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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

해외의 북한 노동자들

“제일 힘든 거는 노임 못 받는 것” (몽골의 북한 노동자)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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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러시아·중동·아프리카 등에 5만~6만명 나가 있어
⊙ 당원으로 평양 출신 많아… 호위총국, 특수부대, 연락소(대남공작부대), 잠수함부대,
    항공부대 출신들 제외
⊙ 북한 노동자들, 폴란드 노동자들의 절반 수준 임금 받으면서 번 돈의 90% 빼앗겨
⊙ 그단스크에서 북한 노동자 숙소 들어가자 10여 명이 몽둥이 들고 몰려나와
폴란드 건설공사장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 하루 12시간씩 일하면서 임금을 착취당하고 있다.
사진=북한인권정보센터
  새해 첫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한 남성이 분신(焚身)자살을 했다. 주택건설 공사장에서 일하던 40대 노동자였다. 그는 “고된 일상에 지쳤다. 내가 죽는 것과 관련해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북한인권정보센터(소장 윤여상)에 의하면 북한은 20여 개 국가에 5만~6만명의 노동자들을 송출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과 러시아가 각각 2만여 명으로 가장 많이 나가 있다. 그 밖에 쿠웨이트(4000~5000여 명)·UAE(2000여 명)·카타르(1800여 명)·오만(300여 명) 등 중동(中東)국가, 말레이시아(400여 명)·몽골(2000여 명)·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 알제리·리비아·나이지리아·에티오피아·앙골라·적도기니 등 아프리카 국가들에도 북한 노동자들이 나가 있다. 몰타·폴란드 등 유럽 국가에도 소수의 북한 노동자들이 있다. 건설노동자, 벌목공, 광부, 어부, 농장노동자, 식당 종업원 등 단순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지만, 의사, 태권도 사범, 군사교관, 미술가, 화가, 조각가들도 있다.
 
  작년 11월 폴란드의 북한 노동자 실태를 조사하고 돌아온 윤여상(尹汝常·50)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을 만나 해외 북한 노동자 실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건설노동자 중에는 현역 공병도
 
  윤여상 소장은 “해외 파견 노동자들은 대개의 경우 자신의 희망에 의해 나가지만, 관리자급이나 의사 등 전문가, 국가안전보위부 파견자 등의 경우에는 해당 기관에서 대상자를 선발한 후 당사자의 동의를 얻어 내보낸다”고 말했다.
 
  군(軍)복무 중 공병국(工兵局) 같은 해당 기관에서 소속 부대원들을 일방적으로 해외 건설인력으로 파견을 결정하는 바람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2009년부터 몽골에 건설인력을 송출하고 있는 북한의 남강건설은 이런 식으로 북한군에서 경영하는 회사다. 윤 소장은 “이렇게 군인 신분을 유지한 채 해외에 노동인력으로 나오는 경우는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노동일 뿐 아니라, 북한 통치계층을 위한 외화벌이 목적인 것이 분명하므로 북핵(北核) 관련 유엔의 경제제재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외국으로 나가고 싶다고 아무나 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공개적인 모집 절차가 없다. 임업성, 무역성, 혹은 노동당이나 군부 인력송출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비공개적으로 진행한다. 윤여상 소장은 “소수(少數)의 해당 분야 종사자와 이에 참여하는 기관의 담당자들이 개인적인 연줄을 통해 선정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상자를 선정하면 문건료해(서류심사)를 진행한다. 이때 그의 신원을 보증하는 보증인이 있어야 한다. 초급당 담화(면접·약 3차례)-파견 기관 담화-상급당 담화-실기 시험 및 신체검사-중앙당 문건 검토(서류심사)가 이어진다. 중앙당 문건 검토만 해도 담당 지도원-과장-부(副)부장-간부부(幹部部) 부부장 등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결격사유가 있는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뇌물을 쓰기도 한다.
 
 
  좋은 곳으로 나가려 뇌물 쓰기도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
사진=서경리 월간조선 기자
  북한 주민들을 옥죄는 ‘출신성분’이라는 굴레는 이 경우에도 어김없이 작동한다. 기본적으로 노동당원이어야 해외로 나갈 수 있다. 가족이나 친척들 가운데 남한에 친척이 있는 사람, 조부모 세대에서 6·25전쟁 시기 국군이나 미군에게 협력했던 사람, 종파분자 등 정치범이나 범법자 등이 있으면 나갈 수 없다.
 
  출신성분이 좋은 축에 속해도 해외에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호위총국, 특수부대, 연락소(대남공작부대), 잠수함부대, 항공부대 출신들이나 중앙당에 친척이 있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한국이나 다른 나라로 탈출할 경우 기밀이 누설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윤 소장은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들은 기본적으로는 성분이 좋은 사람, 특히 평양 출신자들이 많다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탈북자는 북한에서 변방인 양강도나 함경북도 출신입니다. 그들이 북한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반면에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들은 많은 경우 평양 출신으로 북한에서는 중산층 이상에 해당하는 사람들입니다. 또 그들처럼 해외에 나갈 수 있을 정도면, 그들에게는 가족, 친척 중에 ‘빽’이 되어 줄 만한 사람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이들이 북한(평양)으로 돌아가서 주위 사람들에게 ‘외국이 이렇더라’고 얘기하면 그 파급효과는 작지 않을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이들은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동력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해외 파견 노동자들에게는 어느 나라로 나가느냐 하는 것도 관심사다. 처음 나갈 때야 배정해 주는 대로 나간다. 하지만 해외 경험이 쌓이면 조금이라도 노동환경이나 수입이 좋은 나라로 나가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뇌물을 쓰기도 한다. 인기가 가장 높은 러시아 사할린·이르쿠츠크, 아프리카 앙골라 등은 500~1000달러, 러시아 모스크바·하바롭스크·블라디보스토크, 아프리카 기니 등은 100~500달러라고 한다. 새해 첫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분신자살한 노동자도 어쩌면 이렇게 돈을 쓰고 나갔을지도 모른다. 혹서(酷暑) 때문에 기피 지역인 중동 국가 파견을 면하는 데도 돈이 든다. 이 경우는 50~100달러.
 
  해외 파견이 결정된 노동자는 외무성과 보위부 등에서 ‘파견 전 교육’을 받는다. 평양에 있는 ‘반(反)간첩관람관’을 돌아보고 한국 국정원 관계자나 기독교 선교사들과 접촉하지 말라는 경고성 교육을 중점적으로 받는다.
 
  출국 시에 소지할 수 있는 물품은 간단한 의류나 음식물 정도다. 북한에서 출판한 서적, 문서, 휴대폰이나 USB 같은 저장 매체 등은 물론 자필 메모도 소지할 수 없다. 공민증, 화폐, 군복 등도 반출 금지 품목이다.
 
 
  ‘북한 밖의 작은 북한 사회’
 
  이렇게 해서 해외로 나간 노동자들은 어떻게 생활할까? 해외 노동자 경험을 가진 탈북자들 중에서는 “남자라는 게 세상 밖도 구경하고 싶어서” “공화국보다는 조금 나을 것 같아서” 해외 노동자로 나갔다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총화(總和)도 한 달에 한 번이나 분기에 한 번 하는 등 북한에서보다 통제가 덜해서 좋았다”는 증언도 있다.
 
  하지만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 소장은 “북한 해외 노동자는 외국에 살고 있으면서도 북한과 거의 차이가 없는 ‘북한 밖의 작은 북한 사회’에서 많은 인권 침해를 겪으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우선 노동자들은 해당 국가에 입국한 직후 여권부터 회수당한다. 탈출을 막기 위한 조치다. 이후 이들은 북한 노동자들의 집단 숙소에서 생활하게 된다. 해외 북한 노동자들의 삶이 어떠한지, 폴란드 내 북한 노동자들을 통해 알아보기로 하자.
 
  유럽북한인권협회(EAHRNK)의 추산에 의하면 약 800여 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폴란드에 나가 있다. 윤 소장은 폴란드의 북한 노동자 실태에 대해 주목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폴란드는 과거 냉전(冷戰) 시절 북한과 사회주의 형제 국가로서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현재 약 40여 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지중해의 작은 섬나라 몰타를 제외하면 북한 노동자를 수용하고 있는 유일한 EU국가다. 인권문제를 중시하는 EU회원국이기 때문에 조금만 노력하면 북한 노동자들의 인권 개선 등의 효과를 볼 수 있는 나라라고 판단했다.”
 
  윤 소장은 해외 노동자 경험이 있는 탈북자들을 통해 폴란드에도 북한 노동자들이 다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후, 외신 등을 통해 폴란드 내 북한 노동자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북한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회사, 노동자 관련 정보를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폴란드 공공기관 등에 자료를 요청하거나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했으나 작년 11월 출국 전까지 아무 곳에서도 답변을 해오지 않았다고 한다.
 
 
  인력업체, “北노동자들, 하루 12시간 일해”
 
  북한인권정보센터 조사원들이 폴란드에 입국한 작년 11월 16일 《뉴스위크》 폴란드어판(版)은 폴란드 내 북한 노동자들 실태에 대해 크게 보도했다. 이 잡지는 2013년 8월 26일자에서도 북한 노동자 문제를 다룬 바 있다. 윤 소장은 “《뉴스위크》 폴란드어판 편집장을 찾아갔더니,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북한 인력 알선업체 주소라든지, 북한 노동자 분포 상황 등에 대한 좋은 정보를 많이 얻었다.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윤 소장은 여기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북한 인력 알선업체인 체칠리아 코왈스카 아라멕스(Aramex) 대표를 만났다. 코왈스카는 원래 셀레나(Selena)라는 인력회사를 경영했으나 “북한 노동자 수백 명이 임금의 절반 이상을 사실상 북한 당국에 착취당하고 있다”는 현지 언론의 보도가 있은 후 문을 닫고, 현재의 이름으로 회사를 다시 차렸다고 한다. 윤 소장이 코왈스카로부터 들은 얘기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그단스크조선소, 슈체친조선소 등에 북한 노동자를 비롯한 아시아계 노동자들을 공급하고 있다. 폴란드의 최저임금은 한 달에 2800즐로티(한화 약 83만원), 세금이나 보험 등을 공제한 실수령액은 2300즐로티(한화 약 68만원) 수준이다. 이런 낮은 임금 수준 때문에 불만을 품은 노동자들이 노르웨이 등으로 떠나면서 그 빈자리를 북한 등 아시아계 노동자들이 메우고 있다. 임금 수준은 계약에 따라 더 낮아질 수 있다.
 
  법정 하루 근로 시간은 9시간이지만, 북한 노동자들은 10~12시간 정도 일한다. 일요일은 쉰다. 북한 노동자는 한 달에 27일 동안 일한다. 봉급은 중간 회사인 인력 알선업체, 즉 우리 회사가 지불한다. 이러한 일에 대한 대가로 우리는 ‘겸허한 수준’의 수수료를 받는다. (수수료가 얼마인지는 말하지 않았음.)”
 
  코왈스키 대표의 말이나 해외 노동자 출신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노동계약의 주체는 인력을 송출한 북한기관과 현지 인력 알선업체라고 한다. 윤여상 소장이 국내에서 면접했던 20명의 북한 해외 노동자 출신 탈북자들 가운데서 계약서를 보았거나 작성했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다만 일을 시작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먼저 온 노동자들이나 현지 노동자들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자신이나 동료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짐작하게 된다고 한다.
 
 
  계약서 본 노동자 없어
 
폴란드 건설공사장의 북한 노동자들은 외부와의 접촉이 철저하게 차단당하고 있다.
  폴란드가 북한 노동자들을 받아들이고 있는 이유는 북한 노동자들의 임금이 폴란드 노동자들은 물론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국가나 다른 아시아 국가 노동자들보다도 싸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도급제(都給制)로 일하기 때문에 돈을 더 많이 받고 일정을 맞추기 위해 야근이나 휴일근무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점이 강점이라고 한다. 윤 소장은 “북한으로서는 외화벌이의 목적이 가장 크겠지만, 이제 당당한 EU국가가 된 폴란드에 자기들의 거점을 만들어두겠다는 생각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폴란드에 파견된 노동자들의 임금은 업종에 따라 다르다. 건설노동자의 경우 최고참은 월평균 270~351달러(32만4000원~42만1200원), 신참은 135~162달러(16만2000원~19만4400원) 수준이라고 한다(주 72시간 근무 기준). 반면에 폴란드 건설노동자들의 월급은 주 40시간 근무 기준으로 1080~1350달러(129만6000원~162만원) 수준. 조선소에서 일하는 북한 용접공은 월 150달러(18만원), 토마토 농장 북한 여성 노동자는 월평균 70달러(8만4000원)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시급(時給) 기준으로 북한 노동자들의 임금은 6즐로티(1776원)로 폴란드 노동자들이 받는 12즐로티(3552원)의 절반 수준이라고 한다.
 
  문제는 북한 노동자들이 이 월급조차 제때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데 있다. 폴란드 인력업체 사장이 북한 측 회사 사장에게 월급을 지급하면, 이를 다시 북한인 직장장(職場長)이 노동자 개인에게 지급하는 구조다. 북한 당국은 이 월급 가운데서 90%를 세금 등의 명목으로 거두어간다. 노동자들이 손에 쥐는 돈은 10% 정도. 그나마도 노동자들의 손에 남는 것은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각종 충성자금을 거두어가기 때문이다. 연간 1200~1400달러(144만~168만원) 정도를 벌 경우, 실제로 손에 쥐는 것은 100달러 정도라고 한다. 폴란드 측에서는 달러로 월급을 지불하지만, 북한 측은 노동자들에게 즐로티로 임금을 지불한다. 환차익(換差益)을 중간 관리자가 착복하기 위해서다. 윤 소장은 “이런 사정은 함께 일하는 폴란드 노동자들도 잘 알고 있어서, ‘북한 노동자들은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현대판 아우슈비츠’
 
그단스크에 있는 북한 노동자들의 숙소. 일종의 安家인 듯했다.
  폴란드 내 북한 노동자들은 공사현장의 컨테이너 박스나 임차한 허름한 가옥에서 모여 산다고 한다. 윤여상 소장은 “컨테이너 간이 숙소들을 보면 폴란드인이나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이 아니라 북한 노동자들이 사는 곳이라는 느낌이 확 든다”면서 “바르샤바의 한 건설 현장에서 아래층에 10개, 그 위에 4개 정도의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놓고 숙소 겸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북한 노동자들과 외부인, 혹은 현지인들과의 접촉은 엄격히 차단된다. 윤 소장은 “바르샤바의 한 건설 현장에서 만난 폴란드 노동자에 의하면 ‘건설 현장의 특성상 폴란드 노동자와 북한 노동자들이 함께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작업 시간 중에 농담을 주고받거나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지만, 북한 노동자들이 외부인들과 교류를 맺는 것은 일절 금지되어 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윤 소장은 함께 폴란드에 갔던 유럽 국적의 젊은 여성들에게 북한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게 하기도 했다고 한다.
 
  “컨테이너 박스 2층 빈 공간에서 30~40대 노동자 두 명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반찬은 없이 죽 같은 것을 사이에 두고 숟가락으로 떠먹는 것이 전부였다. 우리 조사원인 외국인 여성이 영어로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묻자 ‘코리안’이라고 대답했다. 외국 여성이다 보니 아무래도 경계심이 적었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한국어로 ‘한국인이냐’고 물었더니 북한에서 왔다고 대답했다. 언제쯤 왔느냐고 묻자 ‘1년 반 전에 왔다’고 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북한 남자 하나가 나타나 ‘지금 뭐 하는 거냐? 들어오라!’고 소리쳤다. 그 노동자들은 어쩔 수 없다는 제스처를 취한 후 사라졌다.”
 
  그단스크에서는 인적이 외진 곳에 있는 낡은 3층 건물에 북한 노동자들이 집단 거주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건물 주위는 나무로 둘러싸인 것이 북한 노동자들의 구금(拘禁) 시설로 쓰일 수도 있는 일종의 안가(安家) 같았다. 으스스했다. 조심스럽게 집 마당에 발을 들여놓았더니 안에 있던 북한 노동자 10여 명이 몽둥이를 들고 몰려나왔다. 그들과 충돌했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아서 서둘러 빠져나왔다. 나중에 인근 주민에게 물어보니 북한 노동자들의 숙소가 맞다고 했다. 후에 몽골에서 북한 노동자 실태를 조사하면서 ‘해외 노동자 문제가 국제사회의 이슈가 되고 있으니, 일절 취재에 응하지 말고, 취재하러 오는 자들이 있으면 육탄으로라도 반드시 막으라’는 평양의 지시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윤 소장은 “함께 현장 조사를 나갔던 외국인 조사원들은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는 현장에 대해 ‘현대판 아우슈비츠’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돈을 많이 벌어서 가족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중간착취’다. 몽골 등지에서는 경기침체로 인한 임금 체불(滯拂)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윤여상 소장의 말이다.
 
  “몽골에서 만난 한 북한 노동자가 한 말이 인상에 남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추운 거, 배고픈 거, 아픈 거, 일하다가 다치는 거, 다 참을 수 있다. 제일 힘든 거는 노임 못 받는 거다. 돈을 많이 벌어서 내가 내 가족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게 제일 힘들다. 노임을 많이 받으면 많이 가져갈 수 있을 텐데….’
 
  1960~80년대에 우리도 중동 등지에 노동자들을 많이 내보냈다. 하지만 그들이 번 돈은 가족들에게 돌아갔고, 덕분에 그들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 북한 해외 노동자들이 버는 돈은 김정은에게 돌아갈 뿐, 정작 그들에게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그게 북한 노동자들과 우리 중동 노동자들이 다른 점이다.”
 
  윤 소장은 “북한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현지 업체가 북한 회사에 임금을 지불하고, 북한 회사가 각종 명목으로 90%를 갈취하는 중간착취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자들이 직접 계약서를 작성하고, 직접 임금을 수령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꾸어야 한다.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북한 노동자들은 자기가 받은 돈을 다시 북한 당국에 상납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자기가 받아야 할 돈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주는 대로 받는 것과는 다르다. 적어도 자기가 받아야 할 돈이 얼마인지, 자기가 얼마나 착취당하고 있는지를 ‘자본주의적’으로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번 받았던 돈을 빼앗기는 사람은 저항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런 깨달음이 북한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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