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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정보

북한 核·미사일 개발의 배후 서상국의 실체

소련 유학파로 김일성大에서 물리학 가르쳐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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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대 때 소련에서 물리학 박사학위 받아
⊙ 1998년 조선중앙통신, 김정일이 김일성상과 노력영웅 칭호 수여했다고 보도
⊙ 북한 핵개발은 도상록→이승기→서상국으로 이어진 듯
2008년 6월 27일 북한이 영변 5MW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하고 있다. 북한은 2007년 10·3 합의에서 ‘영변의 5MW 실험용 원자로, 재처리시설(방사화학실험실) 및 핵연료봉 제조시설의 불능화’를 하기로 하고, 이 조치의 일환으로 미국의 CNN방송 등이 중계하는 가운데 냉각탑을 폭파했다.
  “최근 북한의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의 모든 배후에 서상국 박사가 있다.”
 
  얼마 전 북한의 고위 탈북자가 이런 얘기를 꺼냈다. 또 다른 고위 탈북자 역시 위의 얘기가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이 탈북자는 김일성종합대학에 재학 중이던 때 서상국 박사로부터 직접 수업을 들었다고 한다.
 
  복수의 관계자로부터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수소탄(수소폭탄)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통신은 지난 2015년 12월 10일, 김정은이 최근 평양의 평천혁명사적지를 시찰하면서 “우리 조국은 자위의 핵탄, 수소탄의 거대한 폭음을 울릴 수 있는 강대한 핵 보유국이 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수소폭탄’은 핵융합을 활용한 것으로 보통 원자폭탄에 비해 수십 수백 배의 위력을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미국 역시 북한의 주장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냈다. 조니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현 시점에서 접근 가능한 정보는 그런 주장에 이의를 제기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것은 지난 2013년 2월이다. 당시 해외 언론들은 ‘북한의 핵실험이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10여 개월 만에 북한은 업그레이드된 ‘수소탄’ 얘기를 들고 나왔다.
 
  이번 발언이 특정한 의도를 가진 북한의 ‘블러핑’이라고 쳐도, 북한이 그동안 끊임없이 핵개발에 목을 매 온 점, 그리고 핵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영민한 두뇌를 가진 누군가가 세대에 걸쳐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북한은 핵개발 3세대를 거쳐 4세대를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20대 때 소련에서 박사학위 받은 천재 물리학자
 
  오늘날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발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서상국 박사는 천재 물리학자로 전해지고 있다. 나이는 70살 전후다. 서 박사로부터 직접 수업을 들은 한 고위 탈북자의 얘기다.
 
  “제가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수업을 들었을 때가 22~23살이었습니다(현재 50대 중반). 그때 서상국 박사가 40대 중·후반 정도였으니, 지금 70살 전후일 겁니다. 김일성종합대학 물리학부를 맡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서상국 박사를 두고 천재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김일성종합대학에 워낙 특출한 선생들이 많지만 서 박사는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게 머리가 좋았습니다. 소련에서 유학생활을 했는데, 박사 학위를 받았을 때 나이가 서른이 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소련 사람들을 제치고 최우수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고요. 사람이 워낙 머리가 좋고 전문지식이 해박해서 소련에서 북한으로 되돌려보내지 않으려고 미인계까지 썼다고 했습니다. 북한 보위부가 이 모습을 보고 바로 북한으로 불러들였다고 합니다.”
 
  —수업을 들을 때 어떻던가요.
 
  “키도 훤칠하게 크고, 얼굴도 갸름하니 잘생긴 것으로 기억합니다. 학식이 뛰어나고,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습니다. 당시 김일성종합대학에 서 박사 얘기는 늘 화제였습니다. 서 박사가 소련에 유학할 때, 교수가 칠판에 문제를 쓰고 학생들에게 풀라고 했답니다. 소련으로 유학을 온 동구권 나라 애들이 열심히 풀기 시작했는데, 서 박사는 칠판을 빤히 쳐다보고 팔짱만 끼고 가만히 앉아 있더랍니다. 교수가 ‘왜 문제를 풀지 않느냐’고 했더니 ‘가치 없는 문제다. 틀린 문제를 내 놓고 왜 풀라고 하느냐’고 해 교수가 깜짝 놀랐답니다.”
 
  —소련에서 미인계까지 쓸 정도면 대단한 인재였던 모양이군요.
 
  “소련에 유학할 때 좀 흔들흔들했나 봅니다. (사상적으로) 단호했다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소련에서 계속 설득을 했다는 것으로 봐서는 ‘잘하면 주저앉힐 수 있겠다’ 싶을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요즘도 활동하고 있을까요.
 
  “저는 북한이 행하고 있는 모든 핵실험과 핵개발, 미사일개발 등의 모든 배후에 서상국 박사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998년 서상국 박사에 대해 소개를 한 적이 있다. 그 소개에는 물론 ‘핵개발’과 관련된 언급이 없다. 통신의 내용이다.
 
  “서씨가 지난 30여 년간 후대교육사업과 과학연구사업을 벌이면서 ‘양자역학’, ‘소립자이론’ 등 40여 편의 저서와 100여 건의 가치 있는 소논문을 집필했다. 8명의 박사와 20여 명의 학사(석사)를 키워 냈다. 김정일 위원장에 따르면, 서씨는 후대교육사업과 기초과학을 발전시키고 최신과학 분야를 개척하는 데 이룩한 성과를 높이 평가해 ‘김일성상’과 노력영웅 칭호를 비롯한 국가표창을 수여하도록 배려했다. 대회와 행사에 불러 수령님(김일성)을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영광을 안겨 줬다”
 
 
  도상록-이승기-서상국-(?)
 
북한 김정은이 2015년 12월 개보수를 끝낸 평양 평천혁명사적지를 시찰했다고 북한 《로동신문》이 보도했다.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우리 조국은 자위의 핵탄, 수소탄(수소폭탄)의 거대한 폭음을 울릴 수 있는 강대한 핵보유국으로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를 종합해 보자면, 오늘날 북한의 핵개발은 ‘월북한 과학자’ 도상록-이승기를 거쳐 ‘소련 유학파’인 서상국으로 계보를 잇는 셈이다. 북한이 핵개발을 시작한 지는 무려 60년이 넘었다. 북한은 지난 1953년 소련과 원자력 평화적 이용 협정을 체결하며 핵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북한의 초창기 핵개발을 주도한 이는 잘 알려진 대로 월북한 남한 과학자들이었다.
 
  일본 도쿄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개성 송도중학교에서 물리교사로 지냈던 도상록씨는 〈헬륨화 수소이온에 대한 양자역학적 취급〉이라는 논문을 발표해 국제 학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는 광복 후 서울대학에서 교편을 잡을 예정이었으나, 김일성의 자필 초대장을 받고 1946년 5월 월북했다. 그는 이후 김일성종합대학 창립준비위원회에서 일을 시작했고, 개교(1946년) 이후에 물리학부 초대 학부장, 물리강좌장, 핵물리강좌장 등을 역임했다. 북한의 〈조선대백과사전〉은 도씨에 대해 ‘핵구조이론, 양자역학, 원자로물리 등 교과서와 참고서 30여 종을 집필하고, 핵가속장치를 비롯한 핵물리 실험장치를 개발하는 등 원자력 부문의 첫 교육자’라고 평가하고 있다. 도상록씨는 지난 1990년 사망했다.
 
  그와 함께 북한 핵개발의 기초를 닦은 이는 서울대 공과대학장으로 재직하다 한국전쟁 때 월북한 이승기씨다. 이씨는 일본에 유학 중일 때(1939년) 화학섬유의 일종인 ‘비닐론’을 발명해 유명해진 이다. 월북한 후에 국가과학원 함흥분원장을 맡았고, 지난 1996년 사망했다. 이씨의 일가가 이후에도 북한에서 대대로 ‘과학자 집안’으로 우대받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중앙방송은 지난 1999년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전국 과학자 기술자 대회’를 보도하면서 “이승기 일가 중에 35명의 박사, 학사(석사), 연구사가 자라났다”고 했다.
 
  이들 1세대는 소련으로부터 ‘IRT-2000’ 연구용 원자로를 도입(1965년)해 핵연구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북한은 지난 1979년 자체 기술로 영변에 5MW 원자로 건설에 착수했고, 1986년부터 공장을 가동했다. 북한은 1983~1993년에 핵무기 개발에 필수인 고폭실험을 70차례 실시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1989년 원자로 가동을 중단했다.
 
   여기까지가 1세대의 역할이었다면, 구 소련에 유학을 다녀온 2세대가 뒤를 이어 받았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부터 300여 명의 과학자를 직접 소련으로 보내 핵이론과 기술을 배운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서상국 박사를 필두로 한 2세대는 본격적으로 북한의 ‘핵의 시대’를 열었다. 핵개발 1세대의 뒤를 구 소련 유학파 2세대가 받았다.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개발 의혹을 받은 것은 이로부터 10년이 지난 2002년이었다. 북한은 미국이 강력하게 압박하자 2003년 1월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했고, 바로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했다. 한반도에 본격적인 북핵 위기가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북한은 2005년 2월, “우리는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고 선언했다. 세 달 뒤에는 영변 원자로에서 폐연료봉 8000개를 인출하는 작업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북한은 2006년 10월 9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지하에서 플루토늄 방식의 1차 핵실험, 2009년 5월 25일 같은 방식으로 2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제3차 핵실험은 지난 2013년 2월이었다. 고위 탈북자는 “서상국 박사의 나이와 과거의 활동에 비춰 볼 때 핵실험의 전 과정을 총괄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진짜로 핵을 보유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이 관계자는 “서상국 박사가 1세대인 도상록, 이승기 박사보다 훨씬 천재로 대접받았다”고도 했다.
 
  서상국 박사의 뒤를 이어 3세대 핵 과학자들이 현재 현역에서 뛰는 것만은 분명하다. 또 다른 고위 탈북자는 “서 박사의 뒤를 잇는 과학자들이 그에 못지않은 천재일 가능성이 높다. 1970년대 말 이후의 북한은 교육에 있어 ‘선택과 집중’을 했기 때문에 북한 최고의 천재들이 핵개발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북한의 교육제도는 11년제 의무(무료)교육이다. 유치원 1년, 소학교(초등학교) 4년, 고등중학교(중·고등학교) 6년이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1학년 때는 김일성이나 김정일 장군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 단계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 공부나 조직생활을 잘하는 모범생들은 ‘소년단’에 입단한다. ‘소년단’ 입단선서는 김일성 일가에 대한 찬양 일색이다. 대략적인 내용은 ‘나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께서 세워 주시고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일 장군님께서 빛내어 주시고 영광스러운 조선소년단에 입단하면서 언제 어디서나(하략)’이다. 이때부터 북한의 어린이들은 부모의 말보다는 장군님의 말을 따르고, 당과 수령에 충성하는 것에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도록 교육받는 셈이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 ‘청년동맹’에 가입하는데, 이때부터는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다. 5학년 때부터 군사정치학 수업을 듣는데 산에서 고립됐을 때, 지도 없이 방향 찾는 법, 지도 보는 법, 아무런 도구 없이 밥하는 법 등을 가르친다. 고등중학교를 졸업하면 군대, 대학교 진학, 무직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등 다양한 길이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북한은 철저하게 ‘수재교육’을 표방한다. 공산주의를 표방한 북한이 ‘교육’에 있어서만큼은 아이러니하다. 한 고위 탈북자의 얘기다.
 
  “북한의 사회주의 이론은 평등입니다. 똑같이 잘 먹고 잘사는 겁니다. 그래서 1950~60년대 초창기에는 똑같이 공부를 시켰습니다. 사람은 똑같으니 같은 교육기회를 제공하면 똑같은 속도로 발전한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소련에서의 실험이 있기 전까지는요.”
 
  —소련에서 어떤 실험이요.
 
  “토마토를 키우는데 물도 흠뻑 주고, 비료도 주고, 외부 여건을 계속 풍족하게 줬는데도 토마토가 자라는 것이 고만고만한 겁니다. 토마토는 그저 토마토일 뿐인 겁니다. 그래서 종자개량을 했더니 토마토의 크기가 커지고, 높이도 높아지면서 튼실한 토마토가 나온 겁니다. 이래서 나온 것이 김일성의 ‘종자론’입니다. 주위 환경은 중요치 않다, 종자 자체를 개량해야 한다는 겁니다.”
 
 
  김일성의 ‘종자론’이 나온 이유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산하 한미연구소가 운영하는 북한 전문 웹사이트인 ‘38노스’가 2013년 10월 19일 촬영한 북한 영변 핵시설 위성사진. 원자로와 터빈, 발전기 건물의 오른쪽 배수관으로 원자로 냉각에 사용한 온배수가 배출되고 있다.
  김일성은 1970년대 말 ‘종자론’을 들고나왔고, 그때부터 전국적으로 ‘수재’들을 찾아나섰다. 첫 시험은 1977년에 치러졌다. 이 고위 탈북자의 증언이다.
 
  “고등중학교 때였습니다. 하루는 외부에서 선생들이 와서 ‘이 반에서 공부 제일 잘하는 애가 누구냐’고 해서 데리고 갔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라서 무슨 일인가 싶었습니다. 나중에 들어 보니 ‘머리 좋은 놈 뽑으려고 그런다’는 겁니다. 그렇게 반 대표들끼리 시험을 보고, 학교 대표를 뽑아서 시 대회에 보내고, 그런 식으로 제일 머리 좋은 놈을 중앙으로 보낸 겁니다. ‘제1중학교’가 천재들만 모인 그런 곳입니다.”
 
  —우리로 치면 과학고등학교 정도겠네요.
 
  “그렇죠. 그런데 거기는 돈이나 빽이나 그런 거 안 통했습니다. 가끔 남한에는 돈으로 해서 ‘뒷문’으로 넣었다는 식(式)의 얘기들이 나오는데 북에는 그런 거 없습니다. 그냥 무조건 머리만 보는 겁니다. 이렇게 시험을 치르는 과정에 나쁜 소문이 돌았습니다.”
 
  —어떤 소문입니까.
 
  “그렇게 제1중학으로 뽑혀 가면 ‘핵’이라는 것을 연구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때 ‘핵’이 뭔지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만 ‘핵이라는 것을 연구하면 대접받고 빨리 승진한다더라’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조금 지나니까, ‘핵을 연구하면 무슨 물질(방사능)에 노출되고, 노출되면 빨리 죽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일부 똘똘한 애들 사이에서는 시험을 못 보면 뽑히지 않을 테니까, 어떻게든 시험을 엉망으로 보자는 얘기가 파다했습니다.”
 
  —인민이 평등하다는 북한에서 교육만큼은 다르게 취급하는군요.
 
  “북한에서 김일성종합대학에 보내려면 사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것은 벌써 파다하게 알려진 사실입니다. 제1중학교를 졸업해야 평양의 중앙대학에 갈 가능성이 높고, 김일성종합대학이나 중앙대학을 졸업해야 당간부나 북한 지도층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자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사교육을 시켜서라도 제1중학교, 평양 중앙대학을 가려 합니다. 북한 도시지역에서는 과학기술, 정보통신 분야의 우수한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반면 지방, 농촌, 산간벽지 학교는 방치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고위 탈북자의 증언을 토대로 보면, 북한은 이미 1970년대 후반에 고등중학생(중·고등학교) 시절에 전국에서 가장 머리 좋은 애들을 뽑아서 핵개발을 시킬 의도가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뽑힌 이들은 ‘핵개발 2세대’인 서상국 박사의 교육을 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전국 1~10등에게 해킹만 가르친다면?
 
  서상국 박사의 존재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북한 내에서는 파키스탄의 ‘핵의 아버지’인 카디르 칸 박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대접을 받는 것으로 전해진다. 서 박사는 소련에서 유학을 마치고 보위부에 의해 평양으로 온 이후에 한동안 지방에서 지냈다고 한다. 고위 탈북자의 증언이다.
 
  “서 박사가 북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소련에서 많이 찾았던 모양입니다. 한 번은 소련의 핵 관련 장치에 에러가 생겼답니다. 소련의 과학자들이 고치려고 시도를 했는데 다 실패해서, 결국 서 박사를 불렀답니다. 서 박사가 크게 어려워하지 않고 장치를 고쳤답니다. 이후에 소련에서 서 박사에 대한 신뢰가 더 커졌고, 북에다 자꾸 서 박사를 잠깐 다녀가게 하라는 요청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탈북자인 K박사도 이 얘기를 자주 했습니다. 소련이 그 정도로 탐낸 과학자가 북에 있었다면서요.”
 
  —그래서 평양에서 내보냈군요.
 
  “먼 촌구석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 번은 종합지원 학생들이 농촌지원(우리로 치면 농활 같은 것)을 갔다가 서 박사를 만난 모양입니다. 자기들끼리 어떤 수학 문제를 내놓고는 못 풀어서 끙끙거리고 있는데, 서 박사가 다가오더랍니다. 농사 짓는 사람이 불쑥 수학 문제를 보여 달라고 하니까, 학생들이 웃었던 모양입니다. 서 박사가 문제를 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풀었다고 합니다. 그때 농촌지원 갔던 학생들이 평양에 돌아와서 이 얘기를 하면서 학생들 사이에서 ‘촌구석에 대단히 똑똑한 사람이 있다’ 정도로 얘기가 돌았습니다.”
 
  서상국 박사가 언제 다시 평양으로 되돌아왔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고위 탈북자가 그에게 수업을 받았을 때가 1984~1985년이니, 이즈음에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강의를 한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북한 내부에서조차 그의 얼굴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김일성 시절부터 북한은 ‘지식인대회’ 등을 통해 과학자들의 존재를 공공연하게 밝혀 왔다. ‘1세대’ 핵 개발자인 이승기씨가 김일성과 나란히 앉아 있는 사진 등은 공개됐다. 하지만 서상국 박사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또 다른 고위 탈북자에 따르면 서 박사는 강의는 거의 하지 않고 평안북도 영변의 핵시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그가 사는 아파트는 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이 철저히 경호를 하고 있으며,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프랑스에서 치료를 받는 등 ‘특별대우’를 받는 것으로 전해진다.
 
 
  서상국, 러 核 관련 부품 北 반입 역할한 듯
 
  서씨는 평양으로 되돌아온 이후에 러시아를 종종 방문했다고 한다. 서씨가 과거 소련에서 공부하던 시절의 인맥을 활용해 핵 관련 시설, 부품을 북한으로 반입하는 역할을 했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식의 ‘선택과 집중’ 교육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북한이 ‘핵개발 4세대 주역’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고위 탈북자의 얘기다.
 
  —지금도 전국에서 수재들을 모아서 핵개발을 시킨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러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1970년대보다는 그 열기가 덜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핵 이외에 해킹 등 수재들이 필요한 곳이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북한이 외교통상위원회 소속 국회의원 컴퓨터를 해킹해 발칵 뒤집혔는데요.
 
  “요즘은 북한 내에서 해킹이 대우가 좋으니까 너나없이 해킹을 하는 겁니다. 앞으로 그런 현상은 더욱 가속화할 겁니다. 국민들의 평균 두뇌로는 남한이 좋을 수 있지만, 북한에서 선택과 집중 교육을 받은 수재들을 따라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서울과학고에서 전교 1~10등을 뽑아서 핵만 연구시킨다고 해 보죠. 그렇게 한 시간이 벌써 40년이 되어 갑니다. 그런데 핵개발을 못했을까요? 또 그들에게 해킹 교육만 시켰다고 해 봅시다. 그들이 한국의 컴퓨터 해킹을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김일성 왕조 국가에서나 가능한 얘기겠습니다만요.
 
  “초 엘리트 교육의 수혜자는 당연히 김정일이었고, 지금 김정은입니다. 우리나라의 수재들이 성형외과에서 돈 벌기 위해 수술을 할 때, 북한은 당 차원에서 최고 수재들을 모아 놓고 전략적으로 한 가지만 파게끔 하는 겁니다. 북한이 폐쇄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또 돌이켜보면 전국에서 최고 머리 좋다는 사람들을 모아서 집단훈련을 시키면 저렇게 무서운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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