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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김철진의 평양실록 ⑥ 북한이 일본과 대화를 이어 가는 속내

“납북자 조사 미끼로 잇속 챙기려”

정리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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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희, 북·일회담 거세게 반대,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이 일본 정부로부터 돈을
    못 받아서 안 받은 줄 아는가?“
⊙ 북한의 일본인 특별조사위원회, 일본인 납북자가 아닌, 해방 후 귀국 못한 일본인 현황 조사 중
⊙ 자강도에 주둔했던 534부대는 일본 본토 공략 작전을 짜는 부대

[편집자 주]
종전 후 62년, 그 세월 동안 평양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김철진씨는 북한의 당과 군을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남으로 넘어온 탈북자다. 평양에서 그가 직접 목격한 갖가지 사건들에 대한 그의 증언을 《월간조선》이 입수해 연재한다. 이는 후일 통일 한국이 써 나갈 새로운 대한민국 현대사의 사초로 활용될 수 있을 터다. 사실적인 기록을 위해 읽는 데 문제가 되지 않는 한 북한말 표현을 고치지 않았다.
만경봉 92호는 1992년, 김일성의 80번째 생일을 기념해 조총련이 모금한 40억 엔으로 건조한 배다.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불구대천의 철천지 원수’. 북한에서 일본을 표현하는 말이다. 김정은(金正恩)이 전면에 나선 후 북한 체제에서 가장 크게 변화한 것엔 무엇이 있을까. 첫머리로 북·일관계를 꼽을 수 있을 터다. 일본을 적으로 규정하며 일본과의 직접 대화를 피하던 북한이 김정은 정권 들어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과 북·일 회담을 이어 가며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논의하는 북한의 속내를 잘 들여다봐야 한다.
 
 
  국제무대 데뷔하고 싶은 김정은
 
  곰곰이 따져 보자. 김정일(金正日)이 죽고 김정은이 최고지도자로 올라선 지 이제 만 3년이 지났다. 지난 3년간 김정은이 다른 나라의 정상과 회담을 한 적이 있는가? 은퇴한 농구선수 외에는 이렇다 할 실적이 없다.
 
  북한은 김정은을 정치 지도자로 국제무대에 데뷔시키고자 했다. 중국의 동의가 없어 여지껏 이루지 못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3년간 단 한 번도 김정은을 만나 주지 않았다.
 
  차히아긴 엘베그도르지 몽골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2013년 10월의 일이었다. 이때도 김정은은 끝내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시진핑 주석처럼 국제적으로 영향력이 큰 지도자를 먼저 만나려는 의도였다. 몽골 측에는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이 방북 일정 중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한 강연을 문제 삼았다. 엘베그도르지 대통령은 김일성종합대학에 가서 사회주의보다 자유민주주의가 더 좋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시 주석은 대한민국의 박근혜 대통령을 중국으로 초청하고 한국을 찾으면서도 북한과는 정상회담에 관한 그 어떤 제스처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북한은 대안으로 일본 아베 총리를 생각했다.
 
  일본 정부와 협상을 하다 보면 납북자 문제 해결에 열심인 아베 총리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과 회담을 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이었다. 북한이 일본에 요구한 것은 크게 5가지였다.
 
  첫째, 아베 총리가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과 공식회담을 할 것. 일본 총리의 방북이 전례가 없는 일은 아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는 지난 2002년과 2004년 북한을 방문했다. 두 차례의 방문 모두 납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데려오는 결과로 이어졌다.
 
  둘째, 지난 36년간의 일제강점기를 보상하는 차원에서 1차적으로 보상금 100억 달러를 지불할 것. 일본은 아직 공식적으로 북한 측에 일제강점 시기에 대한 배상금을 지급한 적이 없다.
 
  셋째, 도쿄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의 중앙본부 건물을 지켜 줄 것. 조총련은 수시로 북한에 통치자금을 송금하는 등 오랜 기간 북한 지도부의 든든한 지지층이었다. 지난 2006년 일본이 독자적 대북제재를 시행하면서 조총련 의장의 방북이 사실상 금지되면서 일본 내 조총련의 입지는 급속히 좁아졌다.
 
  최근에는 도쿄 지요다(千代田)구에 있는 조총련 중앙본부 건물이 경매로 넘어갔는데, 일본 정부가 방치할 경우 영영 되찾을 길이 없어질 상황이다. 북한 정권이 일본에 요구한 것도 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었다.
 
  넷째, 만경봉 92호를 비롯한 북한 선박들이 일본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할 것. 선박들의 입·출항이 자유로워지면 자연스럽게 북한의 대남, 대일공작 사업도 자유로워진다.
 
  다섯째, 조총련 간부들과 일본에 있는 재일동포들, 상인들이 북한에 자유롭게 드나들며 낙후한 북한 경제 사업에 자금과 발전된 설비들을 투자할 수 있도록 일본 정부가 승인할 것.
 
  이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와 한국 정부가 김정은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북한은 적국인 일본과도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전시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김경희, 北·日회담 완강히 반대
 
도쿄 지요다구에 있는 조총련 중앙본부 건물. 최근 일본 부동산 회사에 매각됐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 북한도 성의를 보여야 했다. 북한은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의지를 보여주고자 국방위원회 직속으로 일본인 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했다.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 서대하를 위원장으로, 부위원장으로는 국가안전보위부 반탐국장 김명철, 인민보안부 주민등록국장 박영식을 임명했다.
 
  일부 간부들은 반대를 했다. 그러나 북한이 내건 조건을 일본 측이 이행하고, 일본 총리가 일정한 액수의 돈을 가지고 평양으로 오면 약 30명 정도의 납북자를 인정할 의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물론 대남・대일공작 기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납북자들이 아닌, 사회에 나와 있는 일본인들에 한해서다.
 
  일본 측도 북한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이는 듯했다. 조총련 중앙 건물의 매각 과정을 중지하고, 조총련 간부들을 비롯한 재일동포들의 북한 방문을 승인했다. 만경봉 92호를 제외한 일부 북한 선박들의 일본 입·출항이 허가됐다. 그러나 북한은 만족하지 못했다. 일본 측의 성의가 부족하다고 봤다. 북·일회담은 성과 없이 흘러갔다. 결국 조총련 중앙본부 건물은 일본 부동산 회사에 매각됐다.
 
  고모인 김경희가 북·일회담에 크게 반대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김경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할아버지 김일성이나 아버지 김정일이 일본으로부터 돈을 받을 수 없어서 못 받은 줄 아는가. 일본과 조선은 대를 이어서도 풀 수 없는 피맺힌 숙적이다. 일본과의 납북자 해결을 위한 회담은 있을 수 없다.”
 
  고모의 뜻을 거스를 수 없는 김정은이 고민만 하고 결심을 하지 못해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말이 평양에는 퍼지고 있다.
 
 
  일본 본토 타격 목표하는 534부대
 
1990년 북한을 방문했던 가네마루 신 전 일본 부총리.
  김경희 말대로 북한과 일본의 관계는 접점이 없이 평행선만 그어 왔을까. 1990년 9월 일본 정치인 가네마루 신(金丸信, 전 일본 부총리)이 북한에 간 적이 있다. 이때의 가네마루와 김일성의 만남에 대해 중앙당 간부 강연에서는 이렇게 가르친다.
 
  가네마루 전 부총리가 김일성을 만나 물었다.
 
  “얼마를 배상하면 북한과 일본이 국교를 맺고 정상적인 교류를 진행할 수 있겠는가?”
 
  김일성은 “일본과의 관계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단호히 답했다. 그리고 이런 교시를 내렸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로동당의 의도대로 통일되면 반드시 일본을 무력으로 점령할 것이다. 일본을 36년간 통치함으로써 피맺힌 한을 풀어야 한다. 그래야 내 가슴에 맺힌 한이 조금 풀릴 것 같다.”
 
  북한이 일본인들을 납치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제적으로 테러, 납치 국가로 찍힐 수 있지만 김일성의 교시를 따르기 위해 일본인들을 납치해 온 것이다.
 
  북한은 일본인들을 납치해 일본 각 지방의 고유한 일본어와 풍습, 사투리를 정확히 이해하면, 대일·대남작전에 필요한 공작원들을 완전히 일본인으로 위장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 앞으로 있을 일본과의 전쟁에서 일본징벌부대에 길안내자로도 이용할 수 있다.
 
  실제로 1980년대 중반까지 534군부대라는 특수부대가 자강도 풍산군에 주둔하고 있었다. 당시 부대장은 리화일이었다. 534군부대는 전문적으로 일본에 관해서만 연구하며 구체적으로 일본 어디로 상륙할 수 있는가 등을 연구하고 훈련을 진행했다. 그러다가 부대의 비밀이 노출되었다고 하면서 부대명칭을 바꾸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 북한 간부들 사이에서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534군부대 출신 장병에 따르면, 일본인 납북자들이 군부대를 방문하곤 했다고 한다. 본인이 살았거나 가 본 지역의 지리, 풍습, 언어에 대해서 강의를 했다고 장병들은 증언했다.
 
  납북자들은 특수부대 비밀 작업도 수행하면서, 대남·대일 공작원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했다. 그들의 신상에 대해서도 소상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그러한 공작을 수행하는 납북자들에게 교관이라는 직함을 주었다. 좋은 대우를 해 주지만, 동시에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항시적으로 감시한다. 통제구역에서 자기들과 처지가 비슷한 동반자들과 결혼하여 살도록 하고 있다.
 
 
  납북자 출신 공작원 존재는 철저한 비밀
 
  납북자 출신 공작원들의 활약상을 알 수 있는 예가 바로 대한항공(KAL기) 폭파 사건이다. 1987년 11월 29일 바그다드에서 한국으로 향하던 보잉707기가 공중에서 폭발했다. 당시 테러범 김현희와 김승일이 체포됐고, 조사를 받던 중 김승일은 소지하고 있던 독약으로 자살하고, 김현희는 한국으로 소환됐다.
 
  북한 간부들은 KAL기 폭파 사건을 이렇게 평가한다.
 
  “공작원들은 일본인 여권을 갖고 있었다. 폭파 사건 후에 이들이 제대로 자결만 했어도 이 사건은 일본의 소행으로 알려졌을 것이다. 국제사회는 이렇게 생각했을 터다. ‘일본이 아시아에서 자기네가 제일 발전했는데 올림픽을 한국이 먼저 주최하는 것에 대한 앙갚음으로 비행기를 폭파했다.’ 일본은 발뺌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고, 세계에서 규탄을 받을 것이다. 일본과 한국 사이의 불화를 충분히 조성할 수 있었는데 당사자가 잡혀서 북한에서 왔다는 것을 인정했다. 아쉬운 사건이다.”
 
  납북자라고 모두 공작에 투입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 중에서도 말을 잘 못하고, 가르치는 데 한계가 있는 사람들은 일반 사회로 내보내졌다. 이들은 일반인들과 섞여 지내면서 해당 거주 지역의 보위부와 보안서의 감시 속에서 산다.
 
  2002년 고이즈미 당시 일본 총리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한이 공개한 일본인 납북자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북한 입장에서 이들은 큰 의미가 없는 사람들이다. 당시 김정일은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면 일정한 돈을 받을 수 있을 거라 계산했지만 결국 실수한 것이라고 북한의 관련 기관 사람들은 평가한다.
 
  김정은의 ‘일본 다가가기’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것도 이들이다. 김정은이 오죽이나 다급했으면 일본을 이용해 자신의 몸값도 올리고 손해배상도 받아 내려고 정부급 회담을 시작했겠는가. 그런데 일본 측은 역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면 형식적으로나마 조직된 일본인 특별조사위원회는 무엇을 조사하고 있을까. 평양에서 들려오기로는, 이 위원회가 조사하고 있는 일본인은 최근에 납북된 납북자가 아니라고 한다. 1945년 8월 일본 패망 후 조선에서 살다가 미처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한 일본인들과, 조선인 남자와 결혼하고 일본으로 가지 못했거나 1970년대까지 북한으로 들어온 일본 귀국자를 따라 들어온 일본 여성들에 대한 재조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납북자들을 조사하는 셈이다.
 
  사실, 북한에서 일본서 납치한 납북자들 중에 대남, 대일을 위한 공작사업에 동원되어 있는 사람들은 전에는 중앙당 연락소에서 관리했다. 지금은 인민무력부 총참모부 정찰총국에서 직접 관리한다. 그렇다면 국가안전보위부나 인민보안부에서는 이들의 존재를 알 수도 없고 알아볼 수도 없다. 애초부터 임무를 달성할 수 없는 특별조사위원회였던 셈이다.
 
 
  다음 협상 상대는 러시아
 
  북한의 관심은 다시 이동 중이다. 이번엔 러시아다. 최근 유엔(UN) 인권조사위원회 결과를 두고 평양에서는 일본에 대한 비난이 거세게 일어났다. 일본이 유엔에서 북한의 인권유린 행위를 고발하고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의 관련 있는 간부들을 국제형사재판소에 기소하도록 발기하고 제기한 나라들 중의 하나라는 점에 격분해, “역시 여우 같은 일본과는 협상의 의미가 없다”는 말이 공공연히 돌았다.
 
  북한은 이제 일본과의 대화를 거의 끊다시피 하고 러시아와의 외교협상에 몰입하고 있다. 참고로, 북한에서는 미국을 승냥이(늑대), 일본을 여우, 한국을 스라소니에 비유한다.
 
  북한이 일본과의 대화에 응하는 속내는 이렇다. 자기들의 목적 실현을 위해 일본과 정부급 회담을 해 왔지 결코 일본인 납북자를 인정하고 돌려보내라는 일본 인민들과 국제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진실한 마음으로 회담에 응한 것이 아니다.
 
  북한을, 평양을 아는 사람이라면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설사 일본 측이 북한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다 들어주어도 북한은 결코 납북자들 전원을 일본으로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다. 일부 사회에 나와 있는, 다른 말로 하면 북한 정권에 쓸모가 없어진 납북자들 몇 명을 내놓을 순 있어도 특수기관에 근무했거나, 근무한 사람들을 돌려보내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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