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陰地의 戰士들

엄상익 변호사가 경험한 정보기관 〈6〉 안기부 안보수사단이 한 공작들

안기부 수사관마저 뒷조사하는 안기부의 實相

글 :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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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부가 ‘호남 출신 秀才’ 경제기획원 국장 뒷조사한 까닭
⊙ 안기부, 야당 의원과 검사 부인의 불륜도 뒷조사
⊙ 어느 세무 공무원의 고발 “우리 課보다 법인세과 잘못이 훨씬 많아”
⊙ 수사관이던 필자도 감시 대상 “당신 감시하라고 명령이 내려왔어요”

嚴相益
1954년생. 경기고, 고려대 법대 졸업 / 사법고시 24회, 사법연수원 15기 수료 / 국가안전기획부 정책연구관, 법무법인 ‘정현’ 변호사 역임. 現 엄상익법률사무소 변호사
서울 남산에 있던 옛 안기부 청사. 1961년 창설 이래 ‘남산’이라는 말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정보기관의 상징이었다. 사진=조선DB
  나는 국정원의 전신(前身)인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안보수사단에서 수사관으로 몇 달간 일했다. 안기부의 수사는 대공(對共)수사와 안보수사로 나뉘어 있었다.
 
  대공수사는 간첩을 추적하는 임무였다. 안보수사는 국내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좌경 세력들에 대한 정보수집 및 견제 같은 여러 활동이었다. 명분은 그렇지만 권력자인 대통령의 은밀한 행동대 역할을 해온 것 같았다. 좌경 세력보다는 정적(政敵)의 비리를 찾아내 그를 쓰러뜨리는 행위 같은 걸 해온 셈이었다.
 
  안보수사단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정국(政局) 변화였다. 당시 정국은 급변하고 있었다.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5공 청산 작업이었다. 야(野) 3당은 이른바 ‘5공 비리’를 거론하며 5공 청산을 주장했다. 그런 기류 속에 5공 시절 새마을중앙회 회장으로 있던 전두환 대통령의 동생 전경환이 구속됐다.
 
  또 다른 변화는 국회의원 선거였다. 1988년 노태우 정권 출범 직후, 정권의 실세는 최병렬 청와대 정무수석과 박철언 청와대 정책보좌관이었다. 그해 3월 민정당은 공천자 명단을 발표했는데, 안기부에 있었던 박철언 보좌관이 공천권을 장악했다는 얘기가 돌았다. 박철언과 같이 근무했던 마흔 살의 강재섭 검사가 일약 민정당 전국구 후보가 됐다. ‘박철언 공천 개입설’을 방증하는 상징적인 사례였다.
 
 
  “경제기획원 국장이 김대중을 돕고 있는 것 같소”
 
노태우 정권의 실세였던 박철언씨.
  총선 정국인지라 안보수사단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선거 출마자 개개인에 대한 신상자료들이 세밀하게 분석되고 있었다. 얼마간 수사단의 분위기를 익힌 후였다. 수사단 책임자가 나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경제기획원 국장 중에 호남 출신이 있는데 은밀히 뒤로 김대중을 돕고 있는 것 같소. 중요한 위치에 있는 관료가 그렇게 정치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으면 안 되지. 알아보고 그 정도가 심하면 그 국장의 숨통을 끊어버려야 할 것 같은데 알아보시오.”
 
  그런 지시에서 수사단의 역할을 알 것 같았다. 그곳에서 야당 총재인 김대중을 적(敵)으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그편에 줄 선 사람들을 찾아내 확인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제거하는 작업을 하는 것 같았다. 국가의 안보가 아니라 권력자의 안보를 위한 수사단 같았다. 안기부 내에는 방대한 인물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좌익 성향의 인물들뿐 아니라 정치인이나 관료, 언론인 등을 오랫동안 관찰한 기록들이었다. 그들이 사석에서 내뱉은 말들도 시기에 따라 기록되어 있었다. 장관의 임명이나 국회의원 공천 때 청와대에서 그런 정보들을 제공한다고 했다.
 
  내가 알아보려는 경제기획원 국장에 대한 신상 파일을 보았다. 전북 전주 출신의 수재(秀才)로 서울대를 나오고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미국에 유학까지 한 엘리트 관료였다. 기록 중에 뇌물이나 불륜관계는 보이지 않았다. 사석에서 야당 총재를 지지하거나 대통령을 폄하하는 발언을 한 적도 없었다. 김대중과의 접촉 흔적도 없었다. 자기 관리에 철저한 흠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왜 그런 명령이 내려왔는지 알 수 없었다. 지시하는 사람은 명령의 배경은 말하지 않았다. 그런 배경이 중요할 것 같았다. 권력자의 미움을 사는 등 어떤 동기가 있을 수도 있고, 출세 가도를 달리는 경제 관료라고 하면 경쟁자의 모함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용당할 우려가 있었다. 경제계의 고위 관료라면 거물(巨物)이다. 자칫하면 역공(逆攻)이 있을 수 있다.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수사단에서 그런 특명을 받은 요원들은 비밀리에 독자적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었다. 나는 그런 종류의 특명을 처리했던 과정을 담은 기록을 참고할 필요가 있었다.
 
 
  야당 의원과 검사 부인의 불륜 뒷조사
 
  사무실 구석의 철제 캐비닛에 두툼한 기록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표지에 이름난 야당 의원의 이름이 적힌 누렇게 찌든 오래된 서류뭉치가 보였다. 그 야당 의원은 국회 부의장을 지낸 기억이 났다. 서류철을 꺼내 책상 위에 놓고 보기 시작했다. 내용은 대충 이랬다. 야당 의원인 그의 국회 연설이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린 것 같았다. 그 의원을 정계에서 축출하라는 명령이 안기부로 떨어졌다.
 
  요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러 명이 조직적으로 동원되어 그 야당 의원 주변을 미행하기 시작했다. 서류철 안에는 30분 간격으로 작성한 수십 건의 미행감시보고서가 포개져 있었다.
 
  어느 날 감시망에 그 야당 의원이 어떤 여성과 호텔에서 나오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들의 사진이 본부로 오고 즉각 그 여성의 신분이 확인됐다. 명문 여고를 나온 현직 검사의 부인이었다. 안기부는 호텔에서 나오는 야당 의원과 검사 부인의 사진을 언론에 흘렸다. 그 사건이 다음 날부터 일간지의 톱 기사로 나갔다. 간통죄가 있을 때였다. 그 여성과 야당 의원이 함께 구속됐다.
 
  안기부는 구치소 안에 있는 검사 부인도 치밀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검사 부인이 다른 재소자와 속삭인 내용도 상세하게 보고서로 작성되었다. 검사 부인은 남편이 자기를 곧 감옥에서 꺼내줄 것이라고 자랑하고 있었다. 안기부는 아내를 위한 검사의 고소 취하를 막아야 했다. 고소를 취하하면 구속된 야당 의원도 면죄부를 받고 석방되기 때문이었다. 남편인 검사가 고소를 취하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이 안기부 내에서 강구되고 법무장관을 그 실행자로 결정했다.
 
  얼마 후 법무장관이 그 여성의 남편인 검사를 불렀다. 장관은 그 검사에게 해외 유학과 돌아온 후의 영전(榮轉)을 보장하면서 고소를 취하하면 안 된다고 했다. 검사가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출셋길을 선택한 검사가 장관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하는 모습이 보고서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런 방식으로 정치생명을 끊는 게 안보수사단의 일이었던 것 같다. 깨끗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던 명사(名士)가 어느 날 갑자기 신문에 추문(醜聞)의 주인공으로 나왔던 사건들이 단순한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맡은 경제기획원 국장은 그 정도 권력자의 특명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남기는 보고서가 그 인물에 대한 자료로 영원히 남을 수 있었다.
 
 
  고교 동기 통해 경제기획원 국장 조사
 
  정확하고 진실해야 할 것 같았다. 그 조직의 조사는 비(非)노출 간접조사가 원칙이었다. 직접 본인을 만나는 일은 금지되어 있었다. 경제기획원에는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그곳에서 근무하는 고교 동기가 많았다. 동창 한 명이 그 국장 밑에서 일하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너의 국장 어떤 분이니?”
 
  그는 내가 정보기관에 들어간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보기관은 요원들에게 신분을 비밀로 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신문사나 다른 관청에 위장 취업하지 않는 한 좁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안기부 요원인 사실을 숨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것 같다. 그런 원칙들이 요원들의 발을 묶는 것 같았다.
 
  “여기도 정보기관에서 출입하는 조정관이 있어. 그 친구가 일방적으로 나쁘게 쓰지 못하게 크로스체크를 하는 모양이구나. 우리 국장님 실력도 좋고 무지하게 열심히 일하는 분이야. 그분이 일을 잘못하면 대한민국 경제가 잘못되는 걸로 보면 돼. 이 경상도 정권에서 호남 출신이 경제기획원 국장까지 올라왔으면 이미 실력은 보장된 것 아니겠어?”
 
  친구는 선의(善意)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가 하는 말에는 상관에 대한 그의 믿음이 들어 있었다. 동시에 경상도 정권에서 호남 출신들이 차별을 당하는 현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김대중 총재와 친하다는 소리가 있던데?”
 
  나의 질문이 좀 더 핵심으로 다가섰다.
 
  “실력은 충분한데 더 이상 위로 올라갈 길이 막연한 호남 출신 엘리트 관료가 호남의 정치 지도자인 김대중 총재에게 잘하는 게 뭐 어때서? 그거 아주 당연한 거 아니야? 진짜 열심히 일하는 성실한 공무원이 우리 국장님이야. 정치 근처에 연줄을 달지도 않는 분이지.”
 
  그 국장은 훌륭한 공직자 같았다. 내가 판단한 사항을 자세히 보고서로 작성해서 상부에 올렸다. 조직 내부에서의 보고서는 신뢰성을 가지는 것 같았다. 더 이상의 추가적인 명령은 내려오지 않았다. 보고한 사실을 수용하는 것 같았다. 그 국장은 후일 장관이 직업이라고 불릴 정도로 오랜 기간 대한민국의 경제를 책임지는 모습이었다.
 
 
  안기부에서 목도한 북한 체제의 實相
 
  당분간 내려오는 명령이 없고 여유가 있었다. 안기부 내부는 각자 자기가 맡은 업무를 혼자서 수행하는 분위기였다. 시간을 각자 자기가 관리하는 것 같았다. 안기부 내에는 일반인에게는 금지된 다양한 사상 서적들도 있었는데, 이참에 시간을 내서 그 책들을 읽었다. 김일성 주체사상과 김일성 선집(選集)도 읽었다. 북한의 법률 서적들도 봤다. 사회주의적 대(大)가족주의를 사상적 기반으로 한 법률체계였다.
 
  북한에서 넘어온 사람들과 직접 만나 얘기도 들었다. 함흥시 인민위원장 출신이었는데, 그는 북한에서 인민위원장이면 요트도 가지고 있을 정도라고 했다. 사회안전부 출신도 만났다. 그는 북한의 부패상을 상세히 얘기해주었다. 북한은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와는 거리가 먼 전제주의 국가였다. 미국의 경제제재 때문에 북한은 성(城)안의 농경체제가 됐고 군사 독재국가가 됐다고 여겼다. 그게 북한의 실체 같았다.
 
  북한보다 더 교조적인 것은 남한의 자생적 공산주의자들이었다. 운동권 내에서도 NL그룹, PD그룹, 제헌의회 그룹, 주체그룹 등 많은 분파(分派)가 존재했다. 남한 내의 독재와 자본주의적 모순을 체험한 그들은 더욱 열렬하게 혁명을 꿈꾸는 것 같았다. 지적 호기심만 있다면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무궁무진한 자료들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날 수사단의 책임자가 나를 불러 물었다.
 
  “주체사상이나 김일성 선집을 보니까 어떤 느낌이었소?”
 
  “주체사상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는 다릅니다. 민족주의가 들어가 있고 유교의 냄새가 나는 북한의 독특한 사상체계인 것 같습니다. 경전(經典)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인민 대중’이란 용어가 성경 속의 하나님 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기독교에서 영생을 추구하듯 주체사상 안에는 영원한 정치적 생명이란 말이 들어 있습니다. 성경 속에서 선지자가 등장하듯 ‘지도자 동지’가 있었습니다. 성경 속 이스라엘 민족이 핍박을 받듯이 미 제국주의가 조선 민족을 억압하는 구조였습니다. ‘메시아’는 김일성이고 교리(敎理)는 주체사상입니다. 당원들이 사도(使徒)인 것 같습니다. 기독교 신도(信徒)들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목적이듯 그들은 남조선 혁명을 완성하고 김일성 주체사상을 세계에 전파해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남한 내의 운동권들은 메마르고 관념적인 마르크스·레닌주의보다는 민족과 인간미가 들어 있는 주체사상 쪽에 더 공감한 것 같습니다.”
 
 
  ‘한국의 후버’를 꿈꾼 듯한 수사단 책임자
 
48년간 FBI 국장을 지낸 에드가 후버.
  “김일성 선집은 어땠습니까?”
 
  그가 다시 물었다.
 
  “김일성은 의외로 앞을 내다보는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먼 훗날 남한에서 시베리아나 중국에 철도로 가려면 북한을 통과해야 하는데, 그 통행료만 받아도 북한이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북이 합작(合作)해 사업을 해도 절대로 약아빠진 남조선 재벌 그룹과는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있습니다. 차라리 중소기업이 정직하다는 말을 합니다. 남한의 정치문제에 대해서도 꿰뚫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한에서 의회민주주의가 더 발달하고 북한노동당이 소수당으로라도 국회에 들어갈 수 있다면 선거를 통해 한번 대결해볼 만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의 말을 들은 책임자가 웃으면서 이런 말을 했다.
 
  “나도 지금 자료를 번역하고 있는 게 있소. 미국 FBI를 만든 에드거 후버(John Edgar Hoover)의 일대기요. 노조를 통해 미국이 좌경화될 때 에드거 후버는 자유민주주의의 방파제였소. 에드거 후버는 대통령과도 팽팽한 긴장 상태를 가졌었지.”
 
  그는 한국의 후버가 되고 싶은 것 같았다. 그가 말을 끝내고 이렇게 덧붙였다.
 
  “이제 내가 개별적으로 특명을 주겠소. 그 특명을 혼자 자유롭게 수행하고, 이 조직의 그 누구한테도 얘기할 필요가 없소.”
 
 
  어느 세무 공무원에게서 느낀 묘한 감정
 
  그가 나에게 조사하라고 명령한 대상은 살아 있는 권력인 검찰 고위직에 있는 인물이었다. 그가 덧붙였다.
 
  “정보기관에서 본인을 추적한다는 걸 알면 강하게 역공할 우려가 있는 인물이요. 그러니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하면서 조사해보시오.”
 
  나는 바로 일을 시작했다. 정보기관 자체 내의 자료상 그는 거의 흠이 없었다. 여자관계도 깨끗했고 뇌물이나 특별한 향응을 받은 사실도 없었다. 대한민국 사회는 의외로 좁은 사회였다. 한 다리만 거치면 대부분의 사람이 바로 연결이 됐다. 그의 삶에 대해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가난한 고시생이었던 그는 대학 시절 부잣집에서 가정교사로 지내면서 고시에 합격했다. 검사가 되자 그를 가정교사로 채용했던 부자는 자청해서 스폰서가 되어주었다.
 
  그가 초임 검사 시절 결혼하고 살 집이 없었다. 그 부자는 자기 집을 빌려주고 생활비를 지원하기도 한 것 같았다. 그 부자 역시 힘들게 성공한 사람이었다. 어려서부터 철공소 직원으로 공장 바닥에서 잠을 자면서 쇠를 깎는 일을 했다. 근면과 성실로 부자가 된 사람이었다. 그가 힘에 갈급하는 상황에서 집안에 가정교사로 들였던 사람이 검사가 된 것이다. 그 시절 그런 형태의 공생(共生)관계가 드물지 않았다. 그 정도 선까지는 사회적으로 묵인되는 시대였다.
 
  약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그 검사 부인이 어느 때부턴가 서울 소공동의 한 귀금속상과 자주 거래를 한다는 첩보가 있었다.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귀금속상에서 고객명단이나 거래내용은 절대 비밀이었다. 귀금속상의 입을 열게 하기 위해서는 탈세라는 무기로 그들을 압박하라는 게 정보기관의 업무 요령이었다.
 
  그 며칠 후 나는 덕수궁 앞에 있던 소공세무서의 부가세과를 찾아갔다. 넓은 사무실 안에 수십 명의 세무 공무원이 철 책상 앞에서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창문가에 책상이 있는 과장에게 다가가서 정보기관 신분증을 제시하면서 자료를 요청했다.
 
  “잠깐만 기다리시죠.”
 
  부가세 과장이 공손하게 응대하면서 그 옆에 있는 소파를 권했다. 내가 소파에 앉아 세무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모습을 보았다. 갑자기 넓은 사무실의 공기가 썰렁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일하던 세무 공무원들이 곁눈질로 내 쪽을 보면서 보던 서류들을 슬며시 서랍에 넣는 모습이었다. 순간에 부가세과의 업무가 얼어붙었다. 나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능글거리면서 사람들을 가지고 놀던 세무 공무원들의 다른 모습이었다. 힘 앞에서는 한없이 비굴했다. 부가세 과장이 조용히 내 귀에 대고 말했다.
 
  “우리 부가세과보다 법인세과가 사실은 잘못이 훨씬 많습니다.”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법인세과가 뇌물을 더 먹는다는 소리였다. 그는 뭔가 오해한 것 같았다. 나는 그곳에서 필요한 자료를 모두 얻었다. 법치보다 기관의 힘이 우위인 세상인 것을 알았다.
 
  대충 조사를 마친 후 나는 보고서를 쓰기 시작했다. 정보기관의 요원에게 요구되는 윤리는 진실이 담긴 보고서를 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눈과 양심이었다. 증거 능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이의(異意)가 제기될 수도 없었다. 나는 본 대로 느낀 대로 보고서를 써서 올렸다.
 
 
  “工作하러 갑니다”
 
  13대 총선 선거운동이 막바지에 다다를 무렵이었다. 밤늦은 남산의 안기부 사무실에는 불이 꺼지지 않고 있었다. 하루는 건물 복도를 지나다가 한 사무실의 문틈으로 요원들이 대형 복사기 앞에서 뭔가를 복사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긴장한 표정이었다. 나는 다가가 복사기에서 쏟아지는 유인물을 보았다. 특정 후보를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이게 뭡니까?”
 
  내가 물었다.
 
  “원래 이게 극도의 보안을 지키면서 우리가 남모르게 철야 작업을 하면서 만들어내는 겁니다. 찜찜해서 이래도 되나 한번 변호사님한테 물어보고 싶어요. 지금 만드는 이 유인물들이 야당 후보자를 비방하는 내용들입니다. 마타도어용(用)이죠. 이걸 우편물로 보내기도 하고, 우리 요원들이 밤에 전국적으로 선거 지역에 가서 뿌립니다. 야당 후보들은 여당 후보가 한다고 의심하겠지만 사실은 우리가 하는 겁니다.
 
  그런데 말이죠. 정보요원인 우리가 왜 이런 짓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원래 이런 짓을 하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명령을 내리는 윗분은 여당 후보가 많이 뽑혀야 정권이 안정된다고 하면서 그렇게 하래요.
 
  윗분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여당 후보가 당선되게 해야 출세해요. 간첩을 잡는다고 출세하는 게 아니에요. 그렇지만 말단인 우리는 아무 이득이 없이 그냥 심부름꾼이죠. 만약에 걸리면 인생을 조질 것 같아 겁도 나고 회의도 들지만 그렇다고 당장 그만두면 이만한 월급이나 신분을 보장하는 직장을 구하기 쉽지 않죠. 우리가 지금 뭘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겁이 납니다.”
 
  그러는 사이 또 다른 사무실에서는 그런 유인물들을 잔뜩 집어넣은 보따리를 들고 서너 명씩 팀을 짜서 나가고 있었다. 그중 얼굴을 아는 한 사람에게 조용히 물어보았다.
 
  “지금 그걸 뿌리러 가는 거죠?”
 
  “네, 공작(工作)하러 갑니다.”
 
  그들이 찜찜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런 짓 하는 거 내가 보기에는 잡히면 모두 무거운 징역형을 받을 겁니다. 인생이 끝날 거예요.”
 
  “본부에서 나가기 전에 우리 신분증을 전부 뺏어요. 그리고 잡혀도 어떤 경우에도 신분을 노출시키지 말라고 해요. 그러면 나중에 경찰이나 검찰과 협조해서 구해준다고 합니다. 야당 운동원들한테 걸려서 얻어터지지나 말라고 주의를 받았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잡히면 우리 인생은 작살나는 거죠. 에이 ××.”
 
  그들의 얼굴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안기부 수사관마저 뒷조사하는 안기부
 
  그 자리에 책임자의 보좌관을 하는 요원이 왔다. 아는 얼굴이었다. 함께 정예요원의 훈련을 받은 대학 후배였다. 그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형님, 보좌관으로 근무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오늘 아침에 보니까 참 별일을 다 시켜요.”
 
  “뭔데?”
 
  내가 되물었다.
 
  “모시는 분이 불러서 방에 들어가보니까 수표 뭉치가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는 거야. 자기가 혼자 일을 다 할 수 없으니까 나보고 봉투에 수표를 넣으라고 하는 거야. 형님, 흰 편지봉투에 수표를 넣어보니까 딱 3억원씩 들어갑디다. 그게 보통의 여당 후보에게 주는 돈이고 특별 정책지구는 50억원을 주더라고요. 국회의원 후보로 나서서 그 돈만 챙겨도 평생 팔자 고치겠어. 그 돈을 차에 싣고 다니면서 전국의 선거구에 뿌리고 있어요. 나 그 돈 봉투 하나만 슬쩍하고 여기 관뒀으면 하는 유혹이 생기더라고요.
 
  그리고 말이죠. 내가 보니까 이건 완전히 관권선거야. 전국의 행정관청에 우리 조정관이 들어앉아 선거 지휘부 노릇을 해. 그리고 공무원들은 그 명령을 받아서 선거운동을 하고 있고. 이런 세상을 처음 알았어.”
 
  “원래 그런 짓을 하면 안 되는 거잖아?”
 
  내가 말했다.
 
  “당연히 안 되죠. 그런데 어느새 내가 그런 속에서 일하는 사람이 됐더라고요. 직접 보지는 못해도 수시로 올라오는 보고서를 보면 별일이 다 있어요. 자유당 때 부정선거보다 훨씬 더 한 것 같아.”
 
  그들은 내게 사실을 말했으면서도 나를 껄끄러워하고 경계하는 것 같았다. 내가 그 사실을 목격하는 걸 보고 자기네들 업무일지를 숨겨놓고 가자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한번은 내가 소속해 있던 그 수사단의 중견간부가 조용히 이런 말을 해주었다.
 
  “당신을 감시하라고 위에서 명령이 내려왔어요. 지금은 조직 일만 해야 하는데 따로 계속 변호사 영업을 하지는 않는지 따라붙으래요.”
 
  서로 경계하고 감시하고 그런 사회이기도 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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