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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김철진의 평양실록 ⑪ ‘북한식 일심단결’의 허상

“전쟁 나면 40세 이상 남성 절반 총구 북쪽으로 돌린다”

정리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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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세대 지도자들의 퇴장과 함께 막을 내린 ‘북한식 일심단결’
⊙ 김정은 추대식 날, 시위 일어날까 ‘평양시민 통행 금지령’
⊙ 2009년 인민보안부 일제 조사 결과, ‘지방 주민 중 40세 이상 남성 절반이 교화소 전력,
    정권에 앙심 품고 있다’
집단체조공연 ‘아리랑’의 한 장면. 북한은 북한식 일심단결의 시각적인 예로 ‘아리랑’ 공연을 내세운다.
  북한에 가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게 ‘아리랑’ 대집단체조 공연이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인간의 물결을 보고 있으면 여러 생각이 든다.
 
  북한에서는 김일성 집권 시기 때부터 ‘일심단결’을 강조해 왔다. 수령을 중심으로 당과 인민대중이 철석같이 똘똘 뭉쳐야만 조선의 위력이 발휘된다. ‘일심단결’이야말로 어떤 핵무기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큰 힘의 원천이라는 주장이었다. 북한 인민들의 단결은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가장 최신형의 무기라는 선전도 잊지 않았다. 그토록 북한이 강조하는 일심단결은 현재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북한식 일심단결의 정수 아리랑
 
2013년 7월 27일 전승절(정전협정체결일)에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대규모 열병식. 열병식에는 주로 군사학교 출신이나 재학생들을 동원한다.
  2005년까지 최고위 간부들을 비롯해 북한의 모든 정치, 경제, 군사 분야 중견간부들의 70% 이상은 일제 식민지 시기를 살아봤거나 6·25전쟁에 참여했던 인물들이었다. 이들이 북한 권력의 중심에 있었다. 나라를 빼앗겨 봤기 때문인지, 이들은 자신들이 6·25전쟁 시기 피로 지킨 사회주의의 붉은기를 지켜야 한다는 신념을 강하게 갖고 있었다.
 
  이들이 나이를 먹고 권력의 자리에서 대다수 물러난 후, 50년대 이후에 출생한 사람들이 북한 간부급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일명 ‘고난의 행군’ 시기가 찾아왔다. 사회주의 분배 원칙이 허물어졌다. 자기 자신과 가족의 운명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걸 주민들은 깨닫게 됐다. 지도자와 당과 인민들이 한마음으로 단합해야 할 이유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밝혀졌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북한식 ‘일심단결’이 가장 극적으로 표출될 때는 ‘아리랑’ 공연을 할 때와 각 명절의 ‘정주년’ 때다. 정주년은 70주년, 85주년처럼 다섯 해나 열 해 단위로 숫자가 꺾어지는 해를 말한다. 4·15와 4·25나 9·9, 10·10명절의 정주년은 특별한 해로 기념해 열병식이나 군중시위에 평소보다 더 공을 들인다.
 
  ‘아리랑’ 대집단체조에는 10만여 명의 인력이 동원된다. 학생들은 6개월간 공부도 못 하고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따가운 햇볕 아래에서 훈련을 한다. 학업에 지장이 있으니 웬만한 간부 집 자녀들은 여러 가지 핑계를 대고 참가하지 않곤 했다. 일반 주민들 사이에서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김정일은 ‘아리랑’ 공연에 자녀들을 참가시키지 않은 간부들을 철직(해직)시켰다. ‘아리랑’에 참가한 학생들에게는 100달러어치의 선물을 지급했다. 주로 중국산 모포와 각종 식료품이었다. 생활이 어려운 주민과 학생들을 물건으로 유혹한 셈이다.
 
  그다음부터는 매해 참가자들에게 ‘아리랑’이라고 쓰여 있는 중국산 색TV(컬러 텔레비전)와 재봉기를 지급했다. 선물로 유혹하는 동시에, 정치행사에 참가하지 않는다며 참가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협하기도 한다. 온갖 고생을 하며 공연에 참여하다가 방광염에 걸리는 이들도 있다.
 
  군사열병식이나 100만 군중시위도 마찬가지다. ‘그 어떤 핑계도 댈 수 없는 1호 행사’라며 참가자 명부를 각 당위원회에서 점검한다. 참여 여부를 정치적으로 평가하겠다고 하기 때문에 무조건 참가해야 한다. 참가하는 군인과 평양시민의 불만은 날이 갈수록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 북한의 정주년 명절이 되는 해가 되면 살기가 너무 힘들다고 노골적으로 말할 정도다.
 
  선거도 북한식 일심단결을 보여주는 장이긴 마찬가지다. 피선거권자 중 100%가 투표에 참가해 100%가 찬성하는 선거 결과. 북한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이 기묘한 투표 결과를 ‘이것이야말로 그 어떤 다른 나라들에서는 볼 수 없는 오직 북한에서만이 할 수 있는 일심단결의 위력’이라고 선전해 왔다.
 
 
  김정은 추대일에 통행 금지령
 
  이 외에도 주민들의 일심단결 정신을 시험하는 일은 일상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2008년 7월경, 김정일이 강원도 원산시에 건설된 원산청년발전소를 시찰하려고 가던 길이었다. 도로 옆에 있는 아파트 베란다에 소위 ‘김정일화’로 불리는 꽃의 화분이 놓여 있는 걸 김정일이 보았다. ‘유리에 막혀 꽃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하며 전국의 아파트에 설치된 베란다 유리를 다 떼어내라고 지시를 내렸다. 아파트가 많은 평양의 주민들의 분노와 불만이 고조됐다.
 
  2010년도에는 김정일이 중국에 갔다 오더니 ‘평양시 거리에도 중국처럼 꽃 화단을 조성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평양시 당에서는 각 구역별로 경쟁을 붙였다. 매 가구, 직장, 학교, 유치원과 탁아소별로 돈을 강제로 거두기 시작했다. 생화가 모자라 비닐로 꽃을 만들기도 했다. 평양시민들 사이에서 ‘눈 가리고 아웅 한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2009년 12월 불시에 선포한 ‘화폐개혁’은 당에 대한 충성을 저버리게 만든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한 가구당 구 화폐 30만원을 바치게 하고 신 화폐로 1000원씩만을 지급한 것이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국가가 식량도 주지 않으면서, 주민들이 아득바득 살겠다고 노력하여 피땀으로 모은 돈을 몰수했다는 원색적인 비난이 터져나왔다.
 
  먹고사는 문제가 달린 일이었다. 평양시민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폭동이나 시위 등을 우려해 김정일은 인민보안부 내무군사령부 산하에 3000명의 기동타격대를 편성했다. 이 기동타격대를 평양시 각 구역에 분산 배치시켰다.
 
  이듬해인 2010년 4월 17일에 드디어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중앙당 앞에 1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몰려가 김정일에게 항의 신소를 한 것이다. 경위는 이러했다. 평양시 인민위원회 산하 장성무역회사에서 ‘중국에 나가게 해준다’며 수백 명의 평양시 여성들에게서 많은 외화를 받았다. 3년이 지났는데, 중국에 나가기는커녕 돈도 안 돌려주자 이들이 당으로 몰려간 것이다. 김정일은 기동타격대에 ‘시위하는 이들 전원을 잡아 가두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평양의 민심은 밑바닥부터 흉흉해지기 시작했다.
 
  2010년 9월 28일 당 제4차 대표자 회의에서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식 추대했다. 나이도 어린 김정은을 후계자로 올리는 데 반대하는 시위라도 일어날까 걱정됐는지, 회의 당일 지시가 내려왔다. ‘평양시민들은 일절 거리에 나오지 말고 집에 있으라’는 지시였다. 평양시 곳곳에 보위부와 보안부 성원들이 배치되었다. 지시를 어기는 자가 있는지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지방 사는 장년 남자 절반이 전과자
 
일본의 후지TV가 2004년 공개한 북한 함남 요덕정치범수용소의 모습. 북한 전역에는 수용소뿐 아니라 교화소도 여러 군데 있다.
  온갖 혜택을 다 받으며 일심단결의 표본으로 치켜세워지는 평양시민들이 이런데 지방 사람들은 어떨까.
 
  2009년에 국방위원회 산하 인민보안부가 각 도, 시, 군 보안서들을 통해 조사한 걸 보면 상황이 심각하다. 평양시를 비롯해 교화소에 잡혀가면 가족 전체가 추방되는 신의주, 원산, 남포, 평성시 등 몇 개의 도시를 제외한 전국의 군에 사는 주민들 중 40세 이상 남자들의 거의 50%가 교화소 출소자들이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살인이나 강간 등 강력범죄는 그렇다 치더라도, 먹을 것이 없어 남의 물건에 손을 댄 생계형 범죄까지 엄하게 처벌한 결과였다. 전쟁이 일어나면 이들이 총구를 남쪽이 아닌 북쪽으로 돌릴 수 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일심단결을 자랑하는 북한의 현실이 이렇다는 걸 보고받은 김정일은 지시를 내렸다. ‘사회주의의 적을 많이 만들지 말라’는 지시였다. 구체적으로는 형법을 수정해 형량을 축소하도록 했다.
 
  사법, 검찰, 보안부에서 사람들을 뽑아 ‘형법요해그룹’을 만들었다. 일종의 법개정위원회였다. 거의 1년간 토의한 끝에 형량을 대폭 줄인 형법이 탄생했다. 2011년부터 개정된 형사소송법으로 재판이 진행됐다.
 
  ‘불패의 일심단결’로 이루어졌다는 인민군대의 실상은 어떨까. 북한의 인민군대는 ‘관병일치’를 군의 기본목표로 내세운다. 군관(장교)과 병사들과의 일치단결이 보장되어야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다며, 인민군대에서는 그것이 이뤄졌다고 선전하고 있다.
 
  실제로 그럴까? ‘전쟁이 일어나면 자신들을 악착같이 착취한 사관들과 지휘관들을 먼저 쏘아 죽이겠다’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병사들이 있을 정도다.
 
  북한에서는 병사들을 일당백의 용사로 키운다고 하면서도 제대로 먹이지도 않고 강도 높은 훈련에 내몰고, 국가대상건설과제가 제기되면 연약한 병사들이 밤낮으로 공사 현장에 내몰린 지 오래다. 일반 병사들은 영양실조로 병원에 입원하고, 약도 없어 부모들이 약과 영양식을 가져다 먹이면서 겨우겨우 10년의 군복무 기간을 버텨내는 현실이다. 당연히 탈영을 시도하는 병사들이 많다. 어떻게 해서라도 군복무를 피해보려고 하지만, 의무복무제도라고 하면서 무조건적인 군복무를 강요하니 주민들의 불만은 날로 높아지는 현실이다.
 
  성분이 좋은 집안에서도 군복무 제도에 대한 반감은 높다. 북한에서 계급배경이 좋고 육체적 조건도 좋은 집안의 자녀들은 전연부대(전방부대)로 간다. 전연부대에서 자기의 소대장과 분대장을 쏘아 죽이고 남북 분계선을 넘어 투항하는 병사가 등장했다. 전방이 이런데 후방은 어떨까.
 
 
  군대에서 뇌물 안 바치면 맞아 죽어
 
지난 2009년 김정일이 북한군 제7보병사단을 시찰하는 모습. 김정일은 인민군대를 ‘토벌대’라 비난하며 기강을 잡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군관(장교)들 내부의 상황도 심각하다. 군 지휘관들과 정치 지휘관들의 악화상태는 이미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군 지휘관들은 병사들에게 명령을 하여 훈련을 시키고 일을 시키는 것밖에 하지 않지만, 정치 지휘관들의 권한은 막강하다. 북한군이 가장 중요시하는 입당문제, 승급문제, 표창문제, 제대 후 대학 가는 문제, 군관학교로 가는 문제 등 중요사업을 다룬다. 병사들과 그 부모들이 정치 지휘관들에게 뇌물을 많이 바치고 그들의 말만 따르기 일쑤다. 군 지휘관들은 부대관리가 제대로 안 되는 것의 원흉으로 정치 지휘관들을 지목하고 있다.
 
  북한의 고위 간부들도 이런 상황을 다 알고 있다. 그러기에 군사열병식에도 부대병사들이 아닌 각 군사학교 학생들 위주로 열병식에 내보낸다. 부대병사들이 참가하는 경우에는 정치부와 보위부가 철저하게 검토한 뒤에 참가시킨다. 일반 사병들은 입당을 허가받는 전제하에 모든 고생을 극복하며 참가한다.
 
  노동당에 입당하려고 하는 것은 당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서가 아니다. 군대에서는 입당을 해야 좋은 곳에 자대배치를 받을 수 있고 대학에 갈 수 있으며 간부로 승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려면 뇌물을 주고라도 입당을 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집에서 부모들이 보내주는 돈으로는 뇌물을 바치기에 부족하니, 부대주둔지구 마을 집들을 습격하는 일이 빈번하다. 돈을 빼앗고 물자를 강탈한다. 일반 주민들은 자기 자식들도 군대에 가 있지만 군대만 보면 치를 떨고 피하곤 한다. 신고받고 나온 보안원들이나 경무부(헌병)에 잡혀 군복무를 더 이상 못 하고 교화소에 가는 군인들이 많다. 통신병들이 통신설비를 보호하지 않고 오히려 통신선을 절단하여 그 속에 있는 구리를 팔아 돈과 물자를 정치 지휘관들에게 뇌물로 바치다가 들통이 나서 교화소로 가기도 한다.
 
  강도질을 해서라도 뇌물을 바쳐야 하는 이유는 뭘까. 뇌물을 적당히라도 바치지 않으면 부대에서 왕따를 당해 같은 분대병사들이나 지휘관들에게 계속 매를 맞아 죽게 되기도 한다.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도맡아서 하게 되기 때문에 병에 걸려 죽는 일도 잦다.
 
  김정일이 이런 보고를 받고, ‘인민을 보호하는 군대가 아니고 인민을 약탈하는 토벌대다’라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아무리 군대의 기강을 바로잡으라고 호통을 쳐도 이미 군인들의 식생활도 보장하지 못하고 영양실조 환자가 많이 배출되고 있는 북한의 현실은 바뀌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들 때문에 북한의 당, 무력부, 보위부, 보안부와 정권기관들 사이의 알력 관계는 이미 그 한계를 넘었다. 반목이 무장충돌로 이어지고 다시 반목이 깊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다.
 
  군인들과 보안부 사이에 수없이 총격전이 발생했다. 많은 사람이 죽었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오죽하면 ‘군대와 보안부는 고양이와 쥐 사이’라는 야유가 나오는 형편이다.
 
  북한 군인들은 보안원들을 경원시한다. 간부 집에 태어나 자기들처럼 힘들게 군복무를 하지 않고 편하게 보초나 서고 인민들을 단속하여 뇌물이나 받아먹는 아주 나쁜 인간들이라고 생각한다.
 
  2014년 8월 말, 강원도에서 인민보안부 7총국(공병총국) 병사들과 인민무력부 군인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3명이 맞아 죽고 총격전 직전까지 갈 정도로 심각했다.
 
  이 사건으로 보안부장 최부일이 징계를 받았다. 이미 평양시 평천구역에서 일어난 아파트 붕괴 사건의 책임을 물어 별이 하나 강직되어 상장(중장)이었는데, 여기에 다시 두 개가 더 강직되어 소장(준장)이 됐다. 이것이 북한식 일심단결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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