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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對共 요원이 밝힌 ‘간첩의 세계’

“‘고첩’ 5만명보다 從北세력이 더 무서워”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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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 외에 다른 지하당 조직, 그러니까 예비 RO조직이 뒤에 있을 가능성이 커요. 보통 하나의 조직이 노출되면 그 조직은 버리고, 숨겨두었던 다른 조직을 활용하는 게 지하당 공작의 기본방침입니다. 숨겨두었던 예비조직이 정조직으로 재편, 활동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 “이석기의 RO 이면을 들여다봐야… 숨겨두었던 예비 RO조직이 활동할 수도”
⊙ 황장엽의 ‘고정간첩’ 5만명은 1950~70년대 남한 출신 간첩의 ‘가족토대공작’ 추정치
⊙ 무장간첩 김동식 체포 위해 逆用 간첩(봉화 1호) 활용하며 15년 기다려
⊙ “요즘 對共 요원들은 對共이 뭔지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워”
전직 대공 경찰관 김태욱씨.
신변보호를 위해 옆모습을 촬영했다.
  ‘한국 사회에서 암약(暗躍)하는 고정간첩이 3만~5만명에 이른다’는 황장엽·정형근·박홍 등 우익인사의 주장에 대해서는 항상 논란이 있어 왔다. 그럴 것이라고 믿는 사람, 거짓이라고 공격하는 사람이 혼재해 있다. 그렇다고 또 누가 그렇지 않다고 할 수도 없다. 지금도 간첩은 분명 대한민국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 간첩은 북에서 내려온 것일 수도 있고, 국내에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인권 시비를 낳은 조작 간첩 사건도 기억에 남아 있다.
 
  분명한 것은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한국 사회 깊숙이 침투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수많은 지하당 조직을 만들어왔다. ‘통혁당, 구국전위, 민혁당 등은 지하당 조직의 종북(從北)세력이고,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은 원내로 진입한 종북집단’이라는 것이 일반적 상식이다.
 
  지난 1월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RO(혁명조직·Revolution Organization) 및 내란음모 사건의 주된 피의자인 이석기에 대해 내란 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2심대로 인정, 징역 9년에 자격정지 7년을 확정했다. 작년 12월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이석기가 속했던 통진당이 해산된 지 1개월 만이다. 이들 뒤에 암약해 온 간첩의 실체가 있다고 여겨지지만, 검찰수사에서 밝혀내지 못했다.
 
  간첩은 왜 존재하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란, 선동에 필요한 지하당을 만들기 위해서다. ‘결정적 시기’에 북한 정규군과 함께 봉기하는 비정규 게릴라 조직이 지하당이다. 종북집단을 의미한다.
 
  기자는 전직 대공(對共) 담당 경찰관 김태욱(金兌昱·78)씨를 만났다. 그는 1963년 10월 경찰에 투신, 34년 8개월간의 복무 기간 동안 32년 8개월을 대공 업무에 매달렸다. 서울 시경 대공분실 부실장(경감)이 마지막 직함이다. 퇴직 후 경찰종합학교와 국가정보원 정보대학원에서 간첩 잡는 노하우를 전수했다. 보국훈장·옥조근정훈장과 내무부장관·안기부장·검찰총장·서울경찰청장 표창과 기장(記章)을 20차례나 받은 베테랑이다. 꿈도 간첩 잡는 꿈만 꾼다는 그다.
 
  그는 “지하당은 당 조직과 달리 합법적인 활동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공산주의 정수(精髓)분자들을 질적으로 꾸리기 위해 필요한 조직”이라고 말했다.
 
  “지하당 조직을 단선(單線)으로 연계하고 간결하게 꾸리는 것이 그들의 원칙이죠. 조직의 안전과 탄력성을 보장하고 조직의 비대(肥大)를 막으려 간결하게 단선으로 연계합니다.”
 
  그러나 지하당 조직을 복선(複線)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복선 포식(包植)이란, 특정 지역 내에 서로 밀봉(密封)된 단선 연계조직을 2개 이상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복선 포식의 중요 목적은 어느 한 조직이 깨어져도 다른 조직이 남아 활동을 계속할 수 있게 해 조직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데 있습니다. 지하당 조직을 자생(自生)조직으로 위장하는 것도 그들의 원칙입니다. 북한과 전혀 연계 없이 현지에서 스스로 조직했다고 위장하는 식이죠.”
 
  김태욱씨에 따르면, 지하당 조직은 보통 3가지 형태가 있다. 첫째 형태는 ‘점조직’이다. 주로 군대·경찰·검찰·법원 등 권력기관에 포식하거나, 국회(지방의회 포함)를 비롯한 노동단체 등 선거를 통해 조직되는 기관에 뿌리내린다.
 
 
  지하당 조직을 自生조직으로 위장
 
  둘째 형태는 일종의 ‘단선 연계조직’이다. 북한은 이런 형태의 지하당 조직을 선호한다.
 
  “두 개의 조직(원)을 상위의 한 명의 조직책이 이끄는 형태를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두 개의 조직(원)이 서로 알지 못해야 한다는 점이죠. 심지어 실체가 있는지조차 알 수 없게 만듭니다. 복선으로 포식된 조직은 정조직과 후보조직으로 나뉘는데 정조직은 현재 활동하는 조직을, 후보조직은 활동시키지 않고 매복시키는 조직을 의미해요.”
 
  셋째 형태는 고구마 줄기처럼 세포조직이 상하 연계된 것인데, 말단조직에서 초급지도부 조직(중소공장, 대학), 지구(地區)지도부 조직(군·읍·면 같은 소지역 중심), 지역지도부 조직, 도지도부 조직 등으로 점점 확장된다.
 
  “대남 공작을 지휘하는 북한 공작지도부는 첫째와 둘째 형태의 조직에 몰두하면서 가능한 한 서로 묶지 않는 원칙을 중시합니다. 결정적 시기가 오면 모두 묶어 강력한 협동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한다는 계산이죠. 그러나 서로 존재를 모르는 (지하당) 조직이 활동 중에 불가피하게 월선했거나 혼선이 돼 조직(원)이 노출됐을 경우 하나로 묶기도 합니다.”
 
  경기도 성남의 한 상가건물에서 이석기가 만든 이른바 지하 혁명조직인 RO는 단선조직이었을까.
 
  “제 생각에는 RO 외에 다른 지하당 조직, 그러니까 예비조직이 뒤에 있을 가능성이 커요. 보통 하나의 조직이 노출되면 그 조직은 버리고, 숨겨두었던 다른 조직을 활용하는 게 지하당 공작의 기본방침입니다. 숨겨두었던 예비조직이 정조직으로 재편, 활동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석기 전 의원의 RO가 노렸다는 주요 시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간첩도 생간(生間)과 사간(死間)이 있습니다. 실컷 이용하고 나서 존재가치가 없어질 경우 한쪽이 다른 한쪽의 지하당 조직을 폭로, 없애버리는 식입니다. 그래야 자신의 신분을 확고히 다질 수 있기 때문이죠. 이석기도 버림받을 수 있고 RO조직도 그런 관점에서 다시 살펴봐야 합니다.”
 
  —북은 어떤 자들을 남파하나요.
 
  “1970년부터 4회에 걸쳐 침투했던 남파간첩의 진술에 따르면, 김일성은 비밀교시를 통해 ‘중등 학력 이상의 월북자 중에서 성분이 우수한 계층을 선발, 단기 밀봉교육을 시키고 전부 남파시키라’고 지시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남한에 가족이나 친인척이 있는 월북자 출신, 그리고 북한에도 가족을 담보할 수 있는 자가 우선대상입니다.”
 
  이런 공작을 ‘가족토대공작’이라 부른다. 1950년부터 1970년 사이 집중적으로 이뤄져 왔다고 한다. 그의 말이다.
 
  “과장되게 표현해, 6·25 때 월북한 지식인 중에 사상성분만 좋으면 다 한 번씩 남파됐었다고 보면 됩니다. 이것을 ‘가족토대공작’이라 부르죠. ‘일단 너희 집에 가라. 가서 빨간 모자를 씌우고 오라’고 지시합니다. 김일성이 주는 선물과 돈으로 경계심을 풀고서 ‘6·25 같은 시기가 올 때 소요를 일으키면 단시일 내 해방이 된다’고 주입시켜요. 그리고 ‘이웃과 계조직을 만들라’고 지시하는데 바로 지하당을 만들라는 의미죠.
 
  그러나 지금은 노동자나 농민, 군인 등에 중점을 두고 지하당 조직망을 구축하거나 주요 산업시설, 기간산업의 노동단체나 군사전략적 요충지, 휴전선 인근의 군수산업 시설에 침투하기 위해 남파되고 있어요.”
 
 
  고첩과 從北
 
제421차 군사정전위 본회의에서 유엔 측 수석대표 켈리 소장이 1983년 8월 15일 울릉도 근해에서 격침된 북측 무장간첩선의 수중 추진기를 북측에 보이고 있다.
  그의 주장은 과거 공안당국이 우리 사회 내 월북자 집안을 잠재적 북한 동조세력으로 보았다는 의미로 해석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1980년대 이후 민족해방, 민족민주주의, 민중민주주의, 혁명민주주의 등의 용어를 쓰는 남한 사회 진보·좌파 세력 속에 스며들었다. 민족민주주의와 민족해방이란 말은 제3세계 민족해방운동에 관한 공산주의자들의 이론에 따라 만들어진 용어다. 이런 말을 쓰는 이들이 자발적이든, 포섭이 됐든, 지금의 종북세력의 실체라는 것이 국내 정보기관의 판단이다. 두 차례 남파됐던 대남공작원 출신 김동식씨는 “남한 내 최소 500명에서 1000명 이상의 핵심 종북세력이 활동 중”이라고 말했다.
 
  김씨가 북한 노동당 사회문화부 소속 신분으로 직접 파악한 대남공작조는 10여 개(1980~90년 사이)다. 이들 공작조가 자신의 하부 조직으로 2개 이상의 간첩망을 구축했다고 볼 때 최소 20여 개의 조직에 적게는 서너 명, 많게는 100명에 달하는 종북세력이 가담할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대남공작에는 가족토대공작 외에도 조직수습공작, 조직검열 및 연락공작 등이 있다. 조직수습공작은 남파공작원이 북한 공작지도부와 통신수단이 끊어졌을 때 북으로부터 남파된 공작원이 소재를 탐지, 조직을 연결하는 공작을 말한다. 조직검열 및 연락공작은 남파공작원에 대한 활동사항을 검열하고 공작지도부로부터 지시내용을 전달하는 공작을 지칭한다.
 
  —황장엽씨가 ‘남한 내 고첩(고정간첩) 5만명설(說)’을 얘기한 적이 있어요.
 
  “황장엽의 ‘5만명설’뿐만 아니라 성혜림의 ‘4만명설’도 있어요. 황장엽은 김정일의 책상 위에 놓인 보고서에서 5만명이라는 숫자를 보았다고 했는데, 이는 남한 내 가족토대공작에 근거해 공작지도부가 김정일에게 과장 보고한 문건으로 사료됩니다.”
 
  5만명이란 숫자는 6·25 당시 월북자나 행불자 가운데 지식인층 월북자 수가 수만 명에 이른다고 보고 토대공작을 통해 포섭한 수를 뜻하는 추정치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추정치가 아닐 수 없다. 확실한 체제 우위에 있는 남한이 토대공작에 넘어갈 리 만무해 보인다. 문제는 대놓고 북한 주장과 사상에 동조하는 남한 내 종북세력과 종북단체다.
 
  “북한 김정은이 최근 ‘7일 전쟁’ 운운한 것은 정권유지를 위한 내부결속용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휴전협정 이후 60여 년간 추진해 온 지하당 조직망과 자생 공산주의 추종세력 등이 규합해 동시다발적으로 봉기할 경우 7일 만에 적화시킬 수 있다는 얘기죠. 만약 과잉 충성하려는 대남 공작지도부의 충동으로 김정은이 오판한다면 전면전 또는 국지전 형태의 불장난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김정은이 북한 공작지도부의 ‘5만명설’ 과장 보고와 자생 종북세력에 오판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남파간첩이 가져간 놋주발과 붉은팥
 
남파간첩이 소지한 북한체제 옹호와 김일성과 김정일 찬양 서적들.
  김태욱씨는 1980대 초 3년여간의 탐문수사를 거쳐 검거한 인천 강화도 가족토대공작 사건을 떠올렸다. 강화도 ○○면의 경우 북한과 해안에서 2km 남짓한 거리에 있다. 이 정도의 거리는 밀물과 썰물의 시차를 이용해 하룻밤 사이 ‘당야(當夜)공작’을 할 수 있다. 이 루트는 여간첩 이선실이 북으로 복귀한 대남 공작선의 거점이다.
 
  검거된 남파공작원 박팔석(가명)은 1972년 4월 초 자정 무렵 강화도 고향집 담을 넘어 안방에 들어갔다. 형수와 조카가 깜짝 놀라 깨어났다. 김태욱씨의 말이다.
 
  “사실, 안방으로 침투하는 것은 공작원의 원칙입니다. 안방이 아닌 곳에 침투했다가 외부 손님이 있을 경우 예기치 않은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죠.”
 
  형수와 조카가 놀라서 쳐다보니 6·25 때 월북한 시동생이었다. 대학생인 조카는 급히 건넌방으로 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깨웠다. 20여 년 만에 재회한 가족에게 박팔석은 “평양에서 왔다. 통일 일꾼으로 남조선을 미국놈으로부터 해방하려 일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남파 당시 북한 공작지도부 부부장으로부터 받은 인삼주, 곰쓸개, 현금 10만원을 꺼내며 ‘김일성 수령의 선물’이라고 했다. 당시 10만원은 황소 3마리를 살 수 있는 거금이었다.
 
  형수가 박팔석에게 “형님은 어디에 계시냐”고 물었다. 6·25 당시 박팔석은 자신의 형과 동반 월북한 것이다.
 
  “아! 형님은 지금 평양 김일성대학교 교수로 있습니다.”
 
  박은 “올해 4월 15일이 수령님 회갑인데, 선물로 우리 집안에 소중한 품목이 있으면 갖고 가서 선물하고 싶은데 뭐가 있을까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궁리 끝에 가족은 놋주발과 붉은팥을 다락방에서 꺼내왔다. 붉은팥은 잡귀를 쫓아내는 곡물로 통한다. 김태욱씨의 말이다.
 
  “박팔석이 보자기에 싸서 놋주발과 팥을 북한으로 가져갔습니다. 지금 그 물건들은 당야공작의 성공사례로 평양혁명박물관에 전시 중입니다. 이 이야기는 나중 북한의 《로동신문》에 보도되기도 했고요.”
 
  —과거엔 남한 출신 중에 간첩을 발탁했다면 요즘은 어떤가요?
 
  “남파공작원은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자 중에서 뽑힙니다. 그 가족 때문에 변절하기 어렵죠. 검거된 간첩을 회유할 때 가장 괴로워하는 것은 북에 두고 온 가족입니다.”
 
  —어떻게 회유하고 교육하나요.
 
  “시대를 못 만났을 뿐이지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합니다. 어찌 보면 분단의 슬픔이죠. 과거엔 남조선이 못산다는 밀봉교육을 받고 남파됐는데, 실제로 1980년대 이전까지 남한이 북한보다 못살았지요. 남한 사회가 경제성장을 거듭하자 남파간첩들이 받는 문화적 충격이 상당했고 지금은 남한 실정을 충분히 교육받고 내려옵니다.
 
  남파 준비는 사상교육(주요 과목으로 김일성 혁명역사, 김일성 주의 원리, 주체철학, 항일빨치산 회상기, 주체사상에 따른 자본주의 철학 비판)과 실무과목(남한정세, 남한실정, 지하당 건설이론)으로 나뉩니다. 군사훈련도 받죠. 사격, 군사지형학, 반합법 및 비합법 훈련, 수영, 통신훈련까지 다양합니다. 무엇보다 현지에 남파돼 지하당 조직을 만들 수 있게 사상성분 및 정치생활에 대한 구체적인 요해(了解)를 실시하죠.”
 
 
  간첩은 어떻게 交信할까?
 
간첩 김동식의 진술에 따라 발견한 메모리식 무전기와 난수표.
  —남파공작원들은 북으로부터 어떻게 지시를 주고받나요.
 
  지하공작에서 통신연락은 매우 중요하다. 연락이 단절된 조직은 죽은 세포와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인터넷과 IT 기술로 접근방식이 다양해져 국내 정보기관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A2(모스 부호로 송신) 방식이 있는데, 북한 당중앙 ‘3호 청사’(1989년 사회문화부로 개칭·대남 정보공작기구) 산하 통신소에서 대남연락부로부터 지시 전문을 접수, 타전하는 방법으로 진행합니다.”
 
  작성 방법은 원문을 약정(約定) 책에 따라 숫자로 교체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간첩에게 ‘대상 공작에 착수할 것’이라는 문장을 전송한다면, 대상은 ‘235’, 공작은 ‘374’, 착수는 ‘257’, 할 것은 ‘363’이라고 바꿀 수 있다. 다만 타전은 숫자로 23537, 42573, 63000의 형식으로 5자(字)씩 만 단위로 배열한다.
 
  “타전하는 숫자가 5자가 안 되면 ‘0’을 첨가 ‘5자 1조(組)’를 만듭니다. 여기다 약정된 책에서 발신 난수(亂數)를 다시 만들고 1차 변신 문에 비산수(非算數) 방식으로 순차적으로 가산해 2차 변신 문을 만든 뒤 통신소로 보내 타전합니다.”
 
  AM 라디오를 이용한 ‘A3 난수 방송’을 통해 연락하기도 한다. 과거 북한 라디오방송에서 듣던 숫자방송을 뜻한다. 북한의 음성 ‘A3 방송’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개최 이후 중단됐지만 실제로는 계속 관측되고 있다고 한다. 난수 방송의 암호문 작성과 해문(解文) 방식은 A2 방식과 동일하다고 한다.
 
  “편지 방송을 통해 연락하기도 합니다. 주파수는 평양방송 단파 6400KC, 중파 657KC인데, 예를 들어 ‘평양에 사는 강창호로부터 서울에 사는 아버지 ○○○에게 보내는 편지는 사정으로 보내지 못하였습니다’라고 방송합니다. 이때 발신인 성명과 수신인 성명만 암호인데 암호 약속은 이런 식이죠. 강창호는 ‘접선 나오라’는 의미이고, 강창준은 ‘접선 나오지 마라’, 강창피는 ‘위험하니 피신하라’, 아버지는 ‘제1 장소’, 어머니는 ‘제2 장소’, 형님은 ‘제3 장소’, 동생은 ‘제4 장소’ 등입니다.
 
  예를 들어 ‘위험하니 제1 장소로 피신하라’는 ‘평양에 사는 강창피로부터 서울에 사는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는 사정에 의해 보내드리지 못합니다’라고 방송합니다.”
 
1968년 1월 21일 생포된 무장공비 김신조.
  현재는 국내 수사망에서 자유로운 외국계 이메일을 이용하여 암호화된 대북보고문과 지령문을 송수신하고 있다. 암호화된 변신 프로그램은 ‘스테가노그래피(Steganography)’ 기법을 이용해 보관한다. 정보은닉 기법의 하나인 스테가노그래피는 이미지 파일 안에 텍스트 파일이나 실행 파일을 집어넣어 웹이나 SNS 등에 올려두면 보이는 것은 이미지지만 다운받아 열어보면 그 안에 텍스트 파일이나 실행 파일이 나온다.
 
  지난 2011년 8월 북한 노동당 225국의 지령을 받고 활동하다 검거된 지하당 ‘왕재산’ 간첩 사건 역시 스테가노그래피 방식으로 북측과 연락을 주고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밖에도 남파간첩들이 애용하는 교신 방식이 더 있다. 비근한 예로 작년 12월 27일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하는 전단이 서울 홍대입구역 주변에 살포돼 경찰이 수사에 착수한 일이 있다. 전단에는 지난 2002년 5월 당시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원장이었던 박 대통령이 북한 김정일과 만나는 사진이 실렸다. 사진 위에는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민들’이라는 문구와 함께,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꼬는 내용이 담겼다.
 
  그는 “전단 살포를 통해 연락하기도 하는데 살포자의 명의가 바로 통신내용”이라며 “예를 들어 명의자가 ‘전북 향우회’는 접선바람, ‘안동 향우회’는 안전하다, ‘단양 향우회’는 단독 복귀함 등으로 사전 약속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살포자의 명의 앞에 제1, 2, 3 등을 붙여 장소를 표현할 수도 있는데 ‘제1 전북향우회’라는 명의로 발행됐다면 ‘제1 접선 장소에서 접선할 것’이라는 뜻이 된다”고 했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시민들’이라는 문구 속에 암호가 담겨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작년 11월 24일 경남 합천 해인사 사찰 주요 전각에 낙서가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보도가 있었다. 당시 해인사 측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256호로 지정된 대적광전과 대비로전, 독성각 등 사찰의 17개 주요 전각 벽에서 검은색 사인펜으로 쓴 낙서가 발견돼 수사 의뢰했다”고 밝혔다.
 
  전례로 볼 때 이 역시 북한 공작원의 소행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경찰이 낙서 수사를 한다는 보도를 통해 북에다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겁니다. 일선 수사 담당자는 숨은 의도를 모를 수 있어요. 낙서가 X라면 ‘활동 잘 하고 있다’, V라면 ‘(북으로) 복귀하겠다’는 의미를 사전에 약속해 놓을 수 있습니다. 이런 짓을 아직 하고 있다고 봅니다.”
 
 
  김동식을 잡다!
 
1997년 2월 성혜림의 조카 이한영이 피살되자 성혜림의 오빠 성일기씨 집 주변을 사복형사들이 지키고 있다.
  김태욱씨는 무려 15년을 치밀하게 준비해 무장간첩 김동식을 검거한 주인공이다. 김동식은 어떤 인물인가(《월간조선》 2013년 7월호 참조).
 
  그는 1990년 5월 제주도 서귀포 해안을 통해 국내로 침투해 1980년부터 서울에서 활동하던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이선실(본명 이화선, 권력서열 19위)을 접선해 대동(帶同) 복귀시켰던 무장간첩이다. 1990년 10월 북한으로 돌아간 김동식은 ‘공화국 영웅 호칭’을 받았다.
 
  김동식은 다시 1995년 9월 제주도 온평리 해안을 통해 2차 침투해 공작임무를 수행하다 적발돼 총격전 끝에 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체포됐다. 당시 그의 임무는 이선실 복귀 때와 같이 암약 중이던 고첩 ‘봉화 1호’를 북으로 호송하는 것이었다.
 
  북한은 조선노동당 창건 50주년이 되는 1995년 10월 10일을 즈음해 김정일에게 선물할 공작성과로 ‘봉화 1호’의 복귀를 결정했다. 물론 김정일에게 보고해 결재까지 받았다고 한다. 김동식은 ‘봉화 1호’를 복귀시키는 호송원으로 선발된 것이다.
 
  김태욱씨는 “김동식이 복귀 호송하려던 ‘봉화 1호’는 이미 1980년 검거돼 우리 정보기관을 위해 역용(逆用) 공작을 하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역용 공작이란 침투 간첩을 포섭해 역이용하는 공작을 말한다. 무려 15년간 북한 공작지도부에 들키지 않고 고첩으로 활동해 온 것이다.
 
  ‘봉화 1호’는 어떤 인물인가. 남자 공작원으로서는 유일하게 이선실처럼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자 당중앙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선출된 남파 고첩의 거물이다. 1928년생인 그는 지금도 정보기관이 신변을 보호하고 있다.
 
  “‘봉화 1호’는 모두 3차례 남한에 침투한 베테랑 간첩입니다. 1차 침투는 1960년 9월 경기도 화성군 노하리 해안으로, 2차 침투는 1978년 10월 경남 남해군 이동면 상주리 해안으로, 3차 침투 역시 1980년 3월 상주리 해안으로 침투했어요.
 
  그는 승복을 입고 경주 불국사를 중심으로 각 사찰 및 암자에 객승(客僧)으로 다니며 암약했어요. 침투하기 전 북한에서 불공드리기, 목탁 치기, 불경 송독 등의 교육을 받았고 운하(雲夏)라는 법명을 쓰고 다녔죠.”
 
  ‘봉화 1호’가 검거된 것은 1980년 9월이었다.
 
다양한 접선 방식
 
호송원이 3번 손뼉 치면, 공작원은 2번 손뼉 쳐

 
  약속된 장소에서 간첩이 만나는 방법은 먼저 접선 쌍방이 상호 간 접선 상대에게 알리는 인식 신호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상·하부 선이 공히 왼손에 일간지 신문을 들고 출현케 할 수 있다. 이때 상부 선은 북에서 접선하러 내려온 측이고, 하부 선은 현지 남파공작원을 말한다.
 
  접선 시간이 되면 상대방의 인식 신호를 확인하고 먼저 하부 선(공작원)이 “미안하지만 지금 몇 시입니까”라고 하면 상부 선(안내원)은 “아! 제 시계는 멎었는데요”라고 한다. 모두 사전에 약속된 말이다.
 
  다시 하부 선은 “아, 그렇습니까. 미안합니다”라며 자리를 떠 안전한 장소로 유도한다.
 
  이때 상부 선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따라가다가 적당한 장소에서 하부 선에게 “공 선생 아니십니까?”라고 하면, 공작원은 상부 선에게 “안 선생이지요?”라고 답한다. 이런 상호 약속이 정확히 확인되면 접선은 성공한 것이 된다.
 
  복귀 접선은 남파공작원이 공작 임무를 마치고 복귀할 때 하는 접선이다. 접선 시간은 사전에 무전연락을 통해 중앙(북괴공작 지도부)의 지시를 받는다. 접선 장소 역시 중앙의 지시에 따른다.
 
  접선 방법은 접선 당일 라디오를 통해 노래신호를 확인하는 식이다. 약속된 노래, 예를 들어 ‘아리랑’ 노래가 나오면 ‘접선 배가 못 나온다’는 것이고, 노래가 안 나오면 ‘접선 배가 나온다’는 신호다.
 
  “요즘도 공중파 라디오 중에 새벽 3시쯤 흘러간 트로트 가요를 틀어주는 방송이 있어요. 신청자 사연을 통해 ‘대구에 사는 누가 ○○이라는 노래를 신청하는 데 같이 듣고 싶은 사람은 ○○이다, 는 식으로 연락할 수도 있어요. 방법은 무궁무진합니다.”
 
  접선 인식 신호도 사전 약속에 따른다. 흔한 방법으로 접선 인식 신호는 손뼉 치기로 5번 연속 치거나, 하부 선이 먼저 손뼉을 3번 치면, 상부 선(호송원)이 손뼉을 2번 쳐 모두 5번이 되면 접선이 완료된다.
 
  이때 상부 선의 응답이 없을 시 접선 약정된 시간으로부터 5분 간격으로 30분간 계속 신호를 보내며 30분이 넘어도 응답이 없으면 하부 선은 30분간 더 대기하며 이때부터는 상부 선이 먼저 신호를 보내야 한다.
 
  일단 이상 없이 신호가 교환되면, ‘확인 암호’를 교환하는데 이 역시 약속된 부호로 주고받는다. 예를 들어 “형님” 하면 “동생”이라 답한다. 인식 신호가 정상으로 교환됐을 경우 접선이 완료된 것으로 간주한다.
 
  김동식을 불러들인 ‘봉화 1호’의 정체
 
  김태욱씨는 “‘봉화 1호’는 김정일이 신임하는 공작원으로 직접 김정일을 만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봉화 1호’가 2차 침투 후 복귀해 쓴 〈남한정세 보고서〉가 북한 공작지도부 내에서 논란이 됐었다. ‘남조선 농촌가옥은 빨간색과 파란색 지붕으로 개조되고 있고, 돼지도 기르는 숫자가 너무 많아 가격이 폭락하면 새끼돼지를 살(殺)처분하는 등 북에서 말하는 남조선 생활상과 전혀 다르다’는 내용의 보고서였다.
 
  “그 보고서를 담당과장과 부부장에게 올렸더니, 부부장이 펄쩍 뛰며 ‘다른 조 공작원 동무들은 지금도 남조선 인민들은 다리 밑에서 헐벗고 굶주리고 있고, 농촌은 밥도 못 먹는다고 쓰는데 중(僧) 동무는 잘살고 있다고 하니 사상이 의심스럽다’며 보고서를 고치라고 명령했다는 겁니다.
 
  할 수 없이 보고서를 약간 고쳐 제출했다고 해요. 그러나 남한의 경제성장은 있는 그대로 담았다고 합니다. 당시 대남 담당 총비서였던 김정일이 직접 ‘봉화 1호’를 부르더라는 겁니다. 김정일이 ‘당신 보고서를 읽었는데 사실이냐’고 물어와 사실이라 답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아! 그렇군요. 잘 알겠습네다. 나가서 열심히 일하시라요’라고 격려했다고 합니다.”
 
  ‘봉화 1호’의 실체를 북한이 알기까지 15년간 북한 공작지도부가 그에게 보낸 지령 전문은 다음과 같다.
 
  〈…▶1988년 4월, “불교계 투쟁 패 걷어쥐고 투쟁조직 강화할 것”
 
  ▶1988년 6월, “투쟁 패 ○○을 직접 만나 공작할 것” “민주쟁취 국민운동본부 대표인물”
 
  ▶1988년 10월, “충북 청주 상당산성 ○○지점 무인함에서 공작금 발굴할 것”
 
  ▶1989년 5월, “서울 용산구 후암동(남산) ○○시비(詩碑) 무인함에 공작금을 묻었으니 미화(美貨)는 장악한 대상에게 주고, 한화(韓貨)는 대상이 공작금으로 사용할 것”
 
  ▶1989년 11월, “충북 보은 속리산 입구 ○○지점에 대상 주민등록증과 공작금 묻었으니 발굴할 것”
 
  ▶1992년 2월, “속리산 주민등록증 묻었던 장소에 무전기 및 공작금도 묻었으니 발굴 장악한 대상인물과 협의할 것” “무전 수 1명 선발교육 후 본부(북한의 공작지도부를 의미한다)와 직접 연계시킬 것”
 
  ▶1992년 4월, “동지에게 국민훈장, 장악한 대상에게는 조국 통일장이 배려되었음”…〉
 
  ‘봉화 1호’는 1995년 “고령으로 공작활동 불가 지시바람”이란 무전을 쳤고, 그를 호송하기 위해 김동식이 남파된 것이다. 그의 말이다.
 
  “‘봉화 1호’를 호송하러 온 간첩망을 일망타진하기 위한 장소를 물색했어요. 경주 불국사 주변 말사(末寺)와 암자를 답사했지만 적절한 곳을 못 찾았어요. 김천 직지사도 가보았으나 소백산맥 산자락에 있어 퇴로 차단이 어려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충남 부여 정각사로 불러들이기로 결정했습니다. 주지 스님과 ‘봉화 1호’의 외모가 비슷한 점도 빼놓을 수 없었고요.”
 
 
  하염없이 6개월간 김동식 기다려
 
지난 2011년 10월 고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의 측근 등 보수단체 관계자를 암살하려고 했던 탈북 간첩 안모(54)씨가 보관하고 있던 무기들. 위에서부터 볼펜형 독침, 만년필형 총, 손전등형 총. (사진 = 서울중앙지검 제공)
  부여 정각사는 태조산(해발 224m) 7부 능선에 있는 작은 사찰이다. 스님은 주지 스님 한 분뿐이고 신도 출입이 전혀 없는 일견 폐가처럼 보였다. 그는 주지 스님에게 모든 사실을 숨기고 ‘봉화 1호’를 복귀시킬 간첩을 기다렸다.
 
  “인적 끊긴 정각사에서 1995년 4월 1일부터 김동식을 검거한 10월 24일까지 저와 태권도 5단인 전모 요원, 국정원 강모 과장과 이모 직원, ‘봉화 1호’ 등 5명이 그야말로 무작정 기다렸습니다. 세월이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로 접어들 때까지 북측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어요. 그러자 배치된 요원 사이에 불만이 터져나왔어요. 그도 그럴 것이 무작정 기다린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논산 5일장에 가서 예쁜 강아지 3마리를 사다 놓고 외로움을 달랬습니다. 매일 법당 청소를 하고 경내 허물어진 담장을 고치며 하루하루를 보냈죠.”
 
  그는 “김동식이 정각사를 찾은 10월 24일은 왠지 마음이 이상했다”고 회고했다. 오전 5시에 일어나 요사채 마당을 걸으니 간밤 비가 내려 뜰에 낙엽이 쌓이고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더라는 것이었다.
 
  그날 오후 1시쯤 낯선 청년이 요사채 사랑방 앞에 나타났다. 김동식이었다.
 
  “주지 스님을 만나러 왔는데요.”
 
  그는 “주지 스님은 점심을 하고 서울에 일이 있다고 하시면서 나가셨다”고 했다.
 
  김동식이 주지 스님의 이름을 물었다.
 
  그는 “자… 무슨 스님이라고 하셨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둘러댔다.
 
  김동식이 다시 “혹시 자운 스님이라고 하지 않던가요?”라고 물었다.
 
  이때 김동식이 남파공작원임을 알게 됐다고 한다.
 
  “자운이라는 법명은 저와 북한 공작지도부밖에 모르는 비밀이었어요. ‘봉화 1호’의 법명을 ‘운하’ 대신 ‘자운’으로 바꾸겠다고 북한 지도부에 무전 보고했거든요.”
 
남파간첩들은 장비은닉과 접선지로 ‘드보크’를 활용한다. 사찰의 비석이나 공원의 안내석, 공중화장실, 전화박스 등을 ‘무인(無人) 포스트’로 이용한다.
  정각사를 나온 김동식이 사찰 인근에 숨어 있던 간첩 박광남과 함께 걸어가자, 뒤를 밟던 김 요원이 “손들어!”를 외쳤다. 그러자 김동식과 박광남은 안주머니에서 소음기가 부착된 브라우닝 권총을 꺼냈다. 총격전이 벌어졌고 김동식은 관통상을 입고 붙잡혔지만, 박광남은 인근 석성산 쪽으로 달아났다.
 
  당시 군경 6000여 명이 투입됐고 헬기 4대와 군 수색견 16마리, 심지어 반지름 4km 안의 모든 생물체를 감별할 수 있는 열상탐지기(TOD) 등 첨단 전자장비까지 동원했다. 10월 27일 11시경 부여군 초촌면 신암리 야산에서 총상을 입은 박광남을 검거, 경찰병원으로 후송 중 오후 5시37분쯤 사망했다. 그러나 부여경찰서 소속 나성주 순경(당시 30세)과 장진희 순경(당시 31세)도 작전 중 순직했다.
 
  —김동식 검거를 통해 얻은 성과는 무엇이었나요.
 
  “1980년대 간첩들은 단파무전기로 송신했고, 1980년 말부터 1990년 초까지 초단파무전기를 썼어요. 김동식을 검거하면서 나온 것이 ‘메모리식 무전기’입니다. 당시로선 최신 기종이었어요. 북한에서 남파한 ‘보급공작원’이 드보크에 묻어둔 것을 김동식이 진술해 발굴한 것이죠. 메모리식 무전기는 분당 750자를 타전할 수 있고 가볍고 송전 시 이전 무전기보다 보안성이 뛰어났습니다.”
 
  남파간첩들은 장비은닉과 접선지로 ‘드보크’(러시아어로 간첩장비 은닉장소를 의미)를 활용한다. 드보크에다 문건이나 물건·공작금·무기 등을 숨겨둔다. 쉽게 식별할 수 있는 자연 지형지물 또는 주변장소 등이 드보크로 활용된다. 이를 ‘무인(無人) 포스트’라고 부른다.
 
  “그때 김동식을 통해 발견된 메모리 무전기가 16대입니다. 16대라는 것은 북한 공작지도부와 송수신하는 간첩망이 최소 16개라는 의미입니다. 1개 망에 얼마나 많은 고첩과 지하당 공작원이 있는지 알 수는 없어요.”
 
  지난 2013년 《월간조선》 7월호에서 김동식은, 북한 내부에서 ‘봉화 1호’의 전향을 의심해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고 밝혔다. 우리 정보기관이 ‘봉화 1호’를 이용, 역용 공작을 펴고 있음을 북측도 의심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전향파와 비전향파 간 논쟁은 비전향파의 승리로 결론이 났다고 한다.
 
  ‘봉화 1호’가 전향했다는 납득할 만한 물증이나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북한 공작지도부는 김동식에게 “‘봉화 1호’가 전향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나 혹시 전향했을지도 모르니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딸아이가 나를 배추장수로 알아”
 
  김태욱씨는 대공 업무에 몸담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껏 주위에 꼭꼭 숨겼다. 절친한 친구조차 형사라는 정도만 알지 대공 요원인지는 모른다. 자식들에게도 “시장에서 배추장수를 한다”고 속였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아빠 직업이 배추장수여서 창피하다’는 말을 할 때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이들이 중학교에 올라갈 때 경찰이라고만 얘기해 줬어요.
 
  대공수사를 기획할 때도 왼손 일을 오른손이 몰라야 한다는 원칙을 지켰어요. 부하직원을 출장(수사공작) 보낼 때 예고 없이 출근길에, 혹은 퇴근길에 바로 보냈어요. 미리 귀띔해 주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면 수사공작이 외부로 흘러나갈 수 있잖아요. 그렇게 30여 년을 살았습니다.”
 
  그는 “그때 대공 요원 중에는 이혼한다는 말도 많았고 부인이 머리를 깎았다는 얘기도 나왔다”고 했다. 그야말로 음지에서 일하다 보니, 가정이 풍비박산 난 셈이다.
 
  “가족에게 미안했지만 내 임무니까… 내 운명이니까….”
 
  —요즘 일선 경찰서의 대공 업무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요?
 
  좀 당돌한 질문이었다.
 
  “미안한 얘기지만 후배들이 대공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느슨한 사회분위기에 젖어버린 게 아닐까요? 그야말로 ‘전종(專從)’해야 하는데 자꾸 부서가 바뀌니 사명감을 못 느껴요. 그냥 월급받는 직장인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전문성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요. 20~30년간 매달려야 뭔가 느끼는 것이 있는데 2~3년 만에 업무가 순환하니 못 배우는 겁니다. 최소 5년 이상은 대공 업무를 맡겨야 해요.”
 
  —역용 공작을 한, 전향한 남파간첩이 북측에 의해 살해된 경우가 있나요?
 
  1982년 10월 남한으로 망명한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과 조카 이한영에 대해 북한은 여러 차례 암살위협을 가했고 결국 이한영은 1997년 2월 남파 무장간첩에 의해 저격당했다. 김태욱씨는 이한영 암살 사건 수사에도 직접 관여했다.
 
  “남파간첩들이 이한영 거처를 알아내려 흥신소에 접근했고 흥신소 직원이 경찰관을 매수, 이한영의 소재지를 알려줬다는 사실을 밝혀냈어요. 하지만 우리 정보기관이 보호하는 전향 간첩 중 안가(安家)가 드러나 피살되거나 북송된 이는 없다고 알고 있어요. 철저히 보호하기 때문이죠. 직장도 구하고, 정착금도 받아 일반 국민과 똑같이 보편적 삶을 살아가고 있어요.”
 
  —요즘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우리 사회가 이만큼 성장한 것도, 종북세력이 이렇게 판을 치지만 안보를 걱정하는 이들이 훨씬 많은 것도, 저 같은 대공 요원이 음지에서 일한 덕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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