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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보

북한 개방파 숙청사

유연한 사고를 가진 이들이 숙청됐다!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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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로동신문》은 2013년 12월 13일 장성택 당 행정부장이 ‘국가전복 음모의 극악한 범죄’로 12일 처형됐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장 행정부장이 법정에서 국가안전보위부원들에게 끌려가는 장면이다.
  얼마 전 저녁식사 자리에서 한 원로 기업인이 이런 얘기를 했다.
 
  “북한에서 처형당한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어 보입니다. 경제개방·개혁을 시도하거나, 적어도 이를 마음속에 품었던 사람들로 보입니다. 최근에 숙청당한 이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세요.”
 
  그는 경영인답게 북한 내에서 제거된 사람들을 ‘경제적 측면’으로 해석했다. 이 원로 기업인의 말을 그저 그런 시각으로 넘기지 못한 이유는 그가 1990~2000년대 대북(對北) 사업에 굉장히 깊숙이 관여한 인물이어서다. 그는 장성택을 여러 차례 만났고, 여전히 그와 나눈 메모를 보관하고 있다고 말한다. 북한에서 처형당한 이들이 어떤 발언 혹은 시도를 해서 비참한 말로를 맞았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그렇다고 북한을 여러 차례 들락거리며 사업을 계획했던 원로 기업인의 ‘촉(觸)’을 예사로이 넘기기는 그러했다. 최근 북한에서 제거된 사람들 중에 경제 혹은 대남(對南)과 관련된 이들을 추려 보면, 김달현 북한 정무원 부총리 겸 대외경제위원장, 김정우 대외경제사업부부장, 서관희 노동당 농업담당 당비서, 김용순 노동당 비서, 박남기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하 직책 생략) 등이다. 이들 중에서 개혁·개방을 시도하다가 제거된 사람들이 있을까. 적어도 그들이 마음속에 북한에서 금기시된 개혁·개방의 개념이 있기는 했을까.
 
 
  개혁 시도가 숙청 원인일 수 있어
 
  대다수의 북한 관계자들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답했다.
 
  탈북자 K씨는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 김달현, 김정우의 경우는 거의 확실하고 장성택 역시 가능성이 농후하다. 장성택이 김정은 앞에서 삐딱하게 앉아 있었다, 방탕한 생활을 했다는 등 죄목은 갖다 붙이기 나름인데, 개혁을 시도했던 것도 원인 중의 하나일 수 있다”고 말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의 얘기다.
 
  “개방과 관련한 일을 했던 인물이 숙청당한 것은 사실입니다. 대외경제협력위원회가 대표적인데, 그 업무를 하면 대부분 숙청당했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개혁·개방을 자연스럽게 접촉하기 마련이고, 해외 자본 유치나 대남 경제협력 업무를 하면서 서방 인물이나 대남 인사를 자연스럽게 만납니다. 그 과정에서 서양 문물이나 개방에 대한 생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혐의는 달러 수수 등 ‘비리’로 씌워져서 처형되지만, 개혁에 호의적으로 바뀌면서 군부의 미움을 받았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조영기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은 이렇게 본다.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개혁파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은 이상하지만, ‘강성 군부’와 ‘군부 같지 않은 사람’이라고 나눌 수는 있습니다. 군부 같지 않은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인민을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치면, 그들을 개혁·개방파로 봐서 숙청당한 것은 맞다고 봅니다. 김일성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자 경제관점에서 보자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경제관점이란 인민의 입장에서 보자는 겁니다. 현 체제를 유지하려는 강성군부가 아니라, 유연한 사고를 가진 사람, 국민을 생각하는 사람이 개혁파인 양 덮어씌워져 숙청당했다는 표현이 적절합니다.”
 
  조봉현 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의 얘기다.
 
  “대남관계 쪽 인사를 개혁·개방에 포함시킨다면 맞는 얘기입니다. 경제 쪽에서 외자유치를 하는 사람, 대남관계에서 경제협력을 해 온 사람이 많이 숙청된 것은 사실입니다. 북한은 실적을 중요시합니다. 숙청의 대상은 문책성 또는 비리가 있을 때인데, 남북경협 등 경제분야의 일을 하는 사람은 이 조항 둘 다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김달현, 김정우는 개혁 성향 때문에 제거
 
개혁론자로 분류되는 북한의 김달현 부총리가 지난 1992년 7월 19일부터 서울을 방문했을 당시 모습.
  북한 관계자 대다수는 남북 경제협력의 창구였던 김달현과 북한 경제시찰단으로 한국에 왔던 김정우 부의장에 대해서는 ‘개방·개혁에 호의적인 이유로 숙청당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는 입장이다.
 
  노태우(盧泰愚) 전(前) 대통령은 자신이 재임기간 중에 만난 북한 인사 중에서 가장 ‘가능성 있다’고 판단한 사람은 남북고위급 회담 당시 방한(訪韓)한 김달현이었다고 회고록에서 밝힌 바 있다.
 
  노 전 대통령은 “김 부총리는 북한의 어려운 상황을 털어놓을 줄 알았다. 그래서 ‘채찍보다는 당근이 통할 상대’로 판단했다”며 “하지만 김달현이 방한 후 귀국해 ‘개혁적인 발언’을 하다가 김정일의 미움을 샀다는 이야기를 퇴임 후 들었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체제의 수장인 대통령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을 했다면, 김달현이 충분히 이 체제와 말이 통하는 인물이라는 소리다.
 
  김달현의 개혁적인 성향은 여기저기서 포착된다. 김달현은 지난 1992년 독일을 방문해 현지 기업들과 발전, 관광, 건설 등 분야의 플랜트 도입 및 합작사업을 논의했다.
 
  대북사업에 관여한 김기병 롯데관광 회장은 《月刊朝鮮》(2007년 9월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1991년 남북한 관광협력사업 논의를 위해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을 찾아갔을 때 김달현을 만났다. 김달현은 그 자리에서 북한의 어려운 상황을 털어놓으며 쌀 지원을 요청했다. 공화국은 쌀이 부족하다. 연간 부족분이 200만t에 달한다. 해결 못하면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도저히 수습할 수 없다. 그래서 쌀을 구하는 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 우리를 도와줄 방법이 없겠느냐”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여러 증언을 들어보자면, 김달현은 북한체제의 문제점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으며 적어도 자신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사람이었음은 분명하다. 거기다 이를 넘어서서, 돈을 주고 해외에서 기술지원을 받으려는 계획까지 했던 사람이 김달현이다. 북한체제에서는 있기 어려운 혁신이다.
 
공개 총살당한 김정우 전 북한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장.
  코리아선진화연대 김광인 이사가 《프리미엄조선》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흥남비료공장의 ‘개건현대화’는 제3차 7개년 계획의 주요 과제 중 하나였다. 비료는 식량문제와 직결돼 있다. 질소비료를 주로 생산하는 흥남비료공장 현대화의 핵심은 압축기에 있었다. 문제는 낡은 구식 압축기를 새것(터빈식)으로 교체해야 하는데 그것이 만만치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김달현이 직접 발벗고 나섰다. 가까운 용성기계공장을 찾아 머리를 쥐어짜고 회의를 거듭해도 결론은 하나였다. 자체의 설비능력과 기술력으로는 터빈식 압축기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 자신 화학 전문가이자 공학도였지만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겨우 찾은 해법이 압축기의 핵심부품은 외국에서 수입하고 나머지는 어떻게든 자체로 해결해 보자는 것. 외국에서 핵심부품을 들여오자면 못해도 1억 달러는 있어야 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김정일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다. 김달현이 직접 김정일을 찾아가 “당 자금 중에서 1억 달러만 배려해 달라”고 요청했다.>
 
  지난 1992년 경제시찰차 한국에 왔던 김달현은 이듬해에 2·8비날론공장 지배인으로 좌천됐다가 지난 1999년 자살한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의 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경제특구)의 책임자였던 김정우는 지난 1997년 12월에 총살됐다. 총살 이유는 여러가지로 전해지는데 외국기업 유치와 관련, 돈을 받은 ‘비리’ 혐의다. 북한 당국이 김정우의 집을 수색했을 때 외국기업들로부터 받은 현금 약 30만 달러와 외국은행의 예금통장 등이 발견됐다고 했으니, 그의 뇌물수수는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개혁적 성향이 결국 그를 총살형에 처하게 했을 거라는 것이 북한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김정우는 미국에 가서 자본주의적 발언을 했을 정도로 사회주의 체제에서 가장 확실하게 전향한 케이스였다. 그로 인해 숙청당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숙청당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북한에서 개혁·개방을 꾀했던 자’라는 원로 경영인의 ‘촉’에 동의하지 않는 유동렬 자유민주연구원장 역시 김달현, 김정우에 대해서는 동의를 한다. 유 원장은 “김달현, 김정우는 북한이 중국식 경제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을 것이고, 이들은 개혁적 성향으로 숙청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용순의 경우
 
  북한 노동당 농업담당 비서였던 서관희는 지난 1997년 9월 농정실패 및 비리 혐의로 총살됐다. 북한은 서관희가 6·25전쟁 당시 미제의 간첩으로 고용됐고, 이후 당의 ‘주체농법’을 방해해 북한의 식량문제를 위기로 몰아 갔다며, 평양 시민이 보는 앞에서 그를 공개 처형했다. 서관희가 개혁을 꾀했는지에 대해서는 북한 관계자들이 반신반의한다. 잘 알려진 대로 그의 처형 이유는 고난의 행군 때 극심한 식량난을 겪은 북한이 ‘희생양’ 차원에서 그를 숙청했기 때문이다.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 출신인 마이클 리는 “김달현, 김정우, 장성택은 개방을 꾀하다가 희생당한 경우이고, 서관희는 철저히 희생양으로 본다”고 말했다.
 
  조봉현 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서관희는 기존의 농업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한 사람이다. 북한에서 기존 시스템을 바꾸는 것 자체를 개혁으로 받아들인다면, 개혁으로 인해 숙청된 케이스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남북·대일(對日)관계를 담당했던 김용순은 어떨까. 김용순이 직접 북한에서 경제를 챙기지는 않았지만, 그가 대남 창구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인해 포함시켰다. 김용순은 지난 2000년 9월 서울을 찾아 2박3일간 머물고 갔다. 김정일의 공식활동에 그림자처럼 수행했던 김용순은 방한 이후에 자취를 갖췄다. 김용순이 1년 동안 김정일 주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실각설, 심지어는 숙청설까지 나돌았다.
 
  하지만 《도쿄신문》은 2003년 8월 16일, ‘김용순이 지난 6월에 교통사고를 당해 머리를 크게 다친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이후 북한은 2003년 10월 26일 김용순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김용순의 사망과 관련해서는 여전히 여러 말이 나오고 있다. 정말 순수하게 교통사고가 나서 사망했다는 것과, 교통사고를 위장한 숙청일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아직까지 팽팽하게 맞선다. 그럼 김용순의 마음속, 아니면 행보는 개혁적이었을까.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김용순은 개혁파라고 보기 어렵다. 김정일의 총애를 받은 인물”이라고 봤다.
 
  유동렬 자유민주연구원장은 “김용순은 개혁파가 절대 아니며, 교통사고로 숨진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유 원장의 얘기다.
 
  “김용순이 뭐가 부족해서 개혁·개방 얘기를 하겠습니까. 북한에서 누릴 만큼 누리고 있는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할 리가 없습니다. 교통사고로 위장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정말 교통사고를 당해서 죽은 겁니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김정일 체제하에서 죽이려면 그냥 숙청을 하면 되지 교통사고를 위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북한에 차가 별로 없어서 교통사고가 나기 힘들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전혀 사실과 다릅니다. 제가 후지모토 겐지를 일본에서 만났을 때, 예전에 장성택이 탔던 차가 전복된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은이 여는 비밀연회에는 운전병도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예전에 비밀연회를 마치고 돌아가다가, 장성택이 세게 모는 바람에 차가 뒤집힌 것을 뒤따르던 후지모토 겐지가 봤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김용순은 분명히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이고, 개혁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지만 외교관 출신인 김석우 전 통일원 차관은 “북한의 도로상황, 자동차 대수를 감안하면 북한에서 교통사고가 날 확률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조용기 고려대 교수는 “김용순의 성향은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주민에게 다가간 인물임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조 교수의 얘기다.
 
  “북한에서 본인이 잘 먹고 잘사는데 왜 바꾸려고 하느냐는 입장에 대해 동의하지 않습니다. 김달현, 김정우, 김용순, 장성택은 모두 지도자입니다. 지도자들 중에는 백성이 못사는 모습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어떻게 해야 나아지는지를 고민하는 사람이 분명 있습니다. 김용순 역시 조금은 백성을 생각한 사람입니다.”
 
  코리아선진화연대 김광인 이사는 “북한의 폐쇄체제에서 개방을 안 해도 무너지니까, 어차피 무너진다면 해 보고 무너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가진 간부들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공개적으로 표명할 리는 만무하다. 김용순을 개방파로 분류할 수 있을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장성택은 개혁론자인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지난 2000년 9월 14일, 청와대 오찬장에서 얘기를 나누는 김용순 노동당 비서(왼쪽).
  그럼 장성택은 어떨까. 김정은의 고모부이자, 북한의 실세였던 장성택의 처형(2013년 12월)은 한국 사회에까지 충격을 줬다. 북한이 밝힌 장성택 처형의 이유는 최고 존엄(김정은)을 대하는 건방진 태도, 마약 및 도박 등 외화낭비, 북한 자원의 헐값 매각, 여성들과의 부당한 관계 등 여러 이유들 때문이다. 그 어디에도 경제를 바라보는 그의 성향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하지만 장성택은 개혁·개방을 꾀한 인물이었을까. 저녁 자리에서 북한 얘길를 주고받은 원로 기업인은 “장성택은 개혁론자였다”고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이에 반대한다. 정 연구위원의 얘기다.
 
  “장성택이 사고가 유연하고 술과 여자를 좋아하며, 청탁을 잘 들어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다 보니 그가 자유분방하게 보여서, 그를 만난 우리측 인사들이 그가 개혁을 꾀한다고 느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장성택이 주로 관장한 분야는 경제가 아니라 사법이었습니다. 지난 2009년에 북·중특구 사업을 하면서 비로소 경제분야에 발을 담근 건데, 그의 개혁적 성향이 숙청의 이유 중 하나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장성택은 개혁·개방에 대한 식견이 있었다고 본다. 급격한 서구식 자본주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인물이다”고 말했다.
 
  조용기 고려대 교수의 얘기다.
 
  “최근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에서 장성택의 처형을 안타깝게 보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장성택이 중국식 개혁·개방 모델을 가져오려 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장성택의 행보에는 국민들에게 다가가려는 모습이 분명 있습니다. 적어도 어떻게 해야 잘사는지를 고민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장진성 탈북 통전부 간부의 얘기다.
 
  “당조직지도부가 핵실험을 주도하면서 쐐기를 박았고, 장성택은 인민경제를 주도했습니다. 당지도부와 장성택의 관계가 껄끄러웠는데, 장성택의 입장에서는 계속 당조직지도부와 싸움을 해서 제압하려면 인민경제를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중국식 자본주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고 봅니다.”
 
  조봉현 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장성택은 군부에 대항해 북한 경제를 적극적으로 개혁·개방한 인물로 본다. 그의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뿐 아니라, 기존의 시스템을 바꾸려는 점에서 개혁론자로 보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장성택이 경제적 변화를 꿈꿨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그것을 들키지 않았을 것으로 보는 이도 있다.
 
  유동렬 자유민주연구원장은 “장성택이 경제에 탄력적이었다고 말을 하는데, 남한 자본주의의 장점을 알았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의 숙청과정을 보면서 굳이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장성택의 개혁적 성향이 숙청의 원인 중 하나였을 것이라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컴백한 박봉주’를 들어, 북한 내에서 개혁론자들이 처형당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반대한다. 정 위원의 얘기다.
 
  “박봉주는 북한 내에서 누구보다 개혁적인 인물입니다. 지방대를 졸업한 비주류이고, 신분상 문제가 있지만 실력으로 승부한 사람으로 꼽힙니다. 기득권 세력과 충돌을 해서 지난 2007년에 비날론기업소로 좌천이 됐지만 최근에 다시 내각 총리가 됐습니다. 만일 박봉주가 숙청됐다고 하면, 북한 내에서 개혁적 성향의 인사들이 처형됐다고 볼 수 있지만 박봉주가 건재하기 때문에 그 의견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박봉주를 보는 시선은 여러 갈래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박봉주를 개혁주의자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박봉주는 주체 노선에서의 개량주의자다. 개혁을 통한 것이 아니라, 현 체제에서의 약간의 변화를 상징하는 인물 정도다”라고 말했다.
 
  조용기 고려대 교수는 ‘박봉주가 위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조 교수는 “북한체제의 특성상 박봉주가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사라지지 않겠느냐는 예측을 한 이가 여럿”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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