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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爆沈 6주기

UDT 현장지휘관이 쓴 천안함 탐색구조作戰 56일간의 기록

“어뢰 꼬리 부분이 보였다.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글 : 박건영  월간조선 인턴기자  

글 : 백승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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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청난 양의 잔해물 올라와… 마치 물속 戰友 영혼들이 그물에 잔해물을 담아주는 느낌”
⊙ “北 21인치 어뢰… 미국 폭발물 처리반 교육 때 수없이 본 것”
⊙ “軍艦이 좌초로 조각이 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다들 눈치 보기 급급”
⊙ “힘들 때일수록 서로를 의지해야 하는 것이 軍人의 길”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爆沈) 당시 해군 특전대 현장지휘관으로 탐색구조활동에 참여했던 현역 장교가 긴박했던 순간들을 기록한 작전일지(日誌)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권영대(51·權永代) 대령(당시 중령)은 당시의 구조작전 실황을 토대로 최근 《爆沈 어뢰를 찾다! 천안함 水中작업 UDT 현장지휘관의 56일간 死鬪》(조갑제닷컴)를 냈다. 탐색구조단 내(內) UDT/SEAL 현장책임자였던 권 대령은 “천안함 폭침이 아직도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위해 당시 수행했던 임무 내용과 작전상황을 최대한 상세하게, 사실대로 보여주려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강력한 意志로 찾은 스모킹 건
 
權永代 대령(당시 중령)은 당시의 구조작전 실황을 토대로 최근 《爆沈 어뢰를 찾다! 천안함 水中작업 UDT 현장지휘관의 56일간 死鬪》(조갑제닷컴)를 냈다.
  권 대령은 천안함과 같은 유형의 ‘여수함’ 함장(艦長)을 지냈다. 1년 중 150일 이상 해상 작전을 수행했다. 그는 천안함 폭침 당일 밤 뉴스 보도를 접한 직후 기뢰나 암초에 의한 좌초가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어뢰에 의한 격침은 생각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폭침 발생 다음날 UDT/SEAL의 지휘관으로 현장에 출동, 생존자 구조 및 사건 현장 탐색작전을 수행하면서 북(北)의 소행이라는 사실을 직감, 증거 찾기에 주력했다. 하지만 스모킹 건(Smoking Gun·결정적 증거)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쌍끌이 어선을 동원해 바다 밑을 샅샅이 훑었다. 사막에서 바늘 찾듯 한 원시적인 방법이었다. 그 외의 다른 수단은 없었다. 그러던 중 폭침 발생 50일째인 2010년 5월 15일, 천안함 폭침 현장 멀지 않은 곳에서 ‘북 어뢰 추진체’를 건져 올렸다. 대평 11호 선장 김남식(金南植)씨와 선원들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권 대령은 “우연히 스모킹 건을 찾아낸 것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와 엄청난 고민, 그리고 강력한 의지로 가능했다”고 밝혔다.
 
  천안함 탐색구조단의 임무에는 아무런 공작도, 음모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폭침의 원인과 증거물을 확보하기 위한 고군분투(孤軍奮鬪)만 있었을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UDT의 살아 있는 전설(傳說) 한주호 준위가 희생됐다. 권 대령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군인을 왜 못 믿는 것인가. 우리나라 군인을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총을 쥐여주고, 나라를 안전하게 지킬 것을 바라면서 편히 잠을 잘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권 대령이 현장에서 써내려간 천안함 탐색구조작전 56일간의 기록 중 긴박했던 주요 순간들을 날짜순으로 정리했다.
 
 
  2010.3.26. 금. 맑음
 
  저녁 9시 뉴스를 보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중 21:40분경 갑자기 긴급 속보로 ‘서해 백령도 해상에서 군함 침몰 중’이란 자막이 떠올랐다.
 
  ‘실제상황!’
 
  부대원 모두가 자연스럽게 출동을 생각하고 있었다. 예하 지휘관 및 참모들이 비상소집 되었고, 긴급하게 폭발물 처리반(EOD) 요원들을 중심으로 출동인원을 편성했다.
 
 
  2010.3.28. 일. 맑음. 파고 1.5m 풍속 15kts
 
  첫 번째 조로 잠수를 실시한 한주호 준위와 김정오 상사가 함수(艦首)를 발견하지 못하고 부상했다. 벨트중량을 강화시킨 두 번째 조가 잠수했다. 약 10분 후 함충호 상사가 긴급하게 부상해 “선체 발견!”을 외쳤다. 최종위치를 확인하고 첫 번째 조를 재(再)투입했다. 수색이 이어지고, 팀원 중 이준수 중사가 찍어온 동영상을 분석한 결과 절단면이 불에 탄 흔적은 없고 굉장히 날카롭게 찢어져 있었다. 내부폭발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부에서 폭발한 것이 아닌가요?”
 
  2010.3.30. 화. 맑음. 파고 1.5~2m
 
UDT의 전설로 불리던 한주호 준위 영결식. 잠수 도중 실신해 세 시간 넘게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으나 끝내 사망했다. 그는 천안함 수색 당시 후배들보다 먼저 찬 바다에 뛰어들어 통로를 확보하는 등 UDT의 귀감을 보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사고해역 인근에 배치된 독도함을 방문했다. 함상(艦上) 브리핑이 끝나고, 대통령께서 “내부에서 폭발한 것이 아닌가요? 아니면 이렇게 동강이 나겠어요? 내부에서 폭발할 소지가 충분히 있잖아요?”라며 질문을 이어나갔다. (해군참모)총장님께서 아니라는 답변을 쉽게 못 하고 궁지에 몰리신 순간이었다.
 
  “아니라고 말씀하십시오.”
 
  “네가 말씀드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UDT 대대장 권영대 중령입니다. 내부폭발과 관련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절단면 부근과 근처에 있었던 모든 물건들에서 불에 타거나 그을음 자체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내부폭발은 없었습니다!”
 
  대통령이 떠나고 나서야 핸드폰을 들었다. 박수철 대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대장님, 문제가 있습니다. 한 명이 아직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누구야?”
 
  순간 섬뜩함이 몰려왔다. 베테랑 한주호 준위였다.
 
  “찾았습니다. 입과 코에 거품이 있고, 의식과 호흡은 없습니다!”
 
  미군의 지원으로 한 준위를 미(美) 살보함으로 옮겼다. 끊임없는 심폐소생술에도 한 준위는 미동이 없었다. ‘사망시간 : 2010년 3월 30일 17:00시.’
 
  “이 답답한 양반아!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말을 안 들어!”
 
  현장 작업은 전면 중단되고, TV에서는 ‘UDT 대원, 잠수 중 사망’이라는 속보가 흘러나왔다.
 
 
  2010.4.4. 일. 맑음. 파고 2m 풍속 20kts
 
  오늘 10:00시에는 수도통합병원에서 고(故) 한주호 준위 영결식이 있었다. 해군장(海軍葬)으로 치러졌다. 현장 대원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부대원들이 영결식에 참가했다. 실질적으로 현장 작전을 같이했던 대원들이 참석해야겠지만 현장을 놔두고 간다는 것은 불가한 사항이었다. 탐색구조단에서는 각 함정 비행갑판에서 의식을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한주호 준위’의 죽음을 보며 슬픔보다는 안타까움이 더했다. 나뿐만 아니라 UDT를 아는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신이 마치 마네킹처럼…”
 
  2010.4.15. 목. 맑음. 파고 1m
 
  오늘 드디어 함미(艦尾) 선체를 완전히 인양하는 작업을 시행했다. 아침부터 고인과 실종자들을 위한 위령제를 올렸다. 끌어올린 함미 선체의 내부 수색을 우선 실시했다. 기관부를 수색하며 함미 식당에 진입했다. 여기저기 시신이 마치 마네킹처럼 널려 있었다. 1, 2, 3…. 군복을 입은 시신은 누군지 식별되지만 대부분이 저녁시간이라 체육복과 간편복을 입고 있어 확인이 어려웠다. 단지 숫자만 늘어갈 뿐이었다. …33, 34, 35, 36.
 
 
  2010.4.22. 목. 맑음. 파고 1m
 
  기상이 오락가락한다. 좋은 날씨가 순간적으로 불량해지고 또 좋아진다. 매번 탐색되는 접촉물들이 실질적으로는 불필요한 것이 많기 때문에 전력들의 낭비요소가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상부에서는 수중 접촉물에 대한 정확한 식별을 요구하였고, 성과가 없을 때에는 지속적으로 책임 추궁을 하였다. 김진황 선배와 나는 비록 선배지만 위로하는 시간들이 잦아졌다. 힘들 때일수록 서로를 의지해야 하는 것이, 군인의 길을 원활하게 걸어갈 수 있는 첩경(捷徑)이란 것을 깨닫고 있는 나이들인 것 같다.
 
 
  2010.4.24. 토. 맑음. 파고 1m
 
  날씨는 양호하고 08:00시부터 함수 선체 인양작업이 시작되었다. 선체의 내부엔 펄 냄새가 진동하였다. 함수 쪽에는 실종자가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는데, 의외로 보수(補修) 하사가 자이로(Gyro) 내에서 발견되었다. 함내 안전 순찰 중에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 같다. 함수는 일정시간 수면상에 떠 있었는데 매우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악을 쓰고 빠져나오지 그랬어? 이 바보야!’
 
 
  2010.4.25. 일. 맑음. 파고 1.5m 풍속 15kts
 
  천안함 선체 인양이 종료되고 이제 남은 것은 수중(水中) 천안함 잔해 인양 및 침몰 원인을 알려줄 그 무언가를 찾는 것이다. 일전에 국방과학연구소 어뢰전문 박사에게 질문을 했었다.
 
  “어뢰 타격 후 어떤 형태의 잔여물이 남는가요?”
 
  “모르죠. 어뢰 실사격 훈련은 대부분이 깊은 바다에서 실시되고, 잔해물을 따로 확인하는 경우는 없으니까요.”
 
  도대체 무엇을 찾아야 하는 것인지…. 일단은 주어진 모든 수중 접촉물을 완벽하게 찾는 것이 임무였다.
 
 
  “뭔가 손에 잡히는 듯해”
 
  2010.4.30. 금. 맑음. 파고 1.5m
 
  “사령관님! 이제 곧 쌍끌이 어선이 이곳에 들어오는데, 쌍끌이 어선을 이용해서 어뢰 증거물을 찾아야 합니다.”
 
  오후에 쌍끌이 어선 대평 11, 12호가 백령도 인근에 도착했다. 만나보고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나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오후 잠수작업을 지시하고 14:00시 대평호로 출발했다.
 
 
  2010.5.2. 일. 맑음. 파고 2m 풍속 20kts
 
  기상이 다소 불량한 가운데 08:30분부터 쌍끌이 어선 운용 시 문제점과 성능을 확인하기 위한 시험운용을 두 번 실시하였다. 시험운용 결과 인양물에 큰 돌멩이와 불가사리 등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고려할 때 해저면 작업이 제대로 된 것으로 판단되었다. 작업 중 그물망이 약 20m 손상을 입었는데 현장에서 그물망 보수가 가능하였고 소요시간은 약 5시간이었다.
 
 
  2010.5.11. 화. 맑음. 파고 1.5m
 
  당연히 군함이 ‘좌초’로 인해 조각이 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인데, 너무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다. 있는 사실 그대로가 나중에도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곳에는 수많은 ‘눈과 귀’가 있다. 항상 떳떳한 것이 제일이고, 실수를 하더라도 사실에 입각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잔소리를 듣다 보니, 조금은 짜증이 났다. 군인도 사람이고, 사람인 이상 완벽할 수 없고, 다만 최선을 다할 뿐인데….
 
 
  2010.5.12. 수. 맑음. 파고 1.5m 풍속 20kts
 
  판단한 대로 작업횟수가 2배가량 늘어 총 7회의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결론적으로 많은 작업횟수가 전체 일정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동안 호흡을 맞췄던 고광범 중령과 표종호 상사가 간다니 많이 아쉬운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여기까지 체계를 잘 만든 주역들인데…. 무척 피곤한 하루지만 이제 뭔가가 손에 잡히는 듯하다. 집에 연락을 하지 않은 지도 꽤 오래되는 것 같다.
 
 
  2010.5.13. 목. 맑음. 파고 1.5m
 
  오늘은 완전히 전투적인 날이었다. 선원들이 거의 쉴 틈이 없을 정도로 작업이 진행되었다. 엄청난 양의 잔해물이 올라왔다. 마치 물속에 있는 전우(戰友)들의 영혼들이 그물에 잔해물을 담아주는 느낌이었다. 수거물 하나하나를 살펴보고, 갑판에 쌓여 있는 수거물을 정리해서 구조함에 인계를 했다.
 
 
  “또 발전기 같은 것이 올라왔네”
 
2010년 5월 15일 쌍끌이 어선 대평 11호 김남식 선장(왼쪽)이 끌어올린 폭침의 결정적 증거물인 북한제 어뢰 추진체. 김 선장은 “天運이 따랐다”고 했다.
  2010.5.14. 금. 맑음. 파고 1.5m 풍속 15kts
 
  오후 15시경부터 외국 조사요원이 승선했다. 국방부의 권태석 중령이 인솔했고, 미국, 스웨덴, 영국, 호주 등 총 7명이었다. 처음에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에 의문을 가지고 있는 듯했지만, 세부절차를 설명하고 직접 잔해물을 인양하는 모습을 보고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런 모습은 역사 이래 없었던 형태였으니까….
 
 
  2010.5.15. 토. 맑음. 파고 1m
 
2010년 4월 15일 천안함 艦尾를 바지선에 인양한 후 폭발물 안전을 확인하는 권영대 대령(왼쪽). 그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군인을 왜 못 믿는 것인가. 우리나라 군인을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총을 쥐여주고, 나라를 안전하게 지킬 것을 바라면서 편히 잠을 잘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양망(揚網·그물을 걷어올림)이 시작되면서 역시나 그물에 많은 잔해물이 올라왔다. 함정의 각종 부속품들이 처참할 정도의 모습을 한 채 그물 속에 담겨 있었다. 한참을 작업하다가 갑자기 갑판장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
 
  “또 발전기 같은 것이 올라왔네.”
 
  작업위치 바로 위쪽에서, 그 말과 함께 조그마한 스크루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도 트윈 스크루…. 2000년도 미국 폭발물 처리 과정에서 어뢰 처리 시 많이 봐왔던 21인치 어뢰 테일(꼬리) 부분이었다. 급하게 계단을 내려가 잔해물을 확인했다.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내가 찾는 것이 이것인가?’
 
  어뢰의 꼬리 부분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일부 나사 부분만 약간 녹이 있는 상태로 스크루 부분은 정확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흰색 밀가루 반죽 같은 것이 여기저기 조금씩 붙어 있었다. 급하게 선장을 불렀다.
 
  “선장님, 이 물건, 바닷속에 얼마나 있었던 것 같아요?”
 
  “오래되지 않은 거네요. 스크루도 잘 돌아가고….”
 
  “선장님, 찾은 것 같네요.”
 
  급하게 조타실로 올라가 5전단장에게 보고했다.
 
  “어뢰 맞아? 저런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데….”
 
  “제가 미국 EOD(폭발물 처리반) 교육받을 때 수없이 본 겁니다. 정확합니다.”
 
  총 5회의 작업을 끝으로 하루 일과를 종료했다. 입항 후 합조단(합동조사단)과 향후 일정을 논의하고, 결과 보고를 작성했다. 수거물이 완벽하게 분석될 때까지 어떠한 언급도 하지 말라는 상부지시에 따라 결과보고 내용에서는 ‘어뢰 발견’ 부분을 별도로 정리하고, 대외 전파 시 제외시켰다.
 
 
  “결정적 증거물 넣어주고 이제 쉬는가 보네요”
 
  2010.5.16. 일. 맑음. 파고 1m
 
  평소와 같이 아침부터 일과를 진행시켰다. 아침에 출항하면서, 합조단 천종필 상사가 진행사항 일부를 알려줬다.
 
  “어제 어뢰에서 ‘1번’이라는 글자가 나왔다는데요. 한글로 나온 글자라 확실한 증거물이 되는 것 아닙니까?”
 
  순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어뢰를 발견했을 때 나름대로 살펴봤는데 ‘1번’이라는 글자를 본 기억이 전혀 없었다. 앞쪽이나, 아주 조그만 글씨로 되어 있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이전과 똑같은 과정으로 오전에 총 5회의 인양작업을 실시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수거물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오전 작업을 종료하면서 선장에게 이야기했다.
 
  “물속에 있는 전우들의 영혼들이 지금까지 열심히 그물에 잔해들을 넣어주었는데, 결정적인 증거물을 넣어주고는 이제 쉬러 갔는가 보네요.”
 
  “그러게요. 거 참 신기하네요.”
 
 
  2010.5.19. 수. 맑음. 파고 1.5m 시정 100yds
 
  밤새 고생한 김진황 중령이 이상 없이 복귀했다. 계획대로 가스터빈실 선저(船底) 함체를 인양했다는 보고를 탐색구조단장에게 했다. 아침부터 짙은 안개가 자욱했다. 그러나 주어진 임무는 완수해야겠다는 판단으로 쌍끌이 어선을 구조지휘함으로 유도했다. 위험한 상황도 있었지만 무사히 대평호에 편승하여 작업을 시작했다. 두 번째 작업 시 대평 11호와 12호가 인계 과정에서 충돌할 뻔했다. 해군에서는 함상(艦上) 근무 시 항상 마지막을 조심하라고 했는데, 마지막이 다가오면 마음이 해이해지는 현상이 있기 때문이다. 내일 합조단에서 최종 발표가 계획되어 있다. 어떻게 발표될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우리가 찾은 어뢰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란 믿음이 있다. 이제 끝이 보이는 것 같다.
 
 
  “열심히 찾았다는 말 대신 구체적으로 설명했어야”
 
  2010.5.20. 목. 맑음. 파고 1.5m
 
  오늘 합조단의 조사결과 발표가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결정적 증거물인 어뢰! 다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현장에서 보았던 어뢰는 나름대로 깨끗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오늘 본 어뢰는 녹이 심하게 꽤나 오래된 것처럼 보였다. 해중(海中)에 있었던 금속물체는 공기와 맞닿으면 당연히 부식(腐蝕)이 되는데, 청수(淸水)로 세척을 하지 않았구나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전반적인 발표가 진행되면서 매우 과학적으로 분석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선장(대평 11호)과 최두환 대령이 순차적으로 내용을 설명했다. 좀 세부적으로 설명이 되었으면 좋았으련만, 단순히 열심히 찾았다는 이야기로 답변이 이어졌다. 많이 아쉬웠다.(중략) 점심 식사를 마치고, 탐색구조단 임무가 종료되었다. 교육사령관님을 포함한 주요 직위자들과 함께 헬기에 올랐다. 엄청난 졸음이 몰려왔다. 어떻게 보면 백령도에서 천안함 작전 중 안 좋은 기억을 모두 잊어버릴 수 있는 잠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진해 도착 후 내복을 벗었다. 어느덧 진해는 초여름에 가까운 날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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