에서 풀렸다.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을 비롯한 다수의 탈북자는 “김정은은 김일성 얼굴도 모르고, 김일성이 자신의 어머니를 인정하지 않은 점을 상당히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다. 김일성 따라 하기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관계자의 말이다.
 
  “김정은은 할아버지를 직접 만난 적이 없습니다. ‘김일성=김정은’ 우상화에 열을 올리면서도 김일성과 김정은이 함께 찍은 사진을 한 장도 공개하지 않았지요. 김일성이 손자 김정은을 품에 안은 사진이 나온다면 북한 주민들은 상당히 감동했을 것인데 있었으면 당연히 공개했겠죠. 서로 실물을 본 적이 없습니다. 김정은이 1983년(혹은 1984년) 태어났고, 김일성이 1994년 사망한 만큼 만날 시간이 있었음에도 김일성은 김정은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재일교포 무용수 출신 고영희가 낳았기 때문이죠.”
 
  탈북자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김일성의 장손인 김정남도 출생한 지 몇 년이 지나서야 처음 할아버지 얼굴을 봤다고 합니다. 김일성이 김정남의 생모 성혜림(2002년 사망)을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김일성은 유명 영화배우에다 결혼 경험이 있는 성혜림을 탐탁해 하지 않았습니다.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2004년 사망)도 김일성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겁니다. 북한에서 지위가 낮은 재일교포 출신인 데다 고영희의 부친이 남한(제주도) 사람이라는 점은 김일성 눈살을 찌푸리게 했을 가능성이 크죠. 김정일도 김일성의 심기를 고려해 김정은을 평양이 아닌 원산 별장에서 키웠습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김정은의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있었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2004년 유방암으로 죽은 고영희의 자취는 찾을 수 없다. 고영희는 북에서 ‘동요계층’으로 분류되는 북송(北送) 재일교포 출신으로 그녀의 이름과 출신은 금기(禁忌)다. 김정은이 집권하면서 평양에 고영희의 이름과 출생·사망시기가 적힌 묘비를 세웠고, 고영희의 생전 활동 모습이 담긴 동영상도 당 간부들에게 공개했지만, 재일교포란 것은 밝히지 못하고 있다.
 
  대북(對北)공작 및 첩보 전문가로 30여 년간 군에서 근무했던 이시연 ROTC 통일정신문화원 정책실장은 김정은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은 할아버지 흉내를 억지로 내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김일성은 북한에서는 신(神)과 같은 존재입니다. 김정은이 김일성 흉내를 내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죽은 김일성이 북한을 계속 통치하는 것이지요. 사회주의 사람들은 의리(義理)라는 개념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비록 김정은이 통치를 잘 못해도 옛날 주군(김일성)을 봐서 참고 또 참을 것입니다.”
 
  고위급 탈북자는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에 대한 애정이 깊다”며 “속으로는 아버지 흉내를 내고 싶지만, 북한 내에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평가가 달라 어쩔 수 없이 김일성을 따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전한 북한 여론이다.
 
  “1994년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북한 인민들은 모두 하나같이 슬퍼했습니다. 당시 북한 인민들은 전국적 애도기간 동안 의무적으로 김일성의 동상이나 초상화 앞에 가서 울어야 했는데, 그 행위가 결코 강제만은 아니었어요. 자의 반 타의 반이었죠.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었다는 일화는 믿지 않지만, 어쨌든 김일성이 항일혁명투사로서 북한을 이만큼까지 끌고 왔다고 생각합니다. 1974년 남한 경제가 북한 경제를 역전하기 전에는 하얀 쌀밥에 고깃국을 먹여줬으니까요. 김정일에 대한 평가는 박합니다. 1995년 ‘고난의 행군’은 자연재해와 미제의 압박 등으로 겪은 고통이라고 치더라도 이후 북한 경제난의 책임은 김정일에게 있다고 봅니다. 김정일에 대한 북한 인민들의 신뢰는 지난 2009년 화폐개혁의 실패로 악화했죠. 당시 김정일은 화폐개혁 실패를 빌미로 박남기 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을 총살했는데 북한 주민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어처구니없어 했습니다.”
 
 
  김정은·김정일 부자 서로에 대한 애정 각별
 
  한 고위급 탈북자의 이야기대로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자신과 엄마를 인정하지 않은 할아버지에겐 섭섭함이 존재했지만 본인을 후계자로 낙점한 아버지에 대해서는 각별한 심정을 드러냈다. 남파간첩 출신 박사인 김동식씨의 설명이다.
 
  “2012년 4월 정권을 물려받은 김정은이 가장 먼저 한 것이 만수대 김일성 동상 옆에 김정일 동상을 세운 겁니다. 제작자가 김정일이 반코트를 입은 모습으로 만들었죠. 완성한 동상을 보고, 김정은이 굉장히 화를 냈다고 합니다. 자기가 본 아버지는 점퍼 차림으로 다녔는데 왜 반코트를 입은 모습이냐고 질책한 것이죠. 결국 1년에 걸쳐 점퍼를 입은 모습으로 다시 제작했습니다.”
 
  김정일도 생전 차남 김정철보다는 김정은을 아꼈다.
 
  ‘김정일의 요리사’로 알려진 후지모토 겐지(藤本建二)는 자신이 쓴 《북한의 후계자 왜 김정은인가》라는 책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정일이 간부들 앞에서 ‘정철이는 마음이 약하고 여자 같지만 정은이는 남자답다’며 김정은을 일찌감치 후계자로 지목했다. 김정일은 외모상으로도 자신을 빼닮은 김정은을 각별하게 여겼다. 김정은은 얼굴은 물론 체형까지 아버지를 닮아 뚱뚱했고 10대 중반에는 키가 다소 자랐지만 10대 후반에는 허리둘레만 튼실해졌다. 차남 정철은 모친 고영희를 닮았는지 늘씬한 근육질 체형이었다. 김정은은 놀이할 때도 유감없이 리더십을 발휘했다. 농구 시합을 할 때도 자기 팀 선수들에게 당근과 채찍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알았다. 김정은은 그저 단순히 남들의 선두에 서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술을 터득한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김정은은 사회적인 관심도 형보다 강했다. 김정일은 김정은의 이런 점을 높게 평가했다.”
 
  억지로 흉내를 내고 있지만 김정은의 김일성 흔적 지우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동상 보수 이전 김정은은 북한 화폐에서 김일성의 얼굴을 지웠다. 김정은은 2014년 새 화폐를 만들었는데 김일성 초상화 대신 김정일 초상화를 넣었다.
 
  김일성의 대표적 ‘빨치산’ 동료의 2세들도 견제하고 있다. 김정은은 8월 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인 오일정 노동당 민방위 부장을 상장(우리의 중장)에서 소장(준장)으로 두 계급 강등했고 김일성의 호위사령관을 지낸 오백룡의 장남인 오금철 군 부총참모장과 차남인 오철산 해군사령부 정치위원의 당내 지위도 낮췄다.
 
  탈북자 박사인 최경희 한양대 연구위원은 “김정은은 오랜 기득권 세력인 빨치산 2세들이 따로 뭉치는 상황을 자신의 독재 권력 강화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며 “빨치산 2세 중에선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인 최룡해 정도만 상징적으로 중용될 것”이라고 했다.
 
 
  혜산시 부자상 보수, 진짜 이유는?
 
  취재 중 김정은이 양강도 혜산시에 있는 동상을 탈북 방지를 위해 손댔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파악했다.
 
  이철규 의원실 관계자는 “양강도 혜산시는 대표적인 탈북 루트”라며 “김정은은 주민·엘리트층 탈북 행렬로 크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혜산시에 있는 동상을 정비한 것은 수령님이 보고 있는데 탈북하면 응징하겠다는 일종의 경고의 의미”라고 했다.
 
  압록강변에 있는 혜산은 중국과의 국경 거리가 북한 어느 지역보다 짧아 종전부터 탈북의 최적지로 여겨져 왔다. 혜산 앞 압록강 폭은 비가 내리지 않을 때는 30m도 안 되는 곳이 많고 겨울이면 강물이 두껍게 얼어붙어 중국으로 쉽게 건너갈 수 있다. 이러한 지리적 여건 때문에 한 집 건너 하나씩 탈북자들이 있다는 말이 나올 만큼 혜산은 탈북이 ‘일상화’된 곳이다.
 
  김정일은 생전 “혜산시 청년들이 없어도 혁명을 할 수 있다”며 몇 차례 혹독한 혜산 소탕전에 나섰다. 탈북자들의 가족, 브로커 등을 처형한 것이다. 그 결과 혜산은 2001년부터 주요 탈북 루트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거의 용도 폐기됐던 혜산 탈북 루트가 다시 열리고 있다는 것이 최근 탈북자들의 전언이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최근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 10명 중 6~7명이 혜산 루트를 활용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했다. 그동안 주요 탈북 루트였던 함경북도 온성, 회령, 무산 지역은 상대적으로 잠잠해진 반면 혜산시가 주요 탈북 루트로 재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올 4월 양강도 혜산에서 탈북자 브로커 10여 명을 체포, 총살했다.
 
  김정은이 공군사령부, 1군단, 11군단에 있는 동상을 보수한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은 최근 부쩍 공군을 챙기고 있다. 공군 사령관 출신인 리병철이 대장 진급 후 노동당 제1부부장에 임명되는 등 출세 가도를 달리며 김정은 정권의 신흥 실세로 부상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리병철은 8월 24일 김정은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 참관 때 수행했다. 김정은이 이처럼 공군을 각별하게 챙기는 이유는 현대전에서 공군력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원도 회양군에 있는 1군단은 최전방부대다. 2012년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노크 귀순’ 사건 때 한국으로 넘어온 병사가 북한군 1군단 소속이었다. 북한은 최전방 지역을 따라 모두 4개의 군단(서부전선에서부터 차례로 4·2·5·1군단)을 배치해 놓고 있다.
 
  11군단은 북한 최정예 특수부대(폭풍군단)다. 북한 11군단은 과거 청와대를 습격했던 김신조 부대를 모체로 하며 목표 지역의 각종 건물을 모형으로 만드는 등 실제와 비슷한 상황에서 가상훈련을 한다고 한다. 대남 기습 침투 등이 주요 임무다. 이들은 한국 주요 인사 암살 리스트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예하에 번개부대·우뢰부대·천둥부대 등의 이름을 가진 10여 개 여단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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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정태    (2016-10-01) 찬성 : 58   반대 : 94
일단 이철규의 목을 작두로 자르자! 대한국 남북 문제는 자르다 보면 문제가 해결 된다!

20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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