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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보

번지고 있는 高利貸 실태

북한의 지하경제는 시장경제의 신호탄인가

글 : 이정현  월간조선 기자  johh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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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私금융은 불법… 2007년 ‘고리대’죄 신설
⊙ 지역별 환율 차 이용한 환치기 성행
⊙ 북한 ‘제한적·부분적’ 시장경제 容認
2012년 10월 TV조선이 보도한 북한 장마당(시장) 모습. ‘신라면’이 판매되는 등 활기를 띠고 있다. TV조선.
  “‘해결사’를 시켜 집을 몰수(沒收)하는 경우도 있어요.”
 
  2008년 8월 14일 ‘자유아시아방송’은 북한 주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북한의 고리대금업(高利貸金業) 실태를 고발했다.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월 30%에 달하는 고금리가 적용되어요. 돈을 꾸어줄 땐 ‘계약서’도 작성하고 돈을 갚지 않을 경우에는 채무자의 재산을 압류하죠. 채무자의 재산을 처분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해결사’라고도 하는데요, 돈주(主)들은 ‘해결사’들을 시켜 돈을 갚지 못하는 빚쟁이의 가산(家産)을 팔고 그것도 모자라면 집까지 몰수하는 경우가 많아요. 북한에서는 개인 호상 간 분쟁을 법 기관을 통해 푸는 것이 아니라 ‘해결사’의 주먹에 맡기고 있습니다.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것이죠.”
 
  뿐만 아니라 개인들이 돈을 집에 쌓아놓다 보니, 돈의 보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증언까지 나오고 있다.
 
  2013년 9월 북한을 탈출한 강모씨는 “장마당 상인들을 비롯한 북한 주민들은 북한 화폐가 수중에 들어오면 즉시 외화로 바꾼다”며 “미화 100달러 혹은 중국 돈 100위안으로 보관하는데, 장마철 같은 경우 곰팡이나 좀이 슬지 않을까 근심하는 경우가 많다”고 증언했다.
 
  북한은 사(私)금융을 인정하지 않는다. 북한은 은행을 국가가 관리, 통제한다. 북한에서 국가가 아닌 민간인 사이의 돈거래는 불법이다. 한국의 지하경제와 비슷하다.
 
  북한에서는 그럼에도 2000년대부터 꾸준히 고리대금업 등 사금융이 늘어나고 있다. 국가에 의한 재산권 침해 혹은 간섭은 자연스럽게 북한판 지하경제를 만들어냈다. 이런 가운데 북한판 지하경제가 나름의 역할을 하면서, 북한 경제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주장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2013년 2월 3차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강화했다. 과연 경제제재는 효과를 보고 있을까. 최근 북한매체들은 체제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고급 아파트, 문화오락시설 등을 시찰하는 김정은의 동정을 소개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문수 물놀이장 등 오락시설뿐 아니라, 고급 서양요리점이 등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구찌, 프라다, 폴로, 아디다스, 나이키 같은 해외 유명 브랜드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러한 북한매체의 홍보는 어디까지 사실일까. 나아가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는 효과가 있는 것일까. 북한 경제가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좋아지고 있다면, 향후 대북전략에 변화가 불가피하다.
 
 
  김정일 사망까지 이용한 고리대금업자
 
  이와 관련해 북한 경제사회에 의미 있는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임을출 경남대 교수(극동문제연구소 연구실장)는 “북한에서 사경제, 사금융이 확산되고 있다”며 “이러한 변화는 북한의 경제사회 변화를 촉진시키는 핵심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임 교수는 “사금융 확산으로 북한의 사회주의 금융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과연 북한 경제에 부는 새로운 바람은 무엇이며, 그 실체는 무엇일까. 임 교수의 최신 논문 <북한 사금융의 형성과 발전:양태, 함의 및 과제>와 해당 논문에 인용한 탈북자 면담 자료, 북한 전문매체 보도 등을 통해 사실을 검증했다.
 
  북한 고리대금업과 관련해, 2012년 1월 10일 ‘자유아시아방송’은 함경북도 청진시 거주 주민 인터뷰를 바탕으로 “고리대금업자들이 김정일 사망까지 돈벌이에 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김정일 사망이 보도된 2011년 12월 19일부터 ‘특별경비’를 선포하고 주민 이동을 일절 금지시켰다. 그 결과 식량 이동이 어려워졌다. 이를 이용해 쌀 장사꾼들은 당장 먹을 것이 없는 주민들에게 한 달 후에 1.5kg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강냉이(옥수수) 1kg을 꾸어주었다. 또 돈 많은 장사꾼이나 환전꾼들 역시 한 달에 50%의 이자를 조건으로 돈을 꾸어주었다.
 
북한법과 금융

 
  북한에서 금융시장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당연히 개인적으로 돈을 빌려주고 높은 이자를 받는 고리대금업은 불법이다.
 
  북한의 금융제도하에서 주민들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고, 주민 간 금전거래는 금지되어 있다. 예외적으로 농민은 농촌금융을 담당하는 ‘협동농장신용부’로부터 공식적으로 자금을 대출받을 수 있다.
 
  개인이 아닌 법인의 경우는 허용된다. 기관, 기업소, 단체는 은행에서 돈을 빌릴 수 있다(북한 민법 제225조). 이들은 빌린 자금을 이용하고 원금과 이자를 은행에 반환할 의무를 진다(제226조). 대부를 받은 자는 정해진 기간 안에 은행기관에 반환해야 하는데, 이 의무를 어긴 경우에는 기간이 지난 날부터 더 높은 비율의 이자를 물어야 한다(제229조).
 
 
  2007년 일부 금전거래 인정
 
  이러한 북한도 2007년 3월 20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政令)으로 주민 간의 금전거래가 일부 허용되었다. 공민들 사이에 돈이나 물건을 꾸어주고 꾸는 행위를 ‘꾸기 계약’에 따라 할 수 있도록 수정・보충된 것이다(제221조).
 
  이에 따라 돈을 빌린 사람은 돈을 빌려준 사람에게 액수가 같은 돈이나 물건을 갚을 의무를 진다(제222조). 공민은 꾼 돈이나 물건은 정한 기간 안에 갚아야 하고, 같은 물건이 없는 경우에는 상대방과 합의해 다른 물건으로 갚을 수 있다(제224조). 다만 이자 혹은 이자 형태의 물건을 주고받는 계약은 금지됐다.
 
  북한은 금융거래 편의를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2006년 상업은행법을 채택했다. 해당 법에 따르면, 국가(북한)는 상업은행이 경영활동에서 상대적 독자성을 갖고 (독립)채산제로 운영하도록 했다(제4조). 또 상업은행은 거래자의 요구에 따라 경영활동을 개선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대부할 수 있다(제23조).
 
  궁금함이 이는 부분은, 개인에게도 대출을 할 수 있느냐이다. 해당 법 제20조는 ‘거래자의 예금에 대한 비밀을 철저히 보장하고 원금과 이자를 제때에 지불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북한 법률자료를 보면 거래자에는 기관, 기업소, 개인이 모두 포함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다만 실제 상업은행법 채택 이후 상업은행의 설립과 운영 사실은 확인되지 않아, 실효성은 매우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개인 소유권 확대
 
  개인 소유권은 확대되고 있다. 2007년 3월 20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으로 수정 보충된 민법 조항을 통해 더욱 확대되었다. 이에 따라, 북한에서 개인 소유는 ①노동에 의한 사회주의 분배 ②국가 및 사회의 추가적 혜택 ③터·밭 경리(經理)를 비롯한 부업경리에서 나오는 생산물 ④공민이 샀거나 상속, 증여받은 재산 등이다(제58조). 여기에다 공민은 살림집(주택)과 가정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가정용품, 문화용품, 그 밖의 생활용품과 승용차 등도 개인 소유권의 대상이다(제59조). 또 북한은 민법 제63조에서 국가는 개인소유재산에 대한 상속권을 보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北, 2007년 ‘고리대’죄 신설
 
  북한 고리대금업에 대한 증언은 주요 대북매체들이 꾸준히 보도하고 있다. 2013년 11월 5일 《데일리엔케이》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보릿고개’로 불리는 3~4월이 되면 고리대금업자들이 돈 많은 장사꾼, 농민 혹은 식량이 떨어진 주민들에게 ‘현물장사’를 하고 있다. ‘현물장사’란 봄에 강냉이 1kg을 꾸어주고 대신 가을걷이가 끝나면 그 두 배인 강냉이 2kg을 받는 장사를 말한다.
 
  북한에서 말하는 사회주의 금융은 ‘국가은행을 중심으로 화폐자금을 계획적으로 융통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경제 관계’로 정의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융의 정의는 ‘경제주체 간에 이루어지는 자금 융통’이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북한에서는 국가은행을 거치지 않고 개인, 기관 등이 돈을 거래하는 것은 당연히 제도적으로 있을 수 없다. 즉 북한에서는 자금의 융통은 오직 국가의 계획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경제체제에서 고리대금업은 당연히 불법이다.
 
  그도 그런 것이 2007년 10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정령을 통해, 북한 형법 제118조 수정·보충을 통해, ‘고리대죄’를 신설했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고리대를 통해 대량의 이득을 얻은 자는 2년 이하의 노동교화형에 처해진다. 만약 죄가 중할 경우(고리대 이익 규모가 큰 경우) 2년 이상 5년 이하의 노동교화형까지 가능하다.
 
  북한의 고리대죄 신설은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당연히 금지하는 고리대금업을 형법에까지 집어넣어 처벌한다는 것은 이미 북한 사회 곳곳에서 ‘고리대’의 폐해가 나타나고 있음을 말해준다. 나아가 공공연히 늘어나고 있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이러한 배경은 무엇일까.
 
 
  2009년 화폐개혁 이후 외국 돈 선호
 
2001년 11월 함경북도 무산의 골목에 들어선 장마당. 출처 《조선일보》.
  북한이 나름의 방식으로 시장화를 하고 있는 가운데, 돈이 있는 권력층이 불법과 합법의 경계가 모호한 시장을 이용해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배경 속에서 돈놀이를 통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고리 사채업을 하다가 망하는 사람이 생기는 등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나아가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렸다가 제때 돈을 갚지 못한 사람들이 집을 빼앗기는 사례도 늘고 있다.
 
  과연 북한 내부의 이러한 변화를 ‘시장경제로 가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한 논의가 북한 학계를 중심으로 계속되고 있다. 최근의 북한의 움직임을 북한이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가는 시발점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현상을 분석하는 것이 우선이다. 북한에서 사금융이 늘어난 배경을 통해, 향후를 전망할 수 있는 것이다.
 
  탈북자들의 증언을 보면, 김정일 시대부터 일반 주민들은 거의 은행을 이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1990년 중반 이후 극심한 경제난이었던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은행은 점차 기능을 상실했다. 북한 인민들이 ‘은행에 돈을 맡겨봐야 찾을 수 없다’는 생각이 굳어진 것도 이즈음이다. 따라서 여윳돈이 생기면, 자신의 집에 직접 보관하는 것이 일반화됐다.
 
  이러던 차에, 2009년 화폐개혁은 북한 돈과 은행에 대한 불신을 더욱 높였다. 외국 돈 선호 현상은 그 이후 급속히 전파됐다.
 
  2012년 4월 북한에서 환전상(換錢商)을 하다가 탈북한 김모(女)씨는 “2009년 화폐개혁 이후 외국 돈 선호가 늘어나고 있다”며 북한의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다.
 
  “2009년 화폐개혁 이후 불안감이 높아졌어요. 장사꾼이나 돈이 있는 주민들은 북한 돈이 아닌 외국 돈(달러, 인민폐)을 선호하고 있어요. 일반 인민들은 여전히 북한 돈을 사용하고 있지만, 장마당 등에서 웬만한 물건값은 달러로 값이 매겨지고 거래되고 있어요. 달러를 교환하는 ‘돈장(場)’이 장마당 주변에 형성되어 있어요. 장마당과 역전, 여관 등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에서는 ‘돈데꼬’라는 돈 장사꾼들이 배회하고 있고요.”
 
 
  배급체계 붕괴로 私금융 형성
 
  북한에서 사금융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995년 전후로 보는 것이 북한 전문가들의 공통적 의견이다. 1990년 중반 북한은 배급체계가 붕괴됐다. 그 결과 식량을 구하기 위해 장사를 하거나 금전거래가 늘어났다. 특히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고난의 행군 시기에 개인 장사, 장마당, 밀수 등이 증가했다. 그 결과 인민들의 사채(私債), 외환거래 등 사금융 활동이 활발해졌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은 재정이 파탄 나면서 국가은행을 통한 자금융통을 대폭 축소하거나 중단했다. 중앙은행의 역할이 극히 위축되었다. 그 결과 기업에 대한 자금보장 책임이 국가재정에서 기업과 은행으로 넘어갔다. 이런 사정으로 각 경제 주체는 비공식적 시장(지하경제)에서 독자적인 생존을 모색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민간 주체 간의 통화 거래가 늘어나면서 사금융이 활성화됐다.
 
  배급경제로 운영될 경우, 은행은 국가의 계획을 뒷받침하여 생산과 분배가 차질 없이 이뤄지는 일에 집중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스템이 무너지면서 재화의 분배는 사금융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뤄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 불을 지핀 것은 북한 은행에 대한 불신이다.
 
북한 사금융의 주요 주체

 
  1. 돈주
 
  2003년 종합시장 등이 합법화되는 상황에서 장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부를 축적한 신흥 부유층을 북한에서는 ‘돈주’라고 부른다.
 
  돈주들은 초기 소규모의 상업을 통해 자산을 획득하고 고난의 행군 이후 시장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규모가 큰 도매업으로 발전하거나 국영기업소나 외화벌이 기지 등에 투자하여 자산을 확대 생산시키고 있는 사람이다. 여윳돈을 가진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로 재일교포, 화교를 비롯해 무역 및 외화벌이 일꾼에서부터 마약장사꾼, 밀수꾼까지 다양하다. 현금 유통이 많은 환전상들과 외화벌이 상점 지배인들이 거액의 자금을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창기 돈주는 재일교포들이 많았으나, 일본의 지원이 막히면서 쇠퇴했다. 오히려 고난의 행군을 거치며 자생력을 키운 북한 돈주가 등장했다. 화교의 경우 북·중 국경을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장사를 통해 돈을 불렸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돈을 보내는 과정에서 브로커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화교들은 1990년대 암시장이 활개를 치면서, 중국에서 북한으로 상품을 조달하면서 자본을 축적했다.
 
  금융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당연히 ‘돈주’이다. 높은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사채업자와 많은 외화를 보유, 환차익을 노리면서 돈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다.
 
 
  2. 전당포
 
  사금융이 발달하면서, 전당포가 발전하고 있다. 북한에서 전당포는 매우 부정적이었지만, 김정일의 “전당포를 많이 만들어 인민들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라”는 지침 이후 증가하고 있다.
 
  김정일의 지시로 전당포 관리운영지침까지 만들어졌는데, 주요 내용은 ▲처음 2003년 여름에 발표되었을 때에는 물건을 맡기고 90일 동안 돈을 빌려준다고 했다가 그해 다시 수정되어 60일 동안 빌려주고 30일 동안 유예기간을 두었다가 안 찾아가면 수매(收買) 가능 ▲휘발유나 군수품, 의약품은 전당포 금지 ▲인민들이 가져오는 물건 중에 ‘무데기 상품’은 받을 수 없는데, ‘무데기’라는 것은 똑같은 것 10개 이상을 지칭 ▲물건을 맡기고 받은 돈을 제대로 갚지 못하면 하루에 0.1%의 이자를 물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당포 관리는 내각 사업부 혹은 개인이 하는 경우도 있다. 다만 물건 가치의 50% 정도만 돈을 내 주고, 상환 기간이 짧아 일반 인민들의 이용은 드물다. 오히려 전당포는 돈주들이 돈을 빌려주고 넘겨받은 저당물을 처리하는 데 이용되고 있다.
 
 
  3. 송금대행업자
 
  북한은 국가은행이 마비 상태이다. 상황이 이러니, 나름의 송금 방식이 만들어졌다.
 
  한국의 은행 지점처럼 송금 업무를 대행해 주는 역할을 자금력을 갖춘 개인이나 외화벌이 회사들이 하고 있다.
 
  특히 휴대전화가 보급되면서 개인 간의 송금이 활발해졌다. 먼 지방에 있는 친척 등 돈을 받을 사람과 통화를 통해 확인하고 수령액의 10%를 더해 돈을 건네줄 사람과 약속된 사람에게 건네는 방식이다. 향후 송금대행업자들은 따로 정산 절차를 거친다.
 
  북한 은행의 모럴해저드
 
  2013년 2월 기능공으로 일하다 탈북한 김모씨는 “1990년대 초반 북한 은행에서 계좌번호 추첨으로 1등 5천원, 2등 3천원 등의 상금을 주며 저금을 독려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북한의 자금 독려는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과거 배급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시절, 일반 인민들은 은행에 저금할 이유가 없었다. 저금할 여윳돈도 많지 않았다. 필요도 없고 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저축을 많이 할 경우 ‘어디서 돈이 생겼느냐’는 추궁을 당할 염려가 있었다. 따라서 저축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재일교포에 한정됐다. “김일성 주석 생존 시에는 은행에 돈을 맡기고 찾기도 했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으로 볼 때 1990년대 중반까지는 안정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13년 2월 탈북한 김모씨는 “당시(김일성 생존 시)에는 보통저금, 준비저금 등이 존재했고, 이자까지 지급됐다”고 증언했다.
 
  그러던 것이 북한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은행에 저금하면 원금도 건지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2012년 9월 북한을 탈출한 강모씨는 “은행에서 예금을 찾기 어려워지면서 은행 간부들이 중간에서 30~70%의 수수료를 떼고 예금을 찾아주었다”고 증언했다. 북한 은행의 모럴해저드 역시 심해졌다. 2013년 5월 탈북한 정모씨는 “간부들이 무이자 대출을 이용하고 은행의 월말 총화(總和) 전에 갚는 식으로 활용한다”고 말했다.
 
 
  사금융의 종잣돈은?
 
2013년 10월 김정은이 완공된 평양 문수물놀이장을 둘러보고 있다. 《로동신문》.
  북한에 개인 간의 돈의 흐름이 있다면, 즉 사적 금융이 엄연히 존재한다면 자연스럽게 어떻게 ‘계획경제로 운영되는 북한에서 사적 금융 자본이 만들어졌는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즉 ‘무슨 돈으로 고리대금업을 운영하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북한은 헌법 개정을 통해 제한적이나마 사회주의 계획경제 원칙에서 벗어나, 시장경제원리를 받아들이는 제도를 운영해 왔다. 북한은 1998년 개정헌법을 통해 가축, 살림집(주택)을 비롯한 주택 외의 일반 건물에 대한 개인 소유가 허용된다. 나아가 텃밭 경작이 확대되고, 농민시장의 자유매매 활성화를 통해 나름 개인 소유가 확대됐다.
 
  개인 영업도 늘어났다. 식당, 오락실을 겸한 컴퓨터 상점, 비디오 관람방, 목욕탕, 안마소, 당구장, 노래방 등이 예이다. 이러한 개인 사업은 우선 무역일꾼, 외화벌이일꾼 혹은 그들의 부인이 운영한다. 다음으로 재일교포, 화교 등이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국가로부터 영업권, 장소 등을 제공받고 수익의 일부를 내는 구조이다.
 
  이러한 개인 사업은 점차 확대되는 추세이다. 북한은 2012년부터 6·28 방침으로 불리는 ‘우리 식 경제관리방법’에 따라 일부 공장과 기업소, 농장 등이 시범적으로 독자 경영되고 있다. 이러한 독립채산제는 생산력 저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나름의 고육책이다. 자율경제체제는 공영공장, 기업소를 중심으로 실시되다가 점차 농업 부문, 비생산적 부문인 유통 부문까지 확대 실시되고 있다. 경제 주체의 자율성이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을 배경으로 어느 정도 마련된 자본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돈 장사를 통해, 자본의 크기가 늘어나고 있다.
 
  2013년 9월 공장 지배인으로 일하다 탈북한 강모씨는 “돈을 불릴 만한 마땅한 수단이 없기 때문에 고리대금업이 성행한다”고 말했다. 여유 자금이 있는 사람들이 돈을 보관만 하고 있기보다는 고리대금 등을 통해 불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협동농장에 투자하는 사례가 있다. 작업반장과 미리 협의하여 자금이 필요한 봄철에 영농자금을 빌려주고, 수확기인 가을에 쌀 또는 강냉이를 당시의 최저가로 계산하여 현물로 제공받는 방식이다. 이렇게 회수한 곡물은 다음해 7~8월경에 판매한다. 대개 2배 정도의 이익을 볼 수 있다 한다.
 
  또 북한에서 돈거래가 증가하는 것은 지역별로 환율이 다르다는 특수한 사정도 한몫하고 있다. 즉 환치기를 통해 돈을 불리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예를 들어 평양에서 (싼 환율을 이용해) 북한 돈을 달러로 바꾼 다음 외국 돈 가치가 높은 곳에서 북한 돈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2013년 9월 공장 지배인을 하다가 탈북한 강모씨는 “환치기로 이익을 보는 경우가 많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환율 차이를 이용해 이익을 보는 경우가 있어요. 일종의 환치기인데, 평양에서 싼 가격에 달러를 구입해서 나진선봉에서 비싸게 파는 것이죠.”
 
  한편, 고리대금업 등 사금융이 필요한 이유로는 은행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북한의 현실도 작용한다. 은행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집에 돈을 쌓아 놓아야 하는데 그럴 경우 자연스럽게 보관상의 어려움이 생긴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장마당 상인들을 비롯한 북한 주민들은 북한 화폐를 즉시 외화로 바꿔놓는다. 보통 미화 100달러, 중국 돈 100위안으로 바꿔 보관하는데, 장마철 같은 경우 곰팡이나 좀이 슬지 않을까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자칫 외화를 보관하다가 쥐나 곰팡이 등으로 손해를 보는 주민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로 개인이나 공장기업소 혹은 협동단체에 빌려주는 경우가 늘어나는 것이다.
 
 
  月 20% 이자를 받기도
 
2014년 8월 평양양말공장을 방문한 김정은. 《로동신문》.
  2011년 8월 29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따르면 돈주들은 개인에게 돈을 빌려줄 때 우선 능력을 측정한다. 다음으로 3~6개월 단위를 정해서, 매월 20%의 이자를 설정한다. 예를 들어 10만원을 6개월 단위로 빌려줄 경우 한 달에 20%씩 총 12만원의 이자를 요구한다. 화폐개혁 이전까지는 15%의 이자를 붙였으며, 하루 1%의 이자를 붙이는 일수(日收)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돈을 빌려줄 때는 외국 돈(미국 혹은 중국 돈)으로 빌려주고, 원금 역시 외국 돈을 받지만 이자는 북한 돈으로 계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북한 전역에서 20%의 이자를 받고 빌려주는 형태가 보편화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에서 배급제가 중단되면서 사채 수요는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급제도가 중단되면서, 자연스럽게 장사 등을 통해 자급해야 하는데, 장사를 위한 장사 밑천을 고리대금을 통해 마련하는 것이다.
 
  이자 20%를 한국과 비교해서 생각하면 곤란하다. 북한은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돈을 불리는 것이 더욱 어렵다. 한국에서 느끼는 20%를 뛰어넘는 이자로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이자가 붙는 것은 금전거래 자체가 불법인 북한의 특수성 때문이다. 법으로 금지하니, 당연히 위험비용(리스크 프리미엄)이 붙고, 이러한 위험 때문에 고리의 이자가 요구되는 것이다.
 
  고리대금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돈을 떼일 수 있는 위험이 생긴다. 이러한 이유에서 북한의 고급 관리들은 돈을 떼일 염려가 없는 자신들의 부하에게 돈을 빌려줘 이자놀이를 하고 있다는 탈북자의 증언이 있다. 부하직원은 빌린 돈을 잘게 쪼개서 다른 서민들에게 돈놀이를 하게 된다. 관료들의 이잣돈 놀이는 평양 등 대도시는 물론 지방 소도시까지 광범위하게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 돈을 빌려줄 때는 5% 정도지만, 아래 단계로 내려가면서 이자는 증가한다.
 
  이렇듯 고리대금업이 활개를 치고 있는 가운데, 고리대금 자체가 불법인 북한에서 만일 돈을 갚지 않을 경우 어떤 방식으로 원금과 이자를 회수하는지 방법이 궁금해진다.
 
  2014년 1월 29일 ‘자유아시아방송’이 복수의 평양소식통의 증언을 바탕으로 보도한 바에 따르면, 빌려준 돈을 갚지 않을 경우 돈주들은 채무자에게 강제집행조치를 취한다. 2~3회에 걸쳐 독촉하고 그래도 갚지 않을 경우 채무자의 집에 있는 텔레비전, 녹음기, 자전거 등을 압류한다. 나아가 채무자의 집을 점거하기도 한다. 가져간 물건은 전당포 등을 이용해 처리한다.
 

  [인터뷰] 경남대학교 교수(극동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임을출
 
사진 : 서경리
  —북한에 사금융이 정착되고 있는 것을 어떻게 평가하나요.
 
  “시장경제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북한은 나름 경제개혁 조치를 취해 왔어요. 유통, 생산, 금융에서 ‘시장화’가 계속되고 있어요. ‘시장화’라는 것은 국가가 개입하지 않고 경제 주체에 의해 공급과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죠. 이러한 개혁조치와 더불어, 오랜 경제제재를 통해 내성(耐性)이 생겼어요. 내수(內需) 위주로 돌아가니 국제사회의 제재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게 되었죠. 내수시장을 키워서 나름 자립을 한 것이죠. 비록 경공업 제품에 한정되지만, 북한 내부에서 자국산 물품 비중이 늘어나는 것도 고무적이죠.”
 
  —북한이 법·제도로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북한은 시장경제라는 표현을 쓰지 않아요. 상당부분 시장경제로 가고 있는데, 표현만 ‘우리 식 관리개선조치’ ‘독자적 경영활동’이라고 말하죠. 이에 따라 시장화, 가격 결정의 분권화가 크게 진전되고, 나아가 사유화도 부분적으로 진전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어느 정도는 시장경제의 모습을 띤다고 생각합니다. 독립채산제의 경우 자본주의적 경제원리를 도입한 것으로 김일성 시대부터 시작되었어요. 과거에는 간섭이 심했으나, 김정은 시대에 들어와서 간섭이 많이 줄었어요. 북한 나름의 법적 제도 개선이 있어요. 상업법, 형법, 민법 등에서 ‘제한적·부분적’으로 시장경제를 용인하는 조항을 넣었어요. 현실적 시장화 진척 수준을 법이 따라가지는 못하고 있지만, 북한 입장에서 ‘자본주의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야 하니까 나름의 방식으로 시장경제를 하고 있다고 봅니다.”
 
  —경제 관련해서, 향후 북한의 변화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습니까.
 
  “《로동신문》 등 북한매체는 새롭게 건설된 아파트, 각종 위락시설 등을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어요. 과거 식량난에 허덕이던 모습과는 많이 다른 것이 사실이죠. 김정은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정통성을 갖고 있다 보니까, 주민생활을 향상시키는 성과를 내야 체제를 안착시킬 수 있죠. 향후 북한은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갈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가 공장, 기업소, 농장에 더 많은 자율성과 권한을 주는 방향이죠. 정치는 자신들의 유일영도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는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가는 것인데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실험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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