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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사상 크로스 〈12〉

한비자와 애덤 스미스

경쟁은 善이다

글 : 임건순  동양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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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금과 신하는 계산으로 맺어진 관계… 자신이 손해 보면서 나라를 이롭게 하는 일은 신하는 하지 않는다”(한비자)
⊙ 한비자, 군주는 정치 소비자로 보고 군주의 선택 가로막는 독점적 현상인 派閥 타파 위해 形名術 주장
⊙ 애덤 스미스, 少數의 大商人들에 의한 獨寡占 반대
⊙ 한비자의 兼官·兼職 반대는 애덤 스미스의 分業과 전문화 주장과 상통

임건순
1981년생. 서울시립대 행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수료 / 저서 《한비자, 법과 정치의 필연성에 대해서》 《제자백가 인간을 말하다》 《묵자: 공자를 딛고 일어선 천민 사상가》 《손자병법: 동양의 첫 번째 철학》 《생존과 승리의 제왕학 병법노자》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 《순자: 절름발이 자라가 천 리를 간다》 등
애덤 스미스가 설명한 핀 공장의 分業 모습. 한비자도 유사하게 정치에서의 분업을 주장했다.
  역사관(歷史觀), 경제관(經濟觀), 성인관(聖人觀) 등 많은 부분에서 법가(法家)와 유가(儒家)는 생각을 크게 달리한다. 군신관계(君臣關係)를 보는 관점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법가는 유가와 달리 군신관계를 어떤 당위적(當爲的) 관계, 부자(父子)관계처럼 천륜(天倫)에 가까운 관계로 보지 않는다. 그냥 건조하게 거래관계, 주고받는 사이로 본다. 그러면서 늘 양자(兩者)의 이익이 상충(相衝)할 수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특히 한비자(韓非子)가 그랬다. 그는 철저히 거래관계로, 특히 거래관계 중에서도 주인과 대리인(代理人) 관계로 임금과 신하를 보았다. 그래서 그 둘 사이에 주인과 대리인 문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 주인과 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theory)라는 게 있다. 국가와 사회, 많은 조직에서 발생하는 문제인데, 주인이 모든 일을 직접 수행할 수 없기에 생기는 문제이다. 주인은 자신이 모든 일을 직접 챙길 수 없기에 대신 일을 해줄 사람을 불러와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많은 문제와 모순(矛盾)들이 생긴다.
 
  주인은 대리인을 고용할 때 당연히 대리인의 행위가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주인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직원이 반드시 경영자의 이익에 맞게 일하는가? 경영자는 주주(株主)의 이익에 맞게 일하는가? 공무원이 국민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가? 국회의원은 자신이 국민의 대리인이라는 생각 자체를 하는가?
 
  그렇지 않다. 공무원과 정치인은 분명히 국민의 대리인이고, 우리가 주인이지만 그들은 우리를 위해 일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주인의 기대는 늘 배반을 당하기 쉽다. 대리인은 주인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리인을 둘 때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무수히 많은 비용이 발생한다. 때로는 대리인 때문에 단순 비용만이 발생하는 게 아니라 주인이 망할 수도 있다.
 
 
  임금과 신하의 마음은 다르다
 
  군신관계도 이러한 주인과 대리인 관계이다. 그렇기에 궁중사회에서는 늘 대리인 문제와 대리인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한비자는 군신이심(君臣異心)이라고 했다. 군주와 신하는 다른 마음을 가진다는 것이다. 즉 주인과 대리인은 다른 마음을 품고 있고 그래서 많은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임금과 신하의 마음은 다르다. 임금도 계산으로 신하를 기르고 신하도 계산으로 임금을 섬기니. 이처럼 임금과 신하는 계산으로 맺어진 관계이다. 자신이 손해 보면서 나라를 이롭게 하는 일은 신하는 하지 않는다.(君臣異心. 君以計畜臣, 臣以計事君, 君臣之交, 計也. 害身而利國, 臣弗爲也)〉 (《한비자》 식사(飾詐)편)
 
  유가는 군주와 신하를 두고 유사(類似) 부자관계, 유사 가족관계로 설명한다. 때로는 종속(從屬)관계로도 이야기하지만 한비자는 그런 것 전혀 모른다. 그가 보기에 임금과 신하, 혹은 관료는 어디까지나 이익을 매개(媒介)로 만났을 뿐이고, 서로 계산하는 사이일 뿐이다. 군주는 신하를 고용해서 국가행정을 빈틈없이 처리하고 국력을 높여 자신의 이익을 신장시키려고 한다. 신하는 임금에게 고용되어 관직·녹봉을 받고 토지를 받는 등 구체적 이익을 누리려고 한다. 군주는 신하와 관료가 조건 없이 충성해야 하고 아버지처럼 섬겨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나를 필요로 해서 쓰고 있는 고용주에 가까운 존재일 뿐이다. 서로가 각자의 이익을 위해 필요로 하는 관계이므로 어디까지나 주인과 대리인으로 보면 딱 맞을 뿐이다. 당연히 궁중사회, 관료사회에서는 주인과 대리인 사이에 딜레마가 생길 수밖에 없다.
 
  늘 주인의 기대는 어긋나기 마련이고 대리인과의 거래를 통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은데, 어떻게 하면 군신관계에서 그 문제를 최소화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대리인인 신하가 주인의 이익을 위해 일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 답을 내려고 애를 썼던 사람이 한비자이다. 즉 한비자 사상의 문제의식은 바로 군신관계에서 늘 상존할 수밖에 없는 주인과 대리인의 모순 해결에 있다.
 
  주인과 대리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대표적인 문제가 바로 도덕적 해이(解弛)이다. 쉽게 말해 대리인은 주인이 망하든 흥하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중요한 정보를 주인에게 넘기지 않고 숨기기도 하는데 그것이 바로 역선택(逆選擇·adverse selection)이다.
 
  유능하고 충직한 대리인을 무능하고 부패한 대리인들이 괴롭히거나 배제하는 문제도 있다. ‘그레셤의 법칙’이 작용해 조직 내에서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하는 것이다. 이 역시 군신관계·궁중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순이며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답일 것이다. 한비자는 상(賞)과 벌(罰)로 대변되는 ‘법(法)’과 군주의 ‘세(勢)’를 대안으로 말했다.
 
  일 잘하는 대리인에게 상을 준다. 일 못하는 대리인에게 벌을 준다. 주인은 군주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자에게 상을 내리도록 법에 규정하고 그 법대로 행한다. 반대로 군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신하에게는 벌을 내리도록 법에 규정하고 그 법대로 행한다. 법을 통해 대리인들이 좀 더 유능하고 충직하게 일하도록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법을 늘 추상같이 엄격하고 공정하게 행해 군주의 위상과 권력의 기반을 단단히 다져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세’이다. 세를 가져서 임금의 권위를 공고히 하면 대리인은 주인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뿐이면 너무 심심할 것이다.
 
 
  法術之士와 重臣
 
한비자.
  한비자는 유능한 대리인을 법술지사(法術之士)라고 말했다. 반대로 나쁜 대리인을 중신(重臣)이라고 말했다. 법술지사는 법대로 정치를 하고 행정을 집행하고 정직하게 일을 하며 공익(公益)을 생각하며 국사(國事)를 처리하는 자인데 중신은 그렇지 않다. 간신(奸臣)이라고 불러도 좋은 그 중신은 임금을 속이고 백성을 학대한다. 무능하다 못해 군주의 이익을 침해하고 사익(私益)만을 꾀한다. 더 나아가 주인인 군주의 권력을 침해하는데 이들은 문제가 개인이 아닌 네트워크 단위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파벌(派閥)과 파당(派黨) 그 자체다. 그래서 한비자는 이렇게 말했다.
 
  〈나라를 잘 다스리려면 반드시 붕당을 쳐야만 한다. 그 붕당을 치지 못하면 그들이 장차 많은 무리를 모을 것이다.〉 (《한비자》 양권(揚權)편)
 
  중신들은 조정 안에서 자신의 사적(私的)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적 파벌을 만들어내는데, 그들은 잘 알고 있다. 혼자 힘으로는 국정을 농단하고 임금을 속일 수 없음을…. 그래서 절대 혼자서 행동하지 않는다. 공모자(共謀者)를 찾고 협력자들을 찾는다. 궁궐 내부, 다른 신하와 귀족들, 왕의 인척들 중에 모리배(謀利輩)를 찾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단체로 움직인다. 그들이 궁중사회를 장악하면 우선 선하고 정직한 대리인을 축출한다. 그러고 나서 그 빈자리에 자기 사람을 심는다.
 
 
  반드시 붕당을 부수어라
 
  그럼 군주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비자 말대로 파당을 부수어야 한다. 궁중사회에서 절대로 신하들이 세력을 만들어 뭉치지 못하게 제어해야 한다. 대리인 모순을 줄이기 위해서는 파당이 만들어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라는 것이다. 파당을 없애야 하기에 군주는 군주와 신하 관계를 1대(對) 다(多) 관계가 아니라 1대 1 관계를 복수(複數)로 맺는 경우로 만들어야 한다. 신하가 100명이 있으면 1대 100이 아니라 ‘1대 1 관계 × 100’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하들 각자가 공과(功過)와 성적을 임금에게 평가받도록 하고, 군주는 그것을 기준으로 해서 상과 벌을 내려 각자에게 마땅한 책임을 지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한비자의 형명론(形名論), 형명(形名)의 술(術)이다. 신하 하나하나를 쪼개서 관리하고 평가하며 책임을 지우는 관리의 기술, 테크닉이다.
 
  형명의 통치술은 간단하다. 명(名)은 신하에게 부여한 임무고 보직(補職)이다. 또는 신하 자신이 맡겠다고 자청한 보직과 역할이다. 형(形)은 밖으로 드러난 것으로서 결과, 행위, 전적, 성과, 실적이다.
 
  형명술은 명과 형을 대조해서 사후 평가, 관리, 감독하는 것이다. 각자의 역할과 임무가 있는데 결과적으로 충실히 잘 수행해낸 신하들에게는 군주가 상을 주는 것이고, 반대로 결과나 성과를 보니 보직 수행을 소홀히 했거나 임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판단되는 신하들이 있다면 군주가 벌을 준다. 이것이 대리인을 더욱 잘 통솔하고 그들이 주인의 이익을 위해 일하게 만들려고 했던 한비자의 대안이다.
 
 
  군주는 정치 소비자다
 
  앞서 군주와 신하는 이익을 매개로 해서 만난다고 말했다. 군주는 녹(祿)과 지위, 상으로 사람과 그 사람의 능력을 구매한다. 즉 군주는 소비자인 것이다. 소비자로서 자신이 가진 것을 대가로 내걸어 유능한 사람과 그 사람의 능력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대로 파당이 생기고 파벌이 생기면 어떻게 되겠는가? 임금은 늘 유능한 대리인을 필요로 하고 그 유능한 대리인의 능력을 사야 하지만 파당이 생긴 상황에서는 마음대로 구매하고 소비할 수가 없다. 나쁜 대리인 연합과 파벌이 제공하는 사람만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소비자이지만 선택의 자유가 사라진다.
 
  사실 한비자는 주인과 대리인 이론만 가지고 군신관계와 임금의 고민을 본 것이 아니다. 군주를 일종의 정치 소비자, 수요자로 전제해놓고 본 부분도 많다. 임금을 정치의 소비자로 놓고서는 ‘어떻게 하면 소비자의 이익을 극대화(極大化)시킬 수 있을까’ 생각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자, 소비자, 구매자인 임금은 나쁜 대리인인 중신들이 모여 파당이 만들어졌고 그들이 공급을 독점하는 판매자 집단이 되어버린 상태에서는 늘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늘 저(低)품질 서비스를 강매(强買)당하고 때론 자신을 해칠 사람을 쓰고 구매하기도 한다. 그렇게 파당, 파벌이 궁중 내에서 득세(得勢)하면 소비자로서 임금이 누리는 만족과 효용은 최소화된다.
 
  파벌, 파당이 생겼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바로 독점(獨占)이다. 시장에서 공급자가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것이다. 담합(談合)을 통해 카르텔이 형성되었다. 결국 공급자가 독점을 하게 된 상황에서 소비자인 임금은 아무런 선택권이 없게 된다. 한비자의 생각에 독점은 아주 나쁜 것이다. 공급자가 횡포를 부려도 제어가 안 된다. 생산자, 혹은 공급자에게만 이익을 주고 소비자, 수요자에게 큰 손해를 끼친다. 소비자, 수요자의 손해가 공급자의 이익보다 훨씬 크다는 게 특히 문제이다. 더 나아가 독점은 국가 전체에 해를 입히는 경우도 많다.
 
 
  한 사람만을 중용하면 망한다
 
  그래서 한비자는 공급에서 독과점 구조가 만들어지면 임금은 소비자로서 손해만 보고, 그러면서 임금의 권력과 국가의 주권이 독과점 구조를 만들어낸 집단에게 접수되어 사유화(私有化)까지 되니 반드시 붕당을 부수어야 한다고 경고한다.
 
  〈중신들은 어리석고 더럽혀진 사람들을 껴안아 위로는 이들과 함께 군주를 속이고 아래로는 이들과 함께 이익을 찾아 침탈을 일삼는다. 파당을 짜서 한 패거리가 되어 서로 말을 맞추어 군주를 현혹시키고 법을 파괴한다. 그리고 인민의 생활을 어지럽히고 마침내는 나라를 위험에 빠뜨려 영토가 깎이고 군주는 욕을 당하게 된다.〉 (《한비자》 고분(孤憤)편)
 
  독점을 경계했던 한비자는 이런 말도 했다.
 
  “한 사람만을 중용하여 창구로 삼는 경우 그 나라는 멸망하게 될 것이다.(用一人爲門戶者, 可亡也)”
 
  《한비자》 망징(亡徵)편에서 한 말이다. 신하 한 사람만을 총애해서 의사결정 통로를 단일하게 만들거나 정보의 창구를 일원화(一元化)시키면 나라는 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군주가 가만히 있어도 신하들은 파당을 형성하고 자연히 정치 공급에서 독과점 현상이 보이기 쉬운데 임금이 스스로 독과점 현상을 조장하면 어떻게 될까?
 
  사실 한비자는 신하와 관료들을 1인 정치기업으로 본 사람이다. 그 기업들끼리 카르텔, 담합이 있어선 안 된다. 그리고 애초에 소비자인 군주는 한 기업, 특정기업에서만 물건을 사고 구매할 이유가 없다. 더 좋은 서비스와 더 질 좋은 정치재화를 공급하는 주체가 있으면 그 정치기업의 물건을 구매해야 하고 언제든 시장에 우수한 정치기업들이 진입하게 해서 완전 경쟁시장이 만들어지도록 해야 할 것인데, 소비자인 군주가 한 기업에 목을 맨다면 어떻게 될까? 그럼 공급의 독점이 이루어질 것이고 그렇게 공급의 독점이 이루어지는 순간, 공급의 질(質)은 형편없어질 수밖에 없다. 형편없는 정치서비스, 행정서비스를 강매당하거나 소비하면 나라는 기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비자는 정치기업들인 신하들끼리 경쟁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더 나은 것을 제공하는 기업에 정치 소비자인 왕의 마음이 언제든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한비자》 현학(顯學)편에서 말하길 “재상은 시골에서, 장수는 병졸에서 뽑으라”고 했다. 신분과 배경 가리지 말고 능력과 실적으로 사람을 뽑아 부려먹으라는 말이다. 살짝 바꿔 말해보자면 언제든 새로운 공급자를 찾으려 해야 한다는 말이다. 소비자가 변심할 수 있어야 기업들이 경쟁하고 노력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정치 소비자의 이익과 효용이 커진다. 군주의 효용과 만족이 극대화되어야 국가도 부강해질 수 있다. 이것이 한비자의 생각이다. 그는 정치에서 소비자의 이익과 만족, 효용의 극대화 등을 추구했다. 특정 정치업무와 보직에서 능력자가 새롭게 등장할 수 있게 해야 하고 등장하면 그를 써먹어야 한다. 관료사회에서 적체(積滯)와 정체(停滯)는 없어야 한다.
 
 
  애덤 스미스, 獨寡占이 세상을 망친다
 
애덤 스미스는 가난한 동포 스코틀랜드인에 대해 가슴 아파했다.
  독점은 애덤 스미스도 싫어하였다. 그는 ‘시장기구가 각 개인의 사익 추구를 사회 전체의 이익의 증대로 전환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공정한 경쟁질서가 존재할 경우에만 그렇게 작동할 수 있다. 공정한 경쟁의 질서가 전제되어야만 시장기구에서 각 개인의 사익 추구가 전체의 이익 증가와 국가의 부(富)로 전환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애덤 스미스는 독점의 철폐와 경쟁의 확립을 주장했다. 독점이 있으면 나라는 가난해지고 공익은 증진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애덤 스미스도 독과점(獨寡占)이 세상을 망친다고 보았다. 그의 《국부론(國富論)》은 당시 대세(大勢)던 중상주의(重商主義)에 대한 신랄한 비판에서부터 시작됐다. 그가 보기에 중상주의의 주요한 정책은 독점(Monopoly)이었다. 그가 비판한 중상주의의 독점은 공급자가 단 하나밖에 없는 상황만이 아니라 소수(少數)기업과 대상인(大商人)들 간 담합이 이루어지는 과점(寡占·monopsony)까지 해당된다.
 
  당시 그들은 국가권력과 유착되어 규제와 특혜를 통해 주요 산업과 식민지 사업에서 배타적(排他的) 영업권을 누리는 경우가 많았다. 애덤 스미스는 이들이 주요 산업에서 정부의 특혜와 규제를 통해 독점적 이익을 누리는 현상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독점의 폐해로 네 가지를 지적했다.
 
  첫째, 독점은 공급을 제한하여 가격을 부당하게 높인다. 즉 폭리(暴利)를 취한다는 것이다.
 
  둘째, 국민소득과 저축을 감소시키며 그 결과 경제성장을 후퇴시킨다.
 
  셋째, 절약의 미풍을 파괴한다. 스미스는 이것이 독점이 불러오는 가장 큰 피해라고 보았다. 독점을 통해 쉽게 돈을 버니 쉽게 돈을 낭비하고 탕진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자본이 증가하고 축적되기는커녕 감소하여 생산과 고용 역시 늘지 않고 감소하게 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기업가들의 불성실한 경영을 초래한다.
 
 
  경쟁의 긍정적 효과
 
  애덤 스미스는 독점이 아닌 경쟁을 답으로 말했다. 그는 경쟁이 낳는 이익에 대해서도 독점의 폐해만큼이나 상세히 열거했다.
 
  우선 경쟁의 증대가 상품가격의 하락을 가져와 공급자들은 손해를 보지만 사회 일반은 이익을 보게 된다고 했다.
 
  〈경쟁의 증대는 직인(職人)의 자금뿐만 아니라 장인(匠人)의 이윤도 저하시킬 것이다. 따라서 사업과 기술과 비법 모두가 손해를 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수공업 제품이 싸게 시장에 공급될 것이므로 사회 일반은 이익을 볼 것이다.〉 (《국부론》)
 
  사회 일반은 누구인가? 바로 소비자들이다. 경쟁이 소비자가 이익을 누리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경쟁이 불러오는 효과다. 그리고 애덤 스미스는 경쟁은 기업들이 훌륭한 경영을 하도록, 즉 경영방식을 진화(進化)시키도록 압력을 행사해 기업 경영의 합리화를 돕고 생산성을 높이도록 한다고 했다. 스미스는 기업가들만이 아니라 기업가들에게 고용된 노동자들도 열심히 일하도록 하는 데 효과적으로 기능한다고 했다. 직장 내 동료 간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이다.
 
  정리하자면 경쟁의 긍정적 효과는 두 가지이다.
 
  첫째, 탐욕과 반칙의 예방이다. 폭리를 취하기 위해 가격을 과다하게 책정하는 일을 줄이고 품질을 불량하게 만드는 기업가들을 도태시켜 부당한 탐욕과 반칙의 예방 효과를 가져온다.
 
  둘째, 동기부여 효과이다. 자발성(自發性) 유발 효과인데,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일일이 지도·감독하고 감시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경영을 합리화시키고 동료보다 열심히 일하게 된다.
 
  이렇게 경쟁의 효과는 철저히 사회적인 것으로 공동체(共同體)가 공유(共有)하게 된다. 높아지는 생산성, 합리적인 가격의 책정으로 인해 사회 전체가 이득을 누리고 특히 소비자들이 득을 보게 된다. 더욱 많은 필수품과 편익품(便益品·편리하고 유익한 제품)을 구매해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分業
 
  애덤 스미스는 소비자 이익 지상(至上)주의자다. 소비자가 행복해야 한다고 본 사람이다. 소비자가 이익을 누려야 국가가 부유해진다고 본 사람이다. 그가 특혜와 규제의 장벽으로 독점 기업과 대상인들이 폭리를 취하던 중상주의를 집요할 정도로 공격한 것은 그 중상주의라는 것이 일반 국민에게 전혀 이로울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외려 소비자들에게 피해만 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애덤 스미스에 대한 오해가 있다. 자유경쟁을 표방하고 인간의 이기적(利己的) 본성(本性)을 긍정했기 때문에, 그가 생산자와 기업의 편이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소비자의 이익을 제일 중시했던 애덤 스미스는 소비자들, 특히 가난한 소비자들에게 필수품과 편익품이 최대한 많이 공급되기를 바란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저 독점의 이익을 누리려고 하고 국내에서도 부족한 상품을 외국에 수출하는 데 혈안이 되어 금(金)과 은(銀)만을 벌어서 쌓아두려는 중상주의를 스미스는 좋아할 수 없었던 것이다. 소비자가 더욱 많은 것을 누려야 한다. 소비자의 풍요로움이 늘어야 한다. 그렇기에 독점은 나쁜 것이고 경쟁은 선한 것이다. 독점이 나쁘다고 경쟁이 좋다고만 주장한 것이 아니라 스미스는 분업(分業)과 자본 축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분업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올려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공급의 양(量)이 확대되어 소비자들이 득을 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렇듯 애덤 스미스는 독점과 경쟁에 대한 관점에서 한비자와 유사하다. 그래야 소비자가 이득을 보고 그것이 전 사회적으로 이롭다고 본 것이다. 거기가 끝이 아니다. 둘 다 분업을 말했다. 분업을 통한 생산성의 향상을 강조했다.
 
 
  닭과 고양이
 
  〈대저 사물이란 그 적성이 있으며 재능도 쓸데가 따로 있어서 각자 거기에 걸맞게 구실 하면 위에 있는 자가 무위(無爲) 그대로 있을 수 있다. 닭에게 새벽 시각을 알리게 하고 고양이에게 쥐를 잡게 하듯이 각자의 능력을 활용하면 위에 있는 자는 따로 일하지 않아도 된다.〉 (《한비자》 양권편)
 
  대저 사물이나 사람이나 각자의 적성이 따로 있다. 모든 것을 잘하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잘하는 것을 맡게 하고 그 상태에서 분업을 이룬 채 돌아가면 된다. 분업시스템에서 각자 자기 일만 잘 하면 될 뿐이다. 각자가 가진 특기와 재능, 적성을 제대로 파악해서 관직을 주고 직무를 준다. 그리고 각자가 분업을 이룬 상태로 국가행정이 돌아가야 한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전문관료제를 해보자고 한 것이다.
 
  그것을 한비자는 닭과 고양이를 들어 말한 것이다. 분업을 통해 정치의 생산성을 신장시켜보자는 것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한비자뿐만 아니라 다른 법가사상가들도 공유한 생각이었다.
 
  유가에서는 육예[六藝, 예(禮)·악(樂)·사(射)·어(御)·서(書)·수(數)]를 두루 할 줄 아는 선비, 전인적(全人的)인 존재를 원하지만 법가는 그런 것이 없다. 전문관료제도를 운영하려고 했던 법가는 그저 인간에게는 타인(他人)과 차별화된 특기만 있으면 된다. 군주는 그저 차별화된 특기와 적성을 잘 보고 일을 맡기면 될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정치가 분업을 이루어 돌아가느냐였기 때문이다.
 
  분업을 위해 한비자는 겸직(兼職)과 겸관(兼官) 금지라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일과 직위를 겸하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한 사람에게 두 개 이상의 관직을 맡기거나 하나의 관직이 여러 임무를 담당하는 자리여선 안 된다는 것이다. 철저히 나누고 쪼갠 상태에서 일을 시키고 맡기려고 했다. 그리고 겸관과 겸사만이 아니라 월권(越權), 월관(越官)도 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료들이 자신의 사적 판단으로 다른 관료의 일과 업무에 나서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전문화와 特化
 
  효율성을 중시한 애덤 스미스도 경제적 효율성의 비결은 특화(特化·specialization·전문화)와 분업(division of labour·노동의 분업)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부론》에서 핀 생산을 예로 들었다.
 
  〈우리 대부분은 주철이 채굴되고 제련되어 우리 앞에 있을지라도 하루에 한 개의 핀을 만들기도 어렵겠지만, 그러나 하나의 핀 공장에 있는 10명의 사람은 하루에 4만8000개의 핀을 생산할 수 있다고 했다. 왜 그런가? 그것은 핀 공장에 있는 10명의 사람이 각자 핀 생산에 필요한 여러 부분을 나눈 상태에서 특화하여 생산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철사를 뽑아내고 다른 한 사람은 뽑아낸 철사를 똑바로 펴고 세 번째 사람은 철사를 자르고 네 번째 사람은 철사를 뾰족하게 만들고 다섯 번째 사람은 끝을 갈아서 핀의 머리 부분을 만든다.〉
 
  애덤 스미스는 전문화와 특화가 생산과정을 수천 배는 더 생산적으로 만들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애덤 스미스가 이런 얘기를 한 《국부론》은 간단히 말하자면 ‘국민의 부는 무엇이고 그 부는 어디에서 오는가, 혹은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아내 써낸 책이다. 그는 국민의 부는 필수품·편익품을 얼마나 생산하느냐, 즉 필수품과 편익품의 제조에서 생산성을 얼마나 올리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했다. 특화와 전문화에 기초한 분업을 통해 생산성의 신장(伸張)을 이룩할 수 있다고 보았고 국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자, 한비자는 정치의 생산성, 스미스는 경제의 생산성을 위해 분업을 예찬한 것인데, 소비자 이익 지상주의 그리고 분업의 긍정에서 둘이 포개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번 글에서 언급한 대로 인간의 이기심(利己心)과 자애심(自愛心)을 긍정한 부분, 그것이 사회의 발전, 국력의 신장과 직결될 수 있다고 본 점에서 두 사람은 비슷하다. 소비자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점, 독점을 혐오하고 경쟁을 강조했으며 분업을 긍정한 점에서 둘은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역사관, 이신론적(理神論的) 관점, ‘정부의 실패’를 늘 경계했다는 점 등 비슷한 점과 공유하는 문제의식이 매우 많다.
 
  일단 둘 다 소비자 이익 지상주의라는 것을 기억해주면 좋겠다. 특히 애덤 스미스가 생산자, 대기업가와 대상인의 편이 아니었다는 점을 기억해주면 좋겠다. 그간 스미스에 대한 오해와 억측, 그리고 견강부회(牽强附會)적인 이해가 많았기에 더욱 그 점을 알아주기 바란다.
 
 
  대한민국 우파, 애덤 스미스부터 다시 읽자
 
  애덤 스미스는 가난한 스코틀랜드 동포들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는 죽을 때까지 학문적·사상적으로 스코틀랜드인이었다. 그는 가난에 허덕이는 스코틀랜드인들에게 더욱 많은 필수품과 편익품이 분배·소비되기를 원했다. 그가 《국부론》에서 국가의 부를 재정의(再定義)하고 국부를 늘리는 법에 대해 기존 견해를 뒤엎은 것 뒤에는 이런 그의 따스한 심장과 감성이 있다고 하면 억측이고 지나친 얘기일까?
 
  동포들에 대한 애정 말고도 《도덕감정론》과 《국부론》 전반을 읽어보면 약자(弱者)들에 대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눈에 들어온다. 스미스 사상을 공부하고 음미하면서 그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고 더 나아가 생각의 전환이 있으면 좋겠다.
 
  우파적(右派的) 정치이념, 우파적 정치경제관이 정말 냉혹한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원리를 지향하고 찬양해야 하는가? 기업과 생산자의 이윤만 옹호해야 하는가? 경쟁에서 나가떨어진 사람들에 대한 측은지심이 없어도 되는가?
 
  대한민국 우파는 어느 순간부터 방향성 자체를 상실했다. 어떤 가치와 철학의 기반 위에 우리가 서야 하는지 그 고민 자체를 버렸다. 제대로 된 가치와 이념, 철학의 바탕 위에 서려는 노력을 지금이라도 해야 할 것인데, 차근차근 애덤 스미스에 대해 다시 읽어보는 것이 어떨까? 그는 생산자의 편이 아니었고 정부의 특혜를 받는 기업과 상인을 옹호하고 정경유착을 좌시만 했던 사람이 아니었으며, 냉정하고 건조하게만 세상을 바라보는 학자가 아니었다.
 
  우파, 특히 젊은 우파들이 그에게서 배웠으면 좋을 듯 싶다. 무엇보다도 공동체 구성원들에 대한 애정, 약자들에 대한 관심 말이다. 철학적·경제학적 통찰도 중요하지만 다른 걸 떠나 애덤 스미스에게서 그런 것들을 배워 늘 따스한 가슴을 가지는 게 어떨까?
 
  우파 집단이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야 하는 이 시점, 그러면서 국민들에게 새롭게 어필할 수 있는 감성(感性)을 개발해야 하는 지금 이 시점에 애덤 스미스는 그 답을 알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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