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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甲濟의 시각

워싱턴 北인권토론회와 리퍼트 대사 被襲 사건

글 :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mongo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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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의 김정은 단죄 결의,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에 이은 김정은의 소니사(社) 해킹, 김기종의 칼부림…. 점점 종북좌파 진영의 행태가 세계적 관점에서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이들의 종말을 예고하는 현상이 아닐까? 아니면 종말의 시작(the beginning of the end)인가?
UN 북한인권보고서 발표 1주년 기념토론회에 참석한 소냐 비세르코 전 UN 북한인권 조사위원, 로버트 킹 미 북한인권 특사, 마이클 커비 전 조사위원장, 이정훈 한국 인권 대사,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석좌(왼쪽부터).
  유엔의 북한인권조사보고서 발표 1주년을 맞아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주제로 한 국제토론회가 지난 2월 중순 워싱턴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THE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CSIS)에서 열렸다. CSIS, 북한인권위원회(미국), 연세대학교, 부시 연구소가 공동 주최하였다.
 
  토론회에는 이 보고서(COI·UN COMMISSION OF INEQUIRY REPORT) 작성을 지휘하였던 세 사람, 마이클 커비 전 위원장(호주 대법관 출신), 마르주키 다루스만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인도네시아 검찰총장 출신), 소냐 비세르코 씨(세르비아 외교관 출신), 그리고 전 미국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 커트 캠벨, 빅터 차 조지타운대학 교수를 비롯한 요인들과 한국 정부의 이정훈 인권대사,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김태효 성균관대 교수(전 대통령 전략비서관), 김태훈·이미일·한기홍 등 한국의 북한인권운동가, 정광일·이순실 씨 등 탈북자(脫北者)들이 대거 참석하였다. 필자도 토론자로 갔다. 눈이 많이 내려 공공기관이 문을 닫은 날임에도 회의실은 관계자들과 보도진으로 꽉 찼다.
 
  이 보고서의 건의사항이 작년 유엔총회에서 통과되어 안보리 의제로 채택된 이후 북한인권 문제가 세계적인 관심사로 등장한 것을 반영한 뜨거운 분위기였다. 이 보고서와 유엔총회의 결의는 김정은 정권의 인권탄압을 국제법상 처벌대상인 ‘반(反)인도범죄’로 규정했다. 총회는 이에 근거, 김정은 및 관련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해야 한다는 결정적 제안을 안전보장이사회에 했고, 놀랍게도 안보리는 이를 의제(議題)로 채택했다. 김정은이 국제형사재판소에 서게 된다면 북한정권은 무너진다.
 
  유엔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는 다섯 개 상임이사국에 중국과 러시아가 들어가 있어 당장 회부 가능성은 낮지만 의제로 채택되어 언제라도 논의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김정은으로선 잠이 오지 않을 일이다.
 
 
  커비 위원장의 불만
 
  이 보고서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유엔에서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한다는 논의가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였다. 한국의 인권 전문가들 사이에서 하나의 이론으로 검토될 뿐이었다. 1989년부터 북한인권 문제를 기사화해 온 필자로서는 감격적인 회의 분위기였다.
 
  필자는 《월간조선》 기자로서 1989년에 김현희(金賢姬)씨를 만나 인터뷰한 이후 북한에 대한 취재를 시작하였다. 탈북자들이 주된 취재원이었다. 1991년 1월호 《월간조선》 부록으로 나온 〈북한 그 충격의 실상〉은 ‘살아본 사람과 가본 사람의 이야기’라는 부제(副題)를 달았다. 돌이켜보면 북한을 문서가 아니라 사람을 통하여 탐구하는 방식이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북한에서 나온 문서로 북한체제를 연구한 이들 중 좌경화(左傾化)되어 북한에 대한 환상을 갖게 된 이들이 많다.
 
  마이클 커비 전 위원장은 보고서 작성 이후 한국의 정치인과 언론이 너무나 무관심한 데 불만을 토로하곤 한다. 이 역사적인 문서, 특히 한국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칠 보고서가 나왔는데도 자신에게 연락을 해온 정치인과 언론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월간조선》 기자가 이메일로 연락을 해온 것이 처음이었다는 얘기도 했다.
 
  워싱턴 회의에서도 커비 씨는 몇 차례 “왜 한국이 북한인권 문제 해결에 적극적이지 않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유엔의 북한인권보고서에 담긴 내용의 수집은 한국 측의 협조나 노력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탈북자, 언론인, 소수의 정치인이 20여 년간 축적해 온 자료가 보고서의 근거가 되었다.
 
  커비 씨는 이 보고서 작성 과정을 통하여 1990년대의 필자처럼 많은 탈북자를 만났고, 그리하여 북한정권의 만행을 가장 강경하게 비판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그는 김정은 일당을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전체주의 체제의 지도부로 본다. 그런 관점이 유엔총회 결의로서, 국제법적으로 뒷받침되었으므로 우리는 자신 있게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체제를 히틀러나 스탈린과 같은 수준에서 비교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종북(從北) 세력에 대하여서도 이런 새로운 관점에서, 즉 국제적 시야에서 비판, 폭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HISKIM 세력
 
  그들은 헌법재판소 결정문대로 대한민국의 적(敵)일 뿐 아니라, 반인도범죄집단인 북한정권 추종 세력이다. 지구상에서 도덕적으로 가장 타락한 집단이다. 예를 든다면 종북분자들은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비호하는 유대인과 같은 집단인 것이다. 문제는 이들을 무엇이라고 호칭할 것인가, 특히 영어로 어떻게 표기할 것인가이다.
 
  필자는 작년에 이들을 ‘HISKIM 세력’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이번 국제회의에 참석한 캐나다의 한 교민 운동가는 “조 선생의 아이디어가 좋아 보인다”면서 “‘HISKIM ELEMENT’라고 표기하면 어떨까 생각한다”고 했다. HISKIM은 3대 악당 HITLER, STALIN, 김일성에서 따온 조어(造語)이다. ‘Devil's Supporters(악마의 지지자)’나, ‘SOD(Son of Devil·악마의 자식)’란 발상도 있었다.
 
  필자는 토론회에서 한국 종북좌파 세력의 이력에 대한 설명을 한 20분간 했다. 북한의 인권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피해자인 한국이 중심적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아무리 미국과 유엔이 나서도 어려움이 쌓인다. 한국이 가진 어마어마한 국력(國力)과 자원을 동원하려면 북한인권법 통과를 막고 있는 ‘악마의 비호자들’을 약화(弱化)시켜야 한다는 취지였다. 유명한 북한 전문가인 에버슈타트 씨가 청중 속에 있다가 어떻게 그런 집단이 존재할 수 있는지 추가 설명을 구하는 질문을 했기에 이런 요지의 답변을 하였다.
 
  “기가 막힌 일이지만 한국에서만 일어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1930년대의 유럽에서도 지식인들이 앞장서서 스탈린의 학살과 재판 쇼를 비호하였다. 이런 과정에서 지식인들은 자기 나라의 정치를 오염시켰다. 지식인들의 도덕적 타락이 나라에 옮겨 붙은 것이다. 1930년대 미국에서도 대공황 이후 동부의 엘리트 등 지식인들이 좌경화하여 공산당에 가입하고 자발적으로 소련을 위하여 간첩질을 했다. 유엔을 만드는 데 주역이었던 앨저 히스, IMF 창설의 미국 측 책임자였던 덱스터 화이트가 소련 간첩이었지 않은가? 그 같은 일들이 한국에서 일어났다고 보면 된다.”
 
  나는 커비 씨에게 왜 한국이 북한인권 문제에 냉담한지를 설명하다가 발표를 위하여 준비해 간 영문 자료를 건네주었다. 안호영 주미한국 대사가 주최한 만찬 때 커비 씨는 내 옆자리에 앉았다. 그는 “김대중씨를 자주 만났을 것 같은데 어떤 사람이었는가”라고 물었다.
 
 
  커비 씨에게 준 메모
 
  〈왜 한국에선 북한인권 및 핵문제가 작게 취급되는가?
 
  1. 1980년대 이후의 민주화운동에 북한정권의 가짜 민족주의 선동이 먹혀들어 북한을 동정하고 미국을 미워하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2. 1980년대 좌경화된 민주화운동 세대가 대학을 졸업하고 정치, 언론, 학계, 노동계, 법조계, 사회단체로 많이 진출, 친북반미적(親北反美的) 여론 형성층이 되었다.
 
  3.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좌경 세력의 지지로 출범, 10년간 이 세력을 키우고, 북한인권을 무시하며, 북의 핵개발 위협을 축소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4. 이명박, 박근혜 정부도 보수층의 지지로 정치적 권력을 잡았으나 반공(反共)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부족으로 기회주의적 태도를 취하는 바람에 사회, 문화 부문에 진지(陣地)를 튼 매우 활동적인 친북좌파 세력을 약화시키지 못하였다.
 
  5. 현재 한국의 정치여론 구조는, 19세 이상의 유권자를 기준으로 할 때 핵심 친북좌파 세력이 약 10%, 동조자가 약 20%로서 약 30%의 잠재력을 가진 잘 조직되고 비교적 젊은층이다. 보수층은 핵심이 약 30%이고 보수적 중간층까지 합치면 약 70%로 추정되지만 비조직적이고 연로(年老)하다.
 
  6. 부자이면서도 비겁한 한국은 살진 돼지, 북한은 야위고 사나운 늑대에 비유된다. 미국에 안보를 너무 많이 의존하는 바람에 많은 한국인은 적과 동지를 구분할 줄 모르는 무책임한 국민이 되었다. 이런 태도가 더 무책임한 정치인들을 만드는데, 언론의 선동보도가 이들을 지원한다. 악순환이다.
 
  7. 반인도범죄집단인 북한정권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북한인권법 제정을 반대하는 한국의 국회의원들은 유대인 학살 부인(否認) 범죄자(Holocaust denial crime)와 같다. 이들은 한국의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고 북한의 핵개발을 자위용(自衛用)이라고 옹호한다. 이들은 한국의 좌경적 언론에 의하여 진보 세력이라고 미화된다. 이들이 정치와 언론의 주도권을 잡고 있으므로 북의 핵 및 인권탄압 문제가 국내에선 작아지고 있는 것이다.〉
 
 
  알지도 못하는 나라의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
 
한국전 기념물 바닥의 銘文은 名文인데, 용산 전쟁기념관 복도 벽에도 같은 내용을 담은 銘文이 있다.
  북한인권 문제 관련 국제회의에 참석한 참에 워싱턴 시내 한복판에 있는 한국전 기념물을 다시 찾았다. 바닥에는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다.
 
  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우리나라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을 지키라는 부름에 응했던 우리의 아들과 딸들에게 경의(敬意)를 표한다.〉
 
  이 문장 옆에는 숫자가 적혀 있다.
 
  ‘Dead 54,246, Wounded 103,284’
 
  약 180만명(연인원)의 미군이 참전, 약 5만4000명이 죽었고 약 10만명이 다쳤다는 증언이다. 두 차례 이라크전에서 전사(戰死)한 미군의 약 10배이다.
 
  김일성의 남침 때 미군(美軍) 파병을 결정하여 한국을 살린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이 결정이 자신의 재임(在任) 기간 중 가장 어려운 선택이었다고 술회하였다.
 
  당시 미국은 30만명의 미군이 전사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5년밖에 되지 않았다. 미국의 군부(軍部)는 유라시아 대륙 전체가 적화(赤化)된 마당에 한국을 지킨다는 것은 불필요하고 가능하지도 않다고 판단, 그 1년 전에 주한미군(駐韓美軍)을 철수시켰다. 미국 정부는 이승만(李承晩) 정부가 대북(對北)도발을 못 하도록 무기도 제대로 대주지 않는 정책을 썼다. 한국과 미국 사이엔 동맹 조약이 없어 미국은 파병할 의무가 없었다.
 
  그럼에도 트루먼 대통령은 남침 보고를 받자마자 파병(派兵)을 결심한다. 전화를 걸어온 애치슨 국무장관에게 그가 내뱉은 말은 “그 개○○들을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였다.
 
 
  “우리는 고향에 돌아간 적이 없다”
 
버나드 S. 샴포 미8군 사령관.
  미군 파병으로 인해 트루먼 대통령은 고생을 많이 하였다. 항명(抗命)한 맥아더를 해임하였다가 욕을 먹었고, 승리도 패배도 아닌 휴전(休戰)을 위하여 협상을 끄는 사이에 많은 미군이 죽어나가자 여론이 등을 돌렸다. 그는 반공포로(북한군과 중공군)를 강제송환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했는데, 이 고귀한 원칙을 지키기 위하여 휴전이 늦어져 많은 미군이 희생되었다. 그는 퇴임할 때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져 역대 최저 기록을 세웠다. ‘휴전’을 공약한 공화당의 아이젠하워 후보가 대선(大選)에서 이겼다.
 
  트루먼의 인기가 회복된 것은 그가 죽고 나서였다. 특히 동서냉전(東西冷戰)이 서방세계의 승리로 끝난 뒤 전문가들은 그를 ‘냉전 승리의 기초를 놓은 대전략가’라고 평가하기에 이르렀다.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창립, 마셜 플랜, 독일과 일본의 부흥, 한국전 파병, 대만 보호, 원폭(原爆) 투하, 트루먼 독트린 등 그가 결정한 전략이 50년 뒤에 결실을 보았던 것이다.
 
  닉슨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으로서 미중(美中) 관계 정상화의 기틀을 놓았던 헨리 키신저는 하버드대학 교수 시절, 은퇴하여 고향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에서 살고 있던 트루먼 대통령을 찾아갔다. 트루먼 대통령은 이런 요지의 말을 하였다고 한다.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적이었던 독일과 일본을 도와 민주주의 국가가 되도록 만들고 경제부흥도 시켰다. 적을 이렇게 도와서 친구로 만들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다.”
 
  작년 말 예술의전당에서 제7회 한미 친선 송년(送年) 음악회가 열렸다. 주한 미8군 사령부와 서울사이버 대학교(학교법인 신일학원 이사장 이세웅)가 공동으로 주최한 음악회 시작 전, 버나드 S. 샴포 8군 사령관이 인사를 했다. 그는 “8군은 한국전쟁 때 한반도로 전개된 이후 한 번도 한국을 떠나지 않았고, 고향에 돌아간 적이 없다”고 했다.
 
  “고향에 돌아간 적이 없다”는 말에 가슴이 찡했다. 그는 “발전하고 번영하는 한국에 주둔하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한국이 8군의 제2의 고향이 된 것이다. 미8군은 1944년 6월에 창설되어 태평양 전쟁에 투입되었다. 일본이 항복한 뒤엔 점령군으로 주둔하다가 1950년 7월 한국 전선에 파견되어 유엔군의 주력(主力)으로 공산군의 남침을 저지하였다. 현재는 2사단을 핵심으로 하고 있는 전력(戰力)이다.
 
 
  ‘인류의 敵’ ‘헌법의 敵’
 
  북한정권을 국제법상의 ‘반인도범죄(Crimes against humanity)’ 집단으로 규정, 김정은 등 책임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할 것을 결의, 안보리 의제로 채택되도록 하는 데 바탕이 된 북한인권보고서는 북한정권을 히틀러와 스탈린 같은 전체주의 체제로 규정했다.
 
  이 역사적 문서는 “고문, 처형, 강간, 성분차별, 외국인 납치, 노예노동, 여성·어린이·장애인·기독교인 차별, 강제수용소 운용 등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중대한 인권침해가 자행되고 있는 바, 그 규모, 심각성, 그리고 성격은 현대 세계의 어떤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정도”라고 지적, 국제사회가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김일성의 남침 때 한국을 구해준 유엔이 이제는 김정은을 응징, 북한 주민들을 구하는 일에 나섰다.
 
  같은 날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을 ‘반인도범죄집단’인 북한정권의 남한 공산화 전략을 추종하는 ‘북한식 사회주의 폭력혁명 획책 집단’으로 규정, 해산시켰다. 국제법과 헌법에 의하여 두 악당은 각각 ‘인류의 적’ ‘헌법의 적’으로 심판받았다.
 
  그럼에도 한국 정치권에선 이러한 세계적 대세(大勢)를 거스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반인도범죄집단’의 핵개발을 지원하고 인권탄압을 비호해 온 세력이 제1야당의 당권을 장악하더니 대통령을 향해선 ‘전면전(全面戰)’을 경고하고, 헌법재판소가 통진당 해산 결정을 내렸다고 ‘나라 망칠 조직’이라고 모독하면서, 이승만, 박정희를 히틀러에 비유하고, 북한인권법 통과를 막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를 향하여 전면전을 경고한다면 그전에 김정은에 대해서도 핵개발과 인권탄압의 책임을 물어 국지전(局地戰) 정도는 경고해야 최소한의 균형감각이라도 있는 것 아닌가?
 
  미국 대사에 대한 종북분자의 칼부림은 이런 반문명적 분위기 속에서 일어났다. 사회와 격리되었어야 할 테러범은 노무현 정권의 뒷받침을 받아 북한을 들락날락하고 통일부의 통일교육 요원으로 일했으며, 새정치연합 의원들과 친분을 유지하였다. 보수 진영에선 새정치민주연합을 종북숙주(宿主) 세력으로 부르는데 이번 사건에서 극적으로 입증된 셈이다.
 
 
  일맥상통하는 憲裁와 유엔의 對北인식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가 통진당을 해산하는 결정을 내릴 때의 가장 중요한 판단은 종북좌파 세력의 전위당(前衛黨)인 통합진보당이 추구하는 진정한 목적이 ‘북한식 사회주의’라는 점이었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민 주권에 입각하므로 계급독재론에 근거한 사회주의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 사회주의(또는 공산주의) 중에서도 가장 악질적인 것은 ‘북한식 사회주의’이다. 헌법재판소는 통진당이 추구한 ‘북한식 사회주의’의 특징을 1당 독재일 뿐 아니라 주체사상과 수령론, 그리고 1인 독재가 가미된 전체주의 세습체제로 규정하였다.
 
  북한식 사회주의의 악행을 조사한 유엔은 북한인권보고서와 유엔총회 결의를 통하여 “북한정권은 전체주의 체제이며, 현대에서 유례가 없는 반인도 범죄를 저지르고 있어 국제법을 위반하므로 지도부를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여 단죄하여야 한다”라고 못 박았다.
 
  〈북한은 전체주의 국가의 많은 특성을 보인다. 한 개인이 이끄는 일당 통치는 “김일성주의-김정일주의”라고 일컫는 정교한 지도 이념에 기반을 두고 있다. 북한정권은 유년 시절부터 사상을 주입시키고, 공식 이념에 의심을 품는 모든 정치적·종교적 의견을 억압하며, 주민들의 이동, 타국민과는 물론 북한 주민들끼리도 소통을 통제함으로써 주민들에게 이러한 지도 이념을 내재화시킨다. 성별과 ‘성분’에 따른 차별을 통해 정치 체제에 대한 도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엄격한 사회구조가 유지된다.〉
 
  북한정권을 반인도범죄집단으로 규정한 유엔총회의 결의는 인류 보편적 가치관과 국제법적 강제력을, 통진당을 대한민국의 적으로 규정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헌법적 정당성을 갖는다. 한국의 종북좌파 세력을 세계 보편적 관점에서 재규정하면 그들은 ‘반인도범죄 비호 세력’이자, 전체주의 집단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친(親)히틀러, 친 파쇼 세력이며 ‘인류의 적 비호 세력’이다. 인권과 환경을 내세우지만 이들이야말로 진짜 수구반동(守舊反動) 세력이고 ‘악(惡)의 축(軸)’이다.
 
  핵개발, 인권탄압, 종북 세력은 한 뿌리에서 나온 세 갈래의 악이다. 이 악을 없애려면 뿌리인 북한정권을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실전(實戰)배치하고 있으므로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자유 통일하지 않으면 우리가 먼저 당하게 생겼다. 죽지 않기 위하여 통일을 해야 하는 마당에, 미국 대사 테러가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졌다.
 
 
  이해할 수 없는 판사들
 
  지난 3월 7일자 《조선일보》의 기사를 요약한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를 습격한 김기종(55)은 4년 전에는 일본 외교관을 공격했다. 그는 2010년 7월 한 행사장에서 주한 일본 대사를 향해 손바닥만 한 콘크리트 덩어리 2개를 던졌다. 일본 대사는 겨우 피했지만 일본 여성 서기관이 맞아 부상을 입었다. 외교관에 대한 폭행은 최대 징역 5년을 받을 수 있는 중대한 범죄다. 김은 당시 폭행 등 전과 2범이었지만 법원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한 법률 전문가는 ‘그때 일벌백계 차원에서 실형을 선고했다면 그가 다시 외교관을 공격할 생각은 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종북사상뿐 아니라 김의 잇따른 불법을 솜방망이 처벌한 허술한 공권력이 그를 결국 테러범으로 키우는 데 일조했다는 것이다.〉
 
  요사이 이념적 재판을 지켜보면 ‘종북 세력의 최후 보루는 법원의 일부 문제 판사들이 아닌가’하는 느낌이 들곤 한다. 이들은 이념문제가 걸린 사건에 대하여는 법률 이전에 사실, 상식, 도덕과도 배치되는 편향된 판결을 한다.
 
  이들 때문에 한국 법원의 최근 판결 성향은, 대한민국을 지키는 일을 하였던 이들에겐 가혹하고 대한민국을 부정하거나 파괴하려는 사람들이나 특히 좌경 인사들에겐 너그러운 경향을 보인다. 우파유죄(有罪), 좌파무죄(無罪)란 말이 나올 정도이다. 도주의 우려가 없는 전 국정원장과 전 경찰청장은 법정구속하고, 수뢰 혐의로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대법원에 계류 중인 새정치연합의 한명숙 의원에 대한 선고는 3년째 나오지 않고 있다. 올해만 넘기면 재판을 받으면서 국회의원 임기를 다 채우게 된다.
 
  여러 좌편향 판결들을 분석하면 담당 판사들이 북한정권이나 종북좌파엔 동정적이고 대한민국 및 정통세력, 그리고 미국에는 적대적이란 감정이 전해오는 경우가 많다.
 
  1980년대 대학을 다니면서 좌경이념에 오염된 정신의 소유자들이 지금 40대가 되어 언론, 정치, 법조, 학계, 사회단체 등에 많이 진출, 왕성한 활동을 보인다. 그 뒤는 전교조의 계급투쟁론적, 반대한민국적 교육을 받은 세대가 잇고 있다. 세대가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
 
  이념적 사건의 판결 결과는 위법성을 기준으로 해선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어느 재판부가 사건을 담당하느냐에 의하여 판결이 극(極)과 극을 오간다. 재판의 가장 중요한 기준인 판례 중시(重視)의 예측 가능성이 무너진 지 오래이다. 이러한 성향은 이용훈 전 대법원장 시절부터 더욱 심해졌다. ‘이제 재판은 위법성이 아니라 어느 재판부에 배당되느냐에 의하여 결과가 달라지는 일종의 로또 당첨 같은 게 되었다’는 자조적(自嘲的) 말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 법조인들 입에서 나올 정도가 되었다.
 
  종북테러분자인 김기종은 좌파정권과 일부 판사와 좌경 언론의 비호 속에서 양성된 인물이다. 지난 30년간 진행된 한국의 좌경화가 진위(眞僞), 선악(善惡), 피아(彼我) 분별력을 마비시켜 한국을 적전(敵前) 무장해제시키고, 한미동맹의 핵심부를 위협하게 되었다는 증거이다.
 
 
  통진당 비밀 당원이 된 공무원들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한다는 점을 확인하고 해산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재판에서 해산 청구인인 법무부는 2005년 10월 15일에 작성된 민주노동당의 내부 자료(집권전략위원회 제4차 회의자료)를 제시하였다. 이 자료는 당원 수에 ‘당우’를 포함시켰는데 1324명이었다. 법무부는 전교조 소속 1345명과 전공노 소속 공무원 293명 등 모두 1638명을 민주노동당 가입 및 당비 납부 혐의로 기소하였다고 밝혔다.
 
  2012년 7월 동아닷컴은 〈통합진보당 당원 명부를 압수한 검찰이 정당 가입이 금지돼 있는 교사, 공무원, 군인 입당자를 가려내 처벌하는 문제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검찰이 수사를 시작할 경우 2010년 민주노동당에 가입하고 당비를 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소속 교사와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 소속 공무원 240여 명이 적발됐던 것보다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검찰이 확보한 당원 명부에는 당원의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지, 직장, 당비 납부 내용, 탈당 여부(與否) 등이 모두 담겨 있어 대조만 해보면 금방 불법당원을 가려낼 수 있다는 것이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최초 수사 목적으로만 압수물을 활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통진당 당원 명부는 비례대표 부정경선 의혹과 관련해 압수된 것이어서 불법당원 문제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검찰의 시각이라고 했다.
 
  검찰이 압수한 통진당 명부에 1000명 내외의 공무원 이름이 실려 있다는 믿을 만한 정보가 있다. 민노당에 가입하였던 1600여 명의 공무원이 통진당 당원으로 이어졌는지, 새로운 인물들인지는 조사로 판명될 사안이다.
 
  헌법재판소에 의해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한 위헌정당으로 해산된 지금, 이런 조직에 공무원들이 대거 비밀 가입하였다는 것은 엄청난 안보문제이다. 공무원의 신분을 이용, 고급정보를 빼내고, 대통령 등 요인(要人)들에게 위해(危害)를 가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검찰은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위험 세력임이 확정된 다음에도 잔존(殘存) 세력에 대한 수사를 미루고 있다. 이러다가는, 널리 알려진 종북 폭력 전과자에 의한 미국 대사 테러를 막지 못한 공안기관이 통진당 가입 공무원에 의한 대통령 테러를 막지 못하는(또는 막지 않는) 사태가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적중한 김일성의 예언
 
  1977년 12월 평양을 방문한 동독(東獨) 공산당 서기장 호네커에게 김일성은 이런 말을 하였다. 독일 통일 후 입수한 회담록에서 옮긴다.
 
  〈남한에서 박정희 같은 사람이 정권을 잡지 않고 정당한 민주인사가 정권을 잡는다면 그 사람이 반공주의자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런 사람이 권력을 잡는다면 통일의 문제는 풀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남한에서 민주인사가 권력을 잡으면 조선의 평화통일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남한에서 민주적인 상황이 이루어진다면 노동자와 농민이 그들의 활동을 자유로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외국 군대는 물러가야 합니다. 남한 민중이 그들의 길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때 그들은 사회주의의 길을 선택할 것입니다.〉
 
  김일성은 남한이 민주화되면 설사 반공주의자가 집권해도, 노동자와 농민들의 활동이 자유로워지므로 민노당·통진당 같은 종북정당도 만들 수 있어 대남(對南)공작에 유리하고, 좌경 세력의 선동에 넘어간 남한 사람들 손으로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던 것이다.
 
  1980년대 다수 민주인사들은 좌익운동권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그들은 군사정권에 대한 반발로 좌경화되었으므로 민주화만 되면 사라질 것이다’고 했었는데, 김일성의 전략 판단이 적중하였고, 이들의 막연한 낙관론은 빗나갔다. 이념의 문제를 가볍게 본 탓이다.
 
  더구나 민주화된 이후 한국에선 반공주의자가 집권한 것이 아니라 김대중, 노무현 같은 좌파와 이념무장이 안 된 새누리당이 집권하였으니 상황은 김일성이 예상한 것보다 북에 더 유리해진다.
 
  고(故) 황장엽(黃長燁) 선생의 증언에 따르면 김일성은 “남한정권에서 미국과 일본의 지원을 떼 버리면 양쪽의 갓끈이 떨어진 갓 모양으로 되어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 버리는 가엾은 신세가 되고 만다”는 말을 자주 하였다고 한다.
 
  북한정권과 국내 좌파들은 일본을 미국과 같은 주적(主敵)으로 보는 데 철저하다. 미일(美日)이 북한에 의한 무력남침이나 혁명적 상황이 벌어질 때 한국을 지원할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반일(反日)은 반미(反美)처럼 중요한 전략인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에서는 〈반일+반미=종북〉이라는 공식이 적용된다. 일본 대사 테러범 김기종의 미국 대사 테러가 이 공식을 증명한다. 일본을 무조건 미워한 결과는 반미로, 더 나아가서 친북·종북으로 결산된다. 좌익이 주도하는 감정적 반일에 편승하는 일부 보수층은 피아 식별을 잘 해야 할 것이다.
 
 
  새정치연합의 親美행보?
 
제19대 총선을 앞둔 2012년 3월 10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와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야권연대 공동합의문에 서명했다.
  종북분자에 의한 미국 대사 테러 이후, 오랫동안 ‘종북숙주(從北宿主)’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통진당 해산에 반대하고, 북한인권법 제정을 막아온 새정치민주연합이 갑자기 친미(親美)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이 정당 소속 정치인들의 행적을 보면, 이러한 행보의 신뢰는 회의적(懷疑的)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130명) 중 16%인 21명이 국보법 및 반공법 위반 전력자(前歷者)이다. 이들이 그러한 행위를 저지른 것은 대부분 민주화(1988년) 이후였다. 130명의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중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구학련(구국학생연맹), 삼민투(삼민투쟁위원회) 등 좌경단체 혹은 이적(利敵)단체 연루자가 11명이다. 이들은 국가보안법 폐지, 미국 인권법 제정 비판, 통진당과의 선거연대, ‘천안함 폭침 대북규탄 결의안’ 반대 등에 앞장서 왔다.
 
  제19대 총선을 앞둔 2012년 3월 10일, 새정치연합의 전신(前身)인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와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는 총선 때 후보자를 단일화하고 총선 이후 구성되는 19대 국회에서 양당(兩黨)이 추진하기로 한 ‘공동정책합의문’을 발표하였다. 여기에는 ▲‘6·15공동선언’ ‘10·4선언’의 이행 ▲한미FTA 시행 전면 반대 ▲제주 강정 해군기지 공사 중단 ▲군복무 기간 단축 및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 신설 ▲국가 안보문제 전반에 대한 결정에서 시민참여 보장 ▲국가보안법 폐지 ▲교사·공무원의 정치활동 등이 포함되어 있다.
 
  정치적 미사여구(美辭麗句)들로 포장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내용들은 한 꺼풀만 벗겨보면 우리의 안보태세와 한미동맹을 약화시키고 북한의 대남공작기구와 좌경 세력의 활동공간을 넓혀주는 내용들이다.
 
 
  ‘국제시장派’와 ‘우물 안 개구리派’의 대결
 
  오늘의 한국과 한국인을 있게 한 두 번의 대사건은 신라의 삼국통일(三國統一)과 이로 인한 ‘민족(民族)의 탄생’이고, 대한민국 건국(建國)에 의한 ‘국민(國民)의 탄생’이다. 국민은 민족이나 백성보다 더 진화(進化)한 존재, 즉 국가의 주권자(主權者)이다. 국민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 민족이라는 모태(母胎)에서 생겨난 공동체(共同體)이니 신라의 삼국통일이야말로 민족사 2000년의 최대 사건이다.
 
  삼국통일을 주도한 신라의 태종무열왕(김춘추)과 문무왕(文武王), 그리고 대한민국의 건국과 근대화를 주도한 이승만과 박정희의 공통점이 있다. 네 사람 모두 해외 경험을 가진 개방파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무서운 자주(自主)정신의 소유자였다. 개방과 자주는 실용(實用)정신으로 매개될 때 같은 뿌리를 이룬다. 이들은 당대(當代)의 세계를 활동무대로 삼았다. 국제경쟁력이 있는 지도자였다. 세계를 무대로 한 점에서 ‘국제시장파’라고 부를 만하다.
 
  반면 이들과 대척점(對蹠點)에 있었던 연개소문, 조선조의 선비들, 김일성, 그리고 종북좌익들은 세계정세를 모르거나 오판(誤判)하여 나라를 망치거나 백성들을 고생시켰다. 이들은 시야(視野)가 좁은 ‘우물 안 개구리파’였다.
 
  유엔의 김정은 단죄 결의,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에 이은 김정은의 소니사(社) 해킹, 김기종의 칼부림…. 점점 종북좌파 진영의 행태가 세계적 관점에서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이들의 종말을 예고하는 현상이 아닐까? 아니면 종말의 시작(the beginning of the end)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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