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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황장엽 암살 작전 전말

청량리파 조직폭력배, 베트남 살인청부업자 황장엽 전 비서 목숨 노렸다!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woosu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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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정찰총국과 함께 필로폰 불법제조한 국내 마약 사범 김씨, 황장엽 암살 작전 가담
⊙ 10여 차례 중국 오가며 북 공작원과 암살계획 논의
⊙ “100만 달러 주면, 베트남 살인청부업자 불러 황장엽 죽이겠다”
    (김씨가 섭외한 육군 부사관 출신 박씨)
⊙ 북 정찰총국 5국, 섭외한 청부업자 실력 알아보기 위해 강철환 대표 먼저 암살하라고 지시
  김정은 정권을 가장 뼈아프게 흔드는 것은 그 치부를 잘 아는 사람들의 저항이다. 이런 점에서 목숨 걸고 대한민국으로 망명, “통일된 대한민국 만세”라고 외치는 태영호 공사는 북한의 제거대상 1순위다.
 
  태 공사는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이 한 몸 통일에 바친 몸인데 제가 김정은의 테러에 죽는다면 그것이 되레 통일에 기폭제가 되고, 더 많은 동료에게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상식적인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태 공사가 북한 테러의 희생양이 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는다. 정부가 태 공사와 그의 가족을 철저한 경호 속에 비밀 안가에서 생활하게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안심할 수만은 없다. 상황이 바뀔 수도 있는 탓이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경우, 대북 유화정책을 내세운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불청객 취급을 받았다. 김대중 정부는 황 전 비서의 북한 비판 행보에 불만을 나타냈고, 노무현 정부는 황 전 비서관 일행을 국정원 안가에서 내쫓았다. 이 점을 노려 김정일은 죽기 직전까지 황 전 비서를 살해하고자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정부의 냉대 속에 살해 위협에 시달려 온 황 전 비서는 2010년 10월 자신의 집 욕조에서 쓸쓸히 숨졌다.
 
  《월간조선》은 북한이 황 전 비서 사망 직전 계획한 ‘황장엽 암살작전’을 취재했다. 차기 대선 이후 태 공사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대우’가 바뀔 경우 북한이 비슷한 패턴으로 위협을 가할 수 있어서다.
 
 
  한국 마약 사범과 북한 공작원의 만남
 
국내 마약 사범 김씨는 1996년 북한의 필로폰 불법 제조를 도우며 공작원 장씨와 연을 맺었다.
  필로폰은 제조자 방모씨, 화학약품 판매자 김모씨, 화학약품 업체 종사자 황모씨를 연결하는 ‘고리’였다. 한국인 세 명이 북한 공작조직(사회문화부·작전부)과 처음 접촉한 것은 1996년이었다. 필로폰으로 ‘외화벌이’를 하려는 북한 측 부탁을 받은 브로커 이모씨(2004년 사망)가 마약 사범 전과가 있는 이들을 북한 공작원 장씨 등에게 연결한 것이다. 세 사람은 필로폰 제조에 필요한 시설과 기술을, 북한은 장소를 제공해 필로폰 1t을 만들고서 절반씩 나누기로 했다. 한국 마약 사범과 북한 공작조직의 ‘협업’이 시작됐다.
 
  이들은 1997년 11월 국내와 중국에서 필로폰 제조에 필요한 반응로, 감속기, 비닐포장 기계 등을 샀다. 장비들은 ‘중국 단둥-신의주’ 간 국제화물열차와 ‘부산-나진항’ 간 화물선을 통해 황해북도에 있는 사리원 연락소에 보내졌다. 사리원 연락소는 남파공작원 파견기지다. 북한은 공작원 남파기지로 2개의 육상연락소(개성·사리원)와 4개의 해상연락소(청진·원산·남포·해주)를 두고 있다.
 
  사들인 필로폰 제조장비를 먼저 보낸 이들은 1998년 12월 초순경 중국과 압록강을 통해 북한으로 몰래 들어갔다. 북한에는 필로폰 제조의 주원료인 염산에페드린이 없었다. 김씨는 북한에 남고, 방·황씨는 1999년 1월 염산에페드린을 구하기 위해 다시 중국으로 나왔다.
 
  방씨와 황씨가 중국에서 염산에페드린을 구하기까지는 1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겨우 염산에페드린 100kg을 구한 방씨와 황씨는 2000년 5월 작전부 소속 전투원들의 ‘경호’를 받으며 고무보트를 타고 안전하게 압록강을 건넜다. 방씨와 황씨는 사리원 연락소에서 1년 넘게 자신들을 기다린 김씨와 함께 2000년 6월부터 본격적으로 필로폰을 만들었다. 이 시기 김대중 정부는 북한과 1차 남북 정상회담(2000년 6월 13~15일)을 가졌다.
 
  필로폰 제조 한 달 뒤인 2000년 7월 이들은 황해북도 사리원에서 필로폰 70kg을 만들어 냈다. 이는 230만여 명이 한 번에 투약할 수 있는 막대한 양이었다.
 
  당초 북측과의 약속대로 필로폰 완제품 절반(35kg)을 챙긴 이들은 북한군의 호위까지 받으며 고무보트를 타고 압록강을 넘어 중국으로 나왔다. 하지만 운반을 의뢰한 전달책이 중국 공안에 잡혀 필로폰을 팔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북한이 확보한 나머지 필로폰 35kg은 거래를 통해 현금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 당국 관계자는 “필로폰을 판 돈은 공작자금으로 사용됐다”고 했다.
 
 
  “황장엽 죽일 사람 구하라”
 
  땡전 한 푼 벌지 못한 이들은, 한국으로 돌아와 각자 택배기사·유통업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 갔다. 작전 실패 이후 방·황씨가 북한 공작원과 거리를 두었지만 김씨는 관계를 이어 왔다. 북한의 선전선동에 동요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김씨는 북한에 머무는 동안 김정일 체제 선전영화를 봤고, 평양 혁명열사릉 등을 견학했다. 그는 ‘장군님의 정치적 신임을 받았다. 조국(북한을 의미)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충성 맹세문을 작성해 제출하기도 했다.
 
  2009년 5월 초 택배기사 생활을 하고 있던 김씨는 필로폰 제조, 밀매 사업을 함께 진행한 바 있는 북한 공작원 장씨로부터 베이징으로 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김씨는 2009년 5월 22일 중국으로 출국, 베이징 왕징에 있는 공항버스 정류장 근처 민박집에서 장씨를 만났다. 장씨는 김씨에게 대한민국 전투기 대수, 도시가스저장소와 열병합발전소 위치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하며 1000달러를 건넸다.
 
  제의를 받아들인 김씨는 입국 후 서울 금천구, 성남시 분당구, 서울 양천구, 서울 노원구, 고양시 덕양구, 일산동구 등지에 있는 열병합발전소 위치 및 상호를 조사하고 장씨에게 제공했다. 김씨의 정보에 만족한 장씨는 2009년 10월 ‘최근 발행된 한국 지도책을 구해 오면 돈을 주겠다’고 했다. 김씨는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서울·경기 일원 지도책을 사 장씨에게 제공했다.
 
  2009년 9월 초 장씨는 “중요한 사업이 있다”며 김씨에게 또다시 중국으로 오라고 했다. 김씨는 9월 10일 베이징으로 출국, 약속장소에서 장씨를 만났다. 장씨는 김씨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했다.
 
  “북한이 황장엽을 잘 대해 줬는데 수십 명에 달하는 가족을 버리고 혼자 잘살겠다고 갔다. 나라도 버리고 가족도 버린 놈은 처단해야 하지 않겠느냐. 황장엽 암살에 성공하면 당신은 돈을 벌 수 있다. 꼭 죽이지 않더라도 병신을 만들어 걸어 다니지 못하게 하면 된다. 당신이 직접 암살할 수는 없으니, 죽일 수 있는 사람을 구해 보라.”
 
  돈이 궁했던 김씨는 장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한국에 들어가서 황장엽을 암살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겠다. 황장엽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등을 먼저 파악하고 추진해 나가겠다. 내가 아는 사람 중 방송국 근무자가 있는데 그를 통해 황장엽의 정보를 입수하겠다.”
 
  장씨는 김씨에게 활동비 등 명목으로 3000달러(약 340만원)를 줬다. 앞서 장씨가 김씨에게 지시한 열병합발전소 위치, 대한민국 최신 지도 입수 등은 김씨가 황장엽 암살 작전의 적임자인지를 알아보기 위한 테스트였던 셈이다.
 
  2009년 9월 13일 국내로 돌아온 김씨는 며칠 뒤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에게 상황설명을 하고 ‘킬러’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지인은 해외에서 활동하는 북파공작원 출신 살인청부업자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인이 소개해 주겠다고 한 ‘킬러’는 국내에 들어오지 않았다. 김씨는 공작원 장씨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장씨는 “다른 킬러를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김씨는 2009년 10월 평소 알고 지내던 유흥업소 영업부장 한모씨로부터 폭력조직 청량리파에서 활동했던 택배업체 일용직 근로자 이모씨를 소개받았다.
 
 
  “청량리파 조폭, 방송 출연 전 칼로 찔러 죽이겠다”
 
김씨는 2009년 9월부터 2010년 8월 사이 10회에 걸쳐 중국을 출입, 공작원 장씨와 만나 황장엽 암살 계획을 논의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이씨는 “황장엽이 몇 시, 어디에 있는지만 알려주면 바로 처단하겠다. 염려 마라. 선불금 없이 암살에 성공하면 미화 50만 달러를 달라”고 했다.
 
  김씨는 이씨의 요구대로 방송사에 다니는 지인이 소개해 준 육군 부사관 출신 자동차 서비스센터 회사원 박모씨를 통해 황 전 비서의 동선을 파악했다. 박씨는 ‘황장엽이 국정원 내 별도로 마련된 동에 거주하고 있으며 일주일에 한 번 자유북한방송에 출연한다’는 사실과 황 전 비서의 월간 활동내용 및 강연일정 등을 A4용지 1장으로 정리해 김씨에게 넘겼다. 김씨는 수고비 조로 박씨에게 100만원을 줬다.
 
  김씨는 박씨를 통해 파악한 황 전 비서의 동선을 청량리파 출신인 이씨에게 알려주면서 암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라고 했다. 이씨는 김씨에게 “2009년 11월 2일 조직폭력배를 동원, 황장엽이 방송에 출연할 때 죽이겠다. 황장엽이 차에서 내려 출입구로 들어올 때 미리 출입구 쪽에 대기하던 조직폭력배 1명이 경호원에게 말을 붙여 주의를 돌리면 칼잡이가 황장엽을 처단할 것이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암살에 성공하면 즉각 50만 달러를 지불하라”고 했다.
 
  김씨는 2009년 10월 23일 베이징으로 출국, 공작원 장씨를 만나 이씨와 세운 황장엽 암살 계획을 보고했다. 황 전 비서의 일정과 동선이 담긴 A4 용지 1장도 전달했다. 장씨는 “사례금(50만 달러)은 한국 사채업자와 거래하는 중국 사채업자를 통해 암살 즉시 집행하라”고 지시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김씨는 이씨 등 조직폭력배 일행 4명과 암살 작전 전날인 2009년 11월 1일 현장을 답사했다. 이때 문제가 발생했다. 조직폭력배들이 미화 50만 달러를 지금 보여주지 않으면 못하겠다고 한 것이다. 작전은 실패했고, 공작원 장씨는 김씨를 강하게 질책했다.
 
  “다른 암살 실행자를 물색하시오.”
 
 
  베트남 킬러로 계획 변경
 
김씨는 청량리파 조직폭력배, 베트남 살인청부업자를 섭외해 황장엽 전 비서를 암살하려 했다.
  김씨는 새로운 킬러를 찾으려 동분서주했지만 녹록지 않았다. 그는 2010년 3월 중순 무렵 황장엽의 동선을 파악해 준 박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황장엽을 암살해야 하는데.” (김씨)
 
  “돈만 주면 가능하다.” (박씨)
 
  “계획이 있나?” (김씨)
 
  “국내인은 CCTV에 노출돼 있어서 어렵다. 외국인을 이용해야 한다. 베트남 살인청부업자 4명을 위장 취업시켜 황장엽을 처단하게 하면 된다.” (박씨)
 
  “암살하는 데 시간은 얼마나 걸리나?” (김씨)
 
  “2~3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박씨)
 
  “돈은 얼마나 들 것 같나?” (김씨)
 
  “우선 필리핀 애들 위장 취업시켜야 하고, 대포 차량도 3~4대 사야 한다. 대포폰도 사야 하고. 선수금으로 미화 25만 달러, 중도금으로 미화 25만 달러, 성공 시 잔금으로 미화 50만 달러. 총 100만 달러면 될 것 같다.” (박씨)
 
  김씨는 2010년 3월 진행상황을 공작원 장씨에게 알리기 위해 또 다시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김씨는 약속장소인 베이징 소재 한 식당에서 만난 장씨와 정찰총국 5국 부국장에게 박씨가 내세운 조건을 보고했다. 정찰총국 5국의 주임무는 대남·해외정보 수집이다. 장씨는 “요구하는 액수가 너무 크다”며 “선수금(25만 달러)을 없애는 방향으로 교섭하라”고 명령했다. 정찰총국 5국 부국장은 “황장엽 암살이 성공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김씨는 지시대로 박씨에게 “선수금을 없애자”고 제안했다. 박씨는 “대포차·대포폰 구입비용, 베트남 살인청부업자 고용비용을 합치면 100만 달러 정도가 필요하다. 선수금을 없앨 수 없다”고 반발했다. 김씨는 “선불금이 꼭 필요하다면 10만~15만 달러만 받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박씨는 물러서지 않았다.
 
  김씨는 2010년 7월 전화로 장씨에게 “박씨가 선수금 감액, 일정단축은 어렵다고 한다”고 알렸다. 장씨는 “박씨가 사업(황장엽 암살)을 추진할 능력이나 의지가 있는지 검증이 필요하니, 우선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 중 한 명을 암살해 보라고 지시하라”고 했다.
 
  김씨로부터 공작원의 지시를 전해 들은 박씨는 “세 사람 중 강철환 대표가 가장 쉬운 사람이다. 이 사람에 대한 자료를 뽑으려면 1만 달러가 필요하다. 미리 주면 추진하겠다”고 했다. 김씨는 공작원으로부터 585만원을 송금받아, 박씨에게 지급했다. 2010년 8월 박씨는 “강 대표의 근무지 위치와, 출근시간을 파악했다”며 “돈만(100만달러) 주면 암살하겠다”고 했다.
 
  김씨는 공작원 장씨에게 “박씨가 강 대표의 근무지와 출근시간을 파악했다. 확인해 보니 정확한 정보였다. 황장엽 암살 작전을 추진할 능력이나 의지는 확실한 것 같다”고 보고했다. 장씨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격이 너무 비싸다. 조정을 해 보라”고 했다. 김씨가 박씨와 금액을 두고 지루한 협상을 이어 가던 중 황 전 비서는 노환으로 사망했다. 암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순간이었다. 김씨는 공작원에게 황장엽 암살 지시를 받은 2009년 9월부터 2010년 8월 사이 10회에 걸쳐 중국을 출입했다. 공작금도 5000만원가량을 받았다.
 
 
  공작원 장씨 2015년 귀순
 
2010년 10월 황 전 비서가 노환으로 사망하면서 암살 작전은 수포로 돌아갔다. 당시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황 전 비서의 빈소.
  황 전 비서 암살 작전에 관련된 인물들은 모두 처벌을 받았다. 마약사범 김씨는 2016년 5월 25일 징역 9년이 확정됐다. 50만 달러를 주면 조직폭력배를 동원, 황 전 비서를 칼로 찔러 죽이겠다는 계획을 세운 이씨는 2016년 초 징역 1년6개월을 받았다.
 
  재판부는 황 전 비서라는 살해 대상과 장소, 날짜가 특정된 만큼 실행 착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예비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100만 달러를 지급하면 베트남 살인청부업자를 통해 황 전 비서를 암살하겠다고 약속하고 김씨로부터 2500만원을 챙긴 박씨는 2015년 11월 징역 3년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8부는 박씨가 제공한 동선 정보 등이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 등에 실질적 위해가 될 수 있어 예비음모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김씨에게 ‘황장엽 암살’을 지시한 북한 공작원 장씨는 2015년 초 공안당국에 자수했다. 복수의 법조계 소식통은 “장씨가 2015년 초 귀순 의사를 밝혀 당국이 이를 수용했다”고 했다.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북한의 명문대학교인 김책공업대학교를 졸업한 장씨는 장성택과의 후견 관계를 인정받아 요직에서 근무해 왔다고 한다. 장씨는 국정원 조사 과정에서 “나는 ‘장성택 라인’”이라면서 “동반 숙청될 수 있어 신변의 위협을 느껴 귀순을 선택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김정은은 2014년 12월 고모부인 장성택을 처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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