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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의 시각

朴槿惠의 위험한 도박

“親美自主 노선에서 親中事大로 갈 위험”

글 :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mongo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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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독의 아데나워는 스탈린의 ‘중립화 독일통일’ 제안을 거부, 분단을 선택
⊙ 김대중-김정일의 주한미군 중립화 密約은 한미동맹 해체로 가는 길
⊙ 미군의 사드 배치 허용하지 않으면 미국에서 주한미군 철수론 일어날 것
박근혜(오른쪽 세번째) 대통령은 지난 9월 3일 중국 베이징 천안문에서 열린 전승절 행사에 참석했다.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오른쪽 두번째) 러시아 대통령, 반기문(왼쪽 두번째) UN사무총장 등의 모습이 보인다.
  지난 9월 2일 베이징에서 있었던 박근혜(朴槿惠)-시진핑(習近平) 회담 후에 나온 한국 측 발표문은 그동안 여러 차례 나온 한중(韓中) 정상회담에서 되풀이되었던, 익숙한 표현들뿐이었다. 언론이 친중적(親中的) 시각에서 추측과 해석을 그럴듯하게 붙인 것이 한중관계를 실제보다 미화하고 있다. 불리한 내용도 있었다.
 
  〈양측은 이미 여러 차례 천명한 바 있는 비핵화(非核化) 목표를 확고히 견지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하고, 최근 국제사회의 단합된 노력으로 이란 핵협상이 타결되었음에 주목하면서, 의미 있는 6자회담이 조속히 재개되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습니다.〉
 
  ‘비핵화 목표’라는 말이 북한의 비핵화인지 한국까지 포함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뜻하는지 애매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의 핵무장을 불허한다는 뜻의 ‘북한 비핵화’라는 용어를 시진핑 주석에게 관철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2013년에 오바마 대통령과 회담하였을 때는 ‘북한의 비핵화’라고 못 박았지만 시진핑으로부터는 아직도 동의를 얻는 데 실패하였다는 이야기이다.
 
  2013년 6월 말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회담을 거쳐 발표된 한중 미래비전 공동성명에도 문제 대목이 있었다.
 
  〈한국 측은 북한의 계속되는 핵실험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였다. 양측은 한반도 비핵화 실현 및 한반도 평화와 안정 유지가 공동이익에 부합함을 확인하고 이를 위하여 함께 노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문맥상, 북한의 비핵화를 강조한 쪽은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었다. 중국이 이런 표현에 동의하지 않았으므로 한국만이 그런 주장을 하였다고 명기(明記)한 것이다. 양측이 합의한 표현은 ‘한반도 비핵화’였다.
 
  한국은 북핵(北核) 해결에 실패할 경우, 미국에 전술핵 재배치나 핵미사일 탑재 잠수함의 한국 해역(海域) 상시 배치를 요구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중국은 ‘한반도 비핵화’ 정신에 위반된다는 주장을 할 것이 분명하다. 이번에 나온 ‘양측이 여러 차례 천명한 비핵화 목표’도 ‘북한 비핵화’가 아니라 한국의 손발을 묶는 ‘한반도 비핵화’를 뜻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의미 있는 6자회담의 조속 재개’도 중국에 유리하고 한국엔 불리하다. 과거 6자회담 기간 중 북한은 핵실험을 하였다. 중국이 협조하지 않아 강력한 제재가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이 원하는 6자회담 재개에 동의해 준 것이다.
 
  박근혜-시진핑 회담과 전승절 행사 직후 여섯 명의 안보 전문가들이 만나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방중(訪中) 결과에 대하여 의견교환을 하였다. 세 분은 과거 정부의 군사, 외교, 통일 분야에서 고위직에 있었다. 나머지 3명은 전략론 전문 교수, 북한의 대남(對南)전략 전문가, 그리고 나였다. 이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대체로 비판적이었다.
 
 
  “한국이 중국을 통일논의의 대상으로 삼는 건 위험”
 
  1. 한국이 중국을 통일논의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위험하다. 미국 및 일본과는 한반도 통일을 공식적으로 논의하지 않으면서 자유통일 방해 세력인 중국과 맨 먼저 통일논의를 시작하는 것은 중국의 대한(對韓) 전략인 한미(韓美), 한일(韓日) 이간질에 넘어가는 일이다. 한국이 중국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면 이는 한반도 통일 문제에 대한 거부권을 주는 것처럼 된다.
 
  2. 박근혜-시진핑의 협력으로 한중관계가 좋아졌다고 하는데, 이를 증명하려면 미국이 북의 핵미사일 공격을 무력화(無力化)시키기 위하여 한국에 배치하려는 사드(高고도 미사일 방어망)를 중국이 묵인하거나 찬동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중국은 사드가 자국(自國)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배치에 반대하는데 이는 한미동맹을 흔들겠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면 미국에선 주한(駐韓)미군 철수론이 일어날 것이다. 중국 눈치를 보면서 사드 배치를 머뭇거린다면, 그리하여 미군이 적(敵)의 핵미사일 위협에 노출되도록 방치한다면 미국의 정치인과 여론이 들고일어날 것이다.
 
  3. 정부와 언론의 희망적 관측과는 정반대로 중국의 대한반도, 특히 대북(對北)정책이 바뀌었다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유엔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무효화시키는 지원을 계속한다. 북한으로 하여금 비핵화를 해야 할 이유를 없애 주고 있는 게 중국이다. 그들은 한반도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지지한다는 말만 되풀이하는데, 이는 한국의 자유민주적 통일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통일과정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한 용어라고 봐야 한다.
 
  4. 중국은 북한과 한국을 조종하면서 한·미·일(韓美日) 동맹의 약화를 겨냥할 터인데 북한은 중국의 말을 잘 듣지 않는 반면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오히려 한국이 더 다루기 쉽다는 판단을 할지 모른다. 중국은 한국을 도와서 북핵 문제 해결이나 한반도의 통일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
 
  5. 중국은 아직 한국을 한미동맹에서 이탈시킬 수 있다고 보지 않을지 모르지만 한국의 국내 사정에 따라서는 그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 한국의 종북(從北)좌파 세력은 박근혜 대통령의 친중반일(親中反日) 외교노선을 지지한다. 좌파 세력은 친북(親北)의 연장선상에서 필연적으로 친중·반일·반미적(親中·反日·反美的)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방중 전후(前後)에 급등한 데는 보수세력의 지지와 좌파의 지지가 합쳐진 것과 관련이 있다. 친북좌파 세력은, 중국에 관한 한 좌파정권이 해야 할 일을 박근혜 대통령이 대행해 준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속으로 멍든 韓美동맹
 
  6. 한국의 보수층 일부, 그리고 좌파의 다수는 통일과정에서 한미동맹을 해체, 통일 한국이 중립(中立)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북한의 연방제도 통일국가의 중립화, 김대중도 1971년 대통령 선거 때의 ‘4대국 보장론’ 이후 중립화 통일을 주장해 왔으며 지금도 상당수의 정치인이 동조한다.
 
  중립화의 다른 이름인 ‘미·중(美中) 사이의 균형자론’도 먹힌다. 여기에 “미국은 쇠퇴하고 중국은 떠오르니까 중국 편에 서야 한다”는 잘못된 대세론(大勢論)과 뿌리 깊은 친중사대주의(親中事大主義) 전통이 결합된다면 ‘중립화 통일론’은 큰 힘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친중반일 노선은 이런 흐름에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문제 많은 전승절 참석에 언론의 비판이 전무하다시피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좌경화한 언론의 친중화(親中化)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7. 중국은 한미동맹과 미군이 통일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이냐에 대하여 연구를 많이 하고 있다. 한국이 북한의 공격을 받았을 때 한미 연합군이 북진(北進)하는 것은 한미동맹 조약상 중국이 반대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북한정권이 무너질 때이다. 미군이 북한 지역을 안정화시키기 위하여 들어가려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중국의 동의를 의미한다. 중국은 미군의 북한 지역 장기 주둔에 신경을 쓴다. 미군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접수나 해체를 위하여 북한으로 들어가는 것은 양해할 것이다. 중국은 한미동맹의 적용 대상이 대만에까지 미치는 것을 반대한다. 통일 과정에서 북한 주민들의 의사를 묻는 절차, 즉 투표를 통한 결정에 대하여도 반대한다. 티베트, 신장 지역 등 소수민족에 미칠 수 있는 부작용을 생각하는 듯하다.
 
  8. 미국이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에 공개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고 하여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고 믿는 것은 순진하다. 미국이 반대하고 나오면 중국의 한미 이간질에 넘어가는 것이 되므로, 또는 말려 봐야 소용이 없다고 체념한 상태이므로 참고 있는 것이다. 한미동맹이 겉으로는 멀쩡한 듯하지만 속으로는 멍이 들었다.
 
  9. 전승절 행사 참가국의 핵심은 중국이 미국을 견제하기 위하여 만든 ‘상하이협력기구(SCO)’ 소속이다. 상하이협력기구는 2001년 7월 14일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6개국이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대항하기 위해 설립한 기구이다.
 
  본격적인 상하이협력기구의 출범을 앞두고 2000년 7월 타지키스탄 수도인 두산베에서 열린 회담에서 ‘상하이 5개국’ 정상들은 ‘두산베 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에서 5개국은 “아태(亞太) 지역에 구축될 (미국의) 전역미사일방어(TMD) 체제는 지역 안정 및 안보를 해치고 군비경쟁을 촉발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독재자, 장기집권자, 그리고 국제수배자(국제형사재판소에서 체포영장을 발부한 수단 대통령) 모임처럼 되어 버린 전승절 참석자 속에 중공군의 침략을 받은 한국의 대통령이 있었다는 이 사진 한 장이 두고두고 미국 지도층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남길 것이다.
 
 
  중국이 말하는 ‘자주적 평화통일’의 의미
 
  10. 오는 10월의 박근혜-오바마 회담에서 사드 배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배치를 공식화하든지 북한이 도발할 경우에 즉각 배치를 선언한다는 정도의 약속을 해야 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하여 한국은 북한을 핵무장 국가로 공인하지 않고 대응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사드 배치, PAC 3 배치, 선제공격 수단 확보, 고성능 재래식 폭탄으로 핵무기에 준하는 파괴력을 투사할 수 있는 무기 개발, 미국 핵발사 잠수함의 한국 해역 상시 배치 등 종합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 사드 배치 합의는 그 출발점이고 미국의 한국에 대한 의구심을 해소시킬 수 있는 정책 수단이다.
 
  11.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를 위하여는, 즉 정권을 잡고 유지하기 위해선 거의 모든 것을 희생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 때로는 중대한 국익(國益)도, 원칙도 포기한다. 세종시 건설로 국가기능을 분할하는 정책에 찬동한 것이라든지 아버지의 5·16 군사혁명과 유신(維新) 선포에 대하여 사과한 것, 그리고 김정일을 만난 일 등이 대표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도 자신의 선거처럼 여길 것이다. 이 두 선거를 통하여 친북좌파 성향의 정치세력이 주도권을 잡는 것을 반드시 막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두 선거에 이기기 위하여는 현직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아야 한다. 친중반일 노선도 그런 선거전략의 일환일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잃는 것과 얻는 것 사이의 타산일 것이다.
 
  12. 북한의 남남(南南) 이간질, 한국의 중·북(中北) 이간질, 중국의 한·미·일 이간질이 3중으로 엮여 돌아가는 가운데서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을 어떻게 유지 발전시킬 것인가? 한국은 이승만 대통령의 위대한 선택인 해양선진 세력 편에 계속 서 있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과 만나서 “앞으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하여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했는데 ‘비핵화’처럼 ‘평화통일’ 이란 단어의 해석이 각자 다르다.
 
  한국이 말하는 ‘평화통일’은 헌법 제4조가 규정한 평화적 방법에 의한 한반도 자유화이다. ‘평화적 자유통일’이다. 북한정권이 말하는 평화통일은 평화적 방법에 의한 한반도 공산화이다. 중국은 ‘자주적 평화통일’이라고 하는데, 미국 등 외세(外勢)의 개입 없이 남북한이 스스로 결정하여야 한다는 의미이다.
 
  한중이 앞으로 논의할 ‘평화통일’이 중국 해석에 따라서 진행된다면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존폐나 위상(位相) 문제까지 거론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한국이 중국을 설득하는 게 아니라 내정(內政)간섭을 자초하는 일이다.
 
  이명박(李明博)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을 보면, 이명박 전 대통령이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에게 “한반도 통일 후 미군은 현재 주둔하고 있는 위치에서 더 북쪽으로 올라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 전 대통령은 “그때까지만 해도 중국 정상과 한반도 통일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금기시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후진타오는 내 이야기를 별다른 반박 없이 듣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회고록에 따르면 2008년 취임 초에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만 해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미동맹은 냉전의 잔재’라고 폄훼했다고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그러나 우리가 한미동맹을 강화하면서도 한중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점을 설득하자 중국이 이를 어느 정도 받아들인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한미동맹의 강화와 한중관계의 발전을 동시에 이루려면 한일관계가 안정되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 말기부터 악화된 한일관계는 한미동맹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
 
 
  북한군보다 중공군 총에 죽은 我軍이 더 많은데…
 
  한국군 사단 중 전사자(戰死者)가 가장 많은 사단은 8사단이다. 1만8402명이다. 두 번째는 7사단(1만4569명), 3위는 6사단(1만4320명)이다. 이 3개 사단은 북진 중 중공군의 기습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본 부대이다. 한국전쟁 기간에 한국군은 약 15만명이 전사하였다. 북한군보다 중공군 총에 맞아 죽은 국군과 미군이 더 많을 것이다. 1950년 10월 하순 중공군이 등장한 이후 유엔군의 전사자가 그 전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1950년 10월 하순에서 1953년 7월 27일 휴전 때까지 중공군이 주력(主力)이고 북한군은 조역(助役)을 면하지 못하였다. 이 중공군은 늘 한국군을 약하게 보고 집중 공격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에 대하여는 침략의 역사에 대한 반성을 끈질기게 요구하면서 이번 전승절 참석으로 중국의 침략 역사에는 면죄부를 주었다. 북진통일 저지, 1·4 후퇴와 이산가족, 흥남철수의 비극, 국군포로 불법 억류 등 한민족(韓民族)에게 가장 큰 불행을 안겨준 ‘침략자’ 중공군 행사에 하객으로 참석하려면 국민들에게 사정 설명을 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였다. 이렇게 저자세로 나온 박근혜 대통령을 통하여 중국은 ‘한국을 과거처럼 속국(屬國)으로 다루고, 북한붕괴 시 또 다시 중공군을 투입해도 저항이 없겠구나’ 하는 오판(誤判)을 하였을지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의 친중 노선은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자유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세계 최대 인권탄압국이자 공산독재 국가인 중국과 아시아의 가장 역동적인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이 한반도의 자유통일을 논의할 수 있나? 한국정부가 논의할 수 있는 통일 방식은 헌법 제4조가 규정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하의 평화적 통일’, 즉 평화적 방식에 의한 자유통일뿐이다. 이는 핵무장한 북한정권의 해체를 의미한다.
 
 
  중국이 北核 포기시킬 힘 있나?
 
  자유의 바람이 두려운 중국이 우리가 염원하는 ‘자유롭고 번영하고 강력하며 통일된 한반도’를 환영할 것인가? 아니면 한국 주도의 통일에 협조하는 척하면서 한국으로부터 자유의 바람을 빼 버리려고 할 것인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한국의 자유와 안전을 지켜 주는 한미동맹 해체이다. 중국이 한국에 “한미동맹을 해체, 중립국가가 되면 통일에 협조하겠다”고 할 때 국내 좌파 세력은 환영하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이 한미동맹의 존속에 동의하고, 북한정권을 해체하는 평화적 자유통일에도 협조, 중국의 뒷문을 자유진영을 향하여 열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가? 중국은 자신의 체제에 대한 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이웃을 도와주는 자선단체인가? 당(唐)이 신라를 도와 백제,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은 신라가 귀여워서 한 일이었던가? 아니다. 신라를 앞세워 고구려와 백제를 친 뒤 신라마저 속국화하려는 음모였다. 문무왕과 김유신으로 대표되는 신라 지도부는 당의 이 음모에 대당(對唐) 결전으로 대응, 한반도에서 중국 세력을 몰아내고 최초의 민족통일국가를 세웠다. 박근혜 정권은 그 정도의 자주정신으로 무장된 세력인가?
 
  중국이 과연 북한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끼칠 수 있나? 북한정권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나? 북한의 핵무장을 포기시킬 힘이 있나?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이 아닐까? 중국이 미국을 대신하여 세계 지도국이 된다는 것은 짧아도 200년 내로는 불가능할 것이다. 중국은 군사적으로, 사상적으로, 과학적으로, 문명사적(文明史的)으로 미국을 대체할 능력이 없다.
 
  그런 한계를 이번 전승절 행사가 잘 보여주었다. 중국이 전승절 행사에서 보여준 무력(武力)은 미국은커녕 러시아를 상대하기도 벅차다. 명(明), 송(宋) 등 중국의 역대 한족(漢族) 정권은 군사적으론 늘 약체(弱體)였다. 한족은 상무(尙武)정신이 약하고 기동력이 부족하며 군 장교단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 없었다. 서구 군사문화의 정통을 잇는 미국에 도전할 만한 국풍(國風)이 없다.
 
  시진핑이 전승절에 참석시킬 수 있었던 국가원수들은 거의가 독재자, 장기집권자, 그리고 부패한 지도자들이었다. 이들을 대표하는 중국이 미국을 대체한다?
 
  약 30년간 연(年)평균 10%의 고도성장을 유지해 온 중국 경제는 올해 들어 연 6%대로 감속(減速)하고 있다(반면 미국은 호황이다). 감속은 이어질 것이다. 이는 중국의 내부 불만을 폭발시키고, 이 단계에서는 모든 나라가 겪게 마련인 정치위기를 함께 부를 것이다.
 
 
  중국의 한계
 
  자유의 확대를 지향하여 발전해 온 세계사의 한 법칙이 있다. 당대(當代)의 지도국은 늘 당대의 가장 개방되고 자유로운 나라였다. 중국은 당대의 가장 억압적인 나라이다. 이런 나라가 세계를 지도할 순 없다. 그런 일은 제국주의 시절에도 불가능하였는데, 21세기 질서 속에서 가능하겠는가?
 
  하지만 우물 안 개구리 식 세계관을 가진 권력자들이 적지 않은 한국에선 중국의 국력에 대한 오판이 친중 사대주의적 통일정책을 부르는 희극(喜劇)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한국의 통일 문제는 90% 이상이 안보 문제이다. 군사력의 뒷받침이 없는 나라가 통일외교를 주도한다는 것은 허영이다. 박근혜 정부가 통일의 대상으로 설정한 북한, 설득의 대상으로 삼는 중국은 핵무장 국가이고 한국은 핵무장력도 없고 방어력도 없다. 핵능력에 관하여는 마이너스 통장 상태이다. 마이너스 통장으로 M&A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허영이다. 마이너스 통장이지만 말만 잘하면 M&A를 할 수 있다고 우긴다면 이는 사기이다. 더구나 한국에 핵우산을 제공, 겨우 핵무장 국가 사이에서 생존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미국과 전쟁이 나면 후방기지 역할을 하게 되어 있는 일본을 멀리하고, 통일저지 세력인 중국과 손잡고, 핵무장한 북한을 접수하는 통일을 꿈꾼다? 이게 말이 되는지 모르겠다.
 
  중국으로서는 한반도의 두 정권을 갖고 놀면서 서로 견제, 경쟁시키고, 그리하여 미국과 일본에 대응할 수단을 갖게 되었다고 즐거워하지 않을까?
 
  임기가 2년 반밖에 남지 않은 박근혜 정부, 정권만 바뀌면 외교노선이 달라지는 한국에 대한 계산도 복잡하겠지만, 강대국끼리는 대결하는 척하다가도 막후에서 놀라운 합의를 하여 믿고 따르던 나라들의 운명을 우습게 만든 예가 많다. 핵무장한 국가군(群)에 둘러싸인 핵전(核前) 무장해제 상태의 한국은 핵 방어망부터 만들어 놓고 허영을 부려야 한다. 핵 방어망 건설까지도 중국 눈치를 본다면 “통일에 협조하여 줄 테니 한미동맹에서 탈퇴하라”는 중국의 압박과 유혹을 과연 견딜 수 있을까?
 
 
  스탈린의 중립화 통일론
 
스탈린의 중립화 통일론을 거부한 아데나워 전 독일 총리.
  1945년 5월 연합군에 항복, 미·영·불·소(美英佛蘇)의 4대국 지배하에 들어간 독일은, 소련 점령하의 동독(東獨)과 미·영·불(美英佛) 점령하의 서독(西獨)으로 나눠졌다. 냉전(冷戰)이 격화되면서 한반도처럼 동서독은 통합이 어렵게 되었다. 미·영·불 점령하의 서독 지역에서 지도자로 등장한 아데나워 수상은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처럼 서독을 자유진영의 일원으로 독립시키려 한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아데나워는 주권(主權)회복 과정에서 서독을 재무장,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시키고, 프랑스 등 서구와 유럽공동체를 구성하는 노선을 추진하였다.
 
  소련의 스탈린은 이를 구경만 하지 않았다. 서독의 주권회복에 즈음하여 유럽방위공동체(EDC) 조약을 위한 협상이 진행되던 1952년 3월 10일 스탈린은 서독을 관할하던 미·영·불에 ‘스탈린 노트’로 유명해진 각서(覺書)를 보냈다. 동서독을 통합한 통일정부를 구성하고, 평화조약을 체결하자는 제안이었다. 이 제안의 핵심은 통일된 독일이 중립국으로 남아야 하며 그렇게 하면 국방에 필요한 정도의 재무장도 허용한다는 것이었다. 중립화를 약속하면 동서독 통일을 지지할 뿐 아니라 재무장도 허용하겠다는 소련의 제안은 파격적인 것이었지만 아데나워는 스탈린의 음모를 간파하였다.
 
  그는 미·영·불 정부에 “서독은 스탈린의 제의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으니 미·영·불·소 4대국이 서독을 무시하고 무엇을 결정해선 안 된다”는 입장을 천명하였다. 서독 안에선 스탈린의 제의에 찬동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특히 집권 기독교민주당 안에서도 검토할 가치가 있는 제안이라는 여론이 일어났다. 스탈린의 제안은 통일을 중시하는 민족주의파(派)와 중립 지향의 평화주의파를 다 같이 노린 승부수였던 것이다.
 
  아데나워는 정면으로 맞섰다. 그는 “독일의 중립화는 미군을 유럽에서 철수시키기 위한 것이며, 그렇게 되면 유럽은 소련의 막강한 군사력에 종속되어 기독교 문명이 무신론(無神論)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는 유럽과 독일은 일체가 되어야 자유를 지킬 수 있다고 확신하고 이를 위하여는 통일의 꿈도 잠시 유보하여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자유냐, 통일이냐
 
  이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좌우합작론을 거부한 논리와 비슷하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스탈린의 조종을 받는 남북한 공산주의자들과 합작하여 통일정부를 구성하는 과정은 한반도 공산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공산주의를 상종할 수 없는 반문명 세력으로 보았고 아데나워도 소련 공산주의를 반유럽, 반기독교적 세력으로 규정하였다.
 
  스탈린 노트는 다른 모습으로 한반도에서 등장할 수 있다. 중국이 친중화한 한국을 상대로 이런 제안을 하는 경우이다.
 
  “우리는 한국 주도의 통일을 지지한다. 단, 통일된 한반도는 한미동맹에서 탈퇴, 중립국이 되어야 한다.”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통일된 한국은 미국의 핵우산에서 벗어나 핵무장 국가 및 준핵무장 국가들 사이에서 외톨이가 된다. 뼈에 사무친 친중 사대주의의 역사적 유전자가 발현(發顯)되어, 더욱 중국에 예속되는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중국이 공산독재국가로 남아 있다면 이는 친공산 독재화를 뜻한다. 한국의 자유와 번영을 보장하였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위협 받는다. 한반도 중립화 제안은 자유냐 통일이냐의 선택을 한국인들에게 강요할 것이다.
 
  아데나워는 자유를 통일보다 더 높은 가치로 수용하였지만 통일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서독이 경제적·군사적·외교적 국력을 충실히 해 가는 과정에서 동독을 자연스럽게 견인(牽引), 흡수하는 장기적 전략을 썼다. 아데나워는 서독을 서방세계로부터 떼어 놓으려는 음모에 말려들지 않았다. 중국은 한·미·일 동맹의 가장 약한 고리가 한국이라고 판단, 통일과 핵문제 해결을 미끼로 한국을 유혹, 동맹체제에서 탈퇴시키려 할 가능성이 있다.
 
  박근혜 정부로 하여금 친중반일 노선으로 기울게 하는 데 성공하였다고 판단한 중국은 그만큼 한미동맹도 약해졌다고 계산할 것이다. 중국은 핵무장한 북한정권과 친중화한 박근혜 정부라는 두 개의 카드를 쥐고 미국을 견제하려 들 것이다.
 
  한국의 친북좌파 세력은 자동적으로 한미동맹을 포기한 중립화 통일을 지지할 것이다. 일본을 중국보다 더 싫어하는 일부 보수층도 동조할 것이다. ‘중립화 통일’이 자유와 번영의 독(毒)이 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리느냐가 중요한데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한미동맹이냐, 중립화 통일이냐가 아니다. 자유냐 억압이냐이다. 한반도의 중립화냐, 중국의 민주화냐이다. 한미동맹은 통일 이후에도 유지되어야 한다.
 
 
  김대중의 한반도 中立化論
 
  ‘한반도 중립화 통일론’은 북한정권,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 친북좌파 세력에 의하여 면면히 이어져 왔다. 이 발상은 ‘연방제 통일론’ ‘4대국 보장론’ ‘미·중 사이의 균형자론’ ‘주한미군 중립화론’ 등 다양한 모습으로 응용되었다.
 
  김대중씨가 납치되기 전 일본에서 주도적으로 만든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의 1973년 8월 13일 자 발기문에는 ‘한반도를 중립화하고 남북연방제에 의한 점진적 통일을 실현한다’고 적혀 있다. 1980년 10월 10일 김일성도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 방안 발표 연설에서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를 가지고 있는 북과 남의 두 지역을 하나의 연방국가로 통일하는 조건에서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이 중립국가로 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며 또 현실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것입니다”고 밝혔다.
 
  중립국가가 된다는 것은 한미동맹 관계를 폐기, 주한미군을 철수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는 1989년 6월 3일 광주교육대학의 시국 강연회에 참석하여 “장차 이 나라가 통일이 되면 오스트리아식 영세중립국가로 가게 될 것으로 본다”고 밝힌 적이 있다. 1991년 7월호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이 점을 지적하자, 김대중 총재는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사람이란 게 말이죠. 멀리 내다보는 데도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재작년 얘긴데요. 소련과 동구라파가 저렇게 달라졌어요. 중립이라는 용어도 냉전체제를 상정(想定)해서 쓴 용어인데 이제는 냉전이 없어졌다 이겁니다. 세상이 이렇게 변하니까 그때 한 말이 변할 수밖에 없죠. 세계에서 미·일·중·소 4대 강국에 둘러싸여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입니다. 제가 볼 때는 통일이 되고 난 후 어느 쪽에도 기울어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냉전시대의 중립은 일종의 경제적, 보호요청적 중립이라면 이제는 친선적·협력적 중립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는 친선적·협력적 중립이라고 표현했지만 통일된 한국이 한미동맹에서 이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야 ‘어느 쪽에도 기울어지지 않게’ 된다.
 
 
  朴正熙, “(김대중의) 4대국 보장론은 잠꼬대”
 
1971년 대선에 나선 김대중 후보는 ‘4대국 안전보장론’과 ‘중립화 통일론’을 주장했다.
  중국이 앞으로 한반도 중립화와 한국 주도의 통일을 맞바꾸려 할 때 한국인의 선택은 무엇인가? “통일을 안 하면 안 했지 한미동맹을 포기할 순 없다. 그것은 자유를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정답(正答)으로 뭉칠지, “통일 한국은 중립국이 되어 중국 영향권 안으로 들어가는 게 좋다”는 오답(誤答)으로 분열될 것인지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2년 1월 연두 기자회견을 빌려 그 전해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주장했던 한반도 평화에 대한 ‘4대국 보장론’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미국·소련·중공·일본이 그렇게 합의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믿을 수도 없고 안심하고 살 수도 없습니다. 혹 이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북괴가 쳐들어오면 네 나라가 뜯어말릴 것 아닌가 할지도 모릅니다. 작년 연말에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났을 때 유엔 안보리이사회에서 두 나라 배후에 있는 미·소·중 3대 강국은 앉아서 입씨름만 했습니다.
 
  아마 미국 측은, 이것은 북괴가 먼저 전쟁도발을 한 것이다, 당장 원위치하라고 말할 것입니다. 소련과 중공은 김일성이 먼저 도발한 것을 뻔히 알지만 김일성이가 먼저 도발했다고 이야기하겠어요? 이쪽에서는 북괴가 먼저 했다, 저쪽에서는 남한에서 먼저 했다, 이렇게 입싸움만 하고 있는 동안에 승부는 결정나 버리고 말 것입니다. 한미방위조약이 북괴의 전쟁도발을 막는 유일한 방파제가 되는 것이지 4대국 보장론 운운은 잠꼬대 같은 이야기입니다.”
 
  김대중 후보는 1971년 4월 대선에 즈음하여 미·일·중·소에 의한 한반도 평화 보장론과 예비군 폐지 공약을 내세웠다. ‘미·일·중·소에 의한 한반도 평화 보장론’은 김대중이 견지하였던 외군 철수와 한반도 중립화와 연계된 것이다. 김대중의 ‘한반도 중립화론’은 한국의 종북친중 좌파성향 세력에 전수되어 통일과정에서 한미동맹을 해체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고, 여기에 중국과 북한, 그리고 생각이 얕은 보수층까지 동조할지 모른다.
 
 
  주한미군 중립화 밀약의 계승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0년 6월 김정일을 만나서 주한미군의 성격을 평화유지군으로 바꾸자는 데 합의한다. 그는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을 미리 김정일에게 보내 이렇게 제안한다.
 
  “대통령께서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균형자와 안정자의 역할을 수행할 주한미군이 현재뿐만 아니라 통일 이후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임동원을 통하여 김정일에게 제안한,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하여 균형자와 안정자의 역할을 수행할 주한미군’이란 말은 그 전에 북한군판문점대표부 이찬복이 한 말-“주한미군의 역할이 대북억제로부터 한반도 전체의 안정자와 균형자로 변형되어야 한다”-과 일치한다.
 
  ‘균형자와 안정자 역할’을 하는 주한미군은 현재의 주한미군이 아니고 대북억지력을 포기한 평화유지군이다. 남북한 사이의 중립군이다. 껍데기 군대이다. 더구나 미국은 그런 군대를 한국에 주둔시킬 이유가 없다. 이는 필연적으로 미군철수와 한미동맹 해체로 이어진다.
 
  임동원 회고록에 의하면 김정일은 이렇게 화답(和答)하였다.
 
  “김 대통령께서는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통일 후에도 미군이 계속 주둔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데, 사실 제 생각에도 미군 주둔이 나쁠 건 없습니다. 다만 미군의 지위와 역할이 변경돼야 한다는 겁니다. 주한미군은 공화국에 대한 적대적 군대가 아니라 조선반도의 평화를 유지하는 군대로서 주둔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정일을 만나고 돌아온 후 “김정일 위원장이 주한미군은 통일 이후에도 주둔해도 좋다고 말하였다. 이로써 주한미군 문제가 해결되었다. 이게 이번 회담의 가장 큰 성과이다”라는 요지의 자랑을 하였다. 김정일이 통일 이후까지 있어도 좋다고 말한 주한미군은 남북한 사이에서 중립하는 군대로 위상이 바뀐 군대라는 말을 생략, 사실상 허위보고를 한 셈이다.
 
 
  노무현, “아시아의 가장 큰 안보위협은 美日”
 
지난 2007년 11월 방한한 로버트 게이츠(왼쪽) 美 국방장관에게 노무현 대통령은 “아시아의 최대 안보 위협은 미국과 일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중립화 통일론이 성사되려면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해체가 이뤄져야 한다. 김대중-김정일의 밀약인 ‘주한미군 중립화’는 그 방향으로 가는 첫걸음이었다. 김대중을 이은 노무현도 주한미군 중립화에 의한 사실상의 무력화를 염두에 두었음이 그의 생전 증언으로 입증된다.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은 퇴임 후인 2008년 10월 1일 강연에서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에 대하여 김대중과 김정일의 주한미군 중립화 밀약과 같은 논리의 토로를 한다.
 
  “주한미군의 역할에 대해서도, 이제는 동북아에서 어느 한쪽과도 적대적이지 않은 평화와 안정의 지렛대 역할에 비중을 두는 것이 동북아의 상황에도 맞고, 남북 간의 대화 국면에도 적절할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한미연합사 해체를 가져오는 전시(戰時)작전통제권 전환 결정이 북한정권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고백도 하였다.
 
  “북한은 한국보다 미국을 더 불신하고 두려워합니다. 유사시에 미국이 작통권을 행사하는 상황은 북한을 더욱 두렵게 하여 남북 간 대화와 협상이나 신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나는 작통권의 환수를 남북 간의 신뢰구축에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고 추진하였습니다.”
 
  로버트 게이츠 당시 미 국방장관이 2007년 11월에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만났다. 김정일을 만나고 온 한 달 뒤였다. 게이츠 전 장관이 쓴 회고록에 의하면 노 당시 대통령은 게이츠에게 “아시아의 가장 큰 안보위협은 미국과 일본이다”고 말하더라고 한다. 게이츠는 “나는 그가 반미주의자라고 결론내렸고 약간 돌았다고 생각했다”고 썼다.
 
  현직에 있을 때, 북한정권이 핵개발과 핵실험을 하고 있을 때 이미 주한미군 중립화 및 한미연합사 해체에 의한 한미동맹 무력화를 시도하였던 김대중 노무현 잔존세력은 앞으로는 중국이 한반도 통일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분위기에 편승, 한미동맹 해체를 전제로 하는 한반도 중립화 통일론을 들고 나올 것이 분명하다.
 
  2012년 7월 손학규(孫鶴圭)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서울외신기자클럽 초청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중립화 통일방안’을 제안하였다. 보도에 의하면, 그는 남북분단을 낳은 냉전체제는 종식됐으나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갈수록 심화하는 상황을 지적하면서 “미·중이 동의하고 역내(域內) 관련 당사국들의 이해관계에 충돌이 없는 통일방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손 고문은 통일한국의 주한미군 주둔 문제에 대해서는 “한미동맹과 북·중동맹이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한국과 미국, 동북아 국가들과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평화유지군 같은 성격으로 계속 주둔하면서 전쟁과 분쟁을 방지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일과 김대중이 밀약한 주한미군 중립화의 논리와 같다.
 
  한미동맹 해체를 전제로 한 ‘한반도 중립화 통일론’으로 중국, 북한정권, 좌파세력이 연대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연방제 통일방안이란 것이 중립화 통일론이기 때문이다.
 
  2003년 북한의 ‘평양출판사’가 펴낸 《조국통일문제 100문 100답》에는 아래와 같이 언급되어 있다.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이 견지하여야 할 활동원칙은 자주, 민주, 중립, 평화이다. (중략). 고려민주련방공화국은 국가활동에서 중립로선을 견지하여야 한다. 련방공화국은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를 가진 북과 남 사이의 련방으로 형성되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어느 특정한 나라에 편중하는 정책을 실시하거나 어떤 정치군사 동맹이나 쁠럭에 가담하면 불가피하게 통일국가 내부에서 모순이 생기고 분쟁이 발생할 수 있으며 결국 련방국가 자체의 존재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이처럼 련방공화국이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 우에 형성되는 것만큼 대외적으로 중립로선을 견지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김일성은, 1989년 불법 방북한 문익환 목사에게 “민족의 자주성과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서는 중립화 통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親美自主에서 親中事大로?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통하여, 북한의 핵개발을 도와주고, 인권탄압을 비호하고, 종북세력과 손잡았던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중국, 북한, 좌파는 한편으로 정렬하여 정권을 놓친 보수세력, 한국과 멀어진 미국과 일본을 몰아붙이면서 한미동맹 해체에 의한 중립화를 추진할 것이다. 그런 중립화는 중국에 대한 예속과 자유민주 체제의 위기를 뜻한다.
 
  한미동맹은 대한민국을 선진 해양문명권과 이어 준 가교(架橋)였다. 이 속에서 한국은 자유의 문명을 건설하고 전쟁을 억제할 수 있었다. 38선으로 한국이 사실상 섬이 됨으로써 대외 개방적 국가 생존전략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지정학적(地政學的) 조건과도 잘 맞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친중 노선은 해양화의 길을 대륙화의 길로 돌려놓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 한국인들은, 유라시아대륙에 대한 동경심이 강한데, 이 대륙은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반자유의 길이기도 하다. 중립화 통일론의 도덕론적 근거는 자유와 억압, 선(善)과 악(惡) 사이에서의 중립화를 뜻한다. 이는 실패한 좌우(左右)합작론의 변형이기도 하다.
 
  이승만 대통령은 “공산주의는 호열자와 같다. 인간은 호열자와 같이 살 수 없다”면서 좌우합작을 거부하고, 한미동맹을 매개로 하여 한국을 미국 중심의 해양문화권에 편승시켰다. 대한민국의 성공을 보장하였던 이 대전략은 친미자주(親美自主) 노선이기도 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친중 노선은 이승만과 같은 주체성과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을 때, 친중사대(親中事大)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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