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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老兵의 연하장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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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 낀 조국 땅이 저물어 가는데 국태민안(國泰民安) 한평생 한(恨)이려니
 
  묵은해는 이제 어디로 가는가
 
  밝아오는 새해에나 희망을 기약해야겠네.〉
 
  최영섭(崔英燮·87·예비역 해군대령) 한국해양소년단 고문이 보내온 연하장의 첫머리다. 최 고문은 1950년 6월 26일 부산 앞바다에서 특수부대원들을 태운 북한 무장수송선을 격침시킨 백두산함의 갑판사관이었다. 당시 백두산함이 북한 수송선을 발견해서 격침하지 못했다면, 부산항을 통해 유엔군이 한반도에 상륙하는 것도, 낙동강방어전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11년 전 백두산함에 대한 짧은 기사를 쓴 걸 인연으로 최영섭 고문을 알게 됐는데, 이후 그분은 연말마다 연하장을 보내왔다. 상투적 문구의 연하장들과는 달리 한자(漢字)가 가득 박힌 그분의 연하장에는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배어 있다. 이번 연하장에도 “청마갑오(靑馬甲午)에 ‘국가정상화’ 혁정(革政)기약했으나, 세월호 참사로 한 세월이 흘렀습니다”라면서 “건국, 조국수호전쟁, 초근목피 씹어가며 국가재건, 격랑 헤쳐 달려온 세대는 거의 떠났고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세대도 떠나려는데 마음이 천근만근 무겁군요”라고 적혀 있었다. 내 마음도 무겁다. 정말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해군 장병 부인들이 날품팔이한 돈으로 미국의 해양실습선을 사다가 포(砲) 하나 달아놓고 ‘포함(砲艦)’이라고 좋아하던 분들, 그 배(백두산함)로 나라를 지킨 분들이 최 고문의 세대였다.
 
  연하장을 받은 후 최 고문에게 전화를 걸었다. “건강 어떠세요?”라고 여쭈었더니, “90년이나 썼으니, 이제 고장이 안 난 데가 없지, 뭐”라며 껄껄 웃는다. 다행히 목소리는 여전히 정정하다. 최 고문은 대한해협 전투에서 전사(戰死)한 부하 병사들의 모교(母校)에 고인(故人)의 동상 세우는 일, 교장 선생님들을 상대로 한 안보강연 등을 하면서 지낸다고 말했다.
 
  이제 여생을 편히 보내야 할 최 고문 같은 분이 나라 걱정하면서 노년(老年)을 보내는 걸 보면, 후인(後人)으로서 그저 송구스러울 뿐이다. 날이 풀리면 식사라도 한 번 모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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