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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권의 책

중국인 이야기 8 (김명호 지음 | 한길사 펴냄)

“인간은 핑계를 명분으로 포장할 줄 아는 동물이다”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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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호 교수의 《중국인 이야기》는 부담이 없다. 연대기순으로 역사를 기술(記述)하는 것도 아니고, 목에 힘을 주고 메시지를 전하려 애쓰는 것도 아니다.
 
  ‘옛날 옛적에 중국이라는 나라에 아무개라는 사람이 살았는데…’라면서 저자가 풀어나가는 이야기 속에는 장제스(蔣介石)나 마오쩌둥(毛澤東), 저우언라이(周恩來), 장쉐량(張學良)같이 역사에 큰 이름을 남긴 사람이 등장하는가 하면, 그들을 지척에서 모셨던 말단 경호원, 그들의 잊힌 애인들도 출연한다. 중국인들이라면 ‘아, 그 사람!’ 하고 바로 알겠지만, 한국인으로서는 생전 처음 듣는 문화예술인이나 정치인들도 적지 않게 등장한다. 저자는 그들을 소리 높여 찬양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저자는 지난 100여 년 동안 모진 풍파를 헤치며 산 ‘인간’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할 뿐이다. 그럼에도 인간의 어리석음과 이기심, 탐욕, 권력의 야만, 그리고 그 반대편에 선 덕성과 품위, 슬기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번에 나온 제8권은 주로 6·25전쟁과 1950년대 냉전(冷戰)시대 대륙과 대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중화인민지원군이라는 허울을 쓰고 참전한 중공군을 지휘한 펑더화이(彭德懷)와 그를 보좌한 쑹스룬(宋時輪)·덩화(鄧華)·제팡(解放)·천겅(陳)·리커눙(李克農) 같은 인물, 그리고 중북(中北) 관계 등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오래전에 휴전협상 당시 미국 측 대표였던 터너 조이 제독의 《공산주의자는 어떻게 협상하는가》, 장진호전투를 다룬 마틴 러스의 《브레이크아웃》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책을 통해 그 상대방이었던 중국 측 인사들의 면면과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움직였는지를 알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무엇보다도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깊고 단단한 역사적 뿌리를 갖고 있다는 것, 그리고 ‘중국은 공산정권 수립 직후 산적한 국내외 문제로 경황이 없는 와중에도 한반도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았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1950년대 대만의 모습은 어딘가 낯익다. 미국이 친미파(親美派)인 대만경비사령관을 앞세워 장제스 총통을 제거하려 했다는 이야기는 자신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던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을 제거하려 했던 ‘에버레디작전’을 연상하게 한다. 반공 열풍 속에서 마크 트웨인이나 에밀 졸라의 책을 갖고 있다가 공산주의자로 몰려 곤욕을 치른 이들의 이야기는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 같다.[마크 트웨인은 마르크스의 친척으로 오인됐고, ‘쭤라(左拉)’라고 표기된 에밀 졸라는 ‘左’자가 들어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홍콩을 무대로 한 중국의 통일전선공작 이야기도 흥미롭다. 장쑤성(江蘇省) 서기를 지낸 거물 정치인 쉬자툰(許家屯)이 홍콩 주재 신화통신 분사(分社) 사장으로 부임한 후, ‘애국과 중화민족, 조국통일’을 앞세워 홍콩의 거물 기업인, 문화예술인, 심지어 반공인사들까지도 하나둘 회유해나가는 모습을 보면, 남의 얘기 같지가 않다. 《녹정기》 《신조협려》 등으로 유명한 홍콩의 작가이자 언론인 진융(金庸)도 쉬자툰의 통일전선공작을 거든 사람 중 하나였다.
 
  한중(韓中) 관계 개선의 물꼬를 텄던 1983년 5월의 중국 민항기 납치 사건의 뒷이야기도 흥미롭다. 정변과 혁명으로 점철됐던 20세기 중국을 살면서도 정치를 멀리하고 학문과 교육의 길에 매진했던 양셴이(梁憲益)와 우이팡(吳貽芳)의 삶은 ‘인간의 품격’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여론은 만드는 것이지 저절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다 보니 그들이 남긴 말들도 귀에 와 닿는다. 저우언라이의 통일전선공작지침이었던 “함께 어울리기를 추구하려면 작은 차이는 어쩔 수 없다(求大同 存小異)”나 휴전회담 당시 중국 측 대표들에게 마오쩌둥이 했다는 “말은 적게 하고 상대를 궁지로 몰지 마라. 당장은 속 시원해도 이로울 게 없다”는 말은 요즘 같은 시절에 특히 마음에 와 닿는다. “개혁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개혁을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 치고 제대로 된 사람 본 적이 없다. 인간의 역사는 개혁가들의 비극으로 가득하다. 서두르지 마라”는 말도 인상적인데, 이 말을 한 사람이 마오쩌둥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실패를 성공으로, 패배를 승리로, 욕심을 덕행으로 포장할 줄 알아야 선전가 자격이 있다” “인간은 핑계를 명분으로 포장할 줄 아는 동물이다. 남에게 죄를 덮어씌울 줄도 안다. 그래서 만물의 영장이다” “재치와 삼류 말장난이 지혜와 지식으로 둔갑했다. 무지와 막무가내 앞에서 사실이 빛을 잃었다. 인간성 파괴는 덤이었다” “인민은 무지한 집단이다. 위대하다고 부추기면 진짜 그런 줄 안다.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한다. 여론은 만드는 것이지, 저절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같은 말들도 오늘의 한국 현실을 떠오르게 한다. 이야기가 재미있고 문장이 간결한데다가 사진도 많이 들어 있어 술술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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