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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권의 책

조선 왕공족 (신조 미치히코 지음 | 이우연 옮김 | 백년동안 펴냄)

덕혜옹주가 독립운동을 했다고?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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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개봉된 영화 〈덕혜옹주〉에서 덕혜옹주는 한글학교를 만들어 어린아이들에게 독립정신을 가르치고 일제(日帝)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복오빠 영친왕과 망명을 시도한다. 560만 명의 관객이 이 영화를 봤다.
 
  안타까운 얘기지만 조선왕실의 구성원들은 일제하에서 ‘항일(抗日)’이 아니라 ‘친일(親日)’을 했다. 적극적인 친일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적어도 ‘순응’했다. 신조 미치히코의 《조선 왕공족》은 바로 이 부끄러운 역사를 드러내는 책이다. ‘제국 일본의 준(準)황족’이라는 이 책의 부제(副題)는 일제하 이씨 왕실의 위상이 얼마나 드높은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일합방조약에 따라 고종-순종-영친왕으로 이어지는 고종의 직계는 ‘왕족’, 고종의 형 이희(흥친왕) 및 고종의 아들이자 영친왕의 이복형인 이강(의친왕)의 가문은 공족(公族)으로 편제되어 일본 황족 못지않은 영화를 누렸다. 천황을 제외한 일본 황족들의 세비가 4만~10만 엔에 불과했을 때 이왕가의 세비(歲費)는 150만 엔에 달했다. 일본 육군 중장까지 올라간 영친왕 이은은 일본 황실의 일족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이방자)와 결혼했다. 공족인 이건과 이우도 일본군 장교로 복무했다.
 

  이 책을 번역한 이우연 박사는 “조선 왕공족 제1세대가 일본에 대해 적대 의식을 가지면서도 개인과 집안의 존속을 위해 불가피하게 일본에 협력하였고, 그 후대는 왕공족의 지위를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일본 황족의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였다”고 말한다. 조선 왕공족은 왜 그렇게 국가와 민족을 배신하는 삶을 살았던 것일까? 이우연 박사의 지적처럼 조선(대한제국)은 군주가 국가를 세습 재산으로 취급하던 가산제(家産制) 국가였고, 이 나라와 백성들은 군주가 자기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세습 재산’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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