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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김철진의 평양실록 ⑨ 날로 진화하는 북한의 뇌물 문화

“간부들, 현직 있을 때 30만 달러는 모아라”

정리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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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뇌물 횡행하기 시작
⊙ “입당하려면 남성은 돈과 충성, 여성은 돈과 몸 바쳐라”
⊙ 뇌물로 재테크하는 간부들, 고리대금업, 아파트 분양권 투기, 골동품 밀수까지
⊙ 신라 금동 불상 20만 달러 받고 중국인에 넘겼다가 3대가 총살
쿠웨이트의 한 시장에서 물건을 살펴보는 북한 남성들. 무역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간부들에게 상시적으로 뇌물을 바쳐야 한다.
  북한의 ‘뇌물 문화’가 날로 번창하고 있다. 특히 평양에서 뇌물을 건네지 않고 살기란 힘든 일이 되어버렸다.
 
  사실 예전에는 뇌물 문제가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다. 간부들이 돈에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고 배급만으로 살곤 했다. 뇌물을 받아도 담배나 술, 식료품 수준이었다. 달러도 ‘미국놈들의 돈’이라며 안 좋게 여기기까지 했다. 살기가 지금처럼 어렵지 않았던 때문도 있겠지만, 김일성과 김정일이 한 말이 크게 작용했다. ‘노년이 되어 퇴직해도 당에서 다 돌봐준다’는 말을 믿은 게다.
 
  1980년대부터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호텔과 외국물품 전문상점에서 외국에서 들어온 각종 물품을 팔기 시작했다. 고가의 고급 물품들도 들어왔다. 외화가 있어야 구입할 수 있는 물건들이었다. 자연스럽게 달러에 대한 욕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뇌물에 대한 반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성(城) 쌓고 남은 돌이 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노년까지 책임져 주겠다는 김일성, 김정일의 말을 믿었던 퇴직 간부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이들은 자신의 후임인 현직 간부들을 우연이라도 만나면, ‘우리처럼 속고 살지 말고 권력을 손에 쥐고 있을 때 노후 준비를 해놓고 자녀들의 장래 문제도 해결해 놔라’고 말하곤 했다.
 
 
  고난의 행군 이후 뇌물 횡행
 
  1995년, 일명 ‘고난의 행군’이 시작됐다.
 
  ‘뇌물을 받으면 좋다’가 아니라 ‘뇌물을 받아야만 한다’는 사고가 간부들 사이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고난의 행군 기간 동안 사실 고위 간부들은 사는 데 크게 문제가 없었다. 매일 중앙당재정경리부에서 부식물을 공급해 줬다. 친척들도 거의 비슷비슷하게 중견 간부 자리에 있으니 이들에게는 고난의 행군이 크게 와닿지 않는 문제였다.
 
  국가 배급제로 살아오던 하급 간부들과 일반 북한 주민들의 상황은 달랐다. 배급이 중단되고 굶주림이 시작되자, 이들은 일가친척 중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동냥을 하기 시작하였다. 중급에 있는 간부라도 막상 친척들에게 도움을 줄 수는 없었다. 가족 수에 딱 맞춰 식료품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고난 시기가 점점 길어지면서 나중엔 이들의 생활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시장은 점점 활성화됐다. 돈이 있는 사람은 식량을 구할 수 있었다. 간부들은 닥치는 대로 뇌물을 받기 시작했다. ‘돈이 없으면 환금성이 있는 담배나 술이라도 내놓으라’고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뇌물 중 일부는 상급 간부에게 가져다 바쳤다. 그래야 나중에 문제가 되면 상사가 방패 역할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쉽고 안전하게 뇌물을 받을 수 있는 간부들은 당비서들이다. 중앙과 지방, 각이한 당, 군, 정권기관, 공장, 기업소 등 당비서들은 각종 기관에 다 나와 있다. 북한에서는 우선은 당에 입당을 해야 ‘사람값’에도 들고 간부로 출세할 수 있다. 당비서는 입당시킬 수 있는 권한을 비롯한 표창 추천, 대학 추천 등 각종 권력을 가지고 있다. 간부들의 인사권한도 갖고 있다. 이들이 일상적으로 뇌물을 받을 수 있는 이유다.
 
  오가는 뇌물은 돈뿐이 아니다. 북한에서는 ‘당에 입당하려면 남자는 돈과 충성을 바치고, 여자는 몸과 돈을 바쳐야 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돈다. 심지어 중앙당에서 ‘당비서들 사무실에 있는 침대를 다 없애라’는 지시가 내려온 적도 있다. 이 때문에 한때 모든 사무실에서 침대가 사라졌다가 슬그머니 다시 돌아왔다. 당비서들이 밤늦게까지 일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침대에서 입당을 미끼로 한 성(性) 상납이 이뤄지는 건 물론이다. 최근에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안 띄도록 주로 호텔이나 초대소를 많이 이용한다.
 
 
  1만 달러 내야 김일성대 입학
 
  둘째, 무역업, 외화벌이 종사자도 훌륭한 ‘돈줄’이다. 보안부와 보위부가 해당 기관인데, 무역기관이나 외화벌이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평상시 감시하다가, 돈을 좀 벌었을 것 같다는 감이 오면 잡아서 뇌물을 받고 놓아주는 수법이다. 각 기관이나 회사에서 무역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외국에 나갈 때마다 중앙당 간부부와 보위부, 보안부 사람들에게 약 1000달러를 뇌물로 바친다. 그걸 메우기 위해 외국에서 물품을 사올 때 물품가를 높게 붙인 허위영수증을 받아 온다.
 
  2000년 있었던 일이다. 당시 체신상김학섭이 스위스에 가서 통신설비를 사왔다. 구입가격을 부풀려 70만 달러를 사취했다. 김학섭은 이 돈을 스위스은행에 자기 개인소유로 예금해 놓았다. 이게 발각돼 사형을 당했다.
 
  2002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무역성 사람들이 독일에 가서 폐차 직전의 지하철도 전차를 구입했다. 이걸 내부 부속품을 교체하고 도색을 새로 해서 들여온 다음, 실제 구입가보다 훨씬 많은 돈을 당에 청구했다. 이게 드러나 ‘당 자금을 사기해 먹은 죄’로 담당자 두 명이 사형을 당했다.
 
  ‘색TV(컬러TV) 사건’도 있었다. 평양시 평천구역에는 각종 예술작품 제작사인 만수대 창작사라는 기관이 있다. 2004년 이곳의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전 직원에게 색 TV를 한 대씩 선물로 주기로 했다. 백호무역회사 직원들이 TV를 사오기 위해 중국으로 나갔다. 이들은 중국산 ‘창홍’표 중고TV를 헐값에 샀다. 중국 사람들과 짜고 마치 새것을 산 것처럼 영수증을 발급받았다. 이게 적발돼 역시 사형을 당했다.
 
  당비서, 담당보안원, 보위원의 보증서가 없으면 외국에 못 나가기 때문에 무역이나 외화벌이하는 사람들은 상시적으로 돈을 바쳐야 한다.
 
  셋째, 교화소에서도 뇌물이 자주 오간다. 먹고살기 힘들어지면서 주민들 사이에 범죄가 늘어났다. 처벌은 철저히 ‘유전무죄 무전유죄’다. 돈이 있어 뇌물을 바친 사람은 예심에 넘어가고 재판이 진행되기 전에 ‘교양처리’ 처분을 받고 나올 수 있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할 수 없이 ‘법대로’ 재판받고 교화소에 간다.
 
  문제는 식사다. 주는 밥이라야 옥수수를 그냥 통째로 분쇄해 그걸로 만든 높이 3cm, 둘레 7cm 정도 되는 주먹밥 하나가 다다. 매끼 한 개씩 받는다. 2달에 한 번이라도 가족들이 면회 가서 음식을 넣어주지 않으면 영양실조로 죽게 된다. 할 수 없이 빚을 내서라도 뇌물을 들고 간부들을 찾아간다.
 
  교화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대략 1년에 1000달러를 내면 된다고 보면 된다. 즉 10년형을 받았으면 1만 달러를 바친다. 뇌물이 건너가면, 병보석으로 가석방된다. 1년 후에는 교화소 완전 출소증을 발부해 준다.
 
  넷째, 군입대 관련 뇌물이다. 매해 3~5월 고등중학교 졸업생들의 군대초모가 진행된다. 군대 간부들의 주머니가 돈으로 채워지는 기간이다. 군대에 가면 멀쩡했던 자식도 영양실조로 픽픽 쓰러지게 되니, 부모들은 계속 부대에 면회를 가거나 돈을 보내줄 수밖에 없다. 고위 간부들이나 중견 간부들의 자식들은 권력과 돈을 동원해 자식들을 좋은 곳으로 보낸다. 뇌물을 받으며 살 수 있는 부대나 보위사령부, 보위부 초소 등지다. 일반 주민들은 자식을 죽게 할 수 없으니, 식량 사정이 조금이라도 나은 공군이나 해군으로 보내려고 뇌물을 바친다. 아니면 집에서 가까운 곳에라도 보내서 출장증명서 없이 쉽게 면회 갈 수 있도록 뇌물을 바친다.
 
  다섯째, 입학 및 취직이다. 김일성종합대학, 외국어대학, 김책공업대학 등 일류급 대학에 자녀들을 입학시키려면 최소한 1만 달러를 중앙당이나 담당 보위부, 보안부, 대학 간부들에게 바쳐야 한다. 교원들도 돈을 받고 입학시험문제를 알려준다. 입학 후에도 뇌물은 계속 오간다. 돈을 주면 결석해도 출석했다고 기록을 남겨준다. 매 학기 시험문제도 돈으로 살 수 있다.
 
  외국에 노동자로 파견되려면 뇌물이 필수다. 북한에서는 무슨 일을 해도 월급이 높지 않다. 중국이나 러시아를 비롯한 외국 파견 노동자에 대한 수요가 높은 이유다. 500에서 800달러를 뇌물로 바치면 파견 나갈 수 있다. 돈을 더 벌 수 있는 리비아나 시리아로 파견되려면 1000달러 이상 바쳐야 한다.
 
 
  북한에도 부동산 투기 바람
 
  마지막으로 아파트 분양 관련 뇌물이 있다. 최근 북한에서도 ‘아파트 투기’가 쏠쏠하게 돈이 되는 분야로 인식되고 있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아파트 건설부지를 승인받은 다음, 아파트를 지어서 분양한다. 이 과정을 담당하는 행정일꾼들은 뇌물로 큰돈을 벌 수 있다.
 
  새집을 사거나 작은 집에서 큰 집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집값을 제외하고 약 3000달러를 뇌물로 바쳐야 한다. 큰 집에서 작은 집으로 이사 가는 사람들은 돈이 없는 사람들이니, 이들은 약 1000달러만 내면 된다. 뇌물을 바쳐야 각 도, 시, 군 인민위원회 주택 배정부에서 입사증을 내주고, 주택 심사소에서 경유도장을 찍어준다. 입사증은 일종의 거주승인 증서라고 보면 된다.
 
  보안부 간부들은 거주승인을 가지고 돈벌이를 한다. 평양시 거주승인은 1만5000~3만 달러까지 받고, 평안북도 신의주시는 1만 달러 정도를 받는다. 평안남도 평성시·남포시, 강원도 원산시, 황해남도 해주시처럼 사람이 먹고살 수 있는 직업을 구할 수 있고 자녀들을 공부시킬 수 있는 도시에서 살려면 5000~8000달러를 내야 한다. 평양시의 입사증은 F4용지만 한 입사증에 평양시 거주승인 410호와 평양시 30호 등 승인도장이 14개가 찍혀 있다.
 
  뇌물이 모이면 이걸로 ‘재테크’도 한다. 자기 가족을 직접 내세우지는 못하고 가장 가까운 형제들이나 친구를 내세워 돈이 필요한 생산 공장이나 무역회사, 외화벌이 기관에 투자를 한다. 일종의 고리대금업인데 한 달에 30%의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어디에 아파트가 지어진다고 하면, 건설이 시작될 때 한 주택에 5000~ 8000달러를 투자한다. 아파트가 완공되면 ‘로열층’을 분양받아 2만~3만 달러를 받고 파는 식이다. 최근에는 북한에서도 집을 크게 짓고 있다. 그러면서 가격도 올랐다. 북한식으로 약 200평방, 즉 한국식으로 70평 정도의 집을 사려면 5만 달러가량을 내야 한다.
 
 
  신라 불상 밀수했다가 3대가 총살
 
  유물이나 골동품으로 돈벌이를 하기도 한다. 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까지는 고려청자나 조선백자, 금불상 등 각종 골동품이 인기 거래품목이었다. 이걸 헐값에 산 다음 중국에 가져 나가서 비싸게 팔곤 했다.
 
  골동품 도굴자들은 직접 중국이나 외국에 나가서 팔 수 없기 때문에 간부들에게 판다. 간부들은 이걸 헐값에 사서 외국에 직접 가지고 나간다. 높은 가격을 받는 건 물론이다.
 
  2004년 국가과학원 부원이 직접 밀수에 가담한 사건이 유명하다. 이 부원은 간 크게도 평양의 김일성광장 앞에 있는 중앙역사박물관에 가서 신라시기 금불상 9개(3개는 진품, 6개는 모조품)를 훔쳤다. 이 중 진품 1개를 함경북도 무산군으로 들고 간 다음, 중국 사람에게 팔았다. 무려 20만 달러를 받았다. 발각되어 그 집안의 3대가 총살됐다.
 
  최근에는 얼음(아이스)이라고 하는 마약과 덴다(헤로인)가 인기 ‘외화벌이’ 품목이다. 마약은 보통 국가안전보위부 312조와 보위사령부 31부 사람들이 외국에 가지고 나가 판다. 비밀리에 진행되는 일이라 영수증이 있을 수 없다. 거액을 횡령할 수 있는 이유다. 일부는 물론 상급 간부에게 뇌물로 바친다.
 
  뇌물에도 규칙이 있다. 꼭 미국 달러 혹은 유로화, 중국 돈으로만 받는다. 북한의 이상한 처벌 규정 때문이다. 현재 달러화와 북한 돈의 환율은 1달러당 북한 돈 8000원 정도다. 법적으로는 1달러당 북한 돈 120원으로 계산된다. 이 말은, 뇌물을 받다가 잡혀도 어느 화폐로 받았느냐에 따라 형량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1000달러는 실질 환율은 800만원이지만 법적으로는 12만원이다. 12만원은 별거 아닐 수 있어도 800만원을 뇌물로 받으면 특대형 범죄로 중형을 받게 된다.
 
  뇌물을 너무 많이 받으면 보관하는 것도 문제다. 강원도 당 책임비서를 하던 림형규 사례가 그 예다. 림형규는 집에 무려 170만 달러를 보관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족들이 실수를 해 이게 노출이 되고 말았다. 림형규는 결국 체포되어 사형됐다. 국정원에서 공작자금을 받은 간첩이라는 게 그의 혐의였다.
 
  전력공업상을 하던 리동춘은 90만 달러를 집에 보관했다가 역시 가족의 실수로 걸리고 말았다. 그와 가족들은 인민보안부 교화국에서 관리하는 18호관리소로 추방됐다.
 
  이후 간부들은 뇌물이 모이면 절대로 집에 보관하지 않는다. 가족들에게도 숨기고 오직 자기만이 아는 장소에 은닉한다. 돈 앞에서는 자식들과 심지어 30~40년을 같이 살아온 부인도 절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게 간부들의 생각이다.
 
  뇌물을 바치는 방법으로는 주로 담배가 애용된다. 김정일이 ‘간부들이 아랫사람들에게서 받는 담배나 술은 뇌물이 아니고 도덕이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담뱃갑의 알맹이를 빼고 100달러 지폐를 말아 넣으면 담배 한 갑에 2000달러를 넣을 수 있다.
 
  지금 북한에서는 ‘간부들은 현직에 있을 때 최소한 30만 달러를 장만해 놔야 한다’는 게 당연한 얘기처럼 통용된다. 자녀들이 결혼할 때 집 한 채씩 마련해 주고 노후 준비를 하려면 그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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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연    (2018-02-23) 찬성 : 73   반대 : 108
북한에서 뇌물문화가 본격화가 된게 1984년 합영법이 발표된직후로 추정된다!!!! 그전까지는 고위간부들조차 뇌물이 뭔지도 몰랐다고 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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