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평양 인사이드

최근 脫北한 노동당 고위간부가 말하는 張成澤 처형 幕前幕後

노동당 조직지도부와 김경희, 장성택 처형 반대

글 :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  nkch@chosun.com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김경희, 張成澤 처형 강력 반대… 노동당 경공업부 간부들도 줄줄이 몰락
⊙ 김정은, 2014년 4월 黨 조직비서대회 비공개로 열어 장성택 발호 방치한 책임 물어
⊙ 2014년 10월에는 ‘세력화’ 이유로 조직지도부 간부사업담당 부부장 등 12명 집단 처형
⊙ 현영철 처형은 과도한 마약 흡입 때문… 老간부들은 기력 보충 위해 마약 사용

姜哲煥
⊙ 47세. 한양대 무역학과 졸업.
⊙ 요덕수용소 수용, 《조선일보》 통한문제연구소 기자. 현 북한전략센터 대표,
    국민대통합위원회 자문위원.
⊙ 저서: 《수용소의 노래》 등.
장성택은 2013년 12월 12일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됐다.
  북한의 권력실세로 일컬어지던 장성택(張成澤)이 갑작스럽게 체포, 처형된 지도 2년이 지났다. 2013년 12월 9일 긴급 소집된 노동당 비상회의 장소에서 노동당 행정부장으로 있던 장성택이 국가보위부 요원에게 체포되어 끌려 나가는 사진이 공개됐다. 4일 후 그는 처형됐다.
 
  장성택 처형 사건은 국내외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다. 그가 왜, 누구의 주도에 의해 처형됐는지는 모두의 관심사가 됐다.
 
  그동안 장성택 처형은 노동당 조직지도부가 주도하고 김정은의 고모 김경희의 동의를 얻어 결정됐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조직지도부와 김경희가 장성택 처형을 반대했다면 김정은이 과연 장성택을 처형할 수 있었겠느냐는 상식적인 판단에 따른 관측이었다. 과연 그럴까.
 
  최근 장성택과 오랫동안 친분을 유지해 온 북한 노동당 핵심간부 한 명이 입국했다. 그는 장성택과 친했지만 보위부에 미리 손을 써서 장성택으로 인한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하지만 평소에 좋아했던 장성택과 많은 지인(知人)들이 처형당하는 것을 보고 김정은에 대한 배신감을 느꼈고, 결국 탈북(脫北)을 감행했다. 이 고위탈북자와 북한 내 소식통에 따르면 장성택 처형 과정에 아주 복잡한 사건들이 얽혀 막판까지 많은 간부들과의 조율이 있었지만, 결국 김정은이 주위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장성택 처형을 집행했다고 한다.
 
  김정은이 장성택 처형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장성택이 최고지도자에 대한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했다는 것이다.
 
  장성택의 죄행(罪行) 가운데 그를 ‘1번’으로 칭하면서 부하들이 그를 떠받들게 했다는 대목이 있다. 이는 어느 정도 사실로 보인다. 장성택의 핵심측근인 노동당 행정부 부부장 리용하와 장수길은 사실상 김정은의 지시보다 장성택의 지시를 우선했다. 그 과정에서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벌어져 장성택 처형에 빌미를 주었다.
 
 
  장성택 휘하 부대와 인민군의 총격전
 
  2013년 8월경 황해북도 해안가 지역의 인민무력부가 관장하는 미사일기지 옆에 당 행정부 무역기관이 있었다고 한다. 미사일 부대는 행정부 무역기지 철수를 요구했다. 행정부 측이 이 요구를 거부했다. 양측의 갈등이 격화되던 끝에 행정부가 관할하는 인민내무군(국내 치안부대)과 미사일 부대 병력이 총격전까지 벌였다. 해당 미사일 부대는 인민군 총정치국을 통해 김정은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당시 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는 자기보다 권력 서열은 낮지만 훨씬 더 강력한 파워를 갖고 있는 장성택을 질투하고 있었다. 최룡해는 김정은에게 이 사건을 보고하면서 장성택의 노동당 행정부가 관할하고 있던 인민내무군 병력을 인민무력부로 이관하자고 건의했다. 김정은이 그렇게 하라고 지시했다.
 
  최룡해의 명령을 받아든 총참모장 리영길은 최고사령관 명령을 받들고 당 행정부로 찾아갔다. 장성택은 그 자리에 없었고 리용하, 장수길 등이 리영길을 맞이했다. 두 사람은 최고사령관의 명령문을 읽을 때에는 일어서서 잘 듣고 있었는데, 명령서 낭독이 끝난 다음에 장수길이 “이 결정을 장성택 동지와 의논해서 했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리영길이 “최고사령관의 명령인데 이자가 미쳤나”라고 하자, 장수길도 “최고사령관이고 나발이고…”라고 맞받았다.
 
  최룡해는 이날 사건을 김정은에게 보고하면서 “엄중하게 사건을 총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장성택을 처형까지 몰고 가려는 심사는 아니었다. 장성택에게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었지만, 김정은이 장성택을 처형까지 할 것으로는 상상조차 못했다. 하지만 이미 김정은은 장성택과 그의 부하들에게 분노를 감추지 않고 있었다.
 
 
  20만 인민내무군 창설
 
  두 번째는 중국에서 날아온 장성택에 대한 보고서였다. 장성택의 오른팔이었던 주중(駐中) 북한대사 지재룡이 장성택과 중국 간의 비공개 협력문건들을 김정은에게 보내온 것이다.
 
  중국 측은 장성택을 미래의 지도자로 사실상 인정했고, 장성택은 앞으로 북한이 갈 길은 중국식 개혁개방이라고 인식했다고 한다. 더 나아가 장성택은 중국 지도부에 김정은이 중국식 개혁을 거부할 경우 그를 권좌에서 끌어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넌지시 전했다고 한다. 지재룡의 보고를 받은 김정일은 폭발하기 시작했다.
 
  세 번째는 장성택이 실제로 김정은의 권력에 도전하는 세력화를 시도했다는 점이다.
 
  당시 보위부는 장성택의 죄행 중 하나로 국가의 주요기관을 자신이 관장하도록 했다는 것을 꼽았다. 실제로 장성택은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노동당 행정부가 관장하던 인민보안부(경찰)의 고위층 간부들을 장성택 측근들로 교체했다. 인민내무군을 창설해 약 20만 병력을 장성택이 직접 지휘하면서 장성택과 측근들은 장성택을 믿고 의지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인민무력부 소속 ‘승리’ 무역회사를 당 행정부 54부로 바꾸고 그 자리에 측근 장수길을 임명했다. 중국에 파는 석탄 수출권을 독점, 연간 5억~10억 달러의 수익을 얻으면서 당 행정부 54부는 김정은의 비자금 부서인 당 39호실을 넘볼 정도로 자금력이 커졌다.
 
  장성택은 당시 김씨 일가의 개인 소유물이던 당 38호실을 해산하고 민간에 넘겼다. 김씨 일가가 전용하던 ‘8호’, ‘9호’ 농장을 해산해 그것도 민간으로 이관했다. 장성택은 과도하게 김씨 일가를 위해 집중된 부조리한 기구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며 국가를 정상화시키려고 했다.
 
  이러한 것들을 국가보위부는 장성택의 권력 확대로 보았다. 김정은도 장성택이 자신의 돈줄과 파워를 야금야금 먹어 들어오는 것으로 보았을 것이다.
 
 
  39호실부터 먼저 검열해 방심시켜
 
북한 조선중앙TV가 2012년 9월 2일 보도한 김정은의 대동강타일공장 현지지도 뉴스. 두 번째 줄 맨 왼쪽이 리용하, 앞줄 왼쪽 두 번째가 장수길이다.
  장성택 제거 작전은 노동당 39호실 검열로 시작됐다. 노동당 조직부의 39호실 검열은 당 행정부 54부를 검열하기 위한 명분 쌓기였다. 한 고위탈북자는 “당시 당 행정부 검열은 사전에 39호실을 먼저 검열하고 진행한 것이었기 때문에 장성택 측근들은 별 의심 없이 검열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마치 조선시대 수양대군과 김종서의 대결처럼 누가 먼저 상대방을 공격하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수 있는 중대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장성택과 그의 부하들은 너무 안이하게 이 사건에 대처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정은은 거대하게 커진 장성택 세력을 일격에 무너뜨리려면 뱀의 머리인 장수길과 리용하부터 제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국가안전보위부장 김원홍은 김정은의 지시를 군말없이 집행했고 장수길과 리용하를 취조해 모든 것을 자백 받았다. 11월 중순경 장성택도 체포했다.
 
  이때까지 김경희는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장성택의 측근에 의해 일이 험악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남편의 처리 여부를 확인하려고 했지만 누구도 그에게 답을 주지 않았다. 김경희는 비로소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김경희는 당 조직부 제1부부장 조연준에게 전화를 걸어 “장성택의 잘못을 인정해 직책에서 쫓아내 추방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그를 죽이는 것은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고 강하게 말했다고 한다. 당 조직부도 김경희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조직지도부는 논의 끝에 장성택을 처형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김정은에게 전달했다. 오랜 기간 김정일 밑에서 잔뼈가 굵은 당 조직지도부 간부들은 김씨 일가의 충견(忠犬)이기는 하지만,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어떤 것인지는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장성택 처형을 내버려두면 김정은의 앞날에 더 큰 화근(禍根)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충정의 마음으로 그런 제안을 한 것이다.
 
  당 조직지도부의 의견에도 김정은이 장성택을 처형하려는 마음을 바꾸지 않자 김경희는 이성을 잃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위탈북자는 김경희가 김정은을 향해 “네가 사람새끼냐?”며 행패를 부릴 정도로 악에 받쳐 있었다고 주장했다.
 
  흔히 북한사람들은 당연히 김경희가 김정은의 편에 서서 반역자 장성택을 처형하는 데 찬성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김경희는 단순히 체제에 순응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자신의 의견을 남에게 강요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김경희와 장성택 간의 부부 금실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김정일이 사망한 이후부터는 부부가 함께 평양시 곳곳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는 모습이 포착됐다. 장성택이 죽기 전에는 부부관계가 상당히 회복됐었다고 한다. 김경희는 건강이 나빴기 때문에 인생 말년에 남편을 의지하게 됐고 어린 조카를 위해서라도 과거의 일은 묻어 둔 상태였다고 한다.
 
  장성택을 처형한다는 것은 김경희가 반역자의 부인이 된다는 의미였다. 이는 김정일이 알았다면 관 뚜껑을 열고 벌떡 일어날 일이었다.
 
  장수길, 리용하는 처음으로 4신 고사포(총)로 처형됐다. 4신 고사포의 탄창에는 총신당 60발이 장전되기 때문에 총 240발이 장전된다. 이런 고사포 4문을 강건군관학교로 옮겨왔다. 장성택은 몸이 묶인 채 처형당하는 장수길, 리용하 두 부하 앞에 무릎 꿇고 앉혀졌다.
 
  사형집행관의 지시에 따라 발포 명령이 떨어지자 1000여 발의 고사총탄이 두 사람에게 날아갔고, 시체는 가루처럼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장성택의 얼굴로 장수길, 리용하의 피와 살이 그대로 날아와 피범벅이 됐고, 장성택은 그 자리에서 졸도했다고 한다.
 
  이러한 광경을 목격한 노동당 간부들은 그 처참함에 치를 떨었고 김정은이 얼마나 제 정신이 아닌지 처음 알게 됐다고 한다.
 
  그후 박상헌 인민보안부(경찰청) 정치국 부국장은 화염방사기로 태워 죽였다고 한다. 그는 장성택의 별장까지 만들어 바쳤고, 장성택을 위해 기쁨조까지 만들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경희는 살았나, 죽었나?
 
장성택의 아내인 김경희 전 노동당 경공업부장.
  장성택 사건 이후 김경희의 존재도 사라졌다. 국가안전보위부는 김경희에 관한 자그마한 유언비어가 나돌아도 끝까지 추적해 처벌하고 있다.
 
  김경희가 장성택을 죽이는 데 찬성하고 나서 얼굴을 들지 못해 대중 앞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도 한다. 김정일의 유일한 동생이면서 ‘백두혈통’의 적통(嫡統) 어른인 김경희가 김정은의 행동을 반대했다면 민심의 흐름이 매우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김경희가 맡아 오던 노동당 경공업부도 몰락했다. 김경희의 오른팔과 왼팔을 자처하던 경공업부의 부부장, 과장들이 줄줄이 처형당하고 지방으로 쫓겨 갔다. 당 경공업부에서 관장하던 인민생활 필수품 수입대금 3000만 달러도 김정은 세력이 회수하는 바람에 현재 당 경공업부는 현금이 완전히 고갈된 상태라고 한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노동당 간부들은 김경희가 얼마나 위태로운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필자가 만난 고위탈북자는 이미 김경희가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정은이 김경희를 독살했다고도 한다. 김경희를 자연사(自然死)하도록 내버려두기엔 너무 위험하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김경희가 남편을 처참하게 죽인 김정은에게 매일같이 욕을 퍼부었기 때문에 이를 방치할 경우 김정은의 리더십에 큰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김경희는 최룡해와 김원홍을 찾아가서도 행패를 부렸는데, 두 사람은 김경희에게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한다.
 
  상식적으로 김경희가 죽었다면, 장례식이라도 하여야 한다. 아직 장례식을 하지 않은 것으로 봐서 김경희는 죽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그가 죽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김경희가 나올 일은 영원히 없다고 말한다.
 
  김경희가 사망했다고 판단하는 근거 중 하나는 올해 7월에 치른 최고인민회의,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후보 명단에서 김경희의 이름이 빠졌다는 것이다. 92세인 김일성 동생 김영주가 최고인민회의 명예위원장으로 이름을 올렸는데, 김경희가 살아 있다면 당연히 그도 높이 추대됐어야 한다.
 
  이는 김경희의 ‘정치적 생명’이 이미 죽었다는 의미이다. 북한에서 ‘정치적 생명’이 죽는다는 것은 육신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장성택을 처형하고 나서 수개월이 지난 2014년 4월 평양에서는 이례적으로 당 조직비서 대회가 비공개로 열렸다. 조직비서들만 따로 모아서 회의를 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때문에 사람들은 말단 조직의 조직비서들까지 다 소집한 이 대회에 김정은이 참석해 그들을 격려하고 선물도 푸짐하게 줄 것으로 생각했다.
 
  중앙당 조직지도부를 중심으로 도당(道黨), 군당(郡黨)까지 장악한 당 조직지도부는 사실상 당 조직의 핵심 중 핵심이다. 말단 군(郡)의 당 조직 책임자는 책임비서이지만, 실세(實勢)는 군당 조직비서다. 국가보위부, 인민군총정치국 등 핵심부서에서도 당 조직지도부에서 파견한 조직비서는 김정은의 복심(腹心)으로 실제 파워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조직비서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었으니 북한의 중앙당으로부터 말단 당 조직에 이르기까지 핵심실세는 다 모인 것이다.
 
  하지만 실제 회의는 아주 심각하게 진행됐다고 한다. 북한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조직비서 대회에 김정은은 참석하지 않았다. 회의는 조연준 조직부 제1부부장이 주도했다.
 
  주요 안건은 장성택 후유증을 청산하고 조직지도부의 역할을 강화하는 문제였다. 조연준이 김정은의 실제 ‘말씀’을 전달했다. “그 많은 당 조직지도부 간부들이 장성택 무리들이 준동하는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고 질책하는 내용이었다. 조직부가 김정은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데 장성택과 같은 역적들을 어느 조직비서 하나 나서서 제지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김정은이 조직비서 대회를 개최하게 한 것은 조연준을 비롯한 조직지도부 핵심부가 장성택 처형에 반대한 데 대한 질책이기도 했다. 회의를 이틀간 진행했는데, 참석자들은 신랄한 비판 투쟁만 했을 뿐, 아무런 선물도 받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간부사업담당 부부장 등 처형
 
  일본의 한 언론매체는 2014년 10월 6일 경 노동당 간부 12명이 처형됐다고 보도했다. 필자가 만난 노동당 고위간부 출신 탈북자는 이 사건이 장성택 사건에 버금가는 큰 사건임에도 한국이나 국제사회에서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사건의 주동자는 노동당 조직지도부 간부사업담당 부부장이었다고 한다. 노동당의 핵심간부들을 선발하는 키를 쥐고 있는 부부장이 처형됐다는 것은 보통 사건이 아니다. 노동당 간부들이 떼로 처형당한 사건은 매우 이례적이기 때문에 북한 내에서도 이들이 왜 처형됐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 사건은 베일에 가려졌다. 고위탈북자와 북한 내 소식통들에 따르면 그들의 죄목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김씨 일가가 가장 싫어하는 세력화다. 간부담당 부부장을 중심으로 핵심간부들이 세력화되어 끼리끼리 밀어주고 중앙의 간부를 ‘오야붕’으로 모셨다는 것은 장성택 사건과 거의 유사한 행태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연루된 자들은 주로 황해도 지역 노동당 핵심간부들이었는데, 이들은 중앙당에서 간부 부부장이 내려오면 거의 김정은 수준으로 영접했다고 한다. 이 간부를 위해 유곽까지 차려놓고 기쁨조 흉내를 냈다고 한다. 이 간부담당 부부장은 지방당 간부들을 임명하는 기준을 김정은에 대한 충성도가 아니라 자기 세력의 사람인가를 먼저 파악하고 임명했다고 한다.
 
  둘째, 이 무리가 중국 지도부와 상당부분 비공개 교류를 했다는 점이다. 중국식 개혁을 위해 중국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내부 공감대를 형성하고 비공개 루트를 통해 중국과 내통했는데 김정은이 이 사실을 알고 매우 격노했다고 한다.
 
  처형된 핵심간부는 8명에 달한다. 문제의 노동당 부부장을 중심으로 과장급 2명과 황해도 해주시당 책임비서, 재령군당 책임비서 등 지방당 책임비서급이 한꺼번에 처형됐다. 이들은 모두 장수길, 리용하처럼 강건군관학교에서 4신 고사총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다.
 
 
  현영철이 회의 중 잔 것은 마약 때문
 
2015년 4월 26일자 《로동신문》에 보도된 조선인민군 제5차 훈련일꾼대회에 참석한 인민무력부장 현영철(왼쪽). 그가 회의 중 잠을 잔 것은 마약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지난 4월 30일경 강건군관학교에서는 현직 인민무력부장 현영철을 처형했다. 이날 처형장에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리영길 총참모장 등 군부의 핵심간부 120명이 집결했다. 현영철을 처형한 이유는 반당반혁명(反黨反革命) 행위, 수령(首領)에 대한 ‘불손죄(不遜罪)’였다.
 
  대북소식통들은 현영철이 김정은의 군부대 시찰을 대놓고 비난한 것이 죽음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은이 낡은 목선을 타고 서해바다를 방문한 것을 두고 “리조시대 왕이 가마 타고 가는 것과 유사하다”는 말을 했는데 김정은이 그 말을 듣고 대로했다는 것이다. 이 얘기는 국내 언론에도 보도됐다. 하지만 북한군에서 군단장까지 지내며 오랜 세월을 군인으로 지내온 현영철이 말을 그렇게 가볍게 할 위인은 아니었다. 때문에 그런 주장에는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북한은 이례적으로 언론매체를 통해 현영철이 조는 모습을 내보냈는데, 이는 그의 죄가 바로 거기에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지난 4월 26일자 《로동신문》이 보도한 사진에 의하면, 조선인민군 제5차 훈련일꾼대회 주석단에 앉아 있는 현영철은 눈을 감고 졸고 있었다. 북한당국이 이런 불손한 태도의 군 지휘관이 나온 사진을 외부에 공개하는 것은 아주 이례적이다. 그 자리에는 인민군 핵심간부 수천 명이 참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영철이 처형됐다면 그들도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고위탈북자들과 북한 내 소식통에 따르면 현영철이 처형된 직접적인 이유는 과도한 마약흡입이라고 한다. 과거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을 숙청할 때도 북한당국은 그가 마약장사를 했다는 식으로 죄를 만들었다. 리영호의 숙청이유는 다른 데 있었지만 그도 역시 마약에 연루된 것은 사실로 보인다.
 
  마약중독은 북한 내부에 만연해 있는데, 인민군 고위층에서도 심각할 정도라고 한다. 특히 기력이 쇠약해지는 60대, 70대 노(老) 간부들이 젊은 김정은과 동행할 때 체력을 맞추기 위해 마약을 흡입하고 나오는데, 이는 비밀도 아니라고 한다. 이날 회의는 3시간 이상 계속됐기 때문에 현영철도 이날 마약을 복용했다고 한다. 하지만 마약량을 조절하지 못하고 과다하게 흡입하면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김정은이 앞에 나가 연설문을 읽는 내내 현영철은 눈을 뜨지 않았고 계속 자고 있었다. 수천 명의 군인들이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누가 감히 깨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김정은은 보고서를 읽으면서 현영철을 힐끔 주시하기도 했는데 회의가 끝날 때까지 일어나지 않아 화를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분노했고, 황병서에게 즉각 처리하도록 명령했다고 한다.
 
  현영철을 처형하고 나서 군 고위간부들 사이에서는 그에 대한 동정론이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모두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아픔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지도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바다수영, 저격(狙擊)훈련까지 해야 하는 노 간부들은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김정은이 나오는 날이면 마약이라도 해서 몸을 제대로 가누고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약쟁이 마원춘은 살아남아
 
2013년 12월 마식령스키장을 시찰하는 김정은. 김정은 오른쪽이 마원춘이다. 마원춘 오른쪽 뒤편에 당시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이던 황병서의 모습이 보인다.
  최근 김정은이 방문한 나선지구 복구공사에 마원춘이 다시 나타났다. 김정은 주변에서 사라진 지 11개월 만이다. 북한 내 고위간부들은 마원춘만큼은 신(神)이 내린 아들이라고 말한다.
 
  현영철처럼 평생을 고생하다가 마약 한번으로 고사총에 맞아 죽는데 마원춘은 마약중독으로 김정은의 부르심도 제대로 받들지 못해 횡설수설하는 죄를 짓고도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핵심측근 마원춘이 김정은에게 미운털이 박히기 시작한 것은 그가 설계한 평양 순안공항 재건축 결과 때문이다. 물론 설계도면은 김정은에게 사전 보고해 허락을 받은 사항이었다. 하지만 김정은은 완공을 앞둔 순안공항 건설장을 찾아와 버럭 화를 내면서 마원춘을 질책했다. 김정일이 화를 낸 이유는 “조선민족의 주체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는데, 중국의 베이징(北京) 서두우(首都) 공항과 흡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중국에 대한 반감이 드러난 것이다. 다른 사람 같으면 벌써 처형장 신세였겠지만, 그나마 그간 공로를 인정해 별을 두 개 정도 강등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김정은의 진노를 사고도 별 한두 개 강등으로 끝난 것은 마원춘이 처음이었다.
 
  이때부터 의기소침해진 마원춘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마약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원래 마약흡입을 가끔씩 하는 정도였지만 김정은에게 질책을 당한 이후부터는 마약을 하지 않고서는 견디기 힘들어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김정은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제대로 받지 못해 횡설수설하는 대죄(大罪)를 저질렀다. 김정은도 더 이상 못 참았는지 마원춘을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게 하고 함경북도 산골 농장원으로 추방했다.
 
  그런 그가 다시 김정은 곁으로 돌아왔으니 사람들은 그를 보고 신이 내린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마원춘은 두 번 다시 마약에는 손을 대지 않겠다는 충성맹세를 김정은에게 하고 복귀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현영철, 마원춘 등 핵심 측근들이 마약에 연루되는 사건들이 잇달아 터지자 최근 “마약과 국가공금 횡령은 민족반역죄”라고 규정했다고 한다. 그만큼 고위층 마약은 북한체제를 흔드는 뇌관이 되고 있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104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정기구독 이벤트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