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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추적

‘조총련 본부’ 를 둘러싼 日・北의 수상한 거래 의혹

글 : 이민호  통일일보 서울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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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법원, 두 차례 流札 끝에 時勢의 반값에 부동산 투자업체 마루나카홀딩스에 조총련 본부 건물 넘겨
⊙ 마루나카홀딩스, “건물 明渡 받겠다”면서도 적극적 행동 없어… 시세차익 목적 매입 아닌 듯
⊙ 2차 유찰업체인 몽골의 아발社는 북한이 세운 페이퍼컴퍼니 의혹
⊙ 2007년 건물 인도 피하기 위한 위장매매 사건 발생, 前 공안조사청 장관, 일본변협회장 등 거물 연루
⊙ 최근 日北 접촉에서 조총련 건물 관련 언급 없어, 물밑 합의 있었을 가능성
마루나카홀딩스라는 일본 회사에 넘어간 조총련 본부 건물. 도쿄 치요다구 요지에 위치하고 있다.
  지난 5월 29일 오후 6시 반. 도쿄와 평양에서 동시 발표된 일본과 북한의 합의 소식은 한반도 주변국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골자는 북한 당국이 일본인 납치피해자 재(再)조사를 실시하며, 일본은 그 진전에 따라 반대급부로서 자신들이 내린 대북(對北)제재 조치를 단계적으로 해제해 나간다는 것이었다. 일본 정부는 이에 대해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가 가하고 있는 대북제재와는 별개의 일로서, 일본이 내린 ‘독자제재의 일부 해제’라며 짐짓 축소하려는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일본이 북한에 주려는 선물은 그동안 꽁꽁 묶어놨던 조총련(朝總聯)의 북한행 돈줄을 풀어주겠다는 의미로 풀이됐다. 대북제재 완화 대상은 ▲인적 왕래 규제 ▲송금 규제(현재는 현금 지참 10만 엔 초과, 송금 300만 엔 초과분은 일본 당국에 보고 의무) ▲만경봉호를 비롯한 북한적(北韓籍) 선박의 일본 입항(入港) 금지 등이다.
 
  이 3가지 제재조치는 북한이 일본에 줄기차게 해제를 요구해 왔던 알맹이 중의 알맹이였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대북지원도 적절한 시기에 실시할 것을 검토한다고 발표, ‘인도적’이란 꼬리표를 달았지만 사실상 대북 퍼주기의 길까지 열어놓았다.
 
  이처럼 일본의 과감한 대북제재 해제 의향은 아베 정권이 일본인 납북자(拉北者) 문제 해결을 얼마나 중차대한 사안으로 인식하는가를 보여주는 증표일 것이다. 제아무리 동맹국인 한국과 미국이 반대할지라도 자국민(自國民) 문제에서만큼은 양보 않고 밀어붙이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北, “공화국의 주권 문제”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간 일본과 북한이 다뤄온 최대 쟁점은 이번 합의에서 누락되어 있었다. 바로 조총련 본부(‘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중앙본부’의 약칭) 건물 매각 문제다.
 
  북한이 수년 전부터 일본 정부에 줄기차게 정치적으로 해결해 줄 것을, 일본식 표현으로 ‘배려’를 요구해 왔던 사안이다. 북한 당국자들은 일본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일본과의 대화는 없다”고 거듭 강조해 왔다. 쟁점으로 치자면 그 어떤 것보다 핵심이었다. 그걸 빼놓고 일북(日北)은 합의를 이뤄냈다.
 
  현재 조총련 본부 건물은 남의 수중에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다. 2년 전 경매에 부쳐졌던 건물과 토지가 지난 3월 마침내 낙찰자(落札者)를 찾았다. 늦어도 7월 초까지 낙찰대금이 납입되면 본부는 새 주인을 위한 인도(引渡) 절차를 밟게 될 공산이 높다. 사실상 주일(駐日) 북한대사관의 역할을 맡아왔으며, 북한 정권 제1의 해외공작 거점인 조총련 본부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본부 처리에 대한 아무런 확답(?)도 받지 못한 채, 일본이 요구하는 납치자 재조사를 수용했다. 반대로 일본은 북한으로부터 집요하게 추궁당해 온 사안을 제외시키는 외교적 성공(?)을 거뒀다. 납치자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면 북한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용의가 있는 것처럼 보였던 아베 정권의 과감한 태도와는 엇박자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물론 조총련 본부 매각 문제는 일북이 최종합의문 안을 조율하기 직전까지도 ‘줄다리기의 대상’이었다. 북한은 이 문제를 올 초부터 시작한 일본과의 3차례 공식 협상과 중국, 몽골 등지에서 행한 수차례 비공식 협상에서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북한은 이를 “공화국의 주권 문제”라고 규정지으며 일본 정부에 빠른 해결을 촉구했고, 합의를 도출해 낸 3차 공식 협상 막판까지도 “총련본부 문제는 인민 전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사안으로 반드시 해결되어야 한다”(북한의 宋日昊 북일국교정상화교섭 담당대사, 5월 28일 스웨덴 스톡홀름)고 일본을 압박했다.
 
 
  갑자기 잠잠해진 조총련
 
  결과적으로 조총련 본부 처리 문제는 일북 간 최종합의문에서 빠졌다. 지금까지 양측 협상의 전후 사정을 감안하면 ‘예상을 빗겨간 의외’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이 이를 좌시했을까. 일본 측이 내세워온 “정치·행정이 사법부(司法府)의 결정에 대해 관여할 수 없다”는 논리를 호락호락 수긍했을 리 만무한 데 말이다.
 
  합의 발표가 나온 뒤 상황은 묘하게 흘러가고 있다. 일본 정부도 북한도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노코멘트 모드다. 그동안 시끄럽게 굴었던 조총련 역시 꿀 먹은 벙어리로 바뀌었다.
 
  조총련은 본부 매각 문제가 불거진 2005년 이래 일본 사법부를 상대로 트집 잡을 수 있는 건 죄다 법적 소송을 제기했고, 최근 몇 달 동안은 일본 매스컴과 적극적으로 접촉하며 여론 홍보전에 혈안이었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정숙해진 조총련의 태도나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잡음조차 들리지 않는 일본 여론이나 이래저래 수상한 기류가 흐르기는 마찬가지다. 재일동포 사회의 동향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기자와 관찰자들도 조총련 본부 문제에서 분명 구린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이가 적지 않다.
 
  2개월 앞으로 가보자. 2014년 3월 20일 도쿄 치요다구에 있는 조총련 중앙본부(東京都 千代田区 富士見 二丁目 14-15). 조직원들 사이에서 조선중앙회관으로 통하는 지상 10층 지하 2층짜리 이 건물은 북한 정권을 추종하는 재일동포 친북(親北)조직 조총련의 본산(本山)이다.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물인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에서 직선 거리로 불과 300m, 일본 천황의 거처인 황거(皇居)도 걸어서 쉽게 갈 수 있는 도쿄 도심의 일등지에 자리 잡고 있다.
 
 
  조총련 건물, 時勢의 절반 값에 낙찰
 
  이날 서충언(徐忠彦) 조총련 국제통일국장은 본부 건물 앞에서 일본 언론들을 맞이했다. 그는 오랫동안 매스컴 대책을 담당하며 언론 다루는 데는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서 국장은 기자들에게 기사감을 추가로 선물했다. 인터뷰에 응하면서 본부 건물 내부를 전격 공개한 것이다. 휘황찬란한 샹들리에와 반짝이는 대리석으로 치장한 바닥이 눈길을 끄는 1층 로비, 반세기 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조총련 본산의 내부공간이 속살을 드러낸 것이다.
 
  그동안 조총련은 본부 건물에 대해 외부인 출입을 철저하게 통제하며 북한 정권 인사와 총련 활동가 그들만의 아지트로서 꼭꼭 문을 잠가놓고 있었다. 서 국장은 얼굴을 붉히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이렇게 부당한 결정에 근거해 우리(조총련)가 큰 손해를 입게 됐습니다. 그건 용인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의 솔직한 기분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가 지목한 부당한 결정이란 이날 도쿄지방재판소가 내린 본부 건물과 토지에 대한 경매낙찰 건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도쿄지재는 이날 재경매에 차점으로 응찰한 가가와현(香川縣)의 부동산 투자업체 마루나카홀딩스에 조총련 본부를 넘기겠다고 발표했다. 낙찰가는 22억1000만 엔. 입찰 하한선(下限線)인 21억3460만 엔을 겨우 넘는 액수로 시세(時勢)의 절반 수준이다. 도쿄지재는 그로부터 나흘 뒤인 3월 24일 마루나카홀딩스사에 대한 매각허가가 확정됐다고 공시했다. 새 주인이 들어오는 건 이제 시간문제였다.
 
  조총련은 공시가 나오는 날도 다급하게 움직였다. 중앙본부 간부들이 변호인을 대동하고 도쿄 치요다구에 있는 일본사법기자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래대로라면 3번째 경매입찰을 열었어야 할 일이다. 이건 불공평한 처사”라고 항변했다.
 
  당일 조총련은 도쿄고등법원에 불복 심사를 해달라며 집행 항고(抗告)도 신청했다. 회견에서 본부의 진길상(陳吉相) 권리복지국장은 항고를 신청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제1차 경매 때 낙찰받고 대금을 납부하지 못해 자격을 잃은 종교법인) 사이후쿠사의 경우 약 45억 엔, (재경매 때 1차 낙찰을 받고 서류미비로 자격이 취소된 몽골기업) 아발사(社)는 50억1000만 엔에 각각 입찰했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22억1000만 엔은 그것들의 반액(半額)도 되지 않는다. 채무자로서 변제할 때 큰 손실을 입게 됐다. 법률적으로도 문제 소지가 다분하다. 우리가 집행 항고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마루나카홀딩스, “明渡 받겠다”
 
  비슷한 시기 낙찰의 행운을 거머쥔 마루나카홀딩스는 회사 고문변호사 시라이 이치로(白井一郞) 씨를 통해 입장을 발표했다.
 
  “조총련에 대한 임대차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명도(明度)를 받으려고 한다.”
 
  조총련으로부터 소유권을 넘겨받으면 그들을 건물에서 내보내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조총련 입장에선 그야말로 야단난 것이다. 꼼짝없이 이사 나갈 장소를 물색해야 할 신세에 처한 것이다.
 
  조총련 간부들의 볼멘소리가 일본 텔레비전과 신문지상에서 터져 나왔다.
 
  “조선(북한)과 일본 관계에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법적 제도상으로 억울한 일입니다.”
 
  이들이 하소연하는 모습을 일본 언론들은 ‘조총련이 이대로 아성(牙城)을 빼앗길 수 없다는 절박함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총련 조직원들 사이에서도 푸념 섞인 냉소가 흘러나왔다.
 
  “조직원도 줄고 있는 마당이니 이참에 콤팩트한 조직으로 탈바꿈하는 것도 좋은 일이야.”
 
  “본부가 제3자에게 넘어가는 걸 이젠 막을 수 없겠지?”
 
  “결국엔 (도쿄 분쿄구의) 조선출판회관으로 옮기게 되는 것인가.”
 
  “항고한 건 본부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기 위한 시간벌기용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동향은 지금까지 조총련 조직이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취해온 꼿꼿한 행동방식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듯한 긴박함 혹은 간절함 같은 것으로 비쳤다. 신속한 대응과 감정에 호소하는 언론플레이, 맥 빠진 조직원들의 목소리들은 조총련답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이상한 일은 자포자기한 것처럼 보이는 외양과는 달리 이전을 위한 실제적인 움직임은 전혀 포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짐 정리를 한다거나, 차기 조총련 본부의 유력지로 지목되고 있는 조선출판회관으로의 이전 기미가 전혀 없다.
 
  도리어 거꾸로다. 조총련의 산하단체가 오히려 얼마 뒤면 쫓겨나야 할 본부로 이전하려는 동향이 포착된 것이다. 조총련 동향에 밝은 전직 주일외교관 K씨는 이러한 상황이 수상하다고 진단했다.
 
  “이상한 일이 아닌가. 조총련 간부들은 대외(對外)홍보 활동에 전념하고, 일본 언론은 그들의 장단에 맞춰 호들갑을 떠는 꼴이라니. 겉으로만 동분서주(東奔西走)하고 있지, 자기 건물이 타인(他人)의 수중에 넘어간다는 위기의식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믿는 구석이 있지 않고서야 저럴 수는 없는 일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낙찰자인 마루나카홀딩스 역시 반응을 내지 않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는 점이다. 도쿄 도심의 일등지를 시세의 절반이란 헐값에 매입하는 행운을 거머쥐었음에도 기뻐하는 기색이 감지되지 않는다.
 
  마루나카홀딩스는 어떤 회사인가. 경매낙찰자로 선정됐을 때만 해도 회사 경영진인 나카야마(中山) 일가가 귀화(歸化)한 재일동포 아니냐는 풍문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일가가 시코쿠(四國) 지방에서 대를 이어 살아왔고 이 지방에서 100년 가깝게 사업을 벌인 것을 감안하면 헛소문일 확률이 높아 보인다.
 
  마루나카홀딩스의 원류(源流)는 수퍼마켓 체인인 주식회사 마루나카다. 가가와현(縣) 다카마쓰시(高松市)에 본사를 두고 일본 전역에 200개소가 넘는 가게를 운영 중이다. 현재는 2011년 11월 최대주주인 나카야마 씨가 자기 보유주식을 또 다른 대형 수퍼마켓 그룹인 이온그룹에 매각함으로써, 이온의 자(子)회사가 되었다. 다만 매각 사유가 경영진의 상속세(相續稅)를 줄이기 위해서였다는 말이 도는 만큼, 여전히 나카야마 일가의 영향력이 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루나카홀딩스는 나카야마 씨가 수퍼마켓 부문의 매각 차익을 가지고 2012년 2월 설립했으며, 수퍼 부문과 마찬가지로 다카마쓰시에 본점을 두고 있다. 주력 업종은 부동산 투자와 호텔, 레저 사업이다.
 
 
  “時勢 差益 목적 아닐 수도”
 
1955년 5월 22일 일본 도쿄의 아사쿠사공회당에서 열린 조총련 결성식.
  이 회사나 경영진이 북한이나 조총련 쪽과 연결됐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재일동포 관찰자들의 진단이다. 다만 나카야마 씨는 유력 경제인이기 때문에 일본 정치인들과는 이래저래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
 
  한 일본인 기자는 “마루나카가 주식을 매각한 이온그룹의 원류는 민주당 대표와 간사장을 지낸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의 아버지가 창업한 쟈스코그룹”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점을 차치해 놓고 보더라도 마루나카는 관련 방계(傍系) 회사가 여러 개이고 종업원만 1만명에 달할 정도이니, 지방에서는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유력 기업”이라며 “정치인들이 많은 표와 재산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 오너를 가만둘 리도 없고, 오래전부터 여야(與野) 정치인들과 다양한 인맥을 형성해 왔다고 보는 게 상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루나카홀딩스의 조총련 본부 경매 참가가 단순히 시세 차익(差益)을 위해서가 아닐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바꿔 말해 정치인이나 정부 고관(高官)의 권유에 따라 경매에 뛰어들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말이다. 이 말대로라면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것처럼 마루나카홀딩스가 이 건물을 수퍼마켓 매장으로 쓰기 위해 매입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본부 경매 입도 뻥끗 안 한 조총련대회
 
도쿄 기타구에 있는 조선문화회관. 지난 5월 24~25일 조총련 전체대회가 이곳에서 열렸다.
  일본과 북한의 정치적 합의가 발표되기 나흘 전, 조총련 조직의 최대행사(5월 24~25일)가 도쿄에서 열렸다. 기타구에 있는 조선문화회관에서 열린 제23회 전체대회이다. 통상 3년마다 열리는 행사로 원래는 작년 5월 개최 예정이었으나, 별다른 사유를 밝히지 않은 채 연기된 바 있다. 조총련 역사 60년 만의 사상 첫 전체대회 연기였다.
 
  당시 핵심배경으로 지목됐던 것이 중앙본부 경매 문제다. 작년 3월 말 본부 건물의 1차 경매가 입찰에 부쳐졌고, 이에 따라 조직 내부에서 조용하지만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한 조총련의 중추들이 혼란을 피할 방편으로 전체대회 일정을 ‘3년마다’에서 ‘4년마다’로 규약을 변경하면서까지 연기를 강행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었다.
 
  그렇기에 이번 대회 최대 관심사는 자연스레 조총련 본부 경매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중추집행부는 책임을 질 것인가에 쏠리고 있었다. 때마침 대회가 열리기 약 2주 전인 5월 12일에는 조총련을 자극할 일본 법원의 발표도 나왔다. 도쿄고등재판소가 조총련이 제기한 2차 낙찰에 대한 불복(不服)신청을 “이유 없다”고 기각결정을 내린 것이다. 대회에서 일본 당국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 자명해 보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본부 문제는 꼬박 이틀 동안 열린 마라톤 회의 동안, 의제로 오르기는커녕 경과보고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심지어 참가자들은 집행부에게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지방에서 올라온 고위간부와 중앙본부, 산하단체 임원을 합해 무려 2000명이나 참가했는데, 어느 누구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지극히 당연해 보이던 일본을 향한 비판과 조직 지도부를 향한 성토 전망은 ‘벙어리 회의로 마무리’라는 결과가 말해 주듯 빗나가고 말았다.
 
  참가자 대다수는 노코멘트로 일관했지만 일부는 취재진의 인터뷰에 응했다. 도쿄에 본사를 둔 재일동포 민족지 《통일일보》 취재진이 입수한 참가자들의 인터뷰는 이번 대회의 전반적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허종만 조총련 의장, 再신임 받아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김정일 총서기(‘총비서’가 공식 호칭이지만, 일본에서는 ‘총서기’라고 한다)가 돌아가시고 한때는 슬픔에 빠진 적도 있었지만, 이제 공화국에 새롭게 젊은 지도자가 섰다. 재일동포 사회도 젊은 세대 중심으로 힘을 내기 시작하는 걸 확인한 자리였다.”(관동지방의 대의원 A)
 
  “중앙본부 매각 문제는 대회라든가 공식석상에서 의견을 낼 사안이 아니다. 이걸 갖고 집행부를 추궁해서는 안 된다. 그 문제는 일본 정부가 우리에 대한 차별과 우경화해 가는 와중에 일어난 문제이기 때문이다.”(관서지방의 대의원 B)
 
  “(의장인) 허종만 한 사람의 책임이라 말할 수 없다. 그는 총련의 대표로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을 따름이다. 재일동포는 일본 사회의 제약을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총련도 그런 풍조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본부 문제를 허 의장에게 덮어씌워서는 안 된다.”(지방에서 올라온 대의원 C)
 
  “결국엔 김정은을 떠받드는 대회에 지나지 않았다. 북의 독재체제를 옹호 추진해 가겠다고 결의한 것이다. 대회 참가자들이 김정은 독재체제를 독재라고 느끼지 못한다.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다. 앞으로도 조총련의 중추는 변하지 않을 것 같다.”(최근 탈퇴한 전직 조총련 간부)
 
  대회 결과는 싱거웠다. 의장 허종만(許宗萬)이 재임에 성공하고, 여성동맹중앙위원장인 강추련(姜秋蓮)이 부의장에 선출된 것 정도만을 단신(短信)뉴스로 취급했을 따름이다. 대회 전에는 허종만이 작년 12월 숙청된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전 국방위 부위원장)과 가까운 사이라 의장직에서 낙마(落馬)하리란 풍문이 돈 적이 있었다. 재일동포 문제 관찰자들 사이에서는 일찍부터 허씨 집행부가 조총련을 관장하는 공작기관인 노동당 225국을 통해 장성택파와 유대관계가 깊다는 이야기가 회자돼 왔다. 하지만 허종만은 이번 대회에서 아무 저항도 받지 않고 재신임을 받았다.
 
 
  조총련, 결속력 여전히 강해
 
  김정은은 대회 당시 “조선총련은 일심단결하여 직면하고 있는 온갖 도전과 난관을 헤쳐나가고 조직 강화에 관심을 기울여라”라는 취지의 축하문을 발송했다. 김정은의 축하문은 대회 첫날 전체 대의원 앞에서 낭독됐다고 한다.
 
  비록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대형 얼굴사진을 붙여놓고 행해지는 종교의식을 연상시키는 행사였다고 하지만, 전체대회에서 확인된 조총련의 결속력만큼은 여전히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년 가을 조총련 산하 청년상공회가 개최한 가족 동반 모임에서는 무려 1만명 가까이 모여 일본 공안 당국을 놀라게 만든 일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본부 매각 문제에 관해선 조총련 내부에서도 지극히 일부만이 손을 대고 있다는 사실이다. 평양 정권과 직접 파이프가 닿아 있는 중추 몇 명이 취급하고 있기 때문에, 고위직 간부일지라도 동향을 모르는 깜깜이 상태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번 전체대회에서 본부 매각 문제가 일절 거론되지 않은 것이나 일본에 대한 비판이 전혀 나오지 않은 것만 봐도 조총련 중추가 본국의 평양과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한 기획물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親北응찰자(?)의 연이은 매수자격 상실
 
  경매투자자의 관점에서 조총련 본부라는 물건을 들여다보면 어떨까. 아마도 이 매물만큼 과정과 절차가 복잡 다난한 물건도 없을 것이다. 복잡도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수수께끼 투성이임을 금세 알아챌 수 있다.
 
  1차 낙찰자인 가고시마의 사찰 사이후쿠사(最福寺)는 45억1900만 엔의 응찰 대금을 마련하지 못해 최종단계에서 매수자격을 박탈당했다. 이후 재경매에서 최고가액 50억1000만 엔에 응찰해 2차 낙찰자가 된 몽골의 아발사는 법원이 나서 서류 미비를 사유로 내세워 낙찰자 자격을 취소했다.
 
  그러고 난 뒤 담당 법원인 도쿄지방재판소는 법률적 하자논쟁을 불러일으킬 법한 이례적 결정을 내렸다. 일본의 법률용어로 ‘차순위(次順位) 매수신청자’ 즉 차점자에게 경매물건을 넘긴 것인데, 경매시장에서 전례(前例)를 찾기 힘든 희귀 케이스에 해당한다. 부동산 업자들이 최소 37억 엔에서 43억 엔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평가하는 물건을 22억1000만 엔을 써낸 마루나카홀딩스에 낙찰자 자격을 부여한 것이다.
 
  이상한 정황은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의 자산관리공사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정리회수기구(RCC)가 본부를 경매에 부치기 전에 조총련 측과 조정하면서 협상금액으로 제안한 액수는 43억 엔. 바꿔 말해 RCC는 조총련이 43억 엔을 지불하면 경매에 올리지 않고 건물 소유권을 인정해 주겠다고 한 것이다. 그랬던 RCC가 수년의 시간이 지나 자기들이 원했던 금액에서 절반이나 깎아버린 법원의 매각 결정을 선선히 받아들였다.
 
  집행항고, 즉 불복신청은 조총련이 제기했지만, 어찌 보면 채권자인 RCC가 법원에 불만을 터뜨리고 법적으로 이의제기를 했어야 할 사안이라 지적할 수도 있는 일이다. 어찌됐든 RCC는 법원결정에 침묵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종합해 봤을 때, 조총련 본부 경매의 처리 과정은 어느 지점에서 계속해서 벽에 부딪히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수수께끼의 아발社
 
  그럼 1차, 2차 낙찰자는 어쩌다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했던 것일까. 작년 3월 하순에 1차 낙찰자로 결정된 사이후쿠사의 주지스님 이케구치 에칸(池口恵觀)은 과거 수차례 방북(訪北)해 북한 정권의 요인들과 두터운 인맥을 형성한 인물이었다. 그는 조총련의 중추인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측근을 비롯한 일본 정관계 인사, 재일동포 스포츠 스타들과도 두루 교류를 맺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낙찰 이후 이 괴승을 향해 일본 여론은 ‘북한 대리인 아니냐’며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당초 은행의 융자를 받아 자금을 조달하려던 이케구치의 계획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가나가와현의 건설회사와 대부업체 등으로부터 돈을 빌리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끝내 납부기한인 5월 10일까지 자금을 조달하지 못했다. 사이후쿠사와 이케구치 주지 입장에선 응찰금 5억3000만 엔만 고스란히 날려버린 비운의 결말이었다.
 
  1차 낙찰자가 성사 직전에서 계약이 불발되면서 재입찰에 부쳐진 조총련 본부. 작년 10월 17일 도쿄지재 민사집행센터(도쿄도 메구로구) 2층 개찰장에서 이뤄진 집행관의 발표에 현장취재를 나와 있던 기자들은 어안이 벙벙했다고 한다. 낙찰의 주인공이 아무도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이름의 회사였으니 그럴 법도 했다. 바로 50억1000만 엔의 금액을 적어내 구입 권리를 획득한 몽골 기업 아발사(아발 리미티드 라이어빌리티 컴퍼니)였다.
 
  이튿날 교도통신을 비롯한 일본 언론들은 아발사의 본거지가 있는 울란바토르로 특파원을 보냈다. 기자들이 밝혀낸 이 회사의 면면은 여러모로 수상쩍었다. 2013년 1월 등기한 신생 무역회사에, 자본금은 한화(韓貨)로 환산해 60만원에 불과하며, 사업 활동의 실적은 찾을 수 없었다. 회사 주소지에 있는 아파트 입주민들조차 아발사의 존재를 모른다는 증언도 나왔다.
 
 
  前 요코즈나 아사 쇼류
 
  일주일 뒤인 10월 22일, 도쿄지재의 정식 매각허가 발표가 예정된 날이었다. 그런데 법원이 허가 연기를 발표했다. 매각 심의를 위해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는 법원 관계자들의 설명이 뒤따랐다. 낙찰자가 결정된 경매물건에 대한 매각허가가 연기된 건 이례적인 일이다.
 
  아발사를 둘러싸고 실체가 없는 유령회사이며, 조총련 본부 낙찰을 받을 요량으로 일시적으로 세워진 페이퍼컴퍼니가 아니냐는 의혹은 점점 현실로 굳어져 가고 있었다. 일본 여론의 동향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10월 24일 아발사의 몽골인 사장은 울란바토르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다음과 같이 항변했다.
 
  “외국의 투자펀드로부터 돈을 빌려 입찰에 참가한 것이다. 어디까지나 비즈니스가 목적이다. 자세한 내용은 정식으로 낙찰을 받은 다음에 보고하겠다. 우리 회사는 일본·북한·몽골 어느 정부와도 관계되어 있지 않다. 어떠한 정치단체와도 무관하다.”
 
  진위여부를 떠나 이 발언은 의문부호를 재생산하고 말았다. 돈을 빌려줬다는 외국의 투자펀드가 직접 입찰해도 될 일을 굳이 아발사가 나서야 했는지 그 이유가 석연치 않았다.
 
  이 회사 사장이 일본 스모의 천하장사인 요코즈나(横綱) 출신의 아사 쇼류(朝靑龍)의 친척이란 사실도 문제시됐다. 몽골 태생의 아사 쇼류는 2010년 은퇴한 이래 수차례 북한을 방문해 “기회가 된다면 몽골과 북한을 잇는 비즈니스를 해보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2011년에는 도쿄에 있는 조총련계 ‘조선대학’의 창립기념행사에 다녀온 적도 있다. 그의 친형은 아발사 사장의 매제(妹弟), 몽골의 현역 국회의원으로서, 역시 북한과 파이프가 있는 인물로 알려졌다.
 
 
  북한과 몽골은 상호의존 관계
 
  북한과 몽골의 끈끈한 밀월관계도 미심쩍은 구석으로 지목됐다. 몽골은 북한과 오랜 세월 친교를 맺어온 우방국이다. 석탄, 구리, 우라늄, 석유 등이 엄청나게 매장된 세계 10대 자원부국(富國)이지만 미(未)개발 영역이 7할이 넘는 나라가 몽골이다.
 
  개발이 진척되지 않는 최대원인은 노동력 부족이다. 적은 인구로 인해 자체 인력으로는 노동력 조달이 어렵다. 때문에 한때 중국으로부터 노동자를 수용한 적도 있지만, 몽골 정부는 중국 의존도가 높아지는 걸 피하고 싶어 했다. 그런 노력 중 하나가 2008년 북한과 몽골 간에 체결된 노동자파견협정이었다.
 
  실제 현재 몽골에는 1700명이 넘는 북한 노동자가 월(月) 600~700달러를 받고 일하고 있다.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 몽골은 북한에 수출창구로 나진항을 이용하는 것을 두고 협상을 벌였다고 한다. 간단히 정리해 북한에 몽골은 외화(外貨) 획득원이고, 몽골에 북한은 노동력 공급원인 셈이다.
 
  ‘혹시 북한이 몽골의 커넥션을 활용해 경매에 참가한 건 아닐까? 북한이 보낸 돈이 경매자금으로 유입된다면?’이라는 가정(假定)은 북한이 진짜 입찰자이며 아발사는 바지사장일 뿐이란 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가 됐다.
 
  응찰자와 그 주변을 주시하며 정보를 수집해 온 일본의 공안당국도 아발사가 오로지 조총련 본부 입찰만을 목적으로 세운 페이퍼컴퍼니로 판단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사실이라면 ‘당사자는 경매에 참가할 수 없다’는 경매 규약을 어기는 일이 된다.
 
 
  ‘구비서류 미비’?
 
  그런데 법원이 낙찰자격을 박탈하면서 제시한 사유는 ‘당사자 입찰 불가’ 규약 위반이 아니었다. ‘구비서류 미비’라는 다소 엉뚱한 사유였다. 아발사가 입찰 시 제출한 3가지 서류 중 2가지가 공공기관이 발급한 게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회사 등기부등본은 컬러복사기로 복사한 흔적이 있으며 등본에 찍힌 직인은 몽골 정부의 것이 아니었다. 함께 제출한 영문번역본도 공공기관의 공증(公證)을 거치지 않은 서류였다. 한화로 500억원을 상회하는 입찰액을 적어내면서, 어이없게도 구비서류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아 낙찰자격을 잃고 만다?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2번째 입찰이 깨지면서 3차 입찰로 가는 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차기 입찰이 언제 부쳐질 것인가에 관심이 모이고 있을 때, 도쿄지재는 3월 20일 전례를 찾기 힘든 결정을 내린다. 대다수의 전망을 뒤집고 재경매 때 22억1000만 엔에 응찰한 차점자 마루나카홀딩스를 낙찰자로 결정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 법원이 3차 입찰을 실시할 경우, 아발사가 제대로 된 서류를 구비해 응찰할 것이니 이를 미연에 차단하려고 차순위자에 넘긴 것 아니냐는 얘기가 대두되기도 했다. 여하튼 법원의 결정은 내려졌고, 이후 제기된 조총련의 불복신청은 고등재판소에서 기각됐다.
 
 
  아베 정권의 親蒙정책
 
아베 일본 총리와 엘베그도르지 몽골 대통령의 회담을 보도한 4월 17일 자 《니혼게이자이》신문.
  친몽(親蒙)정책으로 치자면 일본 정부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일본 눈에 비치는 몽골은 북한과 깊은 관계이면서 중국의 간섭을 적게 받는 나라이다. 게다가 부존(賦存)자원이 넘쳐나는 개발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자원부국이다. 일본과 북한 모두 몽골과는 수교관계이니, 몽골이야말로 그들이 그토록 해결을 원하는 납치자 문제의 일북 간 중재자 역할을 기대하기에 적격이다.
 
  몽골도 선진국 일본으로부터 대규모 경제적 지원을 이끌어내고 싶어한 지 오래다. 이래저래 북한과 일본, 몽골 3자는 각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할 수 있는 공통분모적 요소가 많다.
 
  실제로 근년 들어 일몽관계는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모습이다. 지난 4월 16일 아베 신조 총리는 총리 관저에서 몽골의 엘베그도르지 대통령과 점심식사를 겸해 1시간15분간 회담했다. 그 자리에서 아베 총리는 대통령에게 한 달 전(2014년 3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성사된 납북피해자의 상징격인 요코타 메구미(横田めぐみ, 납북 당시 13세)의 부모와 메구미의 딸 김은경의 면회를 도와준 것에 대해 감사인사를 전했다.
 
  양국 정상(頂上)은 석탄 매장량이 세계 최대 규모인 타반토르고이 광산을 비롯한 몽골의 인프라 개발에 관한 협력방침도 재확인했다. 앞서 아베 총리는 작년 3월 말 울란바토르의 몽골 정부청사에서 화력발전소 수리자금으로 42억 엔을 지원하기로 하는 등 몽골에 경제협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해 7월에는 후루야 게이지(古屋圭司) 납치문제담당장관도 몽골을 방문해 정부 고관들을 만나 납치자 문제 해결을 도와달라는 당부를 했다. 몽골 역시 2개월 뒤인 9월 총리와 대통령이 연이어 일본을 방문했다.
 
  주목해야 할 다른 부분은 작년부터 일본 정부 고관들의 도쿄 몽골대사관 출입이 잦아졌다는 것이다. 고관 중에는 아베의 멘토로 불리며 일북관계의 막후인물로 여러 차례 등장한 바 있는 이지마 이사오(飯島勳) 내각관방 참여도 포함돼 있었다. 그가 몽골대사관을 찾은 이유를 놓고선 조총련 중추인물을 만나 본부 매각 문제를 논의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日北 비밀접촉
 
일본-북한 간 몽골 비밀교섭을 다룬 4월 24일 자 《니혼게이자이》신문 기사.
  한편 몽골 대통령이 도쿄를 떠난 지 일주일만인 4월 24일,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이날 자로 흥미로운 기사 한 건을 보도했다.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경찰청 외사정보부장 출신인) 미타니 히데시(三谷秀史) 납치문제담당 내각참여와 납치문제대책본부 이시가와 요이치로(石川正一郞) 사무국장이 22~25일까지 울란바토르를 방문 중이다. 엘베그도르지 몽골 대통령은 16일 아베 총리와의 (도쿄) 회담에서 차기 일북협의 개최에 협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은 이달 5~6일 중국에서 열린 일북 간 비공식 협의에서 일본의 제재완화를 조건으로 납치피해자 재조사에 응할 용의가 있다고 일본 측에 전했다. 양국 정부는 월내에라도 정식 합의를 이끌어낼 방도를 모색하고 있다.”
 
  정황상 이때 일본과 북한의 협상은 타결 직전이었으며, 합의발표 시기만 남겨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1개월 뒤 드러난 일북합의 결과는 《니혼게이자이》 기사와 큰 줄기에서 다르지 않았다. 4월 발표가 5월 말로 연기되고, 회담장소가 몽골에서 스웨덴으로 바뀌었다는 정도의 차이뿐이었다. 일북협상 건을 꾸준히 취재해 온 서울 주재 한 일본인 기자의 말이다.
 
  “기사가 나오자 아베 정부가 발칵 뒤집힌 것으로 안다. 은밀하게 추진하고 있던 일북협상의 내용이 외부로 새나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역을 교체하고, 장소도 당초 생각했던 몽골이 아닌 지구 반대편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옮긴 것이란 이야기가 나왔다. 조총련 본부 문제도 중요 협상 테마인데 이상하게도 그것에 관해선 보안에 신경 써서인지 몰라도 들리지 않았다.”
 
 
  日정계의 조총련 봐주기 의혹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조총련 본부 문제는 도대체 왜 간단히 정리되지 않는 것일까, 혹시 일본 정부의 처리 의지가 약한 건 아닐까 궁금해질 것이다. 장장 9년간 장기레이스가 벌어지고 있는 형국이니까 말이다. 단순하게 보면 몽골 기업의 개입이든, 괴승의 참가든 간에 경매시장에 나온 일개 물건일 뿐이다. 그러니 법원이 법적으로 처분해 버리면 끝나는 일이다.
 
  처음에 조총련 본부 매각 문제가 대두된 건 2005년 11월이었다. RCC가 파탄 난 복수의 조총련계 신용조합으로부터 총액 1533억 엔의 불량채권을 인수했는데, 조사 결과 이 가운데 627억 엔이 조총련으로 흘러간 융자금으로 확인됐다. RCC는 이를 근거로 조총련을 상대로 변제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그대로 인정됐다. 이후 조총련과 RCC는 본부 매각 협상을 진행했으나 조정은 결렬, RCC는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하고 조총련 본부의 건물과 토지에 대한 법원 경매를 신청했다.
 
  하지만 바로 난관에 부닥쳤다. 본부의 등기상 소유자가 조총련이 아니라 ‘합자회사 조선중앙회관관리회’로 명의가 다르게 설정돼 있어 강제집행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RCC는 다시 소송을 제기했다. 실소유자가 조총련이란 사실을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법원은 1심(2009년 3월)에 이어 2심(2010년 12월), 최고재판소 결심(結審·2012년 6월)까지 모두 RCC의 손을 들어줬다. 조총련의 거듭된 불복항소로 길어졌다고는 하지만 판결까지 소요된 시간은 그걸 감안하더라도 지나치리만큼 길었다. 통상 2심 고등재판소에서 최고재판소 결심까지 3개월이면 마무리된다고 하니, 얼마나 지루한 법률 심판이었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는 경매를 회피하려고 명의를 바꿔치는 시도가 적발되기도 했다. 이른바 위장매매사건으로, 조총련이 일본인 유력자들과 허위로 35억 엔에 본부를 매각한 것으로 꾸민 사건이다.
 
  발각 시점은 2007년 6월 12일. 조총련 본부의 건물과 토지 소유권이 전 공안조사청 장관인 오가타 시게타케(緒方重威)가 대표이사로 있는 투자회사 하베스트투자고문주식회사로 넘어간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회사는 이름만 있고 사업실적이 전혀 없는 페이퍼컴퍼니였다. 오가타 전 장관도 수사를 받으며 이를 시인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위장매매에 가담한 동기에 대해 “재일조선인에게 대사관이 없어지는 걸 참고 있을 수 없었다. (조총련 본부) 시설이 있는 게 일본의 국익(國益)에 부합된다고 믿기 때문”(2007년 6월 13일)이라고 항변했다. 1차 경매 때 대금을 마련하지 못해 낙찰을 단념했던 사이후쿠사의 이케구치 주지가 “조총련 본부 건물을 경매에 거는 건 북한에 대한 선전포고”라 주장한 것과 표현만 다를 뿐 비슷한 맥락이다.
 
  위장매매사건에는 법조계 중진(重鎭)인 쓰치야 고우겐(土屋公獻) 변호사도 개입돼 있었다. 쓰치야는 일본변호사연합회 회장까지 지낸 인물이다. 오가타도 고검장까지 지낸 법률가 출신이다. 국가안보를 다루는 장관까지 역임한 법률가 겸 정치인, 법조계를 쥐락펴락 하는 일본 주류에서도 거물로 꼽히는 두 명이 ‘조총련의 대리인’ ‘하수인’이었던 것이다.
 
 
  이상한 日검찰 수사
 
  이때 또 하나의 이례적 상황이 벌어진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오가타가 조총련 본부를 허위로 매수했다는 사실이 폭로된 이튿날인 6월 13일과 그 다음날인 6월 14일, 오가타의 자택과 사무실 그리고 쓰치야의 자택에 대해 각각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일본 검찰의 수사는 철저한 사전준비로 시간이 오래 걸리기로 유명하지만, 특수부는 사건 발각 하루 만에 용의자들을 압수수색했다. 이렇게 신속한 검찰의 수사집행은 과거에 없던 일이었다. 그것도 저명한 유력인사들을 상대로 말이다.
 
  수사결과도 수상했다. 원래 용의점은 본부 경매를 피할 목적으로 한 ‘강제집행 방해’였다. 그런데 그 이후 또 다른 공범으로 부동산 브로커 미쓰이 다다오(滿井忠男)가 체포되고 난 다음에 용의점이 바뀌었다. ‘사기죄’로 돌변해 버린 것이다. 그 덕분에 조총련은 전화위복(轉禍爲福)할 수 있었다. 위장매매사건을 주동한 범죄 혐의자에서 사기사건의 피해자로 둔갑해 버린 것이다. 조총련의 넘버원인 의장 허종만도 수사선상에서 빠지게 됐다.
 
  당시 일본의 총리는 지금의 아베 신조 총리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를 이은 자민당 정권, 아베 정부 1기 때였다. 역대 어느 일본 정권보다 어느 총리보다 북한과 조총련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여온 지도자의 시절에 수수께끼 같은 사건이 벌어졌으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워낙에 이상한 일이다 보니 “조총련이 예전부터 전달해 온 자민당 의원들에 대한 정치자금 리스트를 빌미로 정권을 협박했다”거나 “일본 정치인과 조총련의 유착에 의한 타협의 소산”이란 말이 풍문으로 돌았다. 조총련 본부 위장매매사건은 말끔히 해소되지 못한 미제 사건으로 남은 셈이다.
 
 
  조총련 본부의 운명은?
 
  앞으로 조총련 본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현재로선 이변이 없는 한 낙찰자인 마루나카홀딩스로 소유권이 넘어갈 가능성이 농후한 상태다. 6월 말 내지 7월 초순으로 예상되는 납부기한까지 경매낙찰금을 납입하면 바로 소유권 이전 절차를 밟게 되는 법적 수순이다. 마루나카홀딩스 측이 명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조총련은 본부 조직을 옮겨야만 할 것이다. 이전지로는 도쿄 분쿄구에 있는 조선출판회관 건물이 유력하다고 전해진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이고 대체적인 전망이다.
 
  하지만 예상이 뒤집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여러 군데에서 들린다. 재일동포 문제에 밝은 한 주일 소식통은 이렇게 내다봤다.
 
  “평양은 조총련 본부 문제를 일본 정부의 의지 문제로 판단한다. 행정의 힘으로 해결하라고 압박해 왔고 그 입장을 바꾼 적이 없다. 이번에 일본인 납치자 재조사를 수락하면서 본부 문제를 그냥 넘겼을까. 본부가 남의 수중에 넘어가지 못하게 해달라고 거듭 압박하고 답을 받았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경매 과정도 법적 하자의 여지가 있지 않은가. 일본 대법원에서 조총련의 불복 이의신청을 받아들이는 전격적 조치가 나온다면 3차 입찰로 돌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도 설령 마루나카홀딩스로 소유권이 넘어가더라도 시간차를 두고 조총련이나 친조총련계 기업에 되파는 방법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어떤 경우가 되든지 조총련으로선 본부에 눌러앉을 시간은 벌게 될 것이다.”
 
  또 다른 소식통은 이색적인 분석을 내놓았다.
 
  “1991년 김일성-가네마루 교섭에서 일북수교 시 보상금을 둘러싸고 협의하지 않았는가. 당시 북한은 조선학교 등 일본 내 자기 시설들을 담보로 일본 금융기관에서 빌린 부채(負債)를 탕감한다는 묵시적 합의를 이끌어낸 것으로 안다. 듣기로는 그 금액이 20억 달러였다. 가령 일본에서 120억 달러를 보상금으로 받는다면 조총련의 빚 20억 달러를 빼고 100억 달러만 달라는 합의였던 것이다.
 
  북한의 생각은 조총련 본부 문제도 일본에 그 돈으로 처리하라는 것이다. 조총련과 그 조직원들이 돈이 없어서 본부 문제로 시끄럽게 굴겠는가. 서울의 낡은 10층짜리 건물 가격도 안 되는 금액인데…. 빚을 갚으려 않고 이래저래 경매 회피에 나선 이유를 알 만하지 않은가.”
 
 
  “개인이 살 수 없는 물건”
 
1960년대 초 북송선에 오르는 재일동포들. 북한은 지상낙원이라는 김일성과 조총련의 감언이설에 속아 북송선을 탄 동포는 10만명에 달한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를 지지하는 민단(民團)계 재일동포들은 조총련 본부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재일동포 누군가가 매입할 기회를 잡을 수는 없었을까?
 
  이에 대해 민단(‘재일본대한민국민단’의 약칭) 중앙본부의 오공태(吳公泰) 단장은 “경매 입찰을 검토했지만 민단 차원에서 접근할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오 단장은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민단의 한 간부는 “내부에서 다루기엔 부담이 많았다. 재일동포 경제인들에게 입찰해 보는 게 좋겠다는 권유가 나왔지만 솔직히 그것으로 끝이었다”면서 “다만 설령 낙찰을 받는다 할지라도 일본 정부가 선선히 넘겨줄 리 없다며 지레 포기하는 기류가 흘렀다”고 털어놨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민단계 동포 대다수는 조총련 본부를 매입의 대상이 아니라 ‘그림의 떡’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한때 경매참가를 진지하게 검토했다는 민단계의 한 경제인은 “개인이 매수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란 걸 알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며 “노무현 정권부터 이명박 정권까지 청와대 쪽에도 매입 권유를 한 적이 있지만, ‘좋은 아이디어’란 말만 들었을 뿐 정부 역시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예외가 있긴 했다. 1차 경매 때 도쿄에 본사를 둔 재일동포 대부업체 대표가 입찰에 참여했었다. 이 대표를 잘 아는 재일동포에 의하면 그는 27억 엔을 응찰액으로 적어냈으며, 나중에 일본 법원이 22억1000만 엔에 낙찰을 결정하자 분통을 터뜨렸다고 한다. 2차 때 응찰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그는 “1차 낙찰액이 시세를 넘어서는 수준이라 2차 때는 그보다 높으면 높아졌지 낮아질 것 같지 않고, 명도 절차도 까다로울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한다.
 
  그러나 사정이 어찌됐건 민단과 친한국계 재일동포들의 소극적인 자세는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특히 민단의 자세가 아쉽다. 수년째 산하조직인 상공회의 독립여부를 둘러싼 갈등, 내부문제에 노력과 시간을 기울이면서, 정작 당장 접수할 수 있는 조총련 본부 경매 문제는 좌시했다. 그렇기에 재일동포의 구심단체, 대한민국과 고락을 함께한다고 자임하는 민족단체가 취할 자세는 아닌 것 같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조총련 본부 매입은 재일동포 사회의 역사, 조총련의 역할과 행동 몇 가지 사실만 알아도 결행해야 할 일이었다.
 
  1955년 결성한 조총련 조직은 종북(從北)의 원조다. 조총련 본부는 김일성으로부터 시작한 북한 김씨 왕조의 대남공작 최전선 사령부 역할을 수행해 왔다. 일본인 납치를 비롯한 악행(惡行)이 모의된 곳으로 의심되고, 북한 정권에 대한 맹목적 지원에 가담한 중심장소였다.
 
  북송(北送)된 재일동포들에게는 한(恨)서린 눈물이 아로새겨진 곳이기도 하다. 1959년 북송사업이 개시됐을 때, 금의환향을 꿈꿨던 동포들은 일본 정부가 허가한 1인당 지참금 4만5000엔을 제외한 전 재산을 조총련 조직에 헌납하고 북송선에 올랐다. 김일성의 ‘지상낙원으로 오라’는 거짓선전에 속아 북으로 갔던 10만여 동포들이 헌납한 재산으로 세워진 건물이 바로 조총련 본부인 것이다.
 
 
  우리가 살 수는 없었을까?
 
  이쯤 되면 민족의식이 있는 누군가는 매입을 위해 노력했어야 할 터이다. 안타깝게도 노력도 움직임도 거의 포착되지 않았다. 제아무리 정치적 개입설이 있든, 일본 주류(主流)와의 유착설, 각종 압박설이 있든 못할 일은 아닌 것이다.
 
  일본은 독재국가가 아니다. 개인의 의사가 존중되는 자유민주주의체제 국가이며, 법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법치국가이다. 3권 분립도 시스템으로 기능하는 국가이다. 자격을 갖춘 자라면 누구라도 경매에 참가할 수 있는 것이다. 하등의 장애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 점에서 ‘통일’을 대비하는 한국 정부가 수수방관한 것도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다. 중앙정부에서도 주일대사관에서도 이 문제와 관련해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총련 본부에 태극기를 꽂는다면 남북이 분단된 이래 해외에서 벌어진 남북 간 체제 전쟁의 종지부를 찍는 일이고, 본부 건물은 재일동포 차세대에게 동포의 역사를 일깨워주는 살아 있는 교육의 현장으로 삼을 수 있다. 제2의 민단 건물로 써도 좋았을 일이다. 구형 헬리콥터 1대 가격밖에 안 되는 건물, 재일동포 재력가 1명의 힘으로도 매입할 수 있었다. 민족사업으로서 투자하겠다는 동포는 없었을까. 일본 정부와 물밑교섭을 통한 해법 찾기는 불가능했을까.
 
  ‘기회는 찾아올 때 붙잡으라’는 격언처럼, 현실에서는 실천하지 않는 고민은 무소용이다. 조총련 본부 매각 문제가 더더욱 진한 아쉬움으로 남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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