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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의 책으로 세상 읽기

밀턴 마이어의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自由의 침식에 대한 침묵이 전체주의를 불러들였다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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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인 리버럴 지식인이 만난 나치 시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 “어떤 사람한테 돈이나 기회가 없게 되면, ‘체제’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게 되는 거예요”
⊙ “‘그 모든 떼거리’ ‘그 모든 짓거리’, 그 ‘모든’ 의회 정치인에게 반대하여, 내 친구들은 히틀러주의를 불러냈다”
⊙ “그가 유일하게 원했던 것은 바로 안정, 그가 원했던 일자리는 바로 국가의 일자리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밀턴 마이어 지음, 갈라파고스, 2014.
  이 책이나 저자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하지만 서점에서 책등에 적힌 이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느낌이 팍 왔다. ‘자유롭지 못하면서도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한 사람들이라면, 그건 자기들 스스로 자유를 포기한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이라고….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은 나치 독일 치하에서 하급 나치 당원으로 활동했던 평범한 독일 남자들의 이야기였다. 히틀러의 집권이 전쟁으로 이어지기 전까지는 마냥 행복했던….
 
  이 책의 저자는 밀턴 마이어(1908~ 1986)라는 미국의 리버럴 지식인이다. 전전(戰前)부터 잡지사 특파원으로 독일을 드나들던 그는 많은 독일인을 만나면서 ‘나치즘이 단순히 무기력한 수백만명 위에 군림하는 악마적인 소수(少數)의 독재가 아니라 오히려 대중운동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그는 아돌프 히틀러라는 인물이 아닌 ‘평범한 독일인’들을 통해 나치 정권의 실체를 들여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7년이 지난 후, 그가 프랑크푸르트대학 객원교수 자격으로 1년간 독일(당시에는 서독)에 체류할 때 그 기회가 왔다. 프랑크푸르트 인근 소도시(책 속에는 크로넨베르크라는 익명의 도시로 나타남)에 살면서 나치 시대를 산 평범한 독일인들과 교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교사, 경찰관, 재단사, 목수, 빵집 주인, 수금원, 재단사 보조 출신 실업자, 판매원 출신 실업자, 은행원 출신 실업자, 고등학생. 이들 열 명은 히틀러 정권 시절 나치당에 가담하기는 했지만, ‘잔챙이’들이었다.
 
  밀턴 마이어가 만난 사람들은 미국에서 그가 흔히 만나던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을 통해 나치즘이 독일을 휩쓸게 된 것은 ‘외부의 공격을 통해서도 아니었고, 내부의 전복(顚覆)을 통해서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적극적인 기쁨의 함성과 외침을 곁들여가면서 이루어진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마이어는 두려움에 빠진다. ‘독일이 그랬던 것처럼 현실과 환상이 조합된 압력에 노출될 경우, 내 조국(미국을 가리킴-기자 주)이 과연 무엇을 원하고, 가지고, 좋아할지를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그는 “국가는 참나무와 돌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 인간이 어떠한지에 따라서 그 국가도 어떠한지가 결정된다”는 오래된 금언(金言)을 상기한다.
 
  나치 시대를 살았던 ‘열 명의 평범한 독일인’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나 역시 그런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평범한 독일인들은 바로 내가 주변에서 만나거나 거리에서 스치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겪었던 일들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때야말로 최고의 시간이었죠”
 
  흥미로운 것은 크로넨베르크에 사는 ‘열 명의 평범한 독일인’은 나치가 자신들을 행복하게 해주었다고 믿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1939년 히틀러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기 전까지는 말이다.
 
  우선 나치는 이들의 소외의식을 불식시켰다. 전쟁 전 재단사 보조이다가 실직한 구스타프 슈벵케는 이렇게 말한다. “나치당은 나처럼 ‘작은 자들의 정당’이었다고….”
 
  ‘작은 자’들, 보통 사람들에겐 히틀러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1939년 이전의 독일은 행복한 시절이었다. 나치당은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해줬다. 직장에서 권리를 침해당한 노동자들의 편을 들어주었고, 저렴한 비용으로 여가를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 목수인 칼 클링겔회퍼는 이렇게 말한다.
 
  “그때야말로 최고의 시간이었죠. 첫 번째 전쟁(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독일에서는 아이를 딱 둘만 갖게 되었죠. …1933년 이후에야 우리는 아이를 더 많이 갖게 되었죠. 사람마다 미래를 보게 된 거지요.”
 
  그러면서 이 목수가 하는 얘기는 섬뜩하다.
 
  “좋은 발전은 우리가 민주주의를 하고 있느냐, 아니면 독재정치를 하고 있느냐, 아니면 다른 무엇을 하고 있느냐 여부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어요. 정부의 형태는 그거랑 아무 상관이 없었던 거죠. 어떤 사람한테 돈이나 기회가 없게 되면, ‘체제’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들은 히틀러의 정적(政敵)들이 암살되거나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고, 유대인들이 직장에서 쫓겨나도 무관심했다. 그런 공포들 가운데 어떤 것도 마이어가 만난 열명의 친구들의 일상생활을 침범하지 않았으며, 한 번도 이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2017년 5월 이후 대한민국에서 이른바 ‘적폐(積弊)수사’로 공무원이나 검사, 판사, 우파 시민운동가들이 검찰에 불려 다니며 수모를 겪고, 감옥에 가고, 자살을 해도, 언노련(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에 밉보인 방송인들이 자기가 평생 일해온 방송사에서 쫓겨나도, 그것이 나의 일이 아닌 것처럼…. ‘그들은 단지 세금을 납부하고, 지역 신문을 읽고, 라디오를 들으며, 예전에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살아갈 뿐이었다.’ 저자는 말한다.
 
  “내가 만난 열명의 친구들 중 어느 누구도 나치 정부를 향해 ‘아니오’라고 말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그중 한명인 교사 힐데브란트만이 ‘아니오’라고 ‘생각’했을 따름이다.”
 
 
  ‘정치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사람 - 히틀러’
 
히틀러는 기성정치인들과는 다른, 신선한 정치인의 이미지를 가지고 대중들에게 다가갔다. 사진=퍼블릭 도메인
  1933년 1월 정권을 잡은 히틀러는 그해 2월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을 빌미로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고,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행정부에 넘기는 ‘수권법(授權法)’을 통과시켜 독재권력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저자가 만난 ‘평범한 독일인’들은 히틀러가 선언했던 비상사태선언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나치 시절은 물론 저자가 그들을 만났을 때까지도 그들은 이로 인해 국민들의 인권이 침해되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마치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방역(防役)을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로 국가가 CCTV나 신용카드·교통카드 사용 내역 등을 바탕으로 파악한 확진자의 동선(動線)을 공개하는 데 대해 아무도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기성(旣成)정치에 대한 환멸도 히틀러의 집권에 도움이 됐다. 저자는 “국가사회주의란, 그 모든 정당과 당파들의 흥정과 거래에 대해, 제휴에 대해, 혼란에 대해, 공모(共謀)에 대해 느낀 혐오의 결과물이었다”고 말한다. 독일의 정치가 정화(淨化)되기를 갈망했던 독일인들은 한 사람을 발견했다. 그는 순수한 사람이었고, 반(反)정치인이었으며, ‘정치’에 오염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바로 히틀러였다. 저자는 말한다.
 
  “‘그 모든 떼거리’ ‘그 모든 패거리’ ‘그 모든 짓거리’에 반대하여, 그 ‘모든’ 의회 정치인에게 반대하여, 그 ‘모든’ 의회 정당들에 반대하여, 내 친구들은 히틀러주의를 불러냈으며, 히틀러주의는 그 모든 것들을 전복해버렸다.”
 
  세계 어디서나 기성정치인들의 오만과 부패에 실망한 유권자들은 매버릭(maverick), 이단아를 찾고, 그들에게 환호한다. 차베스에게, 에르도안에게, 트럼프에게…. 그리고 그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하나씩 망가뜨린다. 노무현에게 환호하고, ‘대깨문’들이 ‘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을 외치고, 이재명 경기지사에게 열혈 지지자들이 생기고 있는 이유 역시 그들이 기성정치인들과는 다른 ‘깨끗한 정치인’이라는 환상 때문 아닐까? 그들에 대한 환호는 전체주의로 가는 문을 열어젖히는 것은 아닐까?
 
 
  ‘국가의 일자리’라는 유혹
 
지난 1월 4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는 ‘함께 조국수호 검찰개혁’ 주최 시민참여 촛불문화제라는 행사가 열렸다. 사진=조선DB
  우울한 것은 지금 우리 사회가 전체주의 선동가들에게 점점 더 유리한 환경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중 하나는 ‘불안정’이 날로 심화,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 상황은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집값은 하루가 다르게 폭등하면서 많은 이가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하고 있다. 직장도 불안해지고 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야말로 전체주의 선동가들의 온상이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재단사 보조 출신의 실업자) 구스타프 슈벵케가 원했던 것, 즉 그가 유일하게 원했던 것은 바로 안정이었다. 그가 원했던 일자리, 즉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원했던 일자리는 바로 국가의 일자리였다”고 말한다. 나치는 그에게 그런 일자리를 제공해주었다. 비정규직들에게 문재인 정권이 정규직 일자리를 약속하는 것처럼….
 
  혼돈의 시대에 전체주의 선동가들이 제공하는 또 다른 미약(媚藥)은 자신이 뭔가 커다란 대의(大義)에 동참하고 있다는 환상이다. 구스타프 슈벵케의 아버지인 재단사 칼 하인츠 슈벵케의 주장이다.
 
  “저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저를 필요로 한다는 겁니다. 국가사회주의가 저를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는 겁니다. 저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저를 필요로 한다는 겁니다.”
 
  작년 조국(曺國) 지지 집회에 나선 사람 가운데 상당수는 슈벵케 부자(父子)와 흡사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 가운데는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후 정규직화의 혜택을 본 사람들, 지방의 문화센터 등에 일자리를 얻게 된 사람들, 그래서 문재인 정권이 잘못될 경우 자신들이 누리게 된 혜택이 날아가버릴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그들 가운데는 자신들이 우리 사회의 적폐를 청산하고 우리 사회를 바꾸는 거대한 과업에 동참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이들도 많았다. 어느 쪽이든 전체주의 선동가들에게 그들은 손쉬운 먹잇감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아무도 거리에 나오지 않았다”
 
1938년 11월 9~10일 나치는 유대인 소유의 상점과 유대교 회당을 습격해 파괴·방화했다. 사진=퍼블릭 도메인
  그렇게 해서 들어선 나치 치하에서 가장 큰 참화(慘禍)를 입은 것은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직장에서 쫓겨나고, 불매운동의 대상이 되었다. 유대교회당이 불에 탔으며, 부당한 벌금을 부과받았다. 그러다가 게토에 수용되었고, 결국에는 수용소 가스실에서 학살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이들을 위해 나서지 않았다. 저자의 먼 친척들이 살던 아이히도르프의 독일인들은 유대인들이 도시 바깥으로 추방될 때의 정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모두가 알았죠. 하지만 아무도 거리에 나오지는 않았어요. 일부는 커튼 뒤에 숨어서 내다보았지만, 그런 사람조차도 많지는 않았어요. … 왜냐고요? 그걸 굳이 내다보아서 무슨 득이 있었겠습니까?”
 
  독일의 패전, 히틀러의 자살, 뉘른베르크 전범(戰犯) 재판이 있었다 해도 이런 의식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독재국가에서 지배적인 목소리를 내지도 못했던 그들이 왜 국가의 행위를 참회해야 한단 말인가?’ 나치에 저항했던 고백(告白)교회가 전후(戰後)에 “우리는 민족과 함께 거대한 고통을 느끼는 한편으로 거대한 유죄에 대해 연대(連帶)책임을 느끼고 있다”고 자책한 것은 예외적인 일이었다(독일에서 나치 청산 문제가 대두하는 것은 이 책이 나오고 난 후인 1960년대에 들어서였다).
 
  도대체 수많은 철학자와 지성(知性)과 예술가의 나라인 독일이 왜 그렇게 됐을까? 그들은 왜 히틀러라는 악(惡)을 환호와 함께 영접하고, 즐겨 그의 노예가 되었고, 나치의 질곡에서 벗어난 후에도 과거를 직시하지 못했던 것일까?
 
 
  ‘시민적 용기’의 결여
 
  저자는 그 원인 중 하나를 비스마르크가 독일인에게 결여되었다고 말했던 그것, 즉 ‘시민적 용기’의 결여에서 찾는다. 저자에 의하면 ‘시민적 용기’란 인간이 인간을 통치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을 통치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아닌, ‘인간이 자기 스스로를 통치하게 만들어주는 용기’를 말한다. 옛 프로이센의 각료 한 명은 저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치즘을 야기한 원인은 베를린의 어느 클럽 회원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1930년에 나치의 위협에 관해 질문을 받자, 그는 점심을 먹고 시작한 카드놀이를 하다 말고 고개를 들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야 정부가 알아서 할 문제죠.’”
 
  무슨 일이 생기면 정부의 대책부터 촉구하고, 대통령이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면 잘 한다고 박수 치고, 시민사회와 시장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기보다는 정부에 미루는 의식… 그게 바로 ‘시민적 용기’가 결여된 사이비(似而非) 시민들의 모습이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시민적 용기’를 가진 시민이 존재하는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질문을 받던 수금원 한스 지몬은 이렇게 되묻는다.
 
  “당신네도 어쩌면 국민 중에서도 최고의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모두에 의해서, 또는 다수(多數)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독재를 갖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이 또한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아 가슴이 뜨끔해진다. 문제는 이런 식의 체제 변질이 소리 없이 다가온다는 점이다. 저자의 친구인 한 언어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여기서 벌어진 일이란, 국민이 점차적으로 조금씩, 조금씩 습관화되는 것이었습니다. 즉 깜짝 조치에 의해 통치되는 일에 습관화되고, 비밀리에 내려진 결정을 받아들이는 일에 습관화된 것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도 흡사한 상황 아닐까? 법치(法治)가 망가지는 상황에 대해, 정권을 잡은 자들이 밥 먹듯 거짓말을 하고 억지를 쓰는 상황에 대해, 국가 정체성(正體性)에 반하는 자들이 안보를 담당하는 요직에 오르는 것에 대해, 억지 죄명(罪名)을 쓴 사람들이 ‘적폐’라는 낙인이 찍힌 채 감옥으로 가는 상황에 대해, 공영방송이 가짜뉴스를 전파(傳播)하는 상황에 대해, 교사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거짓과 증오를 가르치는 상황에 대해, 부동산에서부터 시작해서 사유재산권이 침식되어가는 상황에 대해 습관화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상황은 그렇게 나쁜 것까지는 아니야”
 
  앞에서 말한 언어학자는 또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또는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정확히 볼 수 없게 마련이에요. 진짜, 그게 사실이라니까요. 각각의 행위, 각각의 사건이 먼젓번보다 더 나빠지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약간만 더 나빠질 뿐이에요. 그래서 당신은 다음을, 또 다음을 기다리게 되죠. 당신은 한 가지 크게 충격적인 사건을 기다리게 되는 거예요. 그런 충격이 닥치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당신과 뜻을 같이해서 어찌어찌 저항하게 되리라 생각하는 거죠. 당신 혼자서는 행동하고 싶지도 않고, 심지어 말하고 싶지도 않은 거예요. 당신은 굳이 ‘자기 길에서 벗어나 말썽을 일으키고’ 싶지 않은 거예요.”
 
  “그들은 이렇게 말하죠. ‘상황은 그렇게 나쁜 것까지는 아니야’ 또는 ‘자네가 잘못 본 거야’ 또는 ‘자네의 호들갑일 뿐이야’.
 
  그런데 당신은 ‘정말로’ 호들갑을 떠는 셈인 거예요. 당신은 ‘이것’이 반드시 ‘저것’으로 귀결되리라고 말하는데, 정작 그걸 증명할 수는 없는 거죠. 그때는 그 일이 겨우 시작에 불과하니까요.”
 
  “그제야 당신은 모든 것이, 정말 모든 것이 이미 변해 있음을, 그리고 당신의 코앞에서 완전히 변해 있음을 깨닫는 거죠. 당신이 사는 세계, 당신의 국가며 당신의 동포는 당신이 애초에 태어났을 때의 모습이 아닌 거죠. 물론 형태는 모두 그대로이고, 모두 예전 그대로이며, 모두 안심을 주죠. 집이며, 상점이며, 일자리며, 식사시간이며, 방문이며, 연주회며, 극장이며, 휴일이며. 하지만 그 정신은 이미 변한 거예요.”
 
  이렇게까지 얘기해도 여전히 “그것은 90년 전 독일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야” “지금 같은 21세기 대명천지에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어”라고 말하는 이가 있을지 모른다. 터키의 에르도안,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와 마두로가 나라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것을 보면서도 ‘후진국에서나 벌어지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동료인 카를 헤르만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먼저 러시아에서, 그다음으로 이탈리아에서 대중독재가 일어났을 때, 우리는 서로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후진국이니까 저런 일이 벌어지는 거지. 우리는 운이 좋아. 그 모든 말썽에도 불구하고 저런 일은 우리나라에서는 일어날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그런 일은 우리나라에서도 실제로 일어났고, 다른 어디보다도 더 나쁘게 일어났습니다.”
 
  지금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는 자유의 침식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경계하고, 그에 대해 끊임없이 경고하고, 그에 맞서 싸우지 않는다면 ‘그런 일’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벌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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