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화제

사노맹 관련 백태웅 교수, 납북자 문제 발제자로 나선다

글 : 김성동  월간조선 기자  ksdhan@chosun.com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사노맹 사건 구속-사면-도미(渡美) 유학-하와이대 로스쿨 교수로 재직 중
⊙ 2015년 7월부터 유엔 인권이사회 강제실종 실무그룹 위원인 그가 북한 납치 문제에 대해
    할 말은?
⊙ 납북자에 대한 우리 정부 확인 요청에는 일부 응했던 북, 유엔을 통한 요청엔 묵살에
    가까운 반응
  북한 인권법 통과에 따른 전후(戰後) 납북자 문제와 관련한 세미나가 6월 29일 국회에서 열린다. 지난 3월 북한인권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지 11년 만에 통과한 후 열리는 6·25 전쟁 후 발생한 납북자 관련 최초 세미나다. 이 세미나의 주제는 ‘북한인권법 통과 이후 납북자 문제 해결 방향’이다.
 
  (사)전후납북피해자가족연합회(이사장 최성용)와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실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통일부가 후원하는 이 세미나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발제자 두 명 중 한 명이 백태웅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이기 때문이다. 이날 세미나에서 백 교수는 ‘국제 시각에서 본 납북자 문제 해결 방안’을 주제로 발표를 한다.
 
  백 교수는 지난해 7월부터 임기 3년의 유엔 인권이사회 산하 ‘강제·비자발적 실종에 관한 실무그룹(WGEID・유엔 강제실종 실무그룹)’ 위원을 맡고 있다. 이 실무그룹은 전 세계 각 지역을 대표하는 5명의 위원으로 구성됐는데 백 교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대표해 선임됐다.
 
  유엔 강제실종 실무그룹은 유엔 인권이사회가 지정한 55개 인권 주제 중 하나인 ‘강제실종’ 문제를 다루고 있다. 국가에 의한 개인의 비자발적 실종 문제를 조사하고 실종자의 행방과 책임 소재 등을 규명하는 일을 하는 곳이다.
 
  백 교수는 1984년 서울대총학생회장(학도호국단장) 시절 ‘학원 프락치 사건’과 관련 구속돼 1년간 복역한 데 이어 1992년에는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으로 구속돼 15년형을 받고 복역 중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인 1999년에 특별사면을 받아 석방됐다. 1심에서는 검찰이 사형을 구형했으나 재판부는 무기징역형을 선고하기도 했다. 사노맹에서 그의 직책은 중앙위원장이었다.
 
 
  80년대에도 주체사상 비판
 
  특별사면을 받은 후 도미(渡美)한 백 교수는 노트르담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조교수를 거쳐 2011년부터는 하와이대 로스쿨에서 국제인권법을 가르치고 있다.
 
  백 교수는 운동권 시절에도 소위 주사파와 김일성 주체사상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백 교수는 80년대 후반 〈주체사상, 조선노동당, 조선인민공화국에 대한 우리의 태도〉라는 글을 통해 “현재 북한의 ‘김일성 절대화’의 문제점은 심각한 지경이다. 당과 수령에 대한 맹목적 충성을 강조하는 북한의 선전·선동 활동은 사회를 강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적 요소가 전면적으로 침투하기 시작할 때 어이없는 허약성을 불러올 수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백 교수는 지난해 7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에 의한 강제실종 문제를 다룰 생각임을 밝히기도 했다. “북한이 개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실종 문제를 정부와 민간단체 등과 연계해 정보를 요청하고 조사할 계획입니다. 한국전쟁 때 납북된 분들, 일본인 납치 문제 같은 것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인도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북한도 협력을 할 것으로 봅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1월 귀국해 납북자 가족들 만난 백 교수
 
지난해 12월 11일 오후 부산 기장군 국립수산과학원에서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납북자가족모임 회원들이 납북자를 위한 위령제를 열고 있다.
  백 교수는 지난 1월 7일 오전 서울시 서대문에 있는 북한인권시민연합 사무실에서 1969년 대한항공 납치 사건 때 납북된 후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납북자 가족과 1970년 조업 중 납북됐다가 2000년에 북을 탈출해 귀환한 이재근씨 등 납북자 가족들과 만나 강제실종 문제와 관련한 간담회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점심 식사를 겸한 이날 간담회에서 백 교수는 “강제실종 문제는 단지 한 사람이 어디에 있는 것인가를 찾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이 문제 자체를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그에 맞는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하는 문제로 취급해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고 한다.
 
  백 교수는 또 “강제실종 문제는 유엔인권위의 다른 실무그룹인 자의적 구금 분야, 과거사 청산 그룹 등과도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풀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WGEID 내에서 이와 같은 문제를 논의해 보겠다”는 약속과 함께 “강제실종 문제는 북한이 답변을 피할 수 있으면 피하려고 하는 문제인 만큼 사건에 대한 사안을 정확히 밝히고 한 단계씩 점진적으로 풀어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입장도 개진했다고 한다. 6월 29일 전후 납북자 관련 세미나에서도 백 교수는 이 같은 입장을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은 이날 백 교수와 만난 납북자 가족들을 포함해서 6·25 전쟁 이후 납북된 가족들의 생사확인 요청 작업을 벌여 왔다. 이 단체가 납북된 가족들의 생사확인을 요청한 단체가 유엔 강제실종 실무그룹이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은 2004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유엔 강제실종 실무그룹을 통해 54명의 납북자 생사확인과 사건 조사를 북한에 요청했다. 유엔 강제실종 실무그룹은 이 가운데 29명의 생사확인을 북측에 요청했는데 북한은 이 중 27명에 대한 답변서를 보내 왔다.
 
  북한이 보낸 답변서 내용은 모두 동일했다. 납북 사실 자체에 대한 부정은 물론이고 “강제적·비자발적 실종은 모두 북한에 적대적인 세력이 공화국을 음해하기 위해 허위로 꾸며 낸 악의적인 정치적 음모”라는 주장이었다. 북한이 이들 납북자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이 유엔 강제실종 실무그룹을 통해 북한에 생사확인과 사건 조사를 요청한 1969년 대한항공 납치 사건으로 납북당한 당시 영동 MBC(현 강릉 MBC) PD 황원씨와 풍북호 선주로 1967년 6월 서해 연평도 부근에서 조기잡이를 하던 중 다른 선원 7명과 함께 북한 경비정에 납치된 후 귀환하지 못한 최원모씨 등 27인에 대한 북한 측의 답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북한 내에는 강제적 혹은 비자발적으로 실종되거나 감금된 사람이 하나도 없으므로 유엔 강제실종 실무그룹이 북한 당국에게 보낸 편지에 포함된 케이스들은 강제실종 케이스가 아니다.
 
  - 유엔 강제실종 실무그룹이 북한당국에 보낸 케이스들은 북한정부에 적대적인 날조된 계략이므로 유엔 강제실종 실무그룹의 고귀한 인도주의적인 임무와 무관한 일이다.
 
  - 유엔 강제실종 실무그룹의 편지에 포함된 모든 케이스에서 주장하는 북한에 대한 거짓된 주장은 반북적인 극악무도한 정치적인 모략이므로 고려할 가치조차도 없다.
 
  - 북한에 대한 거짓된 주장이 반북적인 북한 인권에 대한 모함 중의 일환이며 자칭 탈북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북한을 중상 모략함으로써 돈을 벌려고 꾸며낸 거짓된 정보에 의거한 것이다.
 
  - 북한정부는 유엔 강제실종 실무그룹이 이러한 거짓 정보를 꾸며낸 사람들을 조사하고 법의 심판을 받게 하여 엄중한 처벌을 받게 하기를 요구한다.
 
  - 비정치적이며 객관적이고 공적인 기관인 유엔 강제실종 실무그룹이 북한정부에 적대적인 집단에 의하여 조작된 유엔 강제실종 실무그룹의 편지에 포함된 허위 주장들의 진정한 동기에 관심을 가지고 공정하고 비판적인 입장을 취할 것을 요구한다.〉
 
 
  이산가족 상봉 시 北이 납북자 생사 확인해 준 이유
 
2013년 8월 23일 연세대 새천년홀에서 열린 유엔 북한인권조사위(CIO) 공청회에서 최성용 이사장(가운데)이 CIO 위원들에게 북한의 납북자 문제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 있다.
  유엔 강제실종 실무그룹의 생사 확인 요청에도 납북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던 북한은 지난해 이산가족 상봉 당시에는 납북자의 생사 확인에 응해 주는 일이 있었다.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을 할 때마다 국군포로와 납북자들을 상봉 희망자 명단에 포함시켜 북한에 생사 확인을 요청해 왔다. 북한은 이에 대해 생존, 사망, 생사 확인 불가 등으로 답변해 왔다.
 
  지난해 10월 열린 20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 때도 정부는 북측에 국군포로와 납북자 가족 50명을 상봉 희망자에 넣어 생사 확인을 요청했다. 북한은 이 가운데 납북자 7명에 대해 생사 확인을 해 주었다. 통일부도 지난해 말 작성한 ‘2015년 주요 업무 추진 내용’에서 ‘납북자 생사 확인 7건은 최초’라며 통일부의 주요한 성과로 기록하고 있다.
 
  문제는 이 7명 가운데 3명은 유엔 강제실종 실무그룹이 북측에 생사 확인 요청을 했으나 납북 사실 자체를 부인했던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납북 어부인 김달영, 남정렬, 남무수씨가 그들이다. 김달영씨의 경우 유엔 강제실종 실무그룹은 2013년 12월 5일, 2014년 10월 10일 등 4차례에 걸쳐 생사 확인을 요청했고, 남정렬씨는 3차례, 남무수씨도 4차례 생사 확인을 요청했다.
 
  이들에 대한 답변도 황원씨나 최원모씨에 대한 답변과 대동소이했다. 역시 생사 확인 요청을 거부한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이산가족 상봉 시 북한이 보낸 답변서에는 김달영씨에 대해서는 ‘2000년 9월 4일 사망’, 남정렬씨에 대해서는 ‘2005년 1월 28일 사망’, 남무수씨에 대해서는 ‘2008년 8월 9일 사망’이라는 답변서를 보내 주었다. 북한이 유엔 강제실종 실무그룹을 보는 시각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전후납북피해자가족연합회 최성용 이사장은 북한의 이 같은 태도에 대해 “북한이 유엔 강제실종 실무그룹의 요청은 무시하면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와 관련해서 생사 확인을 해 주는 것은 경제적인 지원을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면서 “우리 납북자 가족들의 바람은 송환이 어렵다면 북한이 최소한 생사 확인만이라도 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이사장은 또 “북한은 정작 자신들은 유엔에 지난 4월 중국 내 북한 식당에서 일하다가 탈북한 13명의 종업원 송환을 도와 달라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면서 “그 이전에 유엔의 납북자 행방과 생사 확인 요구에 응하는 것이 우선이고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내 북한 식당을 탈출한 후 국내에 들어온 13명 중 여종업원 12명의 부모들은 지난 4월 18일 유엔 인권이사회 의장 등 앞으로 자식들이 부모들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들은 서한에서 종업원 13명의 집단 탈북 사건에 대해 “남조선 정보 당국에 의한 집단 유괴와 납치”로 규정하면서 “우리 딸들은 조국의 품에서 태어나 성장한 행복한 아이들로 남부러울 것이 없다. 인권과 인도주의를 보호하는 사명을 띤 유엔 인권 당국이 딸들이 조속히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호소한다”고 주장했다.
 
  6월 29일 열릴 세미나에서 백태웅 교수가 이런 남북 간에 얽힌 문제들을 국제적인 시각에서 어떻게 바라보게 될지 궁금하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105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정기구독 이벤트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