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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사 수사 비화 - 간첩작전·방산비리 수사관들의 증언

글 : 이정현  월간조선 기자  johh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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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난수 방송으로 조직재건 노리는 듯
⊙ 10년 이상 투자해야 결실을 보는 간첩사건
⊙ 군 장교의 불확실한 미래가 기밀누출의 배경
⊙ 꼬리가 길면 반드시 잡히는 간첩
⊙ 사진과 발굴 비화로 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기무사’
  “459페이지 35번 …”
 
  북한 평양방송은 7월 29일 0시 45분(한국시각 오전 1시 15분)부터 12분간 “지금부터 27호 탐사대원을 위한 원격교육대학 수학 복습 과제를 알려 드리겠다”며 ‘459페이지 35번’, ‘913페이지 55번’ 등 5자리 숫자를 방송했다. 처음이 아니다. 남파 공작원 지령용 난수(亂數) 방송은 보름 전인 7월 15일에도 방송됐다.
 
  평양방송의 난수방송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중단된 뒤 16년 만에 시작됐다. 난수방송은 남파간첩에게 대남지령을 보내는 것이 목적이다. 갑작스런 난수방송의 배경을 놓고 의문이 계속되고 있다. 7월 말 만난 전직 국군기무사령부(이하 기무사) 수사관 A씨는 최근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평생 대간첩 업무를 수행하다가 전역한 A씨는 “20년 가까이 아무런 연락이 없다가 ‘동지들! 건투를 빕니다’라고 한마디 연락해도, 상당히 고무적이다”며 “조직을 재건하는 동시에, 우리측을 협박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분석했다.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조짐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간첩이 외부의 적이라면, 양파껍질처럼 끝없이 계속되는 방산비리는 내부의 적이다. 20년 넘게 방산과 관련한 수사에 집중했던 기무사 B수사관은 “사관학교 출신 엘리트 장교들이 얼마 되지 않은 향응을 받거나, 선배를 잘못 만나 추락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너무나 안타까웠다”며 수사 기간의 소회를 밝혔다.
 
  기자는 올해 초부터 기무사에서 대간첩작전, 방산비리 등을 파헤쳤던 핵심 수사관들과 접촉을 시도했다. 취재 과정에서 기무사 수사관들은 언론에 ‘간첩, 방산비리 수사기법’이 노출될 경우에 생길 부작용을 걱정했다. 이들을 설득해 ▲무분별한 수사기법 공개는 삼가고 ▲기무사 본연의 역할을 설명하며 ▲향후 바람직한 군 수사기관의 역할을 제시한다는 취지에 공감한 복수의 전직 수사관들이 취재에 협조했다. 이렇게 보도를 준비하던 중에 어이없는 보안사고가 발생했다.
 
■ 국군기무사령부
 
기무사 부대 상징.
  기무사는 군(軍) 내 유일의 정보수사기관으로서 1948년 5월 해방 직후 군내 대공(對共) 전담기구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조선경비대 정보처 특별조사과’로 출발했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 육군 특무부대(1950.10.21.), 해군 방첩대(1953.1.15.), 공군특별수사대(1955.3.15.)로 각각 창설되어 각 군을 지원해 오다가 1977년 국군보안사령부로 통합하였고 1991년 지금의 국군기무사령부로 개칭되었다.
 
  기무사는 ▲군사보안 및 방첩 ▲군 및 군 관련 첩보수집, 처리 ▲형법상 내란·외환의 죄, 국가보안법 등 특정범죄 수사 ▲방위사업 관련 군사보안업무 지원 등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군내 신원조사 ▲전군 보안기강 확립 ▲방산업체 보안지원 ▲군사기밀 유출자 색출 ▲군내 대테러 예방 등을 중점 업무로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본부 인원 40% 감축, 현장활동 인력 확충 ▲외부인사를 참여시킨 특별직무감찰팀 편성 ▲비리연루·자질부족 부대원 퇴출 ▲개방형 직위 확대 및 민간 전문인력 특채 등을 도입해 조직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정치권의 무분별한 폭로에 보도 결정
 
  7월 1일 국회가 고정간첩들에게 “당신들은 수사 중”이라고 알려주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당일 국회 정보위원회는 국군기무사령부·국가정보원·국방정보본부 등으로부터 20대 국회 첫 업무보고를 받았다. 보고 직후 여당 간사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의 폭탄발언이 나왔다.
 
  이 의원은 “군 장병 포섭을 기도하는 간첩 용의자 4명을 수사 중으로 기무사발(發)이다”며 “(수사 대상은) 다 민간인”이라고 말했다. 발언 즉시 ‘기무사, 간첩 용의자 4명 수사 중’이라는 속보가 쏟아졌다. 국회가 간첩에게 숨으라고 수사사실을 알리는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이렇듯 수사 비밀이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정치권의 세태에 경종(警鐘)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보도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그간의 취재내용을 공개하게 됐다.
 
 
  간첩작전은 시간과의 싸움
 
  “10년은 긴 것도 아니에요.”
 
  전직 기무사 수사관 A씨는 간첩수사는 ‘시간’과의 싸움임을 강조했다. 예를 들면 이러했다.
 
  — 수사기간이 10년이 넘는 경우도 있나요.
 
  “북에서 넘어온 경우 자수하는 사람도 종종 있었어요. 우리에게 협조하겠다는 것이죠. 그럼 북한과의 통신연락 체계를 유지하라고 해요. 북한과 우리측의 머리싸움이 시작되는 것이죠. 요즈음 법원은 엄격한 증거를 원해요. 증거확보가 어렵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기 마련입니다.”
 
  — 그냥 감시만 하나요.
 
  “직파 간첩의 경우 언젠가는 북에서 데리러 올 수밖에 없는 것이죠. 배를 태워 국내에 침투시키면 다시 배를 보내야 하는 것이죠. (우리측이 미리 정보를 알기 때문에) 그러다가 보낸 배가 우리 해군에 격침되는 것이죠. 북한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자신들이 보낸 간첩이 변절했다고 생각하지 않겠어요? 그럴 경우 북에서 지켜보겠죠. 우리 역시 마찬가지예요. 지켜보는 것이죠. 20년 이상 지켜본 경우도 있어요.”
 
  — 10여 년 감시를 받는데, 눈치채지 못하나요.
 
  “미행, 감시, 잠복은 수사의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에요. 이를 사찰이라고 하면 안 되는 것이죠. 수년 동안 공들이면서 하는 거예요. 그만큼 어렵습니다.”
 
■ 박정희 전 대통령과 기무사
 
  전직 기무사 수사관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된 여러 일화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관련 사진을 보관하고 있는 전직 부대원으로부터 사진을 넘겨받았다. 최초 공개되는 역사적 사실은 이러하다.
 
1973년 1월 대통령 부대 표창을 17대 강창성 사령관이 수상했다.

박정희 대통령 표창장.
  “‘선글라스’ 벗으세요”
 
  1961년 8월 당시 기무사의 전신인 방첩부대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각종 행사나 민정시찰 시 항상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다녀 권위주의적이며 위협적인 인상으로 비칠 뿐만 아니라 군사문화적인 분위기마저 풍기고 있어 국민들에게는 물론 외국인들에게까지도 거부감을 유발시킨다는 내용을 최고회의에 보고했다.
 
  박 의장은 처음에는 화를 내며 묵살했으나 당시 비서실장(이동원)에게 지시해 외교 채널 등을 통해 조사한 결과 보고내용이 사실임을 확인하고 보고서를 작성한 방첩부대 작성자를 격려하고 이후부터는 가급적 선글라스를 착용하지 않았다.
 
1977년 8월 군수산업 보안업무를 전담하는 군수산업 보안부대를 시찰하는 박정희 대통령.
  사육신 묘역 정화사업
 
  1972년 4월 당시 역시 기무사의 전신인 보안부대는 충절의 표상으로 널리 인식되는 동작구 노량진의 사육신 묘소가 관리자 없이 방치된 채 가축 분뇨나 쓰레기로 덮여 있어 시민들이 안타깝게 여기는 것을 알고, 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청와대는 서울시에 지시해 1972년 5월 사육신 묘역을 지방문화재로 지정했다.
 
1972년 11월 소격아파트 준공.
  김재규와 박정희 대통령
 
  1979년 10월 26일 궁정동 안가(安家)에서 박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중정부장과 관련한 내용도 있다. 1972년 11월 당시 김재규 사령관은 열악한 부대원들의 거주 환경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보고 직후 대통령의 하사금으로 서울 종로구 소격동 소재 영내에 2개동 50세대 소격아파트(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자리)를 건립했다. 기무사가 2008년 11월 과천시로 이전하면서 아파트는 헐렸다.
 
  정보 유출자 색출은 기무사의 임무
 
  A수사관은 1993년 7월 당시 후지TV 서울지국장이었던 일본 외신기자 시노하라 마사토 군사기밀 유출사건을 예로 들었다. 당시 시노하라는 현역 K 해군 소령에게 접근해 ‘독도 출격 대비태세 현황’ 등 국가기밀을 빼내 주한 일본무관에게 건넸다. 사건 수사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A수사관은 기무사 수사과정을 설명했다.
 
  — 첩보는 어떻게 수집하게 되었나요.
 
  “해외첩보를 통해 시작됐죠. 일본 군사평론지에 상당한 군사기밀이 실려 있었어요. 기고자는 시노하라였어요. 기밀 내용이 상당히 센 것이어서 광범위하게 내사를 하게 됐죠.”
 
  — 수사는 어떻게 진행되나요.
 
  “기본적으로 통신수사를 하죠. 당시는 통신비밀보호법이 제정되기 전이었어요. 내사기간이 2년이 넘었어요. 상대방이 외신기자여서 충분한 증거수집이 필수였죠. 미행도 하면서 누구를 만나는지를 확인해야죠. 시노하라를 처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군내 유출자를 찾는 것이 기무사의 가장 중요한 임무죠.”
 
  — 유출자로 국방부 K소령을 지목하게 된 배경은요?
 
  “시노하라가 국방부 정보본부에 들르곤 했어요. (K소령이) 사단배치 현황 등의 문건을 그려 줬죠. 처음에 시노하라 수사는 불구속으로 진행했어요. 그러다 일본 국방무관에게 자료를 건넨 것이 확인되어 구속했습니다. 기자윤리에도 어긋나는 일 아닙니까. K소령이 건넸다는 문건과 시노하라가 받았다는 문건이 일치했어요. 양쪽의 진술이 일치하면 처벌이 가능하죠.”
 
  — 일본 무관은 처벌받지 않았나요.
 
  “사실 그 부분이 명확하지 않아요. 사건이 터지자 해당 무관을 본국에서 소환했어요. 제가 생각해도 시노하라가 자발적으로 정보를 가져다 주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K소령 역시 일본 무관이 정보를 요구했을 것으로 추측했어요. 혐의를 입증하려면 해당 무관을 조사해야 하는데 일본으로 가 버렸으니 조사를 못한 것이죠. 처벌할 수 없으니, 수사의 실익도 없어 그 부분은 규명되지 않았죠.”
 
  — 순순히 자백하나요.
 
  “거짓말탐지기를 이용했어요. 증거가 분명했기 때문에 부인하지 못했어요. 꾸준히 설득하자 혐의를 인정했어요. 부대가 70년 넘게 수사를 해 오면서 노하우가 많이 쌓였어요.”
 
 
  군 장교의 불확실한 미래
 
기무사 상징 조형물.
  A 수사관의 증언을 듣는 과정에서 군사기밀이 유출되는 배경에는 군 장교들의 불확실한 장래가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K소령이 외신기자에게 군사정보를 제공한 이유는 시노하라가 K소령이 진급할 수 있도록 윗선에 이야기하는 등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
 
  장교는 계급정년으로 인해, 50대 이른 나이에 군에서 나와야 하는 경우가 많다. 평생 군에서 생활하다가 사회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다. 불확실한 미래가 군사기밀 유출의 중요한 배경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2014년 6월 방위력 개선사업 군사비밀 유출사건을 수사했던 B수사관도 비슷한 진단을 내놓았다.
 
  2014년 6월 방위력 개선사업 비밀 31건이 통째로 방산업체로 넘어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기무사와 검찰은 ‘전대미문의 대규모 군사기밀 누설’이라며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파방해를 무력화시키는 ‘항재밍(Anti-jamming)’ 시스템이나 유도탄 성능기준 등 방위력 개선 관련 2·3급 비밀 31건이 무더기로 유출된 사건이었다.
 
  수사관 B씨는 “군인은 일반 공무원에 비해 퇴직이 빠르다”며 “국내 방산업체에 취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선배가 정보를 요청하면 거절하기가 힘들다”며 수사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B씨는 “유출된 문건 가운데는 적의 ○○을 감시하는 ○○ 문건도 포함되어 있었다”면서 “북한이 내용을 알면 ○○을 피해 다닐 텐데 민감한 정보가 많이 유출됐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 군 정보를 유출시킨 김○○의 범행동기는 무엇인가요.
 
  “단기사병 출신이었죠. 언변이 정말 뛰어났어요. 영어학원을 운영했었죠. 통번역을 하다가 해외 방산업체 컨설턴트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방산업체가 알고 싶어하는 내용만 간단히 정리해서 보내도 됐는데 김○○은 비밀을 통째로 번역해 보냈어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싶었던 거예요. 김○○의 이메일은 007로 끝나요. 보고서 메일을 카페에서 보내는 등 자신이 제임스 본드라고 착각하는 듯했어요.”
 
  — 박○○ 중령이 군사비밀을 넘겨준 이유는 무엇인가요.
 
  “언론에 방산비리가 많이 보도되는데, (장교들의 경우) 계급정년으로 힘들지 않습니까. 현역들이 많은 돈을 받은 것도 아니에요. 군인들은 연금의 반이 날아가는 등 이중처벌을 받게 돼요. 사관학교 나오고 능력도 있는데 미래가 불확실하니까 취업보장 등의 미끼에 걸려드는 경우가 많아요. 해당 사건의 경우는 여직원과 등산을 함께 하게 하는 등 향응이 크게 작용했어요.”
 
  — 성접대는 없었어요?
 
  “‘꽃을 보냈다’는 문자가 오고갔어요. 꽃을 보낼 정도면 성접대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서 집중적으로 수사했어요. 나중에 확인해 보니, 휴대폰 이모티콘 꽃이었어요. 군인을 상대로 한 성접대는 없었다고 결론 났습니다. 다만 술자리에 방산업체 여직원이 야한 옷차림으로 동석했고 이러한 분위기에 순진한 현역군인들이 넘어간 것은 사실입니다.”
 
 
  방산업체의 이중적 태도
 
  — 컨설턴트는 어떤 일을 하나요.
 
  “방산업체 입장에서는 한국군이 어떤 스펙의 무기를 원하는지를 빨리 알아야 해요. 자신들의 무기가 대상이 아니라면 로비를 해서 바꿔야 하니까요. 군 관련 정보를 계약 맺은 해외업체에 보고서 형식으로 넘기는 일을 하는 이들이 컨설턴트입니다. 컨설턴트 계약을 맺을 때 ‘군 비밀 정보를 넘기면 계약을 취소한다’는 문구가 있어요.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은 것이죠. 하지만 그럴 거면 왜 고용하겠어요? 컨설턴트는 여러 인맥을 동원해 군의 정보를 넘기죠.”
 
  — 첩보는 어떻게 입수하게 되었나요.
 
  “처음 소문에서 시작했어요. 일란성 쌍둥이 형제가 신분증을 바꿔 가며 활동한다는 이야기였죠. 처음에는 그럴 수 있겠냐고 의심했죠. 2011년 이러한 첩보를 입수해 2년가량 내사를 진행했어요.”
 
  — 수사결과 발표 당시에는 2013년부터 내사를 시작했다고 되어 있는데요.
 
  “처음 첩보를 입수한 것이 2011년 8월입니다. 해외업체와 컨설팅 계약을 맺은 김○○이 형의 신분증을 가지고 다니면서 활동했어요. 해외에 나갈 때도 형 여권을 사용했어요. 미국은 ○○을 사용해서 어려우니까, 일단 다른 나라를 거쳐서 들어갔어요. 첩보를 바탕으로 통신기록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죠.”
 
  — 쌍둥이 형제가 서로 신분을 바꾼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은 세금을 피하려 했어요. 형 김○○은 ○○대사관에서 운전기사로 일했는데,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되었어요. 이러한 이유에서 서로의 신분을 바꾼 것이죠.”
 
  군사기밀 유출은 국가안보에 치명적이다. 과거 군사기밀 수사에서 기무사는 ‘군사기밀 유출’만을 수사할 수 있었고 유출과정에서의 ‘금품수수’ 혐의는 수사할 수 없었다. 2014년 3월 군사기밀보호법이 개정돼, 기무사는 군사기밀 유출자뿐만 아니라 군사기밀 불법거래 및 공여자에 대한 수사와 처벌이 가능해졌다.
 
 
  인터넷 시대에 간첩은 없다?
 
기무사 전경. 인터넷 홈페이지 캡처.
  인터넷을 통해 온갖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요즈음 같은 시대에 과연 ‘북한이 간첩을 보낼까’라고 의심하는 사람이 많다. 30년 가까이 대간첩작전 현장에 있었던 수사관 C씨는 “정보수사기관은 1%의 의심만 있어도 대비해야 하는 것이 옳다”며 “예방을 하는 것이 기무사의 임무다”라고 말했다.
 
  — 기무사는 군 관련 수사만 하는데, 그렇다면 군과 관련이 없는 간첩은 수사를 못하나요.
 
  “간첩은 100% 군사기밀 탐지수집의 지령을 받아요. 기본임무죠. 정치·문화·사회 곳곳에 퍼져 있지만 유사시를 대비해 군사기밀을 모으는 것이죠. 순수 민간 간첩은 별로 없어요.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국정원, 검찰, 경찰과 공조도 많이 해요.”
 
  —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나요.
 
  “1995년 7월 출판사에서 일하던 김○○이 일본을 왕래하다가 재일 조총련 공작원에게 포섭되어 노동당에 입당한 사건이 있었죠.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국내에 밀반입해 ‘참된 봄을 부르며’라는 이름으로 복제한 이후에 전국 서점에 뿌렸어요. 군부 침투 지령도 있었는데 현역 공군소령에게 접근했어요.”
 
  — 수사는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당시 군내 내무반에서 김일성 회고록이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간첩사건이 드러난 것이죠.”
 
 
  공개되는 간첩사건은 ‘빙산의 일각’
 
  — ‘요즈음 세상에 간첩이 어디 있냐’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간첩의 임무라는 것이 상당히 포괄적이죠. 유사시 혁명적 상황을 대비해 잠복하는 경우도 있어요. 제도권에서 그냥 있는 것이죠. 물론 옛날처럼 무전기, 난수표, 권총을 가지고 잠입하는 간첩은 없죠. 그것이 증거가 되니까요.”
 
  — 공개된 간첩사건의 경우 북에 보냈다는 자료가 신문 등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많습니다. 이런 경우도 간첩죄가 되나요.
 
  “북의 지령을 받고 움직인 것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이죠. 수사관 입장에서 이야기한다면 별거 아닌 정보라도 북한에서 모자이크 맞추듯 조합하면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는 것이죠.”
 
  — 간첩을 잡으면 모두 언론 등에 공개하나요.
 
  “언론에 공개되는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죠. 사실 보도하지 않는 것이 옳죠. 간첩을 잡으면 이를 비밀로 해야 상부선에 접근하는 다른 간첩도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검거하고 20년 넘게 지켜본 경우도 있어요.”
 
  — 간첩을 잡으면 승진하거나 보상이 있나요.
 
  “군인정신으로 하는 거예요. 경찰은 사건을 해결하면 특진하잖아요. 저희는 그런 게 없어요.”
 
  — 남북한 정보기관 이야기를 다룬 영화 〈베를린〉을 보신 적이 있나요.
 
  “(웃으며) 그런 거 안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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