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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Q의 시 읽기 〈46〉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풀이 더 우거지고 사람 자취가 적은 그 길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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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갈래 길’은 인생에서 필연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선택의 기로를 뜻해
⊙ 윤동주, 김기림, 나태주, 배창환, 반디(재북작가) 등 많은 시인이 ‘길’을 노래해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모습과 그의 시 ‘가지 않은 길’.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 갈라져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나는 두 길을 갈 수 없는
  한 사람의 나그네라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덤불 속으로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풀이 더 우거지고 사람 걸은 자취가 적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을 걸으므로 해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입니다,
 
  그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 적어
  아무에게도 더럽혀지지 않은 채 묻혀 있었습니다.
  아, 나는 뒷날을 위해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다른 길에 이어져 끝이 없으므로
  내가 다시 여기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에선가
  한숨을 쉬며 이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갈라져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것으로 해서 모든 것이 달라졌더라고.
 
 
  The Road not Taken
  Robert Frost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a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은 한국인이 애송하는 시다. 시적 화자는 노란 숲 속 두 갈래의 길 중 풀이 더 우거지고 사람 걸은 자취가 적은 길을 택하겠노라고 말한다.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Lee Frost·1874~1963)의 시 ‘가지 않은 길’은 아직도 많은 이들이 애송하고 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서양시 중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지 않을까.
 
  1연에서 시적 화자(詩的 話者)는 두 갈래의 길 앞에 서 있다. 삶이란 늘 선택의 갈림길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다. 한 길만을 택해야 하는 게 인생이다. 선택은 늘 책임이 따른다. 길이 끊임없이 이어진 인생의 행로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두 갈래 길’은 인생에서 필연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선택의 기로를 뜻하는 것이다.
 
  ‘사람 걸은 자취가 적은 길’이란 말 그대로 처녀지다. 사람들이 도전하지 않는 길, 미개척 분야를 뜻한다. 도전과 용기가 필요하다. 실패와 실수는 불가피하다. 어쩌면 사람들이 피하는 길일지 모른다. 그러나 리스크가 큰 만큼 더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다.
 
  현대시에서 ‘길’은 수많은 상상력을 낳는 소재다. 길은 ‘도로’라는 의미 외에 방법, 수단, 과정, 방향, 도리, 미래, 전망 등의 추상적 의미를 지닌다. 이 시에서 길은 ‘삶의 길’, 즉 인생을 의미하는 말로 새로운 인생의 도전을 의미한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 한번 가기로 작정한 인생의 길이라면 후회 없이 그 길을 떠나야 한다. 뒤돌아볼 필요가 없다. 발가락 끝에 언제나 새로운 길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나태주 시인
  나태주 시인의 ‘묻지 말아라’는 길에 대한 이야기다. 《소월시문학상 수상작품집》(1993)에 실렸다. 이 길을 따라 끝없이 가면 ‘번듯한 신작로(큰길)’가 나오지 않는다. 그저 조봇한(조금 좁은 듯이 좁다랗고 봉긋한) 길, 오밀조밀한 고샅길(좁은 길)이 나올 뿐이다. 남들이 외면하고 마다하는 길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길에 생나무 울타리가 있고 복사꽃, 살구꽃이 어우러져 피어 있다.
 
  좁고 작은 길이지만 들꽃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길이다. 그런 길, 그런 인생에 한때 ‘봄이 있었음을’ ‘깨끗한 새벽이 있었음을’ ‘하늘하고 놀던 시절 있었음을’ ‘땅하고도 숨 쉬던 시절 있었음’을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큰길이 아닌 조봇한 길, 고샅길에 진짜 인생의 길이 숨어 있다.
 
  이 길을 따라 끝없이 가면
  조봇한 길이 나서고
  오밀조밀한 고샅길과 고샅길
  생나무 울타리 황토흙 담장 너머
  복사꽃 살구꽃 어우러져 피어나는
  봄이 있었음을
  묻지 말아라
 
  그 마을 한 귀퉁이 어디엔가는 분명
  누군가의 슬픈 혼령인 양 맑은 샘물이 솟고
  별의 눈빛과 이슬의 가슴을 가진 처녀애들
  물동이 이고 물 길러 오는
  깨끗한 새벽 있었음을
  묻지 말아라
 
  봇물 철렁 고인 포강배미
  두엄 더미 져다 버린 자리에
  미꾸라지 우렁이 송사리
  더러는 버들붕어 득실거리고
  맨발을 벗고서도 발 시려운 줄 모르는 아이들
  비 오는 날이면 토란잎을 따서
  비를 가리고
  해뜨는 날이면 아주까리 잎을 따서
  해를 가리고
  하늘하고 놀던 시절 있었음을
  땅하고도 숨쉬던 시절 있었음을
  묻지 말아라
  묻지 말아라.
 
  -나태주의 ‘묻지 말아라’ 전문

 
 
  배창환의 ‘길’과 반디의 ‘길’
 
배창환 시인의 시집 《잠든 그대》.
  배창환 시인의 첫 시집 《잠든 그대》(1984)에 실린 ‘울고 싶은 밤’은 ‘너를 만나고 돌아오는 들길’에서 시가 시작된다. 시적 화자는 ‘너’를 만나고 돌아오다 들길 풀밭에 퍼질러 앉는다. 자신의 삶이 당당하지 못하다고 느껴서다. ‘멀쩡히’ ‘정말 큰 흉터 하나 없이’ 산다는 게 부끄럽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상처뿐인 스무 몇 해의 너’를 만나면서다.
 
  내 삶이 부끄러워 ‘엉머구리가 피창이 터질 듯’ 울었지만, 그렇게 ‘넘어지고 자빠져’ 울어도 부끄러움이 가시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터져 오는 내 울음’에 귀 기울인다. 어쩌면 이 ‘울음’이 시인을 훗날 해직 교사로 만들고, 전교조 활동에 뛰어들게 했는지 모른다.
 
  너를 만나고 돌아오는 들길 풀밭에 퍼질러 앉아
  나는 담배를 깊이깊이 빨아들였고 한 번씩 빨 때마다
  또 엉머구리가 피창이 터질 듯 울었다.
  개구리도 입 모아 개골거리며 달 없는 밤을 깊게 했다
  꽃 피는 4월을 부르다 취해서 취해서
  몇 번이나 넘어지고 자빠라져 울 때
  왜 이리 취기는 재빨리 씻은 듯 사라지는지
  나는 조용히 터져 오는 내 울음에 귀 기울인다
  오늘도 상처뿐인 스무 몇 해의 너를 만났다
  바람에도 쓰러질 듯 그러나 건강한 웃음 털어놓고
  한 시대의 폭력적인 어둠과 맞서는 그를 보면
  왜 자꾸만 이렇게 멀쩡히, 그리고 정말 큰 흉터 하나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부끄러운지
  모른다 조금씩 이렇게 쉽게 몰락해 가는 것이
  예로부터 전해오는 삶의 한 방식이던가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엉머구리가 아무것도 모르고 짖어대는 달 없는 밤
  (이하 하략)
 
  -배창환 ‘울고 싶은 밤’ 일부

 
 
재북시인 반디의 《붉은 세월》.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재북(在北)작가 반디의 시 ‘차잡이 나그네’를 보자. 이 시는 시집 《붉은 세월》(2018)에 실렸다. 반디는 평생을 지옥과 같은 시대를 살며 분노와 저주의 언어가 아닌 따스한 서정의 언어로 노래한다. “서정을 통해 시적 생명력을 획득하고 있다”(시인 정호승).
 
  ‘차잡이 나그네’는 길을 떠나려는, ‘붉은 이 땅’을 떠나려는 이야기다.
 
  시인은 아무리 기다려도 기차가 오지 않자 걸어서 길을 나선다. 생명과 자유를 찾기 위해서다. 때마침 차가 온다. ‘운전사 아저씨 차 좀 세워요’라고 말한다. 차비 대신 ‘바트담배 탕교담배 별담배’(중국 동북지역에서 생산하는 담배 별칭)를 주겠노라 흥정한다.
 
  또 ‘팔랑팔랑 지폐’를 꺼내며 이렇게 노래한다. ‘날 태우고 가 줘요 아주 가 줘요/ 역겨운 빨간 이 땅 아주 가 줘요’라고.
 
  운전사 아저씨 차 좀 세워요
  바트담배 탕교담배 별담배야요
  숨죽은 기차를 기다리다가
  백리길을 걸어 떠난 이 몸이라오
 
  운전사 아저씨 같이 가자요
  팔랑팔랑 이 돈이 안보이나요
  찬서리 밝히는 타향의 밤길
  걸어 걸어 백리길 언제 가라오
 
  온 세상이 택시와 비행기 탈 때
  이 땅에만 차잡이 웬말인가요
  날 태우고 가 줘요 아주 가 줘요
  역겨운 빨간 이 땅 아주 가 줘요
 
  -반디의 ‘차잡이 나그네’ 전문

 
 
  윤동주의 ‘길’과 ‘푸른 하늘’, 김기림의 ‘길’과 ‘강’
 
윤동주 시인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에 실린 윤동주(尹東柱·1917~1945)의 ‘길’은 담담하면서도 뭉클한 시다. 시인은 무언가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선다.
 
  이 ‘길’은 답답한 현실의 꽉 막힌 공간이자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가는 성찰의 공간이다. 또 이 ‘길’은 돌담으로 분리돼 있다. 담의 이쪽과 저쪽이 단절돼 있는데 이 담(장애물)이야말로 암울한 현실의 상징이다. 그리고 이 담을 통해 이상적 자아(自我)의 실체를 발견하게 된다. 마치 ‘어둠’을 통해 ‘빛’이 더 발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시에서 시작 화자가 길을 걷는 행위는 암울한 현실을 극복하고 이상적 자아를 회복하기 위한 자아 성찰의 과정이다. 그 과정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다시 ‘저녁에서 아침으로’ 계속 이어진다. 그러나 끝이 보이지 않기에, ‘돌담을 더듬을 수밖에 없어’ 시적 화자는 절망감에 빠져 눈물짓는다.
 
  그러나 절망의 순간에 쳐다본 ‘푸른 하늘’이 있어 희망을 꿈꾼다. ‘풀 한 포기 없는’ 불모의 길을 다시 걷고자 다짐한다.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 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윤동주의 ‘길’ 전문

 
 
김기림 시인
  일제강점기 《조선일보》 자매지인 《월간 조광》(1936)에 실린 김기림(金起林·1908~?) 시인의 ‘길’은 지난날을 회상하는 시다. ‘길’의 추억은 늘 그렇듯 아프지만 역설적이게도 아름답다.
 
  어머니는 ‘길’을 따라 돌아가셨고, 첫사랑의 여인도 ‘길’ 위에서 만났다가 조약돌처럼 떠났다. 시인은 혼자서 ‘길’을 넘어 ‘강’을 찾아간다. 그런데 ‘강’ 역시 ‘길’과 다르지 않다. ‘강’에 갔다가 ‘노을에 함뿍 자주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자줏빛’이란 색깔이 슬픔과 그리움을 연상시킨다. 시인은 마을 밖 버드나무 밑에서 떠나간 과거를 회상하며 그리움의 눈물을 짓는다.
 
  나의 소년 시절은 은(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빛에 혼자 때 없이 그 길을 넘어 강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뿍 자주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 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김기림의 ‘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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