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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흔들리는 외교안보 : 韓中관계

‘萬折必東’ 요구하는 중국에 강하고 당당하게 대응해야

글 : 황효순  한양대 중국경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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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 학자·언론, “한국 정부·기업도 중국의 미래 전략에 동참하고 있다”며, 한국의 중화질서 편입 기정사실화
⊙ 中 지식인·원로·共靑團 간부들, 一帶一路 등 중국의 실력 넘어서는 시진핑의 정책에 우려
⊙ ‘이상주의자’ 장하성 대사, 미세먼지나 거론하는 국회의장에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
⊙ 축구 恐韓症·방탄소년단에 대한 감탄 등 자기들보다 우월한 점 인정

黃孝淳
1965년생. 한양대 사학과 졸업. 한양대 문학박사 수료(중국경제사). 美 동서문화센터(Center for East west, University of Hawaii) 경제학 박사. 現 한중경제지식교류회 정회원, 국제지역개발학회 상임이사, (사)중국지역개발연구원 원장, 한양대 중국경제통상학부 교수
지난 5월 28일 장하성 駐中 한국대사는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다. 사진=뉴시스
  우리 몸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검진을 통해 문제의 근원을 찾아내고, 해결을 위한 적절한 처방을 받는 것이 순서이다. 지금 한반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상황은 우리나라가 건국한 이래 어쩌면 가장 긴박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여러 전문가의 시각이다. 한반도에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조짐이 나타난 것이다. 중국의 정치·경제적 성장이 세계 질서의 변화를 가져왔고, 이를 용인할 수 없는 미국의 대응이 문제의 발단이라고 할 수 있다.
 
  긴박하게 돌아가는 환경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한가? 우리는 현 상황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인식과 확실한 처방을 가져야 한다. 정치적 신념과 사상의 기반이 문제를 보는 시각에 투영되어 문제에 대한 본질적 시각에 차이가 생긴다면 해결이 쉽지 않다. ‘전략적 모호함’이라는 애매한 태도를 가장한 논리나 전략의 부재(不在),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유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유보한다면 해결이 쉽지 않다. 명확한 상황인식과 대비를 위한 전략을 갖기 위해 다양한 입장과 문제를 안고 있는 당사자들의 상태를 점검해보아야 한다.
 
 
  중국 정부의 초조함
 
지난 4월 25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2회 一帶一路 정상포럼’에서 발표하는 이재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중국은 한국의 一帶一路 참여를 기정사실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시진핑 주석의 중국몽(中國夢)은 대약진(大躍進)운동의 악몽(惡夢)을 재현할 우려가 있다.”
 
  지난 4월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시대를 위한 미래전략회의’에 참석한 한 중국경제학자의 발언이다. 날이 갈수록 첨예한 대립구도를 보이고 있는 미중(美中) 간 무역전쟁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나타내는 발언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 큰돈을 버는 것은 한 인생에 있어 가장 불행한 일 중 하나’라는 옛 격언을 인용하면서, 중국의 고도성장이 중국 지도자와 중국 인민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살피지 못하는 허상(虛像)을 덧입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연히 중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관변(官邊) 학자들의 성토가 이어졌고, 회의장은 학술회의가 아닌 정치집회로 변질되었다. 중국 관방 학자들은 자신들의 판단과 전략이 허상이 아님을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 증명하는 과정에서 느닷없이 “한국 정부와 기업도 중국의 미래 전략에 동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오랜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과의 관계를 수정하면서 중국의 정책에 적극 지지와 참여를 결정한 한국의 변화가 자신들의 꿈이 헛된 망상이 아님을 증명하는 자료’로 제공된 것이다. 회의 기간 내내 필자는 많은 중국 및 외국 학자에게 이러한 주장에 대한 설명을 요구받았다.
 
  필자는 “한국 정부의 외교전략과 미국이나 중국에 관한 명확한 입장 표명은 공식화된 것이 없고, 한국의 입장이 미중 갈등이나 중국의 전략에 얼마나 큰 비중이 있느냐”고 반문(反問)하면서 아마도 외교적 수사가 오해된 것이라고 말끝을 흐렸지만 매우 당혹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다음으로 미국의 영향력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여러 가지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는 인도와 이란 학자들의 발표가 있었다. 어느 나라가 자국(自國)의 이해와 권리에 직접 참여하는 진정한 경제적 자주(自主)의 문제는 현재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유라시아에 걸쳐 육·해상 신(新)실크로드 경제권을 형성하고자 하는 중국의 국가전략]’의 구상에 참여함으로 가능하다는 중국 관방 학자들의 주장이 이어졌다.
 
  회의에 참석한 한 미국 학자는 “중국 정부의 지원과 주도로 작년 11월부터 무려 7차례의 국제회의가 열렸는데, 이들 회의는 모두 중국 정부의 미래전략에 동참하여 미국 중심의 세계 구도를 재편하는 것에 초점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향후 본격화될 미국과의 갈등 문제에 중국 정부가 적지 않게 초조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美中 무역분쟁은 ‘문명 간 충돌’
 
  이와 비슷한 시기인 4월 말 워싱턴에서 개최된 ‘미래안보전략포럼’에서 미국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인 카이로 스키너는 중국에 대해 “미국이 서방세력이 아닌 경쟁자를 갖는 것은 처음이며, 경제적・이념적 측면에서 중국은 미국이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가장 강력한 경쟁자”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미중 무역분쟁은 단순한 경제적 분쟁의 문제가 아니며, 기술경쟁・패권(覇權)경쟁을 넘어선 ‘문명 간의 충돌(Clash of Civilization)’이라고 표현했다. 미국의 실질적 외교전략 기획가의 입에서 나온 말로서 미국이 중국과의 대립구도를 보는 시각을 엿볼 수 있다. 즉 미국은 중국과의 어떤 형태로의 경쟁이든 불가피하며, 이 대립은 포기하거나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라는 결의에 가까운 표현이었다. 이를 보는 세계 각국의 외교전략가들은 미중 간의 대립과 경쟁이 양국 모두에 피할 수 없는 전쟁이 될 것이며, 중국과 미국 모두 본격적 전쟁을 앞둔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고 표현했다.(《일본경제신문》)
 
  이어 베이징(北京)대학에서 ‘세계 질서와 아시아 청년의 역할’이라는 청년 학술 프로그램이 개최되었다. 한국과 일본, 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와 브라질·폴란드·헝가리 등 11개국의 학생이 참여한 국제행사였다. 3일간의 회의와 실크로드상의 도시로 유명한 란저우(蘭州)로의 여행(field trip)이 포함된 행사였다.
 
  필자는 이 모임에 초대된 것은 아니지만 베이징대학에 숙소가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그 행사를 볼 수 있었다. 한국 학생들은 대부분 한국의 공자학교의 추천으로 참여하였고, 행사의 성격보다 참여경비의 대부분을 중국에서 지원하기에 참여한 것처럼 보였다. 다른 나라 학생들의 상황도 비슷하였고, 세계 각국에서 모인 청년들은 마치 상품 홍보를 목적으로 개최된 설명회에 참여한 듯한 분위기였다.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
 
  발표자와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거의 모든 내용이 미국과 서방을 겨냥한 선전포고였기 때문이다. 미국 주도 세계 질서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자유시장경제를 추구하는 미국식 자본주의가 아시아 여러 국가의 경제적 자유를 박탈하고 있다는 식의 발언이었다. 그래서 국제 질서의 균형을 위해서는 다각적인 세계 질서를 모색해야 하며, 현재의 가장 현명한 선택은 한반도로 시작하여 유럽에 이르는 대륙과 해양의 벨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들의 주장이 과거 중국 중심의 중화주의(中華主義) 질서에 대한 회귀를 전제하고 있으며, 이러한 중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 한반도가 자연스럽게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행사 성격에 대한 이해 없이 참여한 세계 젊은이들의 형식적인 모임이었음을 알고 다소 안도감이 들었으나, 중국이 너무 나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한국의 국회의장과 일군(一群)의 정치인이 중국을 방문해 베이징대학에서 연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선약으로 참여하지는 못하고 짧은 신문 보도를 통해 그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한국과 중국은 경제협력과 문화교류를 중심으로 평화적이고 안정적인 미래를 구축해나가야 한다고 국회의장인 문희상 선생께서 강력하게 주장했다.”(《중국청년보》)
 
  물론 중국 관방의 의도된 보도임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한국의 고위 인사가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세계 질서 재편에 적극 협력하고 있는 모습으로 비치는 것에 우려를 금할 길이 없다.
 
  한국 측의 보도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북한의 비핵화(非核化) 문제에 대한 중국의 협조와 역할이 중요 의제였다”고 밝히고 “향후 중국과의 경제·문화·환경 등의 다각적 협조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이어졌다”는 것이었다. 《인민일보》와 《중국청년보》의 보도는 한국이 중국의 미래전략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보인 것으로 비치고 있다. 《환구시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미래전략을 위해 경제 부문과 군사 부문의 협조도 논의되었다고 보도했다. 당연히 사실이 아닐 것으로 생각되지만, 시진핑의 중국호(號)가 방향을 잃거나 속도 조절에 실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수레 백 대 가지고 탱크 이길 수 있나?”
 
  필자와 오랜 친분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베이징대학·공산주의청년단 간부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중국 정부의 정책에 대한 우려와 초조함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미국에서 공부하거나 미국과 오랜 시간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 교수나 간부들의 생각은 훨씬 부정적이었다. 술자리가 이어지면 노골적인 성토라도 할 기세였다.
 
  1957년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추진된 대약진운동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당시 마오쩌둥은 중국 통일과 일시적인 농촌 경제 회복에 대한 자신감으로 ‘영국을 7년 안에, 미국을 넉넉하게 10년 정도면 앞지를 수 있다’며, 농촌의 인력을 동원하여 중화학공업 분야의 대약진을 추진했다. 도시로 몰려든 농촌 인력들이 도시 경제의 인플레를 조장했고, 농촌 경제는 회복 불능의 상태로 추락했다. 상상할 수 없는 경제 파탄이 초래되었고, 수천만명이 아사(餓死)하는 비참한 결과를 가져왔다.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마오쩌둥이 권력을 탈환하는 과정에서 이어진 문화대혁명은 지금도 중국인 대부분이 혐오하는 ‘역사의 퇴보’라는 오명(汚名)을 남겼다. ‘아시아·태평양 시대를 위한 미래전략회의’에서도 ‘대약진운동’ 얘기가 나왔지만, 지금의 상황을 그때와 비교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중국 내에서도 자국(自國) 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가 적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필자는 이 기회에 미중분쟁에 관한 그들의 생각을 알고 싶어, 전략포럼에서 나왔던 몇 가지 문제에 대해 물어보았다. 현재 중국 정부가 결전(決戰)의 의지를 보이며 마치 미국과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하고 있는 문제, 이를 위해 중국이 기술적・군사적 측면에서 철저한 준비가 되어 있다는 주장에 관한 이야기였다. 조심스럽게 묻는 질문과 달리 그 답변은 너무나 간단했다.
 
  “수레 백 대를 가지고 탱크를 이길 수 있나요?”
 
  우문현답(愚問賢答)이 된 것 같아 멋쩍은 웃음으로 대화를 마쳤지만, 중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현실의식은 지도부의 생각과 많은 격차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美中 무역분쟁에 샌드위치가 된 한국
 
지난 5월 9일 美中 무역협상을 마치고 미국무역대표부를 떠나는 류허(劉鶴) 중국 부총리. 美中 사이에서 한국의 입장이 난처해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 6월 1일 미국과 중국이 상호 간에 취한 무역관세 인상 조치는 그동안 우려 속에 추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본격적인 무역전쟁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동안 진행되어왔던 중국의 불공정 거래(기업보조금, 환율조작, 기술탈취)에 대한 용인을 종식할 시점이 왔다며 중국 제품에 대한 관세인상 및 추가 관세인상을 발표했다. 이에 중국도 미국산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를 선포하였다.
 
  미국은 소위 ‘화웨이 보이콧’이라 불리는 중국 기업에 대한 제재조치를 강화하고, 화웨이와 거래하는 세계 각국의 기업에 거래 중단을 암시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중국은 동시에 중국국가개발개혁위원회, 상무부, 산업정보기술부가 공동으로 관련 기업들을 불러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대로 화웨이에 기술부품 공급을 중단할 경우 글로벌 공급망은 교란될 것이며 해당 기업은 영구적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며, 중국 내에서 생산시설을 철수하는 경우에도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자리에는 화웨이와 공급관계를 맺고 있는 글로벌 기업들이 참석하였으며, 한국의 삼성과 SK그룹 관계자들도 포함되었다. 미중 갈등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된 한국의 기업들은 이들의 대립과 경쟁구도가 본격화되고 격화될수록 입게 될 피해에 대한 대책 마련에 긴장하고 있다. 미중 무역갈등의 와중에 직접 피해를 보게 된 한국 기업 관계자들은 뚜렷한 대책을 찾을 수 없으며, 이러한 상황에 대해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는 정부에 대한 불만을 강하게 토로하고 있다.
 
  정부는 “기업 간에 해결할 문제이며, 정부가 관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애매하고도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는 한국이 현재 우리와 직접적이고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양국 사이에서 어떠한 해답을 내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소극적인 태도와 안이한 대처가 앞으로 예상된 결과 앞에 최선인가 묻고 싶다. 지난 4월 베이징에서 만난 지인들과의 대화가 다시 악몽처럼 떠오른다.
 
 
  이상주의자가 외교관?
 
  ‘전략적 독재’라 이름하는 시진핑의 권력 독점은 수많은 정치적 오만과 독선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중국 학자들의 생각이다. 그가 추진하는 세계 질서의 재편, 새로운 세계 질서의 중국의 주도라는 자신감은 중화주의적 세계관을 가진 많은 사람에게 자부심과 기대를 안겨주었지만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는 의미)’의 교훈을 망각하고 헛된 자신감과 허상에 빠진다면 중국이 경험한 재앙을 안겨줄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들은 반정부적·반시진핑 입장을 취하는 인사들이 아니라 현 중국 정부의 일선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중국과 중국 인민을 위한 애국심을 가진 중국인들이다. 이들은 중국이 지난날 오판(誤判)하고 그 오판으로 인해 엄청난 재앙을 경험한 아픔을 갖고 있는 현실적인 사람들이다.
 
  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자연스럽게 한국의 태도와 입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먼저 이들은 최근 주중(駐中) 한국대사로 임명된 장하성(張夏成) 전 청와대 정책실장에 대해 물었다. 아니 묻기보다 확인이라고 하는 것이 나을 법하다. 필자보다 그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들은 장하성 대사가 대학교수 퇴임식에서 한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젊었을 땐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미래 무지개가 있다고 믿고 무지개를 좇아다녔으나 이제 오랜 경험을 통해 보니 무지개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계속 철없이 무지개를 좇는 소년으로 살고 싶다.”
 
  그들은 장 대사가 자신을 이상주의자라고 표현한 것처럼 정말 이상주의자인가 물었다. 경영이나 경제를 다루었고, 외교를 담당해야 할 사람이 이상주의자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렸던 것 같다.
 
 
  차하얼학회
 
  최근 시진핑의 아시아 국제외교문제의 싱크탱크로 불리는 차하얼(察哈爾)학회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들은 이 학회에 대해 오늘의 중국을 만들어온 국가원로와 전문가 집단들이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완장을 찬 친위(親衛)세력’ 중의 하나라고 했다. 오늘날 중국 정부, 중국 지도자들의 오판에 적극적 역할을 했으며,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이 공식석상에서 “당신들 마음대로 하시오!”라고 힐난했던 집단이기도 하다.
 
  지난 4월 중국을 방문한 문희상 국회의장이 오찬을 함께 했던 차하얼학회는, 소위 한국에 대한 정책을 건의하고 소통을 추진하는 통로 같은 기구이다. 이 학회의 한 간부가 한국에 왔을 때 한 말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중국에는 ‘비바람을 겪지 않고 어떻게 무지개를 볼 수 있는가’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한중 우호관계는 앞으로 더 굳건해질 것입니다.”
 
  사드문제로 한중관계가 경색되었을 때 소통의 창구 역할을 하기 위해 와서 그가 꺼낸 첫 말이다. 그는 이어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중국은 한국이 북한의 위협에 민감하고 일정 부분 미국에 의지하는 것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한국도 방어체제를 도입할 때 중국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경고성 발언이었다. 중국 원로들의 지적대로 ‘맘대로 해’를 실감케 하는 발언이다. 상대국에 대한 예의도 체면도 없었다. 이에 대해 한국의 어느 누구도 이들의 발언 내용과 태도를 문제 삼지 않았다.
 
  무지개가 없다는 것을 알았으나 철없이 무지개를 좇겠다는 이상주의자와 비바람 후에 무지개를 볼 수 있다는 철없는 이상주의자들이 주도하는 한중관계의 해법이 현실적일 것이라는 기대를 어렵게 하는 악몽이다.
 
  ‘맘대로 하라’는 것은 체념하듯 “네가 원하는 대로 해!”라는 주문이 아니라,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경고성 선언이다. 이는 후진타오 등 국가원로들이 중국을 이끌고 있는 지도부에 대한 경고의 발언이라고 애국적 중국인들은 말한다.
 
 
  홀대받은 문희상 국회의장
 
지난 5월 중국을 공식 방문한 문희상 국회의장은 시진핑 주석은 만나지 못하고 왕치산 부주석 등과의 만남에 만족해야 했다. 사진=뉴시스
  대한민국의 의전 서열 2위인 국회의장이 중국을 방문하여 중국 최고지도자를 만나지 못한 경우는 문희상 의장이 두 번째다. 우리나라 국회의장은 모두 10차례 중국을 방문했는데, 2007년 노무현 정부 말기에 임채정 의장이 후진타오 주석 대신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 우방궈(吳邦國)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을 만난 것이 중국 최고지도자를 만나지 못한 첫 번째 사례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10번째 방문한 문희상 의장은 자신의 표현대로 “수술 후 아픈 몸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했지만 홀대를 받았다. 이는 중국의 설명대로 외교적 관례가 변한 것이 아니라 외교적으로 만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며 “중국이 미국과 같은 대국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말로 서운함을 표시했다..
 
  불과 열흘 전 베이징에서 열린 ‘제2회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 참가한 38개국 국가 정상은 모두 중국 최고지도자와 마주 앉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특사(特使)로 파견된 자민당 간사장(니카이 도시히로)도 최고의 예우를 받으며 시진핑과 단독 회담을 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을 맞은 것은 아무런 결정권도 갖지 못한 인물들이었다.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를 위해 중국이 주도적 역할을 해달라는 주문이 그들의 귀에 들어올 리도 없었다. 현재 심각하게 벌어지고 있는 미중 간의 소용돌이 속에 미세먼지 문제를 거론하는 방문객을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이러한 홀대는 오히려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해달라는 요청과 미중 갈등 문제에 확실한 입장 표현을 해달라는 무언(無言)의 압력처럼 보이기도 했다. 중국의 주변국에 대한 외교적 태도는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萬折必東
 
  이런 상황에서도 문화 교류의 확대라는 명목으로 한국의 국회의장은 중국국가화원이라는 예술단체를 방문했다. 만남의 자리에서 그는 ‘혼란과 오염된 상황 속에서도 항상 정결함을 유지한다(處染常靜)’는 자신의 글을 선물했고, 중국 측은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는 익숙한 족자를 선물했다. 만절필동! ‘황허의 물이 만 가지 곡절을 갖고 있어도 결국 동해로 흐른다’는 의미로 중화에 대한 사대(事大)의 의미가 담겨 있는 글이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미국의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를 방문한 자리에서 ‘만절필동’이라 쓴 휘호를 선물하여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한국의 국회의장이 한글도 아닌, 그것도 중국에 대한 사대의 의미를 담고 있는 문구를 선물한 것은 신중하지 못한 처신이었다. 임진왜란 때 명(明)나라가 원군(援軍)을 보내준 것에 대해 선조가 감사의 의미를 담아 한 말이 ‘만절필동’이고, 대표적인 사대주의자 송시열이 명나라 숙종과 의종을 모시기 위해 그의 고향에 세운 만동묘의 어원이기도 하다. 그리고 현 청와대 노영민 비서실장이 중국대사로 임명되어 신임장을 받는 자리에서 시진핑에게 선물한 족자도 ‘만절필동’이다.
 
  중국에서 홀대를 받는 것도 모자라 방문한 기관에서 ‘만절필동’을 선물받은 한국의 지도자는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그리고 그것을 선물한 중국인들은 무슨 생각으로 그 문구를 선택했을까? 친분이 있는 중국인들에게 우리 지도자를 조롱하는 듯한 이야기를 들어야만 하는 것… 이것이 두 번째 악몽이다.
 
  현실적 문제들에 대한 해결이 시급한 와중에 이러한 이상주의자들이 그 문제를 해결해야만 하는 당사자들이라는 것이 답답할 따름이다. 중국과 관련을 맺고 있는 기업이나 기관들은 대안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이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미중 갈등의 양상이 타협점을 포기한 채 연일 극단적 조치들을 내놓고 있는 상황이기에 그 해법을 찾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결책을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다.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방탄소년단에 대한 관심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이자 중국 지도자를 양성하는 중국공산당 중앙당교(黨校)의 대변지 역할을 하는 신문이 《환구시보》이다. 정부가 직접 나서 공식적인 발언을 하기 곤란할 경우 예외 없이 등장하여 원색적인 어투로 그들의 생각을 토로하는 신문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국 영해를 불법 침탈한 중국 어선에 위협사격을 가했을 때 ‘한국이 미쳤다’고 비난한 신문이며, 사드문제나 중국의 이익을 침해하거나 위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그 대상을 가리지 않고 막말을 쏟아내는 사실상 중국 대변지라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우리 정부의 ‘중국발 미세먼지’ 발언에 대해 모욕적인 대응을 한 신문이기도 하다.
 
  이처럼 한국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신문이 의외의 보도를 냈다. 현재 전 세계에서 K팝 열풍을 주도하고 있는 방탄소년단(BTS)에 대한 기사였다. 그들은 한국의 방탄소년단의 활약상을 상세히 보도하며 중국의 아이돌 그룹들의 유약함과 무능을 질타했다.
 
  예상치 못한 중국 언론의 보도 때문인지, 아니면 방탄소년단의 활약에 대한 관심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중국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예외 없이 방탄소년단에 대한 질문을 잊지 않는다.
 
  중국과의 오랜 경험에서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쉽게 따라잡을 수 없는 대상에 대해 매우 유화적·소극적임을 알고 있었지만, 이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원천(源泉)기술을 보유한 일본에 대한 태도, 조직과 운영이 탁월한 기업에 대해 보이는 저자세는 중국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이다. 한국 축구를 이기기 위해 한국 선수들이 두유 먹는 것을 보고, 매끼 두부와 콩 요리를 제공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지금도 “공한증(恐韓症)은 중국 축구인들의 숙제”라고 중국공산주의청년단의 간부가 한 말은 잊을 수가 없다. “강한 자에게 약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중국 고전의 가르침에서 배운 전략이지, 중국인들의 기질은 아니다”는 베이징대의 교수의 발언을 생각해본다.
 
 
  강하고 단호한 태도 필요
 
  전국(戰國)시대 오늘날 산둥성의 귀곡(鬼谷)이라는 곳에 한 현인(賢人)이 살고 있었다. 세상에서는 그를 귀곡자(鬼谷子)라고 불렀다. 그는 손빈(孫臏), 오기(吳起) 같은 병법가(兵法家)를 길러낸 전략전술가이기도 하고, 소진(蘇秦), 장의(張儀) 같은 외교전략가(縱橫家·종횡가)들을 키워낸 사람이다. 그가 제자들에게 준 중요한 지침은 다음과 같다.
 
  “강한 두 사람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지체 없이 약한 자를 버릴 줄 알아야 한다.”
 
  “강한 사람을 능히 넘어서기까지 그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감추어야 하며, 자신에게 강하게 덤벼드는 사람과 약하게 동조하는 사람이 있다면 강하게 덤벼드는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중국 당교의 교양강좌를 거친 사람이면 모두 학습하게 되는 고전의 내용이다. 중국 정부가 거의 주적(主敵)으로 규정하고 비난을 멈추지 않는 대상이 일본이지만 정당의 간사장을 국빈으로 예우하는 것이 중국이며, ‘만절필동’의 휘호를 들고 다니며 중국과의 우호적 태도를 견지하는 국가 서열 2위의 대한민국 국회의장을 홀대하는 것이 중국이다.
 
  다음과 같은 현실적인 중국인들이 하는 조언은 흘려들을 문제가 아니다.
 
  “중국인들의 한국인에 대한 반감을걱정할 필요가 있는가? 중국의 주요 도시에서 방탄소년단이 공연을 한다면… 무지개를 좇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긍정적인 전략일 것이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현 상황은 장기전(長期戰)이 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단기간에 끝날 가능성도 있다. 또 장기화된다고 해도 우려하는 것과는 달리 한국의 피해가 크지 않을 수 있다.
 
  다만, 미국에 대해서든 중국에 대해서든 애매하고 유약한 태도는 안 된다. 반대할 때 하더라도, 강한 모습, 단호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한국 기업에 대한 협박에 대해 그것이 미국이든 중국이든 정부는 원칙을 표명해야 한다. 그리고 양쪽 모두를 선택할 수 없다면, 귀곡자의 말처럼 약한 쪽을 버리는 확고한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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