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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해제 외교문서

‘북한의 비무장 지대 요새화’ 문건에서 밝혀진 사실

“화해 손짓 건넨 북한, 뒤에서는 DMZ 요새화에 총력”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woosu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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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이 양극체제 와해 분위기에도 북한을 믿지 못했던 이유

⊙ 북, 1972년 DMZ에 225개에 달하는 진지 구축
⊙ 한국 정부, DMZ 요새화는 북한의 전형적인 화전양면전술로 판단
⊙ 미국, 우리 ‘선전전략’에 우려 표명
⊙ “북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알려라”(박정희 전 대통령)
  1969년 7월 ‘닉슨독트린’ 발표 이후 미국은 소련과 중국을 상대로 데탕트(de´ente·긴장완화) 정책을 펴며 베트남 철군 등 동맹국에 대한 군사적 책임을 줄이는 방향으로 갔다. 이 변화에서 자신감을 얻은 북한은 무력을 앞세운 대남정책(1968년의 1·21사태와 울진·삼척사태 등)을 전면적 평화공세로 전환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북한이 전통적인 위장 평화전술을 펴는 것으로 봤다. 김일성의 주 전술이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1년 1월 1일 신년사에서 이같이 이야기했다.
 
  “중공은 점증하는 국제적 비중을 배경으로 그 영향력을 강화해 나가고 있으며 소련은 전통적인 극동진출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고, 미국은 불개입원칙의 정책기조에 따라 아시아에서 점차 물러서려 하는 등 심상치 않은 변화의 물결이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다. 더욱이 모든 전쟁준비를 완료하고 초조하게 무력적화 통일의 기회만을 노리는 북괴가 이러한 정세를 오판한 나머지 또다시 6·25 동란과 같은 참화를 일으킬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올해는 국가안보상 중대한 시기가 될 것이다.”
 

  3개월 뒤인 1971년 4월 16일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자신과 그의 두 딸이 중국 본토를 방문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10개월 뒤 닉슨 대통령의 희망은 이뤄진다. 지금으로부터 꼭 44년 전인 1972년 2월 21일 닉슨 대통령은 중국에 도착했다. 미국 현직 대통령이 처음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이하 중공)을 방문한 것이다. 닉슨은 자신의 중국 방문을 “세상을 바꾼 한 주”로 표현했다. 실제 만리장성에 선 닉슨의 모습은 양극체제의 와해를 상징해 왔다. 북한은 닉슨의 중공방문을 백기를 든 항복으로 해석했다. 닉슨의 방문으로 인해 중공은 유엔(UN)에 가입했고, 이로 인해 우리나라와의 전쟁 당사국이었던 중공의 국제적 발언권은 높아졌다. 북한은 중공이 자신들을 옹호, 국제사회로 진출시킬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과 한국 정부는 중공의 UN 가입을 계기로 북한이 암약(暗躍)의 폭을 한결 다양화하면서 넓혀 갈 것으로 판단했다.
 
 
  북한, 1972년 DMZ에 인민군 8800명 투입
 
   북한을 예의 주시하던 중앙정보부는 닉슨의 중공 방문 직후인 1972년 3월 ‘북괴(북한)의 비무장 지대 요새화’라는 제목의 2급 비밀문서를 작성했다. 《월간조선》이 입수한 문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겼다.
 
  〈닉슨의 중공방문 이후 북괴는 남북 간의 긴장을 완화하자는 정치적 제스처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소위 적화통일 야욕을 숨기기 위한 선전전략에 불과하다. 그 증거로 북괴는 휴전선의 비무장지대를 완전히 요새화하여 225개에 달하는 진지를 구축하고 다수의 병력을 상주시키고 중화기를 비롯한 각종 화기를 비치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비무장지대 내에 전장 80km에 달하는 철책을 구축하고 104km의 불모지를 설치했으며, 거미줄 같은 망을 구축했다. 비무장지대라는 것은 말뿐이다. 사실상 휴전선의 북방 한계선으로부터 북괴는 2km 남하함으로써 재침(再侵)의 도를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북한이 군사적 시설물이나 무기를 배치하지 못하는 지역인 비무장지대(DMZ)에 225개에 달하는 진지를 구축하고 다수의 병력을 상주시키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박 전 대통령은 이 같은 사실을 대외에 적극적으로 알리라고 김용식 당시 외무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북한의 평화공세가 실은 기만전술임을 국제사회에 적극 알릴 필요가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전협정 제1조 6항은 “쌍방은 모두 비무장지대 내에서 또는 비무장지대로부터, 또는 비무장지대를 향하여 어떠한 적대행위도 감행하지 못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1969년 8월 방미한 박정희 대통령은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을 만났다.
  김용식 장관은 1972년 3월 15일 북한의 기만행위를 폭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휴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이후 북괴는 지금까지 무려 1만921회에 걸쳐 동 협정을 위반해 왔다. 최근 국제적인 긴장완화 기운의 틈을 타서 북괴는 가장 명백하고도 위험한 휴전협정 위반행위를 자행함으로써 이 지역에 다시금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중략) 정부는 1972년 2월 12일 북괴 측에 유엔군이 제안한 ‘비무장지대의 철저한 비무장화’를 수락하는 것이 평화를 위한 가장 유력한 성의표시라고 천명한 바 있다. 하지만 북괴는 휴전협정을 계속 위반하고 전쟁준비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도발하고 있으면서도 북괴는 이를 은폐하기 위해 대외적으로 위장 평화공세를 전개하고 있다. 전 세계는 이러한 위장된 평화공세의 그늘 밑에 감춰진 북괴의 위험한 군사적 위협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만일 북괴가 비무장지대의 병력을 철수시키지 않는다면 평화의 위협에 대한 책임은 결코 면치 못할 것이다.”
 
  성명을 발표한 김 장관은 곧바로 《뉴욕타임스》, 독일 TV와 인터뷰를 갖고 북한의 만행을 폭로했다.
 
  우리 정부의 폭로에 미국은 우려를 표명했다.
 
북한을 예의 주시하던 중앙정보부가 닉슨의 중공 방문 직후인 1972년 3월 만든 비밀문서. 남북 간 긴장 완화 제스처를 보이고 있는 북한이 DMZ를 요새화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성명 발표 이틀 뒤인 1972년 3월 17일 금요일 오전 10시30분 외무부 차관실에서 윤석헌 외무부 차관과 면담을 한 당시 프랜시스 언더힐 주한미국대사대리는 “우리가 발표한 비무장지대에 관한 성명에 약간의 문제점이 있다”고 했다.
 
  다음은 두 사람의 대화록이다.
 
  언더힐- “유엔군측에서도 비무장지대에 100여 개의 guard posts(경계초소, 감시초소)를 가지고 있으며 guard posts를 먼저 설치하기 시작한 것은 이쪽이다. 또한 북괴 병력이 약 8800명이라고 했는데 이 숫자를 확인할 방법이 없으며 너무 많은 숫자로 생각한다. 따라서 선전에 약점이 있다.”
 
  윤석헌- “그런 사소한 점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아측도 비무장지대에 guard posts를 가지고 있다 하나 그것은 북괴측의 비무장지대 무장에 대응한 불가피한 자위적 조치다. 이것마저 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방위의 책임을 포기하는 범죄적 태만이 될 것이다. 이쪽이 먼저 비무장지대 내에 guard posts를 설치한 것은 지형상 부득이한 사정 때문이다. 상대방 병력이 8800명이 되는가 안 되는가는 문제가 아니다. 그만큼 다수의 병력이 투입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퇴거를 요청하는 것이다. 철책을 약 2km 남진시킨 이상 전 세계에 북한의 선전 공세와 기만성을 폭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더힐- “유엔군의 입장으로서는 몇 가지 사실이 마음에 걸린다.”
 
  윤석헌-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번 성명은 비무장지대의 철저한 비무장화를 요구한 것이다. 유엔군측에서는 정전위원회에서 제의한 유엔군측 안대로 비무장지대의 완전 비무장화 주장을 계속하면 된다. 그리고 유엔군측 guard posts는 북괴의 비무장지대 요새화에 대한 방위책인 만큼 북괴가 (진지를) 철거하면 (유엔군 진지도) 동시에 철거하면 될 것이다.”
 
  언더힐- “잘 알겠다. 그것이 좋을 것 같다.”
 
 
  “북한의 만행을 알리는 데 박차를 가하라”
 
김용식 전 외무부 장관은 1972년 3월 15일 북한의 기만행위를 폭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김 전 장관이 1972년 2월 16일 영국의 알렉 더글러스 흄 외상의 방한을 영접하는 모습이다.
  1972년 3월 19일 북한은 본인들의 DMZ 요새화 움직임을 폭로하는 우리 정부의 성명을 반박했다. 당시 북한이 내놓은 성명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비무장지대에 정전협정을 위반한 것은 우리가 아니다. 그들은 오래전부터 비무장지대에 탱크와 장갑차 등 중장비와 자동화기를 집중적으로 끌어들였다. 특히 비상사태를 선포한 후 총력안보를 내걸고 비무장지대의 전용 진지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남조선 위정자들은 지금 저들의 전쟁도발 책동에 일본군국주의자들까지 끌어들이고 있다. 만일 남조선 위정자들이 우리측에 거듭되는 경고에도 이른바 남침위협을 구실 삼아 불장난한다면 그로부터 초래되는 엄중한 후과(後果) 대하여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외무부와 중앙정보부는 북한의 반박성명에 대해 이같이 분석했다.
 
  “저들(북한)은 오히려 비상사태를 선포한 우리에게 긴장완화의 책임을 묻고 있다. 우리 정부의 성명에 국제사회가 동조할 것을 의식하고 본인들의 비무장지대 요새화를 우리의 비상사태와 결부시켜 반박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1971년 12월 6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당시 미국은 ‘한국 안보의 한국화(Koreanization of Korea Security)’ 정책을 내세웠다. 한국 정부와는 단 한마디 상의도 없이 한국에 주둔 중이던 주한미군을 빼내 가면서 “군사지원을 해 줄 테니 스스로 알아서 지키라”고 한 것이다. 문제는 그 시기였다. 1960년대 말 70년대 초는 북한의 대남(對南)도발이 그 어느 때보다 격화되고 있었다. 1971년 3월 주한 미 7사단 철수가 완료되었고, 북한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이른바 인계철선(trip wire) 역할을 해 온 미 2사단이 휴전선을 떠나 후방에 재배치됐다. 이것은 6·25 이후 미국의 대한(對韓)정책상 가장 중대한 변화였다. 국가안보에 심각한 위기가 닥쳤다고 판단한 박 전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 선포’ 카드를 빼 들었다.
 
북한이 5초소 앞에 박격포진지를 구축한 모습. 북한은 여전히 DMZ에 다수의 중화기 진지를 구축하고 무장전투병력을 배치하고 있다.
  외무부와 중앙정보부는 북한 성명을 분석한 보고서를 박 전 대통령에게 올렸다. 박 전 대통령은 북한의 만행을 국내외에 알리는 데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을 지시했다. 외무부는 선전전략을 세우고 실행에 옮겼다. 그 내용은 ‘북괴의 휴전협정 위반에 대한 대응조치’라는 문서에 잘 나와 있다.
 
  문서에 따르면 우리는 우방국 및 중립국, 미국, 유엔, 언커크(UNCURK, 유엔 한국통일부흥위원단)를 대상으로 홍보활동을 전개했다. 우선 우방국과 중립국에 대해서는 주한 각급 외교사절단장(총영사관 포함) 전원을 외무부로 초치(招致)하여 북한의 미소정책과 관련, 최근의 조직적인 휴전협정 위반사항을 폭로하고 정부의 입장을 설명했다. 구체적인 군사사항도 설명했다. 또 북한의 휴전협상 위반에 관한 구체적인 자료를 영어, 스페인어(서반아어) 및 불어로 작성, 각 재외공관에 배포했다.
 
  미국에 대해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친서를 닉슨 대통령에게 발송, 북한의 도발성을 지적하고 대응조치를 위해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 유엔군 사령관으로 하여금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하여 DMZ 내에서의 북한의 협정위반을 시정토록 하게 했다. 주 업무는 국방부가 했으며 외무부는 주한 미국대사관을 통해 측면 협조했다. 장기적 대응조치로 군원증강, 현대화계획 촉진 등을 위해 미국과 교섭을 진행했다.
 
  유엔에 대해서는 유엔대사로 하여금 유엔 사무총장, 각 회원국 대사 및 대표들과 접촉하여 북한의 휴전협정 위반사항을 알리고, 북한의 평화공세의 이중성을 폭로케 했다. 아울러 북한의 휴전협정 위반사항에 관한 자료를 종합, 유엔대표부에 송부하고 북의 이중성에 관한 특집자료를 편집 배포했다. 이 자료의 제목은 ‘북괴의 움직임(비무장지대 요새화 진상)’이었다.
 
  언커크에 대해서는 언커크 대표들과 접촉하고, 언커크로 하여금 특별보고 또는 연차보고를 통해 북한의 도발정책 등을 충분히 반영케 했다.
 
 
  북한 장사정포 진지 ‘족집게 타격’ 가능
 
미국이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비해 본토의 패트리엇(PAC-3) 미사일 부대를 한국에 추가 배치했다.
  44년이 지난 지금도 DMZ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북한은 여전히 DMZ에 다수의 중화기 진지를 구축하고 무장전투 병력을 배치하고 있다. 북한은 각종 진지 66개소(박격포진지 28개소, 대공포진지 25개소, 야포 진지 4개소, 대전차포진지 9개소), 4개의 땅굴, 29.4km의 지뢰지대, 283개소의 감시소(GP: Guard Post) 및 관측소(OP: Observation Post), 100개소의 방송시설, 철책선, 막사 등의 시설을 설치, 운영하고 있다.
 
  DMZ 인접지역에도 자주포와 방사포 등 각종 중화기와 무장병력을 증강 배치하고 있다. 북한은 170mm 자주포 90문과 240mm 방사포 50문 등 장사정포 140문을 전진 배치하였고, 460여 대의 대규모 항공기를 전후방의 기지로 재배치하면서 이 중 111대를 비무장지대 인접 전방 3개 예비기지에 배치했다. 또 중동부 전선을 담당하는 북한군 5군단의 비무장지대 도발 능력을 강화했다. 5군단 산하의 오성산 초소는 우리 최전방초소(GP)와 불과 350m 떨어져 있다.
 
  우리 군도 주요 지점에 96개소의 GP 및 OP와 10개소의 방송시설을 설치하고 있다. 군 당국은 북한이 서북 도서와 DMZ 등에서 포격·총격 도발을 할 경우 최대 10배 이상 보복한다는 계획이다. 군 소식통은 “북한이 강력한 포격도발을 했을 때 수천발의 대응포격을 하는 훈련까지 했다”고 말했다.
 
  우리 군은 수도권을 위협하는 전방 지역의 북한 장사정포 진지 등을 파괴하기 위해 개발 중인 단거리 지대지(地對地) 전술 탄도미사일 정확도를 10여m 수준에서 수 m 수준으로 크게 향상시키는 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수 m의 정확도는 북 장사정포 갱도 진지를 족집게처럼 정확히 타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했다.
 
  군 당국은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비무장지대 인근 최전방 지역에 배치돼 수도권을 위협하는 북 장사정포(240mm 방사포, 170mm 자주포) 340여 문이 숨어 있는 갱도 진지들을 신속히 파괴하기 위해 신형 단거리 미사일을 ‘번개사업’이라는 암호명 아래 개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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