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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오누키 도모코 특파원의 평양 노동당 대회 취재기

‘벼랑끝 전술’로 외신기자를 요리한 북한 당국자들

글·사진 : 오누키 도모코  마이니치신문 서울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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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 대회장 취재 불허로 애태우다, 막판에 김일성광장 축하퍼레이드 취재 허용
⊙ ‘미래과학자거리’는 자정까지 불야성… 호텔 매점에 북한산 화장품과 커피도 판매
⊙ 핵과 경제 ‘병진노선’ 교육기관까지 파고들어… 탁아소에 은하3호 모형까지 설치

번역 : 오동룡 월간조선 기자
지난 5월 10일 오전 11시 당 대회 축하퍼레이드 취재를 끝마치고 김일성광장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한 필자.
  제7차 북한 노동당 대회에 한국 언론사 기자 어느 누구도 현장취재를 할 수 없었던 것처럼, 서울주재 일본인 기자가 북한 입국 허가를 받는 것도 극히 드물다. 일본 언론사들이 방북취재를 할 경우, 대개는 도쿄 본사 소속 기자 또는 베이징 특파원이 가는 것이 통례다.
 
  올해 3월 갱신한 내 여권은 하필이면 여권 발급 장소가 ‘EMBASSY OF JAPAN IN THE REPUBLIC OF KOREA’로 적혀 있어 내가 서울에 주재하고 있는 기자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내가 정말로 북한에 들어갈 수 있을지 반신반의(半信半疑)했다.
 
  5월 4일 베이징의 북한 대사관. 비자 신청 서류를 작성하면서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여권을 제출하면 “당신은 안 된다”며 퇴짜를 맞지나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내 걱정과는 달리 접수를 담당한 여성은 아무 말 없이 여권을 받더니 몇 분 만에 비자를 발급해 주었다.
 
  조금 안도했지만 여전히 어딘가에서 발이 묶이는 것이 아닐까 조바심이 났다. 지난 5월 5일 오후 평양 국제공항에 내리자, 필자를 포함한 외신기자 일행은 엄격한 짐 검사를 받았다. 노트북 컴퓨터와 카메라를 내보이라고 했고 남성 입국 심사관은 내 노트북 컴퓨터를 열어 동영상들을 검색했다. 하필 지난해 10월 군사분계선과 인접한 곳의 한국군 군사훈련을 취재한 동영상들이 들어 있었다.
 
 
  한국군 훈련 사진 때문에 ‘곤혹’
 
지난 5월 5일 비가 내리는 평양 시내에서 승합차에 탑승한 북한 유치원 어린이들이 기자가 손을 흔들자 호기심 어린 눈으로 손을 흔들어 답례하고 있다.
  심사관은 재빨리 동영상들을 살폈다. 한국군 훈련은 북한군의 기습공격에 대응하는 훈련으로, K2 소총과 K3 기관총의 총성이 울리는 가운데 일본어로 ‘한국군의 훈련 모습’이라는 자막까지 들어 있었다. 심사관은 “이곳에 가서 찍은 겁니까”라고 물었다. “예”라고 답변할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인가 반복해서 살펴보았기 때문에 혹시 노트북을 빼앗기는 것이 아닌가 식은땀이 흘렀다. 심사관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됐습니다”라고 말하며 노트북을 건네주어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예상 밖으로 삭제하라는 명령을 받은 사진도 있었다. 고려항공 기내에 배포된 《조선》이라는 잡지에 등장하는 어느 한 페이지 때문이었다. 이 잡지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3대 지도자 사진집이었다. 단순한 홍보 잡지였으나 지난번 방북 때 잡지를 기내에서 가져갈 수 없어 만약을 위해 잡지에 실린 김정은 체제하의 사진을 몇 장 촬영해 두었었다. 그들은 그중에서 김정은 당 위원장 얼굴 사진만 현장에서 삭제하라고 했다. 잡지에 실린 사진인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삭제를 하라는 것일까. 이 잡지는 결국 이번 방문에서 가져올 수 있었다. 외부에 반출이 가능한 것임에도 왜 삭제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번에 함께 방북한 일본의 다른 언론사들 가운데는 공항 수하물 검사장에서 가방 검사를 받았고 통일부가 작성한 북한 당 대회와 관련한 자료를 압수당한 기자가 있었다(북한 출국시 다시 돌려받음). 내가 삭제를 명령받은 사진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통일부가 작성한 자료는 기밀자료가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그들은 “남쪽에서 왔다”는 것에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오로지 ‘최고 존엄’에 관한 것은 안 된다고 무조건적으로 반응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남북 분단의 가혹한 현실 때문에 일본의 서울특파원은 이후로도 기본적으로 방북을 허용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들었지만 말이다.
 
 
  미래과학자거리의 불야성(不夜城)
 
건물 전체를 라이트업한 미래과학자거리의 빌딩들. 지난 5월 8일 오후 10시경 양각도국제호텔에서 촬영했다.
  2012년 8~9월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북한을 약 4년 만에 다시 찾은 것이었다. 묘하게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이번 평양에 도착한 날에도 공교롭게 비가 내렸다. 지난번 평양을 찾았을 때는 공항에 ‘보딩브리지(boarding bridge·탑승용 다리)’가 없어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비를 흠뻑 맞고 공항 빌딩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그때의 경험 때문에 나는 가방에 우산을 넣어 두었다.
 
  그러나 공항에 도착하자 ‘터미널2’라고 씌어진 새로 지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비행기는 게이트로 연결됐고, 우산을 쓸 필요가 없었다. 지난해 7월 완공했다는 새로운 터미널은 터미널1이 국내선, 터미널2가 국제선이었다.
 
  이날 우리가 타고 온 항공기는 베이징과 평양 간을 한 번만 왕복하는 항공편이었다. 4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나, 국제선에는 ‘TRANSIT(환승)’이라는 글자도 눈에 띄었다. 공항에는 맥주와 주스를 판매하는 매점, 그리고 커피숍, 면세점 등이 있었다. 화장실에는 센서가 달린 자동 손세척기까지 있어, 시설 면에서 보면 일본의 지방공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타사의 한 기자는 “이곳이 평양공항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라고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평양역 근처에서 발견한 햄버거집. 햄버거를 ‘개선빵’이라고 한 게 재미있다.
간판에는 ‘청량음료, 햄버거, 호트도그, 감자튀기, 와플’ 등이 적혀 있다.
  4년 전과 비교해 외견상 달라진 것들이 여러 가지 있었다. 지난번 방북 때 거의 보이지 않았던 택시가 수없이 거리를 달리고 있었고 택시에는 손님들이 타고 있었다. 작년 10월 완공한 고층 맨션가가 위치하고 있는 ‘미래과학자거리’는 자정까지 휘황찬란한 불들이 건물들을 밝히고 있다. ‘청량음료’라고 간판을 단 매점들이 곳곳에 있었다.
 
  지난번 방북 때 경험했던 정전(停電)도 이번엔 찾아볼 수 없었고, 맨션의 베란다나 공원 등 곳곳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호텔 매점에는 북한산 화장품과 커피가 진열돼 있었고, 북한의 핵실험으로 인한 유엔의 경제제재하에서도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자력갱생’으로 경제발전을 이룩하려는 김정은 정권의 정책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외국 언론을 상대하는 안내원의 변화였다. 그들의 소속은 외무성을 비롯해 대외문화연락협회, 여행사 등 다양했다. 4년 전 안내원은 모두 남성이었으나, 이번에는 총 50명 안팎의 안내원 가운데 약 10명이 여성이었다. 일본을 담당하는 여성 안내원 가운데 한 사람은 평양외국어대학 일본어학과를 졸업하고 외무성에 입성한 2년차 엘리트로 하늘색 원피스에 검정 소형 핸드백을 겨드랑이에 끼는 등 세련된 의상이 눈길을 끌었다. 이동 중인 차량에서 콤팩트를 꺼내 화장을 고친다거나, 휴대전화로 부모와 통화하는 등 일본과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젊은이의 모습이었다.
 
 
  꽃미남 안내원
 
외국 언론을 대응하는 북한 안내원(중앙). 깔끔한 차림에다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외국 기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구미계 언론을 담당한 남성 안내원들은 20~30대 ‘꽃미남’이었다. 유창한 영어로 서양기자들과 마치 오랜 친구처럼 친절하게 접촉했고, 일본 언론을 담당하지도 않았음에도 “일본 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내게 말을 걸어 온 29세의 남성 안내원도 있었다. 그는 외신기자단을 담당하는 ‘DPRK 공보위원회’ 소속이었다.
 
  내가 “왜 일본에 관심을 갖느냐”고 묻자 일찍이 태국에 유학했을 때 일본인 친구를 사귀었고 그래서 일본에 친근감이 있다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는 “일본에서는 어떤 남성이 인기가 있는가”라며 흥미를 갖고 물어보기도 했다.
 
  제7차 노동당 대회는 5월 6~9일에 열렸으나 기자단은 한 번도 제대로 당 대회 취재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기자들이 취재를 할 수 있었던 장소나 숙소인 양각도 국제호텔에서 안내원들이 규제를 한다거나 노골적으로 감시를 하지는 않았다. 전당대회 첫날인 5월 6일 대회장인 ‘4·25 문화회관’ 앞에서 길거리를 오가는 평양시민들에게 말을 걸었으나 안내원이 따라오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안내원들은 우리의 취재가 끝날 때까지 약 2시간 동안 안내원들끼리 수다를 떨거나 담배를 피우면서 기다렸다.
 
북한 안내원이 소유한 북한산 휴대전화. 휴대전화에 내장된 ‘말하는 곱술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은 고양이를 만지면 간지러움을 타고, 사람의 음성을 똑같이 흉내내는 기능이 있어 북한의 젊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한다.
  오히려 그들은 ‘가이드’의 역할에 충실하려는 것 같았고, 연일 오후 10시부터 《조선중앙TV》에서 그날의 당 대회 상황을 전하는 뉴스가 시작되면 자신들의 호텔방에서 1층 프레스센터까지 내려와 기자들에게 동시통역을 해 주거나, 기자가 녹음한 음성파일을 듣고 녹취(錄取)를 해 주기도 했다.
 
  5월 8일 오후 3시 ‘특별 중대 방송’이 시작되자, 방송 시작과 동시에 그날의 《노동신문》을 배포하는 서비스를 할 뿐이었다. 5월 9일 오후, 북한 당국은 BBC 루퍼트 윙필드 헤이스 기자가 김정은에 대해 부적절한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그를 구금하고 추방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기자단에는 긴장감이 감돌았고, 일본인 기자단도 대응을 협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안내원이 이러한 것을 경고하지는 않았다.
 
  정작 안내원들은 당 대회 일정 등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중요한 것들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들은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모른다”라고 몇 번이나 말하는 것을 들었을 정도다.
 
  우리는 평양 체재 중 평양산원에 신설한 ‘유선종양연구소(乳腺腫瘍硏究所)’나 ‘과학기술전당(科學技術殿堂)’ 등 김정은 위원장의 주선으로 정비한 시설을 오전에 1개소, 오후에 1개소 식으로 안내를 받았지만, 안내원들은 하루 일정을 파악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점심을 먹을 시간은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호텔에 도착했는데,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출발합시다”라고 재촉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상부기관이 외국 언론에 어디까지를 공개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당 대회장에 입장시키지 않아
 
지난 5월 8일 오후 3시 양각도국제호텔에서 외신기자들이 조선중앙텔레비전을 통해 ‘특별중대방송’을 듣고 있다.
  대회 3일째인 5월 8일 오전, 일본 언론은 시내 지하철을 견학하는 것으로 알고 출발했다. 그러나 자동차가 향한 곳은 인민문화궁전이었다. 그곳에서도 차량은 인민문화궁전 부지 내 주차장에 서 있거나 빙빙 돌기만 하는 등 명확한 지침이 없이 허둥대는 것 같았다.
 
  차에서 내리자 안내원이 갑자기 “여권을 반드시 소지하고, 카메라 등의 장비는 검사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전부 들고 안에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도대체 무슨 취재가 시작되려는 것일까. 혹시 당 대회장에 입장을 허용하는 것일까. 혹은 여기에서 당 대회의 ‘소위원회’ 같은 것이라도 하는 것일까 등 다양한 추측이 나돌았다. 우리는 문화궁전에 들어가 문 앞에 서서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약 30 분 후, 안내원의 단장 역할을 맡고 있는 한 중년 남성이 갑자기 “취재가 취소됐다”고 통보해 왔다. 내가 “지하철 견학을 가는 것은 아니었나요”라고 다가서자 아니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구미계 언론들은 어딘가 상점 취재를 간다고 연락을 받았던 모양이어서, “store(상점)에 간다고 하지 않았느냐”라는 불만의 목소리도 높았다. 북측 안내원은 무엇을 물어도 이유를 일절 설명하지 않았고 “호텔로 돌아가 식사를 하고 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조선노동당대회가 열린 평양 모란봉 구역의 ‘4·25문화회관’.
북한 당국은 도로의 큰길을 사이에 둔 장소에서만 촬영을 허가했다.
  역시 북한은 ‘벼랑 끝 전술’에 뛰어나다는 사실을 실감한 사건도 있었다. 북측이 당 대회장 취재를 허용하지 않아 기자들의 스트레스가 쌓인 가운데 5월 9일 오후 그것이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공장 취재를 하러 가는 줄로 알았으나, 약 20명의 일부 언론사만을 데리고 당 대회 취재를 떠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날은 당초 오후 집합 시간은 2시 반으로 알려졌으나, 급히 3시 반으로 늦춰졌다. ‘당 대회장 취재조’와 일정이 충돌하지 않도록 시간을 겹치지 않게 했고, 이러한 ‘공작’이 더욱 기자들의 분노를 촉발시켰다. 당 대회장으로 취재를 떠난 일본 언론사는 NHK와 교도통신(共同通信)뿐이었다. 그 밖에 AP 등 약 20여 명이 ‘선발’됐던 것이다. ‘잔류조’는 모두 오후 취재를 보이콧당하고 말았다.
 
  당 대회장 취재조를 인솔했던 안내원이 돌아오는 것에 맞춰 통보를 했다. 오후 7시가 넘어 안내원이 돌아오자 우리는 해명을 요구했다. 그런데 안내원은 오히려 화를 내며 그때까지 계속 일본어로 대화하고 있다가 갑자기 “나 또한 아무것도 몰랐다”고 조선말로 강하게 되받아쳤다. 많은 일본인 기자들이 조선어를 못하기 때문에, 일본인 기자들은 “안내원이 갑작스레 조선말로 하는 것은 교활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 대회장이 협소하기 때문에 제한된 인원만 들어갈 수밖에 없는 사정이라면, 대표 취재하는 형식으로 해 달라고 여러 번 요청했으나, 안내원은 “그 문제는 당신들끼리 결정해서 알려주십시오”라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우리가 “안내원이 결정해 알려주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강하게 요구하자, “나는 판단할 수 없다. 공보위원회에 물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며 그대로 가 버렸다.
 
 
  황갈색 안경 낀 김정은
 
지난 5월 10일 오전 11시11분 김일성광장에서 당 대회 축하퍼레이드가 끝날 무렵 손을 흔들며 퇴장하는 김정은 당 위원장.
  피로로 파김치가 된 그날 밤 새벽 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북한 안내원이 호텔방에서 내게 전화를 걸어 왔다. 그는 “내일 취재 건으로 할 말이 있으니 호텔 로비에 내려와 달라”고 했다. 나는 “샤워를 한 직후였기 때문에 지금은 어렵다”고 하며, “지금 전화상으로 전해 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전화로는 말할 수 없다”고 거절한 후, “그럼 내일 오전 4시부터 5시30분 사이에 아침 식사를 하라”고만 밝혔다. 기자단 사이에서는 5월 10일 오전 당 대회 축하 퍼레이드를 개최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퍼레이드에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다. 김 위원장이 참석하는 행사의 취재라면 짐 검사와 보안을 위해 몇 시간 전에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예측은 적중했고, 이날만은 집합 시간에 딱 맞춰 오전 6시에 호텔을 출발했다. 차가 도착한 곳은 지난 5월 8일 일단 내부까지 들어갔다가 쫓겨났던 인민문화궁전이었다. 이곳은 짐 검사를 위한 장소였던 것이다. 5월 8일도 혹시 당 대회 취재를 허가하려고 사전 짐 검사를 실시할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기자단은 이곳에서 짐 검사 대기를 하다가 오전 9시40분 퍼레이드 장소인 김일성광장에 도착했다.
 
  오전 10시 퍼레이드 시작 전, 최고지도자의 입·퇴장 시에만 흐르는 음악이 대회장에 울려 퍼졌다. 평양에 입성한 지 6일째였다. 드디어 김정은 위원장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황갈색 안경을 쓰고 스트라이프의 인민복을 입은 김정은은 《조선중앙TV》 등 국영미디어에서 늘 보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각 언론사의 카메라는 단상의 김정은에 초점을 맞췄다.
 
  1시간여 동안 김정은이 퍼레이드를 관람하고 인민들에게 손을 흔들었고, 측근 박봉주(朴奉珠) 총리와 최룡해(崔龍海) 당 부위원장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기자단이 포진한 장소에서도 잘 보였다. 퍼레이드 취재를 마친 기자단엔 충족감이 감돌고 있었다. 전날 한 기자는 “이럴 줄 알았으면 두 번 다시 방북 취재에 오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가, “다음의 방북 기회를 위해 더욱 북한을 공부하고 싶다”고 의욕을 불태우기도 했다.
 
 
  탁아소에서 본 은하3호 모형
 
지난 5월 9일 ‘김정숙 평양제사공장’이 병설한 탁아소 뜰에서 어린이들이 ‘은하3호’ 놀이기구를 타고 있다.
  남북대화와 북한과 일본의 대화, 6자회담 등 북한과 관련한 회담은 며칠간 계속되는 것은 물론이고 한밤중이나 새벽녘까지 이어지다가, 막다른 골목에서 합의에 이르는 케이스가 많다. 북한은 대화에서 상대의 애간장을 태우다가 기진맥진하게 만든 다음, 양보하게 하는 전략을 쓴다. 그렇기 때문에 피로에 찌든 교섭 상대로서는 그 정도만으로도 크게 만족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완전히 북한을 단념할 수 없도록 하는 효과도 갖고 있다. 북한은 이번 당 대회 취재에 나선 외신사들에 대한 대응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을 둘러싼 핵 문제는 이번 당 대회를 거치면서 더욱 힘들어졌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이라는 소위 ‘병진노선(竝進路線)’은 지도부만이 주창하고 있는 ‘구두선(口頭禪)’이 아니라, 인민교육의 현장까지 깊숙이 스며 있는 실태를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번 당 대회 취재를 위해 평양에 머무는 동안 나는 북한이 로켓의 평화적 이용이라고 주장하는 ‘은하3호’를 도처에서 목격했다. 당 대회 축하 퍼레이드와 모란봉악단 등에 의한 축하 공연 등 정치적 메시지가 강한 장소는 말할 것도 없고, ‘김정숙 평양제사공장’ 내 탁아소 놀이기구, 어린이들도 이용하는 체험형 학습시설인 ‘과학기술전당’의 중심에 위치한 거대한 모형에도 등장했다.
 
  정기적으로 북한을 방문하고 있다는 한 기자는 “이번 당 대회를 계기로 북한은 핵개발에 대한 번민을 완전히 떨쳐 버리고 당당하게 핵개발에 나서기로 했다는 것을 어필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전에 중국과의 관계를 진전시키려고 할 때는 핵 관련 어필을 자제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북한에 핵은 이미 더 이상 협상의 도구가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5월 8일 평양 체류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면서, 북한에 핵 포기를 요구하는 일은 너무나도 험난한 목표가 될 것이라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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