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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진단

‘국방개혁 307계획’·‘軍 지휘구조 개편’, 이것이 핵심이다

‘훈련용 감독(참모총장)’, ‘경기용 감독(합참의장)’ 따로 두어야 하나?

글 : 김국헌  前 국방부 군비통제관·예비역 육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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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침된 천안함을 인양하는 과정에서도 군정·군령 2원화의 문제점은 그대로 노출됐다. 인양작업도 합참의 통제하에 이뤄졌다. 이것도 ‘작전’이라는 것이다. 해군참모총장은 인양현장에 있었으며, 실질적으로 인양의 전 과정을 통제했음에도, ‘지휘’가 아니라 ‘지원’하는 역할에 그쳤다.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인가?

무기체계 도입은 각군의 소요제기로부터 합참, 국방부를 거치는 의사결정에 많은 시간과 절차가 요구된다. 합참에 각군이 균형되게 보직돼야 한다는 요구(현재는 육·해·공군 2 대 1 대 1 비율)의 저변에는 각군의 작전요구성능(ROC)과 소요(所要)가, 이른바 특정군 위주의 합참에서 제동이 걸리는 데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불만이 깔려 있을 것이다.


⊙ 평시작전권 전환 때 ‘818계획’, 전시작전권 전환 때 ‘307계획’… ‘천안함 폭침’과는 무관
⊙ 군정·군령 2원화 폐해의 극치,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 군 지휘구조 문제점 노출
⊙ ‘원정군’ 美軍 본뜨다 비대해져 … 전투에만 전념하는 독일군 모델 검토해야

金國憲
⊙ 61세. 육군사관학교 졸업(28기). 서울대 철학과,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사학과,
    영국 런던대 킹스 칼리지 등 수학.
⊙ 국방부 군비통제관, 정책기획관 등 역임. 예비역 육군 소장.
⊙ 저서: 《국가전략의 이해》 《헌팅톤, 군인과 국가(공역)》.
UH-60헬기에서 피랍선박으로 공중강습하는 특수전여단(UDT/SEAL)대원들.
  국방개혁, 특히 군(軍) 상부 지휘구조 개편을 두고 군 내부와 예비역 장성들은 물론, 정치권과 국민들 사이에 논란이 뜨겁다. 결론부터 말하면, 국방부가 서두른 감이 있다.
 
  군에는 ‘지휘 참모 활동절차’라는 것이 있다. ‘임무-첩보제공-계획지침-참모 판단-지휘관 판단-명령작성-결재-하달-감독’이 그것이다. 지난 3월 ‘국방개혁 307계획’이라고 소개된 것은 ‘계획지침’이다.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은 국가안보점검총괄회의·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 등에서 보고를 받고, 이러한 계획지침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비역들은, 결론이 다 내려진 안(案)을 장관에게 주고, 장관은 이를 고스란히 받아서 시행만 하는 것으로 보아 국방부의 의사결정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고 오해하고 있다. 어쨌든 국회 입법과정을 거치기까지 아직도 토의와 개정의 여지(餘地)는 열려 있을 것이다. 때문에 모두들 냉정하게 ‘전쟁을 억제할 수 있는 군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군대’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국방개혁 307계획’ 논란의 와중에 ‘전투임무 중심의 군대’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군이 전쟁을 위해 준비하고, 전투를 본령(本領)으로 하고 있음은 기본이다. 무슨 전투 위주의 군대, 행정형 군대가 따로 있는가? 우리 군은 현재 2%가 부족하다. 전 세계를 돌아다녀 보면 한국군만한 군대도 흔치 않다. 당장 이 땅에서 함께 싸우는 주한미군이 한국군 장병들의 자질을 얼마나 부러워하고 있는가? 청해부대의 ‘아덴만 여명작전’은 ‘빈 라덴 제거작전’에 성공한 미(美)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 실(Navy SEAL) 못지않다. 국방개혁에 대한 관심과 논의는 우리 군에 대한 자부심과 군에 대한 사랑이 밑바탕에 깔려 있어야만 한다.
 
  1989년 ‘818계획’ 성안(成案)에 간여했던 필자는 1993년 21세기 국방개혁연구위원회에 참여했고, 1995년부터 2004년까지 15년에 걸쳐 국방부 정책실에서 국방부·합참·육해공 각군을 조감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이 기간 동안 강릉 잠수함 침투, 연평해전·서해교전 등에 대한 ‘상부보고서’를 주관했었기 때문에 ‘국방개혁 307계획’ 논란에 대해 비교적 객관적으로 알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때문에 국방개혁하는 것 아냐
 
지난 6월 1일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상부 지휘구조 개편 대토론회에서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참석자들과 함께 박수를 치고 있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최근 정부의 군지휘구조 개편 추진에 대해 전직 해·공군 참모총장 등 일부 예비역 장성들이 반발하면서 국방개혁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국방개혁 307계획’ 논란의 핵심인 상부구조의 개편을 집중적으로 조명할 필요가 있다. 소위 ‘통합군(統合軍)’이냐 ‘합동군(合同軍)’이냐로 알려져 있지만, 기본적으로 문제설정부터 잘못돼 있다. 현재 우리 군의 ‘합동군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생겨나서 어떻게 운영돼 왔는가를 살펴보자.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은 1990년 10월 우리 군제(軍制)를 ‘합동군제’로 전환했다. 창군 이래 획기적인 군제변경이었다. 그때까지 각군 참모총장은 군정(軍政)·군령(軍令)을 통합해 행사하고, 합참의장은 국방부장관에 대해 자문기능만 수행하는 ‘비통제형 합참의장제’였다. 현재의 합동군제는 국방부장관 예하의 합참의장이 군령(用兵)을, 각군 참모총장은 군정(養兵)을 담당하는 군정·군령 2원화체제다. 군정이란 군사력을 기르고 유지하는 기능을 말하는 것으로, 군수·전력증강·훈련·교육·동원·인사·예산 등을 가리킨다. 군령이란 군사력을 실제로 운용하는 기능으로, 작전·정보 등의 분야를 말한다.
 
  1994년 12월, ‘평시작전통제권’(정전시 작전통제권)이 한국군으로 전환됨에 따라 국방태세의 전면적 변환이 불가피하게 됐다. 이에 따라 합참의 강화가 급선무가 됐고, 일차적으로 ‘통제형 합참의장제’인 합동군제로 전환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합참의장은 군령에 대해 장관을 보좌하면서, 전투를 주임무로 하는 작전부대를 작전지휘하고, 합동작전을 위해 창설된 합동부대를 지휘하게 됐다.
 
  세계 각국은 자국의 역사적 배경, 정치제도, 안보상황 등에 맞는 지휘구조와 운용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어느 나라도 스스로 자국의 군제에 명칭을 부여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한국군의 군제발전 과정에서 편의상 이를 ‘합동군제’, ‘통합군제’로 구분하는 것이다. 합동군제는 육·해·공 3군 병립 기반 아래 합동참모본부와 각군 본부가 존속하는 체제다. 미국, 일본과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취하고 있다. 이에 반해 통합군제는 육·해·공 3군은 유지하지만, 각군 본부와 참모총장은 없고, 단일지휘관이 군정·군령을 통합해 지휘한다. 북한·중국과 러시아·폴란드 등 구(舊)공산권과 이스라엘·터키·인도네시아·대만 등이 통합군제를 취하고 있다.
 
  한국군은 합동군제로 20여 년을 지내 왔다. 2015년 전작권 전환을 앞두고 전반적인 국방태세를 재점검하는 가운데 군정, 군령이 이원화된 군 구조를 이대로 둬서는 안 되겠다는 자각이 깊어지게 됐고, ‘국방개혁 307계획’을 출범시킨 것이다. 흔히 천안함 사태를 두고 합동성을 강화하기 위해 이 문제가 제기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하나의 촉발요인은 되겠지만, 국방개혁의 근본적인 문제제기는 천안함 사태가 벌어지기 이전의 일인 것이다.
 
▣ 이명박 정부, ‘국방개혁 307계획’ 어떻게 추진하나?
 
  국군은 1949년 육·해·공 3군 병립체제를 형성했지만, 통합지휘와 조정을 담당하는 최고 군사기구를 갖지 못한 상황에서 6·25전쟁을 치렀다. 그후 1954년 5월 국군조직법에 따라 군령기관인 합동참모본부를 설치했으나, 군령에 대한 보좌기능만을 수행했을 뿐, 3군을 통제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1981년 합참은 ‘군구조연구위원회’를 만들어 ‘통합군’ 체제를 연구했고, 그해 8월 18일 ‘장기 국방태세 발전방향 연구계획’(일명 818계획)을 마련해 한국군의 대혁신 작업을 수행했다. ‘818계획’은 군사전략은 입체기동전 개념, 군사력 건설은 ‘하이-로 믹스 개념’, 군 구조는 ‘합동군제’를 기본으로 하는 국방참모총장제(이후 국회에서 국방참모총장제는 합참의장, 국방참모본부는 합참본부로 결정)로 결론을 내렸고, 1990년 8월 ‘국군조직법’이 공포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하지만 상부 지휘구조가 20년 동안 군령과 군정이 이원화된 상태로 운영되면서 조직이 비대화되고, 각군 본부가 행정 중심 군대로 변질돼 전투능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2004년 7월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윤광웅(尹光雄) 국방장관은 취임과 더불어 장기적 국방개혁안인 ‘국방개혁2020’으로 변화를 시도했지만,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을 겪으면서 또 다시 군 개혁의 문제가 부각됐다. 이명박 정부도 ‘국방개혁 2020’을 수정한 ‘국방개혁 307계획’을 전격적으로 시행했다. ‘국방개혁 307계획’은 총 73개 개혁과제가 포함돼 있고, 이 가운데 ‘군 상부 지휘구조 개편’이 핵심과제로 들어있다.
 
  ‘307계획’은 20년간 작전지휘와 행정이 분리 운영됨에 따른 비효율성을 개선하고, 2015년 전시작전권(전작권) 전환 때 한국군 주도의 전작권 지휘와 수행체계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다. ‘307계획’을 두고 해·공군 관계자들은 “합참 상부 지휘구조 개편이 사실상 육군 중심의 통합군을 만들겠다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그러나 국방부 신원식 정책기획관(육군 소장)은 “여러 곳에서 국방개혁에 관해 우려가 많지만, 보완하면서 고치고 있는 중”이라며 “2015년 전작권 전환 로드맵을 마지막으로 국방개혁이 잘 매듭지어질 것”이라고 했다.
 
  국방부는 6월 국회 법안통과를 거쳐 12월까지 ‘307계획’을 ‘국방개혁 기본계획 11-30’으로 명칭을 변경해 확정한다는 것이다. 개편안이 확정되면, 2012년 5월 합참과 육·해·공 각군 본부의 조직을 개편하고(1차 개편), 2012년 11월 작전지휘 계선에 각군 참모총장을 포함시킨다.
 
  2014년 12월, 각군 본부와 육·해·공 작전사령부(육군 1·3군사령부, 해·공 작전사령부)를 통합한다. 이것이 2차개편으로 상부 지휘구조는 완전히 통합되는 것이다. 국방부는 이를 토대로 2015년 12월까지 최종적으로 전작권 전환을 위한 임무수행 능력을 구축하고, 주한미군으로부터 전작권을 전환받는다는 계획이다.
 
  ‘통합군’이 아니라 ‘합동군제의 보강’
 
  현재 일부 현역과 예비역 장성 사이에 일고 있는 가장 큰 오해는 국방부에서 추진하는 개편이 통합군제로의 개편이 아니냐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아니다. 국방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것은 정확히 말해서 ‘합동군제의 보강’이다. 국방부 전체로서의 군정·군령의 일원화는 통합군으로 가는 것이지만, 각군 본부 차원에서 군정·군령의 일원화는 합동군제의 보강이라는 것이다. 먼저 통합군이란 무엇인가? 간단하다. 첫째, 각군 본부가 없다. 둘째, 각군의 군정·군령은 합참에서 통합한다.
 
  “통합군제는 공산주의 국가의 군제이고, 문민통제를 위태롭게 한다”는 일부의 주장도 정확한 지적이 아니다. 과거 소련과 오늘날의 중국·북한이 통합군제를 취하고 있지만, 문민통제(黨에 의한 통제)에는 문제가 없다. 오히려 미국보다도 문민통제가 철저하다.
 
  미국의 초대 국방장관 제임스 포레스털(James V. Forrestal)은 국방성 창설에 따른 육·해·공군의 반발과 갈등을 조정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다 우울증에 걸려 1949년 국방성 건물에서 투신 자살했다. 항공모함 ‘포레스털(CVA-59)’은 비운(悲運)의 장관을 추념해 붙인 것이다. 미국에서 국방총성 ‘펜타곤(Pentagon)’이 명실상부한 국방의 사령탑으로서 위상을 갖게 된 것은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S. McNamara) 장관에 의해 ‘기획계획 예산제도(PPBS)’가 확립되면서부터다.
 
  소련겵薩퉩북한의 국방부나 참모본부에서는 이런 일을 상상할 수도 없다. 국방장관은 군의 총수(總帥)이며, 참모총장은 제1국방차관 겸 참모총장이다. 이것은 현역군인이 국방장관이었을 때뿐만 아니라, 드미트리 우스티노프(Dmitry Fedorovich Ustinov) 등 민간인이 국방장관을 하게 된 이후에도 문제가 없었다. 이처럼 통합군이기 때문에 문민통제가 되지 않는다든가, 합동군이기 때문에 문민통제가 보장된다는 것은 피상적인 관찰이다.
 
  공산권 군대가 통합군인 것은 원조격인 소련이 통합군 체제이기 때문이다. 소련이 통합군인 것은 대륙국가로 해군이 상대적으로 저조한 상태에서 육군 중심의 참모본부로 군권(軍權)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스위스가 통합군인 것도 해군이 육군·공군과 비교해 극히 미미하거나 아예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 나라에서 문민통제가 흔들린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즉, 군제는 기본적으로 지정학적 요소와 그에 따른 전략적 고려의 산물(産物)로서, 통합군이든 합동군이든 적절한 선택이 있을 뿐이다. 고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이번의 상부 지휘구조 개편은 818의 대명제, 즉 군정·군령 2원화 체제에 대해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고, 이를 바꾸고자 하는 대전환이다. 따라서 일부에서 ‘818의 정신’ 등을 이야기하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방법 자체가 틀린 것이다.
 


 
  군정·군령 2원화 폐해의 극치,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
 
  그보다는 군정과 군령의 일원화, 정확하게 각군 본부 차원에서 ‘작전지휘’와 ‘작전지원’을 한꺼번에 하는 것이 그렇게 절실한가. 20여 년 동안 우리에게 익숙한 합동군제(양병은 각군 본부에서 하고, 용병은 합참이 책임지는 군제)를 허무는 것이 꼭 필요한가를 물어야 한다. 김관진(金寬鎭) 장관의 설명 방법이 간단하고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프로축구에서 훈련시키는 감독 따로 있고, 경기를 치르는 감독이 따로 있어서야 되겠냐”고 했다. 그의 설명이 과연 적실(適實)한 것인가를 하나하나 따져 보도록 하자.
 
  국방부안(案)은 군정·군령이 이원화돼 있는 현 체제에서는 각군 최고의 전문인력으로 구성된 각군 본부(각군 참모총장)가 작전지휘 계선에서 제외돼 있고, 각군 본부가 작전지원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정보·작전·조직 등을 별도로 보유하고 있어 인력 운용상 중복, 낭비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작전지휘권이 없는 각군 총장이 군사력 건설과 교육훈련(작전수행 방법)을 지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러한 문제점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각군의 작전사를 해체해 각군 본부와 통합하고, 합참의장-각군 참모총장-작전부대로 이어지는 일사불란한 작전 지휘체제를 유지함으로써, ‘싸우는 방법대로 편성·장비·훈련하고, 훈련한 대로 싸운다’는 개념을 구현하고, 절감된 인력으로 하부 전투부대를 보강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처럼 국방개혁의 본질은 명확히 ‘군정·군령의 일원화’에 지향돼 있다. 1996년 강릉 잠수함 공비침투 때 이미 ‘818’ 이후 군정·군령의 2원화의 문제는 절실하게 대두됐다.
 
  1996년 9월 18일 새벽 북한 공작원 25명을 태운 잠수함이 강릉시 안인진리 앞바다로 침투하면서 시작된 대침투 작전에서 당시 군은 연인원 150만여 명을 투입하는 대대적인 작전을 벌여 24명의 무장공비를 사살하고 1명을 생포했다. 우리 측도 민간인을 포함한 5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작전 기간 동안 약 2000여억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작전은 한미 연합작전도 아니었고, 육·해·공 합동작전도 아니었으며, 육군에게 익숙한 대(對)침투작전이었다. 그때 국방장관은 공군 출신의 이양호(李養鎬) 장관이었고, 합참의장은 한미연합사를 거친 김동진(金東鎭) 대장이었다. 공군 출신인 이양호 장관은 대통령으로부터 수시로 걸려오는 문의와 재촉에 제대로 대응하기가 어려웠고, 합참의장은 이러한 대통령과 장관을 상대하느라 작전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이 작전은 그냥 육군에 맡겼어야 했다. 당시 육군참모총장은 ‘작전의 대가(大家)’로 명성이 높은 윤용남(尹龍男) 대장이었다. 그러나 윤용남 총장은 작전지휘 계통에 있지 않은 위치에서 조언과 역할에 한계가 있었다. 당시에 이미 군정·군령 2원화 체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게 노정(露呈)돼 있었다. 그때 벌써 ‘이건 아니구나’ 하는 문제가 제기됐어야 했다. 작전이 종료되자, 군에 문외한(門外漢)인 김영삼(金泳三) 대통령도, 작전실패로 만신창이가 된 군 고위층도 아픈 상처를 건드리지 않고 어물쩍 넘어갔다. 오늘의 국방개혁은 벌써 그때 이뤄졌어야 했다.
 
 
  천안함 폭침으로 군정·군령 2원화의 문제점 또다시 제기
 
  천안함 폭침(爆沈) 사태 때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잠수함에 의한 기습공격은 불가항력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당한 것은 당한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해군 작전사령부 예하부대는 즉각 어뢰(魚雷)에 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경계와 작전에 실패했다는 추궁이 무서워 ‘결정적 단서(smoking gun)’가 나오기까지 다들 입을 꼭 다물고 있었을 것이다. 멀쩡한 군함이 항해 중에 좌초(坐礁)됐을 수도 있다거나, 6·25 때 부설한 기뢰에 부딪힌 것일 수도 있다는 ‘황당한 스토리’들이 돌아다니고 있을 때도 모두 함구하고 있었다.
 
  국방부장관이나 합참의장이 해군 출신이 아니어도 북한 잠수함에 의한 공격이라는 것을 직감하고, 이를 대통령에 보고하고 필요한 조치를 건의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감각과 자신이 부족하니 청와대에서 안보회의를 한답시고 몇 시간씩 주춤거리고 있었다는 것이 진짜 문제인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국방장관의 위치와 역할은 특히 중요하다. 왜 그런 것인지는 누누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외교부 출신이 외교와 안보를 총괄하는 외교안보수석을 하고 있는 것이 이럴 때 문제가 된다. 노태우·김영삼 정부에서 외교안보수석을 역임한 김종휘(金宗輝)씨, 김대중(金大中) 정부에서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임동원(林東源)씨는 이를 아우를 수 있었으나, 이런 재목을 구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해군 작전사령부와 합참 작전본부에서 최초 보고가 지연된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군 고위층이 최초의 혼란에서 벗어나고서도 판단과 대처가 그토록 어수룩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더구나 남북정상회담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한 대통령을 의식해 즉각 이러한 판단과 조치를 건의하지 않았다면, 더욱 큰일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천안함 사태에서 “예단하지 말라”는 대통령의 한마디가 사실상의 ‘통수지침(統帥指針)’으로 작용했다.
 
  이것은 대통령의 군 통수상의 근본적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장병들은 기합을 주고 교육을 하면 다잡을 수 있다. 그러나 최고위 지휘부의 어수룩한 것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영어에 ‘There is no cure for fools’(바보들에게는 약도 없다)는 말도 있고, 손자병법(孫子兵法) 시계(始計)편에는 “장수는 지모·신망·인애·용기·위엄을 갖춘 사람이라야 한다(將者, 智信仁勇嚴也)”며 장수의 덕목 중 ‘지모(智)’를 으뜸으로 꼽고 있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온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천안함 사건은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 때 이미 제기됐던 문제를 다시금 짚어 보게 했고, ‘818’ 이래 익숙하던 군정·군령의 2원화가 우리 실정에 맞는 것이 아니라는 반성이 절실해진 것이다. 세상에 어느 나라 군대가 함정이 폭침되었는데도, 해군본부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판정이 나올 수 있는가? 군에 대해 문외한인 감사원은 오직 법령과 규정에 입각해 감사를 했고, ‘818 합동군제’의 태생적 문제와 한계를 예리하게 지적한 것이다.
 
  폭침된 천안함을 인양하는 과정에서도 군정·군령 2원화의 문제점은 그대로 노출됐다. 이것도 합참의 통제하에 이뤄졌다. 그것도 ‘작전’이라는 것이다. 해군참모총장은 인양현장에 있었으며, 실질적으로 인양의 전 과정을 통제했음에도, 엄격하게 말하자면 ‘지휘’가 아니라 ‘지원’하는 역할에 그쳤다.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인가. 해군의 일은 해군에 맡기면 되는 것이다. ‘818’의 불합리와 모순이 천안함 사건처럼 적나라하게 드러난 적이 없다. 이런 희비극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
 
 
  한미연합사에 근무하지 않고도 별 다는 장군들
 
  현재 우리 군은 2원화가 아니라 3원화돼 있다. 육군 야전군사령관의 방에 가면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한미연합사령관’ 등 3명의 상관(上官) 사진이 걸려 있고, 그 위에 국방장관의 사진이 있다. 합참이 평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한다고 하나, 위기관리·정보·작전계획·연합훈련·군수·상호운용성 등 6개항은 한미 간 합의에 따른 위임(CODA갅ombined Operation Delegation of Authority)에 따라 연합사가 행사한다.
 
  때문에 연합사의 존재는 한국군에 압도적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평시작전통제권이 우리에게 돌아올 때까지 각군 본부는 물론, 합참에서도 독자적 ‘전쟁지도’와 ‘작전지휘’에 대한 노력은 ‘제일의적(第一義的)’인 것이 되지 못했다. 평시작전통제권이 전환된 이후에도 한미연합사에 의존하면서 이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다. 해·공군은 평소에 미군과 연합훈련이 많고 연합사 근무기회도 많지만, 육군은 연합사 근무를 한 번도 하지 않고도 장군이 되고, 중장·대장까지 진급한다. 연합사 근무는 합참 근무와 불가분(不可分)으로 연결돼야 하는데, 각군 본부의 인사는 이를 거의 반영하지 않고 있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전작권 전환 이후 새롭게 시도되는 ‘공동방위체제’가 현재의 연합방위체제와 같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겠는가에 대해서는 예비역들 가운데 걱정이 많다. 국방부에서 ‘전작권전환추진단’을 두어 미군과 협의하고 하나하나 챙기며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행인 것은 미군(美軍)은 연합사 체제를 바꿀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한국 방위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연합사 해체 이후에도 공군은 ‘한미 연합공군 구성군 사령부’를 그대로 유지해 주한 미 7공군사령관이 주도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 한 예다. 샤프 한미연합사령관이 한국군의 군구조 개편안을 받아보고 “이해하고, 동의한다”고 한 것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修辭)가 아니다. 규정에 어긋나는 일은 사정없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미국사람들이다. 특히 지난 60년 동안 한국 방위를 책임진 주한미군 사령관들은 이런 일에 철두철미하다.
 
  ‘818’ 이전까지는 국방부의 한 부서에 불과했던 합참이 전작권 전환 이후 한반도 작전의 최고사령부로서 위상을 갖게 된 것이다. 이것에 정신이 팔려 ‘합참이 과연 전쟁지도와 작전지휘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상부구조인가’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다는 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막상 전작권 전환이 2015년으로 다가오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번쩍 들 게 만든 것이 천안함 폭침 사건이다. 이처럼 사실상 3원화돼 있는 현재의 상부구조를 2015년 전작권 전환을 계기로 일원화하고자 하는 것이 이번 국방개혁의 목표인 것이다.
 
 
  車圭憲 육군참모차장, “육본 인원을 30% 줄이라” 지시
 
1996년 9월 강릉 해안에 침투한 잠수함. 818 국방개혁 이후 군정·군령의 2원화의 문제는 이때 절실하게 대두됐다.

  장군 숫자를 줄이는 것을 두고도 논란이 일고 있다. 국방부는 효율적인 군 조직을 만들기 위해 2020년까지 장군 정원의 15%인 약 60명을 줄일 것이라고 한다. 장군 숫자는 1960년 240여 명이었다가, 1979년 440명으로 증가했고, 1986년 380여 명으로 감소했다가, 1988년 440여 명으로 늘어나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장군 직위(職位)에는 모두 논리와 명분이 있는 것이다. “일정 비율을 할당하고 이에 맞춰 줄이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가 아닌가”라는 목소리도 이해는 가지만, 이번 기회에 이 문제를 검토해 볼 가치는 분명히 있다.
 
  어느 조직이건 한번 만들어지면 그 자체로 팽창·확대의 속성을 가진다(파킨슨의 법칙). 우리 군의 역사를 돌이켜보자. 이승만(李承晩) 대통령 당시 12년 동안 우리 군의 대장은 오직 육군에 딱 세 분만이 있었다. 백선엽(白善燁)·정일권(丁一權)·이형근(李亨根) 대장이 그들이다. 해·공군참모총장은 모두 중장이었다. 이승만 박사에게는 ‘대장’은 단순히 군의 계급이 아니라, ‘전군(全軍)의 총수’라는 인식이 강했다. 특히 유엔군사령관이 국군에 대한 작전권을 갖고 있는 마당에 대장은 육군참모총장 하나면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승만 정부의 마지막 육군참모총장인 송요찬(宋堯讚) 장군도 중장이었고, 제2공화국에서 최영희(崔榮喜)·최경록(崔慶綠)·장도영(張都暎) 참모총장도 모두 중장이었다.
 
  그러나 60만 대군을 가진 나라에서 이러한 계급구조가 정상적인 것은 아니었다. 세계적으로 일반적인 추세는 사단장은 소장, 군단장은 중장, 군사령관은 대장, 참모총장과 합참의장은 대장이다. 5·16 이후 ‘군인사법’이 제정되면서 이러한 계급구조는 차차 정비돼 갔다. 그러면서도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은 계급 상향에는 조심스러웠다. 베트남전의 영웅 채명신(蔡命新) 장군과 ‘율곡계획’을 기안한 당대 최고의 전략가 이병형(李秉衡) 장군이 모두 중장으로 군을 떠났다.
 
  군의 계급이 상향되기 시작한 것은 다분히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였다. 장성 숫자가 급속히 늘어난 것은 주로 유신과 5공 초기이며, 현재는 30년 가까이 이 체제로 지내 왔다. 한국군의 규모에 비추어 보아 현재 장성의 숫자는 현저하게 비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북한은 김정일(金正日) 체제가 굳어질 때마다 장령 숫자가 늘어나 지금은 차수·대장·상장 등 최고위급만 해도 수십 명에 달한다. 이들에게는 사실상 정년이 없다. 80대, 90대의 장령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다. 이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물론, 우리가 이를 본보기로 삼을 필요도 없다.
 
  이제는 박정희 대통령 초기 시절을 참조해 장성(將星) 직위를 하나하나 재점검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 단, 이 문제는 현역군인이나 국방부에 맡겨서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군의 구조와 정서를 잘 모르는 일반인, 감사원이나 행정안전부, 행정학자에게 맡길 일도 아니다. 군을 높은 데서 조감하면서 현직과도 일정한 거리를 둘 수 있는 전직 국방장관, 합참의장, 참모총장들에게 가려내라고 하면 최선일 것이다. 통수권자는 이들의 조언을 듣고 판단해 지시를 내리면 되는 것이다. 무슨 위원회니, 연구검토니 하며 시간을 끈다고 될 일이 아니다.
 
 
  합참은 自軍 이익 관철시키는 곳 아니다
 
2010년 4월 24일 합참의 통제로 천안함 함수 부분을 인양하고 있다. 해군참모총장이 인양작업을 주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작전’이라는 명분으로 해군참모총장은 ‘지원’하는 역할에 그쳤다.
  국방부에서 최근 장군 자리 90개를 없애기로 했다가 30개 정도는 부군단장·부사단장으로 구제하고 60개 직위를 줄이는 것으로 조정했다고 한다. 이런 시행착오도 국방부의 위상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것이다. 애초부터 판단을 정확히 하든지, 아니면 통수권자에 일단 보고하고 국민에게 발표했으면 그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 5공 초기 신군부의 실세인 차규헌(車圭憲) 장군이 육군참모차장으로서 “육군본부의 인원을 30%를 줄이라”는 지시를 한 적이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제살 베기’인 어려운 개혁이었지만, 차 장군의 단호한 성격을 아는 참모들은 이를 그대로 실행할 수밖에 없었다. 구조개혁은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합참의 의사결정 체제도 논란의 한 부분이다. 이를 제대로 논의하기 위해서는 ‘합동참모회의’가 가진 법적지위와 권한,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합동참모회의는 하나의 단일체로서 국가통수 계통에 ‘군사적 조언’을 하는 것이 본령이다. 최선의 건의안을 도출하기 위해 건설적인 토의가 중요한 것이지, 자기 군의 의사와 이익을 관철시키려고 서로 다투는 곳이 아니다.
 
  국방부 훈령에 의하면, 합동참모회의는 ‘1인1표제’와 ‘전원일치제’를 택한다. 부결됐을 때는 1차에 한해 재심의(再審議) 표결하되, 장관 결심이 필요한 사항은 부결사유를 첨부해 장관에게 보고한다. ‘국방부 훈령’이라는 것은 장관이 ‘합동참모회의는 이렇게 운영하라’는 주문의 성격을 갖는다는 뜻이다. ‘전원일치제’는 합참이 동일체로서 최선의 단일안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에는 소수의견으로 장관과 대통령에게 보고하면 되는 것이지, 그들의 타협으로 결정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문민통제의 본질은 국방 의사결정을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과 그 대리자인 국방장관이 주도한다는 것이다. “쿠데타가 일어날 수도 있느냐”가 본질이 아니다. 그런 일은 실현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이런 차원의 문제제기는 군을 잘 모르는 민간인을 자극할 수는 있으나,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군무회의’나 ‘합동참모회의’는 기본적으로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에 대한 자문기관이다. 장관 중에는 재임 중 군무회의를 한 번도 하지 않은 장관도 있다. 국방장관은 ‘합의제’가 아닌 ‘독임제(獨任制)’ 행정관청으로서 그 권한과 책임은 군무회의나 합동참모회의에 미룰 수 없다.
 
  각군 총장은 서면으로 동의, 부동의를 표시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총장은 회의 때 가만히 앉아 있다가 합참 실무부장이 가지고 온 문서에서 다른 총장이 서명할 자리에 (잘못) 서명하는 방법으로 문서를 ‘사보타주’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전략개념을 다룬 ‘전략기획서’보다도 구체적인 무기도입과 관련한 소요(所要)를 다루는 ‘합동전략목표기획서(JSOP)’에 훨씬 큰 관심을 갖는다. 각군 참모총장이 작전계선상(上)에 들어가면, 합동참모회의가 유명무실화될까 우려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러나 국방부안은 ‘합동참모회의는 기존과 같이 운용된다’는 것을 못 박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골드워터-니컬스 법’
 
골드워터-니컬스 법안의 주역인 배리 골드워터 상원 군사위원장의 생전 모습. 그는 빌 니컬스 하원의원과 함께 법안을 통과시켜 미군이 현재의 합동성을 발휘하는 토대를 만들었다.
  국방개혁에 국가안보점검총괄회의나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를 활용하는 것도 많은 주의를 요한다. 군인들은 대체로 군사전문가를 자처하는 학자들을 ‘armchair strategist(전문분야 이외의 일에 대해 아는 체하는 사람)’라 경멸한다. 미국의 미래석학 허먼 칸(Herman Kahn)이나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 같은 학자들이 전략연구를 하는 분야와 차원은 따로 있다. 우리의 국방현실에 최고의 전문가는 이러한 학자와 관료 군인들을 아울러 운용해 국방을 책임지고 경영해 본 국방장관 이상이 있을 수 없다.
 
  김관진 장관이 예비역 장성들의 질타를 받은 것도, ‘책상머리 전략가들이 만들어 놓은 안(案)을 그대로 시행하려 하지 않느냐’는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필자는 그보다는 지난 정부의 ‘국방개혁 2020’으로부터 2015년 전작권 전환을 앞두고 국방태세 전반에 걸친 점검과 연구를 해 오던 것을 이번 기회에 집약하려는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미군들이 획기적으로 합동성 강화를 이룩한 ‘골드워터-니컬스 법안’이 군 개혁에서도 만병통치약처럼 회자되고 있다. 우선, ‘골드워터-니컬스 법안’의 내용을 정확히 아는 것이 필요하다. 골드워터-니컬스 법안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던 상황 말이다. 당시 미군의 상태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했다. 그레나다에 건설 중인 비행장이 소련기지로 이용될 것을 우려한 레이건 행정부는 1983년 10월 25일 그레나다를 침공했다. 작전 중인 미 육군 소속 헬리콥터들은 해군의 반대로 함정에 착륙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보다 못한 미 의회가 1986년 골드워터-니컬스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상원군사위원회 위원장 배리 골드워터 (Barry Goldwater) 의원과 하원 빌 니컬스(Bill Nichols) 의원이 중심이 돼 발의한 것으로, 합참의장 권한 강화, 합동참모 특기 신설, 합동전문교육 실시 등 합참조직을 파격적으로 강화시키는 내용이었다. 각군의 반대는 컸다. 의회는 합동전을 이끌 합참 조직과 인원 육성을 위해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미군이 현재의 합동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단단한 토대를 마련했고, 1990년 걸프전을 이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레나다 작전 등에서 미군이 합동성의 강화가 절실하다고 반성하게 된 것은 작전만이 아니라, 군사력 건설에 대한 시스템상의 허점이었다. 그중에서도 누구나 알면서도 지적하지 못하고 흘러 왔던 맹점은 그때까지도 육·해·공군이 무기체계를 따로 개발했다는 것이었다.
 
 
  합참 균형 보직을 주장하는 진짜 이유
 
1990년 11월, 미 기병1사단 병력들이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발발한 걸프전에 투입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사막을 행군하고 있다. 미국은 골드워터-니컬스 법으로 군을 개혁하는 데 성공해 걸프전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미국에서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군과 대규모 방위산업체들의 상호 의존체제)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것인가는 일반국민의 상상을 초월한다. 국회의원들도 방산업체가 소재한 지역의 경제를 위해 예산획득 또는 해외구매 유치를 위해 뛰고 있다. 어차피 이것은 정치 현실이기는 하나 문제는 그 정도이다. 이를 합동성이라는 기준과 관점에서 다시 보자는 비판과 자성이 일게 된 것이 골드워터-니컬스 법안의 중요한 의의다.
 
  미국의 국방조직은 우리보다 훨씬 방대하다. 국방성 안에 육·해·공군성(省)이 별개로 있으며, 다시 각군 성 안에 각군 본부가 독자 구조를 가지고 있다. 육군성의 조달담당 부서와 육군본부의 조달담당 부서가 병존한다. 국방부와 합참에도 조달담당 부서가 별개로 있다.
 
  이러한 서로 중첩되는 기능과 부서를 경제성과 효율성의 기준하에서 개선하려는 움직임은 역대 대통령과 국방장관에 의해 꾸준히 지속되어 왔다. 케네디와 맥나마라, 레이건과 와인버거, 부시와 럼즈펠드 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그러나 혁신은 좀처럼 쉽지 않았고, 그레나다 등에서 이런 문제가 만천하에 발가벗겨지고 만 것이다. 골드워터-니컬스 법안은 이런 맥락에서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도 합동성의 강화는 합참 차원의 과제만이 아니라 국방업무의 전반에 걸쳐 계획되고 추진돼야 한다. 무기체계 도입도 각군 이기주의로 흐르는 것이 아닌지, 미군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율곡사업이 시작된 1974년부터 우리도 ‘군산복합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율곡감사’는 이 문제를 들여다보게 된 효시(嚆矢)다. 박정희 대통령 당시, 합참의장이 아니라 합참본부장이 율곡사업 집행을 책임졌고, 감사도 특명검열단이 대통령에 직보했다. 이것이 ‘특명’검열단인 이유다.
 
  무기체계 도입은 각군의 소요제기로부터 합참, 국방부를 거치는 의사결정에 많은 시간과 절차가 요구된다. 합참에 각군이 균형되게 보직돼야 한다는 요구(현재는 육·해·공군 2대1대1 비율)의 저변에는 각군의 작전요구성능(ROC)과 소요(所要)가 이른바, 특정군 위주의 합참에서 제동이 걸리는 데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불만이 깔려 있을 것이다.
 
 
  경영능력과 리더십이 검증된 ‘문민장관’을 기대
 
베트남 전쟁이 벌어지고 있던 1964년 8월, 로버트 맥나마라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 기자회견에서 베트남 일대 지도 위에서 통킹만을 가리키고 있다. 맥나마라·와인버거·럼즈펠드·게이츠와 같은 경영능력과 리더십이 검증된 민간인을 국방장관으로 기용하는 것이 국방부 문민화의 핵심이다.
  이 문제를 해결 또는 완화하기 위해 국방부의 문민화, 특히 문민 국방장관의 등장이 절실히 요구된다. 여기에서 문민화의 정확한 개념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군인이 아닌 것이 기준이 아니라, 맥나마라·와인버거·럼즈펠드·게이츠와 같은 경영능력과 리더십이 검증된 인물을 국방장관으로 기용하는 것이 국방부 문민화의 핵심이다. 최고급의 인재를 국방부장관으로 발탁한다는 미국에서도 역대 국방장관의 절반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일례로 레스 에스핀 장관은 하원군사위원장을 오래 한 인물이었지만, 국방장관으로서는 미치지 못해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국방장관은 제너럴리스트(generalist)여야 한다. 각 분야의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는 골라서 쓰면 된다. 그러나 스페셜리스트가 제너럴리스트를 대체할 수는 없다. 맥나마라나 럼즈펠드는 일류 기업에서 최고의 전문가를 발굴하고 활용할 수 있었던 최고급 리더였다. 국방부장관은 이러한 리더여야 한다.
 
  굳이 우리의 예를 들자고 하면, 정보화를 선도하고 역대 정권에서 능력이 검증된 오명(吳明) 전 과기부장관 같은 분을 들고 싶다. 대통령은 국방장관 하나를 상대한다고 하기보다 ‘통수부의 장(長)’으로서 국방장관, 합참의장, 육·해·공 참모총장, 그리고 안보보좌관으로 이루어지는 ‘군사내각(military cabinet)’를 거느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러한 개념에서 군 수뇌부를 고르고 운영해야 한다,
 
  차관은 국방부 내부에 정통한 인재를 골라야 한다. 실제 일은 내부의 관료들 몫이기 때문이다. 차관은 이들을 통솔하는 관료의 우두머리며, 장관의 참모장이다. 군에서나 기업에서나 참모장을 고르는 것은 지휘관과 CEO의 고유의 몫이다. 김영삼 정부 시절, 국방장관 자리에 국방업무에 정통한 권영해(權寧海) 국방차관을 발탁하면서, 전력증강회의를 주재해야 하는 차관에는 “전차와 장갑차가 어떻게 다르냐”를 묻는 재무부차관 출신을 기용한 인사는 참으로 졸작이었다. 대통령이 할 일은 장관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 장관이 데리고 쓸 인재를 적절히 골라 주는 일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합참의장은 서열과 출신을 배제해야
 
  과거에는 차관 이하 차관보, 국장들을 사실상 장관이 건의해 거의 그대로 임명했다. 최근 10여 년 동안 청와대에서 국장까지 검증한다고 하고 있는데, 이는 심히 우려스럽다. 군인과 공무원들이 대선(大選) 캠프에 선을 대는 데 정신이 팔리니 업무가 제대로 될 까닭이 없다. 군인과 공무원들은 수십 년 동안 같이 성장하고 지내 왔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가장 잘 안다.
 
  국방부 문민화는 이런 기본을 제대로 지켜 국방을 끌고 나갈 장·차관과 공무원을 선발하고 기용하는 데서부터 이뤄져야 한다. 국방부를 개혁하겠다고 대통령의 특지(特指)를 받고 들어간 차관(장수만 전 차관)이 장관과 갈등을 일으킨 것은 너무도 어이없는 사태이다. 국방부가 아니더라도 차관이 장관을 넘어 청와대를 직접 상대한다는 것은 지휘계통 문란이다. 이는 조직사회에서 절대로 있어서는 안될 금기다. 이런 사람을 다시 방위사업청장으로 기용했지만 결과는 역시 참담하지 않았는가.
 
  합참의장을 고르는 데에도 지역균형 배분이나 육·해·공군 순환 등을 먼저 고려할 일이 아니다. 장관과 더불어 일할 수 있고, 문민장관을 군사적 측면에서 확고하고 능숙하게 보좌할 수 있는 장재(將材)를 골라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차기 합참의장 인선이 놀랍지 않은가. 루스벨트 대통령이 조지 마셜 장군을 육참총장으로 선택하고, 부시 대통령이 콜린 파월을 합참의장으로 발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각군 참모총장들은 어느 정도 서열과 출신과 지역 등을 감안해 균형배치를 고려할 수도 있다.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참모장이며 전군을 작전지휘하는 합참의장은 철저하게 능력 위주로 골라야 한다.
 
  국방장관은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대리해 군을 일상적으로 지휘한다. 국방장관 주변을 청와대 참모들로 에워싸고 일일이 간섭하는 것은 대통령 자신이 스스로의 손발을 묶는 어리석은 처사다. 지휘계통(line)과 참모(staff)를 적절히 역할분담해 운용하는 것은 조직운용의 기본이다. 정주영(鄭周永)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현대건설 사장과 회장 비서실장을 어떻게 운용했는지 상기해 보라. 이병철(李秉喆) 전 삼성그룹 회장의 용인 철학과 전략을 보라. 최종 책임은 결국 지휘계통(line)이 지는 것이다. 책임을 지는 사람에게 힘을 실어 주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원정군’ 美軍 본뜨다 비대해져
 
2차대전 후 전혀 새롭게 출발한 독일군은 군의 건설과 지원업무는 대부분 민간에 이양하고 오로지 전투에만 전념하는 군대다. 한 독일군 병사가 독일 전차 ‘레오파드 2A6’에 장착된 120mm 포를 점검하고 있다.
  군 병력을 2030년까지 50만으로 줄이는 것도 더 정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앞으로 5~10년이 한반도 안보와 평화에서 절체절명의 시기라는 것은 내외 전문가들이 모두 공감하고 있다. 그러한 시기에 병력을 줄인다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이다. 2020년, 2030년에는 병력을 대폭 삭감할 수 있는 때가 올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다. 안보상황이 단선적(單線的)으로 변하지 않고 요동을 칠 텐데, 5개년 계획 짜듯 병력감축 계획을 짠다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새로운 군을 구상하기 위해 2차대전 후 전혀 새롭게 출발한 독일군을 보다 깊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 독일군은 오로지 전투에만 전념하도록 돼 있었다. 1950년대 49만5000명의 정원, 육군의 4개 군단, 12개 사단, 36개 여단 구조는 통일전까지 그대로 유지됐다.
 
  여단은 사단의 축소판으로 만들었지만, 연대급인 미국과 영국의 여단과는 차원이 달랐다. 즉, 독일군은 짧은 시간 내에 36개 사단으로 증강될 수 있는 체제였다. 이는 1차대전 후 독일의 재군비를 주도한 한스 폰 젝트(Hans von Seeckt)의 재군비 준비 그대로였다. 이 병력은 온전히 전투를 위한 전력이었다. 군의 건설과 지원업무는 대부분 민간인력의 몫이었다. 자기 영토 내에서 싸우는 독일군은 여러모로 미군과 다르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원정군’이다. 모든 것을 자체적으로 해결한다. 한국군도 이를 본뜨다 보니 비대해졌다. 이제는 우리 군도 의료, 보급, 교육 등 많은 부분은 민간을 활용할 수 있다. 군인은 전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고, 꼭 군인이 하지 않아도 될 수 있는 일은 민간인력을 활용해야 한다. 우리도 앞으로는 이러한 큰 그림하에 국방조직을 발전시키는 혁신적 국방개혁을 해야 한다.
 
 
  권한과 책임의 위임이 잘 이뤄져야
 
  “합참의장의 업무가 과도하지 않은가”라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사실은 현재가 과중하다. 합참의장은 웬만한 일은 각군 총장에게 위임하고 대통령과 장관에 대한 군령보좌와 동맹군과의 협조와 전군차원의 전쟁기획과 작전지휘에 몰두해야 한다. 전비태세 검열도 각군 총장이 책임지고 하면 된다. 공군 비행단의 출격대기 태세를 합참이 신경쓸 일이 무엇인가.
 
  한국군의 큰 병폐와 약점은 권한과 책임의 위임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전방 초소에서 일어난 인명사고의 책임을 물어 사단장을 자른다면, 사단장이 결국은 중대장 대대장 노릇을 하게 된다. 사단장 비행단장 함대사령관이 할 일들을 장관 의장 총장이 챙기고 있다. 이제는 의장과 총장이 역할분담을 해야 한다.
 
  상부 지휘구조 개편이 국방개혁의 전부인 것 같은 분위기다. 군의 곳곳을 성찰해 보면 미흡한 곳이 한둘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개선이 시급한 분야는 하부구조의 보강이다. 육군 같으면 전술의 기본단위인 대대의 전투력을 보강하는 것이다.
 
  정원은 제한돼 있는데 사·여단을 증·창설하다 보니 각급 제대가 완전성이 부족한 점이 많은 채로 상당 기간 지내 왔다. 단위부대의 전투력을 충실하게 해 주는 것이 우선이다. 그중에서도 보병대대 연대의 소화기·중화기·곡사화기·방탄복 등을 개선하는 문제가 급하다. 최근 사고에서도 나타났지만, 군 의료인력의 보강도 군만이 아니라 범(汎)정부, 사회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 할 초미의 과제다.
 
  국방개혁의 과제와 방향을 일반 국민이 다 알 필요는 없다. 대통령이 국민의 위임을 받아 소명감을 가지고 해 나가면서 국민의 이해와 동의를 구하면 되는 것이다. 국민은 자제를 군에 보내고 세금을 부담하며 불편을 견뎌야 할 이유를 알아야 할 당연한 권리가 있다.
 
  국방개혁은 국방부장관에게만 맡겨서 될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 전 과정에 참여해서 정확한 지침을 주고, 상황판단을 같이 하면서, 집행을 감독하고 최종결과를 도출해야 할 권한과 책임이 있다.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 언론, 시민단체도 같이 참여해야 한다. 국방개혁은 대통령, 정치권, 국민 모두의 관심과 참여속에서만 온전히 성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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