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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취재

제5회 서해수호의 날(천안함 폭침 10주기)

文在寅 대통령, 취임 후 처음으로 천안함 용사를 찾아왔지만…

글 : 이경훈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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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에서 만난 유가족과 생존 장병들의 소회 들어보니…
⊙ 대통령 기념사, ‘북한’은 0번, ‘코로나19’ 4번, ‘평화’ 9번 등장
⊙ 말 바꾼 보훈처, 대통령 온다고 참전 戰友들이 보낸 조화는 담벼락 아래 숨겨놔
⊙ 대통령 막아선 용감한 老母, “대통령님, 누구 소행입니까. 늙은이 恨 좀 풀어주세요”
⊙ 제2연평해전 참전용사의 울분, 대통령 때문에 우리가 보낸 조화를 치우다니…
2010년 4월 29일 평택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천안함 46용사 합동영결식. 사진=조선DB
  10년이 지났지만,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또렷하다. 2010년 3월 26일, 김포공항 근처에서 친한 선배와 저녁을 먹었다. 카페에서 수다를 떨다가 밤 10시가 조금 안 돼 헤어졌다. 지금은 710번으로 바뀐 161번 버스를 발산역에서 탔다. 버스 운전기사 바로 뒷자리에 앉았다.
 
  10시를 넘긴 시각.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을 거쳐 혜화동 동성고등학교 앞을 지날 때였다. 버스 안 스피커에서 ‘서해에서 해군 함정이 침몰하고 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순간 ‘북한 짓이구나’라고 직감했다. 조금 전 헤어진 선배에게 바로 전화했다.
 
  “서해에서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데, 북한 짓 아닙니까?”
 
  선배도 “북한 말고 누가 이런 짓을 하겠느냐”고 답했다.
 
  천안함 침몰 소식을 듣자마자 북한 소행이라고 확신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정말 북한이 한 것인가’라는 의심이 싹텄다. 전문가와 정치권이 앞장서 천안함 괴담을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초대 국방부 장관을 지낸 송영무(예비역 해군 대장)씨는 2010년 4월 6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공동작전 중에 북한이 도발했을 가능성은 없다”며 북한 소행설을 부정했다.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공천을 받은, 한 북한전문가는 당시 “북한 잠수함은 천안함을 침몰시킬 만한 능력이 없다. 북한 연루설로 몰아가는 것은 MB정권에 자승자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천안함이 건조된 지 오래돼 선체(船體)의 피로 누적으로 절단됐다’는 피로파괴설, ‘서해의 해도(海圖)에는 없는 암초와 부딪혀 좌초했다’는 암초좌초설 등이 퍼졌다. 당시 여당 소속 국회 국방위원장은 “우리 군이 설치했다가 제거 못 한 기뢰가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기뢰충돌설을 주장했다.
 
  천안함 침몰 나흘 뒤, 대통령은 수색이 한창인 서해 백령도에서 “심증만으로 (북한 소행을) 예단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일주일 뒤, 국방부 장관은 국회에서 북한 어뢰에 의한 천안함 침몰 가능성을 내비쳤다. 청와대는 곧장 국방장관에게 “장관의 답변이 어뢰 쪽으로 기우는 것 같다”는 쪽지를 보냈다.
 
 
  10년 지났지만, 아직도 북한 소행 부정
 
서해에서 건져 올린 북한 어뢰. 사진=조선DB
  2010년 5월 15일, 쌍끌이 저인망 어선(부산 선적 135t급 대평 11·12호)이 천안함을 폭침(爆沈)시킨 북한제 어뢰(CHT-02D)의 추진체(프로펠러)를 서해 밑바닥에서 건져 올렸다. 가로 25m, 세로 15m의 그물로 천안함 침몰 반경 500m를 하루 두 번씩 훑었다. 이렇게 스모킹 건(smoking gun·어떤 범죄나 사건의 결정적 증거)을 확보했다.
 
  그러자 북한 소행을 부정하는 무리는 어뢰 추진체에 파란색 잉크로 적힌 ‘1번’ 글씨를 물고 늘어졌다. “북한은 ‘노동 1호’ ‘광명성 1호’처럼 ‘호’를 쓰지, ‘번’을 쓰지 않는다”면서 ‘1번’이라 적힌 어뢰 프로펠러는 북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북한도 ‘번’을 쓴다는 것이 밝혀지자, 이번에는 “(어뢰 폭발로 인한) 수천 도의 고온에서 왜 1번이라고 적힌 파란색 잉크가 지워지지 않느냐”는 음모론을 내세웠다.
 
  이에 대해 윤덕용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공동단장은 지난 4월 7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파란색 ‘1번’) 글자는 어뢰 후부 추진체를 칠한 페인트 위에 적혀 있었다. 그 페인트가 130도 이상에서 녹는 페인트로 폭발에도 불구하고 안 녹았다는 건데, 가장 기초적인 열역학 제1 법칙만 알아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차가운 바닷속이라 폭발로 고열이 발생해도 순식간에 온도가 내려가고, 뒷부분(‘1번’이라고 적힌 부분)은 폭발로 뒤로 밀려나기 때문에 열전달이 더 안 된다. 촛불에 손가락을 빨리 넣었다 빼면 안 뜨거운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설명했다.
 
  카이스트(KAIST) 송태호 교수는 실험을 통해 폭발 순간 어뢰 앞부분에서 3000도의 고열이 발생해도 0.1초 후에는 28도로 떨어졌고, 어뢰 뒷부분은 폭발 순간이나 0.1초 후나 3도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을 부정하는 주장은 계속되고 있다. 2010년 5월에 시작된 신상철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민간조사위원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신씨는 여전히 천안함 좌초설을 주장하고 있다.
 
 
  10주기 행사 현장 가보니
 
  10년이 흐른 2020년 3월 27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리는 제5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을 취재하기 위해 대전으로 갔다.
 
  서해수호의 날은 서해를 지키다 숨진 55명의 용사를 추모하기 위해 지정한 국가기념일이다. 제2연평해전(서해교전, 2002년 6월 29일, 6명 전사), 천안함 폭침(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장병 46명 전사 및 한주호 준위 순직), 연평도 포격전(2010년 11월 23일, 해병 2명 전사)의 희생자를 기린다. 2016년 처음 국가기념일로 지정돼 매년 3월 넷째 주 금요일에 열린다.
 
  대전역에서 대전현충원까지는 택시로 약 30분이 걸렸다. 입구에 도착하니 차량이 늘어서 있었다. 순간 ‘이거 대통령 오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창문을 내리니 청와대 경호처 관계자로 보이는 이가 방문 목적을 물었다. “서해수호의 날 취재 때문에 왔다”고 했다.
 
  일주일 전 국가보훈처에 문의하니 “대통령 참석 여부를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대통령의 참석은 기념식 전날(26일) 결정됐다고 한다.
 
  경호처 관계자는 “청와대 풀(pool) 기자단만 행사를 취재할 수 있다”고 했다. 관계자에게 “VIP(대통령)가 옵니까”라고 물었고, “그렇다”는 답을 들었다.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장 입장은 제한되지만, 묘역 참배는 가능하다고 했다. 기념식장 대신 천안함 46용사가 안장된 묘역으로 향했다.
 
  천안함 46용사 묘역은 대전현충원의 북쪽에 있다.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바람이 불어 쌀쌀했다. 여기엔 46명의 전사자가 함께 안장돼 있다. 바로 옆에는 참배객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테이블 네 개를 가운데 일렬로 두고 나무 벤치가 두 줄로 놓여 있다. 20여 명이 동시에 앉을 수 있을 정도다. 벤치 사이로 문재인 대통령의 이름이 적힌 조화(弔花)가 보였다. 고 한주호 준위의 묘비도 100m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천안함 묘역에서 제2연평해전·연평도 포격전 전사자 묘역까지는 북쪽으로 약 400m. 이 사이에 한주호 준위의 묘가 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현충원 직원들과 기념식 실무자들이 묘단(墓壇)을 쓸고 묘역 주변을 정리했다. 탁자 위엔 서해수호 55용사를 추모하기 위해 55송이의 국화가 담긴 꽃바구니가 있었다. 대통령을 제외한 이들이 보낸 조화는 이곳에서 약 100m 떨어진 화장실 앞에 모여 있었다. 국가보훈처는 “대통령 방문을 앞둔 오전 8시경 대전현충원 측이 기존에 놓여 있던 모든 조화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켰다”고 했다. 보훈처는 “대통령의 동선(動線)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비표(祕標)를 달지 않고 천안함 묘역 주변을 서성이자 경호처 관계자는 “대통령이 (천안함) 묘역으로 오기 전에는 자리를 옮겨달라”고 말했다. 오전 10시, 천안함 묘역 벤치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통해 기념식을 시청했다. 고(故) 민평기 상사의 모친 윤청자(77) 여사가 눈에 들어왔다. 윤 여사의 좌석은 김정숙 여사 바로 뒤, 문 대통령의 좌측 뒤편이었다. 윤청자 여사는 천안함 폭침 북한 소행을 부정하는 이들에게 강력하게 항의하는 이로 유명하다. 이날 대전에 내려온 이유 중 하나가 윤청자 여사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였다.
 
  기념식은 개식(開式) 선언,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 제창, 헌화·분향 및 순국선열과 호국 영령 및 서해수호 전사자에 대한 묵념 순으로 진행됐다. 제2연평해전에 참전해 부상한 이희완(44·해사 54기) 해군 중령과 KBS 이각경 아나운서가 사회를 맡았다.
 
 
  老母의 恨
 
윤청자 여사가 분향하는 문 대통령을 막아서고 있다. 사진=유튜브 국방TV 캡처
  오전 10시13분경, 연평도 포격전 전사자인 고 서정우 하사의 모친 김오복 여사가 헌화를 끝냈다.
 
  10시14분, 문재인 대통령의 분향이 시작되자 돌발 상황이 벌어졌다. 윤청자 여사가 분향하려는 대통령에게 다가간 것이다. 윤 여사 바로 옆에 서 있던 박삼득 보훈처장은 왼손을 저으며 의전을 맡은 이에게 윤 여사를 제지하라는 몸짓을 했다. 대전현충원장도 당황한 표정이었다.
 
  윤 여사는 “대통령님, 대통령님”이라고 말하며 향로(香爐)에 분향하기 위해 향(香)을 집어 든 대통령의 오른손을 가로막았다. 의전 담당자가 윤 여사에게 팔을 뻗으며 제지하려 했지만, 대통령과 윤 여사를 강제로 떼놓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당황한 대통령은 분향을 멈췄고, 미간과 입가를 찌푸리듯 모으고 집중하며 윤 여사의 이야기를 들으려 했다. 박삼득 보훈처장은 왼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두 번 쓸어올렸다. 박 처장은 대화가 길어지자 한 걸음 앞으로 나가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 들으려고 했다.
 
  “대통령님, 대통령님, 이게(천안함이) 북한 소행인가, 무슨 소행인가 좀 말씀 좀 해주세요.”
 
  “북한 소행이라는 게 정부의 입장 아닙니까?”
 
  (대통령은 윤 여사를 다독이듯 자신의 왼손을 윤 여사에게 갖다 댔다.)
 
  “그란디요, 여적지(여태껏) 북한 소행이라고 진실로 혀본 일이 없어요. 그래서 이 늙은이 한 좀 풀어주세요.”
 
  (문 대통령은 집어 든 향을 향로에 넣었다.)
 
  “정부 공식 입장에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도 딴 사람들이 저보고 말할 때요, ‘이게 어느 짓인지 모르겠다’고, ‘대한민국에서 하는 짓인지, 저기(북한)인지 모르겠다’고 그럴 때 저 가슴이 무너져요.”
 
  “걱정, 걱,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문 대통령은 오른손으로 가볍게 윤 여사의 등과 왼팔을 두 차례 어루만졌다.)
 
  “이 늙은이 좀 한 좀 풀어주세요. 맺힌 한 좀….”
 
  “그러니까 걱정 안 하(셔도)…. 저희 쪽에서 정부가 다….”
 
  “꼭 대통령께서 이것 좀 꼭 밝혀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39초간의 대화가 끝나고, 대통령은 분향을 마무리했다. 영부인도 분향을 마쳤다.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 서해수호 용사에 대한 경례와 묵념으로 이어졌고 묵념은 21발의 조포(弔砲)와 함께 1분13초간 계속됐다.
 
  윤청자 여사가 별다른 제지(制止) 없이 대통령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박삼득 보훈처장의 바로 옆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윤 여사는 앞쪽 세 번째 줄 우측 두 번째에 섰다. 첫 번째 줄은 오른쪽부터 의전 담당자, 문 대통령, 김정숙 여사, 대전현충원장 순이었다. 둘째 줄은 김오복 여사, 천안함 전사자 고 이상희 하사의 부친 이성우씨, 제2연평해전 전사자 고 윤영하(해사 50기) 소령의 아버지 윤두호씨가 자리했다.
 
  헌화 및 분향을 마치고 주빈과 귀빈, 유가족들이 자리로 돌아왔다. 마스크를 쓴 황교안 대표가 눈에 띄었다. 유족으로 보이는 전투복 차림의 9사단 소속 병사 한 명이 또 마스크를 썼고, 대통령을 포함한 나머지는 모두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대통령 기념사, ‘북한’ 0번·‘코로나19’ 4번 등장
 
  행사는 추모공연 #1 〈그날 그 얼굴〉, 서해 55용사 추모영상 상영, 고 임재엽 상사의 모친 강금옥 여사의 편지 〈너 없는 열 번째 봄〉 낭독, 대통령의 기념사 순으로 이어졌다.
 
  대통령은 9분30초가량의 기념사에서 천안함 폭침이 누구의 소행인지 밝히지 않았다. ‘북한’이라는 단어 자체가 등장하지 않았다. 대신 ‘코로나19’가 네 번이나 등장했다. ‘평화’가 9번, ‘안보’가 5번 언급됐다. 군악대가 부른 추모공연 #2 〈그날에서 내일로〉를 마지막으로 식이 끝났다. 이때가 오전 10시47분경이었다.
 
  기념식을 마치고 일부 유족들은 윤청자 여사의 돌발행동에 아쉬운 소리를 했다고 전했다. ‘대통령이 직접 기념식에 참석했는데,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는 의미였다고 한다.
 
  10시54분경. 하늘에서 드론의 모터 소리가 들렸다. 대통령 일행이 승용차 다섯 대, 미니버스 두 대에 나눠 타고 제2연평해전·연평도 포격전 전사자 묘역으로 향하는 모습이 약 200m 밖에서 보였다. 드론으로 지상의 상황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대통령이 움직일 때면 종종 드론이 보였다.
 
  대통령 일행은 10시56분경 제2연평해전·연평도 포격전 전사자 묘역에 도착해 참배를 마쳤다. 11시3분에는 천안함 46용사 묘역으로 이동했다. 천안함 유가족들은 기념식장에서 대형버스 4대에 나눠 타고 11시1분 묘역에 미리 도착해 있었다.
 
  11시5분. 대통령이 천안함 전사자 묘역에 도착하자 경비가 강화됐다. 취재가 어렵다고 판단해 11시10분경 제2연평해전·연평도 포격전 전사자 묘역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고지대여서 걸어 올라가는 데 힘이 들었다.
 
  윤영하(참수리 357정 정장, 당시 대위) 소령의 아버지 윤두호(78)씨가 보였다. 해군에선 150t 이하의 함장을 정장이라 부른다. 윤씨에게 인사를 하고서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서해수호의 날에 참석했는데 기분이 어떠십니까”라고 물었다. 윤씨는 “감사하다”고 짧게 답했다.
 
  해군사관학교 18기인 예비역 대위 윤두호씨는 그동안 많은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면서 딱히 할 말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대화를 억지로 이어나갔다.
 
  — 아드님이 전사하신 날(2002년 6월 29일)과 윤 선생님이 간첩선을 나포하신 날(1970년 6월 29일)이 같은 날입니다.
 
  “나중에 보니 그렇더라고요. 운명같이 겹쳤습니다.”
 
  — 윤영하 소령이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한다고 했을 때 어떠셨습니까.
 
  “고마웠지요. 해군은 이충무공(李忠武公) 정신을 가진 군대입니다. 필사즉생(사즉필생).”
 
  — 아들이 자랑스럽지 않으십니까.
 
  “(웃으며) 자식 자랑하는 게 바보 같다고들 하잖아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자랑 같아서 자식 자랑을 안 했는데, 아들이 자랑스럽습니다.”
 
 
  文 대통령 방문, 완전 속 보인다
 
  김한나(46)씨도 눈에 띄었다. 김씨는 제2연평해전 당시 참수리 357정의 조타수 고 한상국 상사의 아내다. 한 상사는 당시 참수리정이 침몰해 실종 상태였는데, 41일 뒤 인양한 357정 조타실에서 키를 잡고 있는 채로 발견됐다. 얼마 전 김한나씨는 국방부가 의약품 공급 업체(‘지오영’ 등)에 병사를 파견한 것을 문제 삼으며 국방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김씨는 이날 기자를 만나서도 “지오영이 알바(아르바이트)나, 따로 사람을 구해서 마스크를 생산해야지, 왜 군인(병사)을 동원해 생산시켜요?”라고 말했다. 지난 4월 1일에는 정경두 국방장관,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 지오영 조선혜 대표이사를 업무상 배임·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대통령의 기념식 참석에 대해 김씨는 “완전 속 보여요. 선거 앞두고 너무 보여주기식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유가족 중 한 명의 의견으로 기사화해도 되는가”라고 묻자 “실명으로 내보내도 된다”고 말했다. 이어 “유가족들의 공통된 의견”이라고도 했다. 옆에 있는 윤두호씨에게 웃으며 “아버지, 그렇지 않아요?”라고 되물었다. 김한나씨는 “국립묘지에 일반 사망, 순직과는 다른 전사자만을 위한 묘역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기념식 사회를 맡은 이희완 중령도 식후(式後) 전우들이 잠든 제2연평해전 전사자 묘역을 찾았다. 이 중령은 제2연평해전 당시 참수리 357정의 부정장(副艇長)이었다. 당시 부상으로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이 중령에게 인사를 하자 “인터뷰를 하는 겁니까?”라고 물었고, “네. 짧게…”라고 답했다. 그는 “군인이라 (상부의) 허락을 받지 않고는 인터뷰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이희완 중령은 현재 해군본부 인사참모부에 근무하고 있다.
 
 
  문제의 조화 사건
 
문 대통령의 조화(왼쪽)와 한쪽 담벼락 아래 놓인 조화(오른쪽). 사진=권기형씨 페이스북
  문 대통령의 방문을 앞두고 현충원 측은 천안함 46용사 묘역은 물론 제2연평해전·연평도 포격전 전사자 묘역의 조화를 모두 다른 곳에 옮겨두었다. 여기엔 제2연평해전(참수리 357) 전우회를 비롯해 이명박 전 대통령,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 등이 보낸 조화도 포함됐다.
 
  대통령이 제2연평해전·연평도 포격전 전사자 묘역을 떠나자 제2연평해전 참전용사들도 묘역 앞에 나란히 서 먼저 간 전우들에게 인사했다. 이 시각이 11시46분이다. 1분 정도 지나 해병대 간부들도 연평도 포격전 전사자인 고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을 향해 경례했다.
 
  제2연평해전 참전용사인 권기형씨는 전우회에서 보낸 조화가 사라진 것을 알아챘다. 잠시 뒤 자신들이 앞서 보낸 조화가 묘역 옆 담벼락 아래 놓인 것을 발견했다. 이때가 11시50분경이었다. 기념식 안내 지원을 나온 해군·해병대 장병들이 담벼락 아래에서 조화를 들고 제자리에 옮겨놓기 시작했다. 이 시각이 11시53분경이었다.
 
  권씨는 지난 3월 3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해군·해병대 안내 간부들이 화환을 담벼락 아래서 묘역으로 옮겨놓았고, 전우회에선 자리 정리만 했다”고 말했다. 안내를 맡은 해군·해병대 간부 10여 명과 제2연평해전 참전용사 5~6명이 화환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정리한 것이다. 권기형씨는 다른 조화는 몰라도 제2연평해전 전우회의 조화가 사라진 것에 화가 났다.
 
  지난 3월 28일 권기형씨는 자신의 소셜미디어(페이스북)에 행사 당일 조화가 담벼락 아래 놓인 모습이 담긴 사진과 아래의 글을 남겼다.
 
  〈제5회 서해수호의 날
  ‌다른 이야기들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으니
  나는 다른 거 알려야지
  ‌여러 행사에서 봤지만 자기가 보낸 화환
  ‌놓아둔다고 먼저 와 있던 다른 화환들을 정리해놓은 것은
  ‌처음 봄 우리 참수리357전우회에서 놓아둔 것은 건들지
  말아야지…
  그분과 그분 안사람 뜻인지 의전한다고 밑에서 저리 한 건지…
  ‌다 좋다 그분과 그분 마누라 뜻이건 의전을 위한 것이건
  ‌사진을 위한 것이건 당신들 차례 끝났으면 원래대로
  ‌놓아두든가 그냥들 가버리고 (경호) 통제 풀린 후 전우들 보러
  ‌묘역에 가보니 저리 방치되어 있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꿎은 해군 해병대 안내 장병들만 고생이구먼〉
 
  권기형씨는 제2연평해전 당시 갑판병으로 계급은 상병(上兵)이었다. 권씨는 북한 해군 등산곶 684호의 기습 사격으로 왼손 손가락이 잘려 나갔는데도 한 손으로 소총 탄창을 갈아 끼우며 대응 사격을 했다. 그의 왼손과 왼팔에는 상흔(傷痕)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권씨는 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지난 3월 30일 오전, 《조선일보》는 권기형씨가 소셜미디어에 공개한 ‘조화 사건’을 보도했다. 현장을 취재한 입장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싶었다. 《조선일보》에 보도된 내용과 직접 취재한 내용, 보훈처의 답변을 종합했다. 보훈처의 주장은 “대전현충원 측이 행사 당일 오전 8시에 대통령의 동선을 고려해 기존의 조화를 모두 치우고, 행사가 종료된 11시40분에 다시 원래 위치로 돌려놓았다”는 내용이었다. 대전현충원 취재 당시 촬영한 사진과 보훈처의 주장을 대조한 결과, 보훈처의 주장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11시40분 이후에도 조화는 원래 위치에 놓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기에 시각도 남아 있었다.
 
 
  조화 논란, 말 바꾼 보훈처
 
  3월 30일 오전 10시, 국가보훈처 담당자에게 조화를 치우게 된 경위를 물었다.
 
  — 묘역에 놓인 기존의 조화를 치우고 문 대통령의 조화만 놓았다는 보도가 있습니다. 기존의 조화는 누가 치운 것입니까. 보훈처입니까, 청와대입니까.
 
  “해당 기사는 사실과 다른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조화는 대통령 참석을 앞두고 오전 8시경, 대전현충원 측이 치웠습니다. 이번 행사는 대통령이 처음으로 서해수호 55용사에 직접 조화를 전달했는데, 공간과 동선을 고려해 조화를 치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11시40분경 행사가 끝나고 조화를 다시 원래 위치로 갖다 놓았습니다. 과거에도 동선에 문제가 생기면 (조화를) 치웠습니다. 자세한 건 춘추관(청와대 언론 담당)에 물어보십시오.”
 
  — 조화를 현충원 측이 아닌 해군과 해병대 장병, 참전용사들이 다시 제자리로 옮기는 것을 직접 봤습니다.
 
  “행사를 하다 보면 해군 장병들하고 일을 같이하니….”
 
  곧바로 대전현충원에 전화를 걸었다.
 
  — 기존의 조화를 대전현충원 측이 오전 8시에 다른 곳으로 옮겨놓고, 11시40분에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다고 말하는데 맞습니까.
 
  “어디서 그러던가요?”
 
  — 보훈처에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맞습니까.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보훈처에 문의하십시오.”
 
  — 보훈처에 문의한 뒤, 대전현충원에 전화를 드린 겁니다.
 
  “보훈처에 문의하십시오.”
 
  — 청와대 경호처에서 치운 게 아니고, 대전현충원에서 치운 게 맞습니까.
 
  “이와 관련해 저희가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그날 오후에 고 한상국 상사의 아내인 김한나씨에게 보훈처·대전현충원 관계자와의 통화 내용을 말해주자, “왜 (보훈처는) 거짓말을 하느냐”면서 “기자님도 현장에서 같이 보지 않았느냐. 해병대랑 해군이 (조화를) 다시 옮기는 걸…”이라고 말했다.
 
  3월 30일 오후, 《월간조선》 인터넷판 기사로 보훈처의 주장에 반박하는 내용과 사진을 소개했다. 약 두 시간 뒤 보훈처는 〈해명자료〉를 내놓았다. 대통령이 서해수호 55용사에게 일일이 꽃을 전달해야 했기에 동선 문제로 기존의 조화를 모두 치울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다음 날 아침, 보훈처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관계자는 “어제(30일) 답변했던 담당자는 기념식 당일 상황을 잘 파악하지 못해 정확히 말하지 못했다”면서 “어제 오후 발표한 〈해명자료〉의 내용이 맞다”고 말했다.
 
  — 처음 〈해명자료〉에는 ‘해군·해병대 장병이 조화를 오후 12시경 (제자리로) 옮겨놓았다’는 내용이 들어갔는데, 몇 시간 뒤 다시 올라간 〈해명자료〉에는 ‘해군·해병대 장병’이라는 문구가 사라지고 “공식 참배행사가 끝난 12시경 모두 제자리에 옮겨놓았습니다”라는 문구만 들어갔습니다. 누가 옮긴 건지에 대한 주체가 빠진 것 아닙니까.
 
  “기념식에 지원을 나온 해군·해병대 장병이 옮긴 게 맞습니다. 다만 행사 자체를 국가보훈처가 주관하고 해군·해병대 장병은 지원을 나온 것이기에 굳이 그 내용(‘해군·해병대가 옮겼다’는 문구)을 넣지는 않았습니다. 오후에는 현충원 직원들이 다시 조화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 정리를 했습니다.”
 
  3월 27일 오후 2시30분경 기자가 다시 찾은 제2연평해전·연평도 포격전 전사자 묘역에는 조화가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보훈처는 〈해명자료〉를 통해 “향후에는 기념식 행사 시 유족 및 참전 장병의 동의를 구하여 행사기간 동안 주빈(主賓) 이외의 조화를 최소한의 거리에 이동 배치하여, ‘나라를 위한 고귀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
 
  기념식 전날인 3월 26일 오전, 조화와 함께 서해수호 55용사를 참배한 이명박재단 측은 3월 30일 《월간조선》과의 통화에서 “(왜 조화를 치웠는지) 짐작은 간다”고 했다. 이명박재단 박용석 사무국장은 “서해수호의 날이 국가보훈처 주관 행사이지만, 청와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단 측은 “이 전 대통령이 ‘46용사들에게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매년 천안함 묘역을 찾겠다고 약속했지만 참석을 못 해 미안하다’고 했다”고 밝혔다. 이날 정정길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해 17명의 인사가 묘역을 참배했다.
 
  다시 3월 27일 현장 취재기다.
 
 
  “온 줄을 압니까, 간 줄을 압니까”
 
자식의 상석에 도시락을 올려놓고 함께 먹는 유가족.
  낮 12시쯤, 제2연평해전·연평도 포격전 전사자 묘역에서 해군의 미니버스를 얻어 타고 천안함 46용사 묘역으로 이동했다. 대통령이 천안함 묘역을 떠난 뒤 유가족들은 벤치에 앉아 해군이 제공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있었다. 1만5000원짜리 고급 도시락이었다. 한 유가족은 전사한 아들의 상석(床石)에 자신의 도시락을 올려놓고 먹었다. 마치 아들과 함께 밥을 먹는 것 같아 보였다.
 
  17세가 된 고 김경수 상사의 딸 다예 양에게 인터뷰를 부탁했으나, 김 양은 “인터뷰요?” 하면서 수줍어하며 사양했다. 김 상사는 당시 7세 다예 양과 9세 주석 군을 두고 있었다.
 
  유가족 중 누구라도 붙잡아서 10주기를 맞은 소감을 묻고 싶었지만, 식사 중이라 섣불리 나서기 어려웠다. 눈치만 보며 이 사람 저 사람 얼굴만 바라봤다. 교복을 입은 중고생들도 대여섯 명가량 보였다. 이들은 사이좋게 한데 어울렸다. 식사를 마친 정종율 상사의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눴다. 정씨는 “10년이 지나든, 20년이 지나든 항상 그리울 것”이라고 말했다.
 
  “항상 서운해요. 여기에 온 줄을 압니까, 왔다 가는 줄을 압니까. 가슴이 아픕니다. 백 번을 온들 온 줄 알겠나요. 10년이 지나도 변한 건 없어요. 아쉬움만 생깁니다. 평소 울적할 땐 이곳에 와서 (비석의) 그림자라도 보고 갑니다.”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서해수호의 날에 참석한 것을 묻자 “예전엔 안 하고 오늘에 와서, 선거 앞두고….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라고 했다.
 
  아들이 언제 제일 보고 싶은지 물었다.
 
  “3월 26일이 되면 더 보고 싶어요. 어린애가 학교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우리 아들도 돌아왔으면 좋겠는데…. (보고 싶을 땐) 와서 (비석이라도) 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죄책감도 덜고….”
 
  — 아드님 시신은 수습하셨습니까.
 
  “아들은 후미 기계실에 있어 시신을 찾았어요. 시신도 못 찾은 이들이 있습니다.”
 
  정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하면 뭐 합니까. 변하는 건 하나도 없는데”라고 했다. 이어 “부모보다 먼저 가 불효이지만, 나라를 위해 (전사한 게) 자랑스럽다”고 했다.
 
  천안함 46용사 유족회 회장인 이성우씨에게 다가갔다.
 
  —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참석했습니다.
 
  “대통령께 항상 기념식 참석을 부탁드렸습니다. 작년 6월 5일 호국보훈의 달 초청으로 청와대에 갔는데, 헤드테이블에 앉았습니다. 그때 대통령께 ‘내년에는 꼭 서해수호의 날에 참석하셔서 위로와 격려를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렸습니다.”
 
  — 대통령 참석에 유가족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자식 잃은 슬픔에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았습니다. 대통령이 일일이 46명 모두에게 조화를 직접 주시고 참배한 것에 감사드립니다.”
 
  — 천안함이 벌써 10주기입니다.
 
  “천안함 46용사의 희생정신을 국민들이 잊지 않길 바랍니다. 자식 잃은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오후 12시25분, 참수리357전우회 회원들이 제2연평해전 전사자 묘역 참배를 마치고 천안함 묘역으로 내려왔다. 제2연평해전에 참전해 다치고, 천안함 폭침으로 전사한 박경수 상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박경수 상사는 시신을 찾지 못하고, 서해에서 산화(散華)했다.
 
 
  “아프지 마라, 안 아파야 오래 본다”
 
  비는 그쳤지만, 먹구름이 해를 가렸고, 바람이 불어댔다. 조화도 바람을 맞아 계속해서 쓰러졌다. 12시50분경 유가족들은 천안함 묘역에서 다시 대형버스 4대에 나눠 타고 기념식이 열렸던 현충문 앞으로 이동했다. 이들은 각자 가져온 차에 오르며 헤어졌다. 유가족들은 헤어지며 전사한 자식들의 이름을 대신 불렀다. 자식들의 이름을, 유가족들이 서로를 부르는 호칭으로 삼은 것이다.
 
  “재민아, 잘 가라.”
 
  “○○아, 잘 가라.”
 
  “아프지 마라, 안 아파야 오래 본다.”
 
  천안함재단 관계자는 “당초 7000명이 기념식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행사가 축소됐다”고 했다. 가족 중 희망하면 모두 참석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개인 사정으로 17 유가족이 참석하지 못했다고 한다. 가족들은 대통령의 기념식 참석을 미리 알았을까. 관계자는 “예전부터 대통령 참석을 요청은 해왔다”면서도 “당일이 돼서야 대통령 참석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 주관 행사이기에 참석자에 대한 신원조회를 거치는데, 이전보다 신원조사를 다소 강하게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우리는 패잔병이 아니다
 
  오후 12시53분, 천안함 생존 장병과 현역 군인, 천안함 함장이었던 최원일(해사 45기) 중령이 보였다. 이들은 현충원을 막 떠나려던 참이었다. 최 중령은 정복에서 사복으로 갈아입고 차를 타고 막 현충원을 떠났다. 천안함 생존 장병인 김윤일씨, 라정수씨, 전준영(천안함 생존 장병 모임 회장)씨를 붙잡았다. 전준영씨는 천안함 폭침 생존 장병들의 권익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 10년이 지났는데 어떠십니까.
 
  “올 때마다 달라지는 건 없어요. 살아 있는 이들만 늙어가죠.”(김윤일)
 
  “올 때마다 근무했던 동료들이 생각나요. 잊고 살다가도 (여기) 오면 기억이 나고, 울다가 (돌아)가요….”(라정수)
 
  — 대통령이 참석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참석해서 다행이죠.”(김윤일)
 
  김윤일씨가 도리어 질문을 했다.
 
  “기자님이 보기엔 사람을 죽이는 게 중요한가요, 살리는 게 중요한가요?”
 
  “둘 다 중요하지 않나요? 군인은 적을 죽이는 게 더 중요하고요.”
 
  “우리를 향해 적을 죽이지 못했다고 패잔병(敗殘兵)이라고들 비난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배가 침몰했을 때) 깜깜한 어둠 속에서 어깨동무해가며 침몰하는 배에서 동료들을 살려내 나왔습니다. 그 누구도 우리가 전우를 살려낸 것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적을 죽이진 못했지만, 전우들을 살려냈습니다.”
 
  김씨는 지난 4월 8일 밤 기자와의 통화에서 자신들을 향한 ‘패잔병’이라는 시선에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시간이 흘러 생존 장병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사라지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는 “천안함 생존 장병 중 국가유공자로 등록된 이는 10명 내외”라면서 “생존 장병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 위해선 근거가 필요한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는 입증이 쉽지 않아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했다.
 
 
  “늙은이 恨 좀 풀어주세요”
 
2018년 2월 24일, 광화문에서 열린 북한의 김영철 訪南 반대 기자회견. 가운데가 윤청자 여사다. 사진=유튜브 조갑제TV 캡처
  김윤일씨는 생존 장병들에 대한 대우도 그리 좋지는 않다고 말했다. 기념식장에서도 유가족과 주빈, 귀빈들이 우선되는 것은 맞지만, 생존 장병들은 항상 뒷순위로 밀린다는 것이다. 기념식 전날인 3월 26일부터 최원일 중령과 함께했다는 김씨는 “대통령이 가고 난 뒤에야 최원일 함장님과 생존 장병들이 따로 묘역을 참배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최 중령에 대한 예우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아니냐’고 묻자 “그건 두말할 필요도 없는 거 같아요…”라고 했다. 최 중령은 한미연합사령부에서 근무 중이다. 2021년 군 생활을 끝낼 예정이다.
 
  4월 8일 오후, 윤청자 여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 여사는 “서해수호의 날 이후 지금도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의 ‘정부 공식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는 말에 (서운함이) 조금 풀리긴 했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고 했다.
 
  윤청자 여사는 기념식이 끝나고, 천안함 묘역에서 문 대통령을 또 만났다고 한다. 먼저 간 아들의 묘비에서 대통령에게 다시금 “늙은이 한 좀 풀어주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고 한다.
 
  윤씨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에 천안함 폭침 주범인 김영철을 부른 데 대한 울분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윤 여사는 김영철 방남(訪南) 소식을 듣고는 2018년 2월 24일 광화문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천안함 유가족들과 함께 김영철 방남 반대 시위를 했다. 윤청자 여사는 신부전증 때문에 숨이 가쁘다고 말했다. 충남 부여가 집인 윤 여사는 3년 전 남편과 사별했다.
 
  문 대통령은 서해수호의 날 기념사에서 “우리는 오늘 ‘코로나19’에 맞서며 우리의 애국심이 ‘연대와 협력’으로 발휘되고 있음을 확인합니다”라고 말했다. 진정한 ‘연대와 협력’은 천안함 유가족들이 보여주고 있다. 자식 잃은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이들이야말로 연대하고 협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우 천안함 유족 모임 대표는 “유가족들이 1년에 13번 가까이 만난다”고 했다. 묘역의 꽃 갈이와 추도식 등으로 자주 모임을 갖는다고 했다.
 
 
  공식 입장?
  그럼 비공식 입장도 따로 있나

 
  “평화가 영웅들의 희생에 보답하는 길” “9·19남북군사합의 이후 서해에 군사 충돌 없어”. 문 대통령의 기념사는 아쉬움이 남는다. ‘코로나19’ 대신 ‘북한 소행’이라는 말을 꺼냈으면 어땠을까. “북한이 천안함을 침몰시켰다” “늦게 찾아와서 죄송하다”고 했다면 유가족에게 더 큰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문 대통령이 현충탑에서 윤청자 여사에게 건넨 “정부 공식 입장에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라는 말이 아쉽다. 노모가 알아듣기 쉽게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해 배가 침몰했습니다”라고 간명하게 말했으면 어땠을까. 정부의 공식 입장? 그럼 비공식 입장이 따로 있는지 반문(反問)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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