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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입수

北 노동당 39호실 소속 대성무역 사진 13장이 뜻하는 것은

남북, 지금도 중국 통해 거래하고 있다!

글 : 이정현  월간조선 기자  johh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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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 공장에 널려 있는 한국산 원자재들
⊙ 당 39호실과 대성무역 커넥션의 실체
⊙ 北 60차례 왕래 대북사업가, 관련 서류 공개
⊙ 北, “남측과의 거래 자존심 상한다”
⊙ 통일부, “수사권이 없다”
  북한의 조선노동당 39호실 소속 대성총국에서 운영 중인 조선대성무역총회사(이하 대성무역) 평양 공장 사진 13장을 《월간조선》이 단독입수했다.
 
  13장의 사진은 10여 년 동안 60여 차례 북한을 왕래한 대북사업가 A씨가 제공했다. 그는 사진과 더불어 자신이 보유 중이던 대성무역 관련 서류 일체를 공개했다.
 
  사진은 2014년 2월 10일 촬영한 것이다. 인화는 북한 ‘동문사진관’에서 했다. 사진의 화질은 선명하지 않다. 그러나 ▲‘평양 92-1346’ 번호판 ▲‘형타관리를 주인답게!’ 등의 북한식 표어 ▲북한 동문사진관 사진 접수증 ▲북한 평양 사진관 목록과 전화번호 등을 볼 때 북한에서 촬영·인화한 사진임은 분명하다.
 
  노동당 39호실이 운영하는 대성무역은 대북사업가, 탈북자들의 증언을 통해 북한 통치자금 조성의 핵심 사업체로 알려져 왔다. 그 실체를 사진으로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성무역 현장 사진에서 특히 주목하는 부분은 곳곳에 널려 있는 한국산 원자재(原資材)들이다. 사진 판독 결과, 포장지에 한국 회사의 이름과 연락처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간 북한산 공산품이 중국산으로 위장돼 한국으로 수입된다는 ‘우회 반입’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다. 구체적인 증거가 공개된 적은 없다. 해당 사진은 이러한 우회 반입 실태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 자료이다.
 
  천안함 폭침 직후 2010년 5월 이명박 정부는 5·24조치를 발표했다. 정부의 5·24조치는 ▲남북간 일반교역 및 위탁가공 교역을 위한 모든 물품의 반출·반입 금지 ▲북한 선박의 우리 해역 운항 전면 금지 ▲대북 신규투자 불허 및 진행 중인 사업의 투자 확대 금지 ▲우리 국민의 방북 금지 등 포괄적인 대북 제재 조치를 포함한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권 시절 한국에서 원자재를 북한에 보내, 북의 값싼 임금을 이용해 가공한 뒤 한국으로 되가져오는 임가공 사업은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오히려 권장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러나 2010년 이후, 개성공단을 제외하고 북한에 원자재를 보내 가공 후 한국에 되가져오는 임가공무역은 금지됐다. 특히 북한의 핵 실험이 계속되면서 자금 모금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당 39호실 산하 기관과 거래하는 것은 더욱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 이번 공개 사진은 5·24조치가 과연 제대로 시행 중인지 여러 면에서 의문을 가지게 한다.
 
 
  당 39호실 소속 대성무역의 실체
 
‘형타관리를 주인답게!’ 표어.
  대성무역은 핵무기 개발 경비 등 소위 혁명자금을 관리하는 당 39호실이운영하는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북의 혁명자금 조성에 관여했던 탈북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제1~10 무역회사→ 조선대성무역총회사→ 대성총국→ 대성은행→ 당 39호실 순으로 자금이 이동한다.(〈표〉 노동당 39호실 소속기관 및 외화자금 흐름도 참조)
 
  대성무역은 대성총국의 자회사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대성총국은 원래 무역성의 작은 부서에 불과했으나,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우상화 대상 건설에 필요한 물자, 선물, 1호 제품 구입(김일성 일가가 소비하는 물품)을 맡아 수행하면서 규모가 커졌다. 대성총국은 당 39호실 밑으로 편입되면서 규모가 급격히 확대되었다.
 
  무역성에서 자금을 관리하던 대성은행 역시 39호실 산하로 편입됐다. 그 결과 39호실이라는 당 지도부서와 대성총국이라는 생산·무역기관이 합쳐지고, 나아가 대성은행이라는 대외결제은행까지 합쳐졌다.
 
  이 연합체는 국가계획화의 범위를 벗어나 오직 당의 직접적인 통제와 관리를 받아왔고, 벌어들이는 외화는 김정은의 통치자금이 되었다. 김정일은 당의 경제라는 것을 국가경제로부터 분리시켜 개인소유화(化)했다. 당 경제에는 가장 수익성이 많은 기업소들이 망라되어 있으며 특히 외화벌이에 유리한 기업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기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국제법 박사).
  5·24조치와 북한 대성무역 커넥션과 관련해, 이기범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의 설명은 이렇다.
 
  —‘대성총국’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북한 노동당 제39호실의 핵심적인 기관으로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대기업 같은 개념이며, 광업, 섬유, 수산업, 수입, 중개무역 등 다양한 업종의 회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북한 핵개발과의 연관성은 어떻게 되나요.
 
  “대성총국은 외화를 벌기 때문에 이 외화가 북한 핵개발 자금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추측 가능합니다.”
 
  —‘대성총국’ 관련 유엔(UN) 제재 내용은 무엇인가요.
 
  “이번 안보리 결의 2270에 의하면 39호실은 ‘자산동결’이라는 제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안보리 결의는 39호실만 제재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대성총국’이 제재를 받았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안보리 결의 2270을 이행하는 UN 조직이라 할 수 있는 ‘결의 1718 제재위원회’가 제39호실과 대성총국은 동일하다고 결정한다면 대성총국도 이번에 제재를 받았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대성총국’ 관련해 5·24 조치 제재 내용은 무엇인가요.
 
  “대성총국 소속 선박은 우리 해역에서 운항할 수 없으며, 한국 기업과 거래할 수 없습니다.”
 
  상황이 이렇기에, 한국 기업이 당 39호실 소속으로 알려진 대성무역과 거래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한국산 원자재가 북한 대성공장에 널려 있는 사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A씨의 설명과 공개된 자료를 바탕으로 의문을 하나씩 풀어 나갔다.
 

 
  대북사업가 A씨와 대성무역은 어떤 관계인가?
 
  우선 사진의 내용을 분석하기에 앞서, A씨 신분 확인이 필요했다. 특히 대성무역과 접촉하게 된 경위, 나아가 합법적으로 대성무역과 접촉했는지 확인해야 했다.
 
  대북사업가 A씨에게 대성무역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물었다.
 
 
  A씨, “2004년 통일부 신고하고 거래”
 
  —대성무역에 대해 아시나요.
 
  “제가 거래하던 회사예요.”
 
  —당 39호실 관련 기업과 거래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저는 2004년도에 거래했어요. 당시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2004년에 저희 회사가 통일부에 보고했어요. 자료가 있습니다.”
 
  통일부 신고 서류의 내용은 이러했다.
 
  북한회사 소개서
 
  회사명 : 조선대성9무역회사
 
  상부 소속기관 또는 회사 : 조선대성총회사
 
  소재지(주소) : 평양시 보통강구역 붉은거리 1동
 
  전화 : 8○○-2-1○○○○(교환:사무실 82○○ 공장○○62) FAX : 3○○-○○31,44○○
 
  총사장(나이, 성명) 성명 : ○○○ 나이 : ○○세
 
  직원(성명, 직책 등) : ○○○ 과장(○○세), ○○○ 부원(○○세), ○○○ 부원(○○세)
 
  취급품목 : 컴퓨터 등 각종 전자 및 전기 일용품의 생산, 조립 및 수출업/각종 와이야하네스(Wire Harness) 제작 및 수출입(임가공 포함)
 
  회사와의 관계(거래동기, 접촉경위 등) : 회사 대표이사와 주주(모두 재외동포)들이 회사 설립 전(2003년 5월경)부터 대북사업을 모색하던 중, 일본의 주식회사 ○○○○○(대표 ○○○)가 평양에 (실질적으로)운영하는 본 소개서의 회사 와이야하네스 공장과 그간의 운영실적을 확인, 남한의 전자부품 위탁가공 사업이 가능하겠다는 판단을 하게 됨에 따라 2004년 3월말 한국에 회사를 설립하고 본 소개서의 회사와 구체적인 관계 설정을 추진하게 되었음.
 
  A씨는 자신의 거래는 통일부에 보고하고, 승인까지 받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만 2010년부터 5·24조치로 대성무역과의 거래가 금지되었다는 점을 A씨도 인정했다. 그는 자신의 거래는 2004년부터 2005년 초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2004년 6월 29일 조선대성9무역회사와 체결한 합의서 역시 공개했다.
 
  북한과의 거래 관행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측면에서, 전문을 공개한다.
 
  합의서
 
  ○○○○ (이하 《가》측)과 조선대성9무역회사(이하 《나》측)는 평등과 호혜, 쌍방의 리익을 도모하는 원칙에서 와이야하네스를 포함한 각종 전자부품 위수탁가공거래에 관해 서로 협력하기로 협의하고 세밀한 거래계약단계에 이르기 위해 다음과 같은 원칙에 합의하였다.
 
  1. 《가》측은 부품가공에 소요되는 설비와 원자재 일체를 공급하고 《나》측은 자기의 로력으로 주문받은 부품을 가공한다. 이때 《가》측이 요청한 부품을 가공하는데 필요한 기계장치중 《나》측에 없는 것은 《가》측이 제공한다.
 
  2. 《나》측은 쌍방이 합의한 가공품의 품질과 납기를 준수한다.
 
  3. 《나》측은 《가》측의 가공주문이 늘어남에 따라 필요한 가공능력을 적기에 확보하여야 하며 이를 위해 숙련된 로력을 지속적으로 양성하기로 한다. 이때 새로운 로력양성에 소요되는 로임은 《가》측이 제공한다.
 
  4. 쌍방은 본계약 이전이라도 가공공정과 기술적문제 검토 등을 위해 무상으로 견본제작을 진행하기로 한다.
 
  쌍방은 우에 지적한 원칙에 따라 구체적인 내용들을 긴밀히 협의하여 가능한 한 빠른 시일안에 위수탁가공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쌍방이 최대한 경제적 효과성을 내도록 합의한다.
 
  ○○○○○을 위하여
 
  조선대성9무역회사를 대표하여
 
  2004년 6월 29일
 
  합의서 작성에 이어, 2004년 8월 23일 정식 계약이 체결됐다. 확인한 결과 정식 계약서는 대체로 합의서의 내용을 구체화하는 내용이었다.
 
  계약성사 이후 정상적으로 사업을 하다 2005년 대성공장과의 거래가 끊어졌다는 것이 A씨의 주장이다. 다만 A씨는 대북사업을 그 이후로도 계속해 왔다고 한다. 그는 북한에서 전선 임가공업, 광산개발 등의 사업을 꾸준히 펼쳐 오고 있다.
 
▒ 사진 입수 과정
 
  2014년 12월 과거 북한 고위층과 접촉한 경험이 있는 명망가(名望家) B씨와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그는 기자에게 자신의 방북 계획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대북사업가 A씨를 소개받았다. B씨를 통해 A씨를 소개받은 직후 다양한 방식으로 A씨와 접촉하려 노력했다. A씨는 한국 국적이 아니며 한국을 가끔 방문했다. A씨와 국제전화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자연스럽게 그의 한국 방문에 맞춰 만남이 이뤄졌다.
 
  2015년 2월 A씨는 서울 광화문 인근 식당에서 기자에게 39호실 소속 대성총국에서 운영 중인 평양 대성무역의 실체에 대해 증언했다. 그의 설명은 이러했다.
 
  “유엔(UN)제재, 5·24조치 등 대북제재가 있다고 하는데, 모두 허울뿐이죠. 아직도 한국에서 재료를 가져가, 평양공장에서 완제품을 만들어 한국에 되파는 임가공(賃加工) 사업이 진행 중이에요. 가공해서 중국산으로 위장해 한국에 들여오고 있어요. 결국 한국 돈이 북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는 것이죠. 대성무역에서도 한국 수출용 임가공이 이뤄지고 있어요.”
 
  그의 설명을 듣고, ‘과연 사실일까’,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에게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해 보라고 요구했다. 망설이던 그는 시간이 지나면 공개하겠다고 답했다.
 
  대북사업가 A씨는 일찍이 해외로 이민한 교포로 10년 넘게 북한을 60여 차례 오가며 대북사업을 해 왔다. 지금도 북한에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여러 나라를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A씨와 기자는 1년 가까이 수차례 국제전화를 통해 대북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그때마다 그는 “증거가 있다”고 말했다. 그럴 때면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만일 공개할 경우 《월간조선》을 통해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다 2016년 2월초 북한의 핵실험으로 대북관계의 패러다임이 변하게 되자, 기자는 A씨에게 “자료가 있으면 지금 공개해야 한다”고 수차례 설득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2월말 A씨로부터 13장의 사진을 넘겨받았다.
 
  대북사업가 A씨는 어떻게 최근 사진을 입수했나?
 
  이로써 A씨와 대성무역과의 관계는 어느 정도 입증이 됐다. 그러나 사업관계는 10년이 넘은 2004년의 일이다. 어떻게 A씨는 최근의 사진을 입수할 수 있었을까.
 
  이미 계약이 끝난 2014년 대성무역 공장 사진을 A씨가 어떻게 입수할 수 있었을까. 북한에서는 외국인이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없다. 또 외국인의 사진촬영은 엄격하게 금지된다. 사진 입수과정 확인은 사진의 진위(眞僞)를 파악하기 위해서도 필요했다.
 
  A씨는 자신이 사진을 입수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北 대성무역, “자존심 상했다”
 
  —대성무역 측과 어떻게 다시 연락이 되었나요.
 
  “2014년 상반기 북한에서 광산 개발 사업을 추진 중에 있었어요. 그러던 중 대성무역 측에서 만나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대성무역 ○○○을 만났어요. 저한테 이렇게 이야기하더군요. ‘자존심 상합니다. 현재 남북 관계가 좋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강압적으로 남측의 ○○기업과 거래를 하고 있는데 연 30만불의 임가공비를 받고 있다’는 것이죠. 한국 회사가 중국공장을 통해서, 평양에서 생산한 것을 중국에서 생산한 것으로 위장해서 팔고 있다고 이야기를 하더군요. 제가 생각해도 단가(單價)가 작기는 했어요. 자존심 상할 정도로 액수가 적으니, 과거처럼 저와 거래하고 싶다는 것이었죠.”
 
  —사진은 어떻게 입수하셨나요.
 
  “처음에는 놀랍더군요. 5·24조치로 남측과 대성무역 사이의 거래는 중지된 것으로 알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대성무역 측에 사진을 가져와 보라고 요구했어요. 정말 남측과 거래를 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어야 한국에서 영업을 하든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서 대성공장 측이 사진을 찍어서 저한테 가져다준 것이죠.”
 
 
  13장의 사진은 남북거래의 증거인가?
 
  이로써 13장의 사진의 입수배경에 대한 취재가 마무리되자, 과연 사진이 남북거래의 증거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한국기업 전화번호 확인
 
한국산 원자재임을 증명하는 현품표.
  우선 사진들이 담겨 있는 사진 봉투를 보면 북한 ‘동문사진관’이란 곳이 인화(印畫)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각각의 사진에는 촬영 일시가 찍혀 있었는데, 2014년 2월 10일이었다. 비록 사진의 화질은 좋지 않았으나 확대해서 자세히 보니 ‘평양 92-1346’ 번호판, ‘형타관리를 주인답게!’ 등의 북한식 표어 등은 명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해당 사진이 5·24조치 위반의 증거 가 될 수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사진을 집중 분석하던 중 대성무역에 쌓여 있는 자재(資材) 가운데, 한국 기업에서 생산한 것임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자재를 확인했다. 원자재에 붙여진 ‘현품표’가 선명했기 때문이다. (위의 사진 참조)
 
  국내 기업의 전화번호도 적혀있었다. ‘현품표’에 생산 회사로 적힌, (주) ○○ (062)94○-○○○○로 전화를 걸자,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이렇게 문의했다.
 
  —위치가 어디인 공장인가요.
 
  “광주시 ○○구 ○○공단에 있어요.”
 
  —생산하는 품목은 무엇인가요.
 
  “전선에 쓰이는 스폰지를 생산하죠.”
 
  스폰지를 생산하는 ㈜○○뿐만 아니라, 사진에는 Y로 시작하는 기업의 로고를 포함해 다양한 기업들의 자재가 쌓여 있었다. 해당 자재들에 대한 A씨의 설명은 이렇다.
 
  —어떤 자재들인가요.
 
  “전선 임가공의 경우, 손이 많이 들어요. 그래서 임가공을 하는 것이죠. 한국에서 자재를 받아서 다양한 목적의 전선을 만듭니다. 예를 들어 냉장고에 들어가는 전선들을 생각해 보아요. 종류, 크기가 엄청나게 다양하게 많아요.”
 
  —공장 설비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이죠.
 
  “제가 들여보낸 설비도 있을 거예요. 설비와 자재를 북에 보내면, 지시대로 만드는 것이죠.”
 
  —사진은 남북 임가공 무역의 증거가 되나요.
 
  “그럼 누가 (한국산 원자재를 북한에) 보내나요. 전선 임가공은 완제품이 아니에요. 주문대로 만들어서 (다시 한국에 보내) 전자제품에 집어넣는 것이죠. 가공해서 한국에 가져와 필요한 곳에 쓰는 것이죠.”
 
 
  왜 사진을 공개했나?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A씨는 왜 사진을 공개했느냐는 ‘폭로 목적’이 의문으로 남는다. 단순히 공익(公益)을 위해 공개했다고 설명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그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사진을 공개하게 된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정부에 관련 내용을 제보하는 과정에서 당한 경험을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정부의 답답한 대응에 크게 분개했다.
 
 
  한국 정부에 제보 결심
 
전선 가공을 위한 원자재와 기계들.
  A씨는 사진을 확보한 이후,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와서, 북한에 남측의 물자를 가져가 가공하는 임가공업이 가능한지 확인했다. A씨는 한국에 돌아와 여러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북한과의 무역을 추진하셨나요.
 
  “한국에 돌아와 보니, 5·24조치로 인해 북한과 거래하는 것은 역시 어려웠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고, 대성무역 측에는 임가공 사업이 불가능하다고 통보했습니다. 다만 여러 가지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어떤 고민입니까.
 
  “대성총국 산하 공장이 남측과 지금도 계속 거래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죠. 나중에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어요. 한국 정부에 관련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대북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외국 국적자로서, 합법적으로 사업을 하고 있어요. 그러나 대성무역과의 교역은 명백히 불법이거든요. 모른 척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5·24조치 위반 사실에 대해 알려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오랜 기간 해외에 있어서 한국 사정을 잘 몰라요.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해서요. 그러다 ‘국민신문고’라는 제도를 알게 되었죠. 인터넷을 통해 정부 관계 기관에 민원을 넣는다고 하더라고요. 인터넷으로 처리할 수 있으니 간편하고, 비밀도 보장된다고 해서 ‘국민신문고’를 통해 북한 대성무역이 남측과 계속 거래하고 있다고 알렸어요.”
 
 
  통일부 전화 확인 한 번 없어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국민신문고(www.epeople.go.kr)는 국민들이 온라인을 통해 여러 민원을 제기하면 담당 부서로 민원을 이동시켜, 국민들의 어려움을 쉽고 빠르게 해결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공무원의 비리 사실을 알게 될 때 인터넷을 통해 고발·신고하면 자동적으로 담당 부서로 민원이 전달되어 7일에서 14일 안에 처리결과를 알려줘야 한다.
 
  2014년 8월 22일 A씨는 국민신문고에 이러한 내용을 적었다.
 
  〈본인은 ○○○입니다. (중략) 천안함 피폭사건 이후 취해진 5·24조치 이후에 중국 단동시에 있는 중국공장(대표 ○○○: 조선족)을 통하여 북한 평양에서 임가공을 하여 연간 수십만 불의 임가공비를 북한에 비밀리에 전달하면서도, 한국 당국에는 마치 중국 공장에서 임가공한 것처럼 지금까지 속여 오고 있습니다. (후략)〉
 
  A씨는 고발 이후 걱정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고발 이후에 어떻게 처리되었나요.
 
  “아마도 통일부나 수사기관에서 연락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연락이 왔나요.
 
  “그게 아직까지도 이상해요. 오라는 이야기는커녕, 전화 한 번 오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9월 4일 이메일로 답장이 왔어요.”
 
  A씨는 통일부 교류협력과 남북경협과에서 보내 온 민원 회신 답변 내용을 공개했다. 결론은 한 줄이었다.
 
  〈선생님이 제기하신 민원은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근거자료가 없기 때문에 확인이 어렵다는 말씀을 드리오니, 이 점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문의하신 내용에 대한 적절한 답변이 되기를 기대하며, 미흡한 점이나 추가 설명이 필요하시면 통일부 남북경협과(이○○ 사무관 02-2100-○○○○)로 연락 주시면 성실히 답변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통일부, “수사권이 없다”
 
전선 임가공 부품들. 한국업체 회사로고는 비공개 처리했다(원형표시 부분).
  A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답변을 받아 보니, 어땠나요.
 
  “황당하더라고요. 제가 국민신문고에 저의 연락처를 남겼거든요. 저한테 한 번 연락해서 물어보지도 않고, 근거자료가 없다고 결론을 내리니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연락처도 있고 해서 통일부 남북 경협과 이○○ 사무관에게 전화했어요.”
 
  —통일부의 답변은 무엇인가요.
 
  “사실이면, 국가보안법 위반까지 적용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통일부는 수사권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 증거자료를 넘기지 그랬어요.
 
  “왜 그래야 합니까. 그쪽에서 물어보지도 않는데…. 관심 없다는데, 제가 먼저 나설 이유는 없는 거죠.”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나요.
 
  “통일부뿐만 아니라, 검찰에도 저의 민원 내용이 자동으로 넘어가더라고요. 부산지방검찰청으로 저의 진정 민원이 넘어갔다는 이메일 서신이 왔죠.”
 
  —사건은 어떻게 처리되었나요.
 
  “서류가 하나 왔어요. 혐의가 없어 종결되었다고 간략하게 적혀 있었죠. 북한에 혐의가 없다는 것인지, 제게 혐의가 없다는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더라고요.”
 
 
  통일부, “원산지법 위반은 관세청 소관”
 
  그렇다면 통일부의 입장은 무엇일까. 해당 사안에 대해 문의한 결과, 통일부의 입장은 이러하다.
 
  “북한산 물품을 제3국을 통해 우회반입할 경우, 통일부에 관련 사실을 신고하지 않습니다. 신고를 한다면, 대외무역법에 따라 관세청에 신고할 것입니다. 이를 위반할 경우 원산지법 위반입니다. 저희가 대외무역에 대한 조사권을 가진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경우까지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유관기관에서 협조요청이 오면, 협조하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나름 정부에 의미 있는 제보를 하려고 했던 A씨의 노력은 헛수고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자신이 무시당했다는 데 크게 감정이 상한 것으로 보였다. 가장 억울하게 생각하는 것이 ‘전화 한 번 오지 않았다’는 부분에서다.
 
  기자는 취재를 위해 주로 야간을 이용해 수십 차례 국제전화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A씨는 이번 보도를 통해, 자신이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고 싶어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적대국이지만 통일의 동반자인 북한의 이중성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확실한 것은 이러한 북한에 대응하는 우리의 행정시스템에 큰 구멍이 뚫려 있다는 사실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확인하고 해결하려는 공직자가 없다는 사실이 가장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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