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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김철진의 평양실록 ⑧ 북한의 공개 처형 전격 공개

“범인 처형을 남파 간첩 살인 훈련으로 활용”

정리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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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월, 원산 김일성 동상에 페인트 뿌리려던 주민 공개 총살
⊙ 고위층 가족이 연이어 범죄 저지르면, 생체 실험하는 83호 병원으로 보내
⊙ ‘공개 재판에서 죄 인정하면 형 감해준다’ 꼬드긴 다음 인정하면 공개 총살
⊙ 비공개 처형 과정은 남파공작원 살인 훈련으로 활용

[편집자 주]
종전 후 62년, 그 세월 동안 평양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김철진씨는 북한의 당과 군을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남으로 넘어온 탈북자다. 평양에서 그가 직접 목격한 갖가지 사건들에 대한 그의 증언을 《월간조선》이 입수해 연재한다. 이는 후일 통일 한국이 써나갈 새로운 대한민국 현대사의 사초로 활용될 수 있을 터다. 사실적인 기록을 위해, 읽는 데 문제가 되지 않는 한 북한말 표현을 고치지 않았다.
지난 2005년 3월 1일 회령시에서 공개처형이 진행됐다. 북한 주민들이 동원된 모습이다.
  지난해 12월 7일, 강원도 원산시 갈마시장에서 또 한 명의 북한 주민이 총살을 당했다. 공개 총살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김정은이 집권한 지 3년이 지났다. 평양 시민, 소위 특별시민이 아닌 일반 주민들의 생활은 여전히 곤궁하다. 상황이 이런데 김정은은 강원도 마식령에 초호화 스키장을 짓는 데 신경을 쓰더니, 이제는 아버지 김정일의 동상을 여기저기 세우는 데 열심이다.
 
  동상을 세우기 위해서는 동(구리)이 필요하다. 각 기관, 기업소와 인민반을 통해 충성심을 본다면서 동을 바치라는 명령이 거듭 내려왔다. 심지어는 전국의 유치원생부터 대학생 등 학생들한테까지 재촉이 이어질 정도였다. 아니 집 마당에 구리 광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동을 어디서 자꾸 구하겠는가. 주민들 사이에서 원성이 높아졌다.
 
  그러던 2014년 10월의 어느 날, 원산에 사는 한 주민 A씨가 김일성 동상에 화풀이를 할 계획을 세웠다. 폭약은 구하기 힘드니 뼁끼(페인트) 한 통을 구해놓았다. 그는 개선동에 있는 김일성 동상 주변을 정찰해 봤다. 낮에만 보초가 있고 밤에는 보초가 보이지 않았다.
 
  A씨는 밤을 틈타 뼁끼를 들고 김일성 동상으로 접근했다. 그러나 곧 잠복근무 중이던 보안원에게 잡히고 말았다. 보안원이 동상을 지키기 위해 낮에는 공개적으로 보초를 서지만 밤에는 몸을 숨기고 잠복근무를 선다는 걸 몰랐던 것이다.
 
  북한 전역에 김일성 동상이 있지만 개선동에 있는 김일성 동상은 의미가 남다른 동상이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광복한 후 김일성은 기차를 타고 러시아에서 북한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일본 패잔병들이 기차 터널을 폭파했다. 김일성은 다시 러시아로 돌아가 군함을 타고 원산항으로 들어왔다. 이걸 기념한다고 하면서 항구가 있는 지역의 이름을 ‘개선동’으로 바꿨다. 김일성 동상도 크게 세웠다.
 
  그런 의미가 있는 동상에 뼁끼를 뿌리려 한 것이다. 보안부에 구속되어 예심을 받으면서 A씨는 아무래도 죽으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그래서 죽는 김에 할 말을 다 하기로 했다.
 
  ‘김정은과 당은 말로만 인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한다. 김정은은 정권을 잡고는 자기 아버지 김정일을 우상화하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동상을 세우는데 그 돈이면 북한 사람들이 이밥(쌀밥)에 고깃국을 먹을 수 있다.’
 
 
  공개 총살로 끝난 뼁끼 사건
 
  결국 A씨의 동상 뼁끼 사건은 특대사건으로 인민보안부에 보고됐다. 인민보안부 예심국에서 직접 내려와 예심을 진행했다. 김정은에게까지 보고가 올라갔다. ‘감히 조선의 태양이신 김일성의 동상을 훼손하려고 한 반당, 반혁명분자’로 낙인찍혔고, A씨는 원산시 주민들 앞에서 공개 총살을 당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가족과 친척들 모두 인민보안부 교화국에서 관리하는 18호 관리소로 보내졌다.
 
  18호 관리소가 어떤 곳인가. 원래 18호 관리소는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14호 관리소와 마주하고 있었다. 18호 관리소에서 나오는 석탄과 나무는 각각 채광량이 많고 질이 좋기로 유명했다. 인민보안부는 석탄과 나무를 싼 가격에 중국으로 수출해 수입을 올렸다. 내각에서는 이걸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북창화력발전소는 평양시 지하철도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였는데, 18호 관리소에서 나오는 석탄과 나무를 북창화력발전소로 공급하기 위해 내각은 김정일에게 몇 번이나 소를 올렸다. 결국 내각 석탄공업성에서 18호 관리소가 있던 봉창지구의 관리를 이전받았다. 18호 관리소는 개천시로 이주했다. 지금은 시멘트를 위주로 생산하고 있다.
 
  A씨를 공개 총살할 때 강원도와 원산시 전역에 사는 주민들 수천 명이 총살을 지켜볼 것을 명령받았다고 한다. 일장 연설이 시작됐다. 이런 내용이었다.
 
  ‘당의 품속에서 자라면서, 키워준 은혜를 망각하고 조선의 최고 존엄인 김일성의 동상을 남조선정보기관의 사촉을 받고 훼손하려 했다.’
 
  한국 정부가 배후에 있다고 들이민 것이다. 북한이 흔히 내세우는 논리다. 원래 북한에서 교양을 받은 주민들은 다 충성분자인데, 간혹 나타나는 배신자들은 남한의 사주를 받은 결과라는 식이다.
 
  가혹한 인권유린행위로 세계가 북한의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에 기소하자고 하고 있다. 북한은 제대로 된 재판 과정도 없이 한 사람의 주민을 이런 식으로 공개 총살해 버렸다. 그러면 북한의 재판 과정 자체는 공정한가? 살펴보자.
 
 
  북한의 재판 과정
 
  북한에서 재판 과정은 3단계로 나눠져 있다. 각 구역, 군 재판소가 1단계 재판소이고, 평양시와 각도 재판소가 2차 단계 재판소다. 최고재판소가 최종심이다. 원래는 매 구역, 군에 재판소가 있는 게 아니라, 3~5개 구역, 군을 묶어 지구재판소가 있었다. 일명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면서 각이한 형태의 범죄 사건이 많이 발생하고, 이혼율이 많아지면서 형사재판과 민사재판 사건이 많이 진행되었다. 그런 이유로 2000년도부터 매 구역, 군에 재판소가 설치됐다.
 
  형사재판은 각이한 범죄를 저지르고 보안서나 검찰에서 예심을 받은 사람들을 재판한다. 민사재판은 이혼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돈을 대부하고 돌려주지 않는 등의 민사 사건을 재판소나 변호사에게 직접 고소해 진행하는 재판이다.
 
  구역, 군보안서의 예심과와 검찰소에서 사건을 취급하면 구역, 군 재판소에서 재판이 진행된다. 재판에서 본인이 구형받은 형기가 억울하다고 상소를 하면 도 재판소로 이송되어 도 보안국이나 도 검찰소에서 재 예심을 하고 2차 재판이 진행된다.
 
  도 재판에서 받은 구형에 다시 상소하면 최고재판소로 이송된다. 이때는 인민보안부 예심국이나 중앙검찰소에서 다시 재 예심을 하는데, 최고재판소는 판결을 할 때 본 재판 결과에 대해 상소할 수 없다는 것을 미리 선언한다.
 
  여기에서 알아둬야 할 게 있다. 북한에서는 일단 상소를 하여 범죄인이 무죄로 되거나 형벌이 낮아지면, 그 전에 체포한 수사과나 감찰과 보안원이나 혹은 검찰소의 검사와 예심을 진행한 예심원이 철직된다. 즉 본인이 조사한 범인이 상소 결과 형량이 낮아지면 자리를 내놔야 한다는 얘기다. 자연히 상소를 못 하도록 압박을 하게 된다.
 
 
  상소하면 형량 2배 뻥튀기
 
  피의자가 무조건 상소를 해 2차 단계까지 간다고 치자. 초록은 동색이라고 재판소가 피의자의 편을 들어줄 리가 없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자기 범죄에 대한 반성의 기미가 전혀 없다’는 이유를 들어, 1차 재판에서 받은 구형보다 2배까지의 중형을 선고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 때문에 사실상 상소는 거의 못 한다고 보면 된다.
 
  상소를 하기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구해 재판 전에 판사나 검사에게 뇌물을 먹이는 게 좋다. 가장 큰 효과를 얻으려면 재판으로 넘어가기 전에 담당 예심원에게 뇌물을 먹이는 게 좋다. 뇌물을 적절한 사람에게 잘 전달하면, 심지어 살인자도 교양처리 혹은 노동단련대로 끝낼 수 있다.
 
  범죄자를 체포하면, 가족의 신원을 먼저 확인한다. 직계형제 중에 중앙당, 국가안전보위부, 인민보안부, 미그-21 이상 비행사, 잠수함이나 974친위대에서 근무하는 사람, 재일본 조총련 간부와 친척이 되는 사람들이 있으면 일단 먼저 중앙당에 보고를 해야 한다.
 
  위의 분야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형제들이나 가까운 친척들 중에 교화형을 받으면 철직 제대된다. 그 사람을 철직시킬 상황이 아니라면, 아무리 중범죄자라도 가족 덕에 한번은 교양처리를 받고 나올 수 있다. 다시 재범을 하면 그 집 가문의 동의를 받아 가족명단에서 삭제하고 83호 병원으로 보낸다.
 
  83호 병원은 인체해부실험을 진행하는 곳이다. 형제들 중에 계속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있으면 일단 자기네가 징계를 받지 않고 직위 유지를 위해 가문에서 삭제한다는 보증서를 쓰고 보내게 된다. 혹은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거나, 나중에 심하게 앓거나 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된 사람, 북한식으로 표현하면 ‘사람 구실을 하기 힘든 사람’이 되면 그 형제들은 ‘이 사람을 더는 찾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83호 병원으로 보낸다. 특히 평양 사람들은 평양에서 지방으로 이주되지 않기 위해 이런 관행에 철저히 따른다. 한번 83호 병원에 가면 다시는 살아서 나오지 못한다.
 
 
  변호사는 있으나 마나
 
  북한의 모든 사무실과 주민들의 살림집을 비롯해 모든 방과 회의장들에는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가 걸려 있지만 재판장에는 국장만 걸려 있다. 구역, 군 재판소에는 판사 겸 소장 한 명과 전문판사 1명, 서기 2명 외에 직원들이 몇 명 있고 변호사 1명이 있다. 대체로 전문판사가 재판을 진행하고 소장이 특별히 부탁받은 것은 직접 재판을 진행한다.
 
  형사재판이나 민사재판을 진행할 때에는 판사와 인민참심원 두 명이 기본 앞 석에 앉는다.
 
  인민참심원은 구역, 군 당위원회에서 공장, 기업소들에서 성실하다고 평가되는 노동자, 농민, 일반사무원들이나 인민반장들 가운데 선출해 임명한다.
 
  아래 석에 서기가 앉아 재판 과정을 기록하고, 기소검사가 좌측에 앉는다. 우측에 변호사가 앉고 판사 앞에 죄인이 재판 전 과정 서 있으며 양옆에 두 명의 계호보안원들이 앉아 있다가 피고가 혹시라도 반항을 하면 제지시킨다.
 
  대체로 먼저 판사가 지금부터 피고 김모의 범죄 사건에 대한 재판을 시작한다고 선포하고 기소검사가 피고의 범죄사실을 읽는다. 그리고 피고의 범죄가 적용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형법 몇 항, 몇 조에 의하여 몇 년의 교화형에 처할 것을 제기한다고 발언한다.
 
  그다음 변호사가 발언하는데 변호사는 피고에게 검사가 말한 모든 범죄사실을 인정하는가 질문하고 인정한다고 하면 본인이 범죄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에 최소의 형량을 판결해 달라고 형식상 말하는 것으로 끝낸다.
 
  북한에서는 모든 재판에서 변호사의 역할은 전혀 없다.
 
  판사가 잠시 휴회를 선포하고 나가서 인민참심원들과 검사와 같이 약 5분 동안 토론을 하고 들어와 거의 대체로 검사가 제기한 대로 형벌을 적용하는 것으로 재판이 끝난다. 공개 재판이 아니고는 재판장에 다른 사람이 들어갈 수 없다. 판사는 판결을 하고 본 재판에 대하여 상소할 수 있다고 말하며 상소기일은 15일을 준다. 15일이 지나면 구류되어 있던 구류장에서 지정된 교화소로 이관된다.
 
  2008년 중앙통계국에서 중앙당 지시로 인구조사를 진행하면서 확인한 결과, 1995년 이후부터 식량공급이 되지 않아 먹고살기 위한 각종 범죄가 많이 일어났다. 평양시와 도 소재지인 도시를 제외한 북한의 모든 지방에서 40세 이상의 사람들 중 50% 정도가 교화소나 노동단련대 출소자들이었다.
 
  이런 형편이니 당과 보위부, 보안부, 사법검찰기관에 한을 품고 이제 전쟁이 일어나면 자기를 조사했었던 사람을 먼저 쏘아죽이겠다는 말이 나돌 정도에 이르렀다. 김정일은 새로운 형사소송법을 제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형량을 2배 정도 감하는 방향으로 법률이 개정됐다. 결국 2011년부터는 새로운 형사소송법으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간부들과 주민들이 반당, 반국가범죄를 감행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보는 이에게 막대한 공포를 주는 공개 재판과 공개 처형을 자주 진행한다.
 
  몇 가지 ‘치사’한 방법이 동원된다. 공개 재판을 하는 경우에는 재판소와 검찰소, 보안부에서 사전에 미리 짠 다음, 피고인에게 이런 제안을 한다.
 
  ‘주민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자기 범죄를 인정하고 반성을 잘하면 용서를 해주거나 형량을 감해주겠다.’
 
 
  드라마 CD 팔았다고 공개 총살
 
2005년 3월 1일 함북 회령 인근의 강변에서 탈북하려다 체포된 11명의 북한 주민이 공개재판장으로 끌려가는 모습.
  총살이나 교수형이 진행되려면 중앙검찰소와 최고재판소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일단 당 안전위원회에서 결정을 하고 중앙당에 문건을 올려보내면 거의 다 통과된다.
 
  실제 2010년 평양시 형제산구역 하당시장에서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집에서 컴퓨터로 복사하여 USB와 CD로 팔다가 잡힌 45세가량의 여성 B씨를 공개 재판한 적이 있다. 평양시 재판소 판사가 한 명, 인민참심원 두 명, 평양시 검찰소 여성검사 한 명, 평양시 변호사협회에서 변호사 한 명이 참가해 진행했다.
 
  그날은 오후 2시부터 시장을 파하게 하고, 평양시 보안국과 형제산구역 보안서에서 나온 수백 명의 보안원들이 임시로 차려놓은 공개재판장을 둘러쌌다. 5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수천 명의 주민들이 모여 공개 재판을 참관했다.
 
  공개 재판을 하기 10여 일 전부터 기관, 기업소와 인민반들에 공지해 공개 재판에 참가하라고 지시를 내린다. 많은 사람이 참석하도록 하기 위하여 공개 재판은 주로 일요일에 진행한다.
 
  공개재판장 옆에 주석단을 차려놓는데 그곳에는 평양시 당과 보안국 간부들이 앉아서 재판 과정을 지켜본다.
 
  B씨의 재판 과정을 보자. 재판을 시작한다고 판사가 개회사를 했다. 기소검사가 피고인의 죄행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서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복사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썩어빠진 남조선의 자본주의 생활 실상을 배포시키었다고 낭독했다.
 
  그다음 변호사가 피고인에게 자기의 범죄를 인정하는지 물었다. 그런 다음 왜 이런 범죄를 감행하게 되었는지 앞에 있는 사람들이 듣고 교훈으로 삼을 수 있도록 발언하라고 했다.
 
  피고인은 반성을 잘 하면 용서를 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수령님과 장군님이 내려주신 교시, 말씀과 당정책 학습에 충실히 따르지 않고 조직생활에도 성실히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극단한 개인이기주의에 물들어서 오직 돈밖에 몰랐습니다. 남조선 영화라는 것을 알면서도 복사하여 배포했습니다. 엄중한 범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그 어떠한 형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발언을 끝내고 피고인의 마이크가 회수됐다. B씨의 양옆은 두 명의 보안원이 지키고 있었다. 검사는 본인이 자기의 범죄를 다 시인하였다고 하면서 썩어빠진 남조선의 영화를 배포한 용서 못 할 범죄이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형법 몇 항, 몇 조와 인민보안부 포고 몇 호에 의하여 사형에 처할 것을 제기한다고 말했다.
 
  그 순간 B씨는 깜짝 놀랐다. 분명 죄를 인정하면 형을 감해준다는 약속을 받았기 때문이다. B씨는 발악을 하기 시작했다. 보안원들은 재판장 뒤에 임시로 설치한 가설막 안으로 피고인을 끌고 들어가 반죽음에 이를 정도로 때려서 입에 자갈을 물리고 눈까지 가린 다음 다시 끌고 나왔다.
 
  보안원들이 피고를 데리고 들어간 사이에 휴회를 선포하였던 재판관이 다시 나와 판결을 내렸다.
 
  “검사의 기소가 맞고 피고도 자기의 범죄를 시인하고 그 어떤 형벌도 달게 받겠다고 하였으니 앞으로도 이런 범죄가 나타나면 엄벌에 처한다. 피의자를 사형에 처한다. 본 재판에 대하여서는 상소를 할 수 없고 본 판결을 평양시 인민보안국에서 이 자리에서 즉시로 집행할 것을 위임한다.”
 
  공개 처형의 상황은 이렇게 이뤄진다. 개울 방향으로 말뚝을 박고 거기에 피고를 묶는다. 사형지휘관의 구령에 따라 3명의 보안원이 자동보총을 메고 피고인의 5m 정도 앞에 선다. 사형지휘관이 ‘사격준비’ 하고 구령을 외친 다음 ‘민족반역자 누구를 향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이름으로 단발로 쏴’ 하고 명령을 내린다. 가슴팍을 먼저 쏘고 배, 다리 순서로 각각 3발씩 쏘면 묶였던 끈이 끊어지면서 9발의 총알을 맞은 피고인이 쓰러진다.
 
  사형지휘관은 권총을 뽑아 범인에게 다가간다. 발로 차서 죽었는지를 확인하고 조금이라도 살았다고 생각되면 그 자리에서 머리에 7발을 쏘아 죽인다.
 
  보안원들이 와서 천으로 시체를 말아서 차에 싣고 지정된 장소에 가서 묻어버린다. 친척들에게도 그 위치를 알려주지 않게 되어 있다. 국가반역자로 처단되었기 때문에 추석 때에도 친척들이 제를 지내지 못하게 한다. 개죽음을 당한 후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매몰’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비공개 처형은 공작원 훈련 과정
 
  살인자들은 주로 교수형으로 처벌한다. B씨와 같은 방법으로 공개 재판을 한 다음, 교수형에 처한다고 판사가 판결하면 보안부에서 준비한 조립식 교수대를 그 자리에 세운다. 목을 10분 정도 매달아 죽이고 보안원들이 천으로 싸서 차에 싣고 가서 매몰해 버린다.
 
  이상은 모두 일반 인민들에 해당하는 얘기다. 당, 정부, 인민무력부, 보위부, 보안부 등 간부로 근무하던 사람들은 공개 총살을 하면 오히려 주민들에게 주는 영향이 나쁘다고 보고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비공개로 처형한다.
 
  평양시 순안구역 석박동에 있는 강건군관학교 사격장에서 해당 간부들의 참석하에 사형을 진행한다. 비공개로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특별재판소에서 나와 김정일이나 김정은의 크나큰 정치적 신임으로 간부로 임명되었으나 그 신임을 배반하였기 때문에 반당, 반혁명분자로 낙인하고 사형에 처한다고 공표를 한다. 사형은 대체로 보위부가 집행한다.
 
  사형지휘관의 구령에 군복을 입은 보위원 6명이 자동보총에 15발을 장약하고 나온다. 사형지휘관이 ‘반당, 반혁명분자 누구를 향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이름으로 점발로 쏴’ 하면, 1인당 15발씩 3번에 걸쳐 점발로 6명이 총 90발을 쏜다.
 
  그러나 공개 처형 대상이 아닌 사람은 보위부에서 사건 취급을 끝내고 대남, 대외 공작원이나 해외반탐보위원들이 칼로 찔러 죽이거나 몽둥이로 때려 죽이게 해 살인에 대한 담력 강화에 이용한다.
 
  그래야 공작을 나가서 사람을 죽여야 할 일이 있을 때 주저 없이 행동할 수 있기 때문에 훈련의 일환으로 진행한다. 곧 죽을 사람까지 끝까지 착취한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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