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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美 전투기 조종사 시험비행 체험記

未完成 비행기에 목숨을 걸다!

글 : 조진수  한양대 기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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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력 비행기 만들어 시험비행 성공한 라이트 형제… 테스트 파일럿의 선구자
⊙ 영국人 해빌런드… 음속 돌파 도전하다 비행기 파괴로 사망한 첫 희생자
⊙ 테스트 파일럿… 발생 가능한 모든 상황에서 항공기의 성능 평가하고 결함 발견하는 것이 主임무
⊙ T-50, 첫 음속 돌파한 국내 제작 군용기. 차세대 전투기 도입 기종 선정 때도 테스트 파일럿 활약

趙辰洙
⊙ 59세. 서울대 항공공학 학사 및 석사, 미국 퍼듀대 항공공학 박사.
⊙ 한국항공우주학회 회장, 공군 F-X 평가단 및 항공사업지원 자문위원 역임.
    現 공군 정책발전 자문위원, 방위사업청 KF-X 전문위원, 한국항공우주산업 산학위원장,
    국방 NCW 포럼·한국국방안보포럼·한국방위산업학회·국토부 항공안전기술원 이사.
1903년 12월 미국 동부 노스 캐롤라이나주 키티호크 해변가에서 라이트 형제는 자체 설계 제작한 1인승 동력비행기 ‘The Flyer 1호’를 시험비행했다. 원 안은 형인 윌버(위)와 동생 올빌 라이트 형제.
  1903년 12월 17일 목요일 오전 10시35분, 미국 동부 노스 캐롤라이나주(州)의 키티호크(Kitty Hawk) 해변가. 킬 데빌(Kill Devil)이라 불리는 모래 언덕에서 작은 비행 물체 하나가 하늘로 솟아올랐다. 자전거 제조업자이자 아마추어 항공 엔지니어였던 윌버 라이트(Wilbur Wright)와 올빌 라이트(Orville Wright) 형제가 만든 1인승 동력비행기 ‘The Flyer 1호’였다. 유럽과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동력비행기 개발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는 순간이었다. 이 ‘위대한 업적’은 두 형제가 비행기의 전기체와 동력장치, 조종장치를 세계 최초로 설계·제작한 기술력과 ‘The Flyer’의 시험비행을 성공적으로 이끈 조종술에서 탄생했다.
 
  비행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리학·항공역학 용어인 ‘자유도(Degrees of Freedom)’의 개념을 알아야 한다. 자유도는 탈것(Vehicle)의 자체 설계와 조종장치 설계의 기본 척도를 말하는데, 움직이는 물체에 적용되는 힘과 모멘트 개수의 총합을 뜻한다. 쉽게 말해 기차(궤도 열차)는 자유도 1, 자동차와 배는 3, 비행기와 잠수함은 6이다. 자유도가 1인 기차는 전후진 레버 하나로 조종한다. 자유도 3인 자동차와 배는 전후진 페달과 여기에 연결돼 있는 스티어링 휠로 조종한다. 자유도 6인 비행기는 공중(3차원)에서 세 방향의 병진운동과 세 방향의 회전운동을 해야 하므로 양팔과 두 발 모두를 이용해 조종해야 한다.
 
  라이트 형제는 이 원리를 이용해 조종간과 조종면, 이를 연결하는 링크를 직접 설계해 동력비행기인 ‘The Flyer’를 만들었고, 이를 조종하기 위해 조종술을 온몸으로 익혀 시험비행에 성공한 것이다. 그래서 라이트 형제의 업적이 위대하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지금도 그들을 ‘가장 위대한 미국인’으로 꼽고 있다.
 
 
  세계 최초 음속 돌파한 조종사 ‘척 예거’
 
1947년 10월 14일 세계 최초로 음속을 돌파한 Bell 사의 XS-1. 4만3000피트에서 마하 1.06을 기록했다.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미국과 유럽 열강은 국가 주도로 비행기 속도 향상에 몰두했다. 그러던 중 음속(초속 340m)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힌다. 음속 돌파라는 기술을 먼저 확보하는 국가가 하늘을 장악할 것이라고 믿었다.
 
  1920년대 들어 초음속이론이 독일에서 발표됐다. 이후 1927년 미국 NACA(NASA의 전신) 랭리연구소가 기존보다 훨씬 빠르지만 음속보다 느린 아음속(亞音速) 풍동(風洞)을 개발했다. 풍동이란 인공으로 바람을 일으켜 기류가 물체에 미치는 작용이나 영향을 실험하는 터널형의 장치를 말한다.
 
  1930년대 들어 독일이 비행 속도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해 마침내 초음속 풍동을 개발한다. 하지만 아음속과 초음속을 연결하는 마하 1 부근의 천음속(遷音速·음속보다 느린 부분과 빠른 부분이 공존하는 속도의 범위) 상태에 도달하면 항력이 급격히 증가해 인간은 절대로 초음속 비행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영국인 디 해빌런드(Geoffrey de Havilland) 2세는 1946년 9월 27일 고속 비행기(D.H.108 Swallow)를 몰고 세계 최고 속도 기록에 도전했다. 그러나 마하 0.8을 넘지 못하고 비행기가 파괴되면서 그는 ‘음속의 벽’에 의한 첫 번째 희생자가 됐다. 영국의 영웅이자 세계 항공기 발달사에 화려한 업적을 남긴 위대한 항공 기술인(技術人)이며, 부친이 세운 항공기 제작회사의 수석 시험비행 조종사가 하늘에서 산화한 것이다.
 
  1년 후인 1947년 10월 14일 새벽 6시,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모하비 사막에 위치한 뮤록(Muroc) 육군 활주로에서 일단의 엔지니어들이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들은 새로 개발한 로켓추진 비행체 ‘XS-1’을 B-29 폭격기 하단에 장착했다. 벨(Bell)사(社)가 만든 XS-1 실험비행체 조종석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P-51 무스탕 전투기를 몬 최고의 조종사 척 예거(Charles Elwood Chuck Yeager) 대위가 앉았다. 그날 오전 10시26분 사막 상공에서 마하 0.32의 속도로 B-29에서 떨어져 나온 XS-1은 몇 분 후 4만3000피트에서 마하 1.06을 기록한 후 14분 만에 지상에 무사히 착륙했다. 오스트리아의 저명 물리학자인 마하(Mach) 박사가 1887년 초음속으로 날아가는 총알의 충격파를 촬영한 후 60년 만에 인류 최초로 초음속 비행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짧은 비행이었다. 그러나 이 세상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음속 돌파를 성공으로 이끈 테스트 파일럿(Test Pilot) 척 예거의 투혼은 미국을 세계 최고의 항공우주기술국으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그가 착륙 직후 작성한 비행 보고서는 항공사(史)에 길이 이정표로 남아 있다. 미 공군 준장으로 예편한 척 예거 장군은 미국의 저명한 항공잡지(Flying Magazine)가 선정한 ‘세계 최고 업적 항공영웅’ 51인 중 5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國産 전투기 T-50 음속 돌파 순간
 
미국 워싱턴 D.C.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에 전시된 XS-1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척 예거(Chuck Yeager) 장군(휠체어).
  우리가 만든 초음속 비행기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공군과 국방과학기술연구소(ADD)와 함께 개발한 T-50이다. 최초 음속비행은 2003년 2월 19일 공군 사천기지에서 있었다. 이충환 당시 공군 소령이 T-50의 조종간을 잡았다.
 
  이 소령이 조종했던 T-50은 이륙 후 얼마 지나지 않아 1만2000m 상공에 도달했다. 이후 애프터 버너(After Burner·제트엔진의 추력 강화용 추가 장치)를 점화해 속도를 더했다. 마하 0.8, 0.9를 지나더니 어느새 마하 1.0을 돌파했다. 이충환 소령은 당시 지상(地上) 통제소에 이렇게 보고했다.
 
  “비행기가 마하 1을 돌파했습니다. 비행기, 안전하고 아무 이상 없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세계 12번째 초음속 비행기 생산국의 반열에 들었다.
 
  미국의 XS-1과 한국의 T-50은 전혀 다른 시대에, 다른 곳에서 다른 방법으로 음속을 돌파했다. 그러나 공통점이 하나 있다. XS-1을 조종한 ‘척 예거’ 대위나 T-50을 몬 이충환 소령처럼 ‘음속 돌파’를 처음 시도하는 ‘비행체’에 자신의 목숨을 맡기고 임무를 수행한 시험비행 조종사(Experimental Test Pilot)가 있었다는 점이다. 1903년 자기들이 만든 비행기로 인류 최초 동력 비행에 성공한 미국의 라이트 형제, 1946년 자신의 제트 비행기로 음속 돌파에 도전했다가 산화한 영국의 디 해빌런드는 시험비행 조종사의 위대한 선구자였다.
 
  현대의 테스트 파일럿은 ‘시험비행학교’에서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양성한다. 시험비행 조종사 자격증 제도도 있다. 테스트 파일럿은 최초로 제작된 연구개발 항공기, 성능개량 항공기, 인증되지 않은 항공무기와 장비 등을 장착한 항공기를 조종한다. 이들의 임무는 발생 가능한 모든 상황에서 항공기의 ‘요구성능’을 평가하고 결함을 발견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미완성 비행기로 시험비행을 하는 셈이다. 시험 비행기가 당초 설계된 대로 목표치에 도달할 때까지 비행기의 성능을 개선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도전한다.
 
  시험비행 조종사는 처음으로 비행하는 항공기의 불확실성과 위험성, 그리고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극한의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비행역학, 통계학 등 일련의 전문교육을 받는다. 대체로 시험비행학교에서는 1년간 20~30개 기종(機種)을 번갈아 조종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는다. 국제시험비행 조종사회에 따르면, 2014년 2455명의 시험비행 조종사 회원이 등록돼 있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험비행학교는 1943년 설립한 영국 공군의 ETPS(Empire Test Pilot’s School)이다. 뒤이어 미국 공군·해군, 프랑스 공군도 시험비행학교를 개설했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에는 민간 시험비행학교도 있다. T-50 음속 돌파 시험비행을 한 이충환 소령(현재 대령)은 1996년 미국에서 시험비행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우리 공군은 KT-1, T-50 개발을 위해 시험비행 조종사를 오래전부터 양성해 왔다. KF-X 사업을 대비해 2014년 3월부터 자체 시험비행 조종사 양성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 이전에는 외국 시험비행학교를 통해 양성했다. 현재 공군 제52시험평가전대의 281시험비행대대가 시험비행을 맡고 있다.
 
 
  전투기 도입 후보 기종도 비교시험 거쳐
 
  2012년 우리 공군의 ‘차기전투기(F-X 3차) 도입사업’의 평가단원들은 3개 기종(록히드 마틴 F-35A·보잉 F-15SE·에어버스 유로파이터)을 ‘비교평가’하기 위해 미국과 유럽을 수차례 오갔다. 비교평가란 비행기 자체의 성능 비교뿐만 아니라 전투기 조종사가 직접 조종간을 잡고 비행을 하며 평가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필자는 당시 외부 항공 전문가로 평가단에서 활동했는데 그때 테스트 파일럿들의 목숨 건 ‘비행’을 처음 알았다.
 
  2012년 9월 스페인 헤타페 공군기지에서 유로파이터 평가 때의 얘기다. 새벽 06시 기상, 식사집합, 08시 당일 일정 브리핑, 08시30분 평가업무 시작, 30분 동안 점심식사, 곧이어 연속 미팅, 19시 디브리핑, 21시 당일 결과 및 자료정리, 새벽 01시 취침. 시험비행은 야간에도 이뤄졌다. 우리 테스트 파일럿들은 처음 타보는 전투기의 주야간 비행은 물론 공중급유 시험비행까지 해냈다.
 
  그해 10월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록히드 마틴의 F-35A를 꼼꼼히 평가했다. 지상 평가는 물론 F-16 추적기에 직접 탑승해 F-35A의 실제 비행 성능을 살펴봤다. 시뮬레이터를 장시간 이용하며 비행기의 전투·전술 능력도 평가했다. 미 공군 에글린 기지에서는 F-35A의 작전 운영과 후속 지원 및 정비 절차도 살펴봤다. 이처럼 전투기를 도입할 때 테스트 파일럿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국내 개발 항공기 및 시험비행 조종사

 
  ㆍKTX-1 1호기(550마력): 소령 이진호, 1991년 12월, 현재 KAI 소속
  ㆍKTX-1 2호기(550마력): 故 중령 조기만, 1992년(1995년 비행사고로 사망)
  ㆍKTX-1 3호기(950마력): 중령 기예호, 1994년
  ㆍT-50: 중령 조광제, 2002년 8월 20일(비밀리에 첫 비행, 10월 13일 비행 공개)
  ㆍKOX-1(950마력 무장형): 소령 이충환, 2003년, T-50으로 첫 음속 돌파
  ㆍKUH 수리온: 중령 윤병기, 2010년 3월
 
  영화에서의 테스트 파일럿
 
  우리나라에서 2005년 개봉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에비에이터(The Aviator)〉란 영화가 있다. 20세의 나이에 억만장자가 된 하워드 휴즈의 생애를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멋지게 재연했다. 하워드 휴즈는 어려서부터 비행기 조종을 즐겼던 ‘비행기 광’이었다. 1934년에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주에서 열린 비행기 경주대회에서 우승도 했다. 당시 가장 우수한 성능을 가진 H-1 비행기를 만들어 시험비행도 직접 했다. 1935년에는 시속 352마일(563km) 세계 기록을 수립하며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남자’의 타이틀을 얻었다. 이후 그는 TWA항공을 인수하며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항공사로 성장시켜 항공재벌이 됐다. 하워드 휴즈는 앞서 언급한 《Flying Magazine》이 2013년 선정한 ‘세계의 최고업적 항공영웅’ 51인 중 25위에 뽑힌 ‘테스트 파일럿’으로 항공사(史)에 기록됐다.
 
  다음 두 체험기(體驗記)는 현역 한국 공군 대령과 전직 미국 해병대 항공부대 소속 테스트 파일럿의 실제 경험담이다. 한국 공군 측은 보안을 이유로 당초 언론 공개를 꺼렸으나 보안성 검토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허락했다. 지면으로나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체험記 1] 한국 공군 시험비행 산증인 李忠煥 대령
 
  “飛行 중 일부러 엔진 꺼… 멀쩡한 정신으론 하기 힘든 일”
 
  ⊙ 기본훈련기(KT-1), 고등훈련기(T-50), F-15K, 차세대전투기(F-35A) 등
      국내 개발·도입 전투기 시험비행
  ⊙ 2003년 2월 T-50으로 국내 첫 음속 돌파 시험비행 성공
 
  李忠煥
  ⊙ 51세. 공군사관학교 졸업. 미국 국가시험비행학교(NTPS) 수료(석사).
  ⊙ F-5E/F 조종사, KT-1 및 T-50 시험비행 조종사, 차기전투기(F-X) 시험평가팀장 역임.
 
두바이에어쇼 시범비행 장면. 두바이에어쇼에서 7분간의 시범비행을 수행했다.
  1994년 가을 어느 날이었다. 공군 청주기지에 있는 비행훈련부대 F-5E/F 전투기 교관 조종사로서 근무할 때였다. 공군본부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이 대위! 시험비행 교육 받아볼 생각 없나? 너하고 네 동기 한 명이 교육 대상자 후보로 선정되었으니 생각해 보고 연락 줘.”
 
  시험비행 교육에 대해 얘기는 들었지만 자세한 내용을 알지는 못할 때였다. 그 무렵 국내에서 훈련기를 개발하고 있고, 몇몇 조종사가 시험비행 교육을 받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자세히 알아보니 시험비행 교육은 1년간 외국에 있는 시험비행학교에서 받는 것이었고 마침 우리 동기생들 중에 선발할 차례가 됐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비행을 접할 수 있는 기회라 관심이 갔다. 이후 까다로운 서류전형 선발 과정을 거쳐 교육 대상자로 최종 선발됐다. 나의 길고 긴 ‘시험비행 조종사’의 여정은 이렇게 시작됐다.
 
 
  시험비행 조종사로 거듭나다
 
  시험비행 교육은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州) 모하비(Mojave) 사막에 위치한 국가시험비행학교(NTPS·National Test Pilot School)에서 이뤄졌다. 당시 학생은 모두 7명. 덴마크, 호주, 인도네시아에서 온 조종사들이었다. 학과 일정은 한마디로 말해 지옥훈련이었다. 1년 동안 20여 개가 넘는 다양한 비행기를 번갈아 타는 것 자체도 부담이었지만, 생소한 시험비행이론들을 실제 비행에 적용하고 그 비행을 통해 얻은 각종 자료(DATA)를 분석한 후 결과를 비행교수들 앞에서 매번 발표해야 하는 곤혹스러운 시간을 수도 없이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1년간의 악몽과도 같은 고통의 시간을 이겨낸 후의 나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많이 변해 있었다. 졸업의 마지막 관문은, 비행학교에는 없는 비행기(일명 Unknown Aircraft)를 가져와 5회 비행한 후 그 비행기에 대한 전반적인 평(評)을 논문으로 작성하고 발표하는 것이었다. 운 좋게 이를 무사히 통과했다. 시험비행기술학 석사학위를 받았지만, 시험비행 교육 과정은 사관학교 내무생활만큼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은 생활이었다.
 
 
  KT-1(現 공군 기본훈련기) 개발 현장에 참여
 
  교육을 마치고 귀국 후 나는 숨 돌릴 틈도 없이 곧바로 한국 최초의 자체 개발 기본훈련기(프로펠러 항공기) KT-1 개발현장에 투입돼 시험비행을 담당했다. 내가 참여를 시작한 1996년도의 KT-1은 이미 수년 전부터 진행해 온 시험비행을 통해 많은 부분을 수정했고, 거의 개발 마무리 단계에 있었다. 하지만 KT-1을 처음 접해보는 나는 시험비행을 거듭할수록 나름대로 아직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 적지 않다고 느꼈다. 그때마다 조심스럽게 항공기 엔지니어들과 개선방법에 대해 논의했다. 그러나 예산부족 및 개발일정 지연 등의 이유로 개선하고 싶어도 못 하는 상황이었다.
 
  프로펠러 항공기의 고유 특성인 ‘좌로 틀림 현상’만큼은 반드시 개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경험이 부족한 학생 조종사가 타는 훈련기로서 항공기 고유 특성이라고 하기에는 좌로 틀어지는 현상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공중에서야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이륙 중에 활주로 이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태였다. 결국 이 문제는 틀림 현상을 자동으로 제어해 주는 장비 ‘ARTS(Auto Rudder Trim System)’를 장착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시험비행 조종사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KT-1 개발에 있어서 나의 마지막 임무는 KT-1을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하는 ‘1998 에어쇼’에서의 시범비행(Demo Flight)이었다. 10여 년간의 뼈를 깎는 듯한 개발 과정을 거친 KT-1의 자랑스런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줘야 하는 순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성공적인 개발 종료를 눈앞에 둔 시점이었다. 조금이라도 삐걱거리는 날에는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지금까지도 KT-1이 세계 곳곳으로 수출되는 것을 보면 1998 에어쇼에서의 첫 단추는 잘 끼워진 것 같다.
 
 
  세계 최고 전투기들과의 만남
 
2000년 F-15E 평가비행을 직접 했다. 현재 국방 최일선에서 최선의 역할을 하는 F-15K를 볼 때면 평가비행을 담당했던 한 사람으로서 감개무량하기가 그지없다.
  KT-1 시험비행을 마무리하고 ‘이제 다시 전투조종사로 돌아가는구나!’ 마음 정리를 하고 있을 때 난데없이 T-50(現 공군 고등훈련기) 시험비행을 준비해야 되지 않느냐는 얘기가 나왔다. 몇 년 후면 T-50 시험비행이 시작된다면서 말이다. 설마 나는 아니겠지 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준비하라는 명령과 함께 T-50이 KF-16과 비슷하니 반년 동안 KF-16 비행훈련을 받고 개발현장(現 한국항공우주산업·이하 KAI)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전투조종사로서 작전 분야와 멀어진다는 아쉬움도 잠시, 나도 모르게 서산기지에서 KF-16 비행훈련에 몰입했다. 10여 회의 비행을 통해 컴퓨터로 제어되는 전투기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이후 KAI로 달려가 T-50에 몰두했다. 한편 공군본부에서는 T-50 개발과는 별개로 차기 전투기(F-X) 도입사업을 조심스럽게 진행하고 있었다. 1999년 말에 본격적인 사업 진행을 위한 평가단이 구성됐는데 평가비행 조종사로 평가단에 들어갔다.
 
  당시 차기(次期) 전투기 대상 기종은 SU-35(러시아), F-15E(미국), Rafale(프랑스), Typhoon(영국/독일/스페인/이태리)이었다. 평가비행 조종사의 임무는 현지에서 실제 비행을 통해 우리가 요구한 성능이 제대로 발휘되는지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었다. 평가비행 조종사 3명 중 나의 임무는 주로 항공기 성능을 확인하는 거였다. 모든 기종이 명성만큼이나 대단한 성능을 갖고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4개 기종 모두 조금씩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항공 선진국들이 정성을 들여 개발한 차원 높은 전투기를 한꺼번에 집중적으로 보고, 느끼고, 비교하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값진 경험이었다. 비록 기종선정 과정에서 다소 혼란을 겪기도 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F-15K가 선정됐다. 현재 국방 최일선에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는 F-15K를 볼 때면 평가비행을 담당했던 한 사람으로서 감개무량하기가 그지없다.
 
 
  T-50 개발에 전력투구하다
 
  다시 T-50 개발현장으로 돌아온 시기는 2001년 말이다. 2002년 중반을 목표로 계획한 T-50 초도비행은 이미 2년 선배가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었다. 다소 지연되긴 했지만 T-50 초도비행은 2002년 8월에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시험비행은 시제 2호기가 나오면서 가속도가 붙었다. 나는 본격적으로 T-50 시험비행에 참여했고 2003년 2월 19일에 T-50 최초 초음속비행 임무를 맡았다. 4만 피트(약 1만2000m) 상공에서 음속(마하 1.05)을 돌파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 12번째로 고유모델 항공기로 초음속 돌파에 성공한 국가가 됐다.
 
  흔히 T-50을 작은 KF-16이라고 한다. 비슷하게 만들었다고 해서 시험비행을 통해 확인하지 않고 그냥 넘어간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엔진이 하나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엔진의 재시동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공중에서 쌩쌩한 엔진을 껐다 켜는 ‘위험한’ 시험비행도 거쳤다. 엔진의 신뢰성이 얼마나 높으면 엔진 하나로 항공기를 만들 생각을 했겠는가. 그런 엔진을 공중에서 일부러 끄다니…. 멀쩡한 정신상태로는 선뜻 하기 힘든 일이었다.
 
  더 심한 것은 항공기를 일부러 조종불능 상태에 빠트린 후 항공기의 반응을 확인하는 시험비행이었다. T-50은 훈련기로 사용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훈련조종사의 미숙한 조작으로 비정상(非正常) 상황이 발생할 때 항공기가 안전한 상태로 회복되는 것이 보장돼야만 했다. T-50은 수많은, 위험천만한 시험비행을 모두 성공적으로 이겨냈다. 마침내 2005년 서울에어쇼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어쇼에서 처음으로 대내외(對內外)에 공개했다.
 
  에어쇼에서 시범비행을 맡은 나는 부담감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나 KT-1 시범비행 경험을 되살려 차근차근 준비했다. 우선 록히드마틴사(社)의 시험비행 조종사 중 시범비행 전문 조종사로부터 T-50과 성능이 유사한 F-16의 시범비행 교육을 받았다. 급기동 요령, 안전사항 등 전반적으로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 시범기동에 대해 이론적으로 무장한 나는 다음 단계로 현 수준에서 T-50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기동을 선정했다. 시뮬레이터를 통해 수없이 반복하면서 관련 기동을 최적화했으며 수십여 차례 실제 연습비행을 통해 조종술을 숙달했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일정한 패턴이 나올 수 있도록 말이다.
 
  어떻게 보면 에어쇼에서의 시범비행 원칙은 너무도 단순하다. 청각적으로는 소리가 커야 하고 시각적으로는 기동이 역동적이면서 관중의 시야를 계속해서 끄는 것이다. 그래서 1초의 여유도 사치스럽다. 에어쇼에서뿐만 아니라 시험비행이 종료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쇼 아닌 쇼’를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다. 7분간의 시범비행 기동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그려지는 것을 보면, 나의 몸과 T-50이 진정으로 하나가 됐던 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싫은 내색 안 하고 담담하게 힘든 기동을 이겨낸 T-50에 오히려 감사한 마음을 전할 따름이다. 더군다나 T-50을 인도네시아, 필리핀, 이라크 등에 수출했으니 ‘국가 효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T-50을 도입하려는 아랍에미리트에서도 승전보가 들려오기를 기대한다.
 
 
  과연 차세대 전투기답다!
 
미 에글린 공군기지에서 F-35A 현지평가를 실시했다. 실제 비행은 단좌항공기라 불가했다.
  10여 년 전 F-15K 도입 당시의 평가 경험이 반영된 것인지는 몰라도 2012년 3월 차세대(次世代) 전투기(F-X) 도입사업에 시험평가팀장으로 참여했다. 팀장으로서 업무에 대한 부담감은 컸지만 말로만 듣던 스텔스기(機)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번에는 유럽의 Typhoon, 미국의 F-15SE(Silent Eagle)와 F-35A가 대상기종이었다. F-35A가 최후 승자가 되었다.
 
  과거와는 달리 시험평가를 포함한 기종선정, 기술이전 협상 등 모든 사업 진행 과정이 매스컴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달되다 보니 시험평가를 담당했던 나로서는, 지금에 와서 특별히 거론할 만한 내용은 없지만 가장 이슈가 되었던 ‘스텔스’에 대한 정리는 필요할 것 같다. 흔히들 스텔스기는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기존의 항공기에 비해 ‘레이더에 늦게 잡힌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스텔스기의 우열은 레이더반사면적(RCS·Radar Cross Section)이라는 값으로 단순 비교를 할 수 있는데 정확한 RCS 값은 비밀로 분류돼 있어 우열을 가리기란 불가능하다. 단지 추측한 RCS 값만 떠돌기 때문에 그 누구도 스텔스기의 우열을 명확히 가리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스텔스 전투기가 기존의 전투기에 비해 월등한 작전수행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F-35A는 보다 강력한 대한민국 안보 지킴이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이다. F-35A를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세심한 눈으로 바라본 조종사의 소리 없는 외침이라 하겠다.
 
 
  한국형 전투기(KFX)와 함께라면
 
  F-35A 관련 업무를 마치고 나서 뒤를 돌아다보니 군 생활 30여 년 중 3분의 2를 비행기(KT-1, T-50)를 만들고 최고의 전투기(F-15K, F-35A)를 들여오는 일에 모든 정열을 다 바쳤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스럽게도 KT-1, T-50은 후배 조종사들로부터 싫지 않은 평가를 받으며 훈련기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 더군다나 수출까지 이어지고 있어 개발에 참여했던 조종사로서 가슴 벅찬 기쁨을 느끼고 있다.
 
  F-15K는 어떤가. 국가안보에 관련된 문제만 터지면 언론에 맨 먼저 나오는 F-15K가 아닌가. 몇 년 후 F-35A가 도입되면 국가안보는 더 한층 굳건해질 것이 확실하다. 내가 최선을 다했던 항공기들이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다하고 있는 것을 보면 20여 년간의 시험비행 조종사 생활도 나름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20년대 초반이면 KT-1, T-50, FA-50의 뒤를 이어 한국형 전투기(KFX) 탄생을 맞이한다. 많은 세월을 고민한 끝에 개발이 결정된 만큼 완벽한 작품이 나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KT-1과 T-50 탄생과 성장을 옆에서 지켜보고 돌본 사람으로서 KFX도 좀 더 가까이서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수없이 드는 것이 나의 욕심일까. 솔직히 국가에 대한 마지막 의무라는 생각이 앞선다. 어찌되더라도 나의 마음은 항상 KFX와 함께할 것이고 성공적인 개발을 위한 아낌없는 성원을 보낼 것이다.
 

  [체험記 2] 美 해병대 F/A-18 전투기 조종사 출신 데이비드 박 중령
 
  “테스트 파일럿,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
 
  ⊙ F/A-18, F-15, F-16 등 43개 기종 조종… 美 조종사 중에서도 흔하지 않아
  ⊙ “믿어라 그러나 반드시 검증하라”
 
  데이비드 박
  ⊙ 49세. 미국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Caltech) 항공우주공학과 졸업.
      테네시대학교 항공시스템공학과 및 플로리다공대 석사. 美 해군 TOPGUN 및 공군시험비행학교 졸업.
  ⊙ 미 해군시험비행학교 교관, 미 국방방위사업관리자(F-35·F135·F/A-18 사업관리 및 F-35 시험평가),
      한미연합사 국제담당장교로 한국 합동참모본부 근무, 미 해병대 소속 F/A-18 전투기 조종사,
      총 2865시간 비행, 2015년 미 해병대 전역. 현재 미국 BAE Systems 이사.
 
F/A-18 슈퍼호넷에 AIM-9X 미사일을 처음으로 장착해 시험발사하는 장면이다. 필자가 직접 시험비행하고 미사일을 발사했다. 당시 전투기 속도는 마하 1.5였다. 슈퍼호넷은 기존 F/A-18보다 30% 이상 향상된 전투기로 현재 미군 주력전투기다.
  어릴 적부터 과학을 좋아했다. 장차 나사(NASA) 엔지니어가 꿈이었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을 다니면서 여름방학 때는 당시 맥도널드 더글러스 항공(McDonald Douglas Space Systems Division)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던 중 같이 일했던 분들과 ‘미라마(Miramar)에어쇼’에 간 후, 만드는 것보단 타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됐다. 그때부터 전투기 조종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은사의 조언으로 대학졸업 후 미 해병대 사관후보생으로 군에 입대하기로 마음먹었다.
 
  고생 끝에 미 해병대 전투기 조종사가 된 후에는 시험비행 조종사(Test Pilot)에 눈독을 들였다. 보통 공과대 출신의 전투기 조종사는 NASA 우주인이 되고 싶은 희망을 갖는다. 우주인은 테스트 파일럿 과정이 필수 조건 중 하나다.
 
  나는 전투기 조종사가 된 후 관련 경력을 쌓기 시작했고 운이 좋아 영화로 유명해진 ‘탑건(TOPGUN) 과정’도 수료했다. 은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 두 번째 신청 만에 허락을 받아 에드워드 공군기지(Edwards Air Force Base)에 있는 미 공군시험비행학교(USAF TPS)에 들어갔다. 그때가 2001년이었는데, 그해 대한민국 공군에서 교육생이 온다는 소식에 기대가 컸었다. 안타깝게도 영어 시험 조건에 미달해 못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
 
  공군시험비행학교 교육 과정은 2년 대학원 석사 과정을 1년 만에 끝낸다. 짧은 시간에 시험비행은 물론 독서, 리포트, 마지막으로 학위 논문까지 마쳐야 한다. 영어를 하면서 자란 사람들도 하기 힘든 과정이어서 영어 필수 자격 조건이 굉장히 높다.
 
  나는 해병대 조종사로서 해군 비행체계에는 익숙했다. 그런데 미 해군시험비행학교(USNTPS)에 가지 않고 공군시험비행학교를 갈 수 있었다는 점에 운이 매우 좋았다고 생각한다. F-16, F-15, C-12 등을 조종할 수 있었고, C-130, C-17, KC-135 등 덩치가 큰 비행기도 몰았다. 미 해군시험비행학교 교관으로서 테스트 파일럿의 임무를 다 마칠 때까지 헬기, 엠브라에르(Embraer) 여객기, 그리펜(Gripen) 등 총 43개 기종을 조종했다. 미군 조종사 중에서 이 정도의 기종 경험은 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테스트 파일럿으로서 가져야 하는 다양한 지식과 경험이다. 나는 여러 종류, 여러 기종의 비행기를 조종해 보면서 각각의 장단점을 체험했다. 시험 비행기의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제언하는 능력도 얻었다.
 
 
  한국 공군 시험비행과의 인연
 
한미연합훈련 때 한국 공군 조종사 등을 대상으로 실전 강의를 하곤 했다.
  이런 연유로 미군(美軍)에서 운영하는 각종 시험비행학교는 물론 2014년부터 대한민국 공군 제52시험비행전대와 교류를 시작했다. 그해 한미(韓美) 군당국의 시험비행 교육이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한국 공군의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당시 합동참모본부 전력기획본부장이었던 박신규 중장, 공중전력과장 최종태 준장, 박대서 대령, 검열과 김성환 대령, 공군본부 장시원 소령, 52전대 최윤재 대위 등이 열심히 뛰었다.
 
  2015년에는 공군본부의 담당자로 새로 부임한 오승현 소령이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미 해군시험비행학교와 교류했다. 최윤재 대위도 합류했는데 교류가 끝나고 나서는 미 해군 측에서 매년 교류를 하자는 제안까지 했다.
 
  KF-X 사업을 앞둔 대한민국으로서는 시험비행 전문가를 양성하는 데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미국, 영국 등에는 민간 시험비행학교도 있다. 그런데 이들 학교와 미군이 운영하는 학교의 차이점은 바로 풍부한 자원과 접근성이다. 민간학교에선 마련할 수 없는 항공기가 수없이 많고, 자체 공역(空域)에서 하는 군사 훈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15년 12월 미 해군시험비행학교에서 F/A-18F를 조종하고 온 한국 공군 52전대 교관은 “세상에 그렇게 좋은 비행기가 있는지 몰랐다”는 소감을 밝힌 적이 있다. 훈련기와 전투기는 차이가 많이 나며, 심지어 FA-50과 4세대 전투기의 차이는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F/A-18도 작전 경험이 많은 테스트 파일럿들이 초기 개발 과정부터 참여했기에 좋은 비행기로 탄생했다. 항공기 개발업체 엔지니어와 비행·작전 경험이 적은 분들 중심으로 전투기를 개발할 때는 차후 많은 문제점이 드러난다. 그래서 항공 전문지식을 가진 공군 시험비행 조종사들이 처음부터 개발에 참여하는 것이다. 지금 막 시작한 ‘한국형전투기사업(KF-X)’도 이런 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Trust but verify’
 
나는 전투기 조종석에 아내와 부모님의 이름을 새겨놓고 시험비행을 해왔다. 시험비행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일이지만 국가와 동료를 위해 목숨을 걸고 하는 명예로운 임무다.
  전투기 조종 중에서 시험비행은 세상의 직업 중에 제일 위험한 직업이라고 한다. 비행을 하다 보면 작은 실수나 작은 결함으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있지만, 훈련 단계에서 목숨을 건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에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것으로는 ‘국가와 전우를 위한 전투’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본다. 그런 측면에서 시험비행은 ‘국가와 전우를 위한 전투’라고 생각한다.
 
  시험비행은 무엇이든 처음 하는 비행이다. 때문에 위험 요소가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래서 목숨을 걸고 한다. 시험비행에 앞서 사전 연구분석, 시험결과 예측 등을 면밀히 파악해 둬야 한다. 영어로 ‘Trust but verify’라고 하는데 비행기를 믿되 검증하고 또 검증해야 한다. 이를 통해 다른 전우가 비행할 때 더 이상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스승과 선배로부터 많이 배우라고 가르침을 받았다. 자수성가(自手成家)한 분들을 본받으라는 말도 많이 들었는데, 알고 보면 혼자만 잘해서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잘될 수 없다. 나 또한 테스트 파일럿 임무를 수행하며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중에서 전투기 제조회사의 테스트 파일럿이었던 마이클 월러스(Michael Wallace)와 리카르도 트래븐(Ricardo Traven)에게서 많은 걸 배웠다. 월러스에게서 ‘통제 불가능 상황(Out of Control)’을 배웠고, 트래븐에게서는 ‘비행통제술(Flight Control Software)’을 전수받았다.
 
  미 공군시험비행학교 과정을 마치고 테스트 파일럿 임무를 시작한 것은 2002년 6월이었다. 9·11테러 사건이 이듬해였는데 조인트 스트라이크 파이터(JSF)를 개발하기로 결정이 난 상황이었다. 때문에 테스트 파일럿으로서 할 일이 많았다. 대(對)테러 전쟁을 시작하면서 전력화 초기 단계였던 F/A-18E/F 슈퍼호넷(Super Hornet)이 작전에 필요한 여러 가지 유도무기를 시험발사하는 비행을 계속했다. 이는 예산이 많이 소요되는 것이라 시험비행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이런 일도 있었다. 여러 무기를 장착하고 마하 이상의 속도에서 무기를 한꺼번에 다 쏘는 시험비행이었다. 이럴 때는 보통 때와 달리 전투기 연료 소모가 굉장히 빠르다. 모든 무기를 장착한 상황이라 전투기 중량이 많이 나가며 전투기 기동 또한 보통과 달리하기 때문이다. 수시로 공중 급유를 받으며 시험비행을 하는데 한번은 공중급유기가 기지로 복귀한 상황에서 테스트 비행을 했다. 시험비행을 마치고 나니 연료가 모자라 하마터면 추락할 위기에 빠진 적도 있었다.
 
 
  “I rather be lucky than good”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는 얘기인데 항공모함에서의 이륙·발사시험이다. 통상 해군이나 해병대가 새로운 무기나 여러 장치 등을 실전배치 할 때는 항공모함 발사시험을 필수적으로 한다. 그런데 시험발사할 때는 보통 때보다 강도를 훨씬 높게 한다. 함재기도 마찬가지이다. 보통 항공모함에서 4G(중력의 4배) 정도로 이륙하는데 지상에 설치된 항공모함 발사 시험장에서는 5.5G로 높여 실시한다. 이때의 기분은 달려오는 기차와 충돌하는 느낌이다. 마치 눈이 머릿속으로 푹 박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2초 만에 이륙하는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이다. F/A-18 슈퍼호넷에 새로운 무기를 장착, 시험비행을 할 때도 그랬다. 남들이 위험한 일이라고 꺼리는 것도 관심과 애정, 재미를 갖고 하면 못 할 게 없다고 생각한다.
 
  미 해병대 전투기 조종사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I rather be lucky than good.”
 
  나는 정말 행운아(幸運兒)다. 은사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운이 좋아 좋은 경험도 많이 했고, 시험비행도 많이 했다. 세계 최초로 음속 돌파에 성공한 척 예거(Chuck Yeager) 장군을 에드워드 미 공군기지(EAFB)에서 만났고, 미 해병대 전투기 조종사 출신이자 머큐리(Mercury) 우주선의 우주인으로 미국인 최초로 우주 궤도를 돌았으며, 미 상원의원으로 활동했던 존 글렌(John Glenn)도 만났다. 이런 다양한 경험을 대한민국의 훌륭한 조종사들과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국가사업인 한국형전투기개발사업(KF-X)도 성공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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