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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수기

B급 관심병사가 본 대한민국 軍의 민낯

“이런 군대로 전쟁을 할 수 있을까?”

글 : 이경훈  前 조갑제닷컴 인턴기자·현재 대학 재학 중  libert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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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련소에서 전염병에 걸리자 훈련도 제대로 안 시키고 수료시켜, B급 관심병사로 군대생활
⊙ 사단장 官舍 경비병들에게 空砲彈 지급, 官舍 지키는 건 赤外線 센서뿐
⊙ 북한군 南下하자 즉각대기砲 준비한 사단장, 군단장으로부터 “敵 자극한다”며 질책 받았다고
⊙ ‘무장 탈영병’ 발생하자 ‘行軍 낙오자’라고 보고
⊙ 先任兵 등 戰友들의 배려로 무사히 軍생활 마쳐, ‘戰友愛로 버틴 21개월’이었다
지난 8월 6일 5주간의 기초 군사훈련을 마친 육군훈련소 훈련병들이 퇴소식을 하고 있다.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저는 2012년 10월 육군 현역병으로 입대해 2014년 7월에 제대한 대학생입니다. 강원도 모 상비(常備)사단에서 행정병으로 복무했습니다. 상비사단은 GOP와 같은 철책 경계근무를 맡는 부대입니다.
 
  저는 육군훈련소에 입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전염병에 걸렸습니다. 군(軍) 병원에서는 오진(誤診)을 했고, 합병증(合倂症)도 발생했습니다. 병원에선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 했고, 제가 소속된 훈육중대에서는 저를 외면했습니다.
 
  입대 2주 만에 우리 군의 비겁한 전통을 온몸으로 체험했습니다. 하나는 ‘허위보고’였고, 또 하나는 ‘책임회피’였습니다. 군을 신뢰했던 제겐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후 30여 일간 민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훈련소로 돌아왔습니다.
 
군 복무 시절의 이경훈씨.
  육군훈련소 내 지구병원 원무과로 가서 퇴원 절차를 밟을 때였습니다. 원무과장은 제게 A4용지 한 장을 내밀었습니다. 그 종이에는 “육군훈련소 지구병원은 위 병사의 치료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며, 해당 병사는 추후 이에 대해 절대 문제 삼지 않겠다”는 문구가 인쇄돼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 문서는 제가 문제를 제기할 경우에 대비해 군 병원이 급조한 문서였습니다.
 
  저는 질병이 완치(完治)되지 않은 상태에서 훈련병 신분으로 훈련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관심병사’로서의 군생활이 시작된 것입니다. 군에 입대하기 전 우스갯소리로 ‘관심병사’라는 용어를 말했지만, 실제로 제가 관심병사가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제가 배속된 훈육중대에서는 저를 하루빨리 수료시켜 야전(野戰)으로 방출(放出)시키는 게 목표가 됐습니다. 저는 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았음에도, ‘훈련 참관’이라는 명목으로 훈련을 받은 것처럼 됐습니다.
 
  5주간의 훈련병 교육 수료일이 다가오자, 육군훈련소 차원의 설문조사가 진행됐습니다. 이 설문조사는 모든 훈련병을 대상으로 진행하며, 훈련 중 받은 부조리, 건의사항 등을 적어 내는 것입니다. 훈육 소대장은 제가 이 설문조사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조교를 통해 저를 다른 곳으로 불러내곤 했습니다.
 
 
  “염화칼슘보다 병사들 인건비가 싸다”
 
제설작업을 하는 병사들. 병사들은 “염화칼슘보다 병사들 인건비가 싸다”고 말한다.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5주간의 신병교육을 수료한 뒤, 병사들은 육군훈련소 인근에 있는 연무대역(驛)에서 군 전세열차를 타고 자대(自隊)로 이동합니다. 어학병이나 카투사로 선발된 일부 병사들은 서울에서 내렸습니다. 청량리역을 지날 때에는 ‘집까지 30분도 안 걸리는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아 차창만 하염없이 바라봤습니다. 남춘천역까지 오는 길이 참 멀었습니다. 남춘천역에 내린 병사들은 각 사단으로 흩어졌습니다. 육군훈련소를 통해 전방 사단으로 가는 경우는 흔히 말해 ‘운이 없다’고들 표현합니다.
 
  강원도의 겨울은 추웠습니다. 군대에 오기 전, ‘내복이란 어린이와 노인들이나 입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곳에 오니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껴입고, 틀어막으려고 했습니다. 아침 점호를 위해 연병장으로 나갈 때면, ‘차라리 죽고 싶다’는 생각을 매번 했습니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죽으면 추위라도 못 느끼지 않겠나’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계급이 낮은 순으로 먼저 나가서 점호를 기다립니다.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합니다. 강추위도 조금만 버티면 금방 적응을 해 버틸 만해집니다.
 
  자대에 온 해에는 눈이 많이 왔습니다. 그것도 주말에만 눈이 몰아서 왔습니다. 제설(除雪) 도구는 초록색 플라스틱 싸리빗자루와 넉가래, 파란색 플라스틱 삽뿐이었습니다. 한 번 눈을 치우면 넉가래는 깨져 있고, 삽은 갈라지고, 싸리비는 이가 빠졌습니다. 제설 도구가 항상 부족했습니다. 염화칼슘은 아깝기도 하고, 뿌리면 아스팔트 도로가 파인다면서 한 번도 쓰지 않았습니다. 병사들은 우스갯소리로 “염화칼슘보다 병사들 인건비가 싸니까 염화칼슘을 안 쓰는 거야”라곤 했습니다. 병사들의 평균 월급이 13만원인데 이는 시급(時給) 180원에 해당합니다.
 
  저는 자대배치를 받자마자 개인휴가를 써서 민간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병원에서는 몸 상태가 더 안좋아졌다고 말했습니다. 건강 문제로 의병제대와 같은 형식으로 제대를 하려고 했지만, 간부들은 모두 저를 꾀병으로 치부했습니다. 제대만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앞에서는 걱정해 주는 척을 했지만 뒤에서는 다른 소리를 했습니다.
 
  저는 건강 문제로 인한 제대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지자 다소 수월한 보직을 받고 군생활을 계속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면담 이후 ‘건강 문제로 인한 B급 관심병사’로 자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GOP, GP 등 최전방을 경계하는 부대는 실탄(實彈)을 장전 또는 보유하고 경계근무를 섭니다. 제가 소속된 후방 부대는 실탄 대신 공포탄(空砲彈)을 장전하고 경계근무를 섰습니다. 저는 사단 사령부 경계근무를 섰습니다. 실탄이 장전된 총 대신 공포탄이 장전된, 일종의 ‘소리 나는 몽둥이’를 들고 경계근무를 한 것입니다. 경계근무 중 위급할 경우 공중을 향해 공포탄을 쏠 뿐입니다. 공포탄이 든 총을 들고 경계를 서는 주된 이유는, 다소 후방에 주둔해 있기 때문에 적의 위협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과 실탄을 사용할 경우 총기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때문입니다.
 
  부대의 모(某) 중사와 공포탄 근무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도 실탄 대신 공포탄을 들고 경계근무 서는 것을 못마땅해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날 군대를 바라보는 외부의 눈이 곱지 않기 때문에 공포탄을 들 수밖에 없다. 괜히 실탄 들고 근무 섰다가 사고라도 터지면 벌떼같이 달려들 텐데…”라고 말했습니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외부의 눈치를 보는 게 오늘날 우리 군의 현실이었습니다.
 
 
  實彈 없는 병사들
 
  사단 사령부에는 사령부 건물 이외에도 지휘부 공관(관사)이 있습니다. 사단장, 부사단장, 참모장 등이 거주하는 곳입니다. 부대의 경계 행태를 보면서, 만일 적(敵)이 기습할 경우 제대로 된 대응도 못하고, 기습당한 줄도 모른 채, 지휘부를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밖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부대의 경계가 철통같지 않습니다. 사단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사단장입니다. 사단장 공관을 지키는 것은 철조망에 설치된 적외선 센서뿐이었습니다. 공관을 지키는 경계병도 없었고, 공관으로부터 공포탄을 든 경계병과의 거리는 약 300m 정도 됐습니다. 적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한번은 적이 우리 주둔지를 습격할 경우, 우리가 어떤 식으로 대응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도망가는 게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병사들은 자신의 총을 내무반(생활관) 총기함에 보관합니다. 이 총기함은 평소 자물쇠로 잠가 놓습니다.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 번 있는 총기 교체 시간에만 이 총기함을 잠깐씩 엽니다. 경계근무가 있으면, 총기 교체 시간에 자신의 총을 대대(大隊) 지휘통제실 무기고에 보관합니다. 경계근무 시간이 되면 무기고에서 총을 꺼내서 근무를 서고, 끝나면 다시 무기고에 총을 보관한 뒤 총기 교체 시간에 다시 생활관으로 이동시키는 것입니다.
 
  적이 기습해 급박한 상황이 터지면, 총기함 자물쇠를 따고 실탄을 분배하는 데 어마어마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였습니다. 습격을 받게 되면 손도 못 써 보고 전멸(全滅)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내부에서 바라본 우리 군의 경계는 허술했고, 적에게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이는 무사안일주의에 빠져서 스스로 싸울 무기를 걸어 잠갔기 때문입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라는 속담이 생각났습니다.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된 주된 이유로는 적이 도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외부 사회가 군을 바라보는 시각에 우리 군대가 굴종(屈從)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방치된 캐비닛에는 2·3급 기밀문서 가득
 
  저희 부대는 오래된 사령부 건물을 대신해 신청사(新廳舍)를 지었습니다. 구(舊)건물에서 사용하던 사무기기는 폐기하기 위해 한곳에 모아 놓았습니다. 하루는 폐기된 사무기기를 고물상에 팔기 위해 저희 소대가 모두 투입돼 해체 작업을 했습니다. 캐비닛을 열어 보니, 2·3급 기밀문서가 뭉텅이째로 발견됐습니다. 이 문서를 생산한 곳은 부대의 보안을 담당하는 정보참모처였습니다.
 
  이것을 보곤 이 부서에 속한 선임병이 피식 웃으며, 후임들에게 기밀문서를 세절(細切)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다른 병사들도 이러한 기밀문서를 매일 보니 별로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매우 심각한 사안이라고 생각해 인근 기무부대에 연락하려고 했지만, 괜히 병사들이 피곤해질 것 같아 그만두었습니다. 방치된 문서의 양은 A4용지 약 1000장 정도로, 비를 맞아 퉁퉁 불어 있었습니다. 군복무하면서 보안의식이 결여된 행동을 너무 많이 봐 어느 순간부터는 저 또한 무감각해졌습니다.
 
 
  대응 시나리오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
 
육군 화력시범장에서 K-9 자주포가 포탄을 발사하고 있다.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북괴군이 아군에게 도발할 경우를 대비해 우리 군에는 대응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적이 소화기(小火器)로 공격하면, 우리 군도 소화기 위주로 대응해야 합니다. 적이 중화기(重火器)로 도발하면 그때서야 우리도 중화기로 반격을 가합니다. 이 ‘대응 매뉴얼’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적이 A라는 강도로 도발하면 X화기 300발, Y화기 30발, J화기 5발을 사용해 대응합니다. ‘적의 도발에 비례해서 몇 배’ 이런 식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아니, 적이 몇 발 쏘는지 일일이 확인하고, 우리도 몇 발 쐈는지 계산하면서 대응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생각을 동기에게 말하자 이 동기도 웃었습니다.
 
  대응 매뉴얼 이상으로 적에게 반격하면, 그 지휘관은 ‘과잉 대응’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사단장이 옷을 벗어야 하는데, 누가 수십, 수백 배의 보복을 하겠습니까? ‘적이 도발하면 적이 굴복할 때까지 대응하겠다’는 말은 수사(修辭)에 불과합니다. 남북 대치하의 안정적 위기관리와 평화라는 미명(美名) 아래, 우리 군은 정치권의 눈치와 여론의 눈치를 보느라, 호전성(好戰性)을 잃어버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북괴군이 남하(南下)하자, 인접 부대의 사단장이 즉각대기포(砲)를 준비시켰습니다. 즉각대기포란, GOP나 GP에 투입된 병력을 지원하는 포병부대입니다. 군단장은 ‘왜 적을 자극해 도발할 빌미를 줬느냐’는 취지로 이 사단장에게 면박을 줬다고 합니다. 사단 지휘통제실에서 근무하는 동기에게 이 이야기를 듣고는, ‘내가 생각했던 군인은 실제와는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강도가 들어올 것을 대비해 야구방망이를 준비해 놨는데, 이 야구방망이가 강도를 자극했다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생각합니다.
 
 
  PPT 잘 만들어야 유능한 군인
 
  이명박(李明博) 정부 초기 국방장관이었던 이상희(李相憙) 장관은 취임 직후 “행정 군대를 버리고 전투형 군대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군에 오니, 왜 국방장관이 그런 말을 했는지 실감했습니다. 사단의 행정병이어서 더 다가왔습니다.
 
  제가 경험한 우리 군은 보고서를 보기 좋게 만들고, 파워포인트(PPT)를 잘 만드는 사람을 유능한 군인으로 평가하는 것 같았습니다. 전투적·전술적(戰術的) 사고(思考)를 견지하는 군인이 유능한 군인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내용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상급자에게 보고서를 올릴 때, 어떻게 하면 윗사람에게 잘보일지를 고민했습니다.
 
  한번은 저희 부서의 간부가 “사단장님한테 결재 맡을 것이니 ○○○○ 용지 구해 오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군에서 보급받는 A4용지 대신 고급 용지를 구해 오라는 것입니다. 보급으로 나오는 A4용지는 일반 A4용지보다 질(質)이 떨어집니다. 내용, 본질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일까’, 겉모습이 중요했습니다.
 
  군에서 사건·사고가 터지면 해당 부대의 지휘관이 문책을 받습니다. 이번 22사단, 28사단에서도 대대장, 연대장, 사단장까지 보직해임을 당했습니다. 일각에선 징계의 범위가 너무 과한 것 아닌가 하는 반응을 보입니다. 일개 병사의 행위에 사단장까지 책임지는 것은 다소 과하다는 생각을 저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군생활을 하면서 지휘관이 부대 분위기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 때문에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사단 예하 A연대(약 2000여 명)에서는 작년 한 해에 다섯 명의 인명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인명사고는 자살, 순직, 사고사 등을 말합니다. A연대 예하 GP에서 부사관(副士官)이 총기 자살을, 관심병사가 보직 문제로 자살을, 차량 사고로 부사관이 사망하는 등의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B연대에서는 단 한 건의 인명사고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군대도 일종의 사회이기 때문에 각종 사건·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고 말하지만, 병사들 사이에서는 “A연대의 연대장이 병력의 인명사고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부덕(不德)의 소치(所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건·사고 잦자 薦度齋 지내
 
  인명사고는 부대 평가에 영향을 끼쳐, 지휘관에겐 민감한 사항입니다. A연대에서 사건·사고가 터지자 사단에서는 기독교·불교·천주교·원불교의 군종(軍宗) 장교를 참석시켜 부대안전기도회를 개최했습니다. 종파(宗派)별로 한데 모여 부대 안전을 위한 기도회를 연다고 말했지만, 진행은 불교(佛敎) 의식이었습니다. 사단장의 종교가 불교였기 때문입니다. 사단 체육관에서는 위령제 준비를 며칠간 했습니다. 그러곤 불교 공연단을 불러 천도재(薦度齋)를 크게 열었습니다. 의식이 끝난 후에는 6·25전쟁 때부터 이 사단 출신의 전·사상자(戰死傷者) 이름이 적힌 종이를 한데 모아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불교계 인사가 부대를 방문했습니다. 그는 사단장 집무실을 비롯한 건물의 구조를 보더니 풍수가 좋지 않아 액운이 꼈다면서 구조를 바꾸라고 했습니다. 이 때문에 주말에는 병사들이 사령부로 올라가 책상 등 사무기기의 위치를 바꿨다고 합니다. 기억에 남는 것은 ‘화장실 터가 좋지 않다’고 말한 것이었습니다.
 
  사단장이 이 불교계 인사에게 부대 밖에서 저녁을 대접했는데, 이 자리에 참석했던 지인(知人)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줬습니다. 그 불교계 인사가 “고기는 절간에서 먹는 게 제일 맛있다”면서 만취한 상태로 숙소에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사단의 최고 지휘관이 미신(迷信)에 의존하는 모습에 의아했습니다.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 명확한 분석을 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터가 안 좋다’ ‘운이 없다’는 식으로 접근한 것입니다. 위와 같이 책상 몇 개의 위치를 바꿔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은 오늘날 군 당국이 사건·사고가 터지면 해결책이라 내놓은 방식과 닮았습니다.
 
  장병들의 사기 진작이라는 목적으로 고위급 장성들이 부대를 방문합니다. 정작 이들의 방문을 준비하는 동안 병사들은 사기가 다 꺾입니다. 이 때문에 병사들은 고위급 장성이 부대 방문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이것저것 준비해야 할 게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청소가 제대로 안 돼 있으면, ‘내가 방문한다는데, 청소도 제대로 안 해 놔?’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병사들 입장에서는 사소한 말실수라도 할까 걱정합니다. 악수하더라도 병사들은 ‘군기가 들어 있는 모습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얼어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얼어 있지 않은, 다소 긴장이 풀린,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이면 간부들은 병사들이 자신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고위급은 부대를 방문해 사진 몇 장 같이 찍고, 식사를 함께 하며 병사들과 몇 마디 나눈 뒤 돌아갑니다. 해당 부대의 지휘관에게는 영광이겠지만, 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군기가 들어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병사들에게는 피곤한 일일 뿐입니다.
 
  한번은 군단장이 저희 사단을 방문했습니다. 이 군단장은 아침 회의 때 클래식을 트는 등 병사들 사이에서는 ‘깨어 있는 군인’처럼 비쳤습니다. 이 군단장이 부대를 방문한다고 하자, 청소 때문에 사령부가 시끄러워졌습니다. 군단장이 방문할 지휘통제실 바닥에는 조립식 타일이 깔려 있었는데, 병사들은 이 타일을 일일이 다 분해해서 장갑도 끼지 않은 채 락스로 청소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때 휴가를 다녀와 현장에 없었는데, 청소를 한 병사에게 물어보니 “전형적인 쌍팔년도 군대의 모습”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를 보고 학습한 초급 간부들도 병사들이 자신의 앞에서 얼어 있지 않은 모습을 보이면, 군기가 빠졌다고 생각해 자신을 무시한다고 착각합니다. 병사들도, 자신의 후임병이 자신에게 비굴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빠졌다’고 합니다. 잘못한 게 없어도 선임 앞에서는 죽을 죄를 지은 듯이 표정을 지어야 일이 빨리 해결됩니다. 여기서 통합을 저해하는 ‘너는 계급이 나보다 낮으니 나를 받들어야 한다’는 차별 의식이 발생합니다. 이는 비(非)전투적인 요소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동료애·전우애가 아닌, 경직된 철저한 주종(主從)관계가 성립하는 것입니다.
 
 
  <진짜 사나이>는 <가짜 사나이>
 
TV인기 예능 프로 <진짜 사나이>의 한 장면. 하지만 아직도 이 프로에서 보여주는 모습과는 달리 시설이 열악한 곳이 많다.
  MBC에서 주말에 방영하는 <진짜 사나이>가 인기입니다. 병사들끼리는 ‘진짜 사나이’를 ‘가짜 사나이’라고 부릅니다. 한번은 경북 모 사단에서 <진짜 사나이> 촬영이 예정돼, 계획을 본 적이 있습니다. 촬영 기간은 4박5일이었습니다. 4박5일 촬영하고 4주, 한 달을 내보내는 게 진짜 사나이입니다.
 
  방송을 보면 대다수의 병사들이 깨끗한 건물에서 쾌적한 생활을 하는 것처럼 나옵니다. 현실은 일부 말끔한 건물을 촬영 장소로 사용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아직도 전방의 환경은 열악합니다. 겨울에 땅이 얼면 물이 부족해 샤워를 제대로 할 수가 없습니다. 눈을 녹여 그 물로 샤워했는데, 많은 병사가 피부 질환으로 고생했다는 소식을 GOP 체험을 다녀온 후임병에게 들었습니다.
 
  <진짜 사나이>는 군의 현실을 왜곡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진짜 사나이와 같은 복무 환경을 지향해야 하지만, 우리 군대는 보여주기 식에만 그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일반 훈련병이 5주간 받는 신병교육 훈련을 진짜 사나이 출연진은 2일 내외로만 받았습니다. 훈련이라고 표현할 수도 없는, 보급품 받고 경례 몇 번 한 것이 <진짜 사나이>의 훈련소 생활입니다.
 
  <진짜 사나이>를 보면 군의관이 내무반(생활관)을 방문해 순회 진료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제 군생활 중 이런 사례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 현실은 아파도 참아야 하고, 2분가량의 진료를 받기 위해 의무대와 군 병원에서 짧게는 3시간, 길게는 하루 종일을 쏟아붓는 게 실제입니다. GOP 경계근무를 서는 병사의 30~40%가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휴대전화 반입 사용하도록 하라고?
 
  대다수 간부는 군인 전용 휴대전화에 가입합니다. 이를 줄여서 ‘군폰’이라고 부릅니다. 군폰의 특징은 전화번호가 010-50××-×××의 형식으로 돼 있다는 점입니다. 군에 와서 놀랐던 것 중 하나는 휴대전화가 무전기를 대신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휴대전화가 없으면 외부에 있는 간부와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방법이 없습니다. 휴대전화의 성능이 월등해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도·감청(盜監聽)과 위치 노출 등 보안에는 다소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훈련할 때도 간부들은 휴대전화를 이용해 훈련 내용을 주고받았습니다. 천안함 폭침(爆沈) 때도, 휴대전화로 구조 요청을 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대규모 훈련을 앞두고 대대 지휘통제실과 초소 경계 병력 간에 교신(交信)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간부들이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병력과 지휘통제실을 연결할 수단이 없었던 것입니다. 무전기가 없으니, 대대 지휘관은 병사들의 휴대전화를 반입해 무전기를 대신해 활용하려고 했습니다. 이 계획은 전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돼 백지화(白紙化)됐습니다. 다행히 인근 부대에서 무전기를 빌려, 휴대전화로 교신하는 일은 없게 됐지만 이 소식을 듣고 ‘농담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군생활 중 무전기를 세 번 써 봤습니다. 한 번은 꽃에 물 주러 갈 때, 또 한 번은 청소하러 갈 때, 마지막으로 군단에서 시행하는 대규모 훈련 때뿐이었습니다.
 
  윤 일병 사건 이후, 국회에서 야당(野黨) 의원이 육군참모총장을 앞에 앉히고, “차라리 엄마에게 이를 수 있도록 병사들에게 휴대전화를 지급하라”고 말했습니다.
 
  비현실적인 주장입니다. 부대에는 공중전화 시설이 갖춰져 있어 휴대전화가 굳이 필요 없습니다. 단순히 ‘집에 전화할 목적’이라면 부대에 있는 공중전화로 충분합니다. 컴퓨터 사용도, ‘사이버지식정보방’이라는 일종의 부대 내 PC방을 이용하면 됩니다.
 
  복무 중인 여러 병사에게 “휴대전화 반입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그들은 “말도 안 된다”면서 “휴대전화 때문에 보안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 하고, 휴대전화 충전은 어떻게 할 것이며, 사용 요금은 누가 낼 것이냐”면서 하나같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간부들은 휴대전화를 사용하기 때문에 공중전화가 고장이 났는지 무관심한 경우가 많습니다만, 간부가 해당 업체에 고장 신고를 하면 금방 고치러 옵니다. 전화 시설이 열악하다면 추가 설치를 하고, 간부가 관심을 가지면 됩니다.
 
  훈련 때 화생방 상황이 발생하면 화생방 보호의(保護衣)를 입습니다. 너무 오래되고 낡아서 제대로 입기도 힘들고, 입더라도 곳곳에 구멍이 나거나 찢어져 있습니다. 병사들은 “어차피 화생방 상황 터지면 보호의 입어도 죽을 텐데, 뭐하러 고생해서 입느냐”는 말을 합니다. 지금 우리 군의 실상은 전쟁을 준비할 수도, 치를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유사시(有事時)에는 우왕좌왕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해 보였습니다.
 
 
  엉터리 체력 측정
 
  저는 사령부 연병장에서 열린 간부 체력 측정에 도우미로 자주 참가했습니다. 일부 간부들은 더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 도우미 병사에게 자신의 개수를 더 불러 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저는 FM, 정(正)자세로 하지 않은 것은 개수에 넣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체력 측정에 응한 간부는 제게 욕을 했습니다. 병사라서 어쩔 수 없이 그 간부의 욕을 고스란히 얻어먹었습니다. 욕을 먹고 난 뒤부터는 더러운 꼴 보기 싫어서 속칭 ‘가라’로 하는 것도 개수에 포함시켜 줬습니다.
 
  한번은 인사처 소령의 지인이 체력 측정에 응했습니다. 그러자 인사처의 이 소령은 지인의 개수를 조작해 등급을 올려주려고 했습니다. 이를 감찰장교가 제지했던 기억이 납니다. 얼마 뒤에는 이 감찰장교 자신이 지인에게 혜택을 베풀었습니다. 자신과 친한 모 상사가 체력 검정에 참여하지도 않았는데, 부하 병사를 시켜 체력 측정에 참가한 것처럼 조작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매주 수요일은 전군이 정신·정훈(政訓)교육을 하는 날입니다. 지휘관이 병력을 모아 놓고 교육을 하거나, TV를 통해 국군방송(국방TV)을 시청합니다. 행정 소대인 저희는 40여 명의 병력 중 정신교육에 참가하는 병력이 평균적으로 5~10명 정도였습니다. 해당 부서에서 일해야 한다는 이유로, 사령부 간부들은 병사들에게 “정신교육 듣지 말고 일하러 올라오라”고 했습니다. 당장 해당 부서의 병사가 정신교육을 듣게 되면, 간부가 해야 할 일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정신교육은 부실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휘부도 이러한 실태를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비상소집에 응하지 않는 장교들
 
  저는 사령부 행정병으로 자대 생활을 시작할 때, 간부들의 수준이 높을 것이라는 착각을 했지만 이 착각은 금방 깨졌습니다. 인사처, 작전처, 정보처 등 일부 주요 부서를 제외하고는 말 그대로 유능한, 열의 있는 간부는 얼마 없었습니다.
 
  인사처의 한 소령급 장교는 자신의 컴퓨터 비밀번호를 몰라 밤 11시경에 부서의 계원을 사령부로 부른 적이 있습니다. 이런 심각한 일은 드물지만, 잊을 만하면 벌어집니다.
 
  저희 소대는 본부근무대에 속해 있지만 모두 사령부에서 행정병으로 근무합니다. 이중적인 성격이 있습니다. 소대원 중에는 교사도 있고, 유수(有數)의 대학에 다니다 입대한 이들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업무능력이 뛰어납니다. 그렇다 보니 간부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병사들에게 일방적으로 떠넘기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예산을 담당하는 부서의 한 장교는 담당 병사가 없으면 일을 제대로 못합니다. 다른 부서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저희 소대원들은 무능한 간부들 때문에 고생했습니다. 간부와 병사의 업무 능력이 역전(逆轉)된 것입니다. 업무에 더 정통해야 할 간부가 오히려 병사가 없으면 일을 못합니다. 이는 선발된 행정병이 유능한 측면도 있지만, 간부 스스로 발전하려는 노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단장 전속 부관을 했던 모 대위는 자신의 총을 직접 닦지 않고, 자신의 병사에게 시켰습니다. 군생활하면서 사령부 간부가 직접 자신의 총을 닦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총기는 제2의 생명’이라는 말은 병사들에게만 해당하나 봅니다.
 
  군전투지휘검열(軍指檢) 때 일입니다. 훈련이 시작되자 비상이 걸렸고, 영외(營外)거주자 소집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소집명령 문자를 받은 한 장교는 제게 전화해서, “지금 밖인데, 간 것처럼 해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알겠다”고 했습니다. 인사처에 “어떻게 해야 소집령에 응한 것으로 처리됩니까?”라고 물으니, 소집 문자를 보낸 인사장교는 “그거 안 해도 돼. 할 필요 없어”라고 말했습니다. 인사장교의 그 말을 듣고 허탈했습니다. 정식 절차는 사단 홈페이지에 접속해 영외거주자 소집령에 응한 것을 직접 기록해야 합니다.
 
  세월호가 침몰한 날이었습니다. 제가 속한 부서에서 장교들이 회의를 가졌습니다. 병사인 저는 이들에게 커피를 타 준 뒤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 장교가 수학여행 가던 배가 좌초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것도(세월호 침몰) (정부가) 북한에서 했다고 하는 거 아니에요?”라면서 농담 반 진담 반 식(式)으로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다른 장교는 “그러게요”라고 반응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제정신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들은 사단의 군종장교들이었습니다.
 
 
  언론 보도에 민감한 군대
 
  소설가 최인호 이후 46년 만에 두 번째로 현역 군인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습니다. 이 병사는 저희 사단 신병교육대에서 조교로 복무하고 있었습니다. 이 병사가 당선되자, 부대의 공보 업무를 맡는 실무 담당자들의 표정이 안좋았습니다. 이들에게 귀찮은 일이 생긴 것입니다.
 
  실무 간부들은 이 병사에게 축하한다는 말보다 “작품 내는 거 보안성(保安性) 검토 받고 보냈느냐?”는 말을 했습니다. 이 병사가 “소대장에게 허락 맡았다”고 하자, “왜 사령부 ○○부에는 보고를 안했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이들은 주말에도 출근해 일을 했습니다.
 
  군대에서는 외부에 기고나 작품을 제출할 때 부대에서 ‘보안성 검토’라는 명목으로 확인을 맡아야 합니다. 저도 《국방일보》에 기고하려다가 포기한 적이 있습니다. 보안성 검토라는 게 대단한 게 아닙니다. 관련 업무 담당자에게 일종의 ‘허락’을 맡는 것입니다.
 
  언론 보도를 통해 군부대에 진공청소기·드럼세탁기가 보급됐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일부 부대에 한정된 이야기입니다. 전방의 다수(多數) 부대는 아직도 환경이 열악합니다. 저희 부대도 드럼세탁기가 있었지만, 자주 고장이 나서 효율적이지 못했습니다. 드럼세탁기의 장점 중 하나가 건조 기능인데, 부대에서는 “건조 기능을 사용하면 금방 고장이 난다”면서 건조 기능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군대에서는 ‘통돌이 세탁기’가 최고입니다. 아직도 GOP에서는 세탁기가 부족해, 열 명분의 빨래를 한꺼번에 돌리곤 합니다.
 
  군대는 밖에서 군대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중시(重視)합니다. 안에서 바라보는 군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건이 터지면 은폐하려 하고, 은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면 그때서야 뒷수습을 합니다. 군대를 다녀온 예비역들은 군 당국의 발표나 홍보성 기사를 보면 조롱이 섞인 반응을 내보입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겪어 봤기 때문에 아는 것입니다.
 
  김관진(金寬鎭)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국방장관 시절 종북(從北)세력을 적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일선 부대에서도 종북세력의 실체를 알리는 정훈교육을 적극적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종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빈도가 점점 줄어들더니, 종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분위기가 됐습니다. 한 정훈장교는 “야당(野黨)이 종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28사단 윤 일병 구타 사망 사건의 파문이 커지자, 8월 8일 군부대에서는 온종일 ‘인권교육’을 했다고 합니다. 교육받은 병사들에게 느낀 점을 말해 달라고 하자, “인권교육 한다고 달라지겠습니까? 달라졌다면 벌써 달라졌지. 안 달라지는 거 다 알지 않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군 당국은 두 달에 한 번씩 인권교육을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병사들 입장에선 귀찮은 일이 하나 늘어난 것입니다. 제가 속했던 부대의 지휘관은 ‘인권교육’ 한다고 불러 모아 놓고는 자기 자랑을 늘어놓았다고 합니다.
 
  윤 일병 구타 사망 사건 등 각종 사건·사고가 일어나자 군 당국은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를 8월 초에 출범시켰습니다. 8월 12일에는 위원회가 ‘불시(不時)’에, 사건이 일어났던 28사단의 한 부대를 방문했다고 보도됐습니다. 과연 ‘불시’에 찾아갔을지 강한 의심이 들었습니다.
 
  제 경험상 외부 손님의 부대 방문이 예정돼 있으면 오래 전부터 이를 기획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특히 군 당국이 사건 수습을 위해 내세운 ‘병영문화혁신위원회’가 부대를 방문한다는데, 부대에서는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이들을 맞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28사단에서는 방문 사실을 미리 알고 대대적으로 준비해 맞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단에는 외부 인사의 부대 방문을 전담하는 장교가 따로 있습니다. 위원회가 아무 부대나 방문할 수 없으므로, 사단에서는 어느 부대를 방문할지를 미리 선정해 놓고, 위원들의 식사는 어떻게 하고, 동선(動線)은 어떻게 할지를 기획하고 준비합니다. 일개 선교 단체가 부대를 방문해 초코파이를 나눠줄 때도 일정과 계획, 동선이 다 짜여 있습니다.
 
 
  전방에서는 가혹행위 여전
 
  저는 구타 등 가혹행위를 경험하지 않았지만, 전방(GOP, GP 등 격·오지)은 저희와 사정이 달랐습니다. 아직도 구타가 있다고 했습니다. 전방을 체험한 후임병들에게 소식을 접할 때면 가혹행위가 남아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가혹행위가 발생하는 것을 간부들도 알고 있는지 물으니, “간부도 알면서 모른 척한다”고 했습니다. 이른바 ‘군기(軍紀)’를 잡아야 하니 가벼운 구타나 욕설은 알면서도 못 본 척한다는 것입니다. 병사들도 ‘나도 선임한테 맞았는데, 너도 맞아’는 보상심리가 있는 것입니다.
 
  남경필 경기지사의 장남이 후임병을 폭행하고 성(性)추행을 저질러 문제가 됐습니다. 6사단 헌병대는 남 지사의 아들에 대해 두 차례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모두 기각당했다고 보도됐습니다. 군에서는 성희롱, 성추행, 성매매 등 성과 관련된 사건을 통칭해 ‘성군기 위반’이라고 합니다. 저희 부대에서도 한 선임병이 샤워실에서 후임이 귀엽다며 후임병의 중요 부위를 만져 영창 10일을 다녀왔고,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행동을 했다가 휴가를 잘린 병사도 있었습니다.
 
  남성들만 모여 생활하니 억압된 욕구가 노골적으로 표출되는 일이 많습니다. 남 모 상병을 두둔하는 것은 아니지만, 추행 같은 사건은 부대에서 종종 벌어집니다. 남 모 상병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다는 기사를 보고, 군 당국이 과잉대응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일선 부대에서는 남 모 상병의 경우 일명 ‘만창(滿倉)’이라고 불리는 영창 15일 정도의 처벌을 받았을 것입니다. 구속까지 할 정도는 아닙니다.
 
  사관학교를 나온 모 대위는 의무복무 기간을 채우지 않고 제대하고 싶었습니다. 그가 택한 방법은 ‘현역복무 부적합심사’였습니다. 이 장교는 일도 안 하고, 사령부로 자신의 여자 친구를 데려와서 업무 시간에 차 안에서 이야기하며 태업(怠業)을 했습니다. 얼마 뒤 ‘현역복무 부적합심의’로 제대를 했습니다.
 
  군종장교 모 중위는, 연대장 운전병을 밀친 뒤 연대장 차를 빼앗아 타고 탈영(脫營)을 하다 잡혔습니다. 그러면서 연대장에게 ‘마귀가 씌었다’는 식으로 말했답니다. 교회를 다닌 연대장이 조용히 넘어가자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사고를 친 뒤 군 병원 정신병동에도 입원했었는데, 결국 현역복무 부적합심의를 통해 제대했습니다.
 
  GOP에서 신임 장교가 장난 삼아 병사의 방아쇠를 당겼는데, 실탄이 발사돼 병사의 어깨를 관통한 사건도 있습니다.
 
 
  워게임에서 무조건 한국군이 이기는 이유
 
  블랙북(Black Book)은 신호 정보, 도·감청 정보 등 고도의 보안을 요구하는 특수 정보(SI, Special Intelligence)를 모은 북한 첩보 관련 일일보고서로, 부대에서는 특별취급 대상입니다. 저희 부대에서는 새벽 5시에 블랙북을 작성해 매일 아침 사단장에게 올렸습니다.
 
  이 블랙북에 담길 내용은 ‘밈스’를 통해 전파받습니다. ‘밈스(MIMS, Military Information Management System·군사정보운영체제)’란, 국방부 정보본부가 중심이 돼 기무사와 정보사, 일명 스리세븐 부대라고 불리는 ‘5679부대(777부대)’가 생산한 정보를 취합해 전파하는 체계입니다.
 
  저희 사단에서는 밈스 관리와 블랙북 작성을 병사가 주로 취급했다고 들었습니다. 몇몇 내용만 간부가 손을 보고, 나머지는 병사에게 시킨 것입니다. 상급 부대에 블랙북 작성과 MIMS를 병사가 운용해도 되는지 문의하니, “간부가 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간부가 시키면 뭐든 해야 하는 행정병이니 특별 취급과 전문성을 요구하는 블랙북의 많은 부분도 병사가 채워 넣고 있습니다. 해당 부서의 병사들은 “특별 취급을 필요로 하는 블랙북을 병사들에게 맡기는 것은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말합니다.
 
  군에서는 워게임(War Game)이라는 시뮬레이션으로 적과 가상(假想)전투를 펼칩니다. 사단 지휘통제실에 근무하는 병사에게 워게임을 하면 누가 이기는지 물으니 한국군이 항상 이긴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한국군이 이기냐고 물으니, 그는 “계획한 시나리오대로 해서 이긴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적이 기습할 것이라고 상정(想定)하지 않고, 우리는 준비가 다 된 상태에서 계획대로 적과 교전함에도, 후방까지 밀리다가 겨우 이기는 걸로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이기는 이유 중에 하나로, 워게임 프로그램에 북괴군의 공군 전력이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적의 공군 전력은 배제하고 전투를 치러 얻은 결과라는 것입니다.
 
  군 전투지휘 검열 기간 중 북괴군과의 전면전을 가상한 워게임을 할 때였습니다. 우리 사단 포병 부대에서는 적이 있을 것으로 파악한 곳에 열심히 포격을 가했지만, 생각만큼 타격을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적 탱크의 남하를 막기 위해 살포식 지뢰(FASCAM)를 매설했지만, 제대로 맞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사단이 보유한 좌표와 검열 때 사용한 시뮬레이션 좌표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군 전투지휘 검열은 군단에서 사단의 전투력을 측정하기 위해 시행하는 대규모 훈련입니다.
 
 
  행정병보다 업무능력 떨어지는 간부 많아
 
지난 6월 23일 총기 난사 사건을 벌인 임 모 병장을 검거하기 위해 출동했던 병사들이 귀대하고 있다.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군의 특성상 내부의 사건·사고가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고가 터지면 일단 덮으려 하고, 덮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면 그때서야 뒷수습을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꼬리 자르기, 책임 회피, 허위 보고가 동반됩니다. 우리 군의 고질적 병폐입니다.
 
  인접 사단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행군(行軍) 중 한 병사가 무장탈영을 했습니다. 이 소식이 옆에 있는 저희 사단에도 공유됐습니다. 정작 표현은 ‘무장탈영’ 대신 ‘행군 낙오자’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부대에서 무장탈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고 행군 낙오자라는 표현을 사용하라고 지시받았기 때문입니다. 언론에 알려져도 무장탈영보다는 행군 낙오자라는 용어가 주는 파급력이 작기 때문입니다.
 
  최근 군 관련 사건·사고가 터진 뒤, 예비역들이나 현재 복무 중인 병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단 주요 부서에서 행정병으로 근무한 제 동기는 “간부들의 책임감이 많이 떨어진다. 진급에만 관심이 있고, 사건·사고가 터지면 덮기 바쁘다”고 말했습니다. 또 “군 간부가 너무 쉽게 된다. 머릿수 채우려고 뽑으니, 경쟁도 없고 발전도 없다”고 했습니다. 사관학교 출신을 제외한 일부 간부들은 행정병보다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군인에 대한 처우가 열악해 우수한 인력이 직업군인으로 입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장교의 경우 계급연한이 있어 한 계급에서 일정 기간 내에 진급하지 못할 경우 제대를 해야 합니다. 이와 달리 부사관은 장기복무 심사를 통과하면 정년이 보장됩니다. 장기복무 심사만 넘기면 마음 놓고 편하게 군생활을 하는 셈입니다. 일종의 무사안일한 공무원이 돼 버린 것입니다. 부사관들은 장기복무만 통과하길 바라고 군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정년이 보장되고, 경쟁할 필요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20년을 채우면 연금을 받습니다.
 
 
  윤 일병 사건 이후 일선 부대에서는…
 
  김요환 육군참모총장이 8월 26일 306보충대를 방문해 “시험 운영 중인 동기생 분·소대가 상당히 효과가 있어 육군 전체로 확대 시행할 계획”이라며 “입대 동기끼리 분대나 소대를 만들어 근무해 상하관계가 아닌 수평관계의 군생활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육군은 논란이 확산되자 다음 날인 27일에는 “앞으로 추가 시험을 거쳐 적용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며 “육군 전체로 확대한다는 것은 아니다”고 발을 뺐습니다.
 
  김 총장이 말한 것은 동기들로만 분대, 소대를 구성하겠다는 것입니다. 군을 좀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에 반대합니다. 동기생들로만 구성된다고 해서 따돌림·가혹행위 등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고, 유사시 지휘체계가 불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일선 부대의 병사들도 부정적입니다. 소대 마다 다른 임무가 있음에도, 사건·사고를 막겠다고 내무반을 통폐합하는 것입니다. 올림픽을 앞두고, 축구선수와 야구선수, 농구선수가 한데 엉켜 생활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일과 시간 이후에는 병사들의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취지로 이를 추진하겠다고 말하지만 군대는 사회처럼 오후 6시가 되면 모든 업무가 끝나는 게 아닙니다. 간부들이야 6시에 퇴근하지만, 병사들은 퇴근의 개념이 없습니다. 24시간 부대에서 지시를 받으며 생활하는 이들입니다. 선후임 관계가 사라지면, 유사시 누구의 말을 듣겠습니까.
 
  병사들은 ‘명예’는 자신들과는 관계없는, 고위직 장교들에게만 해당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형식적이지만 ‘국가에 충성하고 오겠다’는 포부를 품고 입대합니다. 군생활을 계속해 나갈수록 입대 초기의 자존감은 사라집니다.
 
  병사들은 출타(외출·외박·휴가)를 나갈 때면 간부들에게 가장 먼저,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밖에서 사고 치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 “(민간인이) 때리면 그냥 맞아”라고 합니다. 병사들은 군복부터 벗고 싶어 합니다. 유니폼이 주는 소속감, 명예감을 던져 버리고 일단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심리입니다. 오죽하면 간부들도 밖에선 군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것을 꺼립니다.
 
  전방 지역에선 아직도 군 장병을 대상으로 한 바가지 요금이 여전합니다. 병사들이 가장 많이 찾는 PC방도, 주중엔 1000원이지만 주말에는 1500원입니다. 병사들이 주말이면 외출·외박을 하기 때문입니다. 병사들은 부대 밖으로 나가기 위해선 택시를 타야 합니다. 부대마다 요금은 다르지만, 편도로 약 1만원에서 3만원 정도 하는데, 카드는 안 되고 현금만 내야 합니다. 공급은 한정돼 있고, 군 장병들의 수요는 꾸준하니 배짱 영업을 하는 것입니다.
 
 
  작은 관심이 병사들에게는 큰 힘 돼
 
지난 8월 25일 민관군 병영문화 혁신위원회 첫 회의에서 심대평 위원장(맨 오른쪽)과 김요한 육군참모총장(왼쪽에서 세 번째)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이라고 있습니다. 보험회사 직원인 하인리히가 산업 현장에서 재해 발생 비율을 조사해 얻어낸 법칙입니다. 중상자가 1명 나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같은 원인으로 다쳤을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 있었다는 것입니다.
 
  군에서 발생하는 사건·사고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형 사고가 나기 전에는 반드시 그 징조가 되는 가벼운, 사소한 사고가 일어납니다. 사소한 사건·사고를 최소화해야만 대형 사고로의 발전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 사소한 사건·사고는 간부의 세밀한 관심과 관찰로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일선 부대에서는 사소한 것으로 생각해 방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군 당국도 일선 부대 지휘관이 병사들을 책임지고 관리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정신적·육체적’으로 복무에 부적합한 이들은 사전(事前)에 가려내 일선 부대의 지휘 부담을 줄여 줘야 합니다.
 
  하루는 한 상사가 저녁 점호 때 병력을 모아 놓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너희들이 다치지 않고 무사히 제대할 수 있도록 보살피는 것이다.”
 
  간부들의 사소한 관심과 말 한마디가 병사들에게 큰 영향을 끼칩니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적과 싸워 이기는 것이다’라는 교과서에 나오는 진부한 표현으로는 병사들을 변화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적이 쳐들어오면 손 놓고 있을 병사들도 아닙니다. ‘부모의 심정’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간부들이 부모의 심정으로 병사들을 보살펴야 합니다. 한가족이라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육사 출신 모 중령은 사단 주요 부서의 참모입니다. 그는 병사들에게 관심을 많이 가졌고 항상 웃는 얼굴로 대했습니다. 한번은 명절을 앞두고 이 중령이 자신의 부서 병사들에게 샴푸와 바디 워시가 담긴 선물 세트를 나눠줬습니다. 이를 본 다른 부서의 병사들이 모두 부러워했습니다. 이 부서의 병사들만 명절 선물을 받았습니다. 병사들은 사소한 관심과 격려를 받는 낙(樂)으로 군생활의 고단함을 버텨 내곤 합니다.
 
 
  기쁜 마음으로 入所했지만…
 
  저는 논산 육군훈련소로 입대할 때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웃으며 군문(軍門)을 통과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꿈꿔 왔던 장교로 입대하진 못했지만, 국가 안보의 일선에서 젊음을 바친다는 것에 설렜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애국가를 부르는 것도 너무 좋아 목청껏 불렀습니다. 흔히 말하는 ‘짬밥’도 아주 맛있었습니다. 정훈교육 때는 어떠한 내용을 배우고, 자대는 어디로 갈지 궁금해하며 군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훈련을 받던 중 전염병에 걸렸고, 제가 소속된 훈육중대에서는 관심도 두지 않은 채 저를 방치했습니다. 훈육중대에서는 제가 훈련을 받지 못해 교육 이수 부족이라는 이유로 유급(留級) 통보를 내리곤, 자기네 할 일은 다 끝났다는 식으로 나왔습니다. 군 병원에서도 오진을 했는데,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곤 부모님에게는, “이경훈 훈련병이 부모님 전화번호를 몰라서, 군 병원에서 부모님께 연락을 못 드렸다”고 했습니다.
 
  군 병원에서 제대로 받지 못한 치료를 어머니 손에 이끌려 민간 병원에서 한 달여 동안 받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제게 “네가 입만 열면 자랑하고 옹호했던 군대의 실체이다. 직접 당해 보니 어떠냐?”고 말했습니다. 저는 몸을 다친 것보다, 제 마음을 더 많이 다쳤습니다. 훈육중대와 군 병원이 잘못한 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끝까지 책임을 회피하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민간 병원에서 치료를 마치고, 두 번째로 육군훈련소의 문을 통과할 땐 처음 입대할 때의 감정과는 달랐습니다. 이곳에서 남은 날들을 어떻게 버텨 나갈지 까마득했습니다.
 
 
  한동안 관물대도 없이 지내
 
지난 6월 20일 육군훈련소 4주차 훈련병들이 각개전투 훈련장에 마련된 야외 샤워시설에서 물세례를 맞으며 더위를 식히고 있다.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그곳에서 저의 유일한 희망은 함께 훈련을 받는 훈련소 동기들뿐이었습니다. 훈련소 동기들을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버텨 나갔습니다. 밥을 세 번 먹으면 하루가 지나간다는 것과 주말에 교회를 다섯 번 가면 훈련소를 수료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서로 비슷한 환경에 놓인 훈련병들은 훈련 기간을 함께할 동반자들이었고 버팀목이었습니다.
 
  한번은 육군훈련소의 교육대장(소령)이 정신교육을 했습니다. 그는 전시(戰時)에 적과 싸울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은 전우애(戰友愛)라고 했습니다. 거창한 국가관, 애국심, 가족 때문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옆에서 동고동락(同苦同樂)한 전우를 보며 적과 싸운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이 더욱 와 닿았습니다. 그때 당시 의지할 곳은 간부도 아니었고, 오직 함께 훈련받는 동기들뿐이었습니다. 훈련소에서 이들과 5주간의 시한부 만남을 끝내고 전방 상비사단으로 자대 배치를 받았습니다.
 
  자대에 오자마자 의병제대나 ‘현역복무 부적합심사’를 통해 조기(早期) 제대를 하려고 했습니다. 훈련소에서 발생한 질환이 치료되지 않았고, 만성화(慢性化)됐기 때문입니다. ‘더 나빠지면 어떡하나’라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부대는 의무대 입원을 권유했습니다. 입원 기간이 길어지자 의무대에서도 저를 꾀병으로 보곤 “자대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자대로 돌아오니 가시방석이었습니다. 소대원들에게 미안했습니다.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조기 제대를 하고 싶었는데, 상황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제 관물대와 침대도 없어졌습니다. 한동안은 옷과 같은 생활용품을 흔히 말하는 ‘더플백’에 넣어서 사용했고, 잠은 휴가 나간 병사의 자리에서 잤습니다.
 
  분대장에게 제가 처한 건강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습니다. 분대장도 제 고충을 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줬습니다. 꾀병인 줄로 생각했던 다른 병사들도 저를 걱정해 줬습니다. 선·후임과 동기들의 도움으로 부대 생활에 적응했습니다. 후임인 제가 해야 할 일도 선임이 대신했습니다. 맏선임이 저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경계근무를 나가야 하는데도, 몸이 성치 않아 나가지 못했습니다. 항상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함께 생활한 병사들은 제게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오히려 저를 걱정해 줬습니다.
 
  시간이 흘러 제게 도움을 줬던 선임들이 제대했습니다. 저도 후임을 두게 됐습니다. 후임들에게 잘해 주는 것이 선임들에게 받은 은혜를 갚는다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군생활을 이어 갔습니다. 계급이 높아지니 해야 할 일도 많아지고, 주도적으로 나서는 일도 생겼습니다. 만성 질환으로 인해 신체는 온전치 못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했습니다. 군생활에 재미가 붙었습니다.
 
  조직생활을 경험한다는 것은 앞으로 살아가는 데 큰 도움을 줍니다. 군대는 누구에게나 기회가 주어지는 곳입니다. 계급이 낮을 땐 선임병을 따르는 법을 배우고, 계급이 올라가면 후임병을 통솔해야 할 때가 옵니다. 제가 후임병일 때는 선임이 시키는 것을 어떻게 잘해 낼지 고민해 봤습니다. 남에게 이것저것 시키는 게 싫었던 저도 계급이 오르니 후임병들에게 지시를 내려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했습니다. 지시하고 통솔하는 것에 익숙해지자 ‘후임병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도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존중하면서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을까도 생각했습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관심병사가 된다고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본인이 열심히 해 선입견(先入見)을 깨면 됩니다. 군대는 집단생활을 하는 곳입니다. 어려운 병사가 있다면 이를 도와 함께 가는 곳입니다. 본인의 의지도 중요합니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선·후임과 간부가 함께 도와줄 것입니다.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심리학에서 쓰이는데, ‘심각한 삶의 도전에 직면하고서도 다시 일어설 뿐만 아니라 심지어 더욱 풍부해지는 인간의 능력’이라고 합니다. 관심병사와 같이 부대에서 적응을 잘 하지 못하는 병사들은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상처가 많습니다. 이들은 ‘회복탄력성’이 부족합니다. 이 때문에 자신이 처한 환경을 헤쳐 나갈 수 없다고 느끼고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곤 합니다.
 
  이들이 포기하지 않도록 주변의 선·후임과 동기, 간부가 이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보듬어 준다면 이들과 함께 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우애입니다. 이들에게 애정을 쏟아부어 군생활을 같이 하고, 무사히 성장시켜 배출하면 말 그대로 군대가 군대(軍大·군이 대학과 같은 교육기관이라는 의미)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국력(國力)이고, 군의 신뢰성을 높이는 길입니다.
 
  다윗 왕이 세공 전문가를 불러 반지를 만들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 반지에는 전쟁에 이겼다고 해서 교만하지 않고 졌다고 해서 좌절하지도 않을 문구를 새겨 달라고 했습니다. 세공 전문가는 이 문구를 수소문했지만 원하는 답을 얻지 못 했습니다. 그러던 중 마지막으로 솔로몬이 가르쳐줬다는 문구가 바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입니다.
 
  이 이야기는 육군훈련소에서 자살 예방 교육을 받을 때 당시 교육을 주관한 군종목사 모 중령에게 들은 말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는 이 문구를 생각하며 군생활을 하라고 했습니다. 극단적인 선택은 주변인들에게 잠깐의 슬픔을 줄 순 있어도, 곧 잊히는 허무한 죽음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듣고, 군생활의 각오를 ‘이 또한 지나가리라’로 삼았습니다.
 
 
  病도 주고 藥도 준 군대
 
아침 구보를 하는 병사들. 군생활을 견디게 해 주는 것은 결국 전우들이다.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맨 처음 자대에 가니 입대 순(順)으로 서열판이 있었고, 제가 맨 아랫부분에 있었습니다. 제 앞에 있는 선임들이 모두 다 집에 가야 저도 갈 수 있었습니다. 매우 길 것만 같았지만 뒤돌아보니 금방이었습니다. 그중에는 힘든 일도 있고 즐거운 일도 있었습니다. ‘엊그제 같았는데…’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제대하는 선임들이 한결같이 했던 말입니다. “입대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제대를 한다.”
 
  저도 입대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1개월도 더 됐습니다.
 
  힘든 것을 참고 이겨내 만기(晩期)제대를 하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질병에 걸리지 않고, 무사히 군생활을 시작하고 끝냈으면 좋았겠지만, 불행 중 다행으로 좋은 사람들을 만나 예비역 병장이 됐습니다. 모두 다 저를 도와준 선·후임과 동기, 그리고 좋은 간부들 덕분입니다. 저의 군생활을 요약하자면 ‘전우애로 버틴 21개월’이었습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온몸으로 경험하는 2년이라는 시간은 다시는 겪지 못할, 가치 있는 시한부 만남입니다. 전우애를 바탕으로 가족과 같은 생활을 한다면, 어떻게 구타와 가혹행위가 있겠습니까. 유사시 나의 억울함을 풀어 줄 이들이 내 옆에 있는 선·후임, 전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군대는 제게 병(病)도 주고 약(藥)도 준 것 같습니다. 몸은 예전 같지 않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맺어 줬고, 제가 그토록 사랑했던 군대의 민낯을 알 수 있게 해 줬기 때문입니다.
 
  군대는 병(兵)이 없으면 지탱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의 우리 군대는, 자동적으로 충원되는 병사를 2년간 마음껏 굴립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생깁니다. 병사들의 복무 여건이 개선돼야 우리 군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합니다. 징병제(徵兵制)를 택한 우리 군대가 병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국군의 미래는 없고, 미래 없는 국군은 ‘자유 통일’이라는 국가 목표도 뒷받침할 수 없습니다.
 
 
  ‘싸우지 않는 군대’에 익숙해진 국군
 
육군부사관학교에서 후보생들이 훈련을 받고 있다.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한국군은 병사들의 복무 여건을 향상시킬 소프트웨어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무형(無形) 전력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우리 군도 병영(兵營) 문화에 대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나중에 해야 하는지 판단해야 합니다.
 
  첨단무기가 전승(戰勝)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월남 패망이 그것을 증명했습니다. 전쟁 초기에는 첨단무기가 잠깐 빛을 발할지 몰라도, 결국엔 보병(步兵)이 평양 주석궁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압록강까지 진격해야 전후(戰後) 관리를 할 수 있습니다. 이때 피 흘리며 산화(散華)할 이들은 젊은 우리 병사들입니다. 시급 180원이라고 마음껏 함부로 굴려서는 안 됩니다. 이들은 국가의 부름에 자신의 소중한 2년을 바치는 것입니다.
 
  군대도 사람 사는 곳이기에 사건·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사고 없는 군대보다는 군대 다운 군대가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군대를 보면서, 우리 군은 ‘싸우지 않는 군대’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분단 국가에서, 적이 핵무장을 하고 호시탐탐 자신들을 노리고 있는데도 태평하기 때문입니다. 정치권과 여론의 눈치를 보고, 평화라는 시대적 분위기에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한미(韓美)동맹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도록 도움을 줬지만, 역설적으로 부작용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국민의 현실 감각이 왜곡됐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전쟁이 일어나도 미국이 도와줄 것이다’는 생각이 우리 국민들 사고에 깊게 박혀 있습니다. 우리 군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오늘날의 군대는 보고서를 잘 만들어 윗사람한테 잘보이고, 사건·사고 없는 부대의 지휘관이 유능한 지휘관이 됩니다. 간부들은 병사들에게 꽃이나 심으라 하고, 병사들은 빨리 제대하기만을 바랍니다. 군대는 언론 보도가 어떻게 나갈까 노심초사해합니다. 사건·사고가 터지면 은폐부터 하고, 드러나면 그때서야 뒷수습하고 뒷북 대책 내놓기 바쁩니다. 관료화된 군대가 유사시 국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지 의심됩니다.
 
  어떻게 하면 위와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을까 고민해 봤습니다. 전시가 돼 피를 흘리면 저런 무의미한 것들이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피를 흘린 뒤에야 정신을 차릴 필요는 없습니다. 기회가 있을 때 변화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병사의 主敵은 간부”
 
국가의 부름을 받은 우리의 젊은이들은 한겨울에도 철책선을 지키고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고 합니다. 병사를 지휘 감독하는 간부의 자질과 의식이 향상돼야 합니다. 군에서 사건·사고가 터지는 가장 큰 이유는 부대를 지휘해야 할 해당 간부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책임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병사들로부터 ‘존경’도 받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 군 간부의 현실입니다. 병사들 사이에서는 ‘병사의 주적(主敵)은 간부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간부가 존경받는 풍토라면 어떻게 이런 말이 나왔겠습니까. 간부부터 병사들에게 존경을 받겠다는 자세로 군생활을 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존경하면, 존경하는 사람처럼 되고 싶은 게 사람입니다. 간부부터 솔선수범해 존경받는 간부가 되겠다는 심정으로 임해야 병사들이 따를 것입니다.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장수와 병사 그리고 조직의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같은 목표를 가지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우리 군에게 필요한 문구라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부름을 받은 우리 젊은이들은 이 시간에도 폭염과 혹한을 견디며 전방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고, 영해(領海)와 영공(領空)을 수호하며 우리의 안녕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진정한 관심을 갖고, 책임지려는 자세를 보일 때 제2의 임 병장, 윤 일병 사건의 재발을 막을 수 있습니다. 군대가 병사를 사랑하고 보호할 때 국민도 군대를 사랑하고 보호할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을 다룬 영화 <명량>이 화제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이순신과 같은 리더의 출현을 바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만사(萬事)는 인사(人事)’라고 했습니다. 이순신과 같은 리더가 오늘날 우리 군이 가진 병폐를 해소해 군대 다운 군대를 만드는 데 힘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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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상호    (2015-04-24) 찬성 : 91   반대 : 146
저 젊은 이의 지적에 100% 공감합니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못 담그는게 오늘날 우리 군입니다.
정치군인들의 양산으로 진정한 장군은 없습니다.
눈치보기의 달인과 해바라기들의 군지휘로 우리군은 호랑이가 아닌 야옹이로 변해버렸습니다.
변쩍이는 별을 달고 국회에 나와 젊은 국회의원들의 호통에 쩔쩔매는것들이 장군이라니...! 젊은 사관들이 환멸을 느끼고 전역하는 경우가 늘어난다고 합디다.
나라가 살려면 지휘관들이 정정당당해야하고 자기 소신을 굽히지않는 기개가 있어야 우리군이 살지않을까요
즉 안전사고가 무서워 훈련과 통제를 적당히 하는것부터 고처야 할겁니다.
그리고 국가는 바로 이런문제에서 군의 보호막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종북주의자들과 반민족적 붕당정객들로부터 말입니다.
  주용철    (2014-10-28) 찬성 : 103   반대 : 216
가슴에 와 닿네요,진정으로 우리나라와 국민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잘못을 지적하고 진정한 변화를 바라는 애절함.

20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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