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집중점검

論文으로 본 洪容杓 통일부장관의 대북정책관

“對北포용정책(햇볕정책) 비판은 냉전적 사고”

글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국가보안법, 군사정권 시절 人權탄압 수단… 지금(2000년)도 良心의 자유 침해하는 惡法”
⊙ “‘6·15 공동선언’ 제2항은 金大中·金正日의 평화공존 의지 표출”
⊙ “北韓, 1991年 이후 大韓民國과 대등한 사실상의 국가로 여겨져 와”
2015년 3월 1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열린 통일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홍용표 당시 장관 후보자가 선서하고 있다. 과거 그는 논문을 통해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대북정책을 집행하는 통일부장관에 홍용표(洪容杓) 전 대통령실 통일비서관이 취임했다. 청와대가 그를 통일부장관에 내정한 2월 17일부터 정치권과 언론은 ‘홍용표’ 검증작업에 착수했다. 그 결과 ▲위장전입 ▲탈세 ▲다운계약서 작성 ▲논문표절 등의 의혹을 제기했고, 홍 장관은 청문회에 나와 이를 모두 인정하고 “송구하다”며 사과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측은 청문회 당시에 정책검증도 시도했다. 주로 ▲5·24 조치 해제 ▲향후 남북대화 계획 등 남북관계 현안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홍 장관의 답변은 원론적인 수준에 그쳤다. 신임 통일부장관이 북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며, 향후 대북정책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이에 《월간조선》은 홍용표 신임 통일부장관이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산하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재직 당시 발표한 논문들을 통해 그의 대북정책관을 살폈다.
 
  그 결과, 홍 장관이 과거 논문을 통해 “6·15 공동선언은 역사적 성과” “남북한 정상의 ‘평화 공존’에 대한 의지 표출” 등으로 평가한 사실을 확인했다.
 
  또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취지의 주장을 하고,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은 “냉전적 사고방식에 따른 것”이라고 규정했으며, 정부에 “반공문화 청산을 위해 노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하는 내용도 발견했다. 적어도 박근혜 정부의 통일정책 담당자로서 합당한 대북관을 가지고 있느냐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목이다.
 
 
  洪容杓, 김대중 정부 통일장관에 더 적합
 
  홍 장관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산하 통일연구원에서 연구위원으로 일했다. 그 후엔 한양대 정외과 교수로 있었다. 교수 재직 당시 홍 장관은 ‘뉴라이트’ 단체에 참여했다. 그는 2005년 3월 ‘신보수주의’를 주창하는 교수들의 모임인 ‘뉴라이트싱크넷’에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이를 두고 야당에선 “홍 장관은 대북 강경파”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컸다.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 서영교(徐瑛敎) 의원은 3월 11일 통일부장관 청문회에 대해 논평하면서 “통일부장관 후보자로서 더욱 부적격한 것은 홍용표 후보자는 뉴라이트 활동을 했다는 것”이라며 “뉴라이트 활동 경험이 있는 사람이 통일부장관을 할 수 있겠나”라고 따졌다.
 
  이어 “정치 편향적이고 통일에 대한 것보다는 반북에 대한 사고가 더 높은 것이 뉴라이트”라며 “과연 통일부장관으로서 그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뉴라이트 경력, 그의 대북관도 무척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홍 장관의 논문을 보면 최소한 그의 대북관, 대북정책 기조는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계승했다고 자처하는, 새정치민주연합과 크게 다른 점이 없다.
 
  홍용표 장관은 2005년 3월 〈6·15 남북공동선언 재조명: 이론적 배경과 의미〉란 논문에서 6·15 공동선언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2000년 6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金正日)이 만난 것에 대해선 “김대중 정부는 기능주의와 신기능주의를 융합하며 남북관계 개선과 당국 간 대화 성사를 위해 꾸준히 노력한 끝에, 2000년 4월 8일 북한과의 비공개 접촉을 통하여 마침내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할 수 있었다”고 기술했다.
 
  홍 장관은 2000년 당시 김대중 정부의 대북 접근법이 주효했기 때문에 ‘남북정상회담’이 가능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2000년 당시 ‘남북정상회담’이 가능했던 건 ‘뒷거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현대그룹을 앞세워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북한 김정일에 최소 5억 달러에 달하는 금품(현금 4억5000만 달러·현물 5000만 달러)을 몰래 줬다.
 
 
  “남북정상회담, 對北송금보다 ‘햇볕정책’ 덕분에 가능해”
 
2000년 6월 13일, ‘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한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북한 김정일과 악수하고 있다.
  앞서 홍용표 장관이 언급한 ‘2000년 4월 8일 비공개 접촉’은 남북한 당국자, 정몽헌(鄭夢憲) 당시 현대그룹 회장이 ‘뒷거래’에 합의한 날이었다. 다음은 이와 관련해 정몽헌 회장이 2003년 대북 비밀송금 의혹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팀과 대검찰청 중수부에 진술한 내용이다.
 
  〈우여곡절 끝에 4억 불에 합의를 했습니다. (중략) 저는 “회담 전까지 4억 불을 주는 것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하니까, 송 부위원장(북한 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 송호경)이 “그럼 정상회담을 그만두겠다”면서 지급 시기를 회담 전까지로 못을 박으려고 했습니다. (중략) 정상회담은 성사시켜야겠다는 생각에 “그럼 회담 전에 이 자금을 주면 우리 정부 측과 계속 협의를 하겠느냐”라고 하니까, 송 부위원장도 “그렇게 약속을 하면 계속 하겠다”라고… (후략)〉
 
  2003년 특검 결과 현대그룹이 북한 당국의 공식 계좌가 아닌, 김정일의 비밀계좌로 뒷돈을 송금한 사실이 밝혀졌다. 2000년 당시 ‘남북정상회담’은 사실상 김대중 정부가 민간기업을 동원해 김정일에게 ‘뒷돈’을 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정치 이벤트’였던 셈이다.
 
  홍용표 장관이 해당 논문을 쓸 당시엔 이미 이런 사실관계가 공개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홍 장관은 같은 논문에서 김대중 정부의 ‘대북비밀송금’에 대한 비판에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정상회담과 관련된 대북송금 문제로 정상회담을 ‘돈을 주고 샀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대북송금이 정상회담 개최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더라도, 대북송금 그 자체만으로 정상회담이 성사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체제유지에 급급한 북한의 상황을 고려할 때, 북한의 체제를 인정하며 일관되게 화해·협력을 추진한 햇볕정책이 없었다면, 북한은 정상회담 자체를 거부했을 가능성이 높다.”
 
  홍 장관은 또 ‘6·15 선언’에 대해 ‘역사적 성과’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6·15 남북공동선언 재조명: 이론적 배경과 의미〉에서 “김대중 정부는 남한의 보다 적극적인 대북접근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자유주의적 접근인 기능주의 및 신기능주의 이론에 기반하여 햇볕정책을 추진하였고, 그 결과 ‘6·15 공동선언’이라는 역사적인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제1항과 제2항에서는 통일문제를 언급하였는바, 결국 이는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라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6·15 공동선언’의 제2항에 대해 “남북한 정상이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에 공통성이 있다고 합의한 것은 사실상 ‘2체제·2정부’를 인정한 것으로 ‘평화공존’에 대한 의지를 표출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면서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다 알다시피 ‘6·15 선언’ 2항에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거론한 것 자체가 대한민국의 통일정책을 부정한 것 아니냐는 논란을 낳았던 대목이었다.
 
 
  北韓의 ‘낮은 단계 연방제’에 대해 憲裁 인식과도 달라
 
박지원 2000년 4월 8일 문화관광부장관과 북한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 송호경이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합의문에 서명했다.
  그동안 남한은 1989년부터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북한은 1970~80년대 ‘고려연방제’, 1990년대 이후엔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통해 각자 ‘2체제·2정부’ 형식을 주장해 왔다. 남북한이 ‘6·15 선언’을 계기로 접점을 찾은 게 아니란 얘기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의 ‘남북연합’과 북한의 ‘낮은 단계 연방제’ 사이엔 공통점이 없다는 점이다.
 
  지향하는 통일국가의 모습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남한은 ‘1민족·2정치실체·2체제·2정부’의 ‘남북연합’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국가’의 전 단계로 상정한다. 이 과정에서 북한이 자유화, 민주화 등의 체제전환을 하면, ‘1민족·1국가·1체제·1정부’의 통일국가를 수립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한반도의 공산화’를 위한 1단계 전략으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제시했다. ‘2체제·2정부’는 남한 적화를 위한 일종의 ‘미끼’란 얘기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12월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문(2013헌다1)〉을 통해 북한을 추종하는 통진당이 “‘낮은 단계 연방제 통일’ 이후 추진할 통일국가의 모습은 과도기 단계인 진보적 민주주의 체제를 거친 사회주의 체제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었다.
 
  당시 안창호(安昌浩), 조용호(趙龍鎬) 헌법재판관은 ‘북한식 연방제 통일’의 결론은 ‘남한 적화’란 취지의 ‘보충의견’을 냈다.
 
  〈피청구인이 주장하는 연방제 통일과 관련하여 보건대 (중략) 남북 총투표는 변혁의 대상인 ‘수구보수세력’ 등이 배제된 민중만이 주권자로서 참여하는 투표를 의미하고, 북한에서는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의 ‘수령’과 ‘조선노동당’의 의사에 의해 주민의 의사가 결정되므로, 비록 남북 총투표로 통일헌법을 제정하고 통일국가를 형성한다고 하더라도, 이는 남북한 주민 전체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중략) 피청구인 주도세력이 ‘1민족·1국가·2체제·2정부’의 연방제 통일방안을 주장하는 것은 결국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를 추구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요약하면, 북한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전환하지 않은 상태에서 연방을 구성하는 건 북한의 ‘적화통일’ 전략에 휘말리는 것이므로,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우리의 ‘남북연합’과 공통점이 없다.
 
 
  “정부, 국내 反共문화 청산에 노력 기울여야”
 
  홍용표 장관은 또 2000년에 발표한 연구보고서 〈대북 포용정책을 위한 국내 정치여건 조성방안에 관한 시사점〉에서 “대북 포용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경제적 요인 외에도 냉전적 사고방식에 기인한 바 크다고 할 수 있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오랜 반공교육으로 인해 국민들의 마음에 새겨진 경직된 반공의식은 대북 포용정책의 수용을 어렵게 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 있는 반공문화를 청산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하여야 할 것이다.”
 
  그는 또 해당 보고서의 말미에 “독일 통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동독 출신의 한 목사는 반공주의는 자기 자신의 힘을 발휘하기 때문에 공산주의가 없어져도 반공주의가 존재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면서 “반공주의는 통일 과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통일 후에도 계속 존재하여 통합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이 조언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고 적었다.
 
  홍 장관이 해당 논문을 쓸 당시의 대북 포용정책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말한다. 그는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을 가라앉히려면 정부가 반공문화 청산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같은 주장은 ‘헌법’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반공을 근간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헌법 전문은 대한민국이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제4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명령한다. 8조는 정당 설립의 자유와 복수정당제를 보장한다. 11조 1·2항은 모든 국민은 평등하고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으며, 사회적 특수계급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23조 1항은 국민의 사유재산권을 보장하고, 119조 1항은 경제질서의 기본원리는 ‘자유시장경제 체제’라고 규정한다.
 
  바꿔 말하면 우리 헌법은 ▲인권탄압 ▲사유재산 폐지 ▲계획경제 체제 ▲특정 이념에 따른 1당·1인 독재 등의 특징을 가진, 공산주의나 ‘북한식 사회주의’를 허용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도 ‘사건번호 89헌가113 결정문’에서 이와 같은 취지로 해석했다.
 
  요약하면, 국가 최고 규범인 헌법에 따라 대한민국에서 자유민주적 질서를 위협하는, 공산주의를 배격하는 건 당연한 행위다. 그런데도 홍 장관은 이를 ‘냉전적 사고방식’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가보안법, 南北화해 선도 관점에서 일부 개정 필요”
 
2009년 6월,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소위 ‘6·15공동선언 9주년’ 기념식 참가자(좌)들은 “우리 민족끼리 6ㆍ15선언 이행”을 주장했고, 서울역 광장에선 고엽제전우회 등 우파단체 회원(우)들이 6ㆍ15선언 폐기를 촉구했다.
  물론 ‘반공문화’ 형성 원인 중 하나로 과거의 ‘반공교육’을 꼽을 수도 있지만, 가장 직접적인 원인인 ‘북한의 대남도발과 적화 위협’을 언급하지 않은 채 우리의 의식만을 탓하는 건 어폐가 있다.
 
  북한은 6·25 전쟁을 일으켰다. 정전 이후에도 끊임없이 대남 도발을 해 왔다. 국방부에 따르면 북한은 1953년 이후 60년간 총 43만 회에 걸쳐 정전협정을 위반했다. 1990년대로 한정했을 경우에도 북한은 ▲부여 무장간첩 사건(1995. 10)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1996. 9) ▲속초 잠수정 침투 사건(1998. 6) ▲여수 반잠수정 침투 사건(1998. 12) 등을 비롯해 45차례나 정전협정을 어겼다.
 
  특히 1999년 6월엔 북한 경비정과 어뢰정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와 ‘밀어내기’로 대응한 우리 해군 함정에 선제공격했다가 대패한 ‘제1연평해전’이 있었다.
 
  그런데도 홍 장관은 그로부터 1년쯤 지난 시점에 낸 연구보고서에서 ‘냉전적 사고방식’을 언급하면서 반공문화를 청산하라고 주장한 것이다.
 
  홍용표 장관은 2000년에 발표한 논문 〈남북한 차원의 평화체제 정착: 기본합의서 이행방안〉에서 “남북정상회담 이후 조성된 남북한의 화해 분위기가 평화정착의 제도화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민족화해를 위한 법적 정비가 필요하다”며 국가보안법 개정을 주장했다.
 
  그는 이 논문에서 “국가보안법 개정을 신중히 추진해야 한다”면서도 “국가보안법이 지난 시기에 정권안보를 위한 ‘정치적 적대세력’ 제거의 효과적 수단으로 활용되어 온 것 또한 사실”이라며 ‘일부 개정 후 점진적 폐지’를 주장했다. 다음은 논문에서 이와 관련한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도 여러 번 국가보안법의 개정을 촉구했다. 그 골자는 제2조 반국가단체 개념의 개정, 국보법의 제7조(찬양고무) 및 제10조(불고지죄)의 자의적 해석 및 지나친 남용을 막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국가보안법의 개폐에 대한 반대론도 적지 않은 만큼 무리해서 폐지를 추진하기보다는 단계별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중략) 따라서 우리가 남북 화해를 선도한다는 관점에서 가능한 것부터 일부 조항을 손질하고, 이후 남북 간에 진정한 화해 구도가 정착될 때 북한의 형법 등과 연계해 폐지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보안법, 군사정권 때 人權탄압 수단으로 악용”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홍용표 장관은 2000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군 출신 대통령 재임 기간에 “국가보안법은 민주인사에 대한 인권 탄압 수단으로 악용됐고,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악법으로 남아있다”며 국가보안법 개정을 주장했다.
  홍용표 장관이 주장하는 국가보안법 개정이유는 크게 3가지다. 홍 장관은 논문 관련 부분에서 별다른 출처 표기를 하지 않았다. 표절이 아니라면, 이는 홍 장관의 주장이라고 봐야 한다.
 
  〈국가보안법 개정 혹은 폐지의 필요성은 다음 3가지 문제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중략) 지금까지 국가보안법은 ‘국가안보’보다는 정권안보에 남용되어 왔고, 특히 우리 사회의 다양성과 성숙도를 고려했을 때, 국가보안법의 개폐가 국가안보 수호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기 힘들 것이다. 둘째, 북한이 반국가단체인가 하는 문제다. (중략) 그러나 1991년 남북한 UN 동시 가입과 남북 기본합의서 채택 후 북한은 반국가단체가 아니라 대한민국과 대등한 사실상 국가로 여겨져 왔다. 6월 15일 정상회담은 이 같은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실하게 증명해 줬다고 할 수 있다. 셋째, 기본권 침해의 문제다. 국가보안법이 과거 군사정권 시절 민주인사에 대한 인권탄압의 수단으로 악용되어 왔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사상 및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악법으로 남아 있다.〉
 
  홍 장관은 “역대 정부가 ‘국가안보’보다 ‘정권안보’를 위해 국가보안법을 남용했다”고 주장했지만, 이와 관련한 설득력 있는 통계를 제시하진 못했다.
 
  북한을 반국가단체가 아닌 국가로 봐야 한다는 주장은 위헌이다.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한다. 한반도에 유일 합법정부는 대한민국뿐이란 얘기다. 이 조항을 근거로 한, ‘국가보안법’ 제2조에 따르면 북한은 ‘반국가단체’다.
 
  〈남북기본합의서〉 ‘남북한 동시 UN 가입’ 등을 근거로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르면 남북한 관계는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다. 이는 북한을 국가가 아닌, 정치적 실체로서 인정했다는 얘기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도 같은 입장을 견지한다.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주권국가로 존속하고 있고, 우리 정부가 북한 당국자의 명칭을 쓰면서 정상회담을 제의하였다 하나 북한이 대한민국의 영토고권을 침해하는 반국가단체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대법원, 90도1451〉
 
  〈북한이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소위 남북합의서의 채택·발효 및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등의 시행 후에도 적화통일의 목표를 버리지 않고, 각종 도발을 자행하고 있으며, 남북한의 정치·군사적 대결이나 긴장관계가 조금도 해소되고 있지 않음이 현실인 이상 (중략)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보고 이에 동조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하는 것 자체가 헌법이 규정하는 국제평화주의나 평화통일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할 수 없다.—헌법재판소, 92헌바6〉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자는 주장은 통일을 포기하겠다는 것과 같다. 북한을 독립국으로 인정하는 순간 통일의 당위성은 사라진다. 우리가 사회적 혼란과 비용을 감수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외국과 하나로 합쳐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핀 것처럼, 홍용표 통일부장관은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북한은 반국가단체가 아니라 대한민국과 대등한 사실상 국가로 여겨져 왔다” “사상 및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악법으로 남아 있다” 등의 주장을 하면서 ‘국가보안법’ 개정에도 찬성했다. 자신의 ‘소신’과 전혀 다른 박근혜 정부의 통일정책을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아니면 박근혜 정부의 통일정책을 자기 소신에 맞게 바꿀 것인가.⊙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105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정기구독 이벤트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