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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서울 불바다’ 위협을 보며 - 대한민국은 과연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인가

히틀러의 ‘배신’을 선물로 받은 체임벌린 수상, 金正日의 ‘핵실험’과 ‘천안함 습격’을 선물로 받은 좌파 대통령들

글 : 허남성  국방大 명예교수·한국위기관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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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가가 전쟁을 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결연한 의지와 충만한 尙武 정신으로 뭉친 지도층과 국민이다. 둘째는 잘 준비된 군대, 셋째는 능력 있고 믿을 만한 同盟이다.

⊙ 전쟁은 전쟁을 무릅쓸 각오가 돼 있어야 막을 수 있다
⊙ 아이젠하워 행정부, 기술군 위주의 ‘뉴룩(New Look)’ 정책으로 베트남전 실패
⊙ ‘자주국방’과 ‘자력국방’은 다른 개념… 가장 현명한 자주국방은 능력 있고 믿을 만한
    동맹의 힘을 보태는 것

허남성
⊙ 1947년 출생
⊙ 춘천고, 육사 졸업(26기),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미 오하이오주립대 대학원 석·박사,
    국방부 정책전문위원·국방대 교수부장 역임.
남북장성급군사회담 부속합의서에 따라 2004년 6월 16일 서부전선 무력부대 오두산전망대에서 군인들이 대북선전용 대형 확성기를 철거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6월 12일 인민군 총참모부의 ‘중대포고’를 통해 “(남측의 대북 확성기를) 흔적 없이 청산해 버리기 위한 전면적 군사 타격행동에 진입하게 될 것”이라며 “군사적 타격은 서울의 불바다까지 내다본 무자비한 타격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위협했다.
 
  지난달 24일 남측의 대북 심리전 수단을 ‘직접 조준 격파사격’하겠다고 나선 데 이은 2차 협박이다. 북한이 ‘서울 불바다’ 협박을 꺼내든 것은 1994년 이후 16년 만이다.
 
  공교롭게도 군 당국이 천안함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 발표 이후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대북(對北) 심리전이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6월 13일 군 당국은 강력한 대북 심리전 수단인 전단 살포나 확성기 방송, 전광판 운영 등을 설치비용 등의 이유를 들어 재검토하기로 했다.
 
  김태영(金泰榮) 국방장관은 지난 6월 11일 국회 천안함 특위에 출석해 확성기를 활용한 대북방송 재개 시기와 관련, “한국과 미국 모두가 유엔 안보리 조치가 끝나고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 해 홀딩(holding·보류)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 강력히 반발하자 정부와 군 당국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형국이다.
 
 
  ‘휴지조각’ 하나 들고 개선장군처럼
 
뮌헨협정의 네 당사자들. 왼쪽부터 체임벌린 영국 수상, 달라디에 프랑스 총리, 히틀러 독일 수상, 무솔리니 이탈리아 수상.
  4세기 무렵, 로마의 군사전략가 베게티우스(Flavius Vegetius)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고 했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상무정신이 뛰어난 시민들로 구성됐던 로마군도 베게티우스 당대(當代)에 이르자 변방(邊方)의 속주민(屬州民)들이나 용병들이 주류를 이룬 오합지졸(烏合之卒) 군대로 전락했고, ‘팍스 로마나(Pax Romana)’의 굳건했던 기반도 크게 요동쳤다.
 
  로마의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운 나머지 베게티우스는 외롭게 외쳤지만, 로마 시민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결국 멸망의 길로 내달렸다. 로마는 더 이상 과거처럼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국가가 아니었던 것이다.
 
  1930년대, ‘유화주의(appeasement policy)’에 사로잡혔던 영국과 프랑스는 히틀러의 집요하고도 치밀한 침략의도를 알아채지 못했다.
 
  1933년 1월, 독일 수상이 된 히틀러는 제1차대전 패전의 굴레로 씌워졌던 가혹한 베르사유 조약의 군비제한 조항을 1935년 3월 일방적으로 폐기하고, 군비(軍備) 확충에 착수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비록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었으나, 막대한 인적·물적 손실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때마침 몰아닥친 세계 대공황으로 인한 국내의 경제·정치적 혼란 때문에 히틀러의 도발적 조치를 묵과했다. “평화를 위해 자제하겠노라”고 선언했을 뿐이었다.
 
  계속해서 군비를 쌓아가던 독일은 1937년 이탈리아·일본과 함께 3국동맹(Axis Power)을 맺었고, 이듬해 3월 오스트리아를 합병했다. 그로부터 6개월 후인 1938년 9월 히틀러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데텐란트(Sudetenland) 지역을 점령했다. 그 지역에 살고 있던 300만명의 게르만인들을 해방시킨다는 명분이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강하게 반발했다. 히틀러는 오히려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논의하자”면서 영국 수상 체임벌린과 프랑스 총리 달라디에를 뮌헨으로 불러들였다. 두고두고 역사에서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이른바 ‘뮌헨회담’이다. 히틀러는 “수데텐란트의 독일 할양(割讓)에 영국과 프랑스가 동의해 준다면 더 이상 침략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화(慘禍)에 진저리를 쳤던 영·불 국민들은 수데텐란트 사건이 유럽을 또다시 전쟁으로 몰고 갈 것을 우려해 ‘평화’를 외쳤다. 1938년 9월 30일, 히틀러의 서명이 담긴 문서 한 장을 들고 런던공항에 귀환한 체임벌린은 개선장군처럼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는 그 문서를 흔들며 소리쳤다. “여기, 우리 시대의 평화를 가져왔노라!” 영국과 프랑스 국민들은 환호작약(歡呼雀躍)했다.
 
  뮌헨회담 이후 채 반년도 지나지 않은 1939년 3월, 히틀러는 체코슬로바키아를 전격적으로 점령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변변한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다시 반년 뒤인 1939년 9월,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공했다.
 
  ‘평화 환상’에서 깨어난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대해 선전포고를 했고, 전 세계는 5000만명 이상이 희생된 제2차 세계대전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1933~1939년에 히틀러가 자신의 침략의도를 점진적이고도 치밀하게 성취해 간 과정에서 보여준 술책은 소위 ‘야금야금 전략(piecemeal tactics)’이다. 이는 북한의 협상전략인 ‘살라미 전술(salami·큰 소시지를 잘게 썰어 먹는 것)’과 판박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6년 동안 히틀러의 침략의지를 단호하게 끊어버릴 수 있는 군사력을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 평화를 ‘깨지기 쉬운 유리공’ 다루듯 유화정책으로 일관해 양보에 양보를 거듭했다.
 
  그 결과,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이 가래로도 막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지난 좌파 정부 2기 동안, 우리 대통령들은 북한 김정일(金正日)이 부르는 대로 평양으로 달려가 온갖 지원약속을 하고는 “이제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됐다!”며 ‘통일 대통령’이라도 된 듯 의기양양하게 돌아왔다. 결과는 북한의 핵실험이고, 천안함 습격으로 돌아왔다.
 
 
  尙武精神, 잘 준비된 軍隊, 그리고 同盟
 
지난 5월 20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천안함 침몰사건 민군합동조사단에 미국조사단 대표로 참여한 토머스 에클스 미 해군준장이 (조사 결과에) 모두 동의한다”고 발언하고 있다.
  평화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거니와, 굴종(屈從)으로는 더더욱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굴종은 침략자의 자만심에 자양분(滋養分)을 주어 침략사의 간(肝)을 키워줄 뿐이다.
 
  ‘자력국방(自力國防)’과는 다른 개념이다. 자력만으로 국방을 하는 나라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가장 현명한 자주국방은 자기의 힘에다 능력 있고 믿을 만한 동맹의 힘을 보태서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미국보다 더 능력 있고 믿을 만한 동맹을 어디 가서 찾겠는가.
 
  한 국가가 전쟁을 수행하려면 무엇이 있어야 할까. 세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 결연한 의지와 충만한 상무(尙武) 정신으로 뭉친 지도층과 국민이다. 둘째는 잘 준비된 군대, 셋째는 능력 있고 믿을 만한 동맹(同盟)이다.
 
  천안함이 폭침(爆沈)당한 직후 청와대의 반응은 자못 신중했다. 비상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연이어 열리는 등 표면상 분주한 모습이었다. ‘선(先) 조사, 후(後) 대응’이라는 청와대 발표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청와대 대응은 일반적 ‘사고’에나 해당되는 것이지, 안보·국방상의 기습적 사태에 대한 대응치고는 신중을 넘어 우유부단했다.
 
  청와대가 전면에 나서는 모양새가 부담스러웠다면, 국방부 내지 정부 공보부서의 ‘입’을 통해 강력하고 신속한 대북 경고와 응징 의지를 표명했어야 했다.
 
  ‘객관적이고도 치밀한’ 조사는 그 다음 문제다. 왜냐하면 천안함 사건은 재판정에서 증거를 갖고 유무죄를 가리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주권의 일부인 군함(軍艦)이 기습적으로 피격된 안보·국방의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 장소, 그 시각에 우리 군함을 습격할 상대가 북한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천만다행으로 조사가 끝날 무렵, 북한 어뢰의 추진체 잔해(殘骸)가 수거돼 객관적인 조사결과를 도출하기는 했으나, 이미 대북 응징의 타이밍이나 동력(動力)은 상당히 퇴색한 시점이었다.
 
  서울이 불바다가 되면 평양도 불바다가 되는 것은 물론이요, 북한 정권의 몰락이 자명한 전쟁이 될 것이다. 북한이 ‘국가 자결’을 택할 리는 없다. 사람은 자살을 해도 국가가 자살을 한 예는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국회나 정치권의 반응은 더욱 한심하다. 어디서 그렇게 정확한(?) 정보를 입수했는지, 국회의원이나 지방선거에 출마한 ‘유력 정치인’ 몇몇은 연일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고 강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종북’의 수준을 넘어 대한민국에 대한 ‘반역’의 수준이다.
 
 
  지방선거의 勝者는 金正日?
 
  필자에게 기억에 남는 통계 수치가 하나 있다. 2005년 8월, 광복 60주년을 기념해 한국갤럽이 ‘우리 신세대(16~25세)의 민족주의 성향 및 통일관’에 대한 조사를 했다. 문항 가운데 ‘미국과 북한이 전쟁을 한다면 어느 편을 들겠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놀랍게도 66%의 젊은이들이 “북한 편을 들겠다”고 했다.
 
  5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20~30대로서 투표에 참여했을 것이다. 만일 이번 지방선거에서 젊은 세대가 야당에 몰표를 던진 것이 천안함 사태로 인한 전쟁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라고 해석한 선거분석이 맞다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의 진정한 승리자는 김정일이다. 천안함 습격으로 남쪽 선거에 ‘의미 있는’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고, 앞으로의 선거에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단’이 있음을 그는 확인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수단이란 다름 아닌 대남(對南) 무력도발이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북한이 천안함 사태보다 더 규모가 큰 무력도발을 해 올 개연성이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지방선거는 침략 야욕을 결코 포기한 적이 없는 김정일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낸 매개체가 된 셈이다.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는 전쟁을 두려워하고, 그 위협만으로도 지레 주눅이 든다는 오판(誤判)의 빌미를 주었을 수도 있다.
 
  천안함 사태에서 드러난 허점들이 해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크게는 우리 군의 합동성(合同性) 문제, 정보능력의 한계, 경계태세의 이완(弛緩), 그동안 추진해 온 군사력 건설방향의 타당성 문제 등을 광범위하고도 심도 있게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우리 군이 북한이라는 주적(主敵)과 장차의 잠재적 위협에 대비하려면 보완할 점 역시 만만치 않다. 우리 군이 추진하고 있는 ‘국방개혁 2020’이 그것이다.
 
 
  ‘뉴룩’ 정책의 허구성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전 한국-그리스 경기에서 한국선수들이 골을 넣자 서울광장에 모인 붉은 악마들이 환호하고 있다.
  노무현(盧武鉉) 정부는 ‘국방개혁 2020’을 위해 2006~2020년에 621조원 규모의 국방비 투자를 상정했다. 이는 매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7.1%, 국방예산 9.9% 증가를 전제로 한 ‘허황된’ 목표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국방비가 GDP 대비 2.7%에 불과한 현실은 바람직한 군사력 건설에 턱없이 모자라는 규모다.
 
  적어도 4.5% 정도의 규모를 앞으로 10년간 지속해야 통일과 그 이후 시대에 대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군의 경우, 이지스함과 중대형 잠수함 등 대양해군(大洋海軍) 건설방향이 잘못되었다는 일부 비판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앞으로 2~3년의 최단기간에 대잠(對潛)능력과 대특수전 능력 향상을 위해 적정선에서 투자를 늘려야 할 것이다.
 
  공군의 경우, 전폭기에 장착할 무장과 폭탄의 첨단화 투자를 늘릴 필요가 있다. 북한이 요새화된 기지와 포대(砲臺) 등 타격 목표의 종류와 위치, 견고도 등에 따라 이들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정밀하고도 확증파괴를 담보해 주는 첨단폭탄(벙커버스터)과 무기의 다량확보가 필수적이다.
 
  육군의 경우, 경솔한 병력감축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고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2006년 6월, 필자는 육군정책포럼에서 ‘개혁의 핵심은 사람’이란 주제로 특강했다. 2020년까지 육군 병력을 37만명 수준으로 감축하는 계획의 위험성을 지적한 것이었다.
 
  지금 전 세계적 국방의 화두(話頭)인 ‘군사변혁(military transformation)’의 요체는 ‘작지만 강한 군대’, 즉 첨단화·고효율·다기능의 신(新) 군대다. 양(量) 위주의 구(舊)군대를 대체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맞는 말이다. 그러나 지나친 획일성이나 신기술에 대한 과도한 신봉이나, 심지어 자기 나라의 고유한 환경을 도외시한 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일은 배제돼야 할 것이다.
 
  인류가 아무리 기술적으로 발전하더라도 문제 해결의 열쇠는 결국 ‘인간’일 수밖에 없다. 특히 육군은 고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머릿수’를 기본으로 하는 숙명을 타고난 군종(軍種)이다. 이를 경시했다가 호된 대가를 치른 나라가 미국이다.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소위 ‘뉴룩(New Look)’ 국방정책을 폈다. 이 정책의 핵심은 “기술로 인력을 대체한다”는 것이었다. 육군을 과감하게 감축하는 대신, 기술군(技術軍), 특히 공군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 결과, 미국은 베트남전에서 톡톡히 대가를 치렀다.
 
  베트남 정글에서 확전(擴戰)의 늪에 빠진 미국은 주방위군(National Guard)에 이어 징집령까지 발동해 축차적(逐次的)으로 지상군을 증강했다. 그러나 급조된 인력은 훈련부족으로 패전의 멍에를 쓰고 말았다.
 
  한국군의 지상군 규모를 산정할 때, 우선 120만명이라는 북한군의 양적 우위를 감안해야 한다. 유사시 방어가 충분한지 고려하고, 북한 급변사태가 발생해 통일의 기회가 왔을 때, 방대한 북한군을 접수하고 북한지역을 평정할 수 있는 인력까지 고려해야 한다.
 
  북한군 특수부대 20만명을 대비해야 하고, 정글이나 다름없는 남한지역 산야(山野)는 첨단무기나 장비만으로 극복하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은 주한미군의 지상군을 최소화하고 해·공군에 주력하기로 결정한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러고도 육군을 37만명 수준으로 감축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따져봐야 한다.
 
 
  ‘自力國防’을 하는 나라는 없어
 
2008년 10월 5일 부산에서 열린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에 참가한 미국 7함대 소속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 이번 서해상에서 실시되는 한미연합훈련에 참가할 예정이다.
  동맹이란 자국(自國)의 국력에 타국(他國)의 능력을 보태는 현명한 정책이다. 역사상 어떤 국가도 동맹 없이 자력만으로 방위에 성공한 사례는 없다.
 
  동맹은 공동의 국가이익과 공공의 위협인식(적)을 전제로 한다. 미국과 한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공동의 국가이익이 있다. 좌파 정부 시절, 북한을 적이라고 인식하는 부분에서 양국 간 괴리가 발생했다. 더구나 반미(反美)에 골몰한 나머지 노무현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전작권 전환과 한미연합사 해체를 무모하게 추진했다.
 
  감상적 민족주의와 현실과는 동떨어진 허구(虛構)의 주권론(主權論)을 내세웠고, 여기에 반대하는 군 원로들을 향해 “미군의 바짓가랑이나 붙잡고…”라는 식의 모욕적 언사를 서슴지 않았다. 전작권이 주권의 문제라면, 전작권을 미군사령관이 행사하게 돼 있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유럽국가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유럽보다도 훨씬 더 긴박한 안보위협 상황에 처해 있는 한반도에서, 세계적으로도 가장 효율적인 연합방위 조직인 한미연합사를 굳이 해체하려는 기도는 과연 국가에 대한 반역이 아니라고 변명할 수 있을까.
 
  자주국방은 ‘자력국방(自力國防)’과는 다른 개념이다. 자력만으로 국방을 하는 나라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가장 현명한 자주국방은 자기의 힘에다 능력 있고 믿을 만한 동맹의 힘을 보태서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미국보다 더 능력 있고 믿을 만한 동맹을 어디 가서 찾겠는가.
 
  전작권 전환은 좌고우면(左顧右眄)할 것 없이 연기해야 한다. 언제까지 연기해야 할까? 우리 민족이 통일을 달성할 때까지는 연기해야 할 것이다. 그때까지 차분히 전환 준비를 하며, 전환 후의 문제까지 준비함이 옳다.
 
 
  전쟁은 軍人들의 專有物 아냐
 
  우리는 지금 역사적 대전환점에 서 있다. 내구(耐久) 연한이 다 돼 붕괴 직전인 ‘낡은 건물’ 같은 북한을 옆에 두고 있다. 우리가 비록 대한민국 건국 이후 60년 만에 세계가 경탄하고 부러워하는 근대화의 치적을 이뤘으나, 우리 내부에는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종북세력이 청소년들에게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고 가르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내부적으로 그런 세력들과 투쟁하며, 밖으로는 언제 사고를 칠지 알 수 없는 김정일 정권의 침략 기도를 억제해 가면서 우리의 대내외 안보를 지키고, 자유민주주의에 의한 평화통일의 그날을 준비하며 기다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전쟁을 대비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과연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인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고, 우리는 그 힘을 감춤에 있어 모자람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전쟁은 전쟁을 무릅쓸 각오가 없이는 예방할 수 없고, 위기 때의 안보는 위험을 무릅쓸 각오 없이는 보전되지 못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한국의 두 좌파 정부의 대통령들은 평양으로 달려가 온갖 지원약속을 하고는 김정일의 ‘핵실험’과 ‘천안함 습격’을 선물로 받은 셈이다.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생물(生物)이란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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