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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

북한 보위부 해외반탐처(反探處)의 테러 수법

“평범한 얼굴, 친근한 말투로 북한 고급 정보 제공하면 의심해야”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woosu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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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북한 보위부 중국 담당 특파원의 고백

⊙ 고위 탈북자라고 소개하며 친근하게 다가오는 인물 의심해 볼 필요
⊙ 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사업가의 경우, 단기 취업 직원 눈여겨봐야
⊙ 대개 독침으로 암살, 납치… 교통사고로 위장해 죽이기도
⊙ 북, 납치한 목사·선교사에게 간첩 활동했다는 자백 쇼 벌이게 해
  4월 30일 북·중 접경지역에서 탈북자들을 도와온 조선족 한충렬 목사가 살해됐다. 한 목사의 목에는 예리한 칼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의 소행이었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중국에 파견된 북한 보위부 요원들이 한 목사를 암살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도 “사건 발생 직전 북한에서 공작요원 3명이 넘어왔고 그들에 의해 한 목사가 피살됐다. 보위부 요원들은 북한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북한 보위부의 한국 목사, 선교사와 탈북자를 노린 납치·테러는 계속될 전망이다. 엘리트 계층의 도미노 탈북에 분노한 김정은이 보복 테러를 지시했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명령에 보위부 등 북한 공작 부서들은 테러 요원들을 중국·동남아로 파견했다. 한 탈북자는 “북한은 한 목사의 휴대폰에 저장된 정보를 통해 중국에서 활동하는 북한인권운동가들과 북한 내 지하 기독교인들을 파악하여 또다시 위해(危害)를 가할 것”이라고 했다.
 
  《월간조선》은 2002년 말부터 2012년 6월까지 10년간 ▲중요 탈북자들의 소재 파악 및 체포·강제북송 ▲탈북자를 지원 중인 내국인 선교사 등의 신원·동향 파악 ▲탈북자들의 한국 입국 루트 파악 및 봉쇄 ▲북한 내 기독교 유입 차단을 위한 한국인 목사·선교사 활동 견제 등의 임무를 수행했던 전직 보위부 해외반탐처 요원 A씨를 취재했다. 그들의 활동 수법을 파악하는 것이 테러 대비의 첫걸음인 까닭이다.
 
  A씨는 “북한 인권 운동을 펼치는 탈북자 박상학에게 접근하고,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 중 생활고를 겪는 자들을 다시 귀북(歸北)시켜 기자회견 등을 통해 인권 문제를 제기, 남한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을 상황을 만들라”는 지령을 받고 2012년 6월 한국에 침투했다가 적발됐다. 일반 탈북자로 위장했지만 공작원임이 드러났다. A씨의 활동은 그의 증언, 검찰 수사기록, 판결문 등을 통해 파악했다.
 
 
  침술, 남한 정세, 한국어 등 교육
 
북한 조선중앙TV는 새로 제작한 기록영화 〈백두산 훈련열풍으로 무적의 강군을 키우시여〉에서 특수부대 군인들의 훈련 장면을 공개했다. 도끼로 복부를 강타하고, 깨진 유리병에 눕는 등 잔인한 훈련 장면을 내보냈다.
  테러 요원이라고 하면 ‘맨손으로 열댓 명은 거뜬히 때려눕힐 수 있는 인간 병기’를 떠올린다. ‘정찰총국’과 ‘225국’에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올 법한 최정예 엘리트 공작원이 존재한다. 두 곳에 소속된 공작원들은 ‘초대소’라고 불리는 훈련기관에서 3, 4년간 ‘밀봉교육’이라고 불리는 ‘지옥훈련’을 받는다. 황장엽 살해 지령을 받고 내려온 김명호, 동명관, 이동삼 등이 이곳 출신이다.
 
  보위부는 다르다. ‘질보다 양’을 우선시한다. 다수의 인원이 길게는 6개월, 짧게는 1, 2주가량 단기속성훈련을 받고 작전에 투입된다. 굶어 죽기 싫어 탈북을 시도하다가 적발된 인원이 보위부 공작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A씨도 그랬다.
 
  1998년 3월 함북 무산군 무산광산연합기업소에서 일하던 A씨는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세 차례(1998, 2000, 2001) 중국으로 탈북을 시도했다. 탈출하는 족족 공안에 적발돼 북한으로 강제 이송당했다. 세 번째 탈북 실패 후인 2002년 8월, 함북 온성군 보위부 구류장에 수용된 A씨에게 보위부 해외반탐처 지도원인 복기섭은 “중국에서 탈북을 지원하는 목사, 선교사와 탈북자들을 감시하는 보위부 공작원이 돼라”고 명령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A씨는 복기섭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당과 수령을 위하여 이 한 몸을 바치겠다”는 취지의 맹세문에 피로 서명을 한 뒤 김일성·김정일 초상화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보위부 공작원이 되면 거쳐야 하는 절차였다. 7처(해외반탐처) 부부장은 A씨에게 통신연락용 휴대전화와 공작금 2만 위안을 주면서 다음과 같은 지령을 내렸다.
 
  “중국에 침투하면 ‘김북남’이라는 가명을 사용하고, 휴대전화는 받는 데에만 사용하되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며 2주에 1번씩 토요일 저녁 7시부터 9시 사이에 보위부에서 전화할 예정이니 반드시 받아라. 전화통화 시에는 보위부는 ‘큰 집’, 본인은 ‘소무’, 대사관이나 영사관은 ‘작은 집’ 등의 암호로 호칭하여야 하며 더 구체적인 임무는 중국에 도착하면 지시하겠다.”
 
  지령을 수수한 A씨는 2002년 8월 중순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다. 반탐부부장은 “한국 사람들, 특히 한국 기업인·목사들하고 잘 어울리면서 한국의 생활풍습도 많이 배우고 이들을 포섭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명령에 따라 ‘북한군 대좌(우리의 대령) 출신 리성남’으로 행세하며 한국인들이 자주 가는 교회 및 식당 등을 탐문하면서 접근 가능한 한국인들을 물색했다. 또 선양→옌타이→웨이하이→칭다오 순으로 이동하면서 중국에서 선교하는 한국인 목사, 선교사, 재중동포 신자 등을 만나 이들의 신원을 파악, 반탐부부장에게 보고했다.
 
  반탐부부장은 A씨의 활약에 흡족해했다. A씨는 수준 낮은 정보를 물어오는 일반 보위부 요원과는 달랐다. 보위부는 A씨에게 정식 공작원 교육을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2003년 4월 A씨는 보위부 안가로 사용했던 베이징시 왕징 신청 왕징서원 4구 소재 아파트에서 공작원 교육을 받았다. 교관이 5명이나 붙었다. 교육 내용은 정치사상, 사교술, 상황대처법, 안마, 침술, 차량운전, 정비, 남한 정세, 중국어, 한국어 등이었다. 이런 교육은 ‘정찰총국’과 ‘225국’ 요원들이 받는 것이다.
 
  6개월 동안 교육을 받은 A씨는 조선노동당에 입당했다. “우리 당(黨)을 위해 기꺼이 생명도 내놓겠다”는 충성서약도 했다. 교육을 마친 A씨에게 반탐부부장은 “칭다오로 이동해 북한에 투자할 한국 기업인을 포섭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A씨는 곧바로 2003년 10월 중순경부터 2004년 7월경까지 ‘고위직 출신 탈북자 황영세’로 행세하면서 칭다오 소재 한인교회 목사, 선교사들과 친분을 쌓았다. 북한 관련 고급 정보를 제공하면서 신뢰를 얻었다. 그들과 어울리면서 A씨는 자연스럽게 칭다오에서 활동하는 한국 기업인에 대한 정보를 접했다. 그는 한국 기업인 포섭을 위해 단기간 취업을 하는 방법으로 그들에 대한 정보를 파악, 반탐부부장에게 보고했다. 당시 A씨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공예품 회사에 주목했다. 다수의 회사에 단기 취업하며 이들에 대한 정보를 보위부에 올렸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우리의 국가정보원에 해당하는 기구로 평양 대성구역 용북동에 본부가 있다. 북한 최고지도자 직속으로 반체제 사범 색출과 김일성 일가에 대한 비방사건 수사, 대간첩 업무와 해외공작 임무를 전담한다. 1처(종합처), 2처(군 담당), 3처(국내반탐), 4처(도청전담), 5처(수사처), 6처(미행처), 7처(해외반탐처)로 이뤄져 있다. 법적 절차 없이도 용의자를 구속, 처단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고위 탈북자로 위장
 
과거 안승운 목사 납치와 기아자동차 간부의 피살사건 등으로 한국인들에게 위험지대로 부상한 옌지. 사진은 옌지에서 가장 큰 서시장 모습.
  2007년 초 탈북자 또는 이들을 돕는 조직을 탐문하라는 특명을 받은 A씨는 고위직 출신 탈북자를 가장, 한인교회나 선교사가 운영하는 안가에서 생활하면서 선교사와 탈북자에 대해 탐문하고 이를 반탐부부장에게 보고했다.
 
  2007년 9월 A씨는 한인교회 신자들을 통해 칠도교회의 재중동포 목사 김용운이 북한의 고위간부 친척들에게 성경 공부를 시킨다는 고급 정보를 입수, 상부에 보고해 종교모임에 참여한 행정기관 및 기업 간부들을 적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칠도교회는 중국 단둥시에 있는 유일한 조선족 교회다. 존경받는 성직자인 고(故) 한경직 목사는 신의주교회 전도사로 시무하던 때 이곳에서 설교를 하기도 했다.
 
  2008년 5월 중순에는 “우간다에 근무 중이던 간부와 그 가족이 주중 북한대사관을 방문했다가 이탈했으니 체포하라”는 명령을 받고, 동거녀 채○○과 함께 베이징으로 이동해 그들을 추적했다. A씨는 북한 간부와 가족이 베이징 소재 한인교회에 숨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A씨는 그간 쌓아놓은 인맥을 동원, 몇 주간 베이징 소재 한인교회를 샅샅이 뒤졌고, 2008년 5월 하순 새벽 북한 간부가 교회 근처에서 선교사로 보이는 백인과 함께 산책을 하는 모습을 포착했다. A씨는 간부와 그 가족을 체포했다. 체포된 북한 간부와 가족은 모두 북한으로 강제이송 됐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이들은 거의 100% 처형됐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이야기다.
 
  “북한은 지난 4월 중국 닝보의 류경식당에서 근무하던 북한 종업원 13명이 집단 탈북한 것과 관련, 책임자 6명을 평양 강건 종합군관학교에서 공개 처형했습니다. 공개 처형은 국가안전보위부, 정찰총국, 외무성, 인민보안성 간부 80여 명과 해외파견 근무자들의 가족 10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됐지요. 출신성분과 국가에 대한 충성도 등 사상을 엄격히 검증해 선별한 해외일꾼이 탈북하다 적발될 시에는 대부분 처형된다고 보면 됩니다.”
 
  북한은 최근 해외에 나가 있는 외화벌이 일꾼들을 급소환했다.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김정은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한두 놈 도망쳐도 상관없으니 외화벌이 노동자를 최대한 파견하라”고 지시했다.
 
  탈북을 꿈꿨던 외화벌이 일꾼 가족의 꿈을 산산조각 낸 A씨는 이후 톈진, 지린, 하얼빈, 무단강에서 체류하면서 탈북자 출신 브로커 파악에 주력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최○○씨가 탈북자를 지원한다는 사실을 파악, 그가 운영하는 ‘행복한 낙원’이란 이름의 양로원에 동거녀 채○○을 위장 취업시켰다. 채씨는 A씨에게 최씨의 동향을 지속적으로 감시, 보고했고, A씨는 내용 그대로를 반탐부부장에게 전달했다.
 
 
  탈북자 사냥꾼 A씨 국기훈장 1급 수여
 
  2009년에는 ‘북한 정보’를 팔려고 하는 북한인을 중국 공안에 넘기기도 했다. 내용은 이렇다.
 
  옌지시 북대 버스정류장 인근 길을 걷는 A씨에게 북한인 3명이 다가왔다. 그들은 A씨에게 ‘중요한 물건이 있는데 팔아줄 수 있느냐’는 제안을 했다. A씨는 그들에게 ‘중요한 물건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들은 ‘조선인민군 신문 50부’라고 답했다. 북한 군보(軍報) 《조선인민군》은 대외비(對外秘) 신문이다. 1948년 7월 10일 창간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기관지로 발행 부수가 40만을 넘는다.
 
  《로동신문》 《청년전위》와 함께 북한이 매년 연초 신년사 대신 발표하는 ‘공동사설’이 실릴 만큼 주요 신문이다. 《로동신문》 등은 해외에서도 구독이 가능하지만, 이 신문만은 구해보기가 쉽지 않다. 상부 지시사항이나 훈련방법·상황 등 군사정보가 될 만한 기사를 다루는 탓이다.
 
  A씨는 대외비인 군보를 팔려고 하는 이들을 체포하기로 결심하고, 이들을 유인하기 위해 본인이 군보를 사겠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고는 북대 변방호텔로 그들을 유인, 잠시 전화통화를 하겠다고 나간 뒤 반탐부부장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렸다. 반탐부부장은 중국 공안에 신고했고 대외비 신문을 팔려고 했던 북한인 3명은 체포돼 북한으로 이송됐다. 공작원으로서 능력을 인정받은 A씨는 2009년 2월 중순 ‘중좌’(중령급) 군사칭호와 국기훈장 1급을 받았다.
 
 
  독침·교통사고
 
보위부 해외반탐처 요원들은 친근한 모습으로 목사, 선교사, 탈북자에게 접근, 북한 고급 정보를 제공하면서 친분을 쌓는다고 한다.(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반탐부부장은 2010년 2월 엘리트 공작원으로 성장한 A씨에게 김창환 선교사 감시를 명령한다. 김 선교사는 북한 주민과 탈북자를 위해 헌신해 온 인물로 북한의 경계대상이었다. 당시 북한은 김 선교사가 김정일 비판 문건과 성경 등을 북한에 밀반입한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반드시 응징하겠다”는 위협도 가했다.
 
  A씨는 ‘한 사장’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던 김 선교사에게 ‘북한군 대좌 출신 탈북자 리성남’으로 행세하며 접근했다. A씨는 김 선교사와 가까워지자, 그가 운영하는 안가(安家)에 머물고 싶다고 했다. 김 선교사는 흔쾌히 허락했다. 이곳에서 지내면서 A씨는 김 선교사가 다수의 탈북자를 몽골을 통해 한국에 입국시킨 사실을 파악했다. 또한 김 선교사로부터 소개받은 탈북자 출신 브로커를 통해 몽골을 통한 탈북 경로, 몽골 국경 경비 현황 등을 입수했다.
 
  모은 정보를 토대로 보고서를 작성해 보고하니, 보위부 고위층에서 명령이 내려왔다. “보위부 내의 스파이가 김 선교사와 관계가 있다는 첩보가 있으니 세밀히 관찰하라.” 김 선교사를 철저하게 감시한 A씨는 김 선교사가 “보위부 내 배신자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남한에 ‘핫라인’이 구축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했다.
 
  김 선교사는 2011년 8월 21일 단둥 시내에서 갑자기 사망했다. 중국 공안 주도로 실시한 1차 부검에서 독극물은 검출되지 않았고, 당시 선양총영사관 측도 “부검 결과 독극물에 의한 피살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보 당국이 김 선교사의 피 묻은 장갑 등을 분석한 결과 사인(死因)은 ‘브롬화네오스티그민 중독’이었다.
 
  브롬화네오스티그민은 부교감신경 흥분제로 10mg만 인체에 투여해도 호흡이 정지되고 심장마비로 즉시 사망하는 맹독성 물질이다. ‘청산가리’로 알려진 시안화칼륨에 비해 5배나 강한 독성으로, 북한 공작원들이 즐겨 사용하는 독극물이다. 2011년 10월 대북 전단을 뿌려온 탈북단체 대표 박상학씨를 암살하려 했던 북한 공작원도 이 독극물로 만든 독침을 가지고 있었다.
 
  독침 테러는 북한의 고전적 테러 방식이다. 김 선교사가 독침으로 피살당한 다음날인 2011년 8월 22일 10년 넘게 옌볜에서 대북 인권 활동을 해온 강호빈 목사도 주차장에서 괴한으로부터 독침 테러를 당했다.
 
  강 목사는 이 사건에 대해 “주차장에서 차 트렁크를 여는데 뒤에서 누군가 다가와 주사기로 옆구리를 찔렀다. 3~4일 후에 병원에서 깨어나 의사들로부터 내 몸속에서 독극물이 발견됐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고 한다.
 
  강 목사는 2012년 5월 27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총회본부 관계자들이 말한 바로는 강 목사는 일요일인 그날 오후 2시쯤 지린성 옌볜의 중심 도시 옌지의 한 교회에서 목회를 마치고 혼자 차를 운전해 다른 교회로 이동하던 중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버스와 정면으로 충돌해 현장에서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강 목사와 가깝게 지낸 한 선교사는 “중국 공안은 ‘강 목사가 졸음운전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만 할 뿐 버스 운전기사의 신원을 비롯해 구체적인 사고 경위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고 했다. 교통사고로 위장한 암살은 북한 요원들이 자주 사용하는 수법이다.
 
  A씨도 2010년 6월 하순 북한 보위부 중국 담당 특파원으로 임명되면서 ‘고위 타깃 K’를 교통사고로 위장,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보위부의 최고위층은 “한족 택시기사를 매수한 다음 교통사고를 가장, K에게 위해를 가하라”고 했다. A씨는 기사를 매수하고 K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지만 나타나지 않아 작전은 무산됐다. 만약 K가 A씨가 덫을 쳐놓은 장소에 왔다면 교통사고로 위장돼 살해됐을 것이다.
 
 
  북한의 테러 대상이었던 목사와 선교사들
 
  북한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년간 탈북자는 물론, 그들을 돕는 목사와 선교사에 대한 테러를 지속적으로 벌여왔다. 대표적인 것이 1995년 안승운, 2000년 김동식 목사 납치, 살해다.
 
  90년 10월 자진해서 중국 옌볜 지역으로 들어가 조선족과 북한 탈출 주민들에게 선교 활동을 해온 안 목사는 95년 7월 중국 옌지에서 북한 공작원 리경춘에게 납치됐다. 리경춘은 중국 공안에 체포됐다. 중국 사법 당국은 리경춘에게 ‘불법감금 및 불법출경죄’로 유기징역 2년과 강제추방을 선고했다. 중국은 형량을 채운 리씨를 북한으로 추방했다.
 
  납치 후 종적을 알 수 없던 안 목사는 1997~98년쯤의 것으로 추정되는 평양 봉수교회와 칠골교회 예배 동영상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납북자가족모임이 입수한 13분40여 초짜리 동영상은 북한이 체제 선전용으로 제작한 것이었다. 안 목사는 봉수교회에서 외국인 3~4명이 보이는 가운데 설교한 데 이어 칠골교회에선 ‘안승운 목사 환영 례배’라는 현수막 앞에서 설교했다. 수척한 모습이었다.
 
  2000년대 이후 안 목사에 대한 소식은 끊겼다. TV에도 나타나지 않고 북한서 만났다는 사람도 없어 가족과 교회 관계자들의 애를 태웠다. 북한은 안 목사 신변에 대해 함구했다. 2009년 추석 이산가족 상봉 때도 우리 측이 안 목사의 생사 확인을 북한 측에 요청했지만 북한은 “연락이 두절돼 확인 불가하다”는 말도 안 되는 답을 보내왔다.
 
  김동식 목사는 1998년부터 2000년 1월 실종되기 전까지 중국 내 꽃제비(탈북어린이)를 위한 사랑의 집 및 보육원 운영, 탈북자 선교 등의 활동을 펼쳤다. 공안 당국에 따르면 그는 북한 공작원 7~8명에 의해 강제 납북됐다. 북한에 납치된 김 목사는 2001년 심한 고문 끝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DC의 연방지법은 2015년 4월 9일 북한은 김 목사의 아들 한씨와 동생 용석씨에게 각 1500만 달러를 배상하고 징벌적 배상금으로 3억 달러를 지급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김 목사는 미국 영주권자다. 이 외에 앞서 언급한 김창환 선교사, 강호빈 목사가 각각 독침,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2014년 북한에 억류된 김국기·최춘길 2명 중 김국기씨는 선교사 신분으로 북·중 국경 지역에서 대북 선교 사업을 하다가 체포됐다. 북한 당국은 2015년 5월 이들에게 간첩 활동을 했다는 자백 쇼를 벌이게 하고 종신형을 선고했다.
 
  2015년 초 인도적 사업 지원차 방북한 토론토 큰빛교회 담임목사인 한국계 임현수 목사는 ‘반국가 활동’을 이유로 북한에서 종신 노동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1997년부터 북한을 자주 방문했으며 방북 기간에는 탁아소와 교육기관 등에 인도적 지원을 해왔다. 북한은 이보다 앞선 2013년 10월에는 중국 단둥에서 북한 선교 활동을 한 김정욱 선교사를 ‘반공화국 적대행위’ 혐의로 체포해 ‘무기 노동교화형’을 선고하고 현재까지 석방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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