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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지옥〉을 통해 보는 동서양의 지옥과 死後 심판

지옥行 영혼은 천상으로 갈 수 있다? 없다?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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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 지옥 영혼은 다시 구원받지 못해
⊙ 불교, 참회·선행의 반복으로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어
⊙ 이슬람, 아무리 지옥이라도 진심으로 뉘우치면 구원
⊙ 유교, “삶도 모르며 어찌 죽음을 알려 하느냐”(공자)
⊙ 한국인, 죽음은 이승의 연장. 지금도 出喪할 때 ‘노잣돈’ 마련해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 포스터.
  2021년 11월 19일에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지옥〉이 〈오징어게임〉에 이어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영문 제목 〈헬바운드(Hellbound)〉는 ‘지옥행(行)’ 또는 ‘지옥으로 향하는’ ‘지옥에 떨어질 운명을 가진’ 정도로 해석된다. 그러나 실제 드라마에는 지옥의 공간이나 실체, 죄(罪)의 심판 등에 관한 탐색은 없다.
 
  드라마 〈지옥〉의 시놉시스는 이렇다. 어느 날 기이한 존재로부터 사람들이 지옥행을 선고받는다. “당신은 지옥에 갑니다”라는 천사의 말 한마디에 도시는 대혼란에 빠진다. 신(神)의 심판을 외치며 세(勢)를 확장하려는 종교단체가 등장하고 이들의 이면을 파헤치는 자들이 등장한다.
 

  드라마 〈지옥〉은 줄곧 어둡고 잔인하다. 웃음 코드가 있는지 갸웃할 정도로 무겁다. 무엇보다 ‘고지(告知)’와 ‘시연(試演)’ 때문이다.
 
  고지는 천사라 불리는 반투명한 얼굴이 별안간 대상자 앞에 나타나 그의 이름을 말한 뒤 죽을 날짜와 시각을 예언하는 것을 말한다.
 
  시연이 압권이다. 정해진 고지 시각이 되면 사자(使者) 3인이 소란스럽게 등장한다. 지옥행 대상자를 흠씬 두들겨 팬 뒤 손바닥에서 빛을 뿜어 불태워 버리는데 화장한 것처럼 검게 그을린 육신이 흉측하다.
 
 
  가톨릭에서 말하는 地獄
 
정종휴 전 駐바티칸 한국대사와 교황 베네딕토 16세.
  사실, 지옥이나 천국, 혹은 사후(死後)세계의 존재 여부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온 아주 무거운 주제다.
 
  기독교나 가톨릭에서는 지옥이란 공간을 어떻게 여길까? 전남대 명예교수인 정종휴(鄭鍾休) 전 주(駐)바티칸 한국대사의 말이다.
 
  “지옥이란 악마·악인이 혹독한 형벌을 끝없이 받는 곳이다. 넓은 의미에서 천국을 제외한 모든 장소가 지옥이다. 협의의 본래 의미는 은총의 상태가 아닌 채 죽은 악인(대죄[大罪] 상태에서 죽은 영혼)들이 영원한 벌을 받는 곳이다. 지옥은 우리가 없다고 믿는다 해서 없어지고 말고 할 공간이 아니다.”
 
  성경에는 지옥의 공간이 자주 언급돼 있다.
 
  ‘이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의 졸도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한 불 속에 들어가라.’(마태 25, 41)
 
  ‘그들은 주님 앞에서 쫓겨나 영원히 멸망하는 벌을 받고 주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을 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2데살 1, 9)
 
  다음은 정종휴 전 대사와의 문답.
 
  ― 지옥은 어디에 있는가? 지옥의 장소는?
 
  “비유적으로 말하면 감옥이 존재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게 서대문에 있건 강남에 있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지옥이 어디에 있는가보다 지옥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성 요한 크리소스톰이 말씀하셨다.”
 
  ― 지옥에서의 영원한 고통은 어떤 고통인가.
 
  “지옥에서 느끼는 고통의 본질은 신을 영원히 잃는 것이다. 모든 선과 완성과 아름다움의 궁극의 근원인 하느님을 다시 만날 수 없는 것이다. 이 세상의 연기와 같은 순간의 즐거움을 추구하느라, 영원토록 변함없는 기쁨을 잃은 것을, 악인들은 영원히 후회하고, 양심의 가책으로 고통스러워한다.
 
  인간이 스스로 자유로운 결정으로 신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신을 거역하여, 마땅히 받아야 할 고통을 받고 있음에도 하느님을 뵙지 못해 하느님을 미워한다. 한 번 지옥에 간 영혼은 더는 천국에 갈 수 없다.
 
  다만 지옥 벌(罰)에도 경중이 있다. 천국 영혼들이 각자의 공로에 따라 받는 복이 다르듯이, 지옥 영혼도 각기 지은 죄의 많고 적음에 따라 벌을 더 받고 덜 받고 한다. 이것이 하느님의 정의이다.”
 
  정종휴 전 대사에 따르면 성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교리에 ‘죄인들을 위한 영원한 죽음의 속성’이 나온다고 한다. 그 속성이 지옥의 속성과 같은데 다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 교리에 등장하는 지옥의 속성
 
  1)하느님, 모든 선인과의 분리=이른바 Poena damni, 다시 말해 하느님을 상실하고 잃어버린 고통인 실고(失苦·상실의 벌)에 해당한다. 이는 각고(覺苦·감각의 벌·Poena Sensus)보다 더 고통스럽다.
 
  성서에는 이를 빗대는 구절이 있다.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마태 25, 30) 사실 악인들은 이미 현세(現世)에서 내적 암흑을 느낀다. 죄로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영원한 죽음에서는 외적 암흑이 더해진다.
 
  2)양심의 가책=시편에 이르기를 양심이 소리친다고 한다. ‘나 너를 벌하리라. 네 눈앞에 네 행실을 펼쳐 놓으리라.’(시편 50, 21) 지혜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저들은 내적 두려움에 탄식하리라.’(지혜 5, 3) 그렇지만 지옥에서는 이런 후회와 회오도 그들에게 아무 득이 되지 않는다.
 
  3)헤아릴 길 없이 큰 감각의 고통=더없이 아프고 쓰린 처벌이다. 끔찍한 고통이 영원히 따르고 절대 죽을 수가 없다. 죽음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가장 큰 아픔이라면, 지옥에서는 이 벌의 쓰라림을 영원토록 맛보아야 한다. 성경의 ‘도살될 양들마냥 지옥으로 내려가 죽음에 뜯기리라’(시편 49, 15)라는 구절이 연상된다.
 
  4)구원에 대한 절망=구원에 대한 일말의 희망이라도 주어진다면, 벌(고통)을 감내할 수 있으련만, 남은 희망이란 전혀 없다. 가톨릭 교리에서 지옥에 떨어진 자가 천국에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가르치는데 성경 구절에서도 찾을 수 있다. ‘지옥에서 돌아온 사람을 아무도 본 적이 없다.’(지혜서 2, 1)
 
 
  가톨릭과 개신교의 煉獄에 대한 시각차
 
천국과 지옥을 한 화면에 그린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시스티나 성당에 소장돼 있다.
  정종휴 전 대사의 말이다.
 
  “천국도 영원하고, 지옥도 영원하다. 지옥에 간 영혼은 더는 천국에 갈 수 없듯이 천국에 간 영혼도 지옥에 갈 수 없다.”
 
  다만 ‘연옥(煉獄)’의 실재를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거부하나 가톨릭 교회는 교리로 받아들인다.
 
  가톨릭은 천국에 갈 수 있는 영혼들(즉, 은총 상태에 있는 영혼들)이라도 죄의 보속(補贖)이 남아 있는 경우 직접 천국에 가기 전에 연옥에서 죄를 갚을 필요가 있다고 가르친다. 또한 가톨릭의 사제와 수도자, 신자들은 연옥에 있는 영혼들이 빨리 천국에 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격려한다.
 
  반면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성경에 명시적으로 연옥의 기록이 없다고 해서 존재를 부인한다. 그래서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
 
  정 전 대사는 “사람이 죽은 후 영혼이 천국에 갔다면 기도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지옥에 떨어졌다면 역시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한다.
 
  연옥을 믿지 않기 때문에 프로테스탄트 교회 신자들은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한다. 이를 연도(煉禱)라고 부른다.
 
  가톨릭 교회에서 망자(亡者)에 대한 미사나 기도는 망자를 위한 것이지만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의 장례 예절은 살아 있는 부인들을 위한 위로에 불과하다.(천주교 원주교구장인 조규만 주교의 《오래된 대답》에서 인용)
 
 
  불교… 지옥도 등 6道를 輪廻
 
불교의 〈육도윤회도(六道輪廻圖)〉.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수라도(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로 나뉜다.
  기자는 국내 불교계의 석학인 정병조(鄭柄朝) 전 금강대 총장에게 불교에서 말하는 사후세계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는 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동국대 부총장 등을 역임했으며 한국불교와 현대불교에 관한 많은 저서와 논문을 펴냈다.
 
정병조 전 금강대 총장.
  정 전 총장은 “지옥과 사후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육도윤회(六道輪廻)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이 태어나서 살다가 죽고 나면 생전의 행보에 따라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수라도(修羅道), 인간도(人間道), 천상도(天上道)로 나뉘는 여섯 도에서 다시 태어난다는 믿음이 육도윤회다. 정 전 총장의 말이다.
 
  “육도윤회에 따라 모든 생명은 여섯 갈래의 삶과 죽음을 반복한다. 첫째, 지옥, 둘째 아귀, 즉 굶주림의 세계를 말한다. 셋째, 축생, 즉 짐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넷째, 수라는 무법천지의 난폭한 세상을 뜻한다. 다섯째, 우리가 사는 현세를 일컫는다. 생로병사(生老病死)에 시달리며 번뇌를 안고 살아가는 이 세상을 말한다. 여섯째, 극락의 세상인데 이들 세계로 윤회하는 근본은 본인의 업(業·카르마·karma)에 따른다. 이 중생(인간)의 육도 행은 부처님도 도울 수 없고 누구도 그 업의 무게를 바꿀 수 없다.”
 
  ― 여섯 갈래의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윤회(輪廻)란.
 
  “윤회는 자연의 질서, 생명의 흐름에 대한 불교적 시각을 뜻한다. 자연은 원인과 결과에 따라 생성과 소멸을 반복한다. 물방울이 모여서 시냇물을 이루고, 또다시 강으로 가서 끝내 바다를 이룬다. 바다의 수증기가 구름을 이루고, 또다시 대지를 적신다. 생명 또한 각자의 업에 따라 끊임없이 육도윤회를 되풀이한다. 이것을 윤회라고 한다.”
 
 
  카르마, 應報, 罪
 
  ― 업의 실체인 카르마를 풀어서 설명해달라.
 
  “불교에서 중생이 짓는 3가지 선악의 소행을 업이라 칭한다. 이 업은 전생의 소행으로 말미암아 현세에 받는 응보(應報)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카르마는 다음 세 가지가 작용한다. 첫째, 신[身業]이다. 몸으로 저지르는 살생·도적질·간음 등이다. 둘째, 구[口業]이다. 입으로 행하는 악행이나 거짓말을 뜻한다. 악담이나 욕지거리가 그것이다. 셋째, 뜻[생각·意業]으로 야기된 잘못이다. 즉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 씀씀이를 일컫는다.
 
  이 셋의 과보(果報)는 한 치 빈틈도 없이 나의 전생(前生), 금생(今生), 미래의 생을 관통한다.”
 

  업의 본성에 관해 《화엄경(華嚴經)》(〈보살명난품(菩薩明難品)〉)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업이라는 것도 실체는 없다. 마치 맑은 거울에 비친 그림자가 여러 가지이듯이 업의 본성도 그와 같다. 종자와 밭이 서로 모르지만 싹이 트듯이 업의 본성도 그와 같다. 많은 새가 저마다 다른 소리를 내듯이 업의 본성도 그와 같다. 지옥의 고통이 따로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듯이 업의 본성도 그와 같다.’
 
  업은 실체가 없지만 일상을 통하여 선악의 업을 쌓으면 그것이 업인(業因)이 되어 업과(業果)를 받는다.
 
 
  불교에서의 지옥行
 
  ― 불교에서 지옥은 여러 종류가 있다고 들었다.
 
  “팔열지옥(八熱地獄), 팔한지옥(八寒地獄) 등 총 117곳이 있다. 그중 가장 극심한 지옥을 무간지옥(無間地獄)이라 부른다. 이곳은 가장 극악한 죄, 이를테면 부모나 스승을 죽인 자나 부처님 몸에 피를 흘리게 한 죄인 등이 들어가서 한없는 고통을 받는 곳이다.”
 
  ― 지옥에 빠진 인간은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나.
 
  정 전 총장은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며 이렇게 덧붙인다.
 
  “제일 중요한 것은 참회와 선행의 반복이다. 열심히 기도하고 보살행을 닦는 일도 도움이 된다.”
 
  그가 말하는 ‘보살행(菩薩行)’이란 자리(自利)·이타(利他)가 원만한 큰 덕행, 곧 육바라밀(六波羅蜜) 등의 행업(行業)을 뜻한다.
 
  ‘육바라밀’이란 생사의 고해(苦海)를 건너는 여섯 가지 덕목으로 보시(布施·조건 없이 주는 생활)·지계(持戒·계율을 잘 지키는 생활)·인욕(忍辱·박해나 곤욕을 참고 용서하는 생활)·정진(精進·꾸준하고 용기 있게 노력하는 생활)·선정(禪定·고요한 정신상태)·지혜(智慧·정신적 맑음)를 일컫는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곧 極樂”
 
  계속된 정병조 전 총장의 설명이다.
 
  “8세기 티베트 불교의 경전 중의 하나인 《티베트 사자의 서(The Tibetan Book of the Dead)》는 죽음 이후의 변화를 일주일 단위로 일곱 번씩 49일 동안의 환생 과정으로 설명한다.
 
  불교에서 49재를 치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불교 일각에서는 지옥이니 극락이니 하는 것들이 ‘상징’이라는 주장도 있다.
 
  중국 선종(禪宗)의 6대조 혜능(慧能)은 날카롭게 비판한다. ‘극락이 서쪽에 있다면 동쪽에 있는 이들은 갈 수 있겠지만 서쪽 사람들은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간혹 불교에서는 극락이 여기서 10억8000만 리 떨어져 있다고 말하는데, 공간적 거리의 개념이 아니라 우리 몸 안에 있는 십악팔사(十惡八邪)를 뜻한다. 이 원리를 깨달으면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곧 극락(極樂)이다.”
 
  곧 살생·도둑질·사음(邪婬)과 거짓말, 이간 붙이는 말, 악담, 유혹하며 속이는 말, 탐욕, 성냄과 어리석은 소견 등의 십악을 고쳐서 십선(十善)으로 바꾸고, 사견(邪見)·사사유(邪思惟)·사어(邪語)·사업(邪業)·사명(邪命)·사방편(邪方便)·사념(邪念)·사정(邪定) 등의 팔사를 팔정도(八正道)로 바꾸면 그곳이 곧 극락세계라는 얘기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극락’ 참조)
 
  정 전 총장의 시각처럼 우리나라의 고승들은 사바(현실)세계가 곧 극락정토요, 현실과 극락이 불이(不二)라고 주장한다. 현실 속에서 극락의 실현을 희구한 것이다.
 
 
  이슬람에서 보는 천국과 지옥
 
서강대 박현도 연구교수.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박현도(朴炫度) 연구교수에게 이슬람에서 말하는 지옥의 존재를 물어보았다.
 
  “이슬람의 지옥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지옥의 모습과 같다. 지옥을 자한남(Jahannam)이라고 하는데, 코란에서는 이 말보다 나르(Nar)를 훨씬 많이 쓴다.
 
  ‘나르’는 불을 뜻한다. 코란에 따르면, 인간의 몸과 영혼이 고통을 받는 곳이다. 지옥의 불은 대표적인 형벌이다. 영혼과 육신이 모두 고통을 받는데, 육체적인 고통은 당연히 모든 감각 기관에 퍼지고, 지옥의 불을 보는 순간부터 시작한다.”
 
  코란은 ‘불을 보고 죄를 지은 자들은 거기로 떨어질 것을 알지만, 도망갈 방법이 없다’(18장 53절)고 표현한다. 불신자, 배교자를 비롯하여 사악한 이들 모두가 지옥에 간다.
 
  박 교수는 “그런데 지옥은 죽어서 바로 가지는 않는다”고 설명한다. 최후의 심판을 거쳐야 하는데 한 개인이 삶을 마치면, 문카르(Munkar)와 나키르(Nakir)라는 두 천사로부터 먼저 사후 심문을 받는다.
 
  “착한 이들의 영혼은 당연히 심문을 통과하여 최후의 심판일까지 무덤에서 평온한 삶을 누린다. 그러나 악인들의 영혼은 당연히 심문을 통과하지 못하여 고통스럽게 육신에서 분리되고 무덤에서 지옥에 갈 때까지 고통받는다.”
 
 
  死後 심문 과정 거쳐 지옥行
 
이스라엘 솔로몬의 성전 터에 세워진 이슬람 성지 황금사원.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모아 알라가 최후의 심판을 내리는 날, 선한 인간은 천국으로, 악한 인간은 지옥으로 간다.
 
  “그런데 지옥은 7단계로 나뉘어 있고, 알라는 죄인을 용서하여 지옥의 형벌을 줄여주기도 하지만, 불신자는 불의 심판에서 헤어날 수 없다. 이슬람은 천국의 기쁨, 지옥의 고통 모두 실제 육체적이고 영적인 기쁨과 고통이라 가르친다.”
 
  이슬람의 죽음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시작이다. 내세(來世)에서는 영혼과 육체가 온전히 부활한다고 믿어서 화장도 하지 않는다. 짧은 현세는 내세가 있기에 더욱 가치 있다.
 
  그렇다면 이슬람에서는 한번 지옥에 떨어진 영혼이 회개하여 천국에 갈 수 있을까. 박 교수의 말이다.
 
  “그렇게 믿는 사람도 있다.”
 
  아무리 지옥이라도 진심으로 뉘우치고 잘못을 깨닫게 되면 신이 구해준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믿음’일 뿐 구체화된 신앙 교리로 이론적 토대를 갖추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의 영혼, 내세, 생사관
 
한국 전통 장례식의 운구행렬. 1988년 1월 30일 유학의 대가 추연 권용현 선생이 사망하자 마을 주민들이 전통방식의 장례절차에 따라 예식을 치르고 있다.
  유교나 불교가 들어오기 이전 고대 한국인에게서는 순장(殉葬)의 풍습이 확인된다. 신분이 높은 사람이 죽으면 그가 생전 거느리던 노비나 신하들을 무덤에 같이 묻는 것이다.
 
  또 천마총 같은 신라 고분, 무령왕릉 같은 백제 고분에서 각종 화려한 장신구가 출토된 것은 저승길 또한 호화롭게 가라는 욕망이 담겨 있다. 지옥의 실체나 죄, 벌을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은 모습이다.
 
  유교는 인간의 죽음에 별 관심이 없었다. 지옥이나 심판 같은 얘기는 더더욱 없다. 생애에 쌓은 선행이나 악행으로 사후 심판 받는다는 개념은 유교에서 낯설다.
 
  특히 공자(孔子·B.C.551~B.C.479)는 제자들이 귀신이나 인간의 죽음 같은 초자연적인 일에 대해 질문하면 맞질문을 해 의제를 피해간 것으로 유명하다. 제자 계로가 공자에게 귀신을 섬기는 방법을 물으니 공자는 “너는 사람도 제대로 섬길 줄 모르면서 무슨 귀신 섬길 걱정을 하느냐”고 했고, 죽음에 대해서도 “삶도 모르는 주제에 어찌 죽음을 알려고 하느냐”고 답했다.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이론적으로는 영혼의 실체를 부정했지만 제사를 지낼 때 조상의 영혼이 집에 찾아와 음식을 같이 나눈다고 믿었다. 조령(祖靈), 즉 조상의 영혼은 일종의 착한 영혼, 즉 선령(善靈)으로 후손들에게 복을 준다고 믿고 제사를 지냈다. 원령(寃靈)도 부인하지 않았는데 살아생전 원한이 남아 구천을 떠도는 악령을 일컫는다. ‘몽달귀신’ ‘객귀(客鬼)’ ‘영산’ ‘수비’ 등이 모두 악령들이다.
 
 
  산소 주변에 밤나무를 심는 이유
 
영화 〈신과 함께〉에서 염라대왕 역을 배우 이정재가 맡았다.
  한국인에게 염라대왕과 옥황상제는 죽음 이후의 영혼을 관장하는 매우 친숙한 신적 존재다. 김용화 감독의 영화 〈신과 함께〉(2017, 2018)에서도 저승의 염라대왕이 등장한다.
 
  그런데 불교 발상지인 인도에서는 원래 염라대왕이 천상을 다스렸으나 지옥 신앙이 발달하면서 지장보살과 더불어 지하(지옥)세계를 관장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지옥의 통치자인 염라대왕은 불교와 관련된 신이지만, 옥황상제는 중국의 도교와 관련이 있다. 현세 인간의 선행과 악행에 따라 행·불행(幸·不幸)을 좌우하고 수명을 관장하는 존재가 옥황상제다. 그해에 선행이 많으면 옥황상제가 이듬해 행운을 주고, 악행이 많으면 벌을 내린다.
 
  한국인은 저승을 이승의 연장으로 여기는 데 익숙하다.
 
  예컨대 과거 우리 조상들은 산소 주변에 밤나무를 심었다. 황천길을 먼 길 떠나는 나그넷길로 생각했기에 가면서 요기를 하라는 뜻에서 산소에 밤나무를 심었던 것이다. 특히 제수(祭需)에서 생률(生栗)은 필수 품목이다.
 
  또 장례식에서 출상(出喪)할 때 망자의 가족들이 지전(紙錢)을 미리 준비해 망자에게 건넨다. 저승의 나그넷길을 떠나는 망자를 위한 ‘노잣돈’의 의미이며, 저승 문을 지키는 우두나찰, 마두나찰을 만나거든 주라는 일종의 뇌물 성격도 있다.
 
  망자가 현실적으로 그 돈을 가져갈 방법은 없으나 지금도 ‘노잣돈’을 주는 관례를 우리나라 장례식장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현대 의학의 상징인 대학병원(의 장례식장)도 마찬가지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사생관’편, 최준식의 ‘한국인의 죽음관’, 이규태의 ‘한국인의 사생관’ 참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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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cmaca    (2021-12-25) 찬성 : 0   반대 : 0
한국은 황하문명,한자,하느님숭배,천자(天子)제도 가진, 은나라 후손 기자조선에서 삼한이 성립되어 시원(始原)유교문화가 널리퍼졌음.그리고, 한나라때 공자님의 유가가 동아시아 세계종교로 정착되어, 수천년 유교국가로 이어짐. 순장도 사후세계를 대비해, 하늘로 지배자와 같이 가겠다는 믿음으로 행해진 중국 은나라시대의 풍습이다가, 점차, 흙인형등으로 변질되었다고 볼수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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