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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박이’ 주한 美2사단 해체와 한국군의 운명

美軍의 트랜스포메이션, 地上軍 빼고 해·공군 중심으로 싸운다

글 : 오동룡  월간조선 기자  goms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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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戰作權 행사할 지상군 ‘붙박이 부대’ 사라지면서 미국, 戰作權 행사 의미 없어져
⊙ 미2사단 마지막 전투여단 오는 6월 해체… 70년 만에 미 지상군 ‘제로’ 시대로
⊙ 9·11테러로 ‘作計 5027’ 사실상 폐기… 한반도 유사시 대규모 미군 증원 기대 못해
⊙ 1960년대 중반 나이키허큘리스 미사일 배치하자 金日成 핵개발 시작
⊙ 미국, 동북아 지역을 일본 중심으로 對중국 방어전략 수립
⊙ 中國, 北 김정은 꼬드겨 동북아 동시 戰場化하면… 미국엔 최악의 시나리오
이라크전에 투입되기 위해 2004년 8월 5일 오산기지에서 비행기에 오르는 미 2사단 2여단 장병들. 이들은 전쟁 후에 미 본토로 재배치됐다.
  주한 미 지상군의 주력부대인 주한 미 제2사단 제1전투여단(일명 Iron Brigade)이 6월 해체된다. 미국 정부의 예산 자동 삭감(Sequester) 정책으로 인해 미 육군의 전투여단이 강제 해체되는 와중에 주한 미 제2사단 제1전투여단도 포함됐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되고 그해 9월 8일 일본군 무장해제와 정부수립 전까지 38선 이남의 군정(軍政)을 실시하기 위해 하지(John Hodge) 중장이 이끄는 미 육군 제24군단 예하 제7사단 병력이 인천항에 ‘행정 상륙’하면서 주한미군의 역사는 시작됐다. 올해로 70년을 맞는 미 지상군의 한반도 주둔(미7공군 제외)이 제2사단 제1전투여단의 해체로 종지부를 찍는 초유의 상황을 맞은 것이다.
 
  현재 제1전투여단은 경기도 동두천시(여단본부)와 의정부(2사단 사령부)에 주둔하면서 전차와 보병·장갑차 등을 운용하는 주한미군 지상군의 주력부대로, 병력은 4600여 명이다. 제1전투여단은 2004년 이후 제1중(重)여단 전투팀(Heavy Brigade Combat Team)으로 재편성됐으며, 통상 제1전투여단이라 부른다.
 
  제1전투여단은 M2A3 브래들리 장갑차를 운용하는 제9보병 2대대, M1A2 에이브럼스 전차로 무장한 제72기갑연대 1대대, M1151/M3A3 장갑차량으로 기갑정찰을 수행하는 제7기병 4대대, M109A6 팔라딘 자주포를 보유한 제15 야전포병 1대대, 화학중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척 헤이글(Chuck Hagel) 전 미 국방부 장관은 이 부대의 해체를 승인했고, 해체 시점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한미군 측은 대신 미국 본토에 있는 다른 전투여단이 순환 배치된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한반도 방위를 위한 전력이 예전처럼 그대로 유지될지는 미지수다.
 
  주한미군 측은 “전투장비는 그대로 두고 병력을 주기적으로 교체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제1여단을 대체할 전력인 미국 텍사스 주둔 미 제1기갑사단 제2기갑전투여단은 현재 한반도 투입을 위해 캘리포니아 모하비사막에 위치한 포트 어윈 미군 파병훈련소에서 훈련을 진행 중이다. 제2기갑전투여단은 현재 동두천에 있는 주한미군 제2사단 예하 제1전투여단을 대신해 한국에 9개월간 주둔할 예정이다.
 
  김영규(金永圭) 주한미군 공보담당 고문은 “제1기갑 전투여단이 해체되더라도 텍사스주에 주둔 중인 제2전투여단 병력이 한국에 순환 배치될 예정이기 때문에 주한미군의 실제적 감축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순환 배치라는 것은 배치를 중단하는 순간, 자연적으로 병력을 철수하는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전투지역에 상주하는 부대와 주기적으로 교체하는 부대 사이에 지역·지형에 대한 부적응으로 전투력에 차이가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계속 한국에 주둔하던 지금까지의 주한미군과는 달리 9개월 간격으로 여단 병력 전체가 순환 배치된다는 점 때문에 예비역 장성들을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김기성(金基成) 전 군수사령관(예비역 육군중장)은 “대한민국에 붙박이로 주둔하면서 지역적 전문성을 갖던 2사단과는 달리 순환 배치됨으로써 한국의 상황에 대한 이해도가 충분하지 않은 부대들이 배치돼 전투력이 떨어질까 걱정”이라고 했다.
 
 
  주한미군, 10년 만에 해·공군 위주로 재편
 
  미 제2사단 예하 전투여단들은 그동안 서부전선에서 한국군이 부족한 기갑전력을 커버해 주는 역할을 해 왔다. 1991년 주한미군 2사단 병력 가운데 처음으로 경기 파주 캠프 헨리에 주둔하고 있던 제3여단이 미국 본토 포트 루이스(Fort Lewis)로 예비여단으로 철수했다.
 
  이후 2004년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과 럼즈펠드(Donald Rumsfeld) 당시 미 국방장관 간에 이라크 파병문제로 대립하면서 럼즈펠드 장관은 주한미군의 핵심 전력인 미 제2사단 2여단과 춘천·원주의 아파치 헬기 대대를 철수해 이라크로 전속시켰다. 이후 제2 전투여단은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미 본토로 재배치됐다.
 
  미국의 해외주둔 미군은 세계 군사전략인 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이라는 차원에서 철수와 배치가 이뤄진다는 게 정설이다. 6·25전쟁 직후 32만5000여 명에 달했던 주한미군은 휴전 직후부터 단계적으로 철수해 1960년대엔 6만여 명 수준을 유지했다. 1977년 카터 행정부가 철수를 진행하다 중단했으며, 1991년 제3여단을 철수시킨 아버지 부시(George H. W. Bush) 행정부 시절부터는 4만8000여 명 수준의 병력을 유지했다.
 
  그러다가 노무현 정부 시절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의 여파로 1만2000여 명의 주한 미 지상군이 철수했다. 2005년 5월 주한 미 지상군이 축소되면서 주한미군의 전차 보유대수는 140대에서 55대로 줄어들기도 했다. 2015년 4월 현재, 주한미군은 약 2만8000여 명이다. 주한미군 측에 따르면, 6월이 지나면 실제로 지상군보다는 공군 위주로 재편을 완료한다.
 
  서부전선에서 ‘붙박이’ 주한 미 지상군의 전력이 빠지는 대신, 한국군 지상군의 전력보강은 시급한 과제다. 그러나 국방비 증액 역시 복지비에 밀려난 지 오래이며, 최근 불거진 국산 방산(防産) 비리로 인해 국민들의 국방비 증액을 보는 눈도 예전과 다르다. 한국 지상군은 현재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빠진 상황이다.
 
 
  69만명 증원군 기대는 難望
 
김국헌 전 국방부 군비통제관.
  현재까지 정설로 알려진 한·미 작전계획상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발생할 경우, 한반도로 전개되는 미 증원군의 규모는 엄청나다. 전쟁 발발 이후 90일 이내에 총병력 69만명, 함정 160여 척, 항공기 2500여 대 등이다. 함정에는 항공모함 5개 전단(戰團)이 포함돼 있다. 한반도에 파견되는 항공모함 5척은 배수량이 9만t이 넘는 초대형 핵추진 함정으로, 80대의 함재기를 싣고 있다.
 
  항공기는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 폭격기인 B-2를 비롯, B-1, B-52 폭격기, 세계 최강의 스텔스 전투기인 F-22와 F-15, FA-18 전투기 등으로 구성된다. 폭격기들과 F-22 전투기는 미 본토와 알래스카, 하와이, 괌, 오키나와 그리고 일본 본토 주일 미군기지에서 한반도로 발진한다. 주일 미군기지에 배치된 항공모함 1개 전단과 알래스카, 하와이 기지의 F-22 스텔스 전투기, EA-18 전자전기 등은 전면전이 벌어질 징후가 농후하거나 전쟁이 발발한 직후 가장 먼저 한반도에 파견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그러나 군사 전문가들은 미국 안보전략 및 작전개념의 변화로 증원군 규모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무엇보다도 지상전은 한국군이 책임지고 미군은 해·공군 위주로 지원한다는 전략에 따라 증원군의 총규모가 69만여 명에서 스트라이커 여단과 해병대 중심으로 10만~20만명 선으로 감축됐다고 한다. 해·공군의 경우, 스텔스기, 이지스함, 첨단 정밀유도폭탄 및 미사일 등 첨단 무기의 비중을 높이는 대신, 지상군의 유사시 한반도 파견 규모는 현격하게 줄어든 것이다.
 
  2001년 미국의 9·11 테러를 기점으로 사실상 대규모 증원군 계획은 휴지통으로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전을 10년 동안 수행하면서 미군의 규모와 작전개념, 능력이 변화돼 왔기 때문이다. 미 국방부는 육군 위주의 전력에 한계가 왔음을 깨달았고, 결국 해병대와 이를 지원하는 해·공군 전력으로 전쟁을 수행했다.
 
  미국은 두 전쟁에서 육·해·공 3군의 특수전 부대를 최대한 활용했다. 특히 무인정찰기와 무인공격기의 활용은 돋보였다. 2001년 이후 10년 동안 미 육군은 대규모 기갑부대를 축소하고 신속하게 파견이 가능한 스트라이커 여단을 키워 왔다. 공교롭게도 아프간전과 이라크전을 개전한 시점부터였다.
 
  이때부터 또다시 주한 미 지상군의 역할이 논란거리가 됐다.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미국의 전쟁수행 개념에 ‘붙박이 군대’가 문제로 지적된 것이다. 결국 2003년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제2여단을 빼내 갈 수 있었다. 이후 사단급이 아닌 여단급의 주한 미 육군이 10년을 채운 뒤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그런 의미에서 한·미 양국이 지난 2013년 10월 전작권 전환을 재연기하기로 한 것은 경솔한 정책결정이었다고 주장한다. 즉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전 세계 테러를 상대하면서 경보병 신속대응군으로 재편하고 있는데, 제2차 세계대전을 연상시키는 대규모 증원군 개념이 과연 존재하겠냐는 것이다.
 
  한반도 유사시 지상군 대신 해병대 위주로 작전을 구상하고 있는 미국도 지상군 중심의 전작권은 막상 행사하려고 해도 별 쓸모가 없게 됐다는 뜻이다. 이제는 한반도 전장에서 한국군 보병사단 중심의 전쟁을 수행하려면, 어차피 한국군이 전작권을 능동적으로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朴槿惠) 정부는 독자적 국방개혁을 추진하지 못한 채 전작권 전환 연기에만 몰두했다는 인상을 준다. 김국헌(金國憲) 전 국방부 군비통제관(예비역 육군소장)은 “증원군 없는 주한 미군사령부가 과연 한국군 60만 대군을 지휘한다는 것이 가능한가”라면서 “향후 한국군은 전작권을 한시라도 빨리 전환을 받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했다.
 
 
  핵탑재 미사일 ‘마타도어’를 烏山에 배치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에서 흘러나온 변환, 변신을 의미하는 ‘transformation’이라는 군사용어는 미국의 동맹국들을 긴장시켰다. 미국은 1991년 이후 구소련이 해체되면서 과도한 군사력을 축소, 조정해 2000년대를 맞이했으나 날벼락과도 같은 9·11 테러를 당하면서 아프가니스탄전쟁과 이라크전쟁에 빠져들었고, 결국 미국은 대규모 군사력보다 기민하게 신속히 대처하는 전력으로 전쟁을 수행했다.
 
  1991년 걸프전 이후 미국은 유고내전과 코소보전쟁을 겪게 됐다. 이때 서유럽 주둔 미군 기갑부대의 코끼리 같은 굼뜬 대응을 겪은 미 국방부는 육군을 장갑차 중심의 신속대응군 형태로 재편하는 임무전환형 부대를 만들기로 했다. 이때 공식화한 용어가 ‘트랜스포메이션’이었다.
 
  미 육군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91년 걸프전까지만 해도 근본적인 재편을 구체화하지 않았다. 세세한 임무부여 및 무기 재배치와 보강을 통한 변화들은 있었으나, 대개는 몇 개 부대만을 지정해서 새로운 임무를 맡기는 게 전부였다.
 
  6·25전쟁 직후 미국의 방위는 일본을 교두보로 하고 있었다. 대만의 공산화를 우려해 미 7함대는 대만해협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당시 미국은 폭격기에 탑재하는 핵폭탄이면 소련과 중국이 감히 덤벼들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다. 당시 미군의 재래식 무기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사용하던 것들이 태반이었다. 6·25전쟁을 치르고 나서야 미군은 1958년부터 7.62mm 나토탄을 사용하는 M-14 자동소총(M1 자동화)과 105mm포를 장착한 M-60 전차를 전력화하기 시작했다.
 
  이에 반해 소련군은 1950년대 중반 지금도 최고 성능을 자랑하는 AK-47 칼라슈니코프 소총을 보급했다. 게다가 100mm 포를 갖춘 T-54/55전차, 미그-15, 17, 19 등을 대량으로 양산해 보급했다. 이처럼 기갑부대 중심으로 편성된 소련군에 비해 미군은 재래식 무기가 열세를 보이고 있었다.
 
  미국은 6·25전쟁 이후에도 동북아에서 한반도보다 일본을 중시하는 전략을 택했다. 1955년 한반도에서 대부분의 미 지상군을 철수시키고, 대신 핵무기를 통한 방어계획을 수립한다. 1958년 1월 이후 미국은 핵포탄 발사용 280mm 포와 ‘핵탄두가 탑재된’ 어니스트존(Honest John) 지대지 미사일을 한반도에 전개했다.
 
  1959년엔 마타도어(Matador·투우사) 핵 탑재 순항미사일 대대를 한국 오산 기지에 주둔시켰다. 사정거리가 1100km에 달하는 ‘마타도어’는 중국과 소련에 대한 견제 목적도 있었다. 핵무기가 존재했거나 거쳐 간 장소로는 도봉산핵탄두저장소, 군산공군기지, 오산공군기지, 대전기지, 춘천기지 등이 있다.
 
  한반도에 핵무기 배치로 중국과 북한이 사실상 미국의 핵 위협하에 들어가자, 중국과 북한은 발끈하며 대응에 나섰다. 1964년 중국은 핵실험에 성공한다. 그러자 미국은 곧바로 전술핵폭탄을 탑재한 B-57 폭격기를 군산기지에 전개해 견제에 나서기도 했다.
 
  이후 미국은 본격적인 군비경쟁에 돌입했다. 미국은 속도가 느린 마타도어 순항미사일 대신, 서전트(Sergeant) 탄도탄을 배치했다. 1977년 팀 스피리트 훈련부터는 랜스(Lance), 퍼싱(Pershing) 탄도탄을 전개시켜 본격적인 견제에 나섰다. 사정거리 110km의 랜스가 대북한용이라면, 700km 이상을 날아갈 수 있는 퍼싱은 대중국용이었다.
 
  1991년 노태우(盧泰愚) 정부의 비핵화 선언 이후, 고정 배치된 랜스는 철수·폐기했고, 이후 한국에 다연장 방사포인 MLRS(Multiple Launch Rocket System) 부대를 배치했다. 최근엔 기존 2개 대대에 1개 대대를 추가로 배치했다. 주목할 것은 MLRS 발사대에는 사거리 300km의 에이태킴스(ATACMS)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할 수 있다.
 
 
  金日成, 허큘리스 배치에 자극 받아
 
1960년대 배치된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 이 미사일 배치 후 김일성이 크게 자극받았다고 한다.
  1960년대 들어서자 미국은 주한미군에 나이키 허큘리스(Nike-Hercules)와 호크(Hawk) 지대공 미사일을 대량으로 배치했다. 주목할 것은 나이키 허큘리스 미사일은 항공기 격추용 지대공(地對空) 미사일, 핵탄두를 싣고 평양을 타격할 수 있는 지대지(地對地) 미사일 등 두 종류였다.
 
  미국은 한반도에 2개 사단(2사단, 7사단)만으로 병력을 유지하면서, 순항미사일·탄도탄·방공미사일을 배치함으로써 중국과 북한을 견제하려고 했던 것이다. 나이키 허큘리스와 호크 미사일은 광주, 부산, 태안반도, 문산 일대에 배치됐다. 한반도에 미사일 전력이 확충되자, 북한 김일성은 크게 자극을 받았다고 한다.
 
  북한은 1960년대부터 소련 최대의 핵연구소인 ‘듀브나 핵연구소’에 핵물리학자를 파견해 연구를 시작했다. 이때 듀브나 핵연구소에서 수학한 핵물리학자 최학근(崔學根)은 1986년 12월 북한으로 돌아와 원자력공업부장으로 임명됐다. 북한은 1960년대 중반 소련에서 연구용 원자로를 도입한 이래 원자로 설계기술 개발에 힘써 1970년대에는 연구용 원자로의 출력확장 기술을 자체 개발했고, 1990년대에 들어서는 핵연료 확보에서 재처리에 이르는 일련의 핵연료 주기를 완성하는 데 주력해 2006년 첫 번째 핵실험을 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1970년대, 미국의 ‘숨고르기’와 전투기 전력 재배치
 
  1970년대 전 기간에 걸쳐 미국은 의도적으로 해외에서 전쟁을 수행하지 않으며,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베트남전에서 발을 뺀 미국은 포드(Gerald Ford) 대통령 시절인 1974년부터 베트남 철군으로 여유가 생긴 동남아 지역 전투기 부대를 군산 기지에 이동 재배치한다.
 
  이때부터 군산 기지에 전술핵폭탄을 운반할 수 있는 붙박이 전투기 부대가 배치된 것이다. 그전에는 주일 미 공군의 전술핵 탑재 전투기 일부가 임시 배치되거나 순환 배치되는 정도였다. 오산과 군산에는 핵폭탄을 싣고 발진할 수 있는 팬텀기를 고정 배치했고, 동시에 군산에 핵폭탄 저장창고를 지하에 건설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조성렬(趙成烈) 책임연구원은 2003년 4월 출간한 저서 《주한미군: 역사, 쟁점, 전망》에서 한반도에 핵무기 배치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한반도의 핵무기 역사는 1957년 주한 미 지상군이 핵무장을 하면서 시작됐다고 했다. 그는 “미국은 1957년 6월 판문점 군사정전위 회의에서 정전협정 가운데 한반도 무기반입 조항을 폐지한다고 선언했다”며 “이후 주한 미 7사단이 핵탄두를 사용할 수 있는 펜토믹 사단(Pentomic Division)으로 개편되어 한반도에 핵무기가 배치됐다”고 말했다.
 
  특히 당시의 한반도 핵무기는 일본에 있던 핵무기를 옮겨온 것으로, 일본에서는 반핵운동이 거셌지만, 한국에서는 핵무기 반발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 유엔군사령부는 핵 반입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주한미군은 핵무기를 서울 북방에 전진 배치했으며, 심지어 북한의 야포 사정거리 안에 있는 산꼭대기에 공격 받기 쉬운 상태로 배치해 전쟁이 일어날 경우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사실상 포기하는 것이었다. 이는 수도 서울을 방사능에 노출시키는 것을 의미했으며, 주한미군의 핵전략은 한국을 구하기 위해 한국을 파괴할 준비를 해야 하는 자기 모순적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근본적인 자기모순이 대두되어 결국 1990년 10월 주한미군 사령관의 건의로 1991년 9월 당시 조지 부시 행정부는 한반도에서 전술핵무기를 철수시킨다.
 
 
  1980년대, 신냉전으로 주한미군 주둔은 안정적
 
  1981년 레이건(Ronald Reagan)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스타워즈(Star Wars)’로 미·소 군비경쟁을 본격적으로 유도했다. 이른바 ‘신냉전’이 시작된 것이다. 그 덕분인지 1980년대 전 세계의 미군기지는 축소되지 않았고, 한반도에서 한·미 연합훈련인 ‘팀스피리트 훈련’이 활발하게 연례행사처럼 펼쳐졌다.
 
  미국의 스타워즈에 맞선 소련은 서서히 ‘가산탕진’의 길에 접어들었다. 덩달아 북한도 군비경쟁에 동참하면서 경제에 멍이 들기 시작했다. 반대로 1980년대 주한미군은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1989년 아버지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같은 시기에 톈안먼 사태로 미국은 중국을 재평가하기 시작했고, 이를 군사협력을 중단하는 명분으로 삼았다.
 
  그러나 주한미군 감축은 10년 만에 다시 테이블에 올랐다. 1989년 샘 넌 상원군사위원장(민주)과 존 워너 의원(공화)이 내놓은 ‘샘-워너 법안(Nunn-Warner amendment)’이 의회를 통과한 것이다.
 
  주한미군과 관련, 한국이 자체 안보의 책임을 증대하는 한편, 주한미군의 직접비용 부담을 증액해야 하며, 미국과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의 단계적 감축 가능성에 대해 협의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출신의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소련의 멸망을 어느 정도 예측하면서 주한미군의 역할변경을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샘-워너’ 법안
 
샘 넌 의원과 존 워너 의원. 1989년 당시 주한미군 감축을 골자로 한‘샘-워너 법안’을 만든 장본인.
  ‘샘-워너’ 법안은 즉각 주한미군을 감축해야 한다는 의회와 장기적이고 전반적인 재검토를 주장하는 행정부 사이의 절충안으로, 1989년 7월 상원 군사위에 제출된 범퍼스 법안(1만명 감축)에 비해 온건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즉, 주한미군의 전략적 위상은 한반도의 전략적 균형자와 인계철선(trip-wire) 역할에서 보조적 역할로 바뀌는 것을 의미했다. 주한미군이 북한에 대비한 전력지수상 5%의 전력(한국 독자적으로는 66%)을 보유하면서도,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등 한국방위에서 주도적 역할을 맡고 있었다.
 
  더욱이 1989년부터 1991년에 이르는 동안 소련이 붕괴하고 동서독이 통일되는 등 국제정세는 급변했다.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91년 9월, 부시 행정부는 일방적으로 전술핵무기 철수를 발표했고, 제2사단 3여단을 철수시킨다.
 
  1990년 8월 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함으로써 발발한 걸프전쟁은 미군을 주축으로 해 편성된 34개국의 다국적군이 참전했다. 미국은 이라크를 상대로 승리했고 당시 러시아는 소련 해체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중국은 핵을 보유했으나 제대로 된 대륙간 탄도미사일 투발수단을 갖지 못하는 등 미국에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 못했다. 이른바 탈냉전의 ‘반짝 평화’가 찾아왔다.
 
  그러나 북한이 1991년 플루토늄 재처리로 핵개발 의혹이 시작되면서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고 장거리용 탄도탄 개발에 나서는 등 미국의 신경을 거스른다. 걸프전에서 승리를 거둔 미국은 당시의 첨단무기면 1990년대 동북아 지역 분쟁은 해상과 공중전 중심으로 지원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지상군을 단계적으로 철수시키고, 일본 주둔군 중심의 해·공군 트랜스포메이션을 진행하려 했다. 한국 육군의 현대화가 시작된 것과 보조를 맞추면 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시작하면서 기존 트랜스포메이션은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한국 육군은 경제발전을 원동력으로 한창 현대화를 진행하는 시기였다. 한국 육군의 현대화가 어느 정도 충족되려면 1999년은 지나야 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주한 미 지상군을 다시 보강해 놓고 기다리기로 한다. 1990년대 한국 육군은 K55 자주포와 K1 전차를 각각 1000대 단위로 양산해 배치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차기 전차로 K1A1과 차기 자주포로 K9을 개발하고 있었다. K1A1과 K9은 2000~2010년 사이에 500대 가까운 수량으로 배치된 바 있다.
 
  미국 클린턴(Bill Clinton) 정권은 1994년 북핵 위기 때부터, 주한 미 지상군 철수를 중단하고 되레 보강을 시도했다. 아파치 공격용 헬기, 패트리엇 미사일, MLRS 다연장 로켓포 부대를 증강했다. 그리고 3여단을 뺀 자리에 전차와 공격헬기, 브래들리 장갑차를 갖춘 기계화 기병대대(4~7대대)로 3여단의 전력공백을 메우도록 했다. 이러한 전력증강은 1994년부터 북핵 위기가 지속되던 2004년 제2여단이 빠지기 전까지 이어졌다.
 
  10년 동안 한국 육군이 급성장하도록 대비태세를 보강해 주었고, 1개 여단을 철수시켰으나 상징적으로 나머지 1개 여단은 사단(2사단) 이름으로 존속시켰던 것이다. 사실 미국은 2005년부터 2015년까지 그들 나름대로의 트랜스포메이션 시간표를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2005년부터 한국 육군이 K2 흑표전차, K21 보병전투차, AH-64E 가디안 아파치 공격헬기, 한국형 MLRS 천무, KUH-1 수리온 기동헬기 등 한국형 첨단무기를 개발하면서 미국은 한국군이 미군 1개 전투여단이 없어도 충분히 지상전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었던 것이다.
 
 
  한반도 최악의 시나리오
 
  1996년 타이완(臺灣) 총통선거에서 대만 독립 지지자 리덩후이(李登輝)가 후보로 나서자, 본토 중국은 그의 당선을 막기 위해 대만 기륭반도 앞바다에서 미사일 발사 훈련 등 무력시위로 압박했다. 그러자 미국 클린턴 행정부는 미 7함대 소속 항모 2척을 파견해 무력시위를 했다.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충돌위기가 고조되자 세계가 주시했으나, 결국 중국은 미 항모전단 기세에 굴복하고 말았다. 이것이 현대 미·중 충돌위기로 알려진 ‘양안사태’다. 그런데 양안사태는 이후 중국 군사전략을 크게 전환케 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중국은 항모 건조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동안 중국은 항모전단 보유의 비용 대 효과 면에서 공격력은 막강하나 방어가 취약하다는 점을 들어 잠수함 전력 건설에 기울어져 있었다. 하지만 양안사태에서 미국 항모전단에 굴욕당한 중국은 항모를 보유하려는 쪽으로 선회하고 말았다. 중국의 노력 결실은 2012년 11월 25일 중국 함재기 J-15가 중국의 최초 항모 ‘랴오닝(遼寧)’에서 이착함을 성공함으로써 결실을 보게 됐다.
 
  1990년대 말로 접어드는 시기에 미·중관계는 틀어지고 있었고, 북한과 중국은 밀월관계에 접어들었다.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을 묵인하거나 감쌌고, 미국의 견제가 심해지자 북한을 카드로 삼은 것이다.
 
  김국헌 장군은 “현재 미국의 전력으로는 동북아 지역에서 두 개의 전장에서 전쟁수행이 불가능한 상태”라면서 “만일 중국이 북한을 꼬드겨 자신들은 대만을 침공하고, 북한이 남한 휴전선을 돌파한다면, 미국은 장기로 말하면 ‘외통수’ 상황에 몰리게 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것이 현재 한반도에서 가장 생각하기 싫은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라고 했다.
 
 
  美·日 新밀월 시대
 
  2010년대 말까지 미국은 중국과 북한의 동시 탄도탄 공격에 대응해서 동북아지역 트랜스포메이션을 미 해병대 ‘생존성’에 맞추고 있다. 미국은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해병대 제3사단을 오키나와, 괌, 호주에 분산배치를 예정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후텐마(普天間) 기지를 이전하고 해병대 병력을 분산하며, 병력수송용 오스프리 헬기를 이와쿠니(岩國) 기지에 함께 배치한다. 2017년 해외기지로는 최초로 F-35B 스텔스 수직이착륙 전투기를 이와쿠니 기지에 배치하는 등 무기 현대화를 통해 일본과 함께 중국의 패권경쟁에 맞선다는 전략이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동북아 질서 새판짜기 작업에 나서고 있다. 지난 4월 26일 아베 총리의 미국 방문은 미·일 신밀월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오바마가 표방한 ‘아시아 중심축 이동’ 전략의 포장을 벗겨내면 중국 포위 전략과 다름없다. 중국을 견제하는 게 미국의 최고 외교 목표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부족한 부분을 동북아에서 중국의 인접국이자 최대 라이벌인 일본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때맞춰 일본에서 아베가 등장해 ‘강한 일본’을 표방하면서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정상 국가로 변모해 가려 하고, 자위대의 해외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주한미군 기지이전 사업은 여의도 면적의 3.3배인 450만평에 달하는 부지에 한국 측에서만 8조8600억원을 투입하는 초대형 국책사업이다. 평택기지는 평택시 팽성읍 부지에 자리 잡은 K-6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 바로 옆의 166만평이 모체가 된 것이다. 2006년 좌파단체들의 격렬한 반대 속에 부지 확보가 이루어진 평택기지는 이제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2016년 초반 새 평택기지가 완공되면, 주한미군 사령부, 유엔군 사령부, 미8군 사령부 등 용산기지 사령부들 외에 미2사단 사령부와 예하 여단 등 주한 미 지상군 주력 전투부대가 모두 평택기지에 집결하기 때문에 앞으로 캠프 험프리는 주한미군의 두뇌이자 심장부로 탈바꿈하게 된다.
 
  내년부터 기지 이전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주한미군 방어를 위한 사드 포대 배치 1순위로 거론되는 지역이다. 현재 캠프 험프리에는 미 육군 아파치 헬기 부대와 EC-5B, RC-12 정찰기가 배치돼 있다.
 
 
  ‘평택 호텔 입주자’ 지상군에서 해병대로 변경
 
지난 3월30일 경북 포항 독석리 해안에서 실시된 2015 한미 연합상륙훈련에 참가한 미 해병대원들. 평택기지는 미 육군이 아니라 해병대가 사용하게 될 수도 있다.
  원래 2006년 기준 주한미군 이전 계획으로는 제2사단 제1전투여단이 평택으로 오기로 했으나, 해체돼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대신 이곳에는 2016년 4월부터 9개월 일정으로 오는 순환여단이 평택기지를 ‘출장 호텔’처럼 이용하게 된다. 그러나 국제정세에 따라 미 육군 전투여단이 오지 않는 경우도 생긴다. 이럴 때 평택기지는 사실상 오키나와에서 대체 배치되는 미 해병대 여단이 대신 사용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2013년 말 건설에 들어간 포항의 ‘캠프 무적’은 주한 미 해병대 증강을 대비한 시설로 건물을 증설해 현재 최소 1개 중대 및 전투 장비를 상주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현재 건설교통부 주관하에 포항공항의 노후 활주로 공사도 한창이다. 이것은 미 해병항공대와 같이 사용하는 포항 군공항의 예비부지를 정리하는 것이다.
 
  미국은 2005년 이래로 미 해군항공대 소해헬기 MH-53E 2대를 포항에 파견했는데, 일본 주둔 부대를 옮겨온 것으로 알려졌다. 평상시 소해헬기 부대와 캠프 무적의 미 해병대를 항공 지원하려면 포항 군공항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와 함께 국방부는 2006년부터 2010년 사이에 해군의 진해 기지사령부 영내 한쪽에 주한 미 해군 아파트를 확장 증축하는 공사도 완료했다. 이 시설은 미 해군 7함대 잠수함 승조원 숙소로 알려졌다. 즉, 육군의 전력은 한반도에서 빼고, 대신 그 빈 자리를 해군과 해병대로 소리 소문 없이 메워 가고 있는 상황이다.
 
  향후 한반도에서 유사 상황이 발생하면, 미국은 지상군보다는 미 해병대 전력을 투입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사실은 5~6년 전 한·미 연합 해병대훈련 당시 영·위관급 지휘관들이 협력 발전시킨 내용으로, 한반도 지상전에 대비한 미 해병대의 대응태세에 관한 것이다.
 
  즉, 미 본토의 육군은 현재 지상군 사단이 10개에 불과해 해외에 투입할 여력이 없다. 유럽지역의 독일에 유일하게 붙박이 미군 1개 기갑여단이 나토군의 일원으로 주둔할 뿐이다. 그것을 대신해 유사시 오키나와를 비롯해 미 본토 해병대 모두를 동원해서 대신한다는 것이다. 미 해병대 정규병력은 항공대 병력을 합해 19만명이다.
 
 
  주일미군과 자위대의 ‘스와핑’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최신예 전투기 ‘F-35B’.
  미군의 동북아 트랜스포메이션은 아쓰키, 이와쿠니, 오키나와, 괌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맥아더 원수가 1945년 첫발을 내딘 아쓰키(厚木) 기지는 현재 미 항모전단 CVW-5 비행단과 일본 해상자위대 해상초계기 부대가 함께 사용하고 있다. 이곳에는 미 항모 조지워싱턴에 탑재한 항모비행단 전투기가 작전이 없을 경우 상주하고, 절반은 해상자위대의 P-3C 부대가 사용한다.
 
  그러나 앞으로 주일 미 해군, 해병대의 항공전력은 현재 이와쿠니(岩國) 기지로 집결하고 있고, 일본 항공자위대 전력은 아쓰키로 통합되고 있다. 이와쿠니 기지는 본험 리처드(Bonhomme-Richard) 헬기항모(4만5000t)가 배치돼 있는 사세보(佐世保)항과 가까워 F-35B 스텔스 수직이착륙 전투기와 오스프리 수직이착륙 수송기가 날아가 즉각 탑재시켜 한반도 및 센카쿠 같은 지역에 전력을 투사하기 적합한 위치다.
 
  일본 역시 2018년 말부터 연차적으로 도입할 예정인 17대의 MV-22B 오스프리를 사세보에 가까운 사가(佐) 공항에 배치할 예정이다. 사세보 군항에는 현재 해상자위대의 헬기항모 휴가급도 배치돼 있다.
 
  최근 요코스카에 배치된 휴가급의 확대형인 이즈모급과 본험 리처드 헬기항모에 동시에 F-35B를 탑재 운용하면, 미국은 현재 항모 1척에서 3척의 효과를 보게 된다. 비록 2020년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지만, 중국 항모 전력 증강에 대응하는 움직임인 것만은 틀림없다. 당장 미국만이라도 헬기항모 이착함용 F-35B 스텔스 전투기를 최우선으로 2017년에 이와쿠니 기지에 배치해 극동에 항모를 현재 1척에서 2척 체제 효과를 가지려 하고 있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이를 위해 미국은 대중국 전력증강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일본에 헬기항모 건조를 적극 장려하는 입장”이라면서 “미 국방부는 F-35B를 영국 이외에 일본에도 판매할 용의가 있다고 언질을 주고 있는 중”이라고 전했다.
 
  이와쿠니에는 2017년 F-35B(해병대용) 수직이착륙 스텔스 전투기뿐만 아니라 2020년 이후 F-35C(해군용) 스텔스 전투기 부대도 주둔하게 된다. 한편 현재의 이와쿠니에 있는 일본 P-3C 부대도 아쓰키로 옮겨와 순수한 일본 P-3C 기지로 남는다. 항공기지의 ‘스와핑’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와쿠니는 바다로 향한 기지로 제트전투기에 의한 소음 문제에서 벗어나 있고, 아쓰키는 도심지에 위치한 기지로 터보 프롭기와 여객기형 해상초계기만 배치해 민간인들의 민원(民怨)도 해결하려는 것이다.
 
  미사와(三澤) 공군기지는 미군의 P-3C 부대와 F-16 1개 비행단, 글로벌 호크 부대가 주둔하고 있고, 일본의 F-2 지원전투기, 글로벌 호크(배치 예정)가 주둔한다. 주목할 것은 2018년부터 도입 예정인 F-35A 스텔스 전투기를 최우선으로 미사와 기지에 배치한다는 발표가 얼마 전에 있었다.
 
  《디펜스타임즈》 안승범(安承範) 편집장은 “F-35A를 중국과 가까운 규슈 인근 미야기현 지역의 쓰이키, 뉴타바루(新田原) 등지에 배치하지 않는 것이 처음에 의아했으나, 그 의문이 풀렸다”면서 “F-35A 항속거리 능력상 러시아, 북한, 중국을 동시에 견제할 수 있는 기지로 미사와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한 F-35A 스텔스기가 배치되면, 대함공격에 특화된 F-2A 전투기를 뉴타바루 기지로 내려보내 중국 해군을 견제하면서 구형의 F-4EJ 팬텀을 도태시키게 될 것이라고 한다.
 
 
  2010년대 이후, 우방국들의 대리전 양상
 
  합참의 한 관계자는 “향후 미국의 군사전략은 지상전투는 해당국에서 직접 수행하되 군수, 정보 등을 측면 지원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서 “아프리카 리비아와 말리에서 전투가 벌어졌을 때 미국은 프랑스에 정보 및 항공수송 지원만을 했고, 최근의 중동사태 등에서도 직접적인 전투는 해당국에 이관(移管)하는 추세”라고 했다.
 
  예컨대 우크라이나 사태 때 미국은 폴란드 등 동구권 우방국에 대한 지원을 나토군에 맡겼고, 나토군의 일원으로 독일 주둔 1개 기갑여단이 우크라이나 국경까지 왕복 진출하는 훈련만 하는 정도였다. 이제 미국은 직접 개입보다는 나토군 핵심전력을 신속대응군과 긴급 신속대응군 등으로 재편해 대비토록 지도하고 있다.
 
  또 하나는 미국은 우월한 무기체계를 동맹국과 공유함으로써 유사시 정보와 군수지원만으로 대신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F-35 스텔스 전투기를 캐나다, 호주, 영국, 이탈리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터키 등에 우선 공급하려는 것이 그 예다. 나토군의 이름으로 분쟁지역에 투입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미국의 최신 스텔스 전투기가 필수적이다.
 
  이들 국가가 현재 보유한 미국제 F-16/18 전투기로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 전쟁, 리비아 공습, 시리아 공습에 동참하도록 함으로써 앞으로도 변함없이 미국의 ‘행동대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더 나아가 요르단,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과 북아프리카 국가들은 공히 미국제 F-16 전투기를 이용해 IS(이슬람국가) 공습과 예멘에서의 공동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예멘사태에서 볼 수 있듯, 사우디는 미국제 F-15S 전폭기로 예멘의 수도 사나를 초토화시키고 있다. 물론 공습목표 정보와 공중급유 등 항공기 군수지원은 미국이 맡고 있다.
 
  더욱이 이란은 팔레비 왕정 시절 미국이 공급한 F-4 팬텀 전폭기로 IS를 공습하는 데 동참해 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미국과 핵협상을 타결해 서방 측과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표면적으로 중립국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F-35에 담긴 정치적 의미
 
  그동안 중동에서 최고의 미국 협력국가는 이스라엘이었으나, 현재는 미국제 전투기를 운용하는 이슬람 국가들이 새로운 행동대원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이란과 화해해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는 동시에, 이스라엘에만 편중된 중동정책에서 벗어나 경제실리도 추구하려는 것이다. 더욱이 북동 아프리카에서는 케냐군이 미국제 F-5E/F 전투기로 소말리아의 알 샤바브 테러단체를 공습하는 등 미국의 지역별 대리국은 증가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이 뿌려 놓은 전투기를 가진 우방국들의 대리전 수행이 절정에 달하고 있다.
 
  미국이 일본에 이어 한국에 F-35A 스텔스 전투기를 보유하도록 독려하는 깊은 뜻(?)은 이런 의미와 일맥상통하고 있다. F-35A를 줄 수 없는 우방국에는 여전히 F-16 전투기를 만들어 제공하고 있고, 아프가니스탄처럼 믿음이 안 가는 국가에도 브라질제 A-29 수퍼 투카노 경공격기를 대신 구매해 넘기고 있다.
 
  미국은 과거 냉전시절 서유럽 나토국가들, 특히 서독 지상군을 강력한 기갑부대를 보유한 군대로 재건시키는 작업을 했다. 기갑장비 중 특히 전차는 자유롭게 자신들의 기술로 설계해서 보유하는 대신, 주포(主砲)와 탄약(彈藥)의 ‘공통화’를 요구했다. 반대로 영국제, 독일제 주포를 미국 전차 주포로 두 차례 채택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시에 미국은 일본 육상자위대도 동일한 과정을 거치게 했고, 한국의 최신형 전차들도 예외가 아니다.
 
  해군 전투함에서는 시 스패로(Sea Sparrow), 스탠더드(Standard) 함대공 미사일 등을 나토 규격화했으며, 역시 일본 해상자위대, 한국 해군도 미국의 공통화, 규격화 범주에 속해 있다. 한국과 일본은 함정은 자체 설계해 건조하지만, 이지스 레이더와 주요 미사일 등의 화력은 미국의 주도하에 생산한 것들을 장착한다. 예외라면 우등 동맹국인 영국 그리고 외형적으로 독자 노선인 프랑스 정도다. 물론 함정용 레이더와 해군 미사일의 원천 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 베트남전을 거친 이후 자국의 지상군 병력이 희생당하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춘 트랜스포메이션을 추진해 왔다. 대신 해·공군 중심의 첨단 무기체계를 제공해 여전히 미국 주도하에 놓이도록 하고 있다.
 
 
  카터 장관, F-22 전투기와 B-2 폭격기 한반도 전개 암시
 
지난 4월10일 방한한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과 한민구 국방부장관이 공동 기자회견을 마친 후 악수를 하고 있다.
  지난 2월 취임 후 처음으로 방한한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지난 4월 10일 한민구(韓民求) 장관과 만났다. 이 자리에서 그동안 논란이 됐던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인 ‘사드(THAAD)’ 배치 문제는 양국 국방장관 회담에서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대신 큰 틀에서의 한국 역할보다는 북한의 위협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강조했다. 카터 장관은 10일 북한이 개발 중인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 억제전략위원회(DSC)’를 출범시키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사드 문제에 대해 한국과 중국의 ‘간’을 본 느낌이다.
 
  카터 장관은 지난 4월 10일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한민구 국방장관과 회담을 한 직후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 논란과 관련, “사드는 생산이 진행 중인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사드를 배치할 곳이 어디가 적절한지에 대해 아직까지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카터 장관은 “배치 시기도 그 생산이 진행되는 상황에 따라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카터 장관이 아직 사드 배치 문제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고 밝힘에 따라 가까운 시일 내에 한·미 간 사드 배치의 공식 협의가 시작될 가능성은 낮아졌다. 지금까지 미국은 2019년까지 사드 7개 포대를 실전 배치할 계획이고, 주한미군에는 2017년쯤 이후에나 배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애슈턴 카터 미 국방장관은 지난 4월 9일 오산 공군기지에 도착한 직후 주한미군 장병들을 만나 “미국은 새로운 스텔스 전투기(F-35), 스텔스 폭격기(B-3), 새로운 함정(줌월트급 스텔스 구축함)들을 만들고 있으며, 이 지역(아시아·태평양)에 투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터 장관은 “이 지역은 매우 중요하고 작전을 펼치기 어려운 지역”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미국은 괌과 오키나와 미군기지에 F-22 스텔스 전투기와 B-2 스텔스 폭격기 등을 수시로 배치해 운영 중에 있다. 이에 따라 이날 그의 발언은 스텔스 전력이 없는 한반도 배치를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카터 장관도 “가장 위험한 곳들 중의 하나가 바로 이곳 한반도”라고 말해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2020년 이전까지 미국은 미 본토에 배치할 미 공군용 F-35A가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이 먼저 F-35A를 도입, 배치해 러시아와 중국을 견제하는 동안 차기 스텔스 폭격기(B-3)를 개발하는 시간과 예산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미 해병대의 F-35B 수직이착륙기가 이와쿠니에 배치돼 한반도와 일본을 오가며 작전훈련을 할 것이다. 원래 미 국방부 계획은 주일 미 공군의 미사와 기지에 F-35A를 배치하려 했다. 그러나 계획을 수정해 알래스카 에일슨(Eielson) 공군기지로 바꿨다. 최근에 다시 준동하는 러시아 전략폭격기의 알래스카 접근을 견제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한국군, 홀로서기 시작해야
 
  대신, 일본 항공자위대의 F-35A가 블라디보스토크를 중심으로 하는 극동 러시아군을 견제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고, 주한 미 공군의 노후한 F-16CM/DM 전투기를 한국 공군의 F-35A가 보완해 주기 때문에 당분간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계산인 것이다. 미국은 각 군의 예산배정 문제로 인한 전력배치 순서를 거꾸로 동맹국을 통해 보강하는 것이다. 미국의 최신 무기 공급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미국의 안보정책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합참 관계자는 “한국 공군과 일본 항공자위대는 주한·주일 미 공군보다 먼저 F-35A를 2018년부터 받아서 전력화해야 한다”면서 “한국 해군에 주어진 당면 과제는 미국제 이지스 전투체계와 함대공 미사일을 추가로 도입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되면 2020년대 일본 해상자위대는 10척의 이지스 호위함을, 한국 해군은 6척의 이지스 구축함을 보유한 상태에서 미 해군의 줌월트급 구축함이 배치되는 것이다. 앞으로 2019년까지 매년 주일 미 해군에 탄도탄 방어용 이지스 구축함이 한 척씩 배치돼 한·미·일 공동전선을 형성하게 된다. 그런 다음에 줌월트급 스텔스 구축함이 아·태지역으로 올 것이다. 스텔스 폭격기(B-3)는 아직 존재하지 않거나 공개되지 않은 미완성 물건이다. 일러야 2020년대 중반에나 초도 기체가 배치될 전망이다.
 
  김영규 주한미군 공보담당 고문은 “한반도 유사시 69만명의 증원병력을 상정한 ‘작계 5027’은 사라졌다”면서 “향후 미국은 동맹국들에 미국의 최신무기를 제공하면서 스스로 전쟁을 수행하라고 주문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 뒤에서 미국이 부족한 부분을 B-2/3 스텔스 폭격기, F-22 스텔스 전투기, 줌월트급 구축함, CVN-78 차기 항모(로널드 레이건) 등의 최첨단 해·공군 전력으로 측면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2015년 7월부터 한반도에 붙박이 미 지상군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전작권은 실종되고, 미국은 미 본토를 방어하기 위한 사드 대탄도탄 부대를 중심으로 한·미 연합 미사일 방어 부대 창설을 통한 트랜스포메이션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국 육군은 생존을 위해 강력한 이스라엘 육군처럼 독자적인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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