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최초공개

초대 러시아 해군무관 윤종구 제독의 한·러 군사교류 비망록〈2〉

“소련 붕괴 직후 북한, 골프급 중고 잠수함 도입해 SLBM 발사에 활용”

글 : 오동룡  월간조선 기자  gomsi@chosun.com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중국, 소련 항모 바랴크 헐값 구입해 랴오닝으로 개조
⊙ 1997년 11월 ‘한-러 정부 간 군사기술·방산·군수협력협정’ 체결
⊙ 러시아 무기, 투박하지만 견고성과 야전성 우수해도 편리함이나 쾌적성은 없어
러시아의 SU-27 전투기가 ‘러시아 무기 엑스포(Russia Arms Expo 2013)’에서 기동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
  1995년 5월 23일, 김홍래(金鴻來·공사 10기·예비역 대장) 공군참모총장이 이억수(李億秀·공사 14기·예비역 대장) 공군본부 인사참모부장(소장)과 함께 모스크바 근교 쿠빈카 공군기지에 나타났다. 두 사람은 러시아 파일럿 복장이었고 비행을 위한 신체검사를 마친 직후였다. 김홍래 총장은 수호이(SU)-27 전투기, 이억수 부장은 미그(MIG)-29기에 탑승했다.
 
  6·25전쟁 배후지원, KAL 007기 격추사건 같은 앙금이 남아 있는 적대국 러시아의 최신예 전투기에 한국 공군 수뇌부가 탑승한다는 자체가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이들을 수행한 윤종구(尹鍾九·69) 당시 해군무관(해사 24기·예비역 준장)은 “당초 비행 참관이었으나 러시아 측은 실제 탑승・비행까지 허락하여 모두가 깜짝 놀랐다.
 
  러시아측은 한국이 2002년 기종을 결정하는 40대(5조8000억원) 규모의 차기전투기(F-X) 사업을 추진하자 한국 공군 수뇌부에 파격적인 비행기회까지 준 것이다. F-X 1차 사업에서 한국 정부는 최종적으로 미국 보잉사의 F-15K를 결정했지만 당시 보잉의 F-15K를 비롯해 프랑스 다소사의 라팔, 유럽 4개국 컨소시엄의 유로파이터, 러시아의 SU-35가 치열한 각축전을 펼쳤다.
 
  SU-27은 기동성이 매우 뛰어나다. 코브라 기동은 초음속으로 날다가 순식간에 초저속으로 몸체를 세워 비행하기 때문에 피격 확률이 낮다. 김홍래 총장이 탄 SU-27이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가 나타나 급제동하며 기수를 쳐들고 ‘코브라 기동’을 선보이자 지상에서 이 모습을 바라보던 부인 김규영(작고)씨는 발을 동동 굴렀다.
 
  20분간의 비행을 마친 김홍래 총장과 이억수 부장에게 《이타르타스통신》, 러시아군 기관지 《레드스타(赤星)》 등 러시아 언론들이 몰려들었다. 윤 제독은 “한국 공군 총장이 항공기 성능이 좋다고 기자들 앞에서 언급하면 ‘SU-35가 유력하다’고 보도할 것 같았다”며 “총장께 ‘좋은 경험이었다’고 짧게 답변하시라고 조언드렸다”고 했다. 다행히도 러시아 언론은 김 총장의 비행 기사를 크게 다루지 않았다.
 
 
  ‘불곰사업’의 시작
 
대러시아 차관 상환용으로 1996년 9월 19일 서울공항에 도착한 러시아 최신예 기계화 보병용 전투장갑차 BMP-3를 군 관계자들이 살펴보고 있다. 사진=조선일보
  불곰사업은 한국이 구 소련에 빌려준 경협차관을 상환받기 위해 러시아에 빌려준 차관의 일부를 러시아산 방산물자 등으로 돌려받는 사업이다. 1990년 9월 한국과 소련은 수교를 했다. 당시 외화부족에 시달리던 소련은 한국 정부에 30억 달러의 경협차관을 요청했고 노태우(盧泰愚) 정부는 1991년부터 3년간 소련에 14억7000만 달러(현금 10억 달러, 소비재 차관 4억7000만 달러)를 빌려줬다.
 
  소련이 붕괴하자 채무를 승계한 러시아는 빚을 갚을 능력이 없었고 1999년까지 돌려주기로 한 차관상환은 가망성이 없어 보였다. 윤종구 제독은 “1993년 8월 러시아는 한국에 현금 대신 러시아가 보유한 군사장비 등 현물상환 방식의 차관상환을 제안했고 한국은 이를 수락했다”고 했다.
 
  1995년 김영삼(金泳三) 대통령과 러시아 옐친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통해 1차 불곰사업을 시작했다. 김병관(金秉寬) 대령(당시 합참 무기체계기획과장) 등 국방부 군수국과 합참이 주동이 돼 러시아를 들락거렸다. 1995년부터 1998년까지 1차 불곰사업으로 총 4종의 군사장비를 도입했다. T-80U 전차, BMP-3 장갑차, 메티스(METIS)-M 대전차유도탄, 이글라(IGLA) 휴대용 지대공미사일 등 4개 군사장비가 1995년 7월부터 한국에 들어왔고 러시아는 1차 불곰사업을 통해 2억1000만 달러를 상환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남은 차관 상환을 위한 협정을 체결하고 2003년부터 2006년까지 2차 불곰사업을 추진했다. T-80UK 지휘용 전차, BMP-3 장갑차, METIS-M 대전차유도탄, 무레나(Murena) 공기부양정, 일류신 IL-103 훈련기, Ka-32 탐색구조헬기 등 도합 6종이 이때 들어왔다. 특히 산림청이 민수용으로 도입한 Ka-32 카모프 헬기가 속초 낙산사 화재진압에 큰 활약을 보였다.
 
  2차 불곰사업을 통해 러시아는 5억3400만 달러를 상환했다. 이 중 2억6000만 달러는 러시아 경협차관으로 상환을 받고 나머지 금액은 한국이 현금을 냈다. 2013년 11월 푸틴 대통령이 방한해 차관상환 문제를 논의하면서 불곰사업 3차 협상을 추진했으나 차관 전액을 방산물자로 제공하려는 러시아와 절반을 현금으로 받으려는 한국의 이견으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윤종구 제독은 “우리도 미국과의 작전운용성과 도입대수의 부담 등 공군측 반대 때문에 MIG-29나 SU-27을 도입하지 못했다”며 “불곰사업을 통해 북한과 중국의 무기체계 운용 및 적성국의 작전교리를 다소 파악할 수 있었다”고 했다.
 
 
  북한의 42년 공든 탑 무너뜨려
 
1997년 12월 17일 모스크바 소재 러시아 총참모대학원에서 윤종구 무관(오른쪽 둘째)이 북한 무관 노승일 대좌(윤종구 무관 우측), 부무관 민병철 상좌(좌측), 박순홍 공군무관과 함께 건배를 하고 있다. 김정찬 소장 후임인 노 대좌는 매사에 적대적 태도와 불만이 가득했던 인물로 언어문제로 모든 행사에서 늘 외톨이였다.
사진=윤종구 제독
  윤 제독은 “1, 2차 불곰사업 때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장비들이 있었지만 현재는 수리온, K-2 흑표 전차처럼 상당 부분 국산화했기 때문에 현물상환은 의미가 없어졌다”며 “3차 불곰사업은 현물상환보다는 군사기술 이전이나 한·러 FTA, 북극항로, 시베리아 개발, 시베리아 대륙횡단 초고속철도 건설 등 다양한 21세기 신규 사업 아이템을 협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1차 불곰사업이 진행되던 1997년 11월 20일 한·러 군사관계에 이정표가 될 사건이 이루어졌다. 이정린(李廷麟) 국방부차관이 러시아를 방문, 국방부 회의실에서 미하일로프 러시아 제1국방차관과 ‘한・러 정부 간 군사기술·방산·군수협력협정’을 체결했던 것이다. 1992년 옐친 대통령을 수행해 방한한 그라초프 국방장관이 ‘한·러 군사교류 계획’에 서명하면서 인적교류에 물꼬를 튼 데 이어, 1997년 이 협정 체결로 러시아 무기 도입 등 본격적인 한·러 군사협력의 길을 열었던 것이다.
 
  당시 국방무관 윤 제독은 “북한이 1949년 소련과 42년간 공든 탑을 쌓아 왔던 것을 우리는 1991년 무관부 설치 후 6년 만에 달성했던 것”이라며 “당시 협정체결 소식을 들은 북한대사관 대사와 무관은 분통을 터뜨렸다고 들었다”고 했다.
 
2000년 3월 28일 스몰렌스크의 러시아 방공대학(Air Defense University)을 방문한 윤종구 무관이 S-300 지대공 미사일을 살펴보고 있다. S-300방공미사일은 한화탈레스와 LIG넥스원이 개발해 2016년 배치한 천궁미사일의 모체다. 사진=윤종구 제독
  윤 제독은 “지금도 후배 무관들에게 일본 첩보공작의 전설인 옛 주 프랑스 및 러시아 무관 아카시 모토지로(明石元二郞·1864~1919) 대좌(대령)를 롤모델로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고 했다. 아카시는 러시아혁명을 선동하기 위해 100만 엔의 공작금을 대면서 러일전쟁 승리의 기틀을 마련했고 이토 히로부미는 훗날 “아카시 혼자 일본군 10개 사단의 일을 해냈다”고 칭송했다.
 
  1994년 9월 러시아는 “핵무기를 제외한 어떤 무기든 한국에 제공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한국 국방부는 방산 협정 직후, 지대공 미사일 S-300, 20t급 쌍발엔진 전투기 MIG-29, 3000t급 킬로급 디젤잠수함 등 3가지 무기체계에 관심을 가졌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는 MIG-29기의 경우 적어도 1개 편대 수량은 되어야 한다는 등 전술단위의 대량 구매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무기체계들을 일단 도입하면 추가 도입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미국제 일색인 한국 무기체계가 흔들릴 수도 있어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윤 제독은 “미국은 경협차관 상환용으로 한두 대의 연구용 도입과 국내개발은 몰라도 대규모 러시아제 수입은 달가워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당시 적극적으로 전략무기체계 도입에 나섰더라면 2016년 배치한 천궁 지대공 미사일(사거리 40km), 쌍발엔진 전투기 KFX, 3500t급 디젤잠수함 KSS-III 사업 등에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킬로급 잠수함 도입했다면
 
만재배수량 4000t급의 러시아 킬로급 디젤 잠수함. 사진=위키피디아
  북한은 소련 붕괴 와중에 골프(Golf)급 등 러시아 잠수함 4~5척을 구입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1988년 소련 측이 무기구입 대금의 경화결제를 요구하면서 중단했다가 소련 붕괴 이후 1994~95년 중 러시아제 중고 잠수함을 구입한 것이다. 지난 4월 23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참관한 가운데 북한 군부는 골프급 잠수함에서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 KN-11·북한명 ‘북극성-1’)을 성공적으로 시험 발사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소련 붕괴 과정에서 러 태평양함대는 어려운 재정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현역 킬로급 잠수함도 고철로 팔려 했다. 킬로급(4000t)은 당시 디젤잠수함으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사이즈였다. 현재 우리 해군이 추진하는 장보고Ⅲ 사업(3500t)에 해당하는 크기로 수직발사관을 보유하고 있었다. 당시 권영해(權寧海) 안기부장은 러시아 잠수함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북한의 잠수함 전력을 파악하고 기술이전에 소극적인 독일 HDW(하데베)에 경고를 주자는 목적으로 킬로급 잠수함 도입사업을 고려했다. 러시아제 킬로급 잠수함을 한두 척 확보하면 북한 해군력을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항군(對抗軍)으로 활용이 가능해 우리 해군의 대잠전 능력을 획기적으로 키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것이다. 마침 경협차관 현물상환의 일부로 잠수함까지도 거론 중이었다.
 
  1996년 윤종구 제독은 한국 해군장교로는 처음으로 발틱함대 소속의 러시아 KILO급 잠수함에 승함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작전과 수리를 위해 두 척의 킬로급 잠수함을 원했다”고 한다. 윤 제독은 “태평양함대는 상상할 수 없는 저렴한 가격을 제시하면서 ‘해군기지에 정박한 잠수함 가운데 마음대로 가져가라’고 제의할 정도였으나 우리 해군은 탐탁지 않아했다. 유저(user)들이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으니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것으로 KILO급 잠수함 도입 건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러시아국영무기수출공사(로스보론줴니에) 사람들은 러시아 무기체계가 성능면에서 서방무기에 손색이 없다고 말한다. 러시아 무기들은 서방무기처럼 깔끔하고 매끄럽지는 못하나 대체로 견고성과 야전성 면에서 우수하다. 칼라슈니코프 소총이 대표적 예다. 신형 KA-50 공격헬기도 복엽회전식으로 단좌인데 무장도 아파치 헬기에 못지않고 몸체도 작은 데다 유사시 조종사가 탈출할 수 있다. 헬기의 조종사 탈출 장치는 세계 유일이다.
 
  윤 제독은 “F-X 1차 사업 때 모스크바 항공기 합작제작사(MAPO)에서 젊은 한국의 유저들인 전투기 조종사들이 너희들 무기는 팬시한 점이 없다고 했더니 ‘작전용 항공기를 사러 왔느냐 유람용 항공기를 사러 왔느냐’며 비아냥댔다”며 “러시아 국민들이 자신들의 국민차 ‘쥐굴리’를 벤츠의 ‘쥐굴리데스’로 희화화하듯 러시아 무기 체계들은 한결같이 쾌적함과 편리함과는 거리가 멀다”고 했다.
 
 
  t당 170달러의 고철가격으로 구입
 
고철로 팔려와 해체되기 전 경남 고성의 한 항구에 정박 중인 러시아의 키예프급 항모 민스크호. 사진=조선일보
  윤종구 당시 대령은 해군무관을 마치고 귀국해 1995년 10월 안기부장 정보보좌관으로 2년가량 일하면서 김영삼 정부하에서 러시아 항모 도입과 해체 과정을 지켜본 실무자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한국의 무역회사인 영유통은 소련 붕괴 직후 러시아 태평양함대의 대형함정들을 무더기로 도입했다. 항모 민스크(Minsk)와 노보로시스크(Novorossiysk) 2척을 포함해 총 259척의 함정을 도입, 이 가운데 34척을 국내로 들여와 해체했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 해체 후 경제사정이 극도로 나빠지자 러시아는 연간 1억5000만 달러에 달하는 유지비를 댈 수 없다는 이유로 함정 매각을 결정했다. 한국의 중소 무역업체 영유통은 러시아로부터 키예프(Kiev)급 항공모함 민스크와 노보로시스크 매입에 나서게 된다. 노보로시스크호와 민스크호는 1979년과 1984년 각각 러시아 태평양함대에 배치됐던 항모였다. 당시 러시아는 1993년 7월 민스크호의 퇴역을 결정하고 노보로시스크호마저 화재로 기능 불능에 빠지자 매각을 추진한다.
 
  1994년 1월 그로모프 해군사령관은 민스크 등 함정수출 계획을 발표했고, 그해 10월 6일 한국의 영유통은 해군 퇴역 장성들로 구성된 러시아 콤파스사(社)와 항공모함 2척 구매계약을 체결했다. 이 계약에는 세계 33개 업체가 참가해 치열한 매수경쟁을 벌였다. 민스크호는 함령 15년, 노보로시스크호는 11년으로 통상 배의 수명을 30년이라고 할 때 비교적 쓸 만한 함정이었다.
 
  윤 제독은 “영유통 조덕영(趙德英) 회장이 ‘함정이 큰 것들은 가져오는 것 못지않게 해체하는 것이 걱정’이라고 말하며 안기부에 협조를 요청하면서 알게 됐다”고 했다. 당시 영유통이 인수한 민스크호의 가격은 460만 달러(당시 환율로 한화 약 37억원), 노보로시스크호는 430만 달러(약 34억원) 등 총 71억원이었다. 국산 K2(흑표) 전차 1대 가격이 50억원 넘는 것을 감안할 때 항공모함 1척이 전차 1대 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가격에 팔린 것이다. 러시아가 항모의 주요 부분을 제거하고 t당 170달러의 고철 가격으로 팔았기 때문이다. 윤종구 제독은 “노보로시스크와 민스크는 3만8000t급의 항모(러시아어로 아비아노세츠)지만 항공순양함(아비아크레이세르·aviation cruiser)이라고 부른다”며 “러시아는 항모를 우크라이나 니콜라예프 조선소에서 건조해 보스포루스 해협을 통해 지중해를 거쳐 지브롤터로 나와야 하지만, 흑해협약에 의해 항모는 보스포러스 해협 통행을 못해 명칭을 ‘항공순양함’으로 변경한 것”이라고 했다.
 
 
  바랴크를 랴오닝으로 탄생시킨 중국
 
중국의 항공모함 랴오닝호. 러시아 항모 입찰경쟁에서 실패한 중국은 우크라이나가 건조 중이던 바랴크호를 인수해 랴오닝호로 탄생시켰다. 사진=조선일보
  1994년 11월 러시아 국방부는 항모 2척의 한국 판매를 승인했다. 이때부터 《도쿄신문》과 NHK 등 일본의 언론 플레이가 시작됐다. 《도쿄신문》은 “한국이 들여올 퇴역 항모 2척이 사실상 현역 함정”이라고 주장했다. 일본의 목적은 러시아를 움직여 항모 매각을 원점으로 돌리려고 한 것이다. 1995년 3월 소스코베츠 러시아 제1부총리가 연방보안국, 세관국에 폐항모에 대한 조사를 지시하면서 한국의 러시아 항모 도입계획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태평양함대 군사방첩국과 극동세관국이 조사에 착수했다.
 
  극동세관국이 “민스크호와 노보로시스크호는 중앙지휘센터 장비와 레이더(R/D), 방공정보시스템, 미사일발사대와 지휘시스템, 표적탐지시스템 등이 방치돼 있었다”고 보고하자 러시아 정부는 민스크와 노보로시스크의 해당 설비들을 수류탄으로 폭파하거나 제거했다. 1995년 11월 우리나라에 온 민스크와 노보로시스크는 고철덩어리에 가까웠다.
 
  1995년 10월 영유통은 소비에츠카 가반 항구에서 러시아 태평양함대 전용 예인선으로 닷새 만에 두 척을 한국으로 예인해 왔다. 이번에는 환경단체들이 민스크호의 해체 과정에서 기름 유출, 방사능 오염 가능성 등을 제기하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1995년 11월 포항시 양포항 입항 시 지역 주민과 환경단체들이 항모에 소변을 보고 돌을 던지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콤파스사 소속으로 특수예인선을 인솔하고 온 이고르 마호닌 제독(78, 해군참모차장 역임)은 부두에 나가 웃통을 벗고 “다 덤벼라”고 했다. 극동함대의 주력항모가 어느날 갑자기 밧줄에 묶여 한국땅에 끌려와 갈매기와 박쥐의 소굴이 된 것도 서러운데, ‘로스케들 꺼지라’고 하니 참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1996년 8월에서 10월에 걸쳐 영유통은 러시아 국방부와 재협상을 시도, 주민들의 반발로 해체가 어려워진 민스크호의 용도변경 허가를 받아 냈다. 온갖 풍파 끝에 노보로시스크를 해체하고 두 번째 항모인 민스크를 해체하려니 엄두가 안 났던 것이다. 윤 제독은 “조덕영 회장은 ‘한국 해군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말하던 애국적 기업인”이라며 “항모가 정박할 곳이 없어 하루 1억원씩 까먹으면서 동해와 남해, 그리고 서해바다를 유랑하는 항모를 보며 ‘차라리 동해바다에 수장시키고 싶다’고 눈물을 글썽일 때는 정말 안타까웠다”고 했다. 1997년 외환위기 사태가 닥치면서 투자자를 찾지 못한 영유통은 결국 1998년 제3국 매각을 추진했다. 민스크를 독도에 해상관광호텔로 가져다 놓는 아이디어도 무위로 끝났다.
 
  민스크호는 1998년 8월 중국에 “고철로만 사용한다”는 조건으로 매각했다. 중국에 팔린 민스크호는 이후 중국 광저우에서 16개월 동안 내부수리와 개조작업을 거쳐 3만m²의 공간을 자랑하는 관광 테마파크로 다시 태어났다. 윤종구 제독은 “중국은 우리와 같은 시기에 우크라이나 니콜라이예프 조선소에서 건조하고 있던 바랴크호를 300만 달러 헐값에 도입해 랴오닝함으로 탄생시켰으나, 우리는 환경단체들의 집요한 반대로 항모 2척 가운데 한 척을 중국에 팔아넘겼다”며 “굴러들어온 좋은 기회들을 차 버렸다”며 안타까워했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105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정기구독 이벤트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