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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의 시각

한국인의 戰後 70년 - The Greatest Story Ever Told!

한국인은 빚을 다 갚았다! 김정은·문재인·이재명 세력만 정리하면 자유통일로 가는 문이 열린다.

글 : 조갑제  조갑제닷컴·조갑제TV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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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은 南侵抗戰과 서울올림픽으로 공산제국을 무너뜨리고 자유세계를 구했다!
⊙ 인류 역사상 가장 악질적인 세 악당은 한국전에서 한국과 미국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들을 만나 역사의 패배자가 되었다
⊙ 북한 공무원 출신으로 흥남철수 때 월남한 문재인의 아버지, 아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나?
⊙ 세계시민으로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를 실천한 1950년의 미국인들은 ‘가장 위대한 세대’였다
⊙ “미국이 한국에서 버텨낸 덕분에 冷戰에서 우리가 최종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빌 클린턴)
⊙ “한국전은 20세기 후반의 세계정세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제2차 세계대전만큼 중요한 역할을 했다”(美 국방부 刊 《전쟁의 시련》)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있었던 휴전협정 조인식에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표를 보내지 않았고 서명도 하지 않았다. 북한 정권의 비겁한 기습남침으로 국토가 난장판이 되고 3년 1개월간 피 터지게 싸운 결과는 거의 원위치로의 복귀였다. 대통령은 다 이긴 전쟁을 미국이 망쳤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도저히 이 휴전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휴전협정 조인식을 보도한 1953년 7월 29일 자 《조선일보》의 사회면 머리기사 제목은 ‘오고야 만 휴전의 날. 통일쟁취는 이제부터’였다. 판문점에 특파되었던 최병우(崔秉宇) 기자는 그 뒤 《한국일보》로 옮겨 대만해협 위기를 취재하던 중 타고 있던 함정이 침몰해 순직했다.
 
  <백주몽(白晝夢)과 같은 11분간의 휴전협정 조인식은 모든 것이 상징적이었다. 너무나 우리에게는 비극적이며 상징적이었다. 학교 강당보다도 넓은 조인식장에 할당된 한국인 기자석은 둘뿐이었다. 유엔 측 기자단만 하여도 약 백 명이 되고 참전하지 않은 일본인 기자석도 10명이 넘는데 휴전회담에 한국을 공적으로 대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볼 수 없었다. 이리하여 한국의 운명은 또 한 번 한국인의 참여 없이 결정되는 것이다.
 
  27일 상오 10시 정각 동편 입구로부터 유엔 측 수석대표 해리슨 장군 이하 대표 4명이 입장하고 그와 거의 동시에 서편 입구로부터 공산 측 수석대표 남일(南日) 이하가 들어와 착석하였다. 악수도 없고 목례(目禮)도 없었다. ‘기이한 전쟁’의 종막(終幕)다운 ‘기이한 장면’이었다. 해리슨 장군과 남일은 쉴 새 없이 펜을 움직인다. 각기 36번 자기 이름을 서명하여야 하는 것이다. (중략) 그 속에는 우리가 그리지 않은 분할선이 울긋불긋 우리의 강토(疆土)를 종횡으로 그려져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 앉아 있는 이곳이 우리나라인가?” 이렇게 의아한다. 그러나 역시 우리가 살고 죽어야 할 땅은 이곳밖에 없다고 순간적으로 자답(自答)하였다. (중략) 관례적인 합동기념 촬영도 없이 참가자들은 해산하였다.>
 
 
  지난 70년간 우리는 빚을 다 갚았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체결식. 이후 70년간의 역사는 대한민국이 승리했음을 보여준다.
  올해는 1953년 한국전 휴전으로부터 70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가 미국 등 유엔 회원국들과 손잡고, 스탈린·마오쩌둥(毛澤東)·김일성 세 악당(惡黨)의 침략과 맞서 싸운 한국전은 무승부(無勝負)로 끝나는 듯했지만 그해 7월 27일부터 새로운 형태의 체제경쟁이 시작되었고 이기고 있다.
 
  우리가 한미(韓美) 양국의 최고사령관 이승만, 트루먼 대통령의 영도하에 세계시민으로서 싸운 덕분에 자유세계가 냉전(冷戰)에서 최종 승리했다. 우리의 정의로운 항전(抗戰)으로 대만이 살았고, 일본이 경제부흥했으며, 서독은 재무장하고, NATO는 군사동맹체로 강화되었다. 미국은 군사비를 4배로 늘려 본격적인 대소(對蘇) 군비경쟁을 시작했고, 한국은 폐허 위에 위대한 문명을 건설하였다. 남침 40년 뒤 소련(동구) 공산제국은 군비경쟁으로 경제적 기반이 무너지고 주민들의 삶이 피폐해지니 총 한 방 쏘지 못하고 핵무기를 껴안은 채 무너졌다.
 
  소련과 동구 공산국가의 변화에 큰 역할을 한 것은 우리가 주최한 88서울올림픽이었다. 소련과 동독이 메달 수에서 1, 2등을 하고 선전매체들이 경기뿐 아니라 한국의 발전상을 열광적으로 중계방송을 한 것이 오히려 주민들에게 “우리는 뭐냐?”는 문제의식을 심어 1989년의 공산권 대붕괴로 이어졌다. 우리는 사생결단의 저항과 평화의 올림픽 주최로 공산당을 무너뜨리고 자유세계를 구했다. 아시아에서 공산당과 싸워 자유를 지킨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괴물과 싸우되 괴물을 닮지 않았다
 
  지난 70년 한국인의 가장 위대한 결단은 괴물과 싸우되 괴물을 닮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민주주의를 희생시키지 않고 키우면서 공산주의와 싸웠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은 재임 18년간 수많은 폭력 시위에 직면했지만 한 번도 발포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단 한 명도 총 맞아 죽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그런 점에서 진짜 노벨평화상감이다). 그리하여 한국인은 최악의 조건에서 최단기간에 최소한의 희생으로 최대의 업적을 남겼다.
 
  미국의 한 매체는 연초 한국이 ‘강력한 나라 랭킹’에서 일본을 제치고 세계 6위가 되었다고 했다. 인구 5000만 이상,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의 큰 나라 중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는 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한국·이탈리아뿐이다.
 

  신약성경 로마서 12장은, “아무에게도 악(惡)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善)한 일을 도모하라. 악에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는데 한국인이 걸어온 길이 바로 이 가르침대로였던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도 건국기념 연설에서 “종국에 가서는 선(善)이 악(惡)을 이긴다고 믿고 더디지만 민주주의를 밀고 나가야 합니다”라고 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전 때도 언론검열을 폐지했고 역사상 최대 규모의 선거를 진행했으며 특히 직선제 개헌을 했다. 한국인은 직선제 쟁취를 말하면서 최초의 직선 대통령을 독재자로 몰았다. 한국전은 세계사적 관점에선 자유를 지켜낸 정의로운 전쟁으로 평가받지만 한반도에서만은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다.
 
  작금의 국제정세와 나라의 분위기는 올해 자유통일의 문이 열릴 것이란 예감을 갖게 한다. 피, 땀, 눈물로 써온 70여 년의 한국 현대사는 ‘The Greatest Story Ever Told’,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야기’로 기억, 기록될 것이다.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은 착하게 살아왔다. 올해 한국인은 세계 앞에서 당당해져야 한다.
 
 
  “그냥 상식을 따랐을 뿐”(앨먼드)
 
인천상륙작전 당시의 앨먼드 장군(맨 오른쪽). 맥아더의 참모장을 거쳐 10군단장으로 흥남철수작전을 지휘했다.
  세계의 자유인들이 단결하여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사교(邪敎) 집단인 국제 공산당 세력에 승리하도록 만든 1950년의 위대한 저항과 1988년의 위대한 평화를 관통하고 있는 가치관은 세계시민 정신이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미국은 알지도 못하는 나라의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키라는 국가의 부름에 응한 우리의 아들과 딸들에게 영광을 돌린다”는 워싱턴의 한국전 기념물 명문(銘文)은, 구호가 아니라 연(延)인원 180만 명의 참전, 5만4000명의 전사, 10만 명 부상으로 실천되었다.
 
  아무런 영토적 이해관계가 없는 곳에서 일어난 전쟁에 이런 대규모 병력을 보낸 일은 인류 역사상 일찍이 없었다. 이는 한국전 기간 한미 두 나라 지도층의 수준이 최고의 진정한 엘리트였다는 점을 실증(實證)한다. 트루먼, 아이젠하워, 맥아더, 마셜, 애치슨, 덜레스, 브레들리, 리지웨이, 워커, 앨먼드, 이승만, 조병옥, 백선엽 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같은 시기에 나타났다는 것은 한민족뿐 아니라 세계의 행운이었다. 두 나라의 가장 위대한 세대가 만난 것이다.
 
  에드워드 앨먼드 미 10군단장은 인천상륙작전과 흥남철수작전의 지휘관임에도 맥아더의 위광(威光)에 눌려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흥남철수작전 때 미 해병 1사단과 미 육군 3·7사단 및 한국군 1군단(3사단, 수도사단)을 지휘했다. 총병력 10만 명.
 
  당시 나이 58세, 역전의 용사였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소령으로 프랑스 전선에 참전, 부상당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최초의 흑인 사단인 제92 보병사단장으로서 3년간 이탈리아 전선에서 고전(苦戰)했다. 전후(戰後) 맥아더 원수에게 발탁되어 일본 점령군, 즉 극동군 사령부의 참모장으로 있다가 10군단 사령관으로서 인천상륙작전 지휘관이 되었고 서울을 탈환한 후 원산에 상륙, 북진 중 중공군의 역습을 받았었다.
 
  그는 철수 후 전열을 재정비, 1951년 중공군 공세에 대한 반격 작전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해 2월 중장으로 승진했고, 7월 미 육군 전쟁대학(워 칼리지) 교장으로 전보되었다. 1953년에 전역했고, 1979년 86세로 사망했다. 중공군 개입에 대한 오판(誤判)과 무리한 공격명령 등에 대한 비판도 받는다. 워커 8군 사령관과의 협조도 원활하지 못했다.
 
  그는 흥남철수와 관련해 생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피란민들은) 공산주의가 싫어 자발적으로 우리를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부두에 몰려와서 우리만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다. 그냥 상식을 따랐을 뿐이다.”
 
  후퇴하는 군대가 10만 명의 피란민을 구출한, 전쟁 역사상 유례가 드문 작전을 펼친 사람이 82세 때 외손자인 토머스 퍼거슨 예비역 대령에게 남긴 말이다. 1943년에 태어난 퍼거슨 대령은 외할아버지와 아주 각별한 사이였다고 한다. 퍼거슨의 아버지, 즉 앨먼드 장군의 사위는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전선에서 전사(戰死)했다. 앨먼드 장군의 외아들도 장교였는데 1945년 3월 종전 두 달 전 프랑스에서 전사했다. 남편을 잃은 앨먼드 장군의 딸은 아기 퍼거슨을 데리고 아버지가 극동군 사령부 참모장으로 근무하던 도쿄로 가서 함께 살다가 남편의 친구와 재혼했다. 유일한 아들과 사위를 전장에서 다 잃은 그런 사람이 흥남부두에 몰려나온 북한 주민들을 살린 것이다.
 
 
  문재인의 背恩忘德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좌익적 역사관을 드러냈다. 사진=TV조선
  문재인(文在寅) 전 대통령의 부모는, 앨먼드 장군 덕분에 흥남철수선을 타고 남한으로 내려와 미래의 대통령을 낳았다. 이 부모와 자식들은 평생 미군에 감사하면서 살았어야 했다. 그런 문재인은 자신의 존재를 있게 한 고마운 사람들에게 공식적으로 감사할 기회가 있었다. 대통령이 된 직후인 2017년 가을 유엔총회 참석이었다. 여기서 그는 은인(恩人)들에게 침을 뱉었다. 용서할 수 없는 배은망덕(背恩忘德)의 반역적 연설을 했지만 한국에선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이게 더 문제다).
 
  유엔군 파병은 유엔 출범 이후 최초였고 지금까지도 최대 규모로 기록되어 있다. 그 유엔총회장에서 문재인은 한국전의 본질인 김일성의 남침을 덮고 공산주의자들의 전유물인 내전론(內戰論)을 피력했다.
 
  <나는 전쟁 중에 피란지에서 태어났습니다. 내전이면서 국제전이기도 했던 그 전쟁은 수많은 사람의 삶을 파괴했습니다. 3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목숨을 건진 사람들도 온전한 삶을 빼앗겼습니다. 내 아버지도 그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잠시 피란한다고만 생각했던 내 아버지는 끝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 자신이 전쟁이 유린한 인권의 피해자인 이산가족입니다.>
 
  그는 아버지가 ‘자유를 찾아’ 미군 철수선을 탔다는 말을 끝내 하지 않았다. 이산가족의 문제는 중공군과 북한 정권의 책임인데 이를 ‘전쟁’ 탓으로 돌렸다. 그가 말하는 ‘국제전’이 ‘내전’과 함께 쓰일 때는 ‘유엔군이 한민족의 내전에 개입, 국제전으로 확대시켰다’는 뜻을 품는다.
 
  문재인의 좌익적 역사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일성의 남침을 은폐하기 위하여 전쟁의 원인을 스탈린과 김일성이 아니라 ‘냉전구조’에 전가(轉嫁)한 것이다.
 
  <세계적 냉전구조의 산물이었던 그 전쟁은 냉전이 해체된 이후에도, 정전협정이 체결되고 64년이 지난 지금에도…(후략)>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면 그 자리에서 유엔군의 도움에 감사하고 헌법정신에 따라 자유통일함으로써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했어야 하는데, 그는 침략자 북한을 비호하더니 통일 포기를 선언한다.
 
  <우리는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습니다. 어떤 형태의 흡수통일이나 인위적인 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물론 대통령의 헌법적 책무를 위반한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4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고, 제66조는 대통령의 책무로서 국가의 독립, 영토의 보전, 국가의 계속성 및 헌법수호, 그리고 평화통일을 위한 노력을 규정하였다. 대통령에게 인위적 통일을 명령한 것이다.
 
 
  문재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나?
 
  문재인의 주장에 의하면 그의 아버지는 북한노동당 정권에 복무한 관료였다고 한다. 흥남시 농업계장과 과장을 지냈다고 한다. 북한 정권의 엘리트였던 그가 부인과 딸을 데리고 미군 철수선을 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군을 은인(恩人)으로 여기고 공짜로 얻은 자유를 소중히 활용, 성공적 삶을 이어가야 할 터인데 그러지 않았다. 북한 엘리트로서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여 자본주의 체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경우로 보인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문재인은 어떤 교육을 받았을까? 그의 회고록이나 대담록에 편린(片鱗)이 드러나 있다.
 
  “말이 없으셨던 아버진데, 세상이나 시국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아주 어릴 때 한일회담에 대해 반대하시던 말씀, 그 이후에 자유당 독재나 박정희 시절 독재와 민정이양 약속 위반에 대한 비판들, 그런 말씀들이었어요.”《대한민국이 묻는다》(문재인, 2017)
 
  아버지가 비판해야 할 첫째 대상은 김일성일 텐데 이승만·박정희 비판이 우선이었던 것 같다. 한일회담 반대는 한·미·일 동맹의 정상적인 작동을 반대하는 것으로 본질이 반미적(反美的)이다.
 
  “이웃집에 대학생이 있었는데, 한일회담 때 데모도 하고 그랬던 형이었어요. 그 형이 한 번씩 제 아버지를 찾아와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가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형한테 왜 우리가 한일회담을 반대해야 하는지, 주욱 설명해주기도 했죠. 박정희 정부의 경제 정책이 왜 잘못됐는지를 말해주기도 하고요.”《대한민국이 묻는다》
 
  아버지는 대학생에게 완전히 틀린 정보를 심어준 것이다. 한일국교 정상화도, 경제개발도 성공했는데 학생에게 이를 반대하라고 선동한 셈이다. 김일성 세상을 경험한 사람은 거의 박정희 근대화를 지지했는데 그는 참 특이하다.
 
  “(아버지가)… 드물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면 사회의식이 깊은 분이었다. 한일회담 때 이웃 대학생에게 왜 한일회담에 반대해야 하는지 설명해주는 걸 들은 기억이 있다. 우리나라는 농촌을 살리는 중농(重農)주의적 성장을 추구해야 하는데, 박정희 정권이 거꾸로 저곡가로 농촌을 죽이는 정책을 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게 어린 내게 강하게 와닿았다. 장준하 선생이 발행하던 《사상계》 잡지를 때때로 읽기도 하셨는데, 그 시절 주변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아버지가 나의 사회의식, 비판의식에 영향을 미쳤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문재인의 운명》(문재인, 2022)
 
 
  농촌을 살린 박정희
 
  박정희가 좁은 국토에서 수출입국을 위한 공업화 정책을 펴지 않고 중농 정책을 추진했다면 오늘의 번영이 있었을까? 박정희는 농촌 출신으로서 한시도 농민들의 고통을 잊은 적이 없다. 그리하여 농촌의 가난을 없앤 지도자로 역사에 영원히 남을 인물인데, 북한에서 농업과장을 했다는 사람이 그런 위인을, 농촌 죽이는 정치인으로 가르쳤으니 이때부터 문재인은 세상을 왜곡해서 보게 된 것이 아닐까? 잘사는 농민들이 이 대목을 읽으면 실소(失笑)할 것이다. 저곡가 정책은 이승만 정부 시절부터 유지되었는데 농촌을 죽이려 한 것이 아니라 물가상승과 노동자의 임금인상 요인을 줄여 수출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박정희는 농민소득 향상을 통해 저곡가로 손해 본 것의 몇 배를 보상, 가난의 문제를 영구적으로 해결했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저곡가 정책에만 집착, 박정희를 비판했다는데 북한 농업을 망치고 ‘이밥에 고깃국’ 타령만 한 김일성에 대한 비판은 없었단 말인가?
 
  한국은 박정희 소장이 군사혁명을 일으켜 본격적인 산업화에 착수하기 전엔 국민의 과반수가 농업에 종사하는 사실상 농업국가였다. 농업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는 ha(헥타르·100아르. 1아르는 100㎡)당 쌀 수확량이다. 대한제국 말기에서 일제(日帝) 시대가 끝나는 시기까지 한국은 ha당 쌀 수확량이 1.14t에서 1.63t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 이 시기 일본은 면적당 쌀 수확량이 늘 한국의 두 배가량이었다.
 
  한국의 쌀 수확량이 급증(急增)한 것은 박정희 정부가 적극적으로 농촌진흥 정책을 쓴 1960년대 중반부터이다. 1966~1970년 평균 ha당 쌀 수확량은 3.14t으로 일제 시대의 두 배로 늘었다. 박정희 대통령 말기에 해당하는 1975~1979년 평균 ha당 쌀 수확량은 4.46t으로 같은 시기 일본의 4.25t을 능가하였다. 이는 한국 농업 사상 최초의 개가(凱歌)였다.
 
  좌익들은 문재인 아버지처럼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공업화 정책에 집중, 농촌을 피폐하게 만들었다고 거짓말한다.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1960년대 말의 농촌은 절대적으로 낙후되어 있었고, 상대적 박탈감이 점점 커져가는 상황이었다.>(천재교육 발간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379페이지)
 
 
  탈북자 집안 문재인의 탈북자 간접살인
 
중앙대 로스쿨 제성호 교수.
  문재인 전 대통령은 형식상으론 탈북가족 출신이다. 그런 그가 2019년 말 목숨을 걸고 귀순해온 탈북어민 두 사람을 확인되지 않은 살인 혐의를 적용, 조폭적 방식으로 북송시켜 국제 인권단체의 규탄 대상이 되었다. 유대인이 아우슈비츠를 탈출한 유대인을 붙잡아 게슈타포에 넘겨준 것 같은 행위를 한 자가 인권변호사로 불렸다.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9월 학술지 《통일과 법률》에 실은 <귀순 의사를 표시한 북한 범죄 혐의자의 강제북송에 관한 법적 고찰>이라는 논문에서 강제북송을 “행정부의 간접살인”으로 규정하고 관련자의 엄중 처벌을 촉구했다. 사실상 문재인의 사법처리를 요구한 셈이다.
 
  제 교수는 헌법의 영토·국민 조항에 비춰볼 때 “자의로 북한의 지배력을 벗어난 주민은 국민으로 보호할 수 있고, 그래야 한다”며 “이를 부인하는 것은 헌법과 통일을 부인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과거 서독 연방헌법재판소가 동독 탈출 주민에 대해 ‘모든 독일인은 서독의 보호 영역 안에 들어오면 그가 보호신청 의사를 포기하지 않는 한 권리가 인정된다’고 한 판례를 인용하면서 “귀순의사 표시를 대한민국 국적 인정 요건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했다.
 
  정의용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지난해 7월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을 통해 발표한 입장문에서 “합신(합동신문)에는 여러 부처와 경험·역량 있는 전문가들이 참여한다. 이런 전문가들의 조사 결과가 정권이 바뀌었다고 뒤집힐 수는 없다”며 탈북어민들의 살인 혐의가 입증돼 북송에는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었다.
 
  제 교수는 관계기관 합동 조사 결과에 어떤 법적 증거 능력도 없다면서 조사팀의 자의적 유죄 판단과 이를 근거로 한 북송은 위법하다고 했다. 그는 “합동 조사는 북한에서의 행적을 조사하는 등 행정 절차”일 뿐이라며 “영장주의, 변호인 조력권, 불리한 진술 거부권 사전 고지 등 적법 절차가 준수되지 않는 등 범죄수사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했다.
 
  이어 “수사기관이 살인 혐의자들을 수사·기소하고, 법원이 재판 관할권을 행사할 수 있는데도 (어민들을 강제북송해) 이를 원천 차단한 것은 권력분립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일종의 사법방해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는 “현행법상 우리 국민이 북한에 들어가는 행위에 대한 법적 규율은 남북교류협력법상 ‘북한 방문’과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점거 지역으로의 ‘탈출’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강제북송된) 탈북어민의 경우 북한 방문 승인 절차를 밟지 않았고, 인도적 송환 때처럼 북한 귀환 의사를 밝히지도 않아 강제북송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며 “관련 당국자들은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의 혐의가 짙다”고 주장했다.
 
  사법부가 해야 할 유죄 판단을 행정부가 하고, 북송 의사를 표시하지 않은 국민을 납치 감금하듯 사지(死地)로 보낸 행위는 ‘사법방해’와 ‘간접살인’에 해당한다는 논리이다. 문재인은 2020년엔 해수부 공무원이 북한 수역으로 표류해갔다가 붙들려 사살된 사건에서 김정은에게 쏟아지는 비난을 줄여주려는 의도인 듯, 피살된 공무원을 월북자로 조작·발표하도록 했다. 김정은의 수석 대변인 또는 충직한 부하로서 국익, 국민, 국군에 해를 끼치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했다는 증거이다.
 
 
  “우리는 왜 싸우는가?”
 
극동연합군 최고사령관 리지웨이 장군.
  윤석열(尹錫悅) 대통령은 주요 연설 때마다 ‘세계시민의 보편적 가치로서의 자유’를 강조한다. 정치인이 입에 올릴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말이다. 이런 가치를 입으로써만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던져 행동화하는 일은 별개이다. 예수도 율법의 모든 가르침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에 다 들어가 있다고 했는데 놀랍게도 1950~1953년 미국의 국가 지도부 인사들이 몸을 던져 이 정신을 구현하였다.
 
  1951년 1월 중공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유엔군을 수원까지 밀어낸 절망적 상황에서 매튜 리지웨이 미8군 사령관은 장병들에게 “우리는 왜 싸우는가”라는 글을 훈령 형식으로 내려보낸다. 그는 세계시민의 입장에서 전쟁의 본질을 요약했는데 성경을 읽는 듯하다.
 
  <문제의 본질은 서구 문명의 힘,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랑하는 조국에서 꽃피도록 하신 그 힘이 공산주의를 저지하고 패배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인간의 존엄성을 비웃고, 포로들을 쏘고, 시민들을 노예로 삼는 독재 세력이 개인과 개인의 권리를 신성하게 보는 민주 세력을 뒤집어엎을 것인가이다. 문제의 본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심에 따라서 우리가 생존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없는 세상에서 시체처럼 사라질 것인가이다.
 
  이 싸움은 동맹국 한국의 국가적 생존과 자유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는 사실이 논란의 여지가 없이 명백해진다. 이 전쟁은, 우리의 조국이 독립과 명예를 누리는 가운데 우리 자신의 자유와 우리 자신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투쟁이다.
 
  우리가 바친 희생과 도움은 타인(他人)을 위한 자선이 아니라 우리를 지키기 위한 직접적 자위(自衛) 행동이었다. 여기 한국에서 제기된 문제의 핵심은 공산주의냐, 개인의 자유냐의 투쟁이며, 우리가 목격한 그 겁에 질린 사람들의 대탈주를 중단시킬 것인가, 아니면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까지도 절망적이고 비참한 그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들도록 할 것인가이다. 일찍이 그 어떤 군 사령부의 소속원들도 우리가 직면한 이런 도전을 감당한 적이 없다. 이는 도전이기도 하지만 우리 자신과 우리 국민들 앞에서 최선의 노력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그리하여 군인이란 직업과 우리를 키워준 용감한 사람들에게 영광을 돌리자.>
 
 
  “지금의 미국은 역대 최고의 도덕적 수준에 이른 나라이다”
 
미국 언론인 드류 피어슨.
  미국의 언론인 드류 피어슨(1897~1969년)은 당대의 대표적 칼럼니스트였다. 1932년부터 1969년까지 ‘메리고라운드(Merry-Go-Round·회전목마)’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썼고 이를 신문사 등에 판매했다. 정치인과 정부의 부정을 가차 없이 폭로한 반골기자였다. 그는 북한군의 공세로 서울이 함락되고 대전이 위협을 받고 있던 1950년 7월 17일, 17세 아들에게 쓰는 편지 형식을 빌려 한국전 참전을 권유하였다.
 
  그는 1950년이 한국전으로 인해 획기적 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8000마일 떨어진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위험하게 싸우는 것이 쓸모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1950년이라는 해가 한국전쟁이라는 이유로 역사에 남게 될 것이란 예감이 든다. 이 전쟁이, 미래의 전쟁을 막고 화합과 평화의 새로운 시대를 열 것 같은 느낌이다.>
 
  그는 1950년의 미국은 도덕적으로 최고 수준에 이른 국가라고 했다.
 
  <우리는 마셜플랜 등 여러 방식으로 우리의 이웃들에게 도움을 줬단다. 나는 미국이,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가 산상수훈(山上垂訓)을 통해 내린 위대한 가르침 이후, 그 어느 때보다도 이를 실천적으로 이행하는 수준에 가까운 나라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은데 내가 너무 낙관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단다.>
 
  <나는 우리나라가 지금 이 순간 이상주의와 이타(利他)주의, 그리고 힘에서 정점(頂點)에 도달했음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단다.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수준에 이른 것이지. 우리는 이런 수준에 도달했지만 그런 덕목을 곧 잃게 될 수도 있어. 위대한 제국들은 생겨났다가 사라지곤 했지. 너무 유약해졌거나, 너무 멍청해졌거나, 너무 강력해졌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의 힘을 물질주의적인 정복에 사용했고, 무장력에만 기반을 두었기 때문에 몰락했단다.>
 
  그는 또한 이런 미국은 이웃나라들이 자유를 침범당할 때 그 힘을 행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한 국가가 자신들의 정치적 신조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괴롭히고, 그들을 상대로 무장을 하고, 그리고 침략하겠다고 위협한다면 자유세계는 존재할 수 없단다. 특히 너를 비롯해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자유인의 짐, 즉 세상을 자유롭게 유지해야 할 자유인의 의무야. 이 한국전쟁은 비록 멀고, 힘들며, 반갑지 않은 전쟁이지만 이 세기의 정중앙인 1950년이라는 해에 위대한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단다. 우리가 국제경찰력과 국제적 권위를 구축해 미래의 모든 전쟁을 막을 수 있도록 한다면 말이지. 너희 세대는 우리 세대보다 훨씬 더 똑똑하니 우리가 실패한 곳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한 이웃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내던지기도 어려운데 미국은 알지도 못하는 나라의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하여 180만 명의 젊은이들을 전장(戰場)으로 보냈다. 이보다 더한 규모의 고귀한 희생은 성경에도 없다.
 
 
  最惡과 最高의 대결
 
  1950년 남침전쟁을 일으킨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은 역대 최악의 독재자들이었고 그들이 건드린 이승만과 트루먼 등 한국과 미국의 지도층은 역대 최고였다. 악마와 천사의 대결이었다. 이게 승부를 결정지었고 역사를 바꾸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애용하는 ‘세계시민’이란 말을 처음 쓴 정치인은 이승만 대통령이다. 1950년 7월 19일 이승만은 임시수도 대구에서 해리 S. 트루먼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이 영문(英文) 편지를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에 맞먹는 명문(名文)이라고 생각한다.
 
  <친애하는 대통령께: 우리 한국인들은, 미국의 위대한 전통을 이어받아 약자(弱者)를 지켜주려고 이 땅에 와서 잔인한 침략자들을 상대로 해방과 자유가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생명을 내걸고 싸우고 피 흘린 그들의 용기와 희생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대통령 각하, 위대한 귀국(貴國)의 병사들은 미국인으로서 살다가 죽었습니다만, 세계시민으로서 그들의 생명을 바쳤습니다. 공산파쇼 집단(Comminazis)에 의하여 자유국가의 독립이 유린되는 것을 방치한다는 것은 모든 나라들, 심지어는 미국 자신까지도 공격받는 길을 터주는 길이 됨을 알고 나라 사랑의 한계를 초월하면서까지 목숨을 바쳤던 것입니다.>
 
  이승만이 편지를 쓴 그날, 즉 1950년 7월 19일 트루먼 대통령은 라디오 텔레비전 연설에서 이렇게 말한다. 답장처럼 느껴진다.
 
  <한국은 작은 나라이고, 수천 마일이나 떨어져 있지만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든 미국인에게도 중요합니다. 공산군의 공격은 국제공산주의 운동이 독립국가를 정복하기 위하여 군사적 침략을 서슴없이 하고 있다는 점을 확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침략 행위는 모든 자유국가의 안전에 심각한 위험이 됩니다. 이는 자유와 평화 속에서 살 수 있는 세계를 만들고 싶어 하는 자유국가의 노력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입니다. 정면으로 그런 도발을 하였으므로 우리도 정면으로 맞서야 합니다(This challenge has been presented squarely. We must meet it squarely).>
 
 
  오바마·클린턴, “한국전은 우리가 이긴 전쟁”
 
  2013년 7월 27일 워싱턴의 한국전(韓國戰) 기념물 앞에서 열린 휴전 60주년 행사에서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기념사를 통하여, “한국전은 무승부가 아니고 이긴 전쟁이며, 특히 동서 냉전(冷戰)의 승리는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말하였다.
 
  “한국전은 이긴 전쟁입니다. 가난과 압제 속의 북한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5000만 명의 한국인은 활력(活力) 있는 민주제도를 갖고,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대국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으니 한국전은 이긴 것이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유산(遺産)입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우리 동맹국들은 우리가 지난 60년간 지속적으로 한국에서 증명한 대로 미국이 평화·안정·번영의 힘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한국전은 이긴 전쟁이고, 우리의 유산입니다.
 
  다가올 여러 세대 동안 역사는 그 긴 냉전 시대에 자유 진영이 어떻게 뭉쳤으며 어떻게 냉전에서 이겼는가를 회고하면서 한국전이 그 첫 전투였고, 여기서 우리는 자유를 지켜냈고, 자유민들이 굴복하지 않았음을 기록하게 될 것이니 한국전은 승리였고 우리의 자랑스러운 유산입니다.”
 

  2000년 6월 25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국전 50주년 기념식에서 당시 클린턴 대통령도 비슷한 역사관을 피력하였다.
 
  “포성(砲聲)이 멈추었을 때 상당수 사람은 한국에 간 우리 군대가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한 일이 무엇인가,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전쟁은 38도선에서 시작되어 38도선에서 끝났으니까요. 나는 오늘 감히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역사라는 긴 렌즈를 통하여 뒤돌아보면, 미국이 한국에서 버텨낸 덕분에 냉전(冷戰)에서 우리가 최종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한국에서 물러나지 않았으므로 소련은 미국이 자유를 수호하기 위하여 기꺼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가르침을 얻게 된 것입니다.
 
  50년 전 한국의 능선(稜線)을 지켜낸 용감한 병사들 덕분에 10년 전 멋지고 행복한 젊은이들이 베를린 장벽 위에 올라가 (공산권의 붕괴를) 자축(自祝)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은 결코 역사를 과대 해석하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한국전은 2차 세계대전만큼 세계를 바꿨다”
 
  왜 미국 정부는 한국전을 냉전 승리의 시작으로 보는가? 미 국방부 장관실 공간사(公刊史)인 《전쟁의 시련(1950~1953)[The Test of War, History of the Office of the Secretary of Defense]》은 결론 부분에서 한국전이 세계사의 흐름에 끼친 영향을 이렇게 요약하였다.
 
  <한국전은 20세기 후반의 세계정세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제2차 세계대전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주장할 만하다. 세계를 두 무장(武裝) 진영으로 나눈 점, 미국과 소련 사이의 정치적, 군사적 대결, 두 강대국 사이의 전쟁을 막는 데 있어서 핵무기에 대한 의존의 증대, 유럽과 동아시아에서 미군의 장기 주둔, 거대해진 미국의 군산(軍産) 복합체-이런 현상들은 한국전에 의하여 만들어졌거나 강화되었다.
 
  전쟁 기간(1950~1953) 미국은 소련과 공산주의를 막기 위한 지도국의 역할을 완벽히 떠맡게 되었다. 트루먼 행정부는 소련이 북한과 중국의 공격을 사주하였으며 다른 곳에서도 그런 짓을 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미국은 유럽의 NATO 맹방(盟邦)들을 지키는 데 최고의 우선순위를 두었다. 한국전은, 늘어가는 소련의 핵무기 재고(在庫)에 대응하여 미국이 핵무기 제조와 운반 수단(폭격기, 미사일, 잠수함)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하였다.
 
  평화시에도 외국과 군사동맹(NATO)을 유지한다는 것은 미국 역사상 가장 이례적인 외교 정책이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미국과 대부분의 유럽 회원국조차도 NATO를 서류상의 존재로 인식하였다. 아시아에서 일어난 한국전쟁이 유럽에 대한 소련의 위협을 증폭시켜 NATO 회원국들로 하여금 통합 지휘체제를 구성하고 더 많은 군사력과 자원을 이 동맹에 제공하도록 만든 것은 일종의 역설이다.>
 
  《뉴욕타임스》 월남 특파원 시절, 월남과 미국 지도부를 혹독하게 비판하여 반전(反戰) 기자로 분류되기도 하였던 데이비드 핼버스탬은 유작(遺作)이 된 《가장 추운 겨울》의 결론 부분에서 한국의 전후(戰後) 발전에 대하여 최상급의 찬사를 보낸다. 읽고 있기가 민망할 정도의 칭찬인데 물론 사실과 부합한다. 그는 한국의 발전은 마셜 플랜에 의한 유럽의 부흥보다 더한 성공이라고 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해진 유럽을 재건하기 위한 미국의 경제원조는 독일, 프랑스 등 이미 산업적 전통의 기반이 있는 나라에 준 것이었다. 한국은 정치적, 문화적, 산업적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더구나 전란(戰亂)으로 폐허가 된 가운데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하였기에 더욱 빛난다는 것이다.
 
  그는 개화기에 한국에 온 선교사들이 한국인의 잠재력을 간파한 점에 주목하였다. 교육에 대한 유교적 존중심, 잘살아 보려는 열망, 제한된 조건을 최대한 활용하는 능력, 그리고 일본인에 못지않은 근로 윤리. 하지만 이런 잠재력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제약으로 구현될 수가 없었다. 해방과 전쟁으로 미국이 한반도에 등장함으로써 이 숙명은 깨진다.
 
  한국을 괴롭혔던 주변 국가와 미국은 달랐다. 가장 큰 차이점은 한국에 대한 무지(無知)였다. 오히려 이 점이 도움이 되었다고 핼버스탬은 평한다. 미국은 한국 땅에서 기꺼이 자국(自國)의 아들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정복자로 온 것은 아니었다. 미국의 지도하에서 한국은 처음엔 군사적으로, 다음엔 기술적으로, 그다음엔 산업적으로 근대화되기 시작하다가 민주화까지 이르게 되었다.
 
  핼버스탬은 한국전을 계기로 커진 장교단이 이런 놀라운 속도감으로 전개된, 혁명과 진화가 혼합된 한국형 근대화의 주체 세력이었음을 높게 평가한다. 미국의 웨스트포인트를 본뜬 한국의 사관학교 교육이, 젊은이들을 모아서 능력 위주로 가르치고, 사회적 제약을 돌파할 수 있는 개혁 세력으로 키워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장교단이 새롭고 현대화된 사회를 만들어낸 요람이었다고 했다. 어떤 의미에선 새로운 한국을 이끈 새로운 계급이기도 하였다.
 
  그는 <1960, 70년대 한국의 발전은 역경(逆境)을 극복하는 데 있어서 위대한 교훈을 남긴 경이로운 인간 드라마>라고 표현하였다. 한국 현대사의 발전 속도는 너무나 빨라 위대한 지도자 이승만까지 퇴장시키고 달려갔다. 당시 육군참모총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승만 박사를 존경하지만 역사가 그를 무너뜨린 것이다. 그런 사태 발전을 지켜본 나는 너무 가슴이 아팠다.”
 
 
  서울 도심의 年末年始 풍경
 
  2022년 12월 30일 밤 서울 한복판을 걸었다. 청계천, 롯데 백화점, 신세계 백화점, 서울시청 광장, 광화문으로 돌아오는 경로였다. 화려한 전광판 쇼, 광고탑, 전시물 속을 두 시간 동안 걸었다. 황홀했다. 예년과 다른 것은 평화니, 민족이니, 민중이니, 정의니 하는 말장난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좌파 냄새가 빠진 연말연시(年末年始) 분위기는 더할 수 없이 흥겨웠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고 정권교체로 국가가 정상화되어가는 시국(時局) 분위기를 반영, 유달리 크리스마스 캐럴이 많이 들리고 백화점 전광판 쇼는 더 화려했고, 명동·광화문 광장에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나왔다. 특히 외국인들이 많이 보였다. 종북좌익들의 위선적 문화행사가 주는 불편함에서 벗어나니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었다.
 
  밤늦게까지 서울시청 광장의 스케이트장이 붐볐다. 광화문 광장의 코끼리보다 더 큰 토끼도 정겨웠고, 거북선이 노를 젓는 영상은 밤에만 볼 수 있는 장관이다. 청계천을 거닐 때마다 감옥에 있는 이명박(李明博) 전 대통령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웠는데 자택으로 돌아왔으니 홀가분하게 야광(夜光) 산책을 하면서 “역시 세계적 대기업 경영자 출신의 안목은 다르다”고 중얼거렸다.
 
  이게 다 피를 흘리지 않고 선거를 통해서 자유를 되찾은 덕분이다.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가 법치주의의 옷을 입으면 자유통일로 직진할 것이다.
 
 
  문재인의 반역과 이재명의 부패를 치면 김정은도 간다!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낸 이승만의 편지엔 대전략이 숨어 있다.
 
  <북한 사람들은 남한 사람들과 차이가 없습니다. 외부 세력이 훈련시키고 조종하는 소수의 공산주의자들을 제외한 모든 한국인은 그들의 조국에 충성합니다. 이 전쟁은 남(南)과 북(北)의 대결이 아닙니다. 이 전쟁은 우리나라의 반을 어쩌다 점거하게 된 소수의 공산주의자들과 압도적 다수의 한국 시민들(그들이 어디에 살든) 사이의 대결입니다.>
 
  한반도의 대결구도를 ‘김일성 세력 vs 한민족’으로 단순화시킨 것인데 국민행동본부의 1월 초 성명서는, 김정은·문재인·이재명을 한민족(韓民族)의 공적(公敵)으로 규정했다.
 
  <*한반도에 사는 한민족(韓民族) 8000만의 자유를 위협하는 주적(主敵)은 김정은·문재인·이재명 세력이다. 헌법과 국제법에 의거, 이들을 단죄, 한반도 전체를 진정한 반공(反共)자유민주국가로 통일하는 것은 남북한으로 갈려 사는 우리 민족의 역사적 사명이다.
 
  *김일성주의자 신영복을 사상가로 존경하는 문재인은 집권 5년간 사실상 민족 반역자 김정은의 부하 노릇을 하면서 대한민국·한미동맹·국군·국민들을 해치는 일에 총력을 기울였고, 그의 후계자 이재명은 온갖 부패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문재인 반역과 이재명 부패를 사법처리하는 것을 막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당적(黨籍)만 있고 국적(國籍)이 없는 패거리이고 헌법 제8조의 정당해산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키고 있다.
 
  *문재인 5년간 탈탈 털렸지만 살아남은 대한민국 세력은 가장 깨끗하고 민주당 기득권 세력은 가장 부패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원수, 행정부 수반, 국군통수권자로서의 막강한 공권력을 공정하게 행사, 문재인 반역과 이재명 부패를 단죄, 김정은의 남한 내 반역기지를 일소하고 자유통일로 가는 문을 활짝 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법대로만 하면 된다.
 
  *한반도의 3대(大) 위해 조직인 ‘김·문·이(김정은-문재인-이재명) 세력’은 김일성 악령에 영혼을 판, 민족반역의 운명공동체이다. 문재인·이재명 반역 부패 세력을 먼저 사법처리, 김정은을 한민족 사이에서 고립시키면 이들은 한꺼번에 가게 되어 있다. 한반도의 대결 구도를 ‘김·문·이 세력 대(對) 8000만 한민족’으로 만들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법대로만 하면 자유통일도 앞당길 수 있다. 법 앞에선 좌우(左右), 경상도, 전라도가 없고 오로지 ‘법 지키는 사람’과 ‘법 어기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법의 힘으로 선량한 국민들은 보호하고, ‘김·문·이 세력’을 업고 법을 짓밟는 자들은 혼내주어야 한다.
 
  *우리는 올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세 가지를 요청한다. 홈페이지에 북한노동당 선동문을 6개월째 게시, ‘날 잡아가라’는 식으로 국가보안법에 도전하고 있는 민노총 지도부를 수사하고, 매달 한 번씩 핵미사일 민방위 훈련을 실시, 북핵 문제를 강 건너 불 보듯 하는 국민들을 올바르게 지도하라! 오는 8월 15일을 건국 75주년으로 기념하자!
 
  *2023년 올해 국민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지도하에 ‘김정은·문재인·이재명 세력’을 제거, 북핵 문제까지 근원적으로 해결하고, 자유통일과 일류국가 건설을 향하여 질주하고 싶다. 국제정세도 유리하니 천하대세(天下大勢)가 우리 편이다. 대한민국 만세, 국군 만세, 자유통일 만세!>
 
  그렇다. 우리의 힘으로 김정은·문재인·이재명 세력을 정리해야 진정으로 빚을 다 갚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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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osupkim@hotmail.com    (2023-02-01) 찬성 : 6   반대 : 0
한때나마 조선생의 4 15부정선거없었다는 논지에 실망했었는데 이글을 읽으니 상쇄가되는듯합니다..
맞습니다.속히 세 역적무리들을 처단하여 명실공히 8000만 한민족이 세계에 우뚝설수있게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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