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신년 時論 | 벗고 선 나무들을 보며

글 : 복거일  작가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卜鉅一
1946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 한국과학연구원 부설 선박연구소 연구개발실장, 문화미래포럼 대표, 《조선일보》 아침논단 필진, 대통령직속 사회통합위원회 민간위원, 《한국경제신문》 객원논설위원 역임 / 저서 《한반도에 드리운 중국의 그림자》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 《역사 속의 나그네》 《비명을 찾아서》 《높은 땅 낮은 이야기》 등
  뒷산에 오르면, 나뭇잎들이 길을 덮었다. 그 잎새들을 떨군 나무들로 눈길이 끌린다. 풍성한 잎새들에 가려졌던 모습을 드러낸 나무들은 갑자기 앙상해진 우리 사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느닷없이 닥친 코로나19 바이러스 역병(疫病)은 우리에게 일상생활을 극도로 단순화하라고 강요했다. 꼭 필요하지 않으면, 밖에 나가지 말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말라고 방역 당국은 거듭 당부한다. 그러다 보니, 당연하거나 필수적으로 여겨졌던 일들과 물건들이 없어도 견딜 수 있는 것들임이 드러나곤 한다.
 
 
  철학적 성찰의 시간
 
  좀 뜻밖인 것은 사람들과 만나지 않고도 그럭저럭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를 단단히 묶어서 크게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도록 만든 인연(因緣)들인데, 여러 달 연락이 없어도, 내 삶에 별다른 영향이 없다는 것이 드러나곤 한다. 예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인연들이 훨씬 빨리 삭아간다는 느낌이 든다. ‘세월이 충분히 지난다면, 삭지 않을 인연은 없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읽었는데, 이제 실감이 난다. 한번 삭은 인연은 다시 새로워지지 않으리라는 예감이 마음에 그늘을 드리운다.
 
  인연의 잎새들이 지고 나니, 떨굴 수 없는 인연들이 드러나곤 한다. 서리 맞은 잎새들이 이울자, 울타리 한쪽에서 혼자 조용히 늙은 호박 덩이가 모습을 드러내듯. 그런 인연들이 내가 걸어온 길들이 실재했음을 확인해준다.
 

  그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실존적(實存的) 물음들’로 이어진다. 바쁜 일상 속에서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던 물음들이 -생로병사(生老病死)에서 시작해서 생명의 본질을 거쳐 우주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고개를 내민다. 살아온 날들을 찬찬히 되짚어보아도, 요즈음처럼 진지하게 철학적 성찰을 해본 적이 생각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철학자의 면모를 지녔다. 그리고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철학자의 면모를 가꾸는 것은 언뜻 보기보다 가치가 크다. 우리의 자아(自我)는 이미 결정되어서 바뀌지 않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새로운 경험을 하면, 우리의 자아도 새로운 모습을 한다. 이번의 충격적 경험을 성찰해서 우리의 자아를 좀 더 알차게 다듬어내는 것은 뜻이 작지 않다.
 
  깊은 생각은 그냥 하기 힘들다. 화두(話頭)를 제공하고 추론(推論)을 인도할 책이 있으면, 도움이 된다. 미국 철학자 윌 듀랜트(Will Durant)의 《철학의 즐거움》을 꺼내서 훑어본다. 듀랜트는 철학을 대중화하는 데 큰 공헌을 한 사람이고 그의 책들은 널리 읽혔다.
 
  반(半)세기가 지났으니, 낡은 부분들도 눈에 뜨인다. 그래도 거기 담긴 조언(助言)들은 생기를 잃지 않았다. ‘성격 재구성의 조리법(recipe)’이란 다분히 실용적 제목을 단 부분에 지금 상황에 적절한 조언이 나온다. “책들이 영향력이 없다고 상정하는 것은 오류다. 흐르는 물이 협곡을 깎아내는 것처럼, 그것은 느린 영향이지만, 해가 지날수록 점점 커진다. 누구도 현인(賢人)들과, 영웅들과 하루에 한 시간을 함께하고서 그가 대화한 사람들에 의해 눈금이 하나나 둘 올라가지 않을 수는 없다.”
 
  강요된 칩거(蟄居) 속에서 선현(先賢)들의 얘기들을 듣는 것은,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서 철학자의 면모를 발견하는 것은 흐뭇한 일이다. 그것은 역병의 위협에 일방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모처럼 얻어낸 작은 승리다.
 
 
  현 정권의 본색
 
  이번 역병은 우리 사회의 모습도 선명하게 드러냈다. 역병의 정체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고 대책도 번거로웠지만, 우리 시민들은 감탄할 만큼 차분하게 정부 당국의 지시를 따랐다. 덕분에, 역병의 발생지인 중국이 이웃이지만, 우리 사회는 초기 방역에 성공했다.
 
  반면에 현(現) 정권의 태도는 부끄럽고 부도덕했다. 애초에 우리는 대만과 베트남처럼 중국으로부터의 전염을 완벽하게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무슨 속셈인지 현 정권은 중국인들의 유입을 제한하지 않았다. 의사들이 상황이 심각하다고 거듭 경고해도, 중국인들의 유입을 허용했다. 나중엔 이미 늦었으니 그냥 가겠다는 억지를 부리면서, 끝내 막지 않았다. 결국 역병은 점점 널리 그리고 은밀하게 퍼져서, 지금의 창궐(猖獗)을 불렀다.
 
  그 과정에서 현 정권이 중국 정권에 예속되었음이, 외교정책의 차원을 넘어 인적(人的) 차원에서도 예속되었음이 드러났다. 중국 외교관들이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무례(無禮)한 언동을 해도 대통령 자신도 우리 정부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는 데서 이 점이 괴롭게 확인되었다. 중국의 압도적 영향 아래 살아야 하는 우리 처지에선 이보다 더 불길한 조짐은 드물다.
 
  재앙이 닥치면, 위기를 느낀 시민들은 지도자를 지지하게 된다. 그런 사정을 이용해서, 현 정권은 노골적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늘렸다. 정부의 실책(失策)들을 규탄하는 시민들의 모임은 광화문에 ‘산성’을 쌓고 경찰을 동원해서 막았다. 반면에, 노동조합 집회들은 실제로 전염의 위험이 커도 허용했다.
 
  현 정권의 본색을 인상적으로 드러낸 사건은 대통령이 역병에 대처한 간호사들의 노고를 치하한 일이었다. 그런 일이 눈길을 끈 것은 대통령이 정부의 잘못된 시책에 항의한 의사들을 빼놓고 간호사들만 칭찬했다는 점 때문이었다. 권력을 쥔 사람들은 늘 ‘분열시켜 지배한다’는 전략을 따른다. 그러나 방호복을 입고 기진할 때까지 환자들을 치료한 우리 의료진을 간호사들과 의사들로 갈라놓아 자신에 대한 지지를 높이겠다는 행태엔 시민들이 말을 잃었다.
 
  지금까지 정부는 방역을 잘 수행했다고 자랑해왔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백신의 확보에선 한 일이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물론 해명은 있었다. 구매(購買) 협상에 좋은 시기를 기다렸다는 얘기다.
 
  최소한의 양식을 갖춘 시민들을 질리게 만든 이런 행태는 물론 현 정권의 최상부에서 최하부까지 모두 보여온 터다. 그래서 ‘내로남불’이란 볼품없는 말이 현 정권을 규정하게 되었다. 역병의 거센 바람에 잎새들이 날리면서, 그들의 본색이 드러난 셈이다.
 
 
  도덕적 허무주의
 
  현 정권의 핵심 세력이 보여온 행태는 그들의 도덕적 허무주의(moral nihilism)에서 나온다. 그들은 도덕이 사람들의 행동을 인도하는 규범이 되지 못한다고 여긴다. 도덕은 사회를 이루고 유지하는 일에서 근본 원리가 되므로, 그들의 태도는 본질적으로 가치 체계를 부인하고 결국 허무주의에 빠진다.
 
  도덕은 사회를 구성하고 지탱하는 데 도움이 되는 행태여서 진화(進化)했다. 모든 생명체는 사회적 존재들이므로, 의식이 없는 종(種)들도 그러하므로, 도덕은 가치 체계를 이루는 궁극적 원리다(진화생물학자 로버트 트리버스의 주장대로, 한 개체가 다른 개체의 생성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생식 활동 자체가 사회적 활동이다. 두 개체가 협력해서 새로운 개체를 만들어내는 유성 생식은 사회적 특질이 특히 짙다).
 

  당연히, 도덕은 보편적이다. 생명체들이 모여서 집단을 이루면, 으레 도덕적 행태가 나온다. 우리가 낮추보는 박테리아도 도덕적 행태를 보인다.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을 돕는 것이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는 이 원리는 상호적 이타주의(reciprocal altruism)라는 이름을 얻었다.
 
  도덕적 허무주의자들은 이런 이치를 모르거나 애써 부정한다. 그렇게 도덕을 부정하면, 필연적으로 당장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것들을 추구하는 행태가 나온다. 자신의 범위를 넓혀도, 자신의 가족이나 정파(政派)를 넘지 못한다. 결국 이념과 지역으로 내 편과 적(敵)으로 나누어 사회를 분열시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極大化)하는 전략이 유일한 지침이 된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간호사들과 의사들을 갈라놓아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행태도 그들에겐 당연한 것이다.
 
  그런 전략을 가장 잘 드러낸 것은 ‘좋은 집을 갖게 되면 사람들이 보수적이 되니, 좋은 주택들이 공급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 정권의 경제정책을 설계하고 집행한 사람들이 이 주장을 실천했다고 보도되었다. 자기 집을 갖는 것은 생존의 기본적 조건이다. 고등 동물들은 모두 둥지를 만들고 거기서 새끼들을 낳아 기른다. 그리고 자기 둥지 둘레를 자신의 재산으로 여기는 영역성(territoriality)을 보인다. 그런 본능이 워낙 강렬하므로, 우리는 산책길에서 개들이 연신 오줌 누는 시늉을 하면서 자기 영역을 표시하는 것을 목격한다. 이미 몇만 년 동안 사람들에 의해 사육되어 자기 집을 따로 마련하지 않아도 되는 개들이 아직도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둥지는 재산의 시초였고 둥지를 지키려는 영역성을 인정한 것이 재산권(財産權)의 연원(淵源)이었다. 자기 집 갖기를 바라는 열망을 그렇게 냉소적(冷笑的)으로 정략에 이용하는 태도는 가장 깊은 뜻에서 반생명적(反生命的)이다. 현 정권의 본질이 이 기막힌 주장에 응축되었다.
 
  도덕적 허무주의자들은 미래를 고려하지 않는다. 사회적 수준의 가치 체계를 갖추지 못했으므로, 사회를 발전시켜서 후대에 넘기겠다는 생각이 작을 수밖에 없다. 오직 자기 자신과 가족들이 당장 남보다 잘살면 된다고 본다. 정부의 채무(債務)를 되도록 줄여서 후대(後代)에 짐을 넘기지 않겠다는 생각이 없이, 정부의 지출을 마구 늘리는 행태는 이런 태도에서 나온다. 요즈음엔 뒤치다꺼리는 다음 정권의 몫이라는 계산이 뻔히 드러나는 정책들이 쏟아진다.
 
  자신의 이익을 무엇보다도 앞세우므로, 도덕적 허무주의자들은 보편적 가치들을 존중하지 않는다. 정의(正義), 공평, 균등, 자유와 같은 가치들을 늘 앞세우지만, 그런 가치들을 보장하는 질서와 절차는 무시한다. 현 정권이 장악한 입법부와 사법부에서 벌어지는 기막힌 일들이 그런 사정을 보여준다.
 
  이 점은 그들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에서 특히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북한 주민들의 인권(人權)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북한과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들을 변별하지 않고, 북한 정권의 이익을 유일한 가치로 삼는다. 그래서 헌법에 따라 우리 국민인 북한 주민들이 귀순을 해도, 강제로 송환해서 확실한 죽음으로 내몬다.
 
 
  도덕을 다시 세우는 길
 
  도덕적 허무주의자들이 나라 살림을 주도하는 터라서, 지금 우리 사회에선 도덕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도덕이 한번 무너지면, 다시 세우기는 참으로 어렵다.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의 경험이 그 점을 일깨워준다. 우리나라도 해방 뒤에 시민들이 ‘와이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다. 그동안 차츰 질서가 서고 공중도덕이 지켜지는 사회가 되었는데, 어느 사이엔가 뻔뻔스러움을 처세술로 삼는 풍조가 사회를 덮었다.
 
  이제 도덕적 허무주의에 맞서서 도덕을 다시 세우는 일이 근본적 중요성을 지니게 되었다. 도덕적 바탕이 튼실하지 못하면, 다른 처방들의 효력도 일시적이거나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도덕을 다시 세우는 처방에 대해선, 상당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요체는 ‘사기꾼들(cheaters)’을 골라내는 일이다. 상호적 이타주의(利他主義)가 협력을 통해 개인들이 혼자서 얻을 수 있는 이익보다 큰 이익을 얻어서 함께 혜택을 보는 현상이므로, 어느 사회에서나 사기꾼들이 필연적으로 나와서 큰 이익을 가로챈다. 그래서 사회마다 사기꾼들을 골라내는 장치들을 마련한다. 그 장치들이 제대로 작동하면 그 사회는 번창하고, 그렇지 못하면 쇠퇴한다.
 
  이 점이 상호적 이타주의의 핵심이다. ‘상호적’이라는 말은 협력만을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사기(詐欺)에 대한 응징을 포함한다. 실은 그것이 상호적 이타주의의 핵심이다. 협력하기로 약속하고서 이익만을 차지하는 행위는 협력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래서 사회의 거래 비용을 전반적으로 높인다. 발전되지 못한 사회의 경제가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질이 바로 이것이다.
 
  1970년대에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액설로드는 컴퓨터의 ‘가상현실’에서 ‘죄수의 양난(prisoner’s dilemma)’을 이용해서 협력과 사기에 관한 실험을 했다. 이 널리 알려진 실험에서 가장 성공적인 프로그램은 ‘되갚기(TIT-FOR-TAT)’라는 이름을 가진 프로그램이었다. ‘되갚기’의 행동 양식은 ‘상대와 만나면 일단 협력하고, 이후엔 상대의 행동과 똑같이 행동한다’였다.
 
  뜻밖에도, 이 가장 간단한 행동 양식이 가장 성공적임이 드러났다. ‘되갚기’는 협력자들과 만나면, 줄곧 협력해서 이익을 나누었다. 사기꾼들과 만나면, 다음부턴 응징을 해서 상대하지 않음으로써 손실을 줄였다. 이 전략이 워낙 뛰어나므로, 이제 ‘되갚기’는 상호적 이타주의의 기본 모형이 되었다. 모든 성공적 프로그램은 ‘되갚기’의 변형들이다.
 
  반면에, 사기꾼들은 처음엔 사기를 쳐서 큰 이익을 본다. 그러나 그들의 본색이 드러나면, 협력자들이 외면해서 협력의 이익에 참여하지 못한다. 그래서 점점 퇴출(退出)된다.
 
  실제로 정상적 사회들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거의 다 ‘되갚기’의 전략을 따른다. 그리고 그런 전략을 구성원들이 충실히 따르는 집단은 점점 흥성해서 다른 집단을 아우르게 된다. 인류 역사에서 나온 왕조들의 흥망성쇠(興亡盛衰)는 이런 이치를 예외 없이 보여준다.
 
  실은 사람만이 아니라 다른 종들도 이런 원리를 따른다. 생각해보면, 이런 원리는 보편적이 될 수밖에 없다. 다른 원리를 따르면, 자연선택에 의해 밀려나게 된다. 자연히, 생존한 종들은 모두 이런 원리를 따른다.
 
  근년에 밝혀진 예는 변형균류(slime mold)의 경우다. 변형균류는 산지(山地)의 표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누르스름한 생물체로 단세포 진핵(眞核)생물이다. 즉 세포 하나로 이루어진 생명체인데 세포핵을 지녔다. 그래서 사람과 같은 계열에 속한다.
 
  변형균류의 어떤 종들은 물기가 말라서 살기가 힘들어지면, 줄기를 만들고 그 위에 자실체(字實體·fruiting body)를 마련해서 씨앗들을 생산한다. 이때 줄기를 만든 세포들은 물기가 마르면서 죽는다. 자실체를 이룬 세포들이 씨를 퍼뜨리도록 자신들을 희생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기꾼들’이 나와서 결코 줄기를 이루지 않는다. 그들은 유전자(遺傳子) 하나에 변형(變形)을 일으켜서 그렇게 사기를 친다.
 
  그러나 협력자들도 대응책을 마련했다. 사기꾼들은 유전자 변형 때문에 세포 겉의 단백질들에서 하나가 결여되었는데, 협력자들은 이것을 이용해서 사기꾼들을 가려낸다. 그리고 그들을 배제하고 협력자들끼리 자실체를 만든다. ‘되갚기’의 전략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 사기꾼들을 변별(辨別)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들은 으레 협력자로 위장(僞裝)해서, 겪어보기 전에는 알기 어렵다. 게다가 그들은 교활해서 정체가 드러난 뒤에도 자신을 받아들이도록 다른 사람들을 조종한다. 이번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현 집권 세력이 부산 인근 가덕도에 공항을 건설하는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전형적이다. 사기꾼들은 다른 사람들도 사기꾼으로 만드는 전략을 채택해서 협력자들의 도덕적 능력을 무력화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협력자의 특질을 지닌 시민들이 사기꾼들의 그런 교활한 전략에 속절없이 낚여서 사회의 쇠락에 가담하는 형국이다. 특히 문제적인 것은 그 지역의 제1야당 국회의원들의 행태다. 그들은 사기꾼들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전선을 뒤에서 무너뜨리는 제5열(the fifth column)로 전락했다.
 
  이런 사정에서 도덕이 한번 무너지면 되살리기 어려운 사정이 잘 드러난다. ‘되갚기’ 전략을 따르는 구성원들이 다수(多數)면, 도덕이 서고 모두 잘산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사기꾼들이 득세하면, ‘되갚기’ 전략을 따르기 어렵게 된다. 처음 만난 사람을 믿고 협력하면 흔히 손해를 보는 상황에서, 누가 협력하겠는가? 결국엔 협력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악랄할수록 더 잘사는 세상이 나오게 된다.
 
 
  역병의 역사
 
  현실적으로, 우리의 나날은 COVID-19에 대한 합리적 대응에 바탕을 두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낯선 역병이 느닷없이 닥쳤고 기세가 맹렬해서, 우리로선 참고할 경험이 없다. 역병의 추세를 예상해야 미래의 전망이 서는데, 아무도 모르니 앞날을 가늠하기 어렵고, 그래서 더욱 불안해진다.
 
  멀리 살피면, 비슷한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인류는 여러 차례 큰 역병을 겪었다. 14세기에 유라시아 대륙과 북부 아프리카를 휩쓴 ‘흑사병(Black Death)’은 대표적이다. 그 역병으로 적게는 7500만명에서 많게는 2억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죽었다고 추산된다. 당시 세계 인구가 5억명이 채 안 되었으니, 역병의 위세와 사람들의 공포는 역병에 시달리는 우리로서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 처지와 여러모로 비슷한 경우는 꼭 100년 전의 ‘스페인 독감’이다. 1918년부터 1920년까지 이어진 역병인데, 당시 인구의 30%인 5억명가량이 걸려서 적게는 1700만명에서 많게는 1억명까지 죽었다고 추산된다. 당시 조선 인구가 1700만명이 채 못 되었다. 역병의 성격도 아주 비슷하다. 흑사병은 박테리아가 일으키지만, 스페인 독감이나 코로나19는 바이러스가 일으킨다.
 
  스페인 독감이 이처럼 무섭게 창궐하게 된 근본적 요인은 당시 막바지에 이른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병력이 밀집했으니, 전염이 쉬웠다. 전쟁으로 영양이 부족해서 면역력도 떨어진 상태였다. 교전국들이 보도를 통제해서, 시민들이 역병에 대해 알지 못해 제때에 대응하지 못한 것도 거들었다. 중립국이라서 보도 통제가 없었던 스페인에선 역병의 실상이 보도되었다. 그래서 스페인에서 주로 유행한다는 인식이 퍼져서, ‘스페인 독감’이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본적 대응은 국경 통제와 ‘거리 두기’다. 당시 이런 대응에 철저했던 나라들은 피해가 적었고 소홀했던 나라들은 피해가 컸다. 이번에도 그 점이 뚜렷이 드러났다. 역병에 대한 정보를 빨리 전파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만일 중국 정부가 초기에 발병 정보를 감추지 않았다면, 피해를 상당히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스페인 독감은 네 차례 유행했다. 두 번째 유행이 특히 큰 피해를 입혔다. 코로나19도 지난봄의 첫 번째 유행보다 늦가을의 두 번째 유행이 더 거세다. 게다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외가닥(single-strand) RNA 바이러스라서, 변이(變異)가 빠르고 전염성과 독성이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
 
 
  튼튼해진 사회 구조
 
  그래도 스페인 독감에 비기면, 코로나19는 피해가 작다. 그동안 인류 문명이 많이 진보했다는 얘기다. 특히 인공지능(AI)의 발전과 보급이 피해를 줄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인공지능은 이제 문명의 모든 분야에 깊이 스며들었지만, 두 분야에서 특히 큰 기여를 했다.
 
  하나는 유전공학의 발전이다. 유전체 서열해석(genetic sequencing)이 값싸고 빠르게 되어서, 병원체(病原體)의 정체를 이내 파악해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백신의 개발엔 통상 10년가량 걸린다는데, 이번엔 한 해가 채 안 되어 백신이 여럿 나왔다. 막대한 투자와 정부의 독려도 큰 힘이 되었지만, 인공지능 덕분에 생물학 지식이 크게 향상된 것이 결정적 요인이었다.
 
  다른 하나는 온라인 경제의 발전이다. ‘거리 두기’가 방역의 기본이므로, 비대면(非對面) 활동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데, 인공지능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동안 빠르게 성장한 온라인 경제가 이번에 예상보다 훨씬 꿋꿋이 버틴 것은 고무적이다. 앞으로 생산-유통-소비의 환로(loop)에서 사람들이 밀집하는 부분들이 자동화(自動化)가 진척된다면, 온라인 경제는 더욱 튼튼해질 것이다.
 
  확실한 것은 앞으로도 주기적(週期的)으로 새로운 역병들이 닥치리라는 것이다. 인류를 위협하는 병원체들은 많지만, 가장 위협적인 것은 바이러스다. 밝혀진 사실로는 이런 바이러스의 다수는 박쥐에게 기생(寄生)한다. 박쥐가 거대한 집단을 이루어 살고, 멀리 이동하고, 다른 동물들에게 기생하므로 그렇다. 이런 습성에 가축을 통해 사람으로 옮겨오는 과정이 생긴다. 새들에게 기생하는 바이러스도 많은데, 이런 바이러스들은 닭과 같은 가금(家禽)을 통해 사람에게 옮겨온다.
 
  따라서 선제적(先制的)으로 박쥐나 다른 숙주(宿主)들이 지닌 바이러스들을 미리 파악하고 백신을 만드는 일이 궁극적 대응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번 역병은 현대 문명의 피륙이 생각보다 질기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인공지능이 점점 발전하면, 더욱 질겨질 것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을 걱정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리고 그런 걱정은 자연스럽지만, 이제 인공지능은 인류 문명을 떠받치는 요소가 되었다. 지금 인류가 안은 문제들은 모두 인공지능의 발전을 통해서만 완화될 수 있다. 기술의 발전이 부른 문제들은 더 나은 기술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격언이 다시 맞은 것이다.
 
 
  새해를 맞으면서
 
  지금 우리는 무척 힘들다. 누가 열만 나도, 가슴이 철렁한다. 그렇게 불안한 나날이 흘러, 어느덧 한 해가 지나갔다. 백신이 개발되었다는 소식에 고무되어, 새해는 좀 나으리라는 희망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든다. 인류 문명은 중세의 흑사병도 100년 전의 스페인 독감도 견뎌냈다. 우리가 현명하게 행동한다면, 우리는 이번 역병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본다. 뒷산 자락에서 나무 몇 그루가 벗은 몸으로 섣달 바람을 맞는다. 원래 달동네 바로 위에 자라서, 사람들이 그 아래 모이던 정자나무들이었다. 여름이면 평상에 할머니들이 모여서 얘기를 나누곤 했다. 달동네가 재개발에 들어가서 모두 헐릴 때 아파트 부지 바로 위에 자리 잡은 덕분에 살아남았다. 이제 그곳에 낮닭이 우는 달동네가 있었음을 증언하는 것은 그 나무들뿐이다. 사라진 동네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에 고인다.
 
  문득 그 나무들에게 말을 건네고 싶은 충동이 인다. 살아남는 것은 궁극적 성취라고. 앞으로 긴 세월을 살 터이니, 몸조심하라고. 기억을 더듬어 박재삼의 시(詩)를 나무들에게 들려준다.
 
  욕심을 털어 버리고
  사는 친구가 내 주위엔
  그래도 일할(一割)은 된다고 생각할 때
 
  옷 벗고 눈에 젖는 나무여!
  네 뜻을 알겠다
  포근한 십이월(十二月)을.
 
  친구여!
  어디서나 당하는 그
  추위보다 더한 손해를
 
  너는 저 설목(雪木)처럼 견디고
  그리고 이불을 덮는 심사로
  네 자리를 덮히며 살거라.⊙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102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정기구독 이벤트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