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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김철진의 평양실록 ④ 북한 미사일 개발史 40년

“미국 본토를 타격하라”

정리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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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北 미사일 연구의 최종 목표는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미사일로 ‘미국 본토 타격’
⊙ 소련 붕괴 후 망명한 러시아 과학자들이 北 미사일 연구에 크게 기여
⊙ 1998년 발사한 광명성 1호는 인공위성 아닌 미사일

[편집자 주]
종전 후 61년, 그 세월 동안 평양에서는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김철진씨는 북한의 당과 군을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남으로 넘어온 탈북자다. 평양에서 그가 직접 목격한 갖가지 사건들에 대한 그의 증언을 《월간조선》이 입수해 연재한다. 이는 후일 통일 한국이 써 나갈 새로운 대한민국 현대사의 사초로 활용될 수 있을 터다. 사실적인 기록을 위해 읽는 데 문제가 되지 않는 한 북한말 표현을 고치지 않았다.
2013년 7월 27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된 전승절 열병식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KN-08이 등장했다.
  국제정치계에서 이제는 멸종되다시피한 ‘벼랑끝 전술’을 아직도 끈질기게 구사하는 나라, 바로 북한이다. 북한이 허세를 부릴 수 있는 원천 중 하나가 ‘미사일’이다. 1970년대 중반부터 북한은 미사일 개발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북한 미사일 개발은 지상 대 공중(지대공) 미사일을 도입하면서 시작됐다. 러시아산을 들여와 그걸 기본으로 탄두거리, 타격시간, 바람의 저항, 탄두장약, 상대방의 요격을 유도하는 요점들을 하나씩 개량해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한국과 일본은 쉬운 공격대상
 
  최종 목표는 미국 본토는 물론 전세계 어느 곳도 타격할 수 있는 다계단(다단계, multi-stage) 미사일 개발이다. 만유인력의 법칙에서 벗어나 대기권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대기권 아래로 진입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비행시간을 최대한 짧게 해 목표국의 레이더 탐지기에 포착되더라도 목표를 타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물론 탄두를 소형화하는 것도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핵을 장착하기 위해서다.
 
  이에 따른 중점적인 연구방향은 간단하다. 상대방의 레이더 탐지기에 걸리지 않도록 하되, 탐지되어 상대가 요격미사일을 쏘는 경우, 탄두가 분리돼 요격미사일을 유도할 수 있는 미사일을 개발할 것. 나아가 복수의 탄두를 장착해, 타격목표와 요격미사일, 요격미사일 발사지점을 향해 탄두가 각자 날아갈 수 있는 미사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주된 연구진행 방향이다.
 
  지대지(지상 대 지상) 미사일 개발 목표를 살펴보면 이렇다.
 
  북한에서는 대체로 사거리 500km까지의 미사일을 단거리 미사일, 사거리 2000km의 미사일을 중거리 미사일로 분류한다. 그 이상은 장거리 미사일이다. 신형미사일 연구개발 원칙은 우선 단거리 미사일 개발을 기본으로 본다. 그런 다음 장거리를 다계단으로 묶어, 미국과 연합군 형식으로 미국 측을 도와 참전하는 국가들을 타격할 수 있는 수단을 갖춰야 한다고 천명한다.
 
  한반도에서 쏜다고 가정하면, 일본 정도는 단거리 미사일로도 얼마든지 타격할 수 있다. 미국은 다르다. 타격하려면 중거리 미사일로도 모자라고 장거리 다계단 미사일이 필요하다.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는 한편, 다계단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1990년대 초에는 쿠바에 단거리미사일기지를 건설하기도 했다. 미국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열강들의 항의와 규탄 때문에 철수했다.
 
  미국 본토 타격의 꿈은 포기하지 않았다. 북한은 미국 본토 타격 가능 여부가 앞으로의 전쟁을 좌우할 기본 조건이라고 보고 있다. 북한 입장에서는 다계단 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해 본토를 타격하는 것이 최상의 전쟁 시나리오지만, 지금까지의 미사일 수준으로는 목표 타격 전에 요격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는 잠수함에서 수중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도록 미사일 연구개발을 진행하는 것으로 전략을 바꿨다.
 
  미국 본토에 비하면 한국과 일본은 매우 쉬운 타격대상이라고 본다. 단거리 미사일과 무인 조종기, 방사포면 충분하다고 북한 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반드시 武力으로 조국을 통일하라”
 
  1970년대 중순 이전, 북한군 반항공사령부는 소련의 지대공 미사일 ‘드비나’를 들여왔다. 남한의 공군에 해당하는 조직으로 공군사령부와 반항공사령부가 있는데, 당시에 이 두 조직은 별개로 나뉘어 있었다. 드비나를 들여오며 반항공사령부는 김일성에게 한 가지 목표를 보고했다. 바로 미국의 SR 전략정찰기를 격추하겠다는 것.
 
  그런데 공군사령부도 같은 보고를 했다. 공군사령부는 소련산 ‘미그-19’를 이용해 정찰기를 격추하겠다고 보고했다. 일종의 정찰기 격추 경쟁이었다. 김일성은 두 조직 모두에 허락한다는 답변을 내려보냈다. 결과는 어땠을까.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반항공사령부가 쏘아올린 드비나가, 공군사령부가 띄운 미그-19를 격추하고 떨어진 것.
 
  김일성의 지시가 내려왔다. 공군과 반항공사령부를 합치라는 지시였다. 공군사령부가 반항공사령부를 흡수하는 식으로 두 조직을 합쳤다.
 
  1980년대 초반까지 소련산 미사일을 가져다가 모방 연구개발을 하는 식으로 연구를 계속했지만 별 진전이 없었다. 나중엔 평양시 은정구역에 있는 국가과학원 연구사들까지 미사일 연구에 투입하기도 했다. 은정구역은 남한으로 치면 대덕연구단지쯤 되는 과학연구의 본거지다.
 
  1985년 10월 25일, 이날은 북한 미사일 연구에서 역사적인 날이다. 김정일이 당시 총참모장이었던 오극렬을 데리고 제2자연과학원 전시관을 찾아왔다. 그 두 사람은 4시간가량 머물며 미사일 연구의 현황보고를 들었다. 그런 후 김정일이 입을 열었다.
 
  “현재 우리 과학자들의 국방과학 수준은 중졸 수준밖에 안 된다. 이제부터 과학자들에게 최우선적으로 연구사업을 지원하고 생활도 보장해 줄 테니 국방과학 분야에서 새로운 혁신을 일으켜 보라.”
 
  미사일 개발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제2자연과학원은 지금도 10월 25일을 과학원이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날로 기리고 있다. 김정일의 첫 현지지도일로 명명하고 창립절보다 더 크게 기념한다.
 
  김정일은 구체적인 지시도 내렸다.
 
  “우리는 반드시 전쟁을 통해 무력으로 조국을 통일해야 한다. 다가올 전쟁은 6·25때와는 다르다. 특히 전자전에 대비할 수 있도록 연구하면서, 해안포를 비롯한 모든 지상포들의 장거리포(주체포)에 미사일 개발연구 역량을 집중하라.”
 
  당시 제2자연과학원 전시관에는 70mm 주체포가 전시돼 있었다. 김정일은 “구경을 확대하고 서울을 직사로 쏠 수 있는 수준으로 (로켓과 미사일을) 개발하라”면서 “과학원이 가장 주되는 사업으로 끌고 나가야 할 것은 각종 미사일 개발”이라고 직접 과업을 지시했다.
 
  이후 166로켓트 공학연구소를 크게 확장했다. 산하에 있던 발동기실을 628연구소로 분리하고, 조직 전체가 미사일 개발연구에 총력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김정일은 제2자연과학원에 있는 종합 사판(건물을 축소해 놓은 모형)을 보며 조직 이전 지시도 내렸다. 제2자연과학원을 국방과학의 특수 전초기지로 만들기 위해서는 비밀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과학원 지구 안에 있는 다른 기관들을 모두 이전하라는 지시도 했다. 심지어 지구 안에 중앙방송국의 방송탑이 있었는데, 방송탑까지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미사일 성공 副賞은 살구색 점퍼
 
2013년 7월 27일 전승절 열병식에 등장한 스커드 미사일.
  1988년, 소련에서 들여온 지대지 스커드미사일을 개조해 만든 중거리 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 첫 시험발사에서 당당히 성공을 거둔 터라 김정일은 상당히 기뻐했다. 김정일은 “우리의 국방과학 전사들이 큰일을 하였다”면서 “이제는 고등전문학교 졸업 수준으로 연구 수준이 올라갔으니, 전쟁준비를 적극 다그치기 위한 미사일 연구개발 사업을 더욱 강화하라”고 했다. 어찌나 기뻤던지 선물도 내렸다. 자신이 즐겨 입고 다니는 연한 살구색 점퍼였다. 제2자연과학원 연구사뿐만 아니라 실험수, 노동자 등 전체 직원들에게 자신이 즐겨 입는 옷을 같이 입자며 선물을 했다.
 
  원래는 간단한 표창만 했는데, 외무성에서 보고가 올라온 후 더 많은 상을 내린 것이다. 외무성 보고의 내용은 이랬다. 미사일이 일본 본토를 지나가면서 일본과 미국, 한국을 비롯한 자본주의 열강들이 아우성을 쳤다는 것. 그러자 김정일은 “국방과학자들을 크게 평가해 주라”고 말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했다. 소련 붕괴는 북한 미사일 개발에 결정적인 호재로 작용했다. 미사일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편성된 2개의 두뇌진, 약 20여 명의 러시아 군사과학자들이 북한으로 망명을 했다. 북한은 이들을 파격적으로 우대했다.
 
  평양시 만경대구역 축전동 광복거리에 한 개의 아파트를 내어주고, 매달 상당 금액의 월급을 미 달러로 지급했다. 그들은 166공학연구소와 628발동기연구소에서 연구사로 일하며 북한의 미사일 연구개발 사업에 크게 기여했다.
 
  미사일 연구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일정이 잡혔다. 1997년의 일이다. 첫선을 보이려고 대기 중인 미사일은 바로 ‘광명성 1호’였다. 그런데 북한 외무성이 이의를 제기했다. 이유는 이랬다.
 
  “지금 북한이 대외적으로 고난의 행군이라고 하면서 유엔을 비롯해 많은 나라들로부터 식량과 물질적 지원을 받고 있다. 이럴 때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면 지원을 받지 못한다.”
 
  김정일은 이 말을 받아들여 미사일 시험발사를 보류하라고 명령했다.
 
 
  미사일을 인공위성으로 위장
 
2009년 4월 광명성 2호 발사에 성공한 후, 김정일과 연구사들이 관제센터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이듬해인 1998년 7월 초, 김정일의 시험발사 명령이 내려왔다. 이유는 언제나와 같았다. “우리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주고 적들에게는 공포를 주자”는 게 이유였다.
 
  1998년 7월 중순, 제2자연과학원 회의실에서 회의를 소집했다. 미사일 개발연구에 참가한 각 연구소 연구사들과 실험수, 노동자 대표들이 모였다. 이 자리에서 첫 장거리 미사일을 성공적으로 발사하기 위한 결사대를 조직했다. 결사대원의 수는 약 2000명. 결사대원들은 연구소별로 돌며 제2자연과학원 당위원회에서 서명을 받고 시험발사 준비에 돌입하였다.
 
  미사일 발사준비는 철저한 기밀보안 속에서 이뤄졌다. 미사일 시험발사장은 함경남도 화대군 무수단리에 있었다. 발사장으로 향하는 모든 수송차량에는 60번이라는 차번호를 달았다. 비밀보장을 위해서였다. 차번호 60은 당시 문화예술부 소속의 차에 붙이는 번호였다. 일반인들은 차를 보고 ‘아, 어디서 영화를 찍는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1998년 8월 30일 드디어 장거리 미사일 광명성 1호를 발사했다. 미사일 발사는 성공이었다. 북한의 TV와 신문에는 연일 이런 보도가 나왔다.
 
  “첫 인공위성을 궤도에 진입시키는 데 성공하여 우리의 기술과 자재로 발사된 첫 인공위성이 자기의 궤도를 따라 돌면서 전 세계에 김일성장군의 노래와 김정일장군의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다.”
 
  제2자연과학원 연구사들과 노동자들은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인데 왜 인공위성이라고 보도할까, 어리둥절해했다.
 
  시험발사 직후, 평양에 있는 인민문화궁전에서 미사일 발사 성공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6000석 규모의 회의실에 미사일 발사 결사대원을 비롯해 미사일 발사에 기여한 조직의 조직원들이 모두 모였다. 고위 간부 중에는 전병호, 한성룡, 연형묵이 참석했다.
 
  미사일 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한 2자연과학원 연구사, 실험수, 노동자들과 시험발사에 기여한 2경제위원회와 인민무력부에 김정일의 감사문이 전달되고, 김정일의 이름으로 된 표창장과 명함시계, 노력영웅 칭호, 박사를 비롯한 훈장 및 학위·학직 수여가 진행됐다.
 
  당시 김정일이 보낸 감사문의 내용은 이러했다.
 
  〈국방과학자들이 이제야 대학졸업 수준에 도달했다. 하루빨리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을 세계적 수준에 맞게 연구개발하고, 현대전에 맞는 무장장비를 연구개발해 인민군대의 전투력강화와 전쟁준비에 이바지해야 한다. 북조선이 미사일 발사시험을 진행할 때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요격해 버리겠다고 한다. 미사일 다탄두 연구에 꼭 성공해서 우리의 미사일이 요격당하는 경우 탄두가 분리되어 하나는 원 목표를 타격하고, 분리된 다른 탄두는 요격미사일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다목적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라.〉
 
 
  장거리 미사일 개발 성공
 
지난 8월 전술로켓 시험발사를 현지지도하는 김정은의 모습. 이날 시험발사한 미사일은 사거리 200km의 300mm 단거리 다연장 방사포였다.
  제2자연과학원 연구사들은 장거리 미사일 개발연구에 총력을 집중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 그 노력에 박차를 가했다. 평양시 룡성구역 룡추동에는 과학촌 기지를 조성했다. 룡궁동에 과학자 사택을 지었고 과학자 거리를 만들었다. 룡성구역은 평양에서는 주변구역이지만 과학원 사람들은 중심구역 대우와 풍족하게 먹고살 수 있도록 후방사업을 튼튼히 꾸려 줬다.
 
  2006년 9월 또다시 시험발사를 했지만, 제대로 오르지도 못하고 실패했다.
 
  그 후 시험발사 준비를 하면서 10월 17일 위성연구소를 비롯한 과학원 산하 연구소들이 새롭게 확장공사를 했다. 룡성구역 룡추동 과학촌 기지 안에 관제센터를 새로 짓기도 했다.
 
  2009년 4월 5일, 함경남도 무수단리에서 광명성 2호라 이름 붙인 장거리 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 이날의 성공은 북한이 사거리 4000km 이상을 비행할 수 있는 미사일 개발에 성공했다는 걸 의미했다.
 
  4월 5일 당일, 10월 17일 위성연구소 관제센터에는 김정일과 김정은이 직접 와 있었다. 두 사람은 발사시험 과정을 영상화면으로 지켜봤다. 미사일 발사에 성공하자 김정일과 김정은은 연구사들을 크게 칭찬했다. 김정일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 국방과학자들이 대단한 성과를 이룩해 조선의 기상을 만방에 과시했다. 내가 오늘 기분이 좋으니 과학자들의 요구조건을 다 들어주겠다. 요구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요구하라.”
 
  그러자 10월 17일 위성연구소 과학부소장이 이렇게 말했다.
 
  “집안의 가보로 간직할 수 있게 장군님과 기념촬영을 하고 싶습니다.”
 
  그러자 김정일은 “오늘 예감이 왠지 실패할 것 같아 사진사를 안 데리고 왔는데 과학자들의 요구이니 사진사를 부르라”고 하면서, 사진사가 올 때까지 과학자들과 얘기를 나누겠다고 했다. 1시간가량 연구소 안팎을 돌아본 후, 사진사가 오자 김정일은 연구사들과 사진을 찍었다. 이때 ‘청년장군’도 함께 사진을 찍으라고 말했다.
 
  사진 촬영 후 연구사들의 대부분이 국방대학 졸업생들이라는 얘기를 듣자 김정일은 중앙당 간부들에게, “국방대학 졸업생들은 나라의 보배”라고 하면서 “잘 돌봐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연구사들이 감개무량해 눈물을 흘리며 ‘김정일 만세’를 부르는 장면이 북한 TV에 방영되기도 했다. 발사시험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에게 훈장과 영웅칭호, 학위, 학직이 수여됐다.
 
  북한에서는 지대공 미사일에는 100-1로 시작하는 일련번호가 붙는다. 해상 대 해상 미사일은 200-1로 시작하는 일련번호로 통용된다. 지상 대 지상 단거리 미사일은 500-1로 시작한다. 중거리와 장거리 미사일은 900-1로 시작되며 짝수가 아니고 홑수로만 나간다.
 
  북한 미사일 본체에 새겨진 글자 ‘ㅈ’은 조선의 약호다. ‘ㅈ’ 다음에 100이나 900등의 숫자를 붙여 표시한다.
 
  원래는 ‘MADE IN DPRK’라고 ‘원산지 표기’를 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쓰지 않는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전쟁 당시, 이란에 수출한 북한산 미사일이 이라크를 타격한 적이 있다. 이라크가 이에 대한 보복으로 북한유조선을 침몰시킨 일이 있었다. 이후 북한의 모든 무장장비의 표기를 변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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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영    (2014-11-15) 찬성 : 112   반대 : 104
(참 이상하다.이렇게 좋은 정보를 나만 모르고 있었나아무런 댓글이 없게...
간단한 멘트하나 날리면 글쓴 사람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장거리 미사일이던 원자력이던,세계에서 유일하게 남한의 자체개발을 묶여놓고 그 방어용을 천문학적인 돈으로 구입강요하는 미국이란 사실만으로도 좌.우가 아닌 통일민족주의자가 되겠다.

20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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