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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포커스

G-0시대의 美中 관계와 한반도

한국은 미군과 함께 피를 흘릴 각오가 되어 있나?

글 :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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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은 경제·정치적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 없는 G-0시대
⊙ 트럼프가 무역장벽 주장하는 것은 금융만으로도 글로벌 覇權 유지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
⊙ 北核·對北제재 문제는 中 입장에서는 美의 압력 비켜갈 수 있는 좋은 구실
⊙ 中, 적어도 한반도 문제에서는 G-2로 등장

劉敏鎬
⊙ 55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일본 마쓰시타 정경숙 15기.
⊙ SBS 보도국 기자, 일본 경제산업성 연구소(RIETI) 연구원.
    現 워싱턴 ‘Pacific, Inc’ 프로그램 디렉터, 딕 모리스 선거컨설턴트 아시아 담당 소장.
⊙ 저서: 《일본내면풍경》《미슐랭을 탐하다》 등.
동맹은 피로 유지하는 것이다. 작년 12월 한미연합 도하훈련에 참가한 한국군과 미군이 목표지점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꽂으며 축하하고 있다. 사진=육군
  “트럼프는 200년 동안 지켜져 온 무역관련 경제의 원칙을 깨고 있다.”
 
  지난 3월 10일 《뉴욕 타임스》에 실린 톱 스토리다. 자유로운 무역 대신 무역을 제한할 경우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더 많다고 주장하는 트럼프의 경제정책에 관한 분석기사다.
 
  19세기 말 이래 서방은 자유무역을 원칙으로 해 왔다. 트럼프는 다르다. 중국·일본·한국 등 아시아발(發) 수입상품에 대해 관세를 높게 부과하고, 외국에 공장을 만드는 미국 기업에 대한 징세(徵稅)를 강화해서 미국 노동자의 일자리를 확보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기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중국산 제품에 대해 일괄적으로 45%의 세금을 물리겠다고 공언했다. 중국은 2015년 한 해 동안 3660억 달러의 대미(對美)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그는 “중국이 저가(低價)의 노동력을 통해 미국인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있다”고 비난한다. 중국과 거래를 하면 할수록 미국이 손해를 보고, 결국엔 미국이 침몰한다는 논리다.
 
 
  트럼프는 美 국민의 아바타
 
  《뉴욕 타임스》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을 통해 트럼프의 논리가 효과적으로 나타난 경우도 있다고 설명한다. 2009년 중국산 타이어 제품에 대한 오바마의 보복성 관세 35%가 그 예(例)이다. 그 결과 물밀 듯 들어오던 중국산 저가 타이어 수입이 줄어들고, 타이어 관련 미국 노동자의 재취업도 가능해졌다. 오바마는 2012년 연두교서에서 이를 자신의 치적(治績) 중 하나로 자랑했다. 한국에도 가끔씩 전해지긴 했지만, 트럼프는 환율조작을 일삼는 일본·한국에 대해서도 보복성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수차례 천명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는 단순히 보호무역을 주장하는 정도가 아니라, 지난 200여 년 동안 국가 간 상식으로 여겨 온 무역원리 그 자체를 부정하는 대통령 후보”라고 결론지었다.
 
  전체적인 논조를 보면, 트럼프를 경제 문외한(門外漢)인 포퓰리스트 수준으로 보지 않고,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후보로 분석하고 있는 게 보인다. 사실 트럼프의 주장은 일반적인 미국 국민의 바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의 반중·반일(反中·反日)은 감정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일자리와 관련해 피부로 느끼는 문제다. 기사에도 나오지만, 트럼프는 단 한 장의 티셔츠도 미국 내에서 생산하지 않는 2016년의 상황을 대변한다. 중국산 티셔츠가 들어오는 게 문제가 아니라, 티셔츠를 만들던 미국인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사라진 게 문제다.
 
  “티셔츠 공장의 노동자들이 다른 곳으로 가서 재취업을 하면 되지 않겠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현실은 척박하다. 오바마가 일자리를 늘려 나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실업률(Unemployment Rate)은 5%에 달한다. 갤럽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기 능력에 비해 저가의 임금으로 일하는 사람, 즉 저평가 취업률(Underemployment Rate)의 경우 무려 14.7%에 달한다(2016년 2월 기준). 미국 경제학자들은 2020년이 되면 미국의 실업률은 다시 7%대로 올라가고, 저평가 취업률도 20%대에 육박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트럼프와 같은 유의 주장은 일시적 감정분출이 아니라, 시대적 흐름이 될 전망이다. 트럼프는 그런 상황이 만들어 낸 미국민의 아바타라고 볼 수 있다.
 
 
  오바마와 왕이의 만남
 
G-0개념을 주창한 이언 브레머.
사진=위키피디아
  중국 외교부장 왕이(王毅)는 지난 2월 23일부터 3일간 워싱턴을 공식 방문했다. 마침 터진 북핵(北核)문제 때문에 대북(對北)제재 문제가 중요한 현안이 되었지만, 진작에 예정되어 있던 방미(訪美)였다. 마침 미국은 국무부·국방부 할 것 없이 중국이 남중국해에 9개의 인공섬을 건설하고 있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규탄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오바마가 왕이를 만나 준 것이다. 5분 정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오바마는 남중국 문제를 배제한 채 미·중관계 강화라는 원칙론을 강조했다.
 
  아무리 중국이 뻗어 가는 나라라고 하지만, 오바마가 일국의 외무장관을 만나 주는 것은 ‘결코’ 일상적인 일이 아니다. 영국·프랑스·독일처럼 미국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나라의 외무장관이면 몰라도, 전투기와 항공모함을 통해 미국에 대한 적의(敵意)를 숨기지 않는 나라의 외교수장(首長)을 백악관에 불러 ‘덕담’으로 일관했다는 것은 이상하다. 두 사람의 만남은 격(格)에 맞지도 않고, 만났어도 별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그런 자리를 백악관이 마련한 것이다.
 
  워싱턴 관계자에 따르면 왕이의 백악관 접견은 최후까지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워싱턴을 방문하는 정치인이나 정부 고관은 백악관에서 미국 대통령과 사진 한 장 찍는 것이 꿈이다. 오바마는 그런 꿈을 중국 외교수장에게 선사한 것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관영 CCTV 등 중국의 모든 매체가 이 사실을 톱뉴스로 보도했다. ‘중국은 미국이 결코 무시하지 못할 나라’라는 점을 은연중 과시한 것이다.
 
  트럼프의 새로운 경제정책, 오바마와 왕이의 만남은 현재의 미국, 나아가 세계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상황을 설명하는 말이 ‘G-0(제로)’다. 2010년 국제정치 무대에 등장한 G-0라는 말은 글로벌 현실정치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고 있는 용어다. 2011년 2월 1일 《뉴욕타임스》 시사용어 해설란을 통해 그 뜻을 알아보자.
 
  〈경제적·정치적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나라나 블록이 없는 상태를 설명하는 말. 주창자인 이언 브레머(Ian Bremmer)와 데이비드 고든(David Gordon)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에 기고한 글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그 어떤 나라나 블록도 국제적 이슈를 단독으로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이 나타났다”고 말한다. 미국이 글로벌 파워를 대표하는 유일한 나라인 것은 사실이지만, 인적·물적 자원이 고갈되는 상황이고 글로벌 문제보다 국내정치 분야에 사로잡히면서 세계를 지도할 힘을 잃어 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대신하는, 세계를 이끌 대안(代案)의 나라는 없다.〉
 
  간단히 말해 G-0시대란 국제경찰이 사라진, 힘 빠진 왕을 중심으로 한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 나아가 모두가 목소리를 높이는 백가쟁명(百家爭鳴) 시대를 말한다. 인터넷 모바일 시대가 되면서 인류의 대부분은 전 세계가 자신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믿게 된다. 내가 곧 지구와 우주의 중심이다. 지구촌 200여 나라도 마찬가지다. 각자가 목소리를 높이면서 자기주장에 열을 올린다. 냉전(冷戰) 시대에는 미국과 구(舊)소련이, 20세기 말에는 카우보이 미국이 백가쟁명을 정리정돈했다. 21세기는 다르다. 세상을 야만 시대로 되돌린 이슬람 국가(IS) 문제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것이 2016년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모두가 국내정치 기준에 의해 계산을 하기 때문에 글로벌 차원의 해결책이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금융무기화’
 
  미국과 러시아가 지상군을 파견할 경우 IS 하나 없애는 것은 식은 죽 먹기다. 그러나 오바마는 행동을 주저한다. 지난해 12월 17일 오바마는 미국 주요 언론사 간부와 만난 자리에서 “미국 지상군이 IS와의 전쟁에 나설 경우 하루 100명의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21세기 미국은 하루 100명, 아니 하루 10명의 미군 사망자도 견뎌 낼 수 없는 것이다. 미국 언론 가운데 IS와 싸우기 위해 지상군을 파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곳은 한 군데도 없다.
 
  G-0는 무력(武力) 약화와는 무관하다. ‘평화안전 제일주의’의 결과다. 죽어도 좋다고 달려드는 집단이나 나라에 맞서 100명, 아니 1000명, 나아가 1만 명의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해결점을 찾겠다는 의지가 애초부터 없는 것이다. 미국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외교문제를 통해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것도 G-0시대의 당연한 결과이다.
 
  그러나 G-0시대에도 전 세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미국은 ‘카우보이’로서의 영향력은 약화됐다. 그러나 다른 부분의 파워를 통해 글로벌 패권(覇權)은 지키고 있다. 미군의 출혈(出血) 없이, 글로벌 지분(持分)은 그대로 지키는 리더십이다.
 
  어떻게 그런 상황이 가능할까? G-0 주창자 이언 브레머는 ‘금융무기화(Weaponization of Finance)’와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라는 말로 풀이한다.
 
  ‘금융무기화’란 금융을 통한 글로벌 경제통제를 의미한다. 금융을 가지고 대치 중인 나라나 블록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는 전략·전술을 구사한다. 이것이 G-0시대의 특징이다. 최근의 미국 금리(金利)인상이 좋은 예다. 중국경제 전체가 난리를 치고 있다. 2014년 6월 4조 달러에 달했던 외환은 불과 2년 만에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2013년 말 달러당 6.1위안(元)까지 갔던 인민폐(人民幣)는 3월 7일 기준으로 6.52위안까지 9%가량 떨어졌다. 미국 금융계는 올해 중국의 외환자본 유출이 최소한 1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이 금리를 0.25% 인상한 것 때문에 중국 금융과 외환시장 전체가 들썩거리고 있는 것이다.
 
 
  “금융무기화의 최대 희생자는 中·러”
 
  지난 3월 중순 방영된 미국 CNBC 중국경제 프로그램에서는 미국이 금리를 1%포인트 높일 경우 중국의 외환은 1년 만에 제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만간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월스트리트 금융 하나만으로도 미국이 견제할 수 있는 나라가 중국이다.
 
  이언 브레머는 “금융무기화의 최대 희생자는 중국·러시아와 같은 국가자본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분석한다. ‘국가자본주의’란 기업이 아닌 국가가 직접 나서서 자본을 축적해 나가는 경제체제를 말한다. 노동조합·복지·환경 같은 것들을 고려할 필요 없이 한꺼번에 힘을 모아서 엄청난 자본을 순식간에 축적해 나가는 시스템이다. 이런 나라는 자본을 축적하는 동안 자율적인 금융시장 운영을 소홀히 하면서 자본시장을 보호한다.
 
  그러나 세계는 이미 글로벌 금융일원화 체제 아래 있다. 아무리 사회주의 체제라 해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의 금융제재로 러시아 경제가 비틀거리고,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자 중국경제는 하향세를 이어 가고 있다. 국가자본주의의 약점을 파고든 미국의 금융무기화의 결과다.
 
  트럼프가 내세우는 경제정책은 이런 G-0 상황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중국과 담을 쌓더라도, 금융만으로도 미국의 패권과 이익을 증진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트럼프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그가 부동산 사업을 하면서 뉴욕 월스트리트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아니라 그 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다 해도 그와 비슷한 경제정책을 추진할 것이다.
 
  오바마가 백악관에서 중국 외교부장 왕이를 만나 양국 간 우호관계를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G-0 상황에서 파생될지도 모를 지역 내 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다.
 
  이언 브레머가 말하는 G-0의 특성 중에 ‘중심축 국가(Pivot State)’라는 개념이 있다. ‘글로벌 문제에 관해 모두가 손을 놓는 상태에서, 자주적으로 외교를 행하는 나라’를 말한다. ‘중심축 국가’는 특정 국가에 예속되지 않고, 상황과 환경에 따라 좌우를 오가면서 자신과 이해관계에 맞게 행동한다. 자국의 국가이익을 지키고, 강대국 간 조정역을 맡는다. 모든 나라가 원하는 국가 모델이지만, 실제로 이를 실행할 능력을 가진 나라는 극히 드물다.
 
  혹자는 미국을 ‘황혼대국(黃昏大國)’이라고 한다. 그러나 미국이야말로 대표적인 ‘중심축 국가’다. 아시아에서 미국은 일본은 물론 중국과도 다양한 분야에서 친분을 과시한다. 언젠가 북한과 미국이 외교관계를 맺을 경우, 워싱턴이 남북한 사이에서 양다리외교를 할 수도 있다.
 
  미국 옆에 있으면서도 사안에 맞게 독자적 외교를 펼치는 캐나다도 ‘중심축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반대하면서 미군 탈영병 보호소 역할을 했던 나라가 캐나다다. 반대로 미국 옆에 있으면서 거의 반(半)식민지국으로 전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