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陰地의 戰士들

엄상익 변호사가 경험한 정보기관 〈5〉 정보요원들의 ‘민낯’

고위 관리의 은밀한 사생활까지 쥔 정보요원들

글 :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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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들이 만든 ‘VIP용 보고서’에 자부심 가져
⊙ 보고서엔 검찰총장이 호스티스와 관계 맺었다는 기록도 담겨
⊙ “검사장이라는 놈이 밤만 되면 룸살롱이나 나이트클럽으로 출근”
⊙ “法網 빠져나가는 놈들 뭉개버리는 곳이 안전기획부”

嚴相益
1954년생. 경기고, 고려대 법대 졸업 / 사법고시 24회, 사법연수원 15기 수료 / 국가안전기획부 정책연구관, 법무법인 ‘정현’ 변호사 역임. 現 엄상익법률사무소 변호사
국가정보원 청사. 사진=조선DB
  내가 합류했던 정예요원의 훈련과정이 모두 끝났다. 그들은 각 부서에 배치됐다. 나도 실무부서에 배치가 됐다. 비밀유지의 원칙상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추상적으로나마 당시 그곳의 분위기를 묘사하도록 한다.
 
  실무부서는 신문사 편집국 같았다. 넓은 공간에 팀별로 대략 여덟 개의 철(鐵) 책상이 마주 보며 붙어 있었다. 요원들은 아침에 출근해서 회의한 다음 외부로 나갔다. 법원·검찰같이 특정의 출입처로 가는 팀도 있었다.
 
  한낮의 사무실에는 데스크 격인 팀장과 총무 일을 보는 몇 명의 직원만 남아 있었다. 오후가 되면 요원들이 돌아와 첩보보고서를 작성해서 팀장에게 제출했다. 정보기관은 마치 수십 개의 언론사가 분야별로 나뉘어 공존하는 것 같 은 느낌이었다.
 
 
  대통령만 보는 ‘최고급 보고서’
 
  북한의 《로동신문》이나 자료를 분석하는 곳도 있었다. 해외의 공관(公館)들로부터 들어오는 전문(電文)을 받아 분석하는 곳도 있었다. 정치·경제·노동·종교 등 분야별로 나뉘어 있었다. 각종 정보들을 전체적으로 종합해 다시 확인·분석하고 편집하는 부서도 있었다.
 
  신문사에서 거대한 윤전기가 돌 듯 정보기관 자체 내에 큰 인쇄공장이 있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수십 개, 수백 개의 팀마다 하나의 잡지사 비슷할 것 같았다. 나는 한 언론사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의 기자들은 정보기관에서 발행되는 정보보고서를 ‘노란 신문’(옐로 페이퍼-속칭 ‘지라시’)이라고 불렀다. 생산된 보고서에는 특정 테마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과 대응책, 그리고 방향까지 제시되어 있었다. 시사월간지의 특집기사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그런 보고서들을 청와대 비서진에서 좋아하고 많이 활용한다고 했다.
 
  정권에 따라 청와대에 새로 들어오는 비서관들은 처음에 막연한 심정이라고 했다. 정책을 기안(起案)할 자료도 없고 어떤 방향으로 갈지 막연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정부 부처에 관련 자료를 요구해도 단편적인 내용들이 대부분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럴 때 안전기획부의 보고서들은 방향을 잡고 정책을 수립하는 데 모범답안 같은 느낌이 드는 자료라고 했다. 단순히 정책 수립에서 끝나는 보고서가 아니었다. 과거에 어떤 정책이 추진됐으면 정보기관은 그 과정에서 일어난 문제점과 효과까지 기록해두고 있었다.
 
  대통령만 보는 ‘최고급 보고서’들도 따로 있었다. 정책에 관련된 것들은 물론이고 장차관이나 국회의원·장성들에 대한 이면(裏面)의 정보들이 들어 있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보고서의 말미에는 ‘조치의견’이라는 게 달려 있었다. 신문의 기사나 칼럼과 다른 점이었다. 그 ‘조치의견’이 해당 부처에 통보되면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 같았다. 그에 따라 정책 방향이 바뀌기도 했다. 그건 실질적인 강한 힘이기도 했다. 자신의 보고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생각하면서 자부심을 가지는 원인이기도 했다.
 
  나는 일단 일반적인 정보요원들이 하는 일을 배우게 됐다. 조직에서는 자유롭게 어떤 분야의 정보든지 수집해서 보고서를 만들어보라고 했다. 요원들이 어떤 방법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어떻게 첩보보고서를 쓰는지 궁금했다.
 
 
  “DJ, YS 등에 대한 첩보 좋아해”
 
  그곳에 들어와 10년쯤 됐다는 사람 좋아 보이는 뚱뚱한 몸집의 요원이 있었다. 음악을 하다가 엉뚱하게 그곳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극한적인 훈련을 거친 정예요원은 아니었다. 정보조직은 다양하게 사람을 채용하는 것 같았다. 아침 회의가 끝나고 퇴계로에 있는 한 다방에서 그에게 차를 대접하면서 공손하게 물어보았다.
 
  “정보수집이라는 게 뭡니까?”
 
  “이 기관은 법적으로는 간첩에 관한 정보를 구해오는 게 임무지만 간첩들이 미쳤습니까? 자기 정보를 흘리고 다니게. 그런 정보는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예요. 찾는다고 찾아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 업무는 ‘대공(對共)정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정치정보’예요. 그걸 수집해와야 잘 팔리니까. 본부에서는 김대중이나 김영삼 같은 야당 지도자에 대한 첩보를 좋아하죠. 야당 국회의원들의 금전 관계나 여자 문제 같은 걸 좋아하고요. 재야인사들에 대한 동향(動向) 첩보도 가치가 있죠.
 
  우리 보고서의 독자는 대통령을 비롯해서 권력의 높은 사람들이죠. 그 사람들 입맛에 맞는 정보보고서를 쓸 수밖에 없어요. 그런 내용의 첩보보고서를 써내야 기자들이 특종을 하듯이 A급으로 판정을 받고 승진에 유리하죠. 꼭 야당에 대한 정보만 A급은 아니에요. 대통령이나 총리, 재벌 회장이나 장관의 사생활 첩보도 위에서 아주 좋아하죠.”
 
  내가 물었다.
 
  “정치권에 관한 보고서를 쓰려면 정치판을 알아야 할 거 아닙니까? 정치학을 한 것도 아니고 정치부 기자처럼 직접 국회의원을 만나는 것도 아니고 야당 지도자와 얘기를 나누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정치에 관련된 보고서를 쓸 수 있죠?”
 
  “당연히 기본 공부가 되어 있어야 하죠. 대부분 요인의 경우, 신문 정치면이나 주간지·월간지에서 목표로 하는 야당 지도자나 국회의원들의 기사를 오랫동안 꼼꼼히 읽고 분석하고 스크랩해서 정리해요. 거기에다가 우리 조직 안에 저장되어 있는 대상 인물에 대한 존안(存案)자료를 추가해서 파일로 정리해 머릿속에 넣어두는 겁니다. 그렇게 연구하면 뭔가 한 인간에 대한 흐름이 느껴지죠.
 
 
  첩보보고서 쓰는 요령
 
  그런 기본 지식들이 머릿속에 꽉 차면 그다음부터 독자적으로 대상 인물을 더 추적해서 파고드는 거예요. 대상이 되는 정치인의 측근이나 보좌관 같은 사람들을 포섭하는 겁니다. 정보는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빠져나오기 마련이거든요. 보좌관과 정보요원은 서로 주고받는 공생(共生)관계죠.
 
  또 필요하면 몰래 도청장치를 해놓기도 해요. 저는 우리 조직에 있는 비밀녹음기는 안 써요. 그걸 쓰다가 발각되면 큰일 나고 빌리는 절차가 까다로우니까 세운상가에 가 부탁해 거기서 조립한 도청장치를 개인적으로 사서 사용하고 있어요. 그것도 괜찮아요. 그렇게 하다 보면 한마디만 들어도 어떤 추론이 가능해요. 그걸로 첩보보고서를 만드는 거죠.”
 
  “첩보보고서는 어떻게 씁니까?”
 
  “첩보보고서는 각자가 작성하게 되어 있어요. 옆의 요원에게도 비밀이죠. 타이프로 치는데 좋은 타이프도 경쟁력이죠. 을지로 지하상가에 가면 미제(美製) 전동타자기를 팔아요. 그걸 사서 자판을 바꿔서 써봐요. 부드럽게 잘 찍혀요.
 
  그리고 말이죠. 여기 생활을 하려면 그런 것보다 요령이 있어야 해요. 팀장은 매일같이 좋은 첩보를 많이 가져오라고 다그치죠. 거기 휘말리면 바빠져요. 그러니까 제 경우는 어떤 정보를 얻어도 단번에 첩보보고서를 쓰지 않아요. 어쩌다 하나씩 면피(免避)할 정도로 내놓아야 내가 편하죠. 위에서 좋아하는 정보를 하나 올리면 한 달은 아무것도 안 하고 편하게 지낼 수 있어요. 너무 일을 잘 하려고 하지 말아요. 비교가 되고 경쟁이 되어 우리 요원들이 곤란해지니까 말이죠. 무슨 말인지 알겠죠?”
 
  그들의 생리를 대충 알 것 같았다.
 
 
  정보요원들이 실제 하는 일
 
  저녁시간 요원들은 돌아와 부지런히 타이프를 치며 첩보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더러 우울한 모습으로 가만히 앉아 있는 젊은 요원도 눈에 띄었다. 그 요원을 데리고 퇴계로 뒷골목의 허름한 김치찌개 집으로 갔다.
 
  “일하는 게 어때요?”
 
  그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으로 물었다.
 
  “저는 지방대를 나오고 고향도 서울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서 일하기가 정말 힘이 드네요. 오전 회의가 끝나면 우리는 영업 사원들같이 무조건 밖으로 나가야 해요. 제 경우는 서울에 아는 사람도 없고 갈 데도 없어요. 어쩌다 직장에서 일하는 고향 선배가 있어도 처음에만 반가운 척하지 두 번만 찾아가도 싫어합니다. 그러니까 시간을 보내기 위해 공원 벤치에 앉아서 죽치다가 사무실로 올 때가 많아요. 공원에 온 노인들은 나를 일자리를 찾지 못한 실업자로 알고 측은해하는 눈길을 보내기도 하죠. 거기 있는 것도 마땅치 않으면 대중목욕탕에 가서 바가지를 베고 몇 시간 낮잠을 자기도 합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어야 말이죠. 차라리 수사국 지하 조사실에서 조사받는 사람들 밥을 날라주거나 감시하는 일을 하면 훨씬 좋을 것 같아요.”
 
  그들의 사정을 알 것 같았다. 높은 담 안에도 여러 종류의 사람이 살고 있었다. 하루 저녁은 그곳을 들어오다 번들거리는 방탄모를 쓰고 가죽점퍼 차림에 M-16 소총을 든 경비요원의 하소연을 듣기도 했다. 그가 이런 말을 내게 했다.
 
  “저는 원래 권투를 했어요. 권투왕 대회에서 국내 챔피언을 따기도 했어요. 어느 날 이 기관에서 들어오라고 하는 거예요. 이제 큰일 한번 하나 보다 하고 얼씨구나 하고 들어왔죠. 그런데 제가 하는 일은 허구한 날 총 들고 문에서 경비(警備) 서는 거예요. 이럴 줄 몰랐어요. 그래도 밖에서는 내가 여기 국장 하고 있다고 허풍 치고 다녀요. 그래도 사람들이 다 그런 줄 알아요. 여기는 밖에서 물어도 절대로 정확한 신분을 확인해주지 않아요. 그게 장점이기도 하죠. 여기서 운전만 하는 기사들도 밖으로 나가면 전부 실장이고 국장이고 그래요.”
 
  그곳의 신분증은 부서나 직급이 전혀 없었다. 모든 직원이 평등하게 그냥 직원이었다. 그곳 팀장들의 나이는 50대 중반에서 60대인 것 같았다.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근무해온 고참 직원들이었다. 특무대나 헌병대에서 왔다고 하는 사람들도 여러 명 있었다. 그들에게는 거의 법의식이 없는 것 같았다. 정보를 수집하면 어떤 근거에 의한 것인지 관심조차 없는 것 같았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무용담같이 자랑하는 걸 들었다. 나는 그들이 수행하는 임무가 어떤 법적 근거에 의해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해석하고 정의해줄 필요가 있었다. 그게 그곳에서 잠시 일하는 변호사의 일이기도 할 것 같았다.
 
  나는 ‘국가안전기획부법’을 찾아보았다. 정보수집의 대상은 ‘국내 보안 정보’였다. 국내 보안 정보는 국가의 안전을 위한 간첩이나 반(反)국가 활동 세력이나 그 추종 세력에 관한 정보를 의미했다.
 
  비유하자면 정보기관의 일은 국가라는 거대한 빌딩을 지키고 화재 위험이 있는 위험한 불씨를 파악해야 하는 소방서 내지 경비회사의 업무 비슷했다. 불씨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빌딩 내 곳곳을 돌아다니고 각 사무실의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불씨는 국내 보안 정보쯤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건물 상황을 총체적으로 확인하지 않고 불씨만 콕 집어낼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빌딩의 각층이나 입주한 사무실을 파악하듯 정치, 학원, 노동, 종교계 등 ‘화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많은 분야의 내부 상황을 파악해둘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간첩이 정계인사나 노조간부, 학생운동권과 반(反)정부 성향의 성직자들과 접촉하는 걸 탐지하기 위해 정보기관 요원들이 그 분야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부적절한 여자관계 적혀 있는 경우도
 
  그러나 현실은 일반적인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정보기관이 생산하는 정보의 수요자인 대통령이나 권력의 핵심들이 국내 보안 정보보다는 일반 정보를 요구하기 때문이었다. 법조 분야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법조 분야의 정보보고서를 호기심에 읽어본 적이 있다. 검찰, 법원, 변호사들에 대한 다양한 내용들이 그 안에 적혀 있었다. 어느 젊은 판사가 혼수(婚需)가 적다면서 아내를 두들겨 팬 내용도 있었고, 검찰의 승진이나 보직 이동 때 비싼 도자기를 싸 들고 권력가의 집에 찾아가 무릎 꿇는 검사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기도 했다. 검찰총장이 평검사 시절부터 어느 카페의 어떤 호스티스와 관계를 맺었고 어떤 사건으로 뇌물을 먹었다는 검은 역사가 기록되어 있기도 했다.
 
  판검사·변호사들에 대한 미행 감시의 기록이었다. 나는 그런 보고서를 만드는 법조팀을 찾아갔다. 법조팀은 그 안에서 다시 법원, 검찰, 변호사협회로 출입처가 나뉘어 있었다. 지방의 법원이나 검찰의 경우는 그 지역 정보관들이 판검사의 동향을 보고서로 올리고 있었다. 요원들이 책상 앞에 앉아서 각자 첩보보고서를 쓰고 있었다. 내 앞쪽에 앉아 있는 검찰을 출입하는 요원에게 물었다. 작달막한 키에 대머리였다.
 
  “이런 정보들을 도대체 어떻게 수집합니까? 법조인 개개인의 사생활도 많은데 어떻게 그런 정보를 알아내는지 궁금해서 그래요.”
 
  내 말에 그는 경계심 없이 대답했다.
 
  “의외로 어렵지 않아요. 검찰이나 법원은 조직이 판검사와 서기(書記)로 이원화되어 있어요. 사실 판검사의 가장 무서운 적(敵)은 이 서기들이에요. 서기 대부분은 판검사가 되고 싶었던 사람들인데 고시에서 실패하는 바람에 한이 맺혀 있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다른 직장도 아니고 자기가 하고 싶던 판검사의 밑에서 서기 일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박탈감은 아주 깊죠. 그런 사람 몇 명만 포섭해두면 정보가 넘쳐납니다. 없는 사실을 만들어줄 때도 있어요. 그 서기들 인사이동 때 우리가 조금만 힘을 써주면 절대 충성을 다하죠. 오히려 우리 정보기관과 인연을 맺고 있는 걸 자랑으로 여기죠. 자기네 말이 정보가 되어 영향력을 미칠 수 있으니까요.”
 
  열 사람의 적보다 한 사람의 가까운 부하가 무섭다는 말이 실감 났다. 그때 한 남자가 다가와 팀장의 책상 위에 몇 장의 서류를 놓고 갔다. 괘지(罫紙) 위에 누군가의 대화 내용이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
 
 
  ‘악질적인 판사’
 
  윗부분에는 대화한 사람들의 이름과 직책이 적혀 있었다. 얼핏 보니까 내가 잘 아는 판사의 이름이었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고 법무장교로 같이 훈련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 아버지도 부장판사를 지낸 2대에 걸친 법조인 집안이었다. 그 판사는 반듯하고 강직한 사람이었다.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시위자들을 과감히 석방하기도 했다. 팀장의 책상 위로 전달된 그 서류는 도청기록 같았다. 도청이 되면 관련 팀에 그 내용이 통보되는 것 같았다.
 
  내가 의아해서 팀장에게 물었다. 팀장은 깡마르고 예민해 보이는 얼굴의 남자였다.
 
  “왜 이 판사를 도청하죠? 내가 잘 아는 사람인데 아주 좋은 사람이에요.”
 
  그 판사를 변호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좋은 사람이라뇨? 우리가 알기로는 아주 악질적인 판사예요. 국가보안법 위반자들을 자기 마음대로 석방시킨 놈이죠. 이미 강원도 영월로 쫓겨 갔는데 그걸로 안 되겠어요. 국가안보를 모르는 이런 판사는 옷을 벗겨야 해요. 그래서 비리사실을 추적하느라고 도청을 하는 거죠. 조금 있으면 틀림없이 향응을 받거나 뇌물 관계가 있을 거예요. 그게 잡히는 날 조용히 그 정보를 법원행정처에 통보만 해도 옷을 벗지 않을 수 없죠.”
 
 
  지검장, 법원장과 스스럼없던 ‘법조팀장’의 위세
 
  그렇게 말하는 법조팀장의 눈에는 적을 무너뜨리려는 잔인한 빛이 보이는 듯했다. 그는 15년 동안 법조 정보만 담당해왔다고 한다. 그는 내가 보는 앞에서 서울지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시 병아리 변호사인 30대 중반의 나는 감히 볼 수도 없는 법조계의 거물(巨物)이었다. 서울지검장이 전화 저쪽에 나온 것 같았다. 팀장이 호방한 어조로 말했다.
 
  “어이 김형, 언제 한번 술 한잔 합시다.”
 
  그는 ‘김형’이라고 불렀다. 그건 아랫사람을 존중해주는 호칭이었다. 수화기 저쪽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아, 대감이군? 그럽시다. 언제라도 좋지.”
 
  서울지검장은 정보기관의 법조팀장을 대감이라고 불렀다. 법조팀장은 전화를 끊으면서 나를 보았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알겠지?’ 하고 확인시켜주는 표정이었다. 법조팀장은 이번에는 다시 법원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반말을 하면서 밥 한번 먹자고 했다. 그는 내 앞에서 법원행정처장이나 법무장관 그리고 대법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허물없는 말투로 농담을 하기도 했다. 대법관에게 전화를 걸어 형님이라고 하면서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전화를 끊은 법조팀장이 내가 놀라는 표정을 보면서 앞에 있던 검찰 출입 요원에게 내뱉었다.
 
  “○ 검사장, 그 친구 안 되겠던데.”
 
  그가 말하는 검사장은 내가 아는 인물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박정희 대통령과 친한 장군이었다. 법조팀장이 그 검사장에 대해 말을 계속 이었다.
 
  “그 ×× 검사장이라는 놈이 밤만 되면 룸살롱이나 나이트클럽으로 출근을 하고 있어. 엊그제 그놈이 다니는 룸살롱에서 제보가 들어왔는데, 이 ×× 술 먹을 때 히로뽕을 발라서 먹는다는 거야. 이놈이 그동안 대통령 백 믿고 설쳐댔는데 언젠가는 손을 봐줘야 해. 여자 탤런트들을 집으로 끌어들이지, 건달한테 상납받지 하는 짓이 갈수록 태산이야. 최근에는 그 검사장 비서놈까지 설쳐대. 검사장 비서놈이 재벌 그룹에서 운영하는 골프장에다 회원권을 여러 개 요구했다는 정보가 올라와.”
 
 
  법조팀장과 한판 붙다
 
  법조팀장이 대감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정보기관은 검사와 판사들의 비리를 잡고 있었다. 법조팀장이 나를 보고 빙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어때요? 병아리 변호사를 하다가 정보기관에 와서 여기서 법조계를 보는 소감이?”
 
  나는 마치 오물(汚物)을 한 바가지 뒤집어쓴 것 같은 모멸감이 들었다. 나도 모르는 새 제어하지 못한 말들이 그대로 튀어 나갔다.
 
  “몰래 도청해서 남의 뒷구멍이나 파고 약점 잡았다고 기고만장하는 건 야비하고 치졸한 짓 같습니다. 약점을 잡아 상대를 굴복시키는 행동이 옳은 겁니까? 지금 그걸 자랑하고 과시하는 겁니까?”
 
  이미 한계를 넘고 말았다. 나는 이런 놈이었다. 군(軍) 시절부터 여러 번 이런 실수를 하고 세상살이에서 얻어맞기도 했다.
 
  “지금 뭐라고 했소?”
 
  그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가 격분해서 덧붙였다.
 
  “알았어. 지금 당신 속으로 나보고 고시도 합격하지 못한 실력 없는 새끼가 잘난 척한다고 무시하고 있는 거지?”
 
  그의 속에 잠재해 있던 상처까지 건드린 것 같았다. 잘못해서 초창기에 좌충우돌하다가 쫓겨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이왕에 내친걸음이었다.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덧붙였다.
 
  “아까 내 동기를 악질 판사라고 단정했는데 팀장하고 나하고 누가 더 그 판사를 잘 알겠어요? 나하고는 고등학교를 같이 나왔어요. 법무장교로 같이 지냈어요. 직접 대화 한 번 한 적 없는 팀장이 그 판사에 대해 뭘 압니까? 모르면서 뒤에서 그렇게 정죄해도 됩니까?”
 
  검사장들이 대감이라고 대접해주는 그를 병아리 변호사인 내가 철없이 막 두들겨 패고 있었다. 나는 이미 이 조직 안에 들어와 있었다. 내가 누를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렇게 행동해도 잃을 것이 별로 없었다. 언제든지 사표가 준비되어 있는 고용 변호사 정도일 뿐이었다. 오히려 통쾌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날 밤 나는 혼자 다시 그 의미를 새겨보았다.
 
  사법 권력이 썩은 면이 있었다. 사업가들은 검사와 유착해서 그들의 스폰서가 됐다. 말이 좋아 스폰서지 뇌물을 주고 청탁하는 부정부패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법원도 마찬가지였다.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들은 판사와의 거래를 독점하고 정의를 짓밟는 구조이기도 했다. 비리와 약점이 있으면 당당할 수 없었다.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사법권의 독립이라는 울타리 안에 안주하는 법원과 기소를 독점하는 검찰에 대해 안전기획부가 그 부패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이었다. 감시와 견제를 받지 않으면 어떤 권력도 썩고 오만해지기 마련이다.
 
 
  학생회장 출신 안기부 간부
 
  며칠 후 그곳의 수사책임자가 나를 불렀다. 검사 출신이었다. 안전기획부장의 두뇌 역할인 특보실과 수사국에는 검사들이 여러 명 있었다. 수사책임자의 자리에 앉아 있는 그는 우익(右翼) 최전선의 지휘관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그 무렵 그는 수십 대의 버스에 안전기획부의 수사관 부대를 태우고 경기도에 있는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의 본부를 급습해 그들을 일망타진했다. 반독재 투쟁을 하다가 프랑스로 망명한 홍세화씨가 쓴 수필집에 그가 등장하고 있었다. 홍세화는 고문 경찰로 유명한 이근안과 안전기획부의 그를 비교했다. 그 내용을 보면 바닥 출신인 이근안은 ‘공공의 적’이 되어 ‘법의 제단(祭壇)’ 위에 올랐다고 했다. 반면에 안전기획부의 수사책임자인 그는 서울 법대를 나오고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검사가 되는 바람에 귀족계급으로 상승되어 면죄부를 받았다고 했다. 재야에서 그를 보는 시각인 것 같았다.
 
  약간 혼란스러웠다. 그는 서울 법대 재학 시절 학생회장을 지냈다는 소리를 들었다. 독재에 반대해서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반대에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변화의 원인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안전기획부 간부 중에는 대학 시절 학생회장 출신이 제법 있다고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데모를 주도하는 학생회장들을 아예 중앙정보부에 끌어다 놓고 자리를 준 적이 있다고 했다. 적을 심복 부하로 만든 것이다. 붉은 타일이 붙어 있는 수사국 건물 3층에 그의 사무실이 있었다. 운동권들에게 그 건물의 지하실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나는 당사자인 그를 만나게 된 것이다. 수사책임자인 그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넓은 방의 벽 앞에 큼지막한 갈색의 나무 책상이 있었고 그 앞에 기다란 회의 탁자가 붙어 있었다. 그가 의자에 앉은 채 나를 쳐다보았다. 심장까지 꿰뚫을 것 같은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흰 얼굴에 짙은 눈썹을 가진 미남(美男)이었다. 부리부리한 눈에서 강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일단 이 조직에 들어오게 된 것을 환영하오. 자 앞에 앉으시오.”
 
 
  “정치인들이란 모리배나 장사꾼, 허섭스레기…”
 
  그가 회의 탁자 앞자리를 권했다. 여비서가 차를 가지고 와서 내 앞에 놓고 나갔다. 파란 융단 위에 유리가 덮인 탁자 위에는 그가 이미 본 듯한 정보보고서가 어지럽게 흩어져 쌓여 있었다. 제목들이 언뜻 눈에 들어왔다. 정치인의 동정, 학원소요, 종교계 모임, 재야인사의 돌출 행동을 적은 보고서였다. 보고서마다 주요 부분에 노란 형광펜으로 줄이 그어져 있었다. 그는 고시 공부할 때처럼 밑줄 치며 보고서를 머릿속에 넣는 것 같았다. 그가 뜬금없이 이런 질문을 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을 아시오?”
 
  미국의 제퍼슨이 한 말이다. 그리고 김대중씨가 선거 유세에서 인용한 말이기도 했다.
 
  “알고 있습니다. 김대중 선생도 선거 때 인용하셨죠?”
 
  순간 그가 정색을 하며 내뱉었다.
 
  “앞으로 이 조직 안에서는 정치인의 뒤에 선생이라든가 총재라든가 하는 존칭은 붙이지 마시오. 정치인들이란 알고 보면 다 모리배, 장사꾼이거나 허섭스레기 같은 인간들이니까. 여기서 그들의 감추어진 이면을 알게 되면 내가 왜 이 말을 하는지 이해하게 될 거요.”
 
  무슨 뜻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그가 다시 이렇게 물었다.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란다면 독재는 어떻다고 생각하오?”
 
  불교의 화두 같은 묘한 말이었다. 침묵하면서 조용히 그의 말을 기다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가 나를 한참 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란다면 독재는 그것보다 더 많은 피를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거요.”
 
  묘한 말이었다. 학생회장 출신이라면 독재를 지지하자는 것은 아닐 텐데도 그가 말하고자 하는 무엇인가가 바람이 되어 나의 가슴 골짜기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다시 물었다.
 
  “당신은 정보기관이 뭐라고 생각하오?”
 
 
  “그놈들은 워낙 바퀴벌레 같아서…”
 
  나는 입을 다물고 그의 말을 기다렸다.
 
  “정보기관이란 법 위에서 힘을 구사하는 존재지. 나도 당신도 ‘법쟁이’니까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우리가 법을 하다 보면 교묘하게 법망(法網)을 피해가는 놈들이 있지. 그런 놈들에게 법치주의는 정말 좋은 파라다이스지. 법망을 빠져나가는 그런 놈들을 뭉개버리는 곳이 바로 안전기획부요. 여기 진짜 요원들은 우리 같은 법쟁이들을 보고 뭐라고 빈정거리는지 아시오? 법쟁이들은 육법전서(六法全書)를 공부하지만 자기들은 칠법이라는 것을 집행하고 있다는 거요. 우리가 법과대학에서 공부할 때 법의 위에 ‘마하트(Macht)’라고 해서 사실적인 힘이 있다고 법철학에서 배웠지. 이제 여기서 바로 그런 힘을 실감하게 될 거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대학 시절에 본 영화가 떠올랐다. 권총을 찬 경찰관이 법망을 피한 범죄인들을 은밀히 찾아가 직접 처단하는 영화였다. 그 경찰관은 복잡한 법 절차를 경멸했다. 자신이 정의를 직접 실현했다.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이라는 소설에서도 주인공은 전당포의 노파를 도끼로 살해하고 자신은 정의를 실현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이 혼자 정의를 독점하고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묻고 있었다. 공산혁명의 주체들이 숙청을 하는 것도 독재국가의 비밀경찰조직도 자기들이 정의를 독점한다는 의식이 있었다. 도스토옙스키는 그런 발상이 악령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작품을 통해 말하기도 했다.
 
  “당신은 검사인 내가 여기서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하오?”
 
  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뭘 하십니까?”
 
  “나는 이 조직을 통해서 정치, 종교, 학원, 노동계의 쓰레기들을 청소하지. 그놈들은 워낙 바퀴벌레 같아서 쉽게 박멸할 수가 없지. 그걸 하는 게 이 기관의 임무라고 할까. 나는 법대에 다닐 때 학생회장을 하고 시위를 주도했소. 그런데 무력감을 느꼈지. 나는 분명 정의의 편인데 세상이 전혀 동조해주지 않는 거야. 부패한 정치인들은 학생들을 이용했지. 나는 검사가 됐소. 그러나 재판이라는 복잡한 매뉴얼을 통해서는 진짜 악은 건드리기 힘들다는 걸 알았소. 그러다 이 정보조직에 들어와서 다른 힘의 세계를 보게 된 거요.”
 
  “그 다른 세계의 실체가 뭐였습니까?”
 
  내가 물었다. 얘기가 어떤 핵심 쪽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남(南)이나 북(北)이나 또 권력자나 야당이나 모두 겉으로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국민을 현혹하지. 그러나 내가 본 역사는 권력을 둘러싼 엘리트와 카운터 엘리트의 싸움에 불과하다는 거요. 대중은 현혹되고 억울한 피만 흘릴 뿐이지. 권력은 그걸 잡는 몇 명에게만 돌아가게 되어 있소. 그러니 책에서 배운 공허한 민주주의 관념이나 법 이론에 집착하지 말고 권력의 실상을 여기서 구경해보시오. 당신에게 앞으로 내가 특명을 한번 줘볼 거요.”
 
 
  ‘힘의 세계’
 
  분위기가 조금 편안해졌다. 그는 카리스마가 있으면서도 마음을 열어놓았다. 내가 질문을 해도 될 것 같아 물었다.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오시게 됐습니까?”
 
  그의 내면이 어떤 것인지 짐작하고 싶었다.
 
  “따지고 보면 ‘헝그리 정신’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소. 숨 막힐 정도로 답답한 검찰조직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어. 차라리 여기에서 위로 올라가고 싶은 거요. 여기 있다는 자체가 기회요. 내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고 말이지.”
 
  막연하지만 대충 그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후 그를 관찰해보았다. 그는 지독히 열심히 일했다. 혼자 밤늦게까지 충혈된 눈으로 보고서를 보고 부하들을 지휘했다. 그에겐 퇴근 시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집에서도 새벽에 일어나 배달된 정보보고서를 화장실에서 본다고 했다. 그의 리더십은 수사관들을 한 몸이 되게 했다. 그는 수사관들을 수시로 격려해주고 위험한 일을 맡길 때면 자기가 나중에 변호사를 해서라도 먹여 살리겠다면서 그들을 격려했다. 동시에 적에 대해서는 피도 눈물도 없이 단호하다는 평가였다.
 
  그의 상관에 대한 복종의 태도도 눈물겨웠다. 한번은 그와 둘이 얘기하고 있을 때였다. 인터폰에서 윗분이 건물 입구로 들어온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그는 번개같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사무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고 나서 계단을 올라오는 상관 앞에서 깊이 고개를 숙이며 맞이했다. 그를 보면서 나는 세상에서 출세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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